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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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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관련 틀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강용석 康容碩 | Kang Yong-seok | |||
출생 | 1969년 12월 3일[1] ([age(1969-12-03)]세) | ||
서울특별시 중구 동자동[2]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 ||
본관 | 신천 강씨[3] | ||
현직 | - | ||
링크 | [5] | | | | [6] | [7]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가족 | 아버지 강평태, 어머니 양인애 형, 누나 | |
배우자 윤원경(1970년생)[8] 장남 강원준(1998년생) 차남 강인준(1999년생) 삼남 강세준(2009년생) | |||
학력 | 서울신석국민학교 (전학) 서울언북국민학교 (졸업) 신천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84회 /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9] / 석사[10])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법학 / LL.M.[11]) | ||
신체 | 180.6cm, 88kg[12], A형 | ||
MBTI | ESTJ | ||
병역 | 공군 대위 전역 (군법무관)[13] | ||
종교 | 개신교 (순복음교회→감리회[14])[15] |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의원 선수 | 1 | ||
의원 대수 | 18 | ||
경력 |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 강용석 법률사무소 변호사 참여연대 재벌개혁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마포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한나라당 5.31 지방선거 중앙당 공천심사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지식경제위원회 위원 미래전략 및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 국회인권포럼 위원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일자리 만들기 나누기 지키기 특별위원회 위원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을 / 한나라당) 가로세로연구소 소장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무소속 후보 법무법인 넥스트로 대표변호사 | ||
데뷔 | 2012년 TV조선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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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 유튜버.대한민국 국회의원, 가로세로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법무법인 넥스트로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2. 생애
1969년 12월 3일 서울특별시 중구 동자동(지금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에서 대한민국 육군 대위로 예편한 호남 출신 아버지 강평태(康平泰)와 어머니 남원 양씨(南原 梁氏) 양인애(梁仁愛)[16]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198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법대 사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연수원 수료 후 공군 제8전투비행단과 합동참모본부에서 군법무관으로 3년 동안 복무했다.그 후 법률사무소를 개업해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1년에 연수 개념으로 하버드 로스쿨 1년 LL.M. 과정에 진학했다. 하버드 LL.M. 시절에는 LL.M. 학생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의 보수적 행보를 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을 펼친 바 있다.[17] 2001년에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이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명된 것을 정면 비판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세의 대표와 가로세로연구소를 공동 운영하며 반문재인으로 우파 이미지를 구축,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대표가 사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구입 대금을 마련할때 자연스럽게 옆에 있었기에 이때를 정점으로 삼아 다양한 보수 정치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으나 김세의 대표와는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에 의견이 맞지않아 결별했다. 한창 가세연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고 제36대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복귀를 현실화하였다.
2.1. 변호사 활동
강용석 변호사로 알려져있지만, 변호사로서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변호사로서 어느 분야의 송사를 주로 맡았는지(국제법, 이단 종교, 형사법 등), 어느 네임드를 변호했는지 등등은 측근만이 아는 것 같다.다만, 공간된 대법원 판례 중 강용석이 법무법인을 설립하기 전에도 상고인 소송대리인으로서 파기환송을 받아낸 것들이 엄존하는 것으로 보아(대법원 1998. 11. 27. 선고 98다17374 판결;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1078 판결), 변호사로서 정상적으로 활동했던 것은 틀림없다. 2014년 아나운서 문제에서도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의 파기환송을 이끌어냈다(파기환송: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도15631 판결).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한 개라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변호사로서 상당한 자랑거리이다.
