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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23:18:04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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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
농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 병가 유가 음양가 잡가 종횡가 소설가


1. 개요2. 도가의 우주관3. 도가의 인식론4. 도가의 정치철학
4.1. 노자4.2. 장자
5. 사상가6. 기타

1. 개요

/ Taoism, Daoism

춘추시대에 태동한 제자백가 중의 하나. 노자를 시초로 보지만 노자가 도가를 창시하지는 않았다. 도가라는 분류가 생긴 까닭은 후대 사람들이 비슷해 보이는 사상들을 한 범주로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노자양주열자장자/황로학파라는 계보대로 도가가 일관적으로 계승되며 발전해온 사상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도가로 분류된 학자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노자 이후엔 장자, 열자사상가들이 노자의 사상을 계승했다. 노자가 일문을 이루려 했다는 정황이 없었다는 이유로 장자, 열자를 노자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한 사상이라 보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런 주장을 오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자>[1]만 하더라도 본문 중에 노자 <도덕경>의 대목을 그대로 언급하여 우주관을 피력하며[2], <장자>에도 노자가 등장하거나 <도덕경>에서 그대로 가져온 대목이나 개념이 많다.

전반적인 사상은 알게 모르게 유가를 비롯한 여러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까는 내용으로 흐르는데, 특히 <장자>에서는 실존인물 중 공자가 자주 출현해 여러모로 수모를 겪는다. 공자라는 존칭 대신 공구나 중니라고 낮춰 불리고, 몇몇 내용도 유가 사상을 고수하는 공자 일파가 망신을 당하거나 공자나 안회 등의 인물이 기존의 유가적 태도를 버리고 도가의 사상, 개념을 소개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유가와 도가의 근본차이 때문이다. 유가는 '예악'으로 대표되는 예의범절과 사회규범을 확립함으로써 혼탁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도가는 그것이 아무리 선으로 합의되었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기준이 있으면 그것은 필히 구분과 차별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즉 세상의 이치를 상대적인 관점으로 보자고 주장했다.[3]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나 기준(권위)을 타파하고 오히려 자발성 속에서 삶을 향유하는 자발적 개인들이 모인 국가가 부강해진다고 역설했다.

도교라는 종교와는 사상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도교에서 나오는 도가 관련 내용은 도교가 종교로서 발전하면서 흡수한 것이다.[4] 역설적으로 철학 사상으로서 도가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사상은 불교선종이라고 본다. 제자백가 시절은 아직 불교가 중국까지 전해지기 이전이지만, 훗날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가 도가의 자연철학과 결합하여 중국화된 결과가 선종이라는 것. 실제로 명대 이후 도가 연구는 유림이나 도사들보다 감산덕청과 같은 선승들 사이에서 더 활기를 띠었고, 특히 감산의 <도덕경>, <장자> 주석[5]은 불가, 도가 사상의 혼합이라는 측면에서 이후의 노장 연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2. 도가의 우주관

도가의 우주관은 도(道)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노자 사상을 서구철학에 도입한 하이데거 현상학의 용어를 빌려 간단히 설명하자면, 도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에, 물(物)은 그 도(道)로 인해 존재하는 '존재자'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6] 즉, 만물은 도로 인해 무(無)[7]에서 유(有)[8]로, 다시 무(無)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실체 없는 것[9]이고, 도(道)는 그 모든 생성과 변화의 과정 그 자체라는 것. 이 점에서 도가 사상은 이데아와 같은 실체를 지니지 않는 일종의 현상학이라 볼 수 있다. 노자는 이 도(道)를 무(無)와 동일시했는데, 이는 유(有)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이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道)는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 노장의 자연철학이라는 것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숲 속 같은 '자연' 속에 들어가 살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인 그 도(道)를 파악하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는 것이라 이해해야 한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무(無)란 구체적인 모습은 없지만 이 세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영역[10]인 것이고, 유(有)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둘의 긴장과 공존이 세계를 구성한다고 노자는 보았다. 그리고 이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도(道)라 하였다.[11]

결국 도를 이름(정의) 붙일 수 없다고 한 연유도 말장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유무의 관계로 이루어진 도란 놈은 항상 운동, 변화하기 때문에 정의(정지)할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유무대립 면의 관계성을 정치, 사회, 윤리의 영역에 응용하는 것이 바로 가장 훌륭한 덕이면서 도(道) 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보았다.

