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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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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이명박 정부 이전2.2. 이명박 정부 당시2.3. 이명박 정부 이후2.4. 부활? 와해?
3. 명단4.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a270b6ce-6a12-47a6-8bd3-3bd2817f23f7.jpg

親李 / Pro Lee Myung-bak

친이명박계 정치세력의 준말.

한나라당 출신 전 대통령인 이명박의 정치적 이념을 따르거나 그 측근이었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전 상도동계, 동교동계 처럼 부른다면 '논현동계'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쓰이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 친이와 계파갈등을 벌이던 대표적인 계파로는 친박(親朴)이 있다. 기타 사항은 이 글도 참고해보자. 비밀해제 MB5년. 2018년 3월 22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박범석이 영장 발부를 인용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이 결정됨에 따라 구심점을 상실하고 사실상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2. 역사

2.1. 이명박 정부 이전

90년대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한국당은 YS가 힘을 잃게 되면서, 90년대 후반 이회창 전 총리에게 당권이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도 이후 2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하면서 2002년 12월 정계은퇴를 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떠오른 두 인물이 김영삼 대통령이 픽업한 이명박과, 후에 한나라당에 합류한 박근혜였다. 그러다 마침내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 경선을 치르면서 두 후보의 지지자들로 한나라당 내부가 확 나뉘면서 친이와 친박이라는 계파정치가 시작됐다. 당시 여권에선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가 확정되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마땅한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이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은 그만큼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으로 다소 권위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박근혜 후보보다 일반 대중, 특히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는 자유보수주의자(지역적으론 수도권과 PK, 다만 결집력은 TK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당원들과 대경권의 박정희 향수에 취해있던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당시 박정희를 무쟈게 싫어하는 YS는 이명박을 지지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전면에 나선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무소속 후보들에게 줄줄이 패하며 당원들의 지지가 줄어드는 타격을 입게 된다. 또 이명박 후보가 YS에 의해 정계로 입문한 관계로 민주계 인사들 대다수[1])와 운동권 출신, 민주투사 출신 및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지지를 받았고, 반면 박근혜 후보는 민정계와 공화계 출신과 자민련 출신의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이쯤해서 이명박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크게 높인 경선을 요구했으며, 실제로 당원투표는 박근혜 후보가 이겼지만 여론조사를 이명박 후보가 크게 이겨서 대선 후보가 되었고[3]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다.

2.2. 이명박 정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친이계가 당권을 잡았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일어나 많은 친박계 정치인들이 탈당해 친박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4] 이 때 대표적인 친이계였던 이방호를 몰아내기 위해 친박계가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후보로 사천시에 출마한 강기갑 후보를 내심 팍팍 미는 정치 코미디가 벌어지기도 했고,[5]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박근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타 당인 친박연대 후보들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시라"는 격려를 남기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하튼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TK지역에서 선전하고 비례득표율 13.2%를 얻어 총 14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원내 4당으로 올라서지만, 결국 TK 지역 외에선 별 성과를 내지 못하다보니 친박성향의 무소속 출마자를 시작으로 친박연대를 포함한 친박세력은 몇년 후 소리소문없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게 된다.

다만 친이계도 상황이 좋진 않았는데, 2008년 정권 출범 1년차부터 광우병 논란이 터지면서 MB정부는 10%대까지 지지율이 급락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후에도 국정원 민간사찰, 명박산성 등의 과를 범하면서 2010년 지방선거도 일격을 당하는 등 국민적 지지를 잃게 된다. 이렇게 2012년 총/대선이 다가오면서 이전과 달리 상황이 역전된다. 이명박과 친이계는 이명박이 차기 대권 주자로 도장을 찍어두고 있었던 친이계에게 당권을 넘기려고 했으나 민주당 계열 유력주자들(대표적으로 문재인, 박원순[6], 정세균[7]등이 있다.)의 맹공세와 지지율의 하락으로 인해, 당권에서도 밀려나가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강해서 나름 기대감이 있었던 박근혜와 친박계에게 당권을 빼앗기고, 친박계는 친이계에 대한 공천탈락의 명분을 얻으며 18대 총선의 복수를 할 기회를 잡은 것. 결국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 의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강제개명 이름을 바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반대로 친이계가 상당수 짤려 나갔다. 18대 총선의 친박과 마찬가지로 몇몇 의원들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하거나 당을 만들어 새누리당 후보와 붙기도 했으나 과거 박근혜 및 친박연대와 달리 지지율이 점차 하락세에 있었고, 전체적으론 한나라당에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박연대 의석을 확보시켜준 TK 정도 되는 지역적 지지기반을 가진 것도 아니다 보니 대부분 낙선하고 만다.[8] 그리고 20대에서는 보란듯이 친이계를 쓸어 버렸으나 결국 부활의 기회(?)가 생긴 친이계와는 달리 친박은 멸망의 길로... 하지만 지금은 친이계도 MB의 구속으로 부활은 커녕 와해되기 직전이다..

