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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6 14:22:00

양주(전국시대)

諸子百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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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朱
기원전 440년~ 기원전 360년?

1. 개요2. 양주학파 연구의 난점3. 사상
3.1. 반(反) 대의주의적 해석 3.2. 위아주의적 해석
4. 이후

1. 개요

전국시대의 학자. 높이는 말로 '양자'(楊子)라고도 불렸다. 김충열 등의 연구기록에 따르면 양주는 노자의 제자였는데, 스승을 못 마땅해하여 뛰쳐나가 자신의 사상을 세웠다고 한다.[1] 회남자, 여씨춘추, 한비자 등에 양주의 사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의 철학은 간단히 요약하면 권력자를 위한 대의·명분에 반대하고 자연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신체(또는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연구 체계를 기반으로 문헌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동양철학의 특성 상, 양주의 철학은 생명주의로 해석되기도 하고 개인주의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노자장자를 잇는 도가의 역사적 교량 정도로 간주되는데, 서양에서 동양철학을 연구한 권위자인 앤거스 그레이엄 같은 경우는 양주의 사상을 아예 '양가(楊家, Yangism)'로 따로 분류해 양주 사상의 카테고리 안에 도가를 집어넣기도 한다.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선비들은 불가와 도가의 이야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하며, 양주를 대표적인 도가로 보았다.

2. 양주학파 연구의 난점

양주는 연구 자체가 어렵다. 직접 남긴 저서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장자, 맹자, 한비자 등이 남긴 저서에서 같이 논쟁하면서 간간히 언급되는것과 백과사전 성격의 책인 회남자, 여씨춘추에서 인용되는게 다라서 온전한 양주의 철학을 알기가 힘들다. 특히 맹자에선 의도적으로 양주학파의 사상을 왜곡했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한비자 또한 양주를 치우친 시선에서 서술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저서가 전하지 않거나 많은 부분이 소실된 것은 양주뿐 아니라 다른 유명한 제자백가 학자들도 비슷했다. 이는 진시황과 항우가 서적 등을 불태워버리며 이연타를 날렸던 영향이 크다. 다만 양주 연구가 더 어려운 지점은 애당초 양주가 단일한 저술을 남겼는지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서적 목록인 한서 예문지에조차 양주의 저서는 보이지 않는다.

3. 사상

맹자에 따르면 '내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에 이익이 되더라도 하지 않겠다.'라는 주장을 남겼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위아설(爲我說), 즉 이기/개인주의의 선구자였다고 볼 수 있다. 묵자(墨子)의 겸애설(兼愛說)과도 흔히 비교된다.

전국시대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었던지, 맹자집주에서도 '양주와 묵적과 같은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2] 맹자는 묵가의 사상을 '무부(無父)'라 칭하며 아비도 없는, 즉 가정 개념도 없는 몹쓸 사상이라 맹비난하였는데, 양주의 사상에 대해서도 '무군(無君)', 군주(왕)도 없는, 즉 나라 개념도 없는 궤변 같은 사상이라며 맹비난하였다.
楊氏는 爲我하니 是는 無君也오 墨氏는 兼愛하니 是는 無父也
양자는 나만을 위하니 이는 임금이 없는 것이고, 묵자는 겸애하니 아버지가 없는 것이다.
-맹자, 제3편 등문공 장구 하-

하지만 사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는 양주가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앞에 논객 한 명이 양주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 선생께서 저에게 털 한가닥을 뽑아줘 제가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선생께선 저에게 털 한가닥을 뽑아 주시겠습니까?" 이에 양주는 "어떻게 털 한가닥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논객은 끈질기게 "만약에 털 하나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럼 털 하나를 뽑아 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양주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에 양주의 제자가 양주의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그 논객을 만났다. 논객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면서 당신의 스승은 나와의 설전에 할 말이 없어서 도망쳤다며 비웃었다. 그러자 제자는 논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께서는 단지 말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괜찮다면 내가 스승님을 대신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약에 당신의 털 하나를 뽑아 주면 내가 금 백냥을 주겠다고 하면 뽑아 주시겠습니까?" 논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자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당신의 팔 하나를 주면 내가 금 천냥을 주겠다고 하면 팔을 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논객은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3.1. 반(反) 대의주의적 해석

