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BS 9시 뉴스 자료MBC 뉴스데스크 자료
동아일보 보도자료
1991년 10월 17일 21시 50분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농춘빌딩[1] 지하 1층에 있었던 나이트클럽 거성관에서 방화로 16명이 사망한 사건.
2. 사건 경위
현장검증 당시 범인 김정수의 모습 |
그러나 종업원들은 드레스 코드를 운운하면서 옷차림이 엉망이라고 그의 출입을 저지(입뺀)하였다. 그는 수십만원의 현금을 보여주면서 지금 옷차림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돈은 많다고 이야기했지만 종업원은 쫓아냈다. 그러자 다른 술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가 농부라서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결국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산 후 클럽 뒷문으로 들어가 무대 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다음 도주했다.
3. 커진 희생
범인이 불을 붙이려는 순간 무대에서 전자오르간을 연주하던 사람이 그것을 목격했고 그 사람이 재빨리 불이 났다고 알려 사람들의 피신을 시도했다. 화재도 7분만에 무사히 진화되었지만 16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 이유를 보면 지금 봐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처음 사람들이 탈출을 시작했을 당시 클럽 내의 조명 및 전기시설이 모두 꺼져있는 상태였고, 그로 말미암아 어두운 지하에서 비상구를 찾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환풍기로는 화재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였다.
전기시설이 전부 꺼진 원인은 후에 밝혀졌는데, 화재 당시 종업원이 화재를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로 오인하고 전원을 모두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름 빨리 대처한다고 뭔가를 했는데 화재 원인이 달라서 대참사가 된 케이스다. 거기에다 회관 바닥에 깔린 양탄자가 타면서 유독가스를 배출했고 그것도 모자라 손님들을 대피시켜야 할 종업원들은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전부 먼저 도망쳤다.
손님들은 불이 난 것을 무대연출로 생각해 가볍게 넘겼으며 뒤늦게 대피하려고 할 때는 1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1개뿐인 출입문에 몰려 있어 크게 혼잡을 빚었고 설상가상으로 조명이 모두 꺼진 상태여서 피해자가 크게 늘었다.
그래도 당시 김진설이라는 소방관은 연기/가스 과다흡입으로 기관지에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20여명의 인명을 구조하였다. 이후 베테랑 소방관으로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경부선 대구역 열차 추돌사고 등 대구 지역에서의 대형 참사 때마다 많은 인명을 구조하여 2011년 영웅소방관에 선정되기도 했고 대구강서소방서[5] 기동지휘팀장으로 근무한다는 게 밝혀졌다.
4. 결과
당시 클럽에 있었던 사람 150여명 가운데 16명이 사망했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검찰은 김정수에게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에서 우발적인 범행이고 종업원의 과실로 피해가 커진 경우라며 이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였으며 전원을 차단한 종업원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사처벌을 내렸다.사실 김정수 본인도 우발적이었고 자신도 누가 본 것을 보고 놀라 달아나서 적어도 불은 끌테니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잡히면서 16명이나 죽었다는 말에 그도 깜짝 놀랐고 당시 방송에서 고개를 숙이면서 피해자 여러분들에게 죄송하다면서 본인도 이렇게 크게 피해가 날 줄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점이 받아들여져 무기징역이 선고된 듯하다.[6] 이후 어머니는 충격 속에 세상을 떠났고 많은 재산도 스스로 보상금으로서 유족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현재는 30년도 더 지나 가석방 신청이 가능하지만 알다시피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아 가석방 통과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전 재산도 배상금으로 다 나눠준 마당에 본인도 나이가 60이 넘어 취업할 곳도 없고 거지 꼴로 나갈 테니 가석방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다. 이렇기 때문에 김정수는 지금도 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오래전에 나온 온갖 강력범죄사건에 대한 책자에 나온 바에 따르면 김정수는 불교를 믿고 있으며 글쓴이와 인터뷰에서도 그때의 일을 참회하고 죄책감을 표시했다.
그때 욱하는 마음으로 벌였는데 사람이 봐서 '그래도 큰 피해는 없겠다. 내일 경찰 오면 가야겠지.' 이렇게 여겼는데 사람이 그리도 죽었는지 꿈에도 몰랐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어쩌자고 사람을 이리도 많이 죽게 했니!' 라고 통곡 하실 때 그저 눈물만 나오고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오래 못 가 시름시름 앓아 돌아가셨으니 내가 어머니까지 죽이게 한 셈이다. 죽은 사람들을 어찌할 수도 없으니...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참회할 뿐이다.
5. 기타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난 1991년 10월 19일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두 사건 모두 사회에 불만을 품고 홧김에 저지른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의 특성을 띠고 있어 충격을 주었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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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다이소 비산네거리점이 있는 건물로 외부 리모델링이 없어 당시나 지금이나 건물 외형은 비슷하다.[2] 1991년 기준으로 월 최저임금이 20만원 정도였고 대기업 신입사원이 보통 월 50만원 가량에 자리잡은 도시민들의 평균수입이 월 100만원 안팎이었으며 최저임금만으로 200만원 넘게 버는 것이 2019년에 와서야 가능한 일이었다.[3] 당시만 해도 농촌 총각들이 돈도 잘 버는데도 이렇게 되는 사례가 워낙 많아 사회문제였다. 이게 얼마나 심했는지 당시 벼룩시장에도 농촌 총각 특선 구혼광고가 나왔는데 당당하게 1990년 초에 연수입이 1억이 넘는데도 결혼하지 못한다고 나올 지경이었다.[4] 이는 단순히 시골 및 농촌 이미지 뿐만 아니라 농촌 인프라가 현재보다 지나치게 안 좋았던 게 크게 관여했다. 8090년대 당시 도시 인프라도 지금 도시보다 안 좋았던 판에 그때 도시 농촌의 인프라 격차는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되게 더 컸다. 농촌에서는 개인의 단순 행정일처리도 곤란한 상황이 흔했고,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는 기대할 수도 없었으며 특히 외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나가서 하루 1대 씩 오는 버스라도 겨우 타야 할 정도로 교통요건이 열악했다. 게다가 시골 인심도 그때라고 좋은 적도 없었고, 치안은 더 엉망에 지역 토호 세력과 지역 경찰과의 비리, 유착도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던데다가 중앙정부가 이를 제대로 단속할 의지도 없어서 정당한 신고조차 안 받아주기 일쑤였다. 그리고 시골로 시집을 가면 시부모나 남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야반도주를 하지 않는한 친정으로 못 돌아가고 납치,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농부인 남편이 도시로 상경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이상, 시집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초 인프라와 치안, 행정 마인드가 열악한 것도 모자라 이런 곳에서 사실상 평생을 갇혀지내야 하는데 돈이 1억이건 2억이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5] 대구에 강서구는 없지만 강서소방서는 있다. 달서구 성서지구 및 달성군 다사읍, 하빈면을 담당한다.[6] 만약 항소심에서도 김정수의 사형이 유지되고 상고심까지 사형이 확정되었다면 1994년, 1995년, 1997년에 집행됐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