박근혜에게 찍힌 한 여성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공천이 잘못됐지만 자기 지역구에 공천받은 후배의 앞길을 막을 순 없다며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스스로 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1순위로 출마했으나 이름을 스틸한 군소정당 한나라당에도 못미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거기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도 낙선.(...) 여튼 이후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는 친이계/비박계 7인과의 경쟁[9][10](?)을 뚫고 박근혜 후보가 압도적으로 추대 선출된다.

당시 17대 대선에서 연예인들의 경우 이명박과 사적으로 친한 유인촌을 필두로 김영삼, 이명박과 사적인 친분이 있다고 유명한 이덕화, 그리고 김보성[11]이 이명박 지지선언을 했다.

2.3. 이명박 정부 이후

제18대 대통령 선거 이후로도 친이계들은 당권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진 상태에서 평행이론 그놈의 지지율 친이계들에게 다시 반짝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결국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친이계의 몇몇 여성 정치인들은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고, 남성 정치인은 낙선했다. 이후 친이계는 비박계와 함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다만 민심이반과 달리 당 내부에선 아직 친박계가 건재했기 때문에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비롯한 친박세력이 공천권을 휘두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이계는 그나마 살아남았던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비박계와 함께 다시 한번 공천학살을 당한다. 부관참시 오죽하면 이재오 의원이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그러는거 아니다고 성토했을 정도.(...) 그 덕에 당의 친박 순도는 더욱 높아졌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새누리당 자체가 위기에 빠지는 바람에(...) 친박계는 위기에 빠지고 친이계는 총선패배의 주범으로 친박계를 까며 속으로 내심 미소를 짓게 되었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 후보가 낙선함으로 인해 새누리당에서 구심점을 잃은 친이계는 사실상 비박계 중 한 계파 정도로 의미가 변화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 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이재오 전 의원이 '늘푸른한국당'이라는 친이 계열 위주의 신당을 창당하며[12] 새누리당을 나갔고,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이쪽을 은근히 지원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인데 원외정당인데다 대중들의 관심이 적어서 딱히 주목을 받진 못하고 있었으나, 바로 뒤의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늘푸른한국당이 야권발 정계 개편처럼 여권발 정계 개편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많아졌다.

거기다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친박은 어떤 형태로든 궤멸이 뻔한 수순에 오른 반면,[13] 친이계는 오히려 추후 예상되는 재보궐 선거 및 친이계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바른정당과 친이계의 본진인 늘푸른한국당을 통해 회생 후, 재기할 기회가 생겼다. 바른정당의 경우 친이, 비박 성향 국회의원들의 새누리당 대거 탈당을 시작으로 창당된 정당으로, 당원의 대부분은 비박 혹은 친이 성향 정치인들이다. 게다가 현재 친박들이 포진한 자유한국당에서도 조원진과 같은 진성 친박 성향 정치인들이 새로 정당을 만들어 탈당을 하고 있어 자유한국당도 친이 성향 정치인들이 주축이 된 정당이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14]

