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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5:20:04

도덕경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다.
― 도덕경 제1장
1. 개요2. 상세3. 죽간본 원문과 번역
3.1. 1장(갑본)3.2. 2장3.3. 3장3.4. 4장3.5. 5장3.6. 6장3.7. 7장3.8. 8장3.9. 9장3.10. 10장3.11. 11장3.12. 12장3.13. 13장3.14. 14장3.15. 15장3.16. 16장3.17. 17장3.18. 18장3.19. 19장3.20. 20장3.21. 21장(을본)3.22. 22장3.23. 23장3.24. 24장3.25. 25장3.26. 26장3.27. 27장3.28. 28장3.29. 29장3.30. 30장(병본)3.31. 31장3.32. 32장3.33. 33장
4. 왕필본에 의한 번역의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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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글. 《노자》 혹은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도교에서 핵심 경전으로 삼는다. 《도덕경(道德經)》이란 이름은 상편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道"와 하편의 "상덕부덕(上德不德)"의 "德"을 합해 부른 이름이다.

2. 상세

기존에 《노자》에는 3개의 주요 판본이 있었다. 하나는 한대,漢代,에 성립된 하상공본(河上公本),[1] 또 하나는 삼국,三國, 시대의 왕필이 주석한 왕필본(王弼本), 그리고 당대,唐代,의 학자 부혁이 전한 부혁본(傅奕本)이 그것이다. 이 중 왕필본의 권위가 가장 인정되어 후대에 나온 대부분 《노자》 텍스트들은 대부분 왕필본을 따랐다.[2]

하지만 왕필본 《노자》의 권위는 20세기에 새로운 자료들이 출토되어 조금씩 무너졌다. 20세기 초반에 발견된 돈황 문헌에서 《노자》의 판본이 발견되면서, 왕필본의 내용이 진짜 《노자》 원본대로인지 의문을 품었다.

이후 관련 학자들에게 경천동지 같은 소식을 전한 것은 1974년 마왕퇴 무덤에서 발견된 《노자》였다. 이 《노자》사본은 비단에 쓰였기 때문에 '백서 노자', '마왕퇴 노자', 통칭 '백서본'으로 불린다. 이 백서본은 서한의 황제 고조(劉邦)문제(劉恒)의 이름이 피휘되지 않아[3], 지어진 시기가 한대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

이것으로써 《노자》가 한대 이후에 만들어진 위작이 아니라는 것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백서본은 편집 순서가 왕필본과 다르게 상편(도경)과 하편(덕경)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어서, 본래의 《노자》는 덕경-도경 순으로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도덕이란 어휘도 이 책에 의해 퍼진 것인데,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이 된다.

그리고 1993년에는 후베이성 징먼시 궈뎬촌(곽점촌)의 한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무덤(기원전 3세기 초 이전) 곽점에서 대나무 죽간에 쓰여진 《노자》의 사본이 발견되어, 《노자》가 한대 이후 위작되었다는 설은 완전히 일소되었다. 곽점에서 출토된 사본을 '죽간 노자', '초간 노자', '곽점 노자' 등으로 부르지만 보통 '죽간본'이라고 통칭한다. 죽간본은 갑, 을, 병본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후 연구결과, 백서본은 죽간본 《노자》의 주석서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죽간본은 실존하는 《노자》의 가장 오래된 판본이 되었다.

죽간본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왕필본 《노자》와 성격이 다른데, 기존 왕필본 《노자》의 중요한 특징인 '반 유가적 성격'이 후대에 와서야 생겼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왕필본으로 《노자》를 바라보았던 후대의 수많은 주석서들을 모두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초기 노자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또한 죽간본과 기존의 여러 판본들은, 내용과 사상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데, 이는 《노자》가 처음 지어진 이래로 수많은 후대 사람들이 변형하고 추가했음을 보여준다.

