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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4:06:09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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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한센인 주거지로서의 소록도
2.1. 소록도 한센인들의 시작2.2. 일제강점기의 소록도2.3. 1945년 한센인 학살 사건2.4. 6.25 전쟁의 상흔2.5. 조창원 원장과 <당신들의 천국>2.6. 한센인들을 향한 차별2.7. 소록도에 방문한 특별한 손님들
2.7.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 방문 2.7.2. 마리안느와 마가렛
2.7.2.1.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2.7.2.1.1.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오스트리아 현지 상영2.7.2.1.2. <마리안느와 마가렛>, 제27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 대상 특별상 수상
3. 섬에 가는 방법4. 역사적 장소
4.1.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4.2. 고흥 소록도 병사성당4.3.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
5. 대중매체에서6. 여담7. 정치 성향8. 관련 문서


1. 개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1]에 위치한 . 이름만 보면 평범한 섬처럼 보이나 후술할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위치했던 섬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아픔이 묻어 있고 한국의 근현대사의 아픈 부분을 많이 품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한센병이라 불리는 나병(癩病) 환자들이 격리된 섬이라고 하여서 과거에는 한센섬, 문둥섬, 나도(癩島), 나섬이라는 비하적인 이름으로도 불렸다.

소록도 아래에는 제법 큰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은 거금도이며 거금도는 육로는 오직 소록도로만 연결되어 있다.

2. 한센인 주거지로서의 소록도

2.1. 소록도 한센인들의 시작

구한말에 입국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주로 의료시설과 학교를 세우는 활동을 했는데 당시 전라도 일대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나 시설을 많이 세웠다.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1909년 8월 대한제국 칙령 제 75호에 의거해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의 요양병원을 전국 각지에 세우는 작업을 했는데[2] 특별히 한센병 치료를 위한 전문 요양소로 소록도의 자혜의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당시 한센병에 대한 정책은 나요양소를 마련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수용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총독부의 위생고문이었던 야마네 마사츠구(山根正次)는 "조선의 나환자도 격리 수용시켜야 한다"고 건의했고[3] 당시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를 수용하여 소록도가 한센병 요양소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 7호가 공포되어 "소록도 자혜의원"이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한센인 병원이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대로 소록도에 살던 원주민들은 육지로 쫓겨나야 했다.

2.2. 일제강점기의 소록도

한편 소록도 자혜의원 2대 원장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 1921~29)는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병원에서 강요하던 일본식 생활(일본식 의복, 다다미를 비롯한 일본식 주거문화, 일본 음식 등)을 전면 폐지하는 한편 자유로운 면회와 교육의 기회 제공,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될지 몰라 조선총독부에서 탄압하던 종교활동(특히 개신교천주교 등의 선교활동), 심지어 취미생활과 오락 활동까지 권장하는 등 극도로 소외받고 차별받던 한센인들에게 혜택을 많이 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환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는지 소록도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한센인들이 없는 돈을 추렴하여 송덕비까지 세웠을 정도였다. #

그러나 이후 부임한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周防正季)는 소록도를 자신의 탐욕을 실천할 도구로 삼아서 수많은 소록도 한센인들을 토목공사에 동원하고 심지어 자신의 동상을 만들어 매달 정기적인 참배를 강요하는 짓까지 벌였다. 결국 스오 원장은 원생 이춘상의 의거로 사살되었고[4] 한센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의거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병 때문에 친척들이 다 부정해서 아무도 독립유공자로 신청하지 않았다. 2003년 '이춘상선생기념사업회(현 이춘상기념사업회)'가 세워져 국가보훈처에 총 세 차례 독립유공자 인정을 촉구했으나 보훈처 측은 "행적이 불분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를 기각해 왔다. 그나마 2022년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에 '이춘상 6.20의거 기념비'가 세워졌다.