또한 국민의당 친안계에도 한때 친이계였던 정치인들이 일부 있어 총 4개의 정당에 친이계 및 범 친이계 정치인들이 있는 셈이 되었다. 늘푸른한국당 대선 후보 이재오는 확실히 친이 성향 정치인으로 구분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또한 이명박과의 인연이 있다. 바른정당 대선 후보인 유승민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점점은 거의 없는 편이나, 예전의 친박 성향은 거의 사라졌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방문하고 친이계가 많은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한 것으로 볼 때, 역시 친이계와 어느 정도는 접점이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되어, 친이들은 4개의 당 중 1개는 확실히 성공 가도를 올리며 주도권을 잡았고, 자유한국당은 말을 말자.했으나 연결고리는 계속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4개의 당에서 선출한 19대 대선 후보가 어쨌든 이명박과의 연관성이 있으므로, 친이계는 이러한 4명의 대선 후보 라인업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의 친문 성향 정치인들과 더불어 아직 소멸하지 않은 친박을 견제하면서 재기를 노리는 중이다. 하지만 결국 MB의 구속MB에 대한 국민들 대다수의 엄청난 반감 때문에 현재는 재기는 커녕 아예 와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임기 초반에는 높은 상황이지만, 친이계 정치인들은 2018년 지방선거의 승리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이계들이 여러 정당에 퍼져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지방선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이계들이 있는 정당 통합 즉 다시 말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유승민과 같은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자강론을 주장하고 있어 통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2.4. 부활? 와해?

몰락하는 새누리당 친박들로부터 집단탈당하여 바른정당을 결성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15] 남경필이 선도 탈당한데다가[16], 정병국이 창준위 위원장직을 맡았다. 또한 1월 11일, 이재오최병국이 공동 대표, 이외 정운찬 前 국무총리를 주축으로 해서 친이계의 주축이자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늘푸른한국당이 정식으로 창당했다. 또한 늘푸른한국당 창당식 축사에 바른정당에서 친이계 상당수 인사들과 남경필이 참석해서 축사를 낭독하면서[17], 추후 늘푸른한국당은 바른정당에 존재하는 친이계나 친이 성향을 가진 이들과 규합할 확률이 충분히 높아져,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 외에도 아직 자유한국당에 범 친이계 정치인들이 소수 남아 있어 이러한 친이계들이 규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규합에는 반문정서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당이나 더불어민주당 일부 비문성향 정치인들이나 자유한국당의 잔류한 소수 옅은 친박 성향 정치인이 일부 참여할 가능성까지 예상되기도 한다. 여담으로 국민의 당에도 이태규와 같이 한때 친이계에 있었던 의원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선거로 들어서고, 친이계는 갑작스러운 대선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지, 안철수와 유승민 후보가 패배한 데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현재 높은 상황이라 지지율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친이계는 여러 정당에 퍼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친이계가 주축이 되어 창당한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바른정당을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 둘 중 하나 또는 이 3개의 정당을 모두 합당해서 하나의 거대한 보수야당을 출범시켜 친이계 정치인들을 결집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18] 이러한 움직임은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는데, 현재 바른정당의 이혜훈과 유승민과 같은 비박계 자강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통합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시각이 있어 통합 작업은 쉽지 않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경우 홍준표 대표 체제로 들어서면서 박근혜 탈당과 친박 핵심 의원 탈당과 같은 친박계 색깔을 빼는, 친박 청산 작업에 돌입하고 있어 이러한 작업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행동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홍준표는 바른정당과 통합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국민의당 역시 언론을 통해 바른정당과 통합설이 나오기도 했었고, 실제로 이태규와 같은 친이계 정치인들이 있다.

어찌 되었든 보수 야당 통합을 주도하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와 바른정당의 김무성 모두 범친이계 인물로 구분되는 것이 특징으로, 후술할 친이계 정치인 명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당의 경우 친이계와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비노 성향 정치인들과 손학규계 등이 있는 정당으로써, 친이계 정치인들이 있어 역시 통합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경우는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친이계 정치인들은 정병국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 때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던 데다가 바른정당-국민의당의 합당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친이계의 본진인 늘푸른한국당도 이명박이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지도부가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한 만큼 바른미래당에 들어서서는 친이 색채가 상당히 옅어졌다.