이중톈은 '이중톈의 백가쟁명'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제자와 논객의 문답에서 마지막에 논객이 제자의 말에 대답을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털 하나와 팔 하나의 거래에 응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제자가 "금 만냥을 줄 테니까 당신의 목을 달라"는 식의 제안을 할 텐데,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논객은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털 하나를 가지고 천하를 이롭게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식의 논법은 그럴싸한 대의명분을 내세워서, 처음에는 작고 별 것 아닌 것들을 요구한 다음에 똑같은 명분으로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하는 교활한 수작을 묘사한 것이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특히 양주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이런 식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즉, 지배층은 '너희들이 털 하나를 뽑아준다면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라고 백성들을 속여서 자신들의 사익을 챙긴다. 그렇기 때문에 양주는 이런 식의 논법에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살짝 드래곤볼원기옥 비슷한 느낌의 비유이기도 한데, 원기옥에 주기적으로 지구인들이 손을 뻗어 자기 생명의 기를 주다가, 어느 날 그냥 갑자기 손오공이 상대가 막강한 적이라며 지구인 1인당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만큼의 기를 뽑아간다면 어찌될지를 생각해보자. 당연히 손을 내줬다가 그냥 흡성대법으로 죽는 것인데, 작은 것을 자주 내주는 것에 익숙해지면 큰 것에도 둔감해진다는 것이다.[3] 이는 양주가 살았던 전국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포함한 어떤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다만 이런 이론이 '천하를 위해서 털 하나를 뽑으라고 해도 싫다'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인 것처럼 왜곡되어 잘못 전달되었을 뿐이다.[4] 그러니 사실상 양주의 철학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반(反)대의주의' 혹은 '반(反)명분주의'라 할 수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라'라는 식으로 대의명분이란 허울을 통해 백성을 꾀어내는 통치집단에 반대하는 사상인 것이다. 대의라는 것은 거진 다 통치자, 지배계급의 이득을 돌려 말하는거지, 모든 이를 위한 뜻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피지배집단, 약자집단인 백성이 그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성들이 목숨걸고 싸워 천하통일하면 백성들이 황제되나? 절대 아니다. 그나라 왕이 황제되고 그 아들이 그 다음 황제된다. 몸만 축난 백성은 대대손손 몸만 계속 축나고 개뿔 얻는 것도 없다.

때문에 양주의 주장을 단순히 극단적인 이기주의라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당대는 부국강병의 미명하에 개개인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양주는 이런 풍조를 비판하며 인간이 남(국가)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거나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나아가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의 실례에 비춰 보자면 "천하 대의를 위한 전쟁 그딴 거 너라는 개인을 도외시하고 실상은 지배층들의 잇속을 챙겨줄 뿐이니 그런 건 개나 주고 그 시간에 네 터럭 하나나 더 챙기라"[5]는 말과 같다. 개인주의이기주의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고 양주의 사상이 이기주의라는 것은 그의 사상에 대한 몰이해와 후대 권력층의 사상적 탄압 및 왜곡으로부터 비롯된 경향이 크다. 즉, 양주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혹은 공동체주의에 대한 개인 혹은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당대 사회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일 뿐이다. 장자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3.2. 위아주의적 해석