2.3. 1945년 한센인 학살 사건

그러나 한센인들의 고난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해방 직후 병원 운영문제의 주도권을 두고 병원생(=한센인)들과 직원 사이의 갈등이 발생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운영권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고 운영권을 노렸던 의사 "석사학"은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음모를 꾸몄다. 당시 한센인 원생의 대표였던 이종규에게 "운영권을 장악한 자들이 원생들이 먹을 식량과 의약품 등을 반출하려 한다"는 거짓 정보를 주었고 결국 직원들과 원생들은 격렬하게 충돌하게 되었다.[5]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실탄사격을, 병원생들은 직원 몇 명을 폭행치사하는 등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조선인 직원들은 원생들과의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결코 운영권을 한센인들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고 고흥 치안유지대에 몰래 선을 넣어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8월 21일 아침 원생들은 대표자 90명을 선발하여 협상 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죽창과 총이었다. 무장한 직원들과 이들이 동원한 치안유지대는 이들 90명을 포박하고 사격하거나 죽창으로 마구 찔러 죽여 버렸다. 이들 중에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으나 직원들은 구덩이를 파고 이들의 시신과 생존자들을 전부 던져 버리고 기름[6]을 쏟아붓고 불을 질러 이들을 생화장을 시켜 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숨진 한센인들은 84명에 이르고 최근까지도 이 사건의 목격자와 생존자가 소록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소록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도 소록도에서 벌어진 최악의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2년 8월 22일 11시 30분 사건 현장이던 국립소록도병원 치료본관 앞에 이 사건을 기리는 "애환의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자유로운 사진 촬영이 가능한 장소이며 방문객들이 묵념을 하고 가기도 한다.

2.4. 6.25 전쟁의 상흔

6.25 전쟁 때 소록도를 점령한 북한군은 피난가지 않고 남아 있던 섬의 10명의 직원과 1명의 목사를 총살했고 북한군 부역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김민욱, 박순호 장로사형에 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미군기가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했다는 전단지를 뿌렸고 인민재판을 종용하던 사람은 돈을 가지고 빠져나갔다.

2.5. 조창원 원장과 <당신들의 천국>

1960년 7월 1일 국립소록도병원이 정식으로 건립되었고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군의관으로 복무한 조창원 대령이 원장으로 부임했다. 맨 처음 그가 한 일은 환자들과 직원들의 숙소를 갈라놓은 철조망을 없애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섬 곳곳에 대문짝만한 표어들을 갖다 붙였는데, “나병은 낫는다.” “나병은 유전되지 않는다."라는 문구들이었다. 또한 그는 일제강점기 나환자들의 한 맺힌 노동으로 지어진 벽돌 공장을 폭파하고 역시 한센인들의 피눈물이 아롱진 단종수술을 폐지했다. 조 원장은 당시 섬의 다수 세력인 개신교 교회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소록도의 7개 부락(리)에는 각 부락민들을 위한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조 원장은 "각 부락의 예배당이 병원 건물이니, 건물을 즉시 반환하고 한 곳에서만 예배하라"는 강제 퇴거명령을 내리고 교회의 종탑을 철거하는 등의 강경 대책을 세웠다. 소록도는 개신교 선교사와 천주교 봉사자들의 영향으로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이러한 명령은 섬 주민들의 신앙과 부딪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1962년에 김두영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병원측과 교회의 갈등은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추가로 나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병원 직원과 나환자들의 연합 축구팀을 만들어 맹훈련시켜 고흥 군민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룩하기까지 했다.