어찌 되었든, 친이계는 친이계 정치인들을 '한 정당'에 모으려는 이른바 '보수 야당 통합'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의 구속이들에 대한 국민들 대다수의 좋지 않은 시선들을 보면 이명박의 기치 아래에서 이들이 다시 뭉쳐서 계파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명박이 구속된 현재로서는 부활이 아닌 와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현재 이명박 수사를 철저히 하고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80%에 달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절대 친이계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다.[19] 이런 상황에서 친이계 정당이 과거 친박연대 처럼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구심점이 필요한 친이계는 원래 이명박과 친밀한 관계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애를 끈질기게 받아온데다, 세력 확대가 필요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사실상 친홍계로 흡수되고 있다. # 이와중에 버림받은 MB.. 실제로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은 이명박 구출(?)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포함한 비박계, 구 친이계 지도부가 역대급 대참패를 해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지고 홍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 전원이 사실상 사퇴함에 따라 홍준표를 중심으로 뭉쳤었던 구 친이계들 또한 앞날을 더 이상 장담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후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친박계들의 지원을 받은 나경원이 새원내대표에 당선되고 그 이후 2.27 전당대회로 친박계로 분류되는 황교안 전 총리가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자유한국당이 전체적으로 다시금 친박색이 강화됨에 따라 친이계들의 앞날이 더 더욱 불확실하게 되었다. 한국당 '총선 공천' 주도할 핵심 요직에 친박 전진배치 이제는 부활은 커녕 내년에 있을 21대 총선에서 친박계들의 공천 학살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3. 명단[20]

친이계 출신이라도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인물이 있고, 보수적인 인물이 있으며 정치생명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한 인물이 있고, 도중에 정권에 비판을 하며 거리가 좀 생긴 인물도 있고 애매하게 퇴임 이후 색이 엷어진 의원도 있으므로 하나의 균질한 집단으로 유지가 잘 되지 않는다. 그밖에도 언론에서의 분류란게 으레 그렇듯 본인은 친이계라고 생각하는데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본인은 친이계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포함된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21] 또 리스트를 보면 수도권이나 PK 쪽이 고향이거나 지역구인 사람이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래도 PK는 TK 기반의 박근혜에 대한 반발심이 크고 김영삼을 따르던 자유주의 세력의 위세가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22] 비박/반박 성향으로 인해 친이로 간 인물도 꽤 있었다.[23]

현재 친이계는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서의 조직적인 배제[24]이명박의 구속으로 최측근들이 친홍 계열의 일부로 흡수되어 위상이 상당히 감소하였고, 그 밖의 인사들도 친무, 친유, 친안 등으로 흩어졌다. 고로 사실상 와해...

#, # 이 자료들을 참고하면 대략 누가 친이계로 분류됐는지 알 수 있다.

* 이명박 - 친이계의 수장으로 전 서울시장,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기소 이후 현재 1심에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이하는 가나다순.