3. 도가의 인식론

장자인식론은 인간이 인식 주체라고 믿는 '나', 즉 나의 마음(心)의 허구성을 깨닫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장자는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마음은 사실 외부에서 주입된 것들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12] 나의 마음은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나의 본성이라 믿는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은 흐리멍텅한 을 꾸는 채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호접지몽의 일화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인생무상이나 물아일체 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꿈 속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어서 깨어나서 진정한 자신을 깨달으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장자는 그 마음(心)의 구름에 가려진 진정한 자신(眞君)을 찾아야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진심(眞心)이라 표현한다. 그것은 도(道)와 합치된 진정한 인식주체이며,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아조차 잊어버린 참된 나로 묘사된다(無心). 이 부분에서 선종은 불교의 열반장자의 사상을 연결하여 깨달음을 설명한다.[13]

<장자>에서 논리학의 대가인 혜시나 기타 제자백가를 까는 부분이 많은 것 역시 이러한 인식론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심(心)을 언어 내지는 고정관념으로 대체해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즉, 도(道)에 의해 생성과 변화를 반복하는 세계와 만물은 변화무쌍한데, 일정한 전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깔아두고 이를 옹호하기 위해 논쟁을 하는 것이나, 물처럼 흐르는 존재를 하나의 이름이나 개념 등으로 얼음처럼 얼려버리는 언어에 얽매이는 것이 지니는 한계를 제기한 것. 그 유명한 조삼모사가 바로 그 고정관념 속에서 논쟁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일화이다.

4. 도가의 정치철학

도가에 관한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 많은 이들이 도가를 세속에 개입하지 않고 산속에서 나물이나 캐먹고 사는 사상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 도가는 정치 철학이다. 당장 <장자>를 펼쳐보아도 많은 이야기들이 왕이나 정치가들과의 면담[14]이라는 점, 또 <도덕경>이 오랫동안 제왕학의 교본으로 사용되었다는 점도 이를 반영한다.

4.1. 노자

도가 정치사상의 출발은 도, 그리고 성인(聖人)에 대한 정의에서 비롯된다. 도가적 성인은 깨우친 가운데 세상을 도(道)의 흐름대로 다스려지게 하기 위해 참여하는 자인데, 그는 백성이 있는 그대로의 본성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고 깨우치게 하는 군주이다. 여기서의 도는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것, 좀 더 좁혀서 말하면 '인간이 깊게 생각하고 책 읽고 공부해서 만들어진 부분이 전혀 없는 것'[15]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성인은 본능 이외 인위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하여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16] 이해하기 어렵다면 백성들이 왕 자신의 존재조차 잊혀버리는 정치가 이뤄졌을 때 비로소 기뻐했다는 요 임금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성인은 이미 심(心)을 초월했기에 세계와 주변 상황을 자기 마음속에 있는 특정한 틀이나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직시하며, 얽매임 없이 그 변화무쌍한 모습에 대응하며 전략을 짜낼 수 있다.[17] 도가 사상이 권모술수와 연결되는 부분이면서, 유가와 도가가 현실 참여 측면에서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폭군이 있다면 목숨 걸고 충언을 하다 목숨을 잃는 것'이 유가의 가르침이라면, 도가는 '일단 폭군과 같이 행동하여 그를 길들인 후, 그로 하여금 폭정을 하지 못하도록 움직이라'고 가르친다. 이렇듯 유가의 상식을 자주 뒤집는다는 점에서 도가와 유가는 서로 끊임없이 반목한다.