소록도의 이러한 소란이 잦아들면서 조창원 원장은 주민들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소록도 인근에는 "오마도"라는 무인도가 있는데 이곳에 간척사업을 벌여서 한센인들이 거주하며 농사를 짓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다. 당연히 한센인들은 크게 호응했고 몸이 조금이라도 성한 사람들은 전부 간척지 개간 사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문제는 고흥 주민들에게서 나왔다. 고흥 주민들은 "문둥이들과 함께 살 수 없다!"면서 결사반대를 외쳤고 이러한 간척 사업은 곧 난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개척이 90% 이상 완료된 상황에 새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민주공화당 소속 모 의원이 정책을 뒤집어 간척사업의 주체를 전라남도로 돌려 버리면서 해결되었다. 조 원장은 곧 국립의료원 부원장으로 강제 보직이동 조치를 당해 소록도를 떠나게 되었고 오마도 간척지는 1988년에 일반인들에게 불하하면서 소록도 주민들에게 아픔만 주고 끝나 버렸다. 이 사건을 각색하여 일반에 알린 사람이 바로 소설가 이청준이고 이 소설의 이름이 <당신들의 천국>이다.

2.6. 한센인들을 향한 차별

한센인들을 차별하고 핍박하는 일들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계속되었다. 2016년 7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소록도 한센인들을 향한 끔찍한 일들이 폭로되면서 소록도는 다시 한 번 일반인들의 기억 속에 아픔으로 남게 되었다. 이에 관한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한센병 항목을 참고할 것.

이 때문에 한때 소록도가 한센도, 한센섬, 나섬, 나도(癩島), 문둥섬이라는 등의 비하적인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또한 사람들이 기피하기도 하고 병자들이 격리된 섬이라고 하여서 가지말아야 할 섬으로도 낙인되기도 했다. 2009년 녹동과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가 개통하였을 정도인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소록도는 병자들의 섬이라고 하여서 낙인을 받았던 비운의 섬이기도 했다. 녹동항에서 보면 녹동에서도 가까운 섬이었지만 이렇게 연륙교가 2009년에 뒤늦게 개통을 한 것으로 봐도 과거에는 도선으로 밖에 갈 수 없었던 소록도의 비운적인 역사를 알 수 있다.

2.7. 소록도에 방문한 특별한 손님들

소록도 주민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이들이 몇 있다.

2.7.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 방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특별한 손님이다. 1984년에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곳이 어디인가?"라고 질문한 후 소록도에 방문하여 원생들을 위로했고 그의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병원 측은 그간 원생들과 일반인들이 따로 사용했던 선창과 배를 하나로 통합하여 이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시정했다. 참고로 이 당시 전두환 정부는 교황의 소록도 방문에 대해 탐탁치 않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발전된 모습만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한센병 환자가 모인 섬을 보여준다면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에 흠이 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7]

당시 교황은 "마음으로 친애하는 여러분. 머나먼 길을 떠나 한국에 올 채비를 하면서, 이 소록도에 계신 여러분과의 만남을 특별히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서 아름다운 글을 받은 후로는, 더더욱 여러분을 보러 오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여러분을 위로하고, 여러분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직접 읽어주었다.

소록도중앙공원 내 천주교 부지에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하는 자그마한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이 천주교 부지는 1940년대에 소록도의 건물을 짓기 위한 벽돌공장의 자리였다. 한센인들의 애환을 신앙의 힘으로 치유하려는 뜻에서 공장을 없애고 작은 연못 위에 성모상을, 그 앞에 자그마한 제대를 만들어서 천주교인들의 야외 미사터를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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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리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2.7.2. 마리안느와 마가렛

소록도에서 40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간호사[8]들이었던 마리안느와 마가렛[9]은 지금도 소록도 주민들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사람은 한센인들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더 나이가 들어 건강이 나빠지자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에 소록도 주민들이 성대한 환송식을 준비하려고 하자 이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다며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소록도를 떠났는데 2016년 마리안느가 다시 소록도를 방문하여 주민들과 눈물로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2.7.2.1.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age(1934-04-24)])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88)[10]은 각각 1962년과 1966년에 가톨릭 교회의 재속회인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시녀회 회원으로 처음 소록도 땅을 밟았다. 간호사로서 이들은 한센병 환자들의 거주지인 소록도에서 구호활동에 매진했다. 이후 공식적인 파견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자원봉사자로 남아 반세기에 가까운 43년(39년) 동안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보살폈다.