3. 죽간본 원문과 번역

3.1. 1장(갑본)

갑(甲)본

죽간본 1장 - <통행본(왕필본) 19장> <백서본 88장>에 해당. (이하 마찬가지)
絕智弃辯 民利百倍 絕巧弃利 盜賊亡有 絕偽弃慮 民复季子 三言以爲事不足 或命之, 或乎續 視素保朴 少厶寡欲
꾀를 끊고 말재간을 버리면 백성들은 백배 이로워지며,
재주를 끊고 이익냄을 버리면 도적이 사라지며,
거짓됨을 끊고 생각을 비우면 백성들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위의 세 문장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듯하여 이야기를 덧붙이면 어떨까 한다.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소박함을 지켜라.
사사로움(私)을 줄이고 원하는 것을 적게 하라.

3.2. 2장

죽간본 2장 - 통행본 66장, 백서본 45장
江海所以爲百谷王 以其能爲百谷下 是以能爲百谷王 聖人之在民前也 以身後之 其在民上也 以言下之 其在民上也 民弗厚也 其在民前也 民弗害也 天下樂推而弗厭 以其不爭也 故天下莫能與之爭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계곡의 왕이 되는 까닭은
그가 수많은 계곡의 아래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로써 수많은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 백성들의 앞에 있는 것은 자신을 뒤로 하기 때문이며,
그가 백성들의 위에 있는 것은 말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가 백성들의 위에 있어도 백성들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그가 백성들의 앞에 있어도 백성들은 해롭게 느끼지 않는다.
천하가 그를 즐거이 받들며 싫어하지 않는다.

성인은 싸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그와 다툴 수 없을 것이다.

3.3. 3장

죽간본 3장 - 통행본 46장 후반부, 백서본 13장
罪莫厚乎甚欲 咎莫慘乎欲得 禍莫大乎不知足 知足之爲足 此恆足矣
죄(罪)는 지나치게 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이 없고,
허물은 가지려 욕심부리는 것보다 더 참혹한 것이 없으며,
재앙은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만족할 줄 알게 될 때에야 비로소 만족해지니, 이것이 영원한(恆) 만족감이 되는 것이다.

3.4. 4장

죽간본 4장 - 통행본 30장, 백서본 104장
以道佐人主者 不欲以兵强於天下 善者果而已 不以取强 果而弗伐 果而弗縣 果而弗矜 是謂果而不强 其事好
도로써 사람들을 돕는 지도자는 군대로써 천하를 강압하려 하지 않는다.
훌륭한 자는 결과를 얻으면 그만두니,
강압하지 않는다.

결과를 얻은뒤 짓밟지 않고,
결과에 교만하지(얕보지) 말고,
결과로 위협하지 말라.

이를 '결과를 가지면 강압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좌하는 것이 좋은 일이며, 오래 가는 것이다.

3.5. 5장

죽간본 5장 - 통행본 15장, 백서본 84장
長古之善爲士者 必微妙玄造 深不可識 是以爲之容/豫乎! 如冬涉川/猶乎! 其如畏四鄒/儼乎! 其如客/渙乎! 其如釋/敦乎! 其如撲/混乎! 其如濁/孰能濁以靜者, 將徐淸/孰能安以逗者, 將徐生/保此道者, 不欲常盈
태고에 훌륭했던 선비들은 미묘현달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이를 말해 보자면,
그 예상은 겨울 시내를 건너는 듯하고
그 망설임은 사방의 적군을 경계하는 듯하며
그 삼감은 손님과 같고
그 마음이 풀리는 것은 얼음 녹는듯 하며
그 진실됨은 꾸밈이 없어 수수하고
그 아무렇게나 하는 행동은 우둔해 보였다.

누가 우둔할 수 있음으로 차분해져서 장차 마음을 서서히 맑게 하겠는가.
누가 평온할 수 있음에 머물러서 서서히 생기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러한 도를 지키는 자는, 항상 가득차 있음을 바라지 않는다.

