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범인 이팔국(李八國) | 피해자 이숙자(李淑子) |
1975년 6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짓'이라며 대한민국 언론들이 개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다.
2. 사건 정황
이 사건의 범인 이팔국(사건 당시 47세)은 1928년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자라 오다가 1958년에 전처와 결혼하여 4남매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1969년에 전처가 사망한 후 무직으로 있으면서 식모 강간, 사기 행각, 포악한 성격으로 인한 폭력 행위 등으로 얼룩진 엉망진창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주위 사람들에게 변태성욕자로 알려진 이팔국은 1972년에 자택 가정부를 성폭행해서 형사 입건되어 처벌받은 전과가 있었으며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가정부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 사기성이 많아 일정한 직업도 없이 허가 업무 등의 알선을 해 주는 등 늘 그늘 속에서 살아 오다가 1973년 9월 다방을 경영하던 후처 이숙자(사건 당시 43세)를 만나 내연의 관계로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부인 이숙자는 7년 전에 전 남편과 합의이혼을 했다. 당시 이팔국이 실직 상태로 범행 때까지 놀고 있었기 때문에 부인이 다방 등을 경영하면서 이팔국의 전처 소생인 4남매 등 6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왔다.
이팔국은 실직으로 생활 능력을 잃게 되자 다방과 양장점을 운영하는 아내 이숙자에게 의존하여 얹혀 살고 있었다. 실직 후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빈둥대기만 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 이숙자는 남편과 다투는 날이 많아졌으며 이팔국은 이숙자의 재산을 노리기 위해 아내의 동의도 없이 몰래 혼인신고까지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참다 못한 이숙자가 끝내 이혼을 요구하자 이팔국은 부부싸움 끝에 순간적인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손등에 피해자인 아내에 의해 할퀸 상처가 남았다.
그 다음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다음 날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밤새도록 5시간에 걸쳐 끔찍한 행각을 벌였다. 그는 아내의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자택 목욕탕으로 옮겨 피부 조각을 머리카락과 함께 태운 다음 살점은 수 십 조각으로 토막내 하수구에 버렸고 양이 너무 많은 나머지 근육 등을 비롯한 살덩이 등 미처 처분하지 못한 것들은 난도질한 다음 김치와 함께 항아리에 묻었다. 또 눈알과 내장은 잘게 다져서 하수구로 흘러 내려가도록 했고 두개골을 비롯한 뼈는 토막을 낸 다음 아령으로 완전히 가루로 만든 뒤 연탄재와 섞어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등 완전히 사체를 해체하는 인면수심의 행각을 저질렀다.
날이 밝아 오자 이팔국은 온 집에 소독약을 뿌려 탄내를 없앴으며 자고 있던 전처 소생의 아이들에게 "누가 물으면, 엄마는 20일 새벽에 집을 나간 뒤 일절 소식이 없다고 하라"고 입막음까지 시켰다. 오전 중에 집안 소독을 완전히 끝낸 다음 그날 밤에는 연탄재에 섞은 뼛가루를 비닐봉지에 담고 시멘트 부대로 싸 집에서 1km 가량 떨어진 페인트 상회 옆의 한 쓰레기 하치장에 갖다 버렸다.[1] 이어 다음 날 새벽에도 김칫독에 묻어 둔 근육 토막을 버킷에 담아 성균관대학교 옆 동네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 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태연히 산책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이후 무참히 토막살해를 당한 이숙자의 딸이 어머니가 사흘째 운영하던 의상실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으며 딸은 특히 성격이 포악하고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주먹질을 일삼는 의붓아버지가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귀띔을 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어 수사가 막 시작될 무렵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동네 골목에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봉투를 수거하다가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를 발견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 측은 국과수에 뼈 조직 부검을 의뢰했는데 부검 결과 훼손된 사체는 톱으로 잘려진 사람의 뼈로 밝혀졌으며 부인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6일째라 경찰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해 전처 소생 및 의붓자식들까지 모두 소환시켜 대질심문을 벌였다.
아이들은 역시 "20일 새벽 둘이 싸우다 조용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역겨운 냄새가 났는데, 아버지가 '벌레가 끓어 그런다'며 소독을 했다"고 증언했다. 한 아이는 "뭔가 태운 냄새와 정육점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서 났다"고도 했다.[2] 이후 무참히 토막당한 뼈의 조직이 결국 피해자 이숙자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경찰은 피해자와 원한관계에 있던 사람을 위주로 수사망을 좁히다가 사건 발생 10일만에 그를 검거했다.[3]
검거 1주일 뒤 현장 검증이 이루어졌을 때 통행금지가 있었을 때인데도 주민 50여 명이 몰려 범행 재연을 지켜보면서 "저 놈 죽여라"라고 외치는 등 치를 떨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특별한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으면서 목을 조르는 순간부터 시체 분해까지의 과정을 냉정하게 재연했다.
