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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6:50:27

상대주의

1. 개요2. 상세3. 역설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 Relativism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사상이다. 반의어는 절대주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긴다. 참고로 장자의 사상이나 문화상대주의도 일종의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2. 상세

모더니즘(18세기~20세기 초) 시대의 사람들은 이성을 통해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회를 건설했지만, 결과는 당초 기대와 달리 개개인의 이성은 군중들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획일성에 기반한 배타성과 권위주의는 무기의 발전과 더불어 세계대전, 대량학살이란 참사를 가져왔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대두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다양성을 강조한 상대주의였고, 이는 절대주의가 불러온 배타적, 권위주의적 사회를 좀 더 개방적인 사회로 진보시켰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가치를 상대주의적으로 바라보지만,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인권이나 생명등의 가치는 낙태[1] 제외하면 절대주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 역설

상대주의를 어떤 제한된 범주가 아닌 모든 것에 적용하면 자기지시 역설이 발생한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진술의 대상이 상대주의가 되면 거기에 '예'라고 대답할 경우 절대주의도 인정해줘야 하고, '아니오'라고 대답할 경우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게 되는 것이다. 허무주의, 회의주의, 다원주의, 다다이즘 등도 비슷한 역설을 가진다.

4. 여담

절대주의의 예로 유일신 신앙과 독재, 상대주의의 예로 과학적 사고방식과 민주주의를 들어 생각해보자.

유일신교의 종교인과 독재정부는 "이것이 진리(혹은 정답)이다. 이것을 믿고 따르라"라고 한다. 진리가 주어진 건 과거이니, 이들은 과거를 절대시한다. 에덴동산, 황금시대, 요순시대 같은 완벽한 세상이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의 세상과 인간은 타락한 존재일 뿐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공자왈 맹자왈' '모택동 동지의 어록에 따르면' 등 옛날에 쓰여진 경전, 선지자와 성현의 가르침을 암송하고 되새기는 것을 중시한다. 인간과 세상은 계속 타락해오고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니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개념과는 반대되는 세계관이다.

그런데 그런 정답이나 진리는 그 집단에서만 통할 뿐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는데, 심지어는 그런 집단 내에서조차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야훼를 숭배하는 집단을 예로 보자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드루즈, 바하이 등으로 분열되고 그 중 기독교는 동방정교, 카톨릭, 개신교, 몰몬교 등으로, 또 그 중 개신교는 성공회, 장로회, 루터교회 등으로 분열된다. 그리고 한국의 개신교 교단만 해도 수백개라고. 같은 교회 옆자리에 앉아있는 A 신도가 믿는 야훼는 여자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야훼이고 B 신도가 믿는 야훼는 그렇지 않은 야훼이며, 결국 각 신도들에게는 무한한 조합의 다른 야훼들이 있는 셈이다. 이렇듯 '진리'를 따른다는 사람들은 그 진리에 대해 무한히 분열하며 자기가 말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정답이며 나머지는 모두 악마의 가르침이라고 하게 되는 것. 자신들에게 포섭되지 않는다면 그들을 저주하거나 말살하는 것도 진리(신의 뜻)이다.

사실 '답'을 한다는 건 설명을 한 발 뒤로 미루는 일이다.
"왜 나가서 놀면 안된다는 거야?" "아직 해도 안떴잖아" "왜 해가 안 뜬 거야?" "아침이 돼야 해가 뜨지" "왜 아침에 해가 뜨는 거야?" "지구가 자전을 열심히 해야 해가 뜨는 거야" "지구는 왜 자전을 해?" "몰라" "왜 몰라?" "공부를 열심히 안 했거든" "왜 안 했어?" 라는 식으로 끝이 없는 과정이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인이나 독재정부가 하는 일은 진리나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닐 것이며, 사실 그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작업은 저런 끝없는 설명의 과정 중 어딘가에 독단적으로 STOP 사인을 내걸고 (가능한 경우 폭력을 써서라도) 더 이상의 질문을 차단하는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신밖에 모른다"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런 건 경전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니 중요한 게 아니고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레닌 동지의 교시에 의문을 가지다니 넌 반동이다""모든 것은 그것을 받쳐주는 게 없으면 밑으로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이 땅은 코끼리가 받치고 있고 코끼리는 거북이가 받치고 있고 거북이는 뱀이 받치고 있으니 즉 뱀이야말로 우리 세상의 궁극적인 기반이다. 뭐? 뱀은 뭐가 받치고 있냐고? 뱀은 궁극적인 받침이라서 더 이상 받쳐주는 게 필요없다니까?""무언가가 있으려면 그걸 만든 누군가가 있는 게 당연하니 우주는 신이 만든 것이다. 뭐? 그럼 그 신은 누가 만든 거냐고? 신을 누가 만들었냐니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어디있냐"

이렇게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사고방식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과학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하며,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간이 무지하다는 점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과학적 방법론은 "우주는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등의 몇 가지 공리/전제 위에서 자연에 대한 더 좋은 설명을 찾아나가는 활동이며, 과학교과서에 쓰인 모든 내용은 자연에 대한 잠정적인 설명일 뿐이고, 언제든 더 나은 설명이 등장할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한편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체계화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주기적인 선거로 지도자를 물갈이하고 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하며, 그 모든 것을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을 중시하는 시스템인 것. 민주주의는 서로가 공존하기 위해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 등의 최소한의 공리/전제를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자유에 맞기는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계약이다.

이렇듯 과학적 방법론과 민주주의는 진리나 정답이 아닌, 최소한의 공리 혹은 전제를 합의하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걸 절대진리로 믿는 게 아니라 공존을 위해 '그냥 그렇다고 치자'는 것.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과거에 주어진 고정된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 '발전'이라는 개념이 생길 여지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원시적인 민주주의와 자연철학이 함께 싹텄던 것이나 최근 몇백년간 민주주의와 과학의 발달이 발맞추어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대상이 과학적 사실이든 민주주의든 무신론이든,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신앙이 되는 셈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서로 공존하는 것이라면 히틀러와도 공존해야 하는 건가?"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나치즘, 남녀차별, 독재, 독단적인 진리관 같은 것들은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앵똘레랑스이고, 앵똘레랑스에는 똘레랑스를 적용할 수 없다. 민주주의하지 말자는 주장을 민주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다원주의에 반대하는 행위를 다원주의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

5. 관련 문서



[1] 여성의 인권과 태아의 생명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비슷한 문제로는 안락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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