3.6. 6장

죽간본 6장 - 통행본 64장 후반부, 백서본 41~43장
爲之者敗之 執之者失之/是以聖人無爲, 故無敗/無執, 故無失/臨事之紀
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敎不敎, 復衆之所過/是故聖人能輔萬物之自然/而不能爲
하려고(爲) 하면 그르치고 잡으려고 하면 멀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려함이 없기 때문에 그르침이 없고
잡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잃는 법이 없다.

일에 임하는 바탕은 일의 마무리를 처음처럼 신중히 하는 것이며,
이렇게 처사하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 없도다.

성인은 바라지 않음을 바라고,
얻기 힘든 재물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음으로 가르치고,
뭇사람들이 지나쳐온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렇듯 성인은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울 뿐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3.7. 7장

죽간본 7장 - 통행본 37장, 백서본 마지막 장
道恒無爲也 侯王能守之 而萬物將自爲 爲而欲作 將定之以無名之撲 夫亦將知足. 知足以靜, 萬物將自定
도는 항상 억지로 하고자함이 없다.
제후나 왕이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다.

하려는 것에 욕심이 생긴다면,
이름 없이 꾸미지 않음으로써 진정케 한다.

대저 만족함을 알아라.

만족함을 알게 되어 차분해지면
만물은 스스로 안정을 이룬다.

3.8. 8장

죽간본 8장 - 통해본 63장 1절/3절, 백서본 26장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之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
무위(無爲)를 하려고 하고,
일 없애기를 일삼으며,
즐기지 않음을 즐겨라[4].

크고 작은 일들을 쉽게 대함이 잦아지면,
반드시 어려움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쉽더라도 오히려 어렵게 대하기 때문에,
고로 어려움이 없게 된다.

3.9. 9장

죽간본 9장 - 통행본 2장, 백서본 68~70장
天下皆知美之爲美也, 惡巳/皆知善, 此其不善已/有無之相生也 難易之相成也 長短之相形也 高下之相盈也 音聲之相和也 先後之相隨也 是以聖人居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而弗治也 爲而弗侍也 成而弗居 夫唯弗居也 是以弗去也
천하가 모두 아름다움을 알기를
아름답다고 여기면, 추할 따름이다.

모두가 좋다고 알면,
이는 그 좋음이 아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를 형성해내고,
길고 짧음이 서로를 만들어내고,
높고 낮음이 서로를 메우고,
음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고,
앞과 뒤가 서로를 뒤따른다.

때문에 성인은 하고자함이 없는(無爲) 일에 머무르며,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은 만들어지지만 다스려지지는 않으며,
하더라도 길러주지 않아서,
다 자라면 머무르지 않는다.
대저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3.10. 10장

죽간본 10장 – 통행본 32장, 백서본 105장, 107장
道恒無名 撲雖細 天地弗敢臣 侯王如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會也 以輸甘露 民莫之命 而自均焉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所以不殆 卑道之在天下也 猶小谷之與江海
도는 항상 이름이 없다.
꾸밈없음은 매우 작지만
천지도 감히 부릴 수 없다.

제후와 왕이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따를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모여 단이슬을 내리며,
백성들은 명령이 없어도 스스로 질서를 지킬 것이다.

비로소 이름을 만들더라도,
이름(명성) 역시 다함이 있다.
대저 또한 그칠 줄을 알아야 하는데,
위태롭지 않은 바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낮은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은, 작은 계곡물들이 강과 바다에 합쳐지는 것과 같다.

3.11. 11장

죽간본 11장 - 통행본 25장, 백서본 98장
有狀混成 先天地生 寂廖獨立不改 可以爲天下母 未知其名 字之曰道 吾强爲之名曰大 大曰逝 浙曰遠 遠曰反 天大地大道大王亦大 域中有四大焉
王居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세상의) 모양이 혼탁함에서 가지런해지니,
먼저 하늘과 땅이 생겨났다.
고요하고 텅 비어 홀로 존재하며 바뀌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아직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하나, 글자로는 ‘도(道)’라고 한다.