그러나 위의 해석은 이중톈의 견해로, 일단 상기해야 할 것이 이중톈은 대중의 인기를 얻은 중문학자지 철학을 전문적으로 파고든 철학자가 아니다. 이중톈의 견해는 나름의 독창성과 사회적 시사성을 갖추고 있어 그 파급력이 크다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TV스타의 신선한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즉, 고전의 본의를 면밀히 살펴 도출된 치밀한 논리에 기반을 둔 해석이 아닌, 비약적 해석이라는 것. 양주의 사상은 평범한 위아주의에 그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위아주의 이야기는 《열자列子》 〈양주楊朱〉 편에 나오는 일화인데,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고자 한국 한문학계의 권위자로 여겨지는 김학주 교수의 번역을 그대로 옮기겠다.
양주가 말했다.
"백성자고(伯成子高)[6]는 자기 몸의 한 개의 터럭을 뽑아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고, 나라를 버리고 숨어 살면서 밭을 갈았다. 우(禹)[7]임금은 자기 한 몸을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 자신의 몸을 지치고 깡마르게 만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해도 뽑아 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기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자기 몸에서는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
금자(禽子)[8]가 양주에게 물었다.
"선생님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온 세상을 도울 수가 있다면 선생님은 그런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양자(楊子)[9]가 말했다.
"세상은 본시부터 한 개의 터럭으로 도울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금자가 말했다.
"가령 도울 수 있는 경우라면 하시겠습니까?"
양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자가 나와서 맹손양(孟孫陽)[10]에게 말하자 맹손양이 말했다.
"선생은 우리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그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선생의 살갗을 손상시킴으로써 만금萬金을 얻을 수가 있다면 선생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요."
맹손양이 말했다.
"선생의 몸 한 마디를 끊음으로써 한 나라를 얻을 수가 있다면 선생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
금자는 한동안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맹손양이 말했다.
"한 개의 터럭은 살갗보다 작은 것이며 살갗은 몸의 한 마디보다도 작은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개의 터럭이 쌓여서 살갗을 이루고 살갗이 쌓여서 몸의 한 마디를 이루게 됩니다. 한 개의 터럭은 본시가 한 몸의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어찌 그것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금자가 말했다.
"나는 선생에게 대답을 드리지 못하겠소. 그러나 선생의 말에 대해 노자(老子)나 관윤(關尹)[11]에게 가서 물어본다면 그 분들은 선생의 말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나의 말에 대해 우禹임금이나 묵자墨子에게 가서 물어본다면 그 분들은 나의 말이 옳다고 하실 것입니다."
맹손양은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다른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해당 기사에서 보이듯이, 양주와 그 제자는 이중톈의 해석처럼 반대의주의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몸이 킹왕짱 소중하니까 남을 위한답시고 쓸데없이 힘쓰지 말고 제 몸이나 챙길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중톈은 무슨 정부의 수탈이니, 명분 정치니 운운하지만, 이미 보이듯이 기사의 논지상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고, 비판의 대상을 찾는다면 경쟁 사상계인 '묵가'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핵심 논지와 더불어, 양주가 묵가에서 숭상하는 '노동자 왕' 우 임금을 악례로 든 것, 맹손양의 논적으로서 묵가의 대표자인 금활리가 출연하고 사실상 맹손양에게 패퇴한 것 등 정황을 살펴보면 해당 기사가 묵가에 대한 비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명확하다.

공리를 중시하는 묵가의 금활리는 털 한 올 정도라면 기꺼이 내어줄 만하다 여긴다. 살갗 또한 허용 범위 내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보신을 중시하는 양주학파는 이에 반대하여 '당신은 몸 한 마디, 즉 팔다리를 소중히 여겨 내주고 싶어하지 않는데, 이는 그것이 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몸의 일부인 살갗이나 털 한 올은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식의 논조로 털 한 올이나 살갗, 팔다리나 모두 내 몸의 일부이므로 어느 것도 함부로 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금활리는 여기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것이 이 기사의 전부이다: 위아주의 선언묵가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사족이지만, 이 기사의 연출을 보자면 양주학파의 논리는 사실 치밀하진 않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로 '오래된 권위'를 가장하여 찍어누르고, 보신의 영역을 치천하의 영역과 결부시킨 뒤에는 뚜렷한 전거도 없이 비약적 결론을 내린다. 또, 애초에 살갗은 털이 쌓여서 되는 것이 아니요, '한 터럭 = 극소한 것, 살갗 = 보다 큰 것, 몸 한 마디 = 더 큰 것' 식의 비유법으로 이해하여 쌓여서 된다 쳐도(즉, '터럭이 쌓여 한 마디가 된다' = '극소한 것이 쌓여 큰 것이 된다.') 이미 쌓여서 된 것이므로 털 한 올에 견줄 정당한 대상이 아니며, 털 한 올은 뽑아내는 데 큰 고통이 없고 쉬이 재생되지만 팔다리는 그렇지가 않음 등의 질적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금활리가 묵가로서 문제 삼을 건덕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금활리는 아무 것도 반박하지 못하고 다만 '우리의 견해가 다르군요' 하며 순순히 물러나고 만다.