4. 관련 문서



[1] 다만, 강삼재의 경우는 이명박과 이회창이 경쟁할 때 예외적으로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면서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2] 다만, 상도동계에서 친박으로 편입된 경우가 거의 없는 것에 비해 친박연대 서청원, 친박무소속연대 김무성을 제외하면.., 민정계에서는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과 박희태, 김형오(원래 노태우의 측근이었다.) 등 친이계로 편입된 경우가 은근히 있었다.[3] 박근혜 후보의 경선안 대로 했어도 이 후보가 가까스로 승리할 수치였긴 했다.[4] 정확히는 정근모를 대선 후보로 내새웠던 참주인연합에 대거 입당하여 이름을 바꾼 것인데, 총선이 코앞이라 신당을 창당할 여유가 없다보니 이렇게라도 한 것(...)[5] 이 여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18대 총선에서 강기갑 후보는 영남지역 진보후보 당선이라는 대이변을 만들었다.[6] 박원순은 나경원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시키고, MB정부에 맹공을 퍼부으면서 이명박의 지지율 하락은 물론, 홍준표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까지 한 몫 했다. 박원순이 노무현이랑도 친했지만, 과거에는 이명박이랑도 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7] 당 대표로서 MB정부와 맞서는 야당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20대 총선 이전까지 정세균 민주당 정도를 빼면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 했다.[8] 대다수의 친이계 의원들이 표심이 유동적인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다. 원래 보수 계열 정당들이 수도권 개별 선거구에서 득표는 많이 해도 소선거구제로 인해 1등이 아니면 낙선하기에 의석 획득이 의외로 쉽지 않았다. 그나마 선전한 선거는 15대 총선. 그런데 18대에는 한나라당이 111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81석이나 차지했고 이를 기반으로 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려 했으나 19대 총선때는 수도권에서 보수 계열 정당에 대한 반감이 강해져 반토막(43석)났다.[9] 이명박은 이 때 정운찬을 밀 생각을 하기도 했고, 이재오를 대선후보로 강력 지지했으나 탈락하고 말았다...(...), 이외 임태희도 출마선언을 하기도 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탈락했다.[10] 여담으로 친이계에 당권이 계속 있을 때, 이명박과 이재오는 정운찬에게 한나라당 입당 및 분당 을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권유하였는데, 친이계가 당권을 거머쥐고 있을 때에는 정운찬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친박에 당권이 넘어가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나서는 새누리당의 색깔이 본인이랑 잘 안 맞는다고 거절하게 된다.(...) 정운찬도 박근혜와 친박을 상당히 싫어했던 모양이다[11] 그 비락식혜 광고로 유명한 김보성 맞다.[12] 이재오 본인은 친이 모임에서 우리가 언제적 친이냐며 늘푸른한국당은 그냥 자신이 하고 싶어서 만든 당일 뿐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선을 그으면서 중도진보 및 비 친이 인사들도 포용 가능하다고 했지만, 상황을 보면 이명박 또한 여기를 지원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인데다가, 이상득계 친이 인사들도 포함 돼 있어 친이계 본진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는지라, 인재쪽은 현재까지는 친이 계열의 특성이 강하다.[13] 실제로 몇몇 의원들은 박근혜 탄핵소추 가결 직후, 범죄, 뇌물수수, 청탁행위를 검찰에서 재조사당하는 지경이 됐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과 김진태가 그 대표적인 예.그걸 떠나서 이제 친박은 영구적으로 정치권에서 매장됐다.[14] 다만,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이 바뀌면서 당의 친박 사당화가 더욱 짙어졌다는 평가를 감안하면, 현재까지도 자유한국당에 잔류하는 몇 안 되는 친이계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최측근이 아닌 범 친이계가 전부라고 봐도 된다. 대표적인 예시가 나경원.[15] 탈당의 배경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제시된다. 이러한 시각이 나온 배경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이계 정치인들을 만났을 때, "국민을 보고 가라"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친이계의 새누리당 집단 탈당을 지시하는 발언이었다는 시각이 있었다. 다만, 남원정, 친무, 친유와 일부 현역 친이계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한 것과 달리, 친이계 중진들은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했다. 새누리당에 있던 친이계 성향 전현직 정치인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늘푸른한국당에 합류하기도 했다.[16] 남경필의 경우, 2007년 17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에서, 친이로는 분류되지 않는 소장파에 가깝지만, 성향과 당시 이명박을 지지했던 행적에서 양분할 경우 친이계로 분류되기도 하는 인물이다.[17] 특히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경우 매우 큰 소리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히며 축사를 낭독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병국, 정의화, 주호영 또한 축사를 낭독했는데, 이들보다 소리를 크게 냈다. 이를 봤을 때, 남경필과 친이계 인사들도 늘푸른한국당과 연계할 가능성이 충분해졌음이 나타났다.