2005년 11월 23일 소록도의 집집마다 편지 1통이 도착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길 원했던 두 사람은 건강 악화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소록도에 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2005년 11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홀연히 섬을 떠났다.[11]

두 사람이 소록도를 떠나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지 11년이 지난 2016년은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이 되는 해로 휴먼 다큐 <마리안느와 마가렛>(감독 윤세영·작가 양희·내래이션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삶을 조명하는 의미에서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가 기획하였으며 소록도가 위치한 전라남도 고흥군과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제작·지원하였다.

마가렛 피사렉은 2023년 9월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각)에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인해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다큐멘터리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랑 예고편

다큐멘터리는 소록도에서 자원봉사자로 40여년 동안간 오직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온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소록도 생활과 주변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생활 모습과 오스트리아 현지 가족들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또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담담하게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뒀다.

특히 이 작품은 소록도의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해져 다큐멘터리로써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7.2.1.1.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오스트리아 현지 상영
한-오스트리아 수교 125주년을 맞아 2017년 6월 6일(현지시각) 오후 7시 오스트리아 우라니아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상영회가 열렸다.

'소록도 천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오스트리아서 상영 (2017년 6월 6일)
2.7.2.1.2. <마리안느와 마가렛>, 제27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 대상 특별상 수상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2017년 5월 열린 제27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 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 위원회의 관계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다큐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특별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가톨릭 매스컴 대상 '특별상'

3. 섬에 가는 방법

소록대교 건설 전에는 녹동항에서 를 타고 이동해야 했으나 2008년에 소록대교가 건설되어 자동차를 타고 이동이 가능하다. 27번 국도의 종점이 이 섬 남쪽에 있는 거금도로, 거금대교로 소통이 가능하다. 그 27번 국도가 고속화도로 스펙으로 지어진 것도 소록도가 통제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금호고속에서 운행하는 광주~소록도 시외직행버스를 이용해서도 갈 수 있다.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이다. 외부인은 일부 개방된 구역[12]만을 그것도 정해진 시간 동안만 탐방할 수 있다. 특히 마을은 그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생활치료센터 또는 요양원 역할을 하므로 병원의 허가를 받은 자 외에는 일절 들어가면 안 된다. 여전히 외부에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하니 호기심에라도 무단출입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자. 그나마 27번 국도가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되지 않은 것이 외부인 출입 여지가 남아있기는 한데, 만약 소록도까지 이 특성을 반영하여 입체교차로로 지어졌다면 해당 구간은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되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13]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면 국립소록도병원 봉사안내 페이지를 참고하자. 사이트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병원 측에서는 2주 이상 진득이 눌러앉아 환자들과 교감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4. 역사적 장소

아무래도 장소의 특성상 유적지가 많다. 물론 어디나 다 가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소록도 내의 한센인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한다면 10~15년 뒤 소록도는 "한센인 거주지로서의 소록도"가 아니라 "역사유적지"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혹시라도 봉사활동 등의 목적으로 소록도에 방문하게 된다면 다음 장소들을 참고해 볼 것.

4.1. 고흥 구 소록도갱생원 신사

대한민국 영토에 남아있는 마지막 일본식 신사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소록도갱생원 신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고흥 소록도 병사성당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658호 659호 660호
간호교과서 고흥 소록도 병사성당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

전라남도 고흥군 양지회관길 35 (도양읍)

등록문화재 제659호 (2016년 6월 14일 지정)

소록도 거주 한센인들이 직접 공사에 참여하여 지은 벽돌조 성당 건축물로, 그들의 육체적·정신적 아픔의 치유를 위한 영적 장소가 되었던 건물이며 소록도라는 지역적 특징 속에서 한센인과 함께 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 - 문화유산 정보