2.2. 정치인 활동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서울 마포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마포구 을 당협위원장을 맡으며 KBS 심야토론 같은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나오기도 했으며,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캠프에 참여했다.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시 마포을 선거구에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의 평범한 의원 중 한명이었으나[18] 2010년 아나운서 비하 발언 사건으로 출당조치를 당하였다.[19]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지 못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마포구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성동이 공천되었는데 모두 민주통합당의 정청래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 선거에서 강용석이 기록한 득표율은 4.29%.[20]
2016년 1월 3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및 새누리당 복당 신청 입장을 밝혔다 # 불과 한 달 남짓 전 썰전에서 같이 방송을 했던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이 "출마하려면 새누리당 입당 신청이나 하라"고 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2016년 2월 1일 새누리당 서울특별시당(위원장 김용태)에 복당신청을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당헌·당규 당원규정 7조에서는 심사기준으로 당의 이념과 정강․ 정책에 뜻을 같이 하는 자, 당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 개혁의지가 투철한 자로 정하고 있는데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와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기준으로 복당이 불허되었다. 그 후 새누리당 중앙당에 제소하였지만 2016년 2월 15일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당규 7조 따라 복당을 불허하여 새누리당 복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8년 8월에 김세의 전 기자와 함께 가로세로연구소라는 유튜브 채널을 설립했다.
2022년 4월에 국민의힘 복당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21] 이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 참고로 강용석도 당연히 보수계에 속한 무소속 후보이니 사상 최초로 경기도지사 여성 후보로 출마한 김은혜와 표가 분산될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지가 스스로 알아서 김동연을 공격해 주기 때문에 그냥 관망하면서 활용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후보통합으로 내치고 지지율만 고스란히 가져올 전망이라고 한다. 결과는 대참패였다. 1%도 되지 않는 득표율이었다.
2.3. 방송인으로 전향
2010년 7월 20일에 중앙일보는 강용석이 제2회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연세대학교 소속 20여 명의 남녀 대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아나운서를 모독하는 발언을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아나운서들은 강용석의 발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강용석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7월 20일 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주성영의 긴급 브리핑에서 강용석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의결하기 위한 절차가 남아있으며, 이 절차를 거치기 전에 한나라당은 강용석에게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그러나 강용석은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최초로 자신의 발언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에 정정보도를 요청한 상태이며 정치생명을 걸어서라도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입장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7월 21일에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에서 강용석의 발언을 들었다는 진술을 추가로 확보하여 보도하면서 강용석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2010년 열린 7.28 재보선 이후로 한나라당은 윤리위원회에서 제명을 결정한 것과 달리 강용석을 제명하는 것을 의결시키지 못해 일각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 2010년 9월 2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만장 일치로 그의 제명이 확정됐고 강용석은 무소속 국회의원 신분이 되었다. 강용석은 제명으로 인해 향후 5년간 한나라당 입당이 불가능해졌다.
아나운서들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강용석은 1심 재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 5월 25일에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 3단독 제갈창 판사는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발언이 갖는 무게나 발언의 상대방, 발언을 접하는 사회 일반인에 대한 영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공중파 방송의 아나운서들은 방송을 통해 상시적으로 자신이 아나운서임을 드러낸 채 대중에 서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들을 접하면서 피고인의 발언을 떠올리고 연상할 소지가 충분하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 왜곡된 공격을 받는 경우 스스로 방어할 수 있지만 이 수준을 넘어 무고에까지 이른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문제발언은 토론 대회에서 탈락한 대학생을 위로 내지 격려하기 위한 회식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기사에서 다소 자극적 제목 아래 문제 발언만 적시해 피고인이 마땅이 비난받아야 할 이상의 비난에 직면하게 한 사정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사건 때문에 정치인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후에 경기고 동창인 작곡가 주영훈의 조언이 있었고, '비호감으로 밀어라'란 충고를 받고 연예계에 입문한 것이라고 강용석 본인이 방송에서 밝힌다.[22]
최효종 사건으로 악명을 떨치던 임기 말에 화성인 바이러스 고소집착男편에 출연하고, 낙선 후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을 시작으로 방송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슈퍼스타K4에 도전하기도 했으며 강용석의 고소한 19의 진행을 맡으며 방송인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SNL 코리아의 Weekend Update의 진행자로 3주간 출연하기도 했다.[23]
썰전에서 일반적인 논객들은 알기 힘든 전직 국회의원으로서의 경험담을 풀어 놓고 있다. 그의 자식들도 "아버지가 정치보단 방송을 하는 게 더 좋다"고 할 정도. 참고로 썰전은 아나운서 발언을 처음 보도했던 중앙일보 계열의 JTBC에서 방영했다.
