<colcolor=#fff> 수원 토막 살인사건 오원춘 살인사건 | ||
<colbgcolor=#bc002d> 발생 일시 | 2012년 4월 1일 20시 32분 | |
발생 위치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 |
피의자 | 오원춘 (남, 1970년생 / 당시 41세) | |
범죄 항목 | 살인, 시체 손괴, 강간 | |
관할 | 수원지방법원 | |
인명 피해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 곽모 씨 (여, 2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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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피의자 오원춘의 사진]
범행수법 자체가 워낙 잔혹하고 전혀 주저와 당황, 초조해한 흔적이 없다. 돈이 필요하다거나 급박한 분노 또는 순간적인 충동이 발생했다거나 그 이후에 행해지는 주체하지 못하는 행동, 이후의 반성, 이런 모습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중에서 표창원[1]이 범인에 대해서 한 말.
CBS 김현정의 뉴스쇼 중에서 표창원[1]이 범인에 대해서 한 말.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소리)
신고자: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접수자: 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 번만 알려 주세요.
신고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접수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고자: 악- 악- 악- 악- 잘못했어요. 악- 악- 악- 악-
접수자: 여보세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반복)
신고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접수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중략)
다른 근무자: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
오후 10시 58분 34초 전화 끊김[3]
경찰이 최초에 은폐했던 녹취록 후반부 (녹취록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전문 링크)
조선족 오원춘[4]이 2012년 4월 1일 20대 여성 곽 씨를 납치해 성폭행하려다가 저항하자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심하게 훼손[5]하다가 붙잡힌 사건이자 범행의 잔인성 외에도 곽 씨가 구체적인 범행 장소까지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미흡한 초동 대처를 해 결국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져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건.신고자: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접수자: 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 번만 알려 주세요.
신고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접수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고자: 악- 악- 악- 악- 잘못했어요. 악- 악- 악- 악-
접수자: 여보세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반복)
신고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접수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중략)
다른 근무자: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
오후 10시 58분 34초 전화 끊김[3]
경찰이 최초에 은폐했던 녹취록 후반부 (녹취록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전문 링크)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평소에도 좋지 않았던 조선족의 인식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각종 미디어나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대부분의 조선족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살릴 가능성이 있었던 사람을 사실상 방치해 피해자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떨어졌다. 경찰 지휘부의 숙원인 수사권 독립은 10년은 물 건너갔으며[6], 조현오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9일 만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2. 상세
2012년 4월 1일 오후 10시 32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초등학교 근처의 주택가에서 귀가하던 회사원 곽 모씨(당시 28세, 여성)가 한 남성에게 갑자기 덮쳐져 그의 집[7]으로 끌려 들어갔다. 여성을 납치한 이는 조선족인 오원춘(당시 만 41세)(얼굴이 공개된 기사)으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피해자에게 몸을 부딪혔다고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언니는 "범인은 동생이 욕을 해 우발적으로 끌고 갔다고 하는데 동생은 욕을 할 줄 모르고 남한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다. 범인이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쯤 집 앞을 걸어가는 동생을 지켜봤다가 계획적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범인은 "집 앞에서 어깨가 부딪혀 시비 끝에 집으로 데려가 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여자가 한밤중에 인적 없는 곳에서 낯선 남자에게 시비를 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피의자의 주장은 변명일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CCTV를 확인한 결과 걸어가던 피해자 앞에 갑자기 오원춘이 나타나 피해자를 밀치면서 살짝 넘어졌고, 다시 피해자를 끌고 들어가는 순간이 포착되면서 의도된 범죄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CCTV 영상은 사건 초기에 입수했는데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확인해 발표했다. 오원춘의 말에 따르면 피해자에게 돈을 줄 테니 성매매를 하자며 제의했고, 완강히 거부하자 살려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스패너로 머리를 쳐서 기절 시키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한다.
현장 검증 사진 |
결국 피해자는 무참히 살해 당했다. 오원춘의 말에 의하면 피해자는 전화가 끊긴 후에도 6시간 동안 살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주장한 대로 새벽 1시에 죽었다고 해도 최소 3시간은 살아 있었던 셈이다. 부검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오므라이스를 먹은 것으로 추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오후 8시쯤 식사를 하고 2시 반 뒤인 10시 30분쯤 납치됐는데 오의 말대로 이튿날 오전 5시에 살해됐다면 위가 비어 있어야 정상"이라며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로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범인은 체포 당시 피해자의 시신을 해체하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칼 가는 숫돌까지 있었다. 그 짓을 하는 동안 칼날이 무뎌지면 날을 갈아서 그 짓을 반복했다는 얘기다.