4.3.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659호 660호 661호
고흥 소록도 병사성당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 의병장 유인석 심의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선창길 116-10 (도양읍)

등록문화재 제660호 (2016년 6월 14일 지정)

40여 년간 한센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하였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거주했던 벽돌조 주택으로, 한센인들이 겪었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희생과 봉사의 상징적인 주택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 - 문화유산 정보

5. 대중매체에서

6. 여담

7. 정치 성향

역대 대통령 선거 소록도 개표 결과
<colbgcolor=#EEEEEE,#353535>진영민주당계 정당보수 정당투표수
후보김영삼+김대중노태우투표율
13대
(도양12, 13투)
296
(17.13%)
1,428
(82.64%)
1,780
◁ 65.51%p 96.5%
후보김대중김영삼투표율
14대
(도양12, 13투)
137
(11.67%)
1,019
(86.80%)
1,200
◁ 75.13%p 95.4%
후보김대중이회창투표율
15대
(도양9투)
220
(28.17%)
489
(62.61%)
811
◁ 34.44%p 84.3%
후보노무현이회창투표율
16대
(도양9투)
212
(39.11%)
318
(58.67%)
554
◁ 19.56%p 84.6%
후보정동영이명박투표율
17대
(도양7투)
182
(40.18%)
196
(43.27%)
460
◁ 3.09%p 81.6%
후보문재인박근혜투표율
18대
(도양7투)
158
(36.74%)
270
(62.79%)
431
◁ 26.05%p 85.5%
후보문재인홍준표투표율
19대
(도양6투)
[17]
87
(27.02%)
117
(36.34%)
327
◁ 9.32%p 78.42%
후보이재명윤석열투표율
20대
(도양6투)
130
(37.57%)
207
(59.83%)
355
◁ 22.26%p 74.42%
호남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한 마디로 전라도 속 작은 경상도.

전라도 출신이 아닌 외지에서 온 고령 환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는 점[18], 육영수 여사뿐만 아니라 그녀의 박근혜도 찾아 육영수의 향수가 남아 있는 점 등이 그 원인이다.

그래서 거주자들이 투표할 수 있는 도양읍 일부 투표소민주당계 정당보다 보수 계열 정당 득표율이 훨씬 더 높다.

실제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표가 김대중의 표보다 훨씬 많이 나왔으며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호남권에서 보수 정당 득표수가 많은 투표소가 유일하게 이곳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보수 정당으로의 정권교체가 확실했던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득표차가 고작 14표에 불과했다. 이는 소록도만 놓고 봤을 때 민주당 최대 득표율이다. 물론 이명박이 이기긴 했지만.[19]

전라남도지사 선거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자료가 없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에선 더불어민주당+민생당 123표, 미래통합당 101표로 민주당계 정당이 앞섰다.

개표 결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을 기초로 작성하였다.