2.3.1. 방송 활동
- 강적들
- 썰전
- 궁금한 스타쇼 호박씨
- 강용석의 두려운 진실 (TV조선)
- 앵그리BUS (tvN)
- 황금펀치 (TV조선)
-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tvN)
- 크라임씬 (JTBC)
- 더 지니어스:블랙가넷 (tvN)
- 건강한 여행 休 (TV조선)
- 유자식 상팔자 (JTBC)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JTBC) - 과천외국어고등학교에 출연.
- 대학토론배틀 시즌3, 시즌5 (tvN)
- 성적욕망 (tvN)
- 수요미식회 (tvN)
- 강용석의 고소한 19 (tvN)
- 드라마 최고의 결혼 (TV조선) - 특별출연
- 드라마 잉여공주 (tvN) - 특별출연
2.4. 정치 활동 재개
2.4.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본인 말로는 예전에 무소속으로 나왔다가 큰 낭패를 봤기 때문에 절대로 무소속으로 안 나온다고 하며 국민의힘에 복당 신청을 하고 나온다고 한다. 일단 국민의힘의 전신인 2010년 한나라당 시절에 성희롱 발언 논란이 터져 만장일치로 제명된 상태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뀐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복당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도 강용석의 자격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었고, 도도맘과 불륜 스캔들로 구설수에 올랐다는 이유로 또 다시 만장일치로 불허되었다.한편 경기도지사 PNR 여론 조사에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론 조사 의뢰업체와 가로세로연구소의 사무실 주소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일부 네티즌들에게서 자체 조사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후 다른 곳에서 의뢰한 PNR 여론조사에서 9.7%를 기록하며 전체 4위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에 복당 신청을 하였고, 서울시당에서 복당 신청을 허가하자 강용석은 이에 복당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며 SNS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최고위에서는 강용석이 가로세로연구소를 진행하면서 대선 기간에 이준석 당대표를 향해 각종 의혹 제기와 비판을 했던 것이 해당 행위에 판단되는지를 놓고 검토가 필요하다며 일단 복당안 상정을 보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무기명 투표에서 찬성 1, 반대 5로 최종 부결되면서 복당이 불허되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무소속 출마 아니면 최종 불출마뿐. 복당 불가 결과가 나오자 강용석은 SNS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국민의힘은 이전 한나라당과 당헌당규 자체가 달라졌기에 판례상 다른 정당이며, 따라서 자신은 복당 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 최초 입당 신청을 한 것이기 때문에 최고위가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것.[24] 그러면서 사실상 이준석 대표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자신을 막아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준석 측은 "최고위원들이 토론도 없이 무기명 투표 결과를 진행하여 그 결과를 보고받았다"라며 본인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냈다.
현실적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당선될 확률이 매우 희박한데다 선거 비용 보전도 못 받다 보니 결국 불출마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당장 2012년 총선 때도 무소속으로 나왔다가 참패를 당해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던 전력이 있는 상황[25]에서, 총선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선거 비용이 드는 경기도지사 지방선거에 과연 무소속으로 나오겠느냐는 반응이다.[26] 그러자 강용석은 불허 발표가 나온 당일 14시부터 라이브 방송을 켜고서 선거 자금 모금을 진행했는데, 2022년 4월 8일 15시 26분 기준으로 목표액으로 잡은 22억 중 19억 7천만 원을 넘겼다.
강용석의 복당이 불허된 후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성접대 의혹 관련 이준석의 증거인멸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자, 이준석은 복당 안건 상정 전날 가세연 측에서 친근한 웃음으로 전화로 접촉하여 경기도지사에 출마를 노리던 강용석이 '복당을 시켜 주면 영상을 내리고 고소/고발을 취소하겠다.'라고 제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세의는 오히려 이준석 쪽에서 가세연에게 접촉해 영상을 내리고 고발을 취소할 것을 먼저 제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준석 측에서 녹취록을 공개했는데, 통화 내용이 시종일관 강용석이 이준석한테 대표님이라고 부르면서 잘 봐달라고 비굴하게 굽신거리는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강용석 복당 회유 뒷거래 공작 논란 참조.