노자는 무위, 즉 어떤 것을 이루려 하는(=욕망하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함을 말한다. 유가와 도가의 정치철학이 구분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유가의 정치가 애민, 즉 백성을 사랑하고 위하는 어진 정치라면, 도가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그러한 정신을 지니지 않는다. 노자가 천지(天地)가 인간을 딱히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도가의 성인 역시 그러한 자연을 본받아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백성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인도할 뿐이다.[18] 이 점에서 도가의 정치는 의도는 좋았다식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애민'조차도 사심으로 보기 때문에 도가적 통치는 전적으로 '법'을 그 수단으로 삼는다. 이 부분이 도가와 법가가 사상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한대에 이르면서 법가는 도가와 통합된다. 법가의 한비자는 실제로 도가를 따로 연구했다는 기록이 있고, 무위지치를 법으로 통치되는 세상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노자 3장에 나오는대로 노자의 통치철학 본질은 "무위를 통하여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즉 "백성에게 어떤 욕망과 깨달음도 주지 않아 그들에게 어떤 방향성도 갖지 않게 한다면, 항상 그들을 통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따라선 우민화 정책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통치사상이다.[19] 이런 해석은 법가의 한비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법가를 숭상한 진시황에게 영향을 미쳐 '백성의 배움(공부)은 죄악이며, 그 근원은 책과 선비들이다'라는 생각까지 다다르게 하여 분서갱유라는 끔찍한 사태를 낳기도 하지만... 물론 노자가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애초에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왕조를 추구했던 진시황의 진나라는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 즉 문명의 발달 없는 무위와 무욕의 자발적 개인들이 모여사는 이상사회를 '소국과민'이라 칭하며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노자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긴 하다.[20] 또 노자는 하늘의 도는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해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군주는 포악함을 멀리하고 형벌로 백성을 억압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여튼 이 점에서 도가는 고도의 정치철학이자 기술이며, 중국 사상계 전략 부문의 철학적 기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정치 기술로서의 유가가 근성과 정의의 힘으로 정면돌파하는 스타일이라면, 도가는 정면 힘겨룸 대신 여러 전략과 발상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두뇌파 스타일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듯. 물론 노자식 사회를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자들은 노자를 "권모술수를 담은 책"이라 부르는 걸 싫어한다. 애초에 워낙 의미가 함축적이라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한 여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타 자세한 사항은 노자 항목 참조.

4.2. 장자

노장사상이 후학에 의해 "도가"사상으로 엮여서 해석되는 경향이 강했기에, 장자의 텍스트 역시 노자의 그것처럼 통치술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대붕' 이야기에서, 을 심(心)을 초월한,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른 초월자이자,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직시하고, 백성을 유연하게 다스릴 수 있는 존재로 해석하는 시각 등이다. 그래서 노자에 대한 해석과 함께, 장자의 정치철학 역시 정해진 도(道)에 따르는 통치술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다만 둘 다 자기 사상의 목적에 대해 방법론에 비해 서술이 두루뭉술 적기 때문에 그 목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하지만 위의 견해와 달리, 장자의 텍스트 특히 다양한 텍스트의 혼합이 심한 장자 외편과, 그와는 다른 성향을 보이는 장자 내편의 구분, 그리고 당대 장자의 사상을 나타낼 수 있는 사료 등을 종합하여 장자의 정치철학이 노자의 그것과는 상이한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철학자 강신주는 동양철학을 공부한 뒤 노자는 제왕주의, 장자는 아나키즘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서로의 사상을 완벽히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장자 항목 참조.