오원춘은 사체를 무려 280조각으로 해체해서 17개의 비닐 봉지에 나눠 담았다고 한다. 통상적인 살인 사건의 경우 2~3명의 부검의가 부검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사체 훼손 정도가 매우 심해 14명이 부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행 흔적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훼손이라고 알려졌다. 결국 오원춘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봉지 하나당 20여 점씩 살점 덩어리가 총 280여 점이 담겨 있었다"는 국과수 관계자의 발언이 있었다고 한다. 범행 현장을 목격한 익명의 응급구조사는 "뼈가 드러나 보일 만큼 살을 있는 대로 다 발라낸 상태"[9]였다고 말했으며, 이 일의 여파로 이틀간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온갖 처참한 상황을 접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반응했을 정도면 얼마나 잔혹했는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사체가 워낙 엽기적으로 훼손된 데다 조사에 임한 범인 오원춘의 태도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 힘들 만큼 담담했다. 유치장에 구속되었을 땐 오는 끼니 때마다 밥도 잘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로 흘러나온 말에 따르면 범인은 체포되면 굉장히 많이 맞을 줄 알았는데 한국 경찰은 때리질 않아서 그나마 맞아 죽지는 않을 거라고 안심했다고 한다. 중국 경찰은 검거 당시부터 시작해 조사 과정에서도 엄청난 구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그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으나 그를 면담한 프로파일러 권일용 당시 경감[10]은 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언급했다. 사이코패스 여부를 진단하는 PCL-R 검사에선 22점이 나왔다.[11]
행인을 거리낌 없이 납치하고 잔인한 수법으로 토막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것에서 우발적인 살인범은 아닌 것이 확실하며 숨겨진 범죄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경찰은 범인이 체류 기간 중 전전한 지역들의 미귀가자 신고 접수 내역과 미제 사건을 확인하며 여죄를 캐는 데 집중했다. 거제시, 부산광역시, 대전광역시, 용인시, 제주특별자치도, 수원시 등. 당시 해당 지역들의 미제 사건 피해 여성이나 실종 여성은 총합 135명이었다. 상식적으로 저 많은 지역의 여성들을 오원춘이 몽땅 살해했을 리는 없겠지만 일부 잘못된 여론몰이로 인해 실제 피해자가 이 정도나 되는 것처럼 뻥튀기되기도 했다. 물론 사건의 흉악성을 볼 때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로, 미제 사건의 제1 용의자가 되었다.
그런데 4월 말 그의 집 소각로에서 타다 남은 뼛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문제의 뼈는 경찰이 수거해갔으며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큰 것은 정형외과 등 전문가의 소견으로는 사람 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작은 것은 불분명한 상태라 경찰에서 수거 후 국과수에서 수사했으나 감정 결과 동물 뼈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몇몇 언론사에서 범인의 실명을 공개했으며 동아일보 홈페이지에는 범인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기사로 나온 것은 아니고 동아 블로그가 메인에 링크된 것. 이미 현장 검증 시 얼굴이 보이기도 했으며 조선일보에서 얼굴 전면이 공개된 기사를 올렸다. 4월 10일 JTBC에서도 신상을 공개했다. #
그리고 드디어 오원춘에게 2012년 6월 15일 1심 법원에서 인육 제공설 등을 인정하여[12] 사형을 선고했다. # 정확한 선고 내용은 사형과 더불어 10년간 신상정보 고지, 30년간 위치추적장치 부착이라고 한다. #
오원춘은 항소했고 2012년 10월 18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사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판결에 다시 충격을 받고 "이 나라가 너무 싫다", "다시 트라우마가 찾아왔다"고 오열했다.
"국가가 얼마나 더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야지만 사형을 내리는 건지... 그게 얼마나 더 끔찍하게 죽여야지만 사형이 선고가 되는 건지 알고 싶어요. 이런 사건조차 무기징역이 나는데 범죄자들이 얼마나 활개치고 다니겠어요."