3. 재판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8부 심훈종 재판장은 1심에서 살인 및 사체모독죄를 적용해서 이팔국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범행은 우발적 살인이었지만 뒤처리가 매우 극악무도했다는 게 이유이며 재판부는 판결 당시 "피고인의 범행 행위는 우발적이었지만 그 뒷과정에서 사체를 훼손하는 등 지극히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인명을 천시하여 피고인의 행위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당시 이팔국의 변호인 측은 범행 당시 그가 기억상실 등의 심신상실 상태 하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이팔국 자신이 6.25 때의 부상으로 정신착란증을 일으켜 정신감정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기각되었다. 이에 이팔국은 판결에 불복해서 항소 및 상고를 했지만 2심과 3심에서도 기각당했으며 사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결국 사건 발생 2년 6개월이 지난 1977년 11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범행이 워낙 잔혹했던 데다 이팔국이 형장에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범행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인간 말종이었기에 그가 사형당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
그가 사형을 당한 뒤에도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사례로는 13년 뒤인 1988년 영국령 홍콩에서 일어난 콘힐 남편 살인사건이 있으며 이는 위와는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다. 범행 동기와 방법조차 비슷했지만[4] 이쪽은 지인들에게 식사로 대접하기까지 했다. #[5] 사형이 집행된 이팔국과는 달리 이 사건의 범인은 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같은 해에 무기한 치료감호 처분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1995년에 석방되었다.[6] 이는 5년 후 영화 '팽부(烹夫)'의 모티브가 되었다.[7]
이 사건은 2004년에 법정 드라마 《실화극장 죄와 벌》 86회에서도 다루었으며 여기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비롯한 인물들이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어 방영되었다. 범인 이팔국은 양병국, 피해자 이숙자는 이영미라는 가명으로 바꾸어 재연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범인 이팔국을 연기한 배우는 드라마 《주몽》에서 도치 역과 드라마 《무신》에서 희대의 매국노 홍복원 역을 맡았던 이원재며, 피해자 이숙자를 연기한 배우는 34회에서 다루었던 김선자 연쇄 독살사건의 범인 김선자 역과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외숙모 역을 맡았던 이현실이다.[8]
4. 이모저모
- 이 사건으로부터 불과 10년 전 일어난 춘천호 여인 토막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 토막 살인 범죄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법이 더욱 잔인해졌고 이후 모방범죄자들은 범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는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수법은 점점 더 엽기적으로 진화했고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인 사체의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끔 훼손하거나 없애는 수법도 갈수록 교묘하고 치밀해졌다. 이 사건도 그런 면에서 모방범죄의 잔혹성으론 종결판이라고 부를 만한데 단순히 사체를 토막만 낸 것을 넘어서 몸 전체를 완전분해한 잔학한 범죄다. 쉽게 말해서 수법에 있어서는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의 오원춘, 고토 맨션 행방불명 살인 사건의 호시지마 타카노리보다 수십 년 먼저 저지른 것이다.
- 이 사건이 일어났던 1970년대에는 컴퓨터와 문서 파일을 사용하는 21세기와 달리 타자기 정도밖에는 타이핑 수단이 없어서 보통 펜으로 진술조서를 받았다. 그래서 이팔국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살해 이유와 잔혹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체 처리 과정을 받아적던 사건 담당 형사는 그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에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무는 등 몸서리를 치면서 줄담배를 피우고 펜을 내동댕이쳤다는 일화가 있다.
- 이팔국은 무척 잔인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것과 대비되는 대학원 졸업자였다.[9][10][11] 피해자와 재혼하기 전에 서울과 동두천 등을 오가며 시장에서 푸줏간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칼 솜씨도 능숙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체를 토막낼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데다 한 아이가 정육점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서 났다고 증언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12] 또 합기도, 유도, 태권도를 합쳐 무술 12단 경력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가 키 180cm의 장신으로 꽤나 건장하고 우람했던 체격이었던지라 사형 집행 후 그의 시체를 보관했던 관이 옆으로 터졌다는 일화도 있다.