[18] 실제로 친이계 중진들이 창당한 늘푸른한국당이 현재는 이명박의 구속에 이은 몰락으로 와해되면서 지도부가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지만, 늘푸른한국당은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합당해 몰락하는 자유한국당을 흡수해 보수정당을 재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19] 이명박의 최측근인 김백준 구속 직후 증거가 터져 나오며 이명박이 피의자로 입건되자, 그 동안 정상적으로 퇴임한 전직 대통령인지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지지여론도 현재는 전멸하다시피 했다.[20] 핵심 인사는 볼드. 친박 전향 인사는 제외.[21] 특히 친이vs친박 다툼이 심할 당시엔 친박 의원 아님 무조건 친이, 친이 의원 아님 무조건 친박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친이는 아니고 그냥 중도나 비박 정도일 뿐인데 친이로 포함된 경우도 있다는 것.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22] 상술했듯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YS는 박근혜 말고 이명박을 지지했다. 이유로는 YS가 이명박을 직접 픽업한 점, 박정희 때의 악연과 이후 '칠푼이'라는 발언에서도 보이듯 박근혜의 능력 자체를 낮게 취급한 점 등이 거론된다. 그리고 사실이었다. 다만 박씨 부녀를 경멸한 YS와 달리, 이명박은 박정희를 치켜세우기에도 했다는군사정권의 향수가 있는 이들의 표까지 다 챙기기 위해서 차이점은 있다.취소선을 쳤지만 겉으로만 박정희 향수를 가진 계층의 지지를 위해 그랬을 확률도 상당히 높다. 당장 이명박이 박근혜를 트집 잡아 제거하려고 집중 사찰 대상 중 하나로 지목하고 사찰하면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아예 친박들을 쓸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23] 반대로 TK는 친박 강세로, 친이가 친박을 상대로 공천학살을 자행했던 18대 총선 당시에도 이 지역의 친박들은 막강한 지역기반으로 상당수가 공천을 받았다. 물론 포항 같은 경우엔 MB의 사실상 고향인지라 친이세도 꽤 쎈 편이었고, 반대로 부울경에도 의외로 서병수(해운대ㆍ기장 갑), 허태열(북ㆍ강서 을)로 대표되는 친박 의원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24] 20대 새누리당 공천에서 주요 공천 배제 대상은 친이계와 친유계였는데, 19대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는 이명박이 아직까지 힘이 있었던지라 친이계 중진들은 거의 공천을 받았지만, 이명박이 대통령직을 퇴임하면서 힘을 잃은 20대 공천 과정에서는 친이계는 완전히 전멸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이명박 직계라고 할 만한 의원들은 정병국, 주호영, 김영우, 장제원, 권성동 이렇게 딱 5명밖에 안된다.[25] 이상득을 포함한 영일-포항 권역이나 그 인근 지역 출신인 친이계 인사들의 모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엄청난 권력을 누려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26] 그와 이명박의 고향이 경북 영일-포항 쪽이라 붙은 별명. 노무현과 함께 고향이 김해 봉하마을이라 봉하대군이라 불린 그의 친형 노건평과 비슷한 케이스.[27] 2008년에 이상득에게 18대 총선에서 불출마함으로써 정계에서 은퇴할 것을 요구했다. 정태근, 남경필 또한 이에 동참했다.[28] 권영길 불출마, 노회찬은 서울 노원구 병 출마.[29] MB정부 때 정치에 입문했다가, 이후 박희태 돈봉투 사건을 고발하며 정치 일선에선 물러났다. 그리고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상기한 흑역사를 찍게 된다.(...)[30] 사실 민주자유당신한국당에서 같이 민주로서 김영삼을 모시고, 포항과 인연이 있는 기업인 출신이라는 매우 비슷한 내력을 보면 김무성이 왜 친이가 아닌지 이상할 정도다[31] 2016-2017년의 새누리당은 20대의원 공천 파동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이에 뒤이은 내홍으로 인해 자유한국당/바른정당/늘푸른한국당/대한애국당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 때 대부분의 친이계들은 이재오가 당대표를 역임했던 늘푸른한국당에 들어가거나 다른 비박계들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하는 등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을 떠나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이계들은 제3지대론에 기대를 걸어, 국민의당과 힘을 합쳐 바른미래당과 비슷한 중도우파 성향의 보수신당을 창당하여 정권을 재창출해낼 계획이었으나,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본격적으로 정치적 공세와 보복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보수 우파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보수 본당인 자유한국당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생겼다. 그 때문에 2017년 11월의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와 2018년 2월의 늘푸른한국당 해산을 거쳐 새누리당을 탈당했던 친이계들은 대부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고, 현재 친이계로 분류됐던 정치인들이 분포한 비율은 대략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9:1 수준으로 자유한국당 소속이 압도적으로 많다.[32] 이명박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후 종로구 안국동에 대선을 대비하는 씽크탱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안국포럼이다. 이후 김영우 등의 안국포럼 출신 인사들은 이명박 정권에서 친이계 정치인이나 청와대 참모로 활약한다.[33] 친노 핵심을 노무현의 고향에서 꺾은 것을 보면 확실히 개인 경쟁력이 뛰어나긴 하다. 이와 대비적으로 인근의 김해 갑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34] 왜 범 친이계에 가까운지는 나경원 항목을 참조하자.[35] 제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다.