나는 억지로 그것에 이름을 붙여 '크다(大)'라고 말한다.
크면 뻗어나가고,
뻗어나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시 돌아온다.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도도 크고 왕 또한 크다.
나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으니,
왕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본받는다.

3.12. 12장

죽간본 12장 - 통행본 5장 중반부, 백서본 74장
天地之間 其猶棄籥與 虛而不屈 動而愈出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은 풀무[5]와도 같다.
그것은 텅 비어 있으나 쇠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샘솟는다.

3.13. 13장

죽간본 13장 - 통행본 16장 전반부, 백서본 85장
至虛極也 守盅篤也 萬物芳作 居以需復也 天道芸芸 各復其根
텅 빔에 이르름은 끝없어서,
텅 빔을 지키기를 진심으로 한다.
만물은 다 함께 일어나서 (각기) 쓰여지는 곳으로 돌아간다.
하늘의 도는 둥글고 둥글어서, 각기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

3.14. 14장

죽간본 14장 - 통행본 64장 1~2절, 백서본 39~40장
其安也, 易持也/其未兆也, 易謀也/其腕也, 易判也/其微也, 易散也/爲之於其無有也 治之於其未亂 合抱之木生於毫未 九層之臺起於累土 千里之行始於足下
안정된 것은 지키기 쉽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일을 꾸며가기 쉬우며,
연한 것은 나누기 쉽고,
조그만 것은 흩어버리기 쉽다.

생기기 전에 처리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라.

아름드리 나무도 한 터럭의 싹에서 시작하고,
구층 누대도 한 줌의 흙에서 시작하며,
천리 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3.15. 15장

죽간본 15장 - 통행본 56장, 백서본 28장
知之者弗言 言之者弗知/戒其悅, 寶其門/和其求, 迵其訢/分其賏[6], 解其紛/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亦不可得而疏/不可得而利, 亦不可得而害/不可得而貴, 亦可不可得而賤/故爲天下貴
똑똑한 자는 말이 없으며, 말을 하는 자는 아는 것이 없다.

기뻐함을 경계하여 그 방법을 보배로 여기고,
요구하는 바는 뜻을 맞춰서 기쁨을 함께하며,
많은 재물은 나누어서 다툼을 해결한다.

이를 일러 '깊이 하나가 되는 것(玄同)'이라 한다.

그러므로 가까이 할 수 없고 또한 멀리할 수도 없으며,
이로울 수가 없고 또한 해로울 수도 없으며,
귀할 수도 없고 또한 천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된다.

3.16. 16장

죽간본 16장 - 통행본 57장, 백서본 29장
以正治邦 以奇用兵 以無事 取天下 吾何以知其然也/夫天多忌諱, 而民彌貧/民多利器, 而邦滋昏/人多知, 而奇物滋起/法物滋彰, 盜賊多有/是以聖人之言曰/我無事, 而民自富/我無爲, 而民自爲/我好靜, 而民自正/我欲不欲, 而民自撲
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 군사를 부리며,
일하지 않음으로 천하를 얻는다.

내가 어떻게 그러한 이치를 알겠는가.
대저 세상에 꺼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에게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질수록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지며,
사람들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기이한 것들이 더욱 일어나고,
법률이 많아질수록 도적들도 많아진다.

이 때문에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으면 백성들은 스스로 넉넉해지고,
내가 무위(無爲)에 머무르면 백성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며,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올바르게 되고,
내가 바라지 않기를 바라면 백성들은 스스로 순박해진다.

3.17. 17장

죽간본 17장 - 통행본 55장, 백서본 29장
含德之厚者, 比於赤子/蜂䘍蟲蛇弗螫 攫鳥猛獸弗拍 骨弱筋柔而提固/未知牝牡之合朘怒, 精之至也/終日呼而不嗄, 禾之至也/和日常知和曰明 益生曰祥心使氣日强 物壯則老是謂不道
덕을 품음이 두터운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
벌, 전갈, 벌레, 독사도 쏘지 못하고
사나운 새나 맹수도 덮치지 못하며
뼈가 연하고 근육이 부드럽지만 붙잡음이 굳세다.

