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자수를 한다면 지은 죄는 밉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아주 최대 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줄 테니까 꼭, 자수하도록.[1]
1988년 1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당시 원혜준의 가족에게 방문하여 직접 언급했던 약속.
1988년 1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당시 원혜준의 가족에게 방문하여 직접 언급했던 약속.
1987년 12월 3일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 원혜준(元惠準, 사망 당시 6세)양이 납치되어 범인 함효식에 의해 이튿날 목이 졸려 살해당한 유괴살인 사건이다.
2. 사건 내용
2.1. 범행 전
범인 함효식(咸孝植, 당시 24세)[2]은 1987년 11월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어느 회사의 운전사로 들어가서 트럭을 운전하다가 전신주를 받아 100만원을 변제해야 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돈을 준비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고 30일 밤 11시에 경기도 구리시에서 주차되어 있던 김모씨 소유의 붉은색 르망 승용차를 훔친 뒤 몰고 다니면서 범행 대상을 모색했다.
2.2. 사건 발생
12월 2일 낮 12시 30분쯤 서울 송파구 부근을 배회하던 그는 자신의 집 앞에서 놀고 있던 6살 어린이 원혜준 양을 발견했는데 집이 크고 부잣집 같아 유괴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다음 날인 3일 낮 11시 30분쯤 유치원을 다녀오던 혜준 양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너희 엄마가 친구집에 있으니 나하고 가자"고 유인한 뒤 훔친 승용차에 태워 유괴했으며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려 차량 트렁크에 실어둔 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터에 하룻밤을 방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8시쯤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혜준 양을 목졸라 살해했으며 같은 날 오후 집 부근 봉천동 우체국 앞에서 혜준 양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유괴 사실을 알리고 상업은행 계좌를 만들었으니 몸값 500만원[3]을 입금하라고 요구했다.이후 함효식은 혜준 양의 사체를 뒤의 트렁크에 넣어 둔 채 차를 몰아 평소 처갓집을 드나들면서 알고 있던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 널미고개에 도착해 산 중턱에서 10m 아래 낭떠러지로 혜준 양을 던져 버린 뒤 사체를 나뭇잎으로 덮었다가 암매장하였다.
2.3. 사건 경과
피해자의 부모는 범인의 요구대로 돈을 입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받지 못했다. 놀랍게도 함효식은 범행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는 겨우 이틀 뒤인 6일에 당시 만삭이었던 약혼자 신모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떠났다. 그 비용은 피해자 부모가 입금해 준 돈이었다.
경찰은 1월 5일부터 표창과 포상금 300만원을 걸고 공개수사로 전환하였으며, 전국적인 탐문수사와 서울대와 각종 전문가들 그리고 당시의 최신 기술을 총동원하여 수사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전국에서 수백, 수천건의 제보가 접수되었고 조폭이나 유괴, 법질서 위반이라면 치를 떨었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가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강남경찰서에 직접 방문(순시)하여 지시하고 같은 달 13일 혜준 양 가족에게 방문하여 직접 범인에게 자수를 권하는 등 전국적으로 혜준 양 찾기 범시민 운동이 시작하였다. 그러던 와중 함효식은 12일 유괴범이 유서를 남긴 채 한강에 투신했다는 자작극을 시도했으며 이 사건으로 경찰 수사에 큰 혼선을 주었다.
2.4. 사건 종료 및 진상
하지만 1988년 1월 15일 범인 함효식은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수사가 전국적인 공개수사로 전환되었고 점점 포위망이 좁혀 오자 불안에 떨다 자수한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하겠다고 해 놓고 밤늦게 친구 등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해서 술을 마시며 사실을 털어놓고 새벽 3시 반이 되어 갈 때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수하려는 의사를 밝힌 뒤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집 앞으로 가서 와 있었던 경찰에게 체포된 것. 하지만 그는 '공범이 있으며, 자신은 운전만 했을 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수사를 어렵게 만들면서 혜준 양의 가족들만 애타게 만들었다.하지만 경찰의 심문으로 진술을 번복하여 15일 오후 3시 서울에서 70km 떨어진 강원도 홍천군 널마고개 중턱에 암매장된 혜준 양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으며 19일 범인 함효식은 다소 초췌한 모습에 자수했을 당시 입고 있던 검은색 방한복 차림으로 보도진과 근처 주민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종 무표정한 얼굴로 범행을 재현하면서 현장검증을 했고 혜준 양이 트렁크에서 혼자 질식사했다는 거짓 진술을 하고 실족사한 것처럼 위장했지만 이 역시 경찰의 수사로 거짓임이 밝혀졌다.