무기징역이 선고된 이유는 사형 판결의 원인이 된 '인육 제공설'이 항소심에선 증거 불충분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측에서는 오원춘이 시신을 수백 조각으로 나눠 해체하긴 했으나 그냥 봉지에 담은 점 등으로 보건대 인육 제공이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13] 따라서 인육설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폭력 결합 살해 및 사체 훼손이므로 무기징역이 적절하며 사형 선고는 합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14]사건의 여파가 크다 보니 무기징역 판결 하루 뒤 열린 국정감사에선 여야가 한 목소리로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판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2013년 1월에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앞서 2심의 인육 제공설 기각이 감형 확정의 주된 이유라고 한다.
3. 논란
자세한 내용은 수원 토막 살인 사건/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이 사건처럼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반응과 파장을 일으킨 사건은 매우 드물다. 경찰에 이처럼 큰 전 국민적인 분노와 비난이 쏟아진 적은, 기자가 기억하기로는 민주화 이후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기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이 연이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의를 표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언론보도 이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정치권이나 고위공직자가 연결된 권력형 게이트나 대형 금융비리도 아니고, 수십 명이 살해된 연쇄살인사건도 아니었다. 한 여성이 흉악범에 의해 살해된, 어쩌면 자주 있는 단순한 살인사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피해여성이 현장에서 범행을 당하며 112센터와 주고받은 7분 36초의 절박하고 소름끼치는 통화내용과 이를 숨기려는 대한민국 경찰의 거짓말과 사건 축소 은폐 행태가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일선에서 지켜야 할 경찰이 사건 축소은폐에만 급급해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명예와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한국기자협회 칼럼
4. 체포 후
- 2012년 6월 22일 오원춘이 추가조사를 받기 위해 대형버스를 타고 수원지방법원으로 호송되고 있었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마약사범 이모 씨와 몸싸움을 벌였다. 오원춘이 다리를 떨며 창 밖으로 여자가 지나갈 때마다 히죽거리는 모습을 본 이씨가 "너 오원춘 맞냐? 다리 흔들지 말고 반성하고 있어!"라면서 발로 툭 쳤고 이에 격분한 오원춘이 달려들어 싸움으로 번진 것. 물론 교도관들의 제지로 싸움은 바로 중단되었다. 이씨는 "나도 죄인이지만, 여성 행인을 보면서 피식 웃고 왼쪽 다리를 건들건들 흔드는 모습에 화가 나 그랬다."면서 분개[15]했다고 한다. #
- 경찰의 안일함에 분노한 피해자의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3억 6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경찰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 유가족에게 최종적으로 약 7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냈다(2016나2049991). 가족들은 돈의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남동생은 "사건이 마무리되고 우리 가족들이 숨이라도 돌렸을 때 사건 처리와 관련이 있는 경찰관들이 직접 찾아와 사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잘못을 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으나 결국 문제의 경찰들이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신고 접수 경찰관이 초기 대응과정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긴급하고도 중대한 위해상황을 현장 출동 경찰관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현장 경찰관들 역시 단순한 순찰을 넘어 집중적인 탐문수색 또는 CCTV 확보를 통한 현장 확인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하므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로 인정된다."
5. 재판
2012년 6월 15일 수원지방법원은 오원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판결문. 오원춘은 이에 항소하였다.2012년 10월 18일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은 제1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판결문. 이에 검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하였다.[16]
그러나 2013년 1월 16일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및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검찰의 상고를 전면 기각하였다. 판결문.
