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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3:52:21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colbgcolor=#bc002d> 발생일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발생 위치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8km 해상
유형 선박 간 충돌 및 원유 유출
원인 기상 악화
재산 피해 7,384억 원

1. 개요2. 삼성의 명칭 언론 통제3. 사건 상황4. 피해5. 방재 작업6. 여담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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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징어가 그랬을까요?
- 박한솔 -
우리는 우리는
늘 푸른 바다만 보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이제는
그 푸른 바다가 검게 변하였습니다

오징어가 먹물을 쏜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들의 검은 마음 때문에 그럴까요?

기다리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푸른 바다를 보는 그 날 까지
무한도전 태안 특집 도입부에 등장한 시


2007년 12월 7일[1] 오전 7시경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8km 해상에서 예인 중이던 해상 크레인 삼성중공업 1호가 지나가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2]와 충돌해 원유 12,547㎘[3]가 유출된 사건이다. 이는 한국에서 1997~2007년에 일어난 3,915개의 유출사고를 합하고도 남는다.

유류피해 극복기념관에서 그때 당시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 극복백서[4]

2. 삼성의 명칭 언론 통제

일단 각 언론사들은 이를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명명했는데 이는 이 사건에 삼성중공업이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대내외에 알려질 경우 삼성그룹 전체의 브랜드 가치도 추락할 것을 염려해[5] 삼성이라는 명칭 대신 태안이라는 지역명을 넣어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보도하라고 각 언론사마다 찔러넣어 언론통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러다 보니 해당 사건이 삼성과 관련된 사건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꽤 많은 편.[6]

판례상의 정식 명칭은 "예인선 삼성T-5호, 예인선 삼호T-3호의 피예인부선 삼성1호[7]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충돌로 인한 해양오염사건" (대법원 재결 2009추015 "예인선 삼성T-5호, 예인선 삼호T-3호의 피예인부선 삼성1호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충돌로 인한 해양오염사건")이나 이를 줄여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라고 했다.(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3. 사건 상황

당시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삼성중공업은 회사 소속선 해상 크레인 부선 삼성1호(1만 2000t급)를 조선소가 위치한 경상남도 거제시로 철수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예인선 2척(삼성T-5호ㆍ삼호T-3호)을 동원하여 운송을 계획하고 새벽을 이용하여 운송을 시작했다.
파일:태안 기름유출 사고 경로.jpg
그 당시 기상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고 예인선 두 척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게 되었다. 이때 항만 당국도 예인 선단의 운항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하여 오전 5시 23~24분 즈음에 비상 호출 채널로 두 차례나 호출을 시도하였으나 해당 선박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담당자는 수시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선박에서는 응답하지 않았고 허베이 스피릿호(선장, 1등 항해사가 모두 인도인) 측에서도 삼성T-5호에 호출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간신히 삼성T-5 선장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 사고 발생 1시간 전인 6시 15분에 연락이 닿긴 했다. 이미 예인선단은 복원력을 상실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연결된 와이어가 절단되면서[8] 태안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홍콩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14만 6868t급)와 충돌하였다. 이로써 유조선의 화물탱크 3개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높은 파도 때문에 초기방재 및 충돌부위 긴급보수에 제동이 걸려 결국 기름이 다량으로 유출되는 사고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은 크게 번지지 않거나 몇몇 부분들을 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건을 크게 키워버렸다.
결국 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4. 피해

파일:태안 기름유출 사고 확산상황.jpg

파일:태안 기름유출 사고 확산사진.jpg
사진 속 검은색이 전부 바다에 유출된 기름이다.
결국 바다 한가운데에 와이어가 끊긴 무동력 바지선을 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정박해있던 허베이 스피릿호와 충돌하며 발생한 기름유출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가뜩이나 위에 언급한 풍랑주의보 탓에 초기방재에도 실패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만리포 및 태안군 바다 전체가 기름으로 뒤덮인 건 물론이고 충청남도서해안을 넘어서 군산시, 목포시 그리고 제주도 근처까지 남쪽으로 퍼져나갔으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추가유출은 2일만에 간신히 막았지만 이미 유출된 기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 원유를 흡수하는 마땅한 수가 없다고 해도 정부 역시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못 내놓았다. 타르 덩어리가 이렇게 빨리 확산한 데는 조류, 강풍 등의 기상 악화 원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관계 당국이 저지선 구축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경 방재대책본부는 '해안오염지도'를 제작해 해안 오염 특성에 따른 전문 방재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고 했지만 이는 초기대응치고는 너무 늦은 조치였고, 현실적으로 유출된 원유 7만8918배럴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태안군서산시 양식장, 어장 등 8000여ha가 원유에 오염돼 어패류가 떼죽음을 당했으며 짙은 기름띠는 만리포, 천리포, 모항, 안흥항과 가로림만, 안면도까지 유입되었고 당장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손꼽히는 천수만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5. 방재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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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안 기름 제거작업.jpg
파일:태안 기름 제거작업2.jpg
태안군민들은 절망에 빠지고 대한민국 정부삼성도 감당하기 힘든 대형 재난에 난감해하고 있을 때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해결책이 제시됐다. 어마어마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직접 기름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 주말마다 동호회원, 대학생, 수능 끝난 고3, 군인, 부녀회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연인원 964,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기름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태안 지역 중·고등학생들도 수학여행·졸업여행 등을 반납하고 기름닦기에 나섰다. 방송에 출연중인 연예인들까지 태안을 찾아 방재 작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열악한 지원 탓에 보호복이 없어서 이전 봉사자가 입었던 보호복을 다시 입거나 흡착포가 없어서 헌옷으로 기름을 닦았다.[11] 이들이 쏟은 열정 덕택에 태안의 해안가는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다.

