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양양 산불 | ||
<colbgcolor=#bc002d,#333333><colcolor=WHITE> 최초 신고 | 2005년 4월 4일 23시 50분 경 | |
발생 위치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 |
피해 지역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양양읍 일대 | |
유형 | 산불 | |
원인 | 불명 | |
대피 인원 | 12개 마을 800여 명 이상, 낙산비치호텔 투숙객 90여 명 | |
인 명 피 해 | <colbgcolor=#bc002d,#333333><colcolor=WHITE> 사망 | 0명 |
부상 | 0명 | |
재산 피해 | 최소 394억 원, 낙산사 전소 | |
소실 면적 | 973ha(9.73km2) | |
동 원 | 인원 | 202명, 장병 3500여명, 야간 진화대원 1400여 명 등등 |
장비 | 헬기 65대, 소방차 40 여대, 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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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처참히 불타는 산림 | 전소되는 낙산사 |
이 산불로 인해 양양군[1]은 대통령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었다.
이 산불이 더욱 끔찍하고 악명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있는데 천년고찰인 낙산사의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고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내려 결국 같은 해 7월 7일 지정해제가 되는 등 중요한 문화재가 불에 타 쓰라린 교훈도 주었던 산불이기 때문이다.
2. 과정
2005년 4월 4일 오후 23시 50분 경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에서 산불 발생 신고를 접수하고 장비, 소방차, 산불진화대원들을 긴급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헬기를 띄울 수 없었고 순간 최대 풍속 32m/s의 매우 강력한 양간지풍을 타고 산불이 무섭게 번졌다.며칠 전 강원도 고성군 비무장지대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산불이 남하하던 탓에 총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양양군은 산불이 발생한 다음날인 5일 오전 0시 50분께 사교리 주민을 긴급 대피시켰다. 5일 오전 0시 55분께 강현면 사교리 31가구 60여명의 주민이 긴급 대피한 데 이어 금풍리 35가구 65명, 적은리 45가구 75명, 물감리 36가구 70명, 답리 23가구 50명 등 모두 223가구 400여명이 마을회관 등 안전지대로 긴급 대피했다. 이어 2시 50분께는 12개 마을에 주민대피령을 내렸다. 관동대학교 양양캠퍼스 기숙사 학생 700여명도 양양읍내 일출예식장으로 대피시켰다. 소방당국과 일부 주민들은 방화지대를 구축하며 불길이 마을 가옥 등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였다.
산불은 속초시 8km 지점에서 낙산해수욕장, 낙산사 방면으로 번지고 있었고 이어 낙산사 4-5km 지점인 도립공원 경계까지 번지자 산림당국은 방화선을 구축했다.
다행히 5일 오전 산불이 잦아들면서 이대로 잘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5일 오후를 기점으로 또 다시 강한 바람을 타고 재확산되었다.
결국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던 산불을 견디지 못하고 낙산사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항목 참조 바람.
낙산사를 불태운 산불은 설악산을 위협하였으며 7번 국도 설악산~연창 삼거리 약 20km 구간의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했다. 설악산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야간 진화대원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으나 빠른 속도로 퍼지는 산불을 막기엔 부족했다.
소방당국은 둔전리와 물갑리 마을 경계지점을 방화선 삼아 6일 오전까지 야간 진화 작업을 벌였고 6일 새벽 불길이 잦아들며 오전 8시 주불 진화 완료를 선포하였다. 산불이 꺼져 양양군의 재난지역 선포를 해제했으나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가 매우 컸던지라 7일 다시 양양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3. 피해
3.1. 처참히 불탄 낙산사
결국 대한민국 사적 제495호인 낙산사가 이 양양 산불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2] 당시 산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전부터 낙산사 주변에서 물을 뿌리며 확산을 막던 소방헬기들도 다른 곳의 불을 끄느라 도저히 낙산사로 올 수 없었고 온 소방차가 오히려 불에 탈 정도였다. 낙산사의 승려와 신도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 보려고 했지만 고작 소화기 따위로 이 큰 산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의 뉴스(2016년) 관련기사
이 화재로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서 소실되면서 결국 같은 해 7월 7일 지정해제되었다. 산불에 어떻게 금속 종이 녹아내리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탈 때 내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크다. 산불 같은 대화재의 겉불꽃(제일 뜨거운 부분)은 천수백°C로 녹는점이 천°C 근처인 구리나 청동은 충분히 녹일 수 있다.[3] 차라리 종이 넘어져서 땅바닥으로 굴러갔다면 손상은 입어도 녹지 않았을 텐데[4] 하필이면 종루가 불타서 종을 그대로 덮어 버려서 화덕에 들어간 꼴이 되어 이렇게 녹아 버린 것이다.
동종은 2006년에 복원되어 다시금 낙산사에 걸렸다. 화재 당시 녹아내렸던 동종은 낙산사 안 의상대사 기념관에 옮겨져 있다.
녹아내린 낙산사 동종. 현재 낙산사 안 의상대사 기념관 안에 옮겨 두었다.
기념관 안에 타고 남은 대들보로 만든 바이올린이 전시되어 있다.
이 산불로 임야 973ha(9.73km2)가 소실되었고 재산 피해 394억원, 376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산불이 빠르게 퍼진 원인은 당시 불었던 양간지풍도 크게 작용했으나 산불 피해 구역 중 대부분 산림이 소나무 산림이었기에 송진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였던 점도 있다.
건물 246개 동이 소실되는 주택 피해도 있었고 가장 피해가 컸던 강현면 용호리 마을 일대는 20분 만에 주택 60여 채 중 35여 채가 불타며 폭삭 집이 내려앉아 잿더미로 변했다.
낙산사에 있던 승려들은 다행히 무사히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산불 이후 약 2,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 구호를 위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