앞서 말했듯 재판 과정 중 시체 훼손 동기에 대해 인육 조달을 위한 시체 훼손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에서는 여러 가지 정황들[17]로 미루어 이를 인정했으나 이후 항소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18]
2013년 1월 19일 인터넷에서는 오원춘이 천안외국인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수감될 천안외국인교도소는 호화 시설[19]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천안외국인교도소는 주로 모범수가 수감되기 때문에 애시당초 오원춘 같은 흉악범이 거기로 갈 가능성은 없었고, 얼마 후 흉악범이 들어가는 경북북부제1교도소 독방에 수감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강제노역은 거부했으며 하루에 1시간 운동하는 거 빼고는 독방에서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20]
6.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피해자가 112에 신고하였으나 112에서 경찰관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2014년 서울고등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여 유족 2인에게 각 975만 원[21]을 배상하도록 판결하였으나(2013나2021459) 피고 소속 경찰관들의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부분에 유족이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2016년 대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인용하는 취지로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였다(2014다227843). 2017년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도 유족 측 의견을 인용하여 상향조정했다(2016나2049991).7. 기타
- 피해자는 1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집으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휴일이어서 마을버스가 일찍 끊긴 데다 2,000원이 조금 넘는 택시비라도 아끼기 위해서 버스와 도보를 이용했다. 아버지는 일용직 근로자,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는 등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졸업 후 고졸로 취직해 2년간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경리로 일했다. 이 때문에 늦은 나이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렇게 번 돈으로 군산의 한 전문대에 진학했다.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을 벌어가며 혼자 힘으로 졸업했지만 지방 전문대라는 이유로 학력 차별의 벽에 부딪혀 취업이 쉽지 않았다. 결국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짬짬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공부와 일을 병행하자니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학원비 부담까지 겹쳐 3년 만에 꿈을 포기했다. 곽 씨가 고향인 전북 군산을 떠나 언니(1981년생)가 사는 수원으로 올라온 것은 사건으로부터 8개월 전이었다. 경기도 오산에 있는 휴대전화 하청업체 부품 공장에 다니다가 사건 2달 전인 2012년 2월 집 근처 공장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일을(그것도 밤까지 야근을) 하고 그렇게 주말까지 나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라 한 달에 170~18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22] 등 정말 힘들게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을 절약해 가며 대부분 부모님에게 드리는 등 가족 생활비를 대고 회사에서 1달에 10만 원이 조금 넘는 밥값을 아껴서 조카에게 용돈을 챙겨주기도 해 함께 사는 조카들은 엄마보다 이모를 더 따를 정도로 자상했던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피해자 남동생 인터뷰. 이런 사람이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으니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 유가족들은 수면제 없이는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으며,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한 고통이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OO아! 사랑하는 내 동생 OO아! 너를 보낸 지 1년이 지났구나. 시간이 갈수록 너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힘이 든다. 1년 전 그날. 얼마나 무서웠니? 끔찍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만 나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단 한 번만이라도 너의 해맑은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공포에 질린 끔찍한 장면만 떠올라. 살고 싶다는 생각에 경찰을 찾았을 텐데, 내 동생이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 그런데도 이 나라는 변한 게 없구나. 너의 억울함만은 꼭 풀어주고 싶었는데... 너무 미안해.엄마·아빠는 엽기적인 살인마를 평생 먹여 살려주는 나라에서 너를 낳은 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셔. 조카들은 아직도 자장가 불러주던 이모를 찾는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를 가슴에 묻은 우리의 상처는 더욱 깊어져 가지만 이젠 힘을 내보려고 해. 그러니 그곳에서는 나쁜 기억 모두 잊고 편히 쉬어. 사랑하는 내 동생 OO아! 28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줘서 고마워. 가슴 찢어지도록 보고 싶다. 그리고 미안하다."피해자 언니가 1주기 때 쓴 편지 #
- 당시 사체 훼손의 특이한 점은 다른 토막살인과 달리 절단된 부위는 얼굴, 목, 손(목), 발(목)만이고 내장을 적출한 뒤 나머지는 살을 발골하듯 잔혹하게 제거해 냈다는 점이다.
- 이후 인육 캡슐이 다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이 사건이 다시 언급되었다. #
- 2014년 12월 4일 또 다른 사건인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이 발생했는데, 토막 시신 일부가 오원춘의 집과 1.5km 반경 안에서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거기다 이 사건의 범인 박춘봉도 중국 조선족인 걸로 드러나면서 조선족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나빠졌다.
- 문제는 조선족들 본인의 대응이었다. 당시 조선족 커뮤니티인 모이자 게시판에서는 범인인 오원춘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오죽하면 그랬겠나 하는 식으로 피해자를 모욕하는 글과 댓글이 계속 올라왔고, 많은 한국인들도 이를 확인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었다. 이들은 과거 논란이 된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에서도 한국인이 문제라 죄가 없다는 식의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강력하게 비판했다면 '개인의 일탈'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제 식구 감싸기 때문에 '쟤네는 다 저렇다.'는 식의 특정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일은 흔하고, 불행히도 이 사건도 그런 전철을 고스란히 밟게 된 셈이다.