물론 대소경중에 대한 기준과 판단의 문제는 개개인에 달린 것이어서 금활리가 다만 저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길 수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 '사람마다 자기 몸에서는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라는 선언과 '선생님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온 세상을 도울 수가 있다면 선생님은 그런 행동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경세학(經世學)의 담론이라서 금활리가 충분히 묵가의 논리로써 반박을 시도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물론 털 한 올로 어떻게 온 세상을 도울 수 있겠느냐마는, 양주학파의 비유를 인정한다면 묵가의 '털 한 올'도 '아주 극소한 것'의 비유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양주학파는 그런 아주 극소한 것이라도 내 몸에 있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되고, 사람마다 이러한 생각을 견지하여 남에게 참견하지 말고 자기 몸이나 챙기는게 최고라고 주장한다. 묵가의 겸상애, 교상리 원리와 정면으로 대립이 되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금활리는 순순히 물러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논지의 전개부터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금자'는 "터럭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다면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받는 맹손양은 "선생의 몸 한 마디를 끊음으로써 한 나라를 얻을 수가 있다면 선생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라 받고 있다. 이를 현실의 예로 비유하면 금자는 "니가 한 시간 일하면 아프리카 아이들 10명의 끼니를 챙겨줄 수 있지. 그럼 할래?"라는 질문을 한 것이고, 거기에 맹손양은 "니 팔 자르면 1억 준다. 할래?"라고 대꾸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자와 맹손양의 질문은 동등할 수 없다. 금자의 질문은 내 것을 써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이타주의 혹은 공리주의의 선상에 있다. 그러나 맹손양의 질문은 내 것을 써서 내가 이득을 얻는다는 이기주의의 선상에 있다. '터럭, 살갗'이라는 신체의 손해만 공통점으로 묶여 있을 뿐 맹손양의 발언은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이다.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위도 사실 이기주의적 행동원리에 근거한다는 논리를 드는 식으로 이타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모르겠으나, 맹손양의 '한 개의 터럭은...(하략)' 발언에서 이미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중톈은 맹손양의 발언을 반 대의주의로 평가했는데, 이건 이중톈이 맹손양의 훈제 청어를 열심히 집어먹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맹손양이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했다 볼 확정성은 없다. 1) 금자의 주장 'X', 2) 맹손양이 'X'를 변질시킨 'Y', 3) 'Y'에 대한 맹손양의 '공격 작업'이 있어야지 맹손양이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했다 할 수 있는데, 'X'는 전후 맥락을 통해 유추하여(우 임금이나 묵자에게... (후략)) '한 터럭을 써 온 세상을 도울 수 있다면, 그리 해야 한다.' 쯤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의 변태인 'Y'와 그에 대한 '공격 작업'은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Y'를 '선생의 몸 한 마디 ...(하략)' 대목의 중심 내용을 주장화한 '몸 한 마디를 끊어 나라를 하나 얻을 수 있다면, 그리 해야 한다.' 쯤으로 '볼' 수도 있으나, 맹손양은 저런 주장을 전면 제시한 적이 없고, 그러한 주장이 논리적으로 금자의 주장 'X'와 동등하다는 인식을 내보인 적도 없다. 맥락상으로 보아도, 그가 그렇게 인식한 것 같지는 않다(후술). 따라서 'Y'의 확정성은 없고 실재성은 불분명하다. 'Y'의 확정과 실재에 의존하는 'Y에의 공격 작업'의 경우 역시 그러하다.
'Y'가 확정된 실재자인 양 '보여지는' 이유는 위 인용문의 주된 대목이 '맹손양이 금자의 질문에 내재된 금자의 입장(주장) 'X'를 간파하고, 그 논리를 직접적으로 맞받아 논파하려 했다'는 식으로 오독된 탓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맥락상 보이건대, 맹손양은 금자의 입장을 직접 논파하려 든 것이 아니다.
맹손양의 근본적 발화 목적은 스스로 밝히듯 금자에게 양주의 마음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는 효과적인 이해 돕기를 위해 공감을 유도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곧 그의 '몸 한 마디' 운운하는 말은 금자의 논리의 부조리함을 찾아 보려는 시도가 아니라 양주의 논리를 금자에게 이해시키고 수긍케 하려는 시도이다. 양주의 논리란 바로 그의 기본 입장, 곧 그의 위아주의 사상, 곧 극단적인 보신 철학의 논리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굳이 이타주의 예문을 들 필요가 없으며, 그런 예문을 들지 않는다고 해서 오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논점은 양주의 사상이지 금자의 사상이 아니다. 양주의 사상은 위아주의이므로 위아주의 예문을 든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맹손양의 말과 금자에 말에 '신체의 손해'라는 공통 분모만 있다고 했는데, 맹손양의 발화 목적에 따르면 그런 공통 분모로 충분한 것이다. 전술했듯, 맹손양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양주의 '보신' 철학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주의 보신 철학의 대원칙에 수긍하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금자의 묵가적 이타주의를 부정하게 될 테이며, 맹손양도 이것을 어느 정도 의도했을 터이다.
정리하면, 금자와 맹손양의 대담 전개 모양은 [원주장 'X' 출현 → ''X'의 변태형 주장 'Y' 출현 → 'Y'에 대한 '공격 주장' 출현]의 모양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저 [주장 'A' 출현 → 주장 'B' 출현]의 모양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금활리는 묵자에 이어 묵가의 거자(巨子)[12]가 된 자로서 묵가 사상과 그 논리학에 정통한 사람인데, 그런 그가 이렇게도 간단히 물러선다는 것은 아무래도 미심쩍은 일이다. 이 기사는 《열자》라는 책이 전반적으로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듯이, 아마도 도가 계열의 사상적 우월성을 주장하고자 후대에 만들어진 가탁물일 것이다. 《장자》에서 공자와 그 제자들이 도가의 학설에 승복하거나 스스로 도가의 학설을 주장하는 역할로서 굴욕적인 출연을 하듯이, 여기서는 양주를 높이기 위한 역할로서 금활리가 이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이후