복당이 거부된 이후에도 계속 완주 의지를 밝혔으며, 현재 무소속 경기도지사 후보가 되었다. 차명진과 김소연을 각각 선대위원장과 대변인으로 임명시켜서 자체적인 선대위도 꾸려놓은 상태다. 후원회장은 김세의가 맡는다.
지지율이 평균 5퍼센트를 넘어 TV 토론에 참여하게 됐다.[27] 토론에서 김동연 후보와 김은혜 후보를 거침없는 입담으로 공격해 마치 토론의 사회자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화산을 들먹이는 등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며 여전히 극단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5월 15일에 김은혜에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단일화 조건은 TV 토론을 다 한 뒤 당적은 가리고 이름만 가지고 여론조사로 단일화하자는 것. 현재 강용석의 지지율이 5%이고 여론조사 결과 김동연, 김은혜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5% 이내이기 때문에 강용석 지지층이 캐스팅 보터가 될 수 있다. 강용석이 김은혜와 단일화하면 강용석의 지지율이 그대로 김은혜에게 돌아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강용석을 싫어하는 온건파 김은혜 지지자들이 김동연 지지로 돌아설지 모르는 리스크도 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김은혜 쪽으로 보수표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며 강용석의 지지율이 5% 이하로 떨어지자 국민의힘과 김은혜 캠프 측에서는 단일화 제안에 대해 고려할 사안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고 오히려 강용석이 완주를 하든 말든 철저히 병먹금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강용석이 잠식한 5만표 덕분에 김은혜가 오히려 낙선할 위기에 처했다. 덕분에 강용석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크 히어로 취급을,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는 악의 축 취급을 받게 되었다. 가칭 '가로세로연합' 창당을 언급하며, 2022년 경기도지사 선거를 끝까지 가서 10% 지지율을 넘으면 국민의힘 복당보다는 창당을 선택한다고 선언했다. #
참고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전국의 표를 다 합쳐서 3%를 넘겨야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민생당이 전남에서 7%대, 광주와 전북에서 6%대의 비례득표를 했지만 비호남권에서 2%대로 부진하는 바람에 2.7% 득표, 원외정당으로 굴러떨어졌다. 강성 우파 성향의 정당들인 우리공화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이후 윤석열을 저격하기 위해 친민주당 채널에 조원진 대표가 등장하는 등 반윤 정당으로 바뀌었으며, 친박신당은 다시 국민의힘과의 합당 시도를 하는 중이라 총선의 미래가 벌써부터 어두운 상황이라 강용석이 창당을 한다고 해도 22대 총선에 가서 비례대표 1석은 챙길 수 있을까가 의문. 그리고 선거 결과 김동연이 8,913표(0.15%p) 차이로 김은혜를 꺾고 신승했다.
2.5. 방송인으로의 복귀
다만 유튜버로서는 아직 살아남을 수 있는데, 최근 개인 유튜브를 통해 강용석의 인싸뉴스를 리뉴얼한 인싸it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했기에 이에 따른 추이를 지켜봐야 할 터. 또한 여전히 변호사이며, 콘크리트 팬덤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록 정치적인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더라도 강용석 개인으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일각에서 강용석 일가가 미국으로 도피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자, 자기가 누구 좋으라고 도망가겠냐며 의혹을 부인했다.#
3. 파워블로거
2010년 이전에는 공기업 지망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 그의 블로그에서 공기업 취업정보를 다양하고 자세하게 제공했기 때문. 모아서 책도 냈다. 현직 국회의원이 공공기관/채용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취준생 도우미 역할을 한 것 자체는 지금봐도 꽤 이례적이다. 다만 2010년 이후로 공기업 취업 정보의 업데이트는 멈춰 있다.썰전에서 말하길 블로그를 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학교 때부터 남 앞에서 나대길 좋아했으며, 똑같은 우등생이라도 동료 학생들에게 더 인정 받으려 노력했다.