암수의 합을 모르는데도 곤두서는 것은 정기가 지극하기 때문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로움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조화로움은 일상적인 것인데,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밝다(明)고 하고,
생명을 더하는 것을 상서롭다(祥)고 한다.

마음이 기를 통제하는 것이 날로 강해져서
물건이 장성하면 노쇠하게 되니,

이를 일러 도가 아니라고 한다.

3.18. 18장

죽간본 18장 - 통행본 44장, 백서본 10장
名與身執親 身與貨執多 得與亡執病 甚愛必大費 厚臟必多亡 故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명예와 몸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몸과 재물 중 무엇이 더 귀중한가?

얻음과 잃음 중 무엇이 더 문제인가?

과도히 애착하면 반드시 큰 댓가를 치르게 되고, 무겁게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

그러므로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로움이 없기 때문에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3.19. 19장

죽간본 19장 - 통행본 40장, 백서본 6~7장
反也者, 道動也/弱也者, 道之用也/天下之物, 生於有/生於無
되돌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며,
약해 보이는 것은 도의 쓰임이다.
천하 만물은 있음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은) 없음으로부터 비롯된다.

3.20. 20장

죽간본 20장 - 통행본 9장, 백서본 78장
持而盈之 不若已 揣而君之 不可長保也 金玉盈室 莫能守也 貴富驕 自遺咎也 功遂身退 天之道也
가져서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둠만 못하다.
많이 뭉쳐 모으면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금과 옥으로 가득 찬 집은 지켜낼 수가 없다.

귀하고 부유하다고 하여서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것이니,
공(功)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3.21. 21장(을본)

을(乙)본

죽간본 21장 - 통행본 59장, 백서본 31장
治人事天, 莫若嗇/夫唯嗇 是以早/是以早備, 是謂/不克/不, 則莫知其極/莫知其極, 可以有國/有國之母, 可以長/長生久視之道也
사람들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 아낌[7] 만한 것이 없다.
오직 아낄지라. 이렇게 함으로써 미리미리 갖추게 된다.
미리미리 갖춤을 일러 ‘덕을 두둑이 쌓는 것’이라 하며,
덕이 두둑이 쌓이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고,
해내지 못할 일이 없으면 그 끝을 알 수 없으며,
그 끝을 알 수 없으면, 나라를 맡을 만하고,
나라의 근본이 있으면 (그 나라는) 오래 갈 수 있다.

길게 살아 오래 보이는 것이 도(道)이다.

3.22. 22장

죽간본 22장 - 통행본 48장 전반부, 백서본 16장
學者日益 爲道者日損/損之或損, 以至無爲也/無爲而無不爲
배우는 자는 나날이 쌓아가나,
도를 위하는 자는 나날이 덜어낸다.
덜고 또 덜어내어서 무위(無爲)에 이른다.
(그는) 함이 없는데도 하지 않음이 없다.

3.23. 23장

죽간본 23장 - 통행본 20장 초반부, 백서본 89장
絶學無憂/唯與訶, 相去幾何/美與惡, 相去何若/人之所畏, 亦不可以不畏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공손함과 성냄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아름다움과 추함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사람들이 꺼리는 것에는, 다만 꺼리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3.24. 24장

죽간본 24장 – 통행본 13장, 백서본 82장
人籠辱若瓔 貴大患若身 何謂籠辱 籠爲下也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籠辱驚 若身/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及吾無身, 或何/爲天下, 若可以託天下矣/愛爲身爲天下, 若可以寄天下矣
사람은 조롱와 모욕을 옥으로 된 목걸이처럼 여기며,
큰 근심을 자신의 몸뚱이처럼 귀중히 여긴다.