- 조갑제의 저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에 기록된 이팔국은 2차대전 때 그 악명 높았던 남방전선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왔고 6.25 전쟁에 참전해 훈장을 받은 바 있다고 한다. 이때 얻은 부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신착란증이 있었고 이로 인해 기억이 오락가락 하기도 했다고 한다.[13] 사건 진술 시에도 부인을 밀쳐 넘어뜨려 숨을 쉬지 않자 인공호흡을 하거나 입에 물을 떠넣기도 했으나 이내 사망했고 그때 이팔국 본인도 실신해 이후 상황은 전혀 기억에 없고 정신이 드니 부인의 사체는 없어져서 더더욱 당황해 자수했다고 진술했는데 조서에는 인공호흡이나 물을 떠넣는 행위가 목을 조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같은 저서에서 이팔국이 고학력으로 놀고 먹는 백수인 듯 알려져 있으나 군납업으로 모은 돈이 꽤 있었다고도 한다. 상식적으로 자신만의 사업체를 두 개(다방과 양품점)나 경영하는 세상 물정에 빠삭한 여성이 아무것도 없이 4남매만 거느린 이팔국을 일방적으로 먹여살린다는 건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따라붙던 것이 고문임을 상기하면 싹 무시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 이팔국은 자신이 전쟁 중에 겪은 트라우마를 호소했다고 했는데 만약 이 사건이 많은 사람들이 PTSD를 아는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구속 후에 정신과 검진을 받긴 했겠지만 PTSD가 원인이란 이유로 참작해 주기엔 범행수법이 워낙 잔혹한데다 평소에도 포악하고 폭력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즉 갑자기 트라우마로 미쳐 버려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상황인 만큼 평상시에 평범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는 건 변함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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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인트 가게에서 나오는 쓰레기에선 페인트 특유의 독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피 비린내가 지워진다는 점을 악용해서 그곳에 시체를 유기한 것으로 추측된다.[2] 그도 그럴 것이 후술한 것처럼 시장에서 정육점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정육점이 푸줏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3] 참고로 이팔국은 검거되기 전 경찰서에 찾아가서 아내가 실종됐다며 아내를 찾아 달라는 둥, 누가 아내를 죽였냐는 둥 매우 초조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참으로 가증스런 행각을 보였다.[4] 이 과정에서 토막난 시신을 끓는 물에 삶아 익히는 수법을 사용하였다.[5] 1992년 방영된 aTV의 범죄실화극 《향항기안》 한정이며 매체에서는 토막난 시신의 일부를 유기한 내용만 언급되었다.[6] 이는 범인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 정신적인 고통을 당해 왔다는 것이 정상 참작되었기 때문이다.[7] 하지만 이 사건은 잔혹한 사건임에도 한국에서는 외신 구독자 빼고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PC통신만 있었고 초고속 인터넷이 없었던 데다 그 해에 있을 큰 행사에 대한 국민들과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노태우 대통령 취임, 6.10/8.15 남북학생회담 투쟁,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원혜준 양 유괴 살인사건 등이 이슈가 된 게 고작이었고 심지어 이 사건이 모티브가 된 영화조차도 이러한 이유로 소개되지 못했으나 훗날 애인을 먹은 여자라는 괴담으로나마 알려졌다.[8] 또한 이 사건에서는 범인의 행동또한 매우 다르게 각색되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범인의 행동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고 심지어 정신감정 요청도 받아들인다는 장면까지 실제와는 매우 다르게 각색된 장면들이 많았었다.[9] 조갑제의 저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에서 이팔국의 학력이 알려져 있다. 당시 대학원 졸업자는 흔치 않은 엘리트급 학력인데도 불구하고 실직에 사형수까지 되는 등 밑바닥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이다. 다만 대학원을 중퇴했다는 얘기도 있다.[10] 육군 군사경찰(구.헌병) 중사로 제대한 바 있으며 양주시 축산기업 조합장, 동두천 체육회 회장을 지냈고 한때는 서울청년회의소 특별회원이었던 적이 있었다.[11] 1972년 5월 27일 경향신문 기사에 당시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학생회장이었던 그가 학생회에서 모금한 성금을 '바디맥 어린이집'의 조석모 원장에게 전달하는 사진도 남아 있다.[12] 푸줏간으로 검색해도 정육점으로 리다이렉트되어 나온다. 다만 항목에 나와 있듯이 도축의 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다.[13] 1970년대에는 PTSD가 알려지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이팔국은 그냥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한 인간쓰레기라고 여겼다. 이 당시엔 미국에서 조차 PTSD의 개념이 없다시피 했으며, 그나마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한게 PTSD다. 한국은 더욱 심각하게도 이때로부터 30년 후인 2003년 들어서야 이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