또한 인터넷에서 홍대 맛집 블로거 중 한 명으로 나름대로 입지가 있었다. 그래서 편의점 식품 리뷰로 위키에도 등록된 파워블로거 채다인이 홍대 맛집 블로거 강용석을 추억하며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 이 글을 본 강용석 본인이 이걸 또 피드백하는 모습. 그리고 tvN에서 자신이 진행하는 고소한 19의 이벤트로 2012년 12월 12일에 홍대에서 '고소한 만찬'이라는 주제로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관련 링크
2015년 8월 '도도맘' 김미나와의 불륜 발각으로 출연 중이던 방송을 자진 하차하면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다.
4. 유튜버 활동
4.1. 가로세로연구소
2018년 7월 MBC에서 퇴사한 김세의 기자와 함께 가로세로연구소라는 싱크탱크를 세웠다. 김세의가 대표, 강용석이 소장을 맡는다. 가로세로연구소는 강연 [28] 및 유튜브를 통한 컨텐츠 제작을 한다. 현재는 뉴스 평론과 취재 영상을 올리고 있다. 첫 영상을 올린 지 4주만에 구독자 수 3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2021년 3월 기준으로는 구독자 수 63.8만 명, 2022년 1월 기준으로는 구독자 수 81.4만 명을 넘어섰다.가로세로연구소에서는 본인이 진행하는 인싸뉴스와 라이브쇼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며, 그 외 제작물에도 함께 출연한다.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 이후 완주로 인한 김세의와의 갈등으로 인해 하차했다.
4.2. KNL & 인싸it
자세한 내용은 KNL & 인싸it 문서 참고하십시오.김세의와의 갈등으로 가로세로연구소를 탈퇴후 진행중인 유튜브 채널이다.
5.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강용석/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6. 저서
7. 여담
- 강용석은 자신을 '개천표 용'이라고 블로그 소개란에 서술한 바 있으며, '스타특강쇼' 등 강연이나 인터뷰 자리에서도 가난한 성장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였는데,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 달동네[29]의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며, 아버지는 교도소를 자주 들락거려 그 합이 13년이 넘어간다고 하고 전과는 20범이라고 한다.
- 강용석은 TV조선의 궁금한 스타쇼 호박씨에서 본인의 가난했던 과거를 회상하던 도중 통곡을 한 적도 있었는데, 어려운 집안 형편에 친형이 그 당시 등록금이 비싼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이어서 본인의 대학 입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학퀴즈에 출연하였다고 하였으며, 대학 등록금이 싼 국립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본인이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다녔다고 했고[30]그 당시 과외로 번 돈을 어머니께 가져다 드렸다가 어머니께서 대성통곡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본인도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 TV조선의 궁금한 스타쇼 호박씨에서 "교육을 위해 마포에서 강남의 지하방으로 이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강용석이 신천중학교를 나왔지만 신천역 근처에 살았던 적은 없고 지하방에 살았던 증거도 없다. 중학교 때 지금은 재개발돼서 없어진 H아파트에 살았다. 참고로 이 아파트는 당시 영동고등학교와 영동백화점을 운영하던 영동개발이 지은 나름 괜찮은 아파트. 그런데 경기고 졸업앨범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주소가 되어있고, 고시준비도 압구정동 이이독서실에서 했다.
- 장학퀴즈 또한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고등학교 시절에 출연했다고 하며, 사법시험 합격 이후에도 아버지가 수감 중이라는 이유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헌법 강사로 유명한 김유향 변호사에 따르면, 본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에 본인은 물론 생전 한 번도 본 적 없던 팔촌의 이름과 이름의 한자, 주민등록번호까지 모두 제출하라고 했다 한다. 이 점을 고려해보면, 본인이 범죄 전과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연좌제로 임용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과거에는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강용석의 경우, 군대 구타사건당시 군 측에서 오히려 강용석을 감싸주었다. 전역 후 판사지원을 했다가 떨어졌는데, 구타사건이 빌미가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 설득력이 있다. 현재도 영내 구타사건 기록이 있다면 판사 임용이 막힌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 앞서면 애써 공부하고도 인생 꼬일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 중학교에서 계속 반장만 하다가 연합고사 만점을 받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성적이 끝에서 2등까지 떨어졌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경기고등학교 1-3학년 동안 반장이었다. 부반장도 아니고 반장을 안 하면 못 견디는 체질이었다.