- 시사인에서는 한 조선족이 일으킨 특수 사건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원인은 지역 슬럼화라는 것이다. 슬럼화된 지대는 치안·보안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사건이 발생한 지동 일대는 전형적인 구도심 지역인데, 한때는 동네가 번성한 적도 있었고 지동과 가까운 수원역과 팔달문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었지만 1990년대 후반에 택지개발 바람이 불면서 '영통지구' 등이 생겼고 지동을 비롯한 고등동 등 도심 지역은 방치되기 시작했다. 1997년 지동과 인접한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고 '문화재 보존' 등을 이유로 개발 기피가 심해지면서 구도심의 슬럼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 2007년 이 동네를 포함한 20여 구역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는데,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지역 사정이 더 나빠졌다는 게 동네 사람들의 설명이다. 부동산업을 하는 임 아무개 씨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동네 관리가 아예 안 된다. 사정이 나아진 사람들은 생활 여건이 좋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철거가 예정된 빈집은 자연스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지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전입·전출이 많아 유동성이 심하다. 노인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근 초등학교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가 전교생의 절반에 가까울 만큼 늘어나기도 했으며, 이곳으로 전입한 외국인 노동자도 많아졌다. 사건이 벌어진 2012년 기준으로 지동에 거주하던 외국인 1,347명 가운데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1,227명으로 절대다수였다. 지동초등학교의 다문화 가정 자녀 수는 3, 4명에서 9명으로 더블링되었다. 아버지가 한국인이라 한국 국적이고 스스로 밝히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 원래 소외된 지역, 특히 철거가 예정된 구역은 보안의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 7,300가구 16,000여 명이 사는 동네에 방범용 CCTV는 단 7대였다. 집들이 낮은 담장 사이로 오밀조밀하게 얽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담을 넘기도 쉬운데도 평소 경찰이 순찰을 도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기 막히게도 이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매일 밤 8시만 되면 경찰차가 동네를 순찰하고 CCTV도 추가로 2대 더 설치됐으며, 이후에는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되어 수천 대를 늘렸다. 5월에는 시내 뒷골목 등을 24시간 CCTV로 감시하는 첨단 'U-City 통합센터(범죄 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순찰차에 영상을 보내 경찰과 공조하는 시스템)'를 개설했다.
- 사건이 발생한 동네도 큰 충격과 타격을 받았다. 끔찍한 사건 이후 집주인들은 집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고, 전세 기간이 남은 세입자들도 이사를 갔으며 거주민들 외의 유동인구가 줄면서 집값은 더 떨어지고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 됐다. 부동산중개업소는 다른 동네에서 지동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1년 만에 인적 없는 유령마을로 전락했다고. 애초에 지역이 슬럼화된 것이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었는데 더 심해진 셈이다. 이에 2015년 경찰청 국민디자인단은 이곳을 대상으로 '범죄예방디자인을 통한 행복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동 주민들과 주민센터, 경찰청, 수원시청 관계자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 CCTV에서 경찰관의 목소리가 녹음된 음성을 재생해 주민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부분을 완화 시켰고, 주민들간의 신뢰 회복을 위해 동네 목욕탕을 커뮤니티 센터로 탈바꿈 시키는 등의 노력을 했다.
- 이 사건에 관련된 일선 경찰과 112신고센터 직원 등 11명이 징계를 받았고, 그만 두거나 대부분 다른 곳으로 보직 이동했다.
- 2012년 6월에도 이 사건 현장 700m 거리에서 발생한 사건에서 경찰의 미흡한 신고 전화 대처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정확한 위치와 함께 폭행 신고가 접수된 현장으로 뒤늦게 출동하던 경찰이 굳이 전화를 걸어 사건 발생을 재확인했고, 이를 가해자가 받아 오인 신고라고 하자 출동 없이 복귀하며 신고도 취소 처리했다. #
여기에 오원춘 사건까지 터지자 2014년 경찰의 신고 대응 시스템이 전격 개편되었다. 신고 접수부터 경찰관 배치까지 모든 시스템이 대폭 변경되었고 112 인력을 170명이나 늘리고 부적격자를 솎아낸다며 전국의 신고 접수 요원 2154명 가운데 235명을 교체했다. 112 상황실 근무를 3조 2교대에서 4조 2교대로 바꾸고 인사 혜택을 줘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신고가 들어오면 무엇을 어떻게 물어봐야 되는지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도 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개편하냐는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한 경찰 고위 간부는 "오원춘 사건이 없었다면 112 개선 작업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 당시 촬영되었던 CCTV에 한 여성이 망을 보는 듯한 장면이 촬영된 바 있어서 공범이 또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증거는 없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한겨레21 칼럼에서 사건 당시 경찰의 무능 대처 핵심 원인을 '시국치안 편중'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경찰청은 2008년 촛불집회와 2009년 쌍용차 파업 진압 등에 막대한 장비와 경력을 동원하는 등 시위/집회 단속만 강경했지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 당시 대처 등에서 보듯 민생 치안엔 무능했다는 것이다.