8. 관련 문서


[1] 도양읍의 포구 이름이 '녹동'이다.[2] 1년 후 강제적인 한일합방이 일어나서 이 사업은 조선총독부에서 물려받아 진행했다. 이렇게 전국에 세워진 자혜의원은 총 19개소였다.[3] 일본에서 1907년 3월 19일 나예방법(癩豫防法)을 제정하여 큰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건의한 것이다.[4] 이춘상 의사는 국사범으로 취급되어 1943년 2월 19일 처형되었다. 해당 사건은 2003년 10월 27일 SBS <백만불 미스터리>에 소개되었다.[5] 운영권에 대한 것은 하나의 견해일 뿐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주인공 조창원 원장은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소록도에 해방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45년 8월 18일이다. 원장이었던 니시키가 한국 의사 석사학을 불러 창고 열쇠를 주면서 “환자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창고의 식량과 약품을 잘 지키라”고 부탁했다. 석사학이 환자와 직원들을 찾아가 그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병원 직원이었던 오순재와 송희갑이 “‘문둥이’들에게 먹을 것을 다 주면 우리는 어떻게 사냐”며 의사를 두들겨팬 뒤 열쇠를 빼앗았다. “해방 이후의 혼란을 틈타 창고를 강도질하려고 든 것이다." 라고 말했으며, 2018년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발간한 "소록도 100년, 한센병 그리고 사람, 백년의 성찰"에 따르면 "어떠한 시각에서 사건을 해석하든 적어도 8월 22일의 총격과 학살은 무장한 직원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일어난 집단학살이었다"고 저술했다.[6] 정확하게는 당시 일제가 만들게 한 송탄유(松炭油)였다. 전쟁 물자가 부족했던 일제는 소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고 그 숯에서 기름을 짜내 비행기나 탱크를 돌리려고 했는데 소록도에도 이 송탄유가 제법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7] 당시 정부는 소록도에 앞서서 진행했던 광주 방문에 대해서도 두려워했다. 방한 당시가 하필이면 5.18 민주화운동 이후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은 1984년 5월이었고 교황이 광주공항에 도착한 이후 바로 무등경기장으로 가지 않고 5.18 당시 최후의 항쟁지였던 금남로옛 전남도청 앞을 지나가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이 루트를 특히나 두려워했던 것은 혹시나 교황의 방문이 상처 받은 광주시민들을 자극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교황의 광주 방문 당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교황도 무등경기장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소록도로 향했다.[8] 처음 언론에서 수녀라고 오보해서 지금도 수녀로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수녀가 아니라 천주교 소속 단체의 간호사이다.[9] 오스트리아 시간으로 2023년 9월 29일 오후 3시 15분 경에 수술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10] 두 사람의 신분에 대해 약간의 혼선이 있는데 재속회원으로 수녀(수도자)는 아니고 가톨릭 신자로서 성자처럼 봉사했기 때문에 ‘수녀님’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 영화와 책으로[11] 수도회 소속 재속회원으로 수녀가 아니었던 만큼 이들이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서의 생활은 40여 년 가까이 얼굴도 보지 못한 친척들에게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소록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오스트리아로 갔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후 최저 수준의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마리안느는 암에, 마가렛은 치매에 걸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두 간호사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도록 조치했다고. 두 사람은 큰돈이라며 고사했지만 구본무 회장측에서 계속 설득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12] 27번 국도 서쪽으로는 중앙공원과 박물관, 국도 동쪽으로는 해수욕장이 외지인에게 개방돼 있다.[13] 만약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되었다면 편도 1차로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소록도 구간은 이론상으로는 90 km/h까지 지정할 수 있으나, 88고속도로의 예를 참고하여 70 ~ 80 km/h 정도로 지정되었을 것이다.[14] 실제 한센인 어르신의 표현이다.[15] 한하운은 출소 이후 한센인들을 시켜셔 앵벌이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평가가 좋은 편이 아니다.[16] 물론 다른 비들도 많았지만 해방 후 다 부서졌고 어쩌다 살아남은 것들도 뭔지도 모른 채 기둥이나 주춧돌 같은 걸로 사용되었다. 참고로 아미동 비석마을로 가보면 진짜 기둥이나 주춧돌로 쓰인 일본인 묘비를 볼 수 있다.[17] 여기에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111표, 34.47%)에도 밀리며 3위를 기록했다.[18] 실제로 소록도 한센인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사투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남 방언이다. 물론 전라도 사투리가 다수이긴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경상도 사투리가 꽤 자주 들린다는 것이 이채로운데, 이는 섬 특성상 가능한 일이다.[19] 이는 이명박박근혜의 관계가 매우 나빠 박근혜를 지지하는 노인들이 이명박 대신 무소속 이회창을 찍으면서 보수표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친이친박윤석열이라는 새로운 구심점이 나타날 때까지는 오랫농안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지금은 친윤으로 대부분 흡수되었지만, 서병수, 김용판, 김도읍 등 옛 친박 중에는 지금도 비윤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