[36]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이었을 때 보좌했던 인물들[37] 2010년 포항 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전라도에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대통령 고향에서 민주당 후보가 활개를 치고 다닙니까"라고 말하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동시에 이 행보를 보인바 있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보다 무려 4배 이상 많이 득표하여 경북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38] 다만, 당시에는 이명박의 정치적 위상이 대권에 도전할 정도로 높지는 않았던 시절이라 당 홍보 차원에서 박근혜의 정계 입문을 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박창달은 17대 국회때부터 친박과 거리를 멀리 둔 강성 친이계였다. 이명박도 박창달이 피선거권 제약이 풀리지 않아 18대 총선에 나갈 수 없자,(2009년 재보궐선거에는 출마할 수 있었으나 박창달이 출마하지 않았다.) 대타로 박창달을 자유총연맹 회장으로 임명한 다음 대통령 임기를 마칠때까지 박창달을 유임시켰다.[39] 18대 총선 당시 경상도에서 친박연대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친박연대가 직접 나선 TK와 달리 박근혜에 대한 비토 심리가 있었던 PK에서는 부산의 대표적인 지역 정치인 김무성을 필두로 한 친박 무소속 연대에서 친박 후보를 냈다. 사실상 친김무성 연대[40] 김기춘노태우 정부 사람이지만 김영삼과 동향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김영삼과 가까이 지냈다.[41] 김성태라는 이름을 가진 정치인 두명도 있는데, 이 둘도 자유한국당에 있다.[42] 친박 성향이 강한 사천의 노년층들이 친박 세력의 주도 하에 친박 공천 학살을 주도한 이방호 대신 야당 후보 강기갑을 집단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평가된다.[43] 장제원의 아버지 또한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즉 장제원이 집안의 정치적 기반에 의한 자체 경쟁력이 강한 후보였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승리했던 것이다.[44] 그래서 정몽준이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이었던 동안에는 정몽준계로 분류되기도 했다.[45] 원래는 이명박과 친분이 거의 없었다고 알려진 바 있으나, 실제로는 이명박과 원래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46] 정운찬이 국무총리로 있었던 시절 이재오는 18대 총선에서 낙선하여 국회에 있지 않고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내각에 있었다. 정운찬과 접촉이 많을 수 밖에 없다.[47]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립 대학인 서울대의 총장이었음에도 노무현과는 성향이 맞지 않아 노무현을 자주 비판하였다. 이명박과도 추구하는 바가 다소 달랐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후, 이명박, 이재오와 친해지면서 이명박에 대해 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명박도 정운찬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청하면서 일부는 실현하려고 했다.[48] 소선거구제 이래 전북에서 최초로 당선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보수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황인성, 강현욱 등의 케이스가 있었다.[49] 허삼수는 하나회의 일원으로, 삼당합당 이전에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의 후보 노무현에게 부산 동구에서 패배한 민정당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당합당 이후 노무현이 김영삼을 떠나면서, 뒤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는 김영삼에 의해 민자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어, 같은 지역구에서 노무현에게 설욕했다. 하지만 15대 총선 당시 김영삼이 당 내 민정계를 축출할 때, 그도 같이 신한국당 공천에서 떨어졌다. 허삼수와 밀당하는 김영삼[50] 전여옥도 외부자들에서 18대 국회의 정진석은 범 친박계였다고 언급한 바 있고, 이명박, 이재오 및 친이계와도 친분이 있었지만 18대 국회에서는 박근혜와 친박의 편을 조금 더 들어준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19대 때 김무성이 박근혜 및 친박에 의해 공천을 받지 못하고 친이계 초재선들이 대거 공천탈락했을때와, 20대 때 친이계와 유승민계가 철저한 공천배제로 인해 친이계가 파멸당하고 유승민계까지 큰 타격을 입었을 때도 정진석은 전부 잡음 없이 공천을 받았다. 19대에서는 원 지역구를 뺏기고 험지로 내몰리기는 했지만. 이렇듯 범친박계라고 분석해도 무리가 아닌 정치인이었으나, 20대 국회 초부터 박근혜와 친박을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비박으로 전향했다.[51] 다만 유승민과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하다.[52] 자유한국당 복당을 주문했다고도 알려져 있으나 확실치는 않은 정보다. 확실히 알려진 건 강한 야당, 보수를 강조했다.[53] 이 때문에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 당시 친박 성향의 독자들에게 엄청 욕먹기도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다루는 기사마다 댓글란에 박사모들의 분노에 가득찬 백자평들이 빼곡했다[54] 다만, 홍준표는 범친이계이긴 하나, 친이계라고 하긴 어렵다. 실제로 홍준표는 이재오, 이상득, 정운찬 등의 친이계 실세들을 친박만큼 적대하진 않았고 절반 정도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은근히 친이계의 실세들을 견제하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올라가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다.[55] 친문, 박원순계, 정세균계, 참여계, 정봉주[56] 대표적으로 권성동 의원이다.[57] 대표적으로 김영우의원과 조해진 전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