- 2015년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의 축제 중에 한 학생이 오원춘을 소재로 연 주점이 있어 논란이 되면서 그 주점뿐만 아니라 축제 자체가 딱 하루 진행된 후 취소되었던 적이 있었다.
- 이 사건으로 인해 외국인 지문날인 폐지는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금기시되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인터넷 여론은 당연히 좋지 않으며 사상 최악의 이슬람 테러단체까지 생겨나는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외국인 지문날인을 폐지하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 중국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1996년 중국 난징의 난징대학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20대 여성을 납치하여 2천 토막을 내고 그냥 보기에 고깃덩어리 같은 시신을 삶아서 비닐봉지에 담아 유기한 점이 비슷하다. 댜오아이칭 사건 문서 참고. 공소시효도 끝나고 증거가 남지 않은 미제사건이다.
- 동년 5월 24일 캐나다에서도 포르노 배우 루카 매그노타가 이와 비슷한 살인 행각을 저지른 후 살인 과정을 '1 LUNATIC 1 ICE PICK'라는 제목으로 올려 이 키워드는 절검단의 최고 등급으로 올라와 있다. 그는 25년 뒤 가석방 가능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 당시 오원춘의 국선변호인은 이후 재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알려지는 박준영 변호사였다. 국선변호인은 국가로부터 사건을 지정 받아 변론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다만 전체 재판 과정에 관여한 것은 아니고 구속 후 영장 실질심사까지를 담당했다고 한다.
- 이 사건과 2년 뒤에 벌어진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24] 등 여러 사건을 계기로 팔달구[25][26]에도 경찰서를 설치하라는 여론이 높아져 수원팔달경찰서가 개청하는 것이 확정되었으며[27], 2025년 해당 사건이 벌어진 지동에 개청할 예정이다.[28]
8. 관련 문서
-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 전북대병원 로비 여중생 살인사건
- 김지연 군 살인 사건
- 댜오아이칭 사건
-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
- 안산역 토막시체 유기사건
- 양주 여중생 살인 사건
- 용인 10대 엽기 살인사건
-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 화성 여고생 살인 사건
- 화성 육절기 살인사건
- 외국인 노동자 문제
- 조선족
- 토막살인
- 사건 사고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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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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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4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 한 말.[2] 2013년 1월 22일 방영했다. 토론 주제는 사형제 찬반을 둘러싸고 '사형(死刑), 그 끊이지 않는 논란'이라는 주제였다.[3]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에이 끊어 버리자'라는 말이 나온다.[4] 중국어 발음인 우위안춘(Wu Yuan Chun)으로도 알려져 있다.[5] 사체를 280조각으로 해체해서 17개의 비닐 봉지에 나눠 담았다.[6] 2020년 말, 실질적으로는 2021년 초가 되어서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실현되었다.[7] 사건 이후에는 재개발로 인해 모두 철거되었고 2026년 1월에 수원성 중흥 S-클래스 아파트가 그 자리에 완공될 예정이다.[8]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위급 상황시 가택 출입과 조사에 대한 규정이 불분명해 강제로 집안에 진입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서였다. 이후 지침이 개정되어 범죄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상당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집주인이 거부하더라도 경찰이 강제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범죄의 흔적이 발견되면 영장 없이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도 할 수 있게 됐다. #[9] 얼굴, 목, 손(목), 발(목)을 제외한 나머지 몸통, 팔, 다리의 살을 다 발라냈다.