위 철학적 토론들과 별개로 현실에서는 (특히 유학이 대세를 탄 이후) 얄짤없이 오랜 시간 동안 '양주 = 천하를 위해서 제 터럭 하나조차 희생하지 않겠다는 싸가지(...)'로 치부되었고, 아가리파이터들이 입씨름 할 때 상대방의 주장이 좀 이기적이다 싶으면 "얼씨구 이 놈 이거 봐라 말하는 게 아주 양주 같네?", "너 그러다 양주 되겠다?" 등으로 나쁘게 활용하였다.[13]


[1] 다만 노자라는 인물이 실존했는지도 모르는 판에, 양주가 노자의 제자였는지 밝힐 길은 현재로서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사상적 측면에서는 분명히 예악에 대한 비판의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2] 사실 전국시대에 유가의 인기는 미미하였다. 전국시대 하층민들 사이에서 인기 사상은 묵가였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개인주의적/보신주의적 도가가 유행하였다. 맹자 시대에 들어 유가의 타 학파 비판이 두드러지게 공격적이게 된 것은 여기에 기인한다.[3] 물론 손오공은 지구를 위해서 싸웠으니 생명력을 안 주면 지구가 망할판이니 그렇다라고 칠 수라도 있긴 하는데, 전국시대 당대의 군주들은 지구가 망할 것도 아닌데 그랬다.[4] 양주의 주장은 '천하를 위해서'라는 말부터 이미 , 즉 위선이라는 뜻이다.그냥 나를 위해서라고 솔직히 지껄여라 지배계급들아[5] 이러한 해석은 양주 본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았고, 양주의 제자 중 한 명이 양주에게 뜻을 물어보러 온 문객에게 설명한 내용이다.[6] 당요(唐堯) 때 사람.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제후(諸侯)였다고 한다. 요임금이 순(舜)에게 선양하고, 순임금이 우(禹)에게 선양하자 제후를 사직하고 농사를 지었다. 우임금이 하풍(下風)에 와서 치도(治道)를 물었다. 이에 이제부터 덕은 쇠하고 형(刑)이 대신할 것이며 후세의 어지러움도 여기서 시작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7] 하 왕조의 시조.[8] 묵자의 제자 금활리(금골희(禽滑釐))인 것으로 보인다. 허나 금활리와 양주가 실제로 면식이 있었는지, 그 이전에 생존 연대가 들어맞는지는 불명이다.[9] 양주 선생.[10] 양주의 제자이다.[11] 윤희(尹喜, ?~?)는 중국 주나라와 전국시대 진나라의 도가(道家) 철학자이다. 그가 맡았던 관직의 이름을 따서 관윤(關尹)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씨 연원에 따르면 윤희가 관직 이름을 따서 관(關)을 성으로 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노자가 주(周)의 쇠함을 보고 주를 떠나려고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관령(關令)인 윤희(尹喜)에게 부탁받아 《도덕경(道德經)》 5천여 자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 관령 윤희가 즉 관윤(關尹)으로 노자의 제자가 된다고 한다. 《장자(莊子)》의 〈천하편(天下篇)〉에 관윤의 말이라 하여, "사람은 아집(我執)을 버리면 자연(自然)대로의 동작이 발휘된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동(動)하기 물과 같고, 그 고요함이 거울과 같으며, 적(寂)함이 청(淸)과 같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잡가(雜家)의 대표작인 《여씨춘추(呂氏春秋)》 〈불이편(不二篇)〉에는 "관윤(關尹)은 청(淸)을 귀히 여긴다"고 평하고 있다.ㅡ위키백과.[12] 묵가의 우두머리. 묵가 무리들은 거자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자신과 가족의 죽음마저 불사했다.[13] 유학자이며 조선 초기 정치가였던 정도전만 해도 묵자 : 쓰레기. 양주 : 쓰레기. 석가모니 : 묵자와 양주보다 더 그럴듯한 말을 하기 때문에 더 쓰레기(...) 등의 얘기를 한 바가 있다. 결론은 공자님 킹왕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