사실 비슷한 말도 각 사상의 목적에 따라 의미가 크게 변할 순 있다. 장자는 때론 취차거피(가까운 것을 취하고 먼 것을 거부한다)를 말하며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충실하고 너무 먼 미래 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허나 한편으론 이 현실주의를 통해 쓸모없는 것은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있는 것이라는 식으로[21] 역설적 화법도 많이 구사한다. 당장 에피소드만 봐도 알 수 있듯 장자는 결코 고단한 역경을 기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종합해서 보면 둘 다 취합하는 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장자는 수행의 방법론으로 좌망(앉은채로 잊어버린다)과 심재(마음을 가다듬는다)를 제안하는데, 유가 인물을 자주 끌어들이는 장자식 일화에 따르면 안회가 어느 날 스승 공자에게 학문의 진전이 있다며 인의를 잊었다고(망) 하자 공자는 아직 멀었다고 하고 담에 와서 또 예를 잊었습니다라고 하자 아직 안됐다고 한다. 그러다 좌망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기뻐했다고 한다. 결국 인의예지를 잊었다는 것은 성심(이루어진 마음-기존의 가치관)을 잊었다는 것이고, 좌망이란 이런 기존의 선입견이 있는 이분법적 사고가 해체된 상태를 말한다.[22][23] 심재 역시 안회가 등장해 공자에게 심재를 했다고 하자 공자가 어땠냐고 묻는데, "마음을 재하기 전에는 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자아) 마음을 재하고 나니까 제가 없었습니다(무아)"라고 답한다. 상기된 인식론과도 겹치는 부분. 일종의 무아지경을 터득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애초 노자나 장자의 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워낙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다보니 일반인들 사이에선 뭔 소린지 이해조차 안가는 구절도 많고, 심지어 전문가간에도 서로 해석들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심심찮다. 때문에 최진석 교수 같은 경우 그들의 사상은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그 시절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이 내놓은 일종의 타개책으로, 지금 와서 보면 안맞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당연히 21세기엔 그들의 사상을 공부하되 21세기에 맞게 응용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5. 사상가