조롱와 모욕는 무엇을 말하는가?
조롱은 천한 것(下)이 되니,
그것을 얻어도 놀란 것처럼 하며, 그것을 잃어도 놀란 것처럼 한다.
이를 '조롱과 모욕에 자기 몸처럼 놀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이 있음을 위하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없음에 이르면 어찌하겠는가.

천하를 위하는 것이 천하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를 아끼는 것이 천하를 위하는 것이니, (나를 아끼는 사람[8]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9]

3.25. 25장

죽간본 25장 - 통행본 41장, 백서본 4장
上士聞道 勤能行於其中 中士聞道 若聞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弗大笑 不足以爲道矣 是以建言有之 明道如䀟 夷[道如類] [進]道若退 上悳如浴 大白如辱 廣悳如不足 建悳如[偸] [質]貞如渝 大方亡隅 大器曼成 大音希聲 天象亡型 道[褒亡名] [善貸且成].
높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그 정수를 행하고,
중간 사람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해하고,
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큰 비웃음을 사지 못한다면 도가 되기에 부족하도다.

이로써 말씀드리자면,

밝은 도는 어두운 듯하며,
평탄한 도는 굴곡진 듯하며,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듯하며,
높은 덕은 골짜기처럼 낮은 듯하며,
큰 순백함은 탁한 듯하며,
큰 덕은 부족한 듯하며,
건실한 덕은 엷은 듯하며,
바탕되는 본자리는 변화하는 듯하며,
거대한 모서리는 모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대기만성),
거대한 소리는 희미하게 들리며,
하늘의 형상은 형체가 없다.

도는 크지만 이름이 없으며, 훌륭함은 빌려서 또한 완성하는 것이다.

3.26. 26장

죽간본 26장 - 통행본 52장 중반부, 백서본 25장
閉其門, 塞其穴/終身不敄/啓其穴, 濟其事/終身不來
(의식이 반응하는) 그 문과 구멍을 닫으면 죽는 날까지 힘씀이 없다.
그 구멍을 열고 일을 좇으면 죽는 날까지 앞날이 없다.

3.27. 27장

죽간본 27장 - 통행본 45장 중반부, 백서본 11장
大盛若缺 其用不敝 大盈若盅 其用不窮 大巧若拙 大成若詘 大直若屈
진정 성대한 것은 부족한 듯 보이나, 그 쓰임에는 내버리는 것이 없다.
진정 가득한 것은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끝이 없다.

큰 재주는 서툴게 보이고,
큰 성공은 덜한 듯이 보이며,
큰 곧음은 굽은 듯이 보인다.

3.28. 28장

죽간본 28장 - 통행본 54장, 백서본 26장
燥勝凔 靜勝熱 淸淸爲天下定.
초조는 냉정을 이기고,
고요는 열정을 이기니,

맑고 맑음에 천하가 안정된다.

3.29. 29장

죽간본 29장 - 통행본 17장, 백서본 86장
善建者不拔/善保者, 不敓/孫以其祭祀不屯/修之身, 其德乃貞/修之家, 其德有餘/修之鄕, 其德乃長/修之邦, 其德乃豊/修之天下 家 以鄕觀鄕 以邦觀邦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보호하는 것은 빼앗기지 않으니,
후손들은 그 제사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도로써) 몸을 다스리면 그 덕이 이에 곧으며
집안을 다스리면 그 덕에 여유가 있으며
마을을 다스리면 그 덕이 자라나며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이 풍성해지며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이 모든 곳에 닿는다.

집안을 집안으로써 보고 마을을 마을로써 보고 나라를 나라로써 보고 천하를 천하로써 보라.
내가 어찌 천하의 그러함을 알 수 있겠는가?