[10] 경정으로 2017년 명예퇴직.[11] 40점 만점에 25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이다. 참고로 유영철은 38점이 나왔고 이영학은 25점, 강호순은 27점, 조두순은 29점이다. 다만 유년 시절에 대한 조사는 하지 못해 누락되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추가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12] 범행 전 2개월 간의 통화 기록이 사라져 있고 통상적인 사체 훼손 시간의 2배가 넘는 시간을 사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13] 시신을 철저하게 은폐하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14] 다만 사형이 선고되었더라도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라 사실상 무기징역이 되었을 것이다.[15] 실제로 교도소에서는 같은 죄수들 사이에서도 성범죄자는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아동 성범죄자들은 죄수들 중에서도 막장으로 여겨지며 집단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것을 못 견뎌 탈옥하면 사살되거나 ADX 플로렌스 교도소 같은 슈퍼맥스급 교도소에 수감된다.[16] 2심 판결에 대해 비판 여론이 많았는데 법원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흉악범이라고는 하지만 피살자가 한 명이라는 점이 가장 크고 무기징역 판결에 인과관계는 없을 수 있지만 인육에 대한 가능성이 결국 입증되지 않았다.[17] 시체 조각의 형태가 시체 크기 감소 목적으로 훼손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등.[18] 정황상 의심은 가지만 법적 판결이 의심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19] 사실 이는 천안개방교도소와 혼동하여 생긴 오해다. 둘 다 이름에서 특수교도소처럼 인식되고 같은 지역에 있는 데다 서로 근처에 있다 보니 기자들이 제대로 확인도 없이 기사화하는 바람에 네티즌들의 여론이 들끓게 된 것이다. 천안외국인교도소의 정식 명칭은 그냥 '천안교도소'인데 호화로운 시설을 갖춘 곳은 천안교도소가 아니라 '천안개방교도소'로, 장기간 복역한 잔여 복역 기간 6개월 미만의 모범수들을 선발하여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하여 바깥 세상과 비슷한 환경을 그럭저럭 만들어 놓고 사회 적응 교육을 시키는 곳으로, 이 둘은 위치도 다르고 전혀 별개다. 반면 천안교도소는 외국인 재소자를 수용한다는 것과 언어와 문화에 따라 방이 배정되고 식사가 문화, 종교, 관습에 따라서 한식, 양식, 이슬람식 3가지로 구분되어 나오는 거 빼고는 이 외에 일반 교도소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외국인 수감자는 이곳 말고도 대전교도소 외국인 사동에도 수감된다. 이 외에도 천안교도소는 소년교도소 시절부터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미행정협정 관련 범죄자들을 수감했는데, 위 논란과는 별개로 이들이 수용되는 SOFA 사동은 시설이 좋다고 한다.[20] 경북북부제2교도소는 슈퍼맥스 교도소이기 때문에 밖에서 사고 크게 쳤다는 이유로 바로 직행 코스 밟는 일은 극히 드물다. 김길태, 조두순을 비롯해 그런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청송교도소 수감 중이라고 기사가 뜨면 경북북부 제1교도소 수감이다.[21] 다른 2인은 90만 원.[22]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적은 보수였는데 심지어 주말 근무에 야근까지 한 결과라는 것을 감안하면 최저시급에 겨우 턱걸이나 한 수준의 형편없는 금액이다.[23] 극중 남구현 서울지방경찰청장(강신일 분)이 휘하 경찰서장에게 "4시간! 니 관할서 아들이 어리버리 깐 그 4시간 사이에 범인이 피해자를 죽이고 도망갔다고!" 하며 대노하는 장면.[24] 해당 사건은 서부경찰서가 수사를 맡았다.[25] 원래는 남부경찰서가 있었으나 2003년 영통구가 분구되면서 경찰서가 없어졌다. 현재 팔달구는 남부경찰서를 비롯하여 장안구의 중부경찰서, 권선구의 서부경찰서가 나눠서 맡고 있다. 참고로 본 사건은 중부경찰서가 수사를 맡았다.[26] 사실 중부경찰서가 신풍동(당시에는 장안구 소속)에 있었으나 1998년에 화성행궁 복원 과정에서 장안구 정자동으로 이전하였다.[27] 이와 동시에 기존은 남부, 중부, 서부경찰서는 각각 영통, 장안, 권선경찰서로 바뀔 예정이다.[28] 현재 이런저런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어 개청이 연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