6. 기타


[1] 한자 문화권 고전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열자가 쓴 책이 아니다.[2] 이 대목에서 열자는 도덕경을 <황제경>(黃帝經)이라 언급하는데, 이는 <열자>라는 텍스트가 황로학파가 본격적으로 생성되던 진나라 말기→한나라 초기에 정립되었다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3] 천하의 모두가 아름다움이 항상 아름답다고 알고 있지만(天下皆知美之爲美) 그런 아름다움은 추한 것이다(斯惡已).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難易相成), 길고 짧은 것은 서로를 드러나게 하고(長短相形),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高下相傾), 음조와 소리는 서로 조화롭고(音聲相和),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前後相隨).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하고(聖人處無爲之事), 말하지 않음으로 가르침을 행한다(行不言之敎). 만물을 지어도 말로 드러내지 않고(萬物作焉以不辭), 낳아도 가지지 않고(生而不有), 위하면서도 의지하지 않으며(爲而不恃), 공을 이루되 머무르지 않는다(功成而不居). 성인은 마땅히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그 공이) 떠나지 않는다(夫惟不居是以不去). <도덕경 제2장>[4] 후한 말, 삼국시대 초기에 태평도, 오두미도가 나타나면서 종교조직화한 도교가 도가에서 분리된다. 도교에서 노자는 태상노군이라는 신선으로 신격화되어 숭배받는다.[5] 내편만 주석을 달고 외편, 잡편은 달지 못한 채 죽었다.[6] 흔히 '존재'라는 단어를 개별적인 '존재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혼용하기 때문에 다소 혼동될 수 있는데, 여기서 '존재'라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성질, 즉 '존재한다는 것' 그 개념 자체를 말한다. 그러면서 위키백과에서는 이 도(道)를 가리켜 우주의 모든 만물을 사출하는 배후의 힘이며, 이 도의 작용에 의해 포착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우리에게 포착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7] 그러면서 무(無)는 존재의 부정으로써의 의미가 아닌, 상대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 것은 물론, 절대적이고 무한한 힘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천지형성의 시원이라고 한다. 또한, 도가와 같은 동양철학에서의 무(無)는 '절대적 없음'이라기보다는 전체를 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물론, 내부에서는 바깥의 경계를 포착할 수가 없는 상태 혹은 무한으로 본다고 한다.[8] 만물,창생의 근원격에 해당된다고 한다.[9] 그렇기에, 무와 유는 서로 순환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영향을 주어 의존하는 상관적 관계라 할 수가 있는 것은 물론, 무(無)가 유(有)가 되기도 하고, 유(有)가 무(無)가 되기도 한다.[10] 시공간, 달리기 전 출발을 준비하는 일련의 내면적 행위 등, 어떤 눈으로 보이는 실체나 자기 존재성은 없지만 그것들로 인해 다른 것이 가능해지는 영역.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각종 원리들이 포함된다고도 볼 수 있다.[11] "나는 그것의 이름을 모르겠다.(吾不知其名) 글자로 이르길 도라 하고(字之曰道)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고 말할 뿐이다(强爲之名曰大)." <도덕경25장>[12] 사회에서 말하는 의무(국가에 대한 충성)나 목표(부와 명예)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이를 위해 사는 것이 대표적인 예.[13] 실제 장자와 몇몇 불교 경전은 해석해보면 내용이 겹치는 구절이 생각보다 많다.[14] 다만 장자의 텍스트, 특히 장자 내편의 텍스트는 이러한 정치적 담론을 통해, 노자와는 달리 통치의 원리보다는 통치 체제 및 권위에 대한 부정이나, 인간과 타자 간의 소통, 인간 실존에 대한 문제 등을 제기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가 중에서도 노자의 정치 철학이 후술되었듯이 정교한 기술과 법에 의한 통치를 지향한다면, 장자의 정치 철학은 오히려 아나키즘적인 면모를 보인다고도 해석 가능하다.[15] 물론 이게 노자의 진심이든 아니면 혹자가 해석을 그렇게 한 것이든 뭐든 현실에선 다분히 말장난일 수 있는게, 이걸 보는 관점 혹은 본성 그 자체가 사람마다 다르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꺼려야 할 배움이란게 교조화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말하는거면 몰라도 사람의 도리(道理)조차 배우지 말라는 소리는 아닐테니 말이다. 노자가 말하는 본성이란게 그냥 짐승을 뜻하는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을 수세기 먼저 신뢰한 모양. 역설적으로 정반합과 공부가 필요한 부분.[16] 그래서 성인의 가장 큰 적은 선비다. 그들은 자연에 어긋나게, 인위적인 분야인 학문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문의 근원인 책을 읽고 외우는 것으로 모자라서 자기들끼리 토론도 하고 새 책을 쓰기까지 하고, 앎이 부족한 자를 가르치기까지 하기 때문에 성인이 가장 없애버려야 하는, 죄악 같은 존재이다. 그들의 행위는 세상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는 의식을 심는 행위, 즉 도가 아닌 행위인 것이다. 노자는 이런 행위가 백성을 현혹하여 성인에 대한 반역과 혼란을 이끄는 근원이 된다고 보았다.[17] 그러나 그런 부분 때문에 백성이 인위적 방향성을 갖는 것, 즉 세상에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을 죄악으로 취급한다. 자연의 도와 반대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18] 이런 점에서 보면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도 맞닿은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19] 물론 또 달리 해석하면, 여기저기 간섭하고 훈장질 하지 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20] 사실 이런 점에선 법가를 국가주의의 일종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노자 사상은 전부는 아니지만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과 어느정도 맥이 닿는다고 볼 수도 있다. 나라를 작게 쪼개서 힘의 균형이 없어진다면 나라라는 개념 또한 사실상 없어질 것이기 때문.[21] 하나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으면 해당 관점에선 단점이 되는 것이 다른 관점에선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22] 다만 잊어버리기 전의 공부가 무조건 무의미하지만도 않은게, 애초에 현실 사상적으로 보자면 사회적 예의범절 따위를 어릴 때 배우는건 분명 실보단 득이 많다. 허나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에서 강요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있는건 때론 위험할 수 있다.[23] 사실 공자도 나이 60에 이순(귀가 순해짐)을 이뤘다고 표현하는데, 이순은 귀가 순해져 남의 말을 들으면 사감에 휩싸이지 않고 그 이치를 능히 깨달아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고)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 표현을 실제 공자조차 이분법적 사고관에서 벗어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애초에 사기엔 믿거나말거나긴 하지만 공자 스승이 노자라고 적혀있으니 묘하긴 하다.[24] 오늘날 편의상 도가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도가 측에 위아론이라고 비판받은 인물이다. 장자의 기록에도 등장하여 공자처럼 허구로 장자와 대화하다가 (말발에) 쳐발리고 까이던 인물로 묘사될 정도라 도가에서는 무시당하는 입장이다.[25] 선종 역시 보살행과 같은 현실 참여와 중생의 구제를 이야기하나, 이는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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