3.30. 30장(병본)

병(丙)본

죽간본 30장 - 통행본 17~18장, 백서본 87
大上下知有之 其次親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女信不足, 焉有不信/猷嘑其貴言也/成事遂功/而百姓曰, 我自然也. 故 大道廢, 焉有仁義/六親不和, 焉有孝慈/邦家昏, 焉有正臣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사실만 알며,
다음 가는 지도자는 아랫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고 찬양하며,
그 다음은 (아랫사람들이) 두려워하며,
그 다음은 (아랫사람들이) 업신여긴다.

당신의 믿음이 부족하면 이에 불신이 있게 되니,
아아 그 귀한 말이여.
(만약 믿는다면) 일을 이뤄 공을 세우는 것에, 백성들은 ‘나 스스로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큰 도(道)가 무너지면[10] 어찌 인의가 있겠는가.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면 어찌 효도와 자애가 나오겠는가.
나라가 어둡고 혼란하면 어찌 바른 신하가 나오겠는가.

3.31. 31장

죽간본 31장 - 장통행본 35장 전반부, 백서본 109장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坪大 樂與餌 過客止 故道[之出言] 淡呵,其亡味也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而不可旣也
큰 모양을 잡으니 천하가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에 걸릴 것이 없으니 편안하고 태평하며,
음악과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멈추게 한다.

그러므로 도(道)에서 나오는 말은 밋밋하여 아무 맛도 나지 않고,
보아도 볼만한 것이 없고 들어도 들을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다.

3.32. 32장

죽간본 32장 - 통행본 31장 중~후반부, 백서본 105장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故曰, 兵者[??]/得已而用之/銛䌬爲上, 弗美也/美之, 是樂殺人/夫樂[??]以得志於天下/故吉事上左, 喪事上右/是以偏將軍居左/上將軍居右 言以喪禮居之也/故殺[??]則以哀悲莅之/戰勝, 則以喪禮居之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안 쓰는 손)을 귀하게 여기고 병기를 쓸 때는 오른쪽(잘 쓰는 손)을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병기는 군자의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부득이하게 쓸 때에는 날카롭게 하는 것이 좋으나, (그 행위를) 미화하지는 말라.
미화하는 것은 살인을 좋아하는 것이다.
대저 (사람 해치는 일을) 좋아하고서는 천하에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길한 일에 있어서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에 있어서는 오른쪽을 높인다.
이로서 편장군[11]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12]은 오른쪽에 자리하는데
이를 설명하자면, 장례로서 자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많은 인명을) 죽이는 일인 즉, 슬퍼하는 것으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니,
전쟁에서 승리한 즉, 장례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3.33. 33장

죽간본 33장 - 통행본 29장
爲之者敗之 執之者失之 聖人無爲 故無敗也 無執 故/愼終若始, 則無敗事矣/人之敗也, 恆於其且成也敗之/是以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之所過/是以能輔萬物之自然, 而弗敢爲
하려고(爲) 하면 그르치고 잡으려고 하면 잃는다.
성인은 하려고 함이 없기 때문에 그르치는 일이 없으며,
잡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잃는 법이 없다.

일의 마무리를 처음처럼 신중히 하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 없도다.
사람이 일을 그르치는 것은 항상 그 이뤄내려함 때문이며,
그래서 일을 그르치게 된다.

고로 성인은 바라지 않음을 바라고,
얻기 힘든 재물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배우지 않기를 배우고,
뭇사람들이 지나쳐온 곳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기 때문에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울 수는 있으나, 감히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4. 왕필본에 의한 번역의 반박

흔히 알려진 도덕경 번역은 왕필의 주석을 따르는 번역이다. 먼저 번역에서 이의 하나만 달자면, 첫 문장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에서 常(늘,항상,언제나)이 번역되지 않았다. 상의 뜻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음의 링크 모성재, 월운 어학당, 노자도덕경1장를 참고하면, 백서본에 쓰인 也로 인해, 왕필의 띄어 읽기는 '묘, 교'가 있는 3문단까지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주석도 달라져야 했는데, 월운의 해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한 느낌이다.