결국 혜준 양은 유괴 43일만에, 범행 2일째에 범인에 의하여 직접 목이 졸려 질식사로 살해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3. 결말
범인 함효식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아동유괴범에게 전한 대표적인 말인 "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는 말처럼[4]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미성년자 약취유인죄의가중처벌)및 사체유기, 절도 그리고 살인죄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1심은 1988년 4월 22일 판결이 났고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1988년 12월 13일 형이 확정되었다.가톨릭 신자였던 피해자 원 양의 부모는 당연하지만 애지중지 키운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수없이 통곡하며 실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기도를 하던 중 함효식을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함효식을 접견해 용서하고 신앙을 가질 것을 권했다.[5] 어머니는 교회 집사와 함께 구치소에 가서 면회를 했는데 처음엔 흉악범의 얼굴을 마지막에 한 번은 봐두고 싶어 억지로 따라나섰던 것이지만 구치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참회하고 편지도 두 번 쓰며 후회한[6] 범인이 무릎 꿇고 회개하며 통곡하자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성경책을 선물하며 용서를 다짐했다고 한다.
함효식은 사형 확정 이후 불과 7개월 22일 만인 1989년 8월 4일을 기하여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7] 사형 자리에 입회한 문장식 목사에 따르면 그는 사형장에 들어오자 긴장된 표정이면서도 평안해 보였으며 아래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어 나 때문에 죽은 아이를 만날 생각을 하니 몸둘 바를 모르겠지만 죄값을 받고 뒤따라 나서니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사형수들과 사형 집행하는 교도관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유언에서 보듯 다른 사형수들[8]과 입회 교도관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도 한 뒤 천주교 신부의 종교의식을 마친 후 집행되었다고 한다.
가정주부였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개신교로 개종해 늦게 어느 신학교에 입학했고 서울 시내 교회를 순회하면서 간증도 했다. 이후 딸을 잊기 위해 집안에 있는 혜준 양의 사진과 장난감들을 모두 치워 버렸다고 한다.
사형수 교화위원이자 사형장 입회 종교인이며 사형제 폐지 운동가이기도 한 문장식 목사는 피해자 어머니에게 연락하여 사형 폐지를 위한 모임에 나와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녀는 가정형편상 어렵다며 거절했고 이에 문 목사도 그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9]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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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혜준은 이미 범인 함효식에 의하여 살해당한 이후였다. 범인 함효식은 자수하긴 했으나 전두환의 발언 의도는 어디까지나 "살려서 자수"였으므로 검거 후 광속으로 처형당했다.[2] 당시 공개된 거주지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2동 봉송연립 202호. 현재는 재개발로 인해 말소된 주소다.[3] 202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598만 원[4] 전두환이 자수하면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어 준다고 한 말은 어디까지나 아이를 살려 보냈을 때의 이야기다. 피해 어린이를 무사히 돌려보낸 제2차 정효주 유괴 사건은 실제로 전두환 정권이 선처해서 범인 이원석이 20년으로 감형되었다.[5] 이후 일어난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의 피해자의 할머니 역시 가톨릭 신자였는데 그녀 또한 범인을 용서하여 그가 가톨릭에 귀의하도록 했다.[6] 구치소에서 보는 잡지에 혜준 양의 사진이 있으면 모두 오려서 벽에 붙여 놓고 혜준이를 부르며 기도했다고 한다.[7] 여담으로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집행된 사형이다.[8] 김동술, 고금석, 강상원, 시석기[9] 출처: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