당시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체류 노동자인 샘, 코빌, 나즈물 세 명이 자원봉사를 왔다가 일하던 가구 공장에 사표까지 내고 계속 남아 4개월 넘게 기름을 닦아내며 급식 봉사를 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이들의 선행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근황을 알 수 없다.[12] 이들의 일화가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에 소개되면서 등장인물로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태안군 차원에서도 생태환경회의를 열고 해외의 방재 분야 전문가를 초빙하여 자문을 받는 등 여러 방면을 통해 지원에 나섰고 지상파에서는 앞다투어 태안 어민들을 위한 모금행사를 마련했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 덕분에 최소 10년, 즉 2017년 12월까지 걸릴 것이라 예상한 방재 작업에도 속도를 붙여서 겉에 보이는 기름일 뿐이지만 2달 만인 2008년 2월에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실성 있는 지원을 펼쳐서 40여 개 지역의 오염조사 및 방재 작업에 나섰고 재난지역선포 및 재난장병휴가 세제혜택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펼치는 등 기름 유출을 막고자 하는 노력 및 이를 지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자원봉사자를 수송하는 차량 운전자가 태안, 보령 등 해당 지역으로 갈 경우 관련 서류만 톨게이트 직원에게 제시하면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인데, 이러한 지원 때문이다. 기사

이런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7년이 지난 2014년 12월에는 어장도 복구되고 빠르게 정화되는 등 회복의 조짐이 보였다.

다만 자원봉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유독한 원유를 닦도록 했다는 사실은 비판을 받았다. 자원봉사자들은 보호장구를 돌려쓰거나 헌옷으로 기름을 닦는 등 장비부족 상황을 겪어야 했다. 사실 어떻게보면 금모으기 운동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2022년 11월 26일 태안 유류피해 극복 기록물이 삼국유사, 내방 가사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으로 최종 등재됐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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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7대 대통령 선거 12일 전이었다.[2] 적재된 원유는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이 목적지였다.[3] 1,254만 7천 리터, 약 10,733톤[4] 2021년 1월에 유류피해 극복기념관이 충청남도에서 태안군 소속으로 변경되면서 해당 홈페이지는 폐지될 예정이다. 이후에는 여기서 확인이 가능하다.[5]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이후 이 사건을 일으킨 두산전자뿐만 아니라 두산그룹 전체의 브랜드 가치가 추락한 것, 또 1993년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이후 이 사건을 일으킨 자사의 건설 부문뿐만 아니라 자사 전체의 브랜드 가치가 추락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하다. 특히 당시 두산그룹의 대표 계열사였던 OB맥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소비자 계열사를 모두 매각하고 중공업으로 사업을 개편하면서 훗날 한국프로야구 OB 베어스두산 베어스로 바뀌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무리한 발파 작업으로 구포역 무궁화호 사고를 유발시킨 삼성종합건설도 한동안 부산 지역 건설 수주에 얼씬조차 못했다.[6] 다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름 유출 사고는 광범위한 해당 권역에 영향을 끼치므로 편의상 해당 지역을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례로 멕시코 만 석유 유출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해당 사례는 자발적으로 붙인 명칭이므로 태안과 비교하는 건 전형적인 물타기에 가깝다.[7] 해상 크레인[8] 예인선의 와이어가 끊어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와이어가 끊어진 이유와 시점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9] 항만 당국에서 계속 바지선과 예인선 양쪽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다 무산되었고, 결국 항만 당국에서 예인선 선장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해서 충돌 가능성을 알려줬는데도 표류하고 있는 바지선을 되찾아올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 정도면 항만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갔다는 것이다.[10] 네이버 백과사전 - 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사고 참조[11] 부직포를 모으기 위해서 곧 졸업하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을 학교측에서 수거하기도 했다.[12] 한국 자원봉사자들도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그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13] 실제 촬영은 오프닝 촬영 이전을 포함해 동년 3월 15일부터 진행되었다.[14] 주로 서산을 오가는 32번 국도서해로와 96번 지방도의 천수만로였으며 당시 태안 만리포와 안면으로 향하는 도로가 왕복 2차로 상태여서 교통체증이 심했다고 한다. 해당 구간은 2021년 기준으로 모두 4차로 확장이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