왕필의 주석이 오류인 결정적 증거는, 월운이 名을 설명하기 위해, 왕필 주 다음에 올려 놓은 한비자의 해로편 문장에 있다. 월운은 이곳에 쓰인 道의 번역 중 2곳에서 '말(하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아마도 기 출판된 책이 이렇게 번역한 것 같다.) 이것을 '도'로 바꿔서 번역 해보면 알 수 있다. 즉, 여기서 '말'로 번역한 道를 그냥 道(길)로 번역해서 전체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도덕경 첫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즉, 道가 '말'로 번역된, '시이불가도야'(이 때문에 말할 수 없다)와 '도지가도 비상도야'(도가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상도가 아닌 것이다)를, '이 때문에 道는 불가하다'(是以不可道也)로 번역하면, 名이 곧바로 道가 될 수 없는 설명으로 반듯하게 이어지고, 이런 이유로, 모든 설명 후 마지막에 쓴 결문 '道之可道, 非常道也'는 '도는 도를 할 수 있는 것이나, 늘 도는 아니다 함이라.'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는 (故 이하는 알 수 없으나) 名의 의미에 대해서는 왕필과 달리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왕필은 '(말)하다'로 번역한 道를 道로 고쳐서 읽어보면, '도를 부르면 도가 아니다'는 식이다.)

죽간본 원문과 번역에 쓰인 한문과 번역은 죽간 원문의 한자와 너무 다르다. 당연히 번역도 해석도 다르다. 고명의 책 '고문자류편'의 序를 읽어보면, 진시왕의 통일 이전에는 합체문자(合文)가 많이 쓰였다고 했는데, 중국측이 발표한 '곽점초묘죽간'은 전혀 이의 반영이 없고,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이를 따르고 있다. 초간은 중국측의 주장으로도 기원전 약 450의 것으로, 기원전 221년보다는 훨씬 앞이다. 또한 통행본과 다른 한자는 거의 대부분 가차자나 통가자로 판단하여 통행본의 한자로 고쳤다. 이는 인터넷을 찾아 통행본 제19장에 해당하는 처음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1]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여러 가지 기록과 주석의 사상적 경향으로 보아 한대,漢代,로 추정하고 있다[2] 왕필은 노자의 주석을 16세에 달았다. 또한 주역의 주석도 달았는데, 그때 나이가 22세였다. 이를 바탕으로 위진 시대 현학(玄學)이 발전할 수 있었다. 위진 현학의 3대 경서가 바로 《노자》, 《장자》, 《주역》임을 생각한다면 왕필은 정말로 천재였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역병에 걸려 요절하였다. 이 외에도 그 시기에 노자를 언급한 비석들도 참고가 된다.[3] 이정치방, "바름(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쓰여진 부분에서, 한고조 유방의 방(나라 방)자를 대놓고 쓴 걸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한나라 이전까지 "나라 국"자를 쓰지 않았고 "나라 방"자를 썼었다. 지금은 연방 하나 빼고는 방 자를 쓰지 않는데, 이는 2200년전 유방이 못 쓰게 하고 국을 쓰게 했기 때문이다. 원래 국은 나라가 아니라 나라 안의 지역을 가리키던 어휘였다.[4] 味는 취향. 즐기는 바를 뜻함.[5]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또는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6] 원래는 上尒下賏 모양으로 '많은 재물'들을 뜻한다.[7] 앞에서 가득 채우지 마라(아끼지 마라)고 했는데, 이 장에서는 아끼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즉, 사적인 것은 아끼지 말고, 공공의 것은 아끼라는 뜻이다.[8] 나를 아끼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내가 몸이 없음에 이르는 사람'을 뜻한다. 즉 물욕이 없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는 뜻.[9] 더 정확히는, "나를 '위해' 아끼는 것이 천하를 위하는 것이니, (그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10]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11] 방어하고 지원하는 장군. 낮은 등급의 장군이다.[12] 황궁을 경비하는 장군. 높은 등급의 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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