- 1992년과 1997년에 전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뽑았고 2002년에는 이회창 후보를 뽑았다고 했다. 사실 부모님도 두 분 다 호남 출신이라 정치 성향은 좌파라고 한다. 썰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꾸준한 김대중 지지자였고[31] 이후에도 노무현, 그리고 아들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이자 꾸준히 보수 쪽으로 활동하는 중이었는데도 대선 때 문재인을 뽑았다고 한다. 아들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마할 때 빼고는 민주당 쪽 투표했다고 한다.
- 강용석의 장인은 윤재기 전 의원인데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검사출신으로 13대 국회의원으로 1988년 신민주공화당 충청남도 공주시 공주군 선거구에서 당선 되었다. 이후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을 거쳐 민주자유당으로, 신한국당으로, 한나라당으로 연결된다. 강용섭이 정치를 시작할 때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보수 정치인이었음에도 부인과 박원순이 상임이사로 함께 있던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하는 등 진보 성향도 있었던 인사로 알려져 있다. # 사건 사고 문서에 서술되었듯이 후에 강용석이 박원순을 저격하며 서로 악연이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 세 아들의 외할아버지, 즉 강용석의 장인이 외손자들에게 산의 임야를 증여했는데, 강용석이 장남 원준이와 차남 인준이의 산은 처분했다고 한다. 선거에 출마하면 가족의 재산 현황도 나오게 되는데 어린 자식들의 명의로 산이 하나씩 등록돼 있으니 오해와 비난이 상당해서 그랬다는 듯. 막내 세준이는 강용석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있던 시기에 받았기 때문에 3형제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32]
- 머리가 매우 큰 편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서 있는 사진을 보면 크 차이가 매우 두드러진다.
-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거론하며 날렸던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 잘 만나는 것'이라는 취중 욕설 트윗과 함께 그의 과거 배경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기사 결국 아버지는 강용석이 29세 때 교도소 수감 중 의식을 잃어 형집행 정지가 되고 2달 후 사망했다고 한다.
- 배우 유준상과는 언북초등학교 동창이다. <여성중앙>에서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인터뷰 코너에서, 간만에 만나 인터뷰도 하고 이런 화보까지 찍었다. 유준상은 학창시절 기억을 되짚어, 그에 대해 "친하진 않았지만 아주 진취적인 학생이었다." 라고 평하기도. 강용석이 신석초등학교에서 5학년 2학기에 전학왔으니[33] 친하지도 않고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 작곡가 겸 가수 주영훈, 클론의 멤버인 구준엽과 강원래, 전 일기예보 및 러브홀릭 멤버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강현민, 이상복과는 경기고등학교 84기 동창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이들은 서로 모르고 지냈다. 당시 경기고는 제2외국어를 세 개나 가르쳤는데 주영훈, 강용석은 독일어반이고 강현민, 이상복, 클론들은 프랑스어반이다. 당연히 같은 반을 겪었을 리가 없다. 강원래-강용석 인터뷰
- 2013년에 "강용석의 직설"이라는 대담집 형식의 책을 펴내어 자신이 보는 정치계와 방송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인터넷을 켜 자신의 이름을 쳐보시더라고요."와 같은 유자식 상팔자에서 나왔던 강용석의 자식들의 증언과 지금까지의 왕성한 블로그 포스팅, 자신이 언급되는 것에 대한 빠른 피드백으로 보아 늘 자기 이름을 검색하는 것 같아 보인다. 참고로 유자식에서는 두 아들의 저격 어택에 신나게 맞고 사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본인도 반격 저격을 하지만 제 10회의 솔까말 토크 주제인 '부모가 황혼 이혼을 한다면 뜻을 존중한다 vs 반대한다'에서는 두 아들과 출연진인 부모들과 손범수에게 영혼까지 탈탈탈 털렸다. 그리고 "술 취해 트위터를 한다"고 아들들이 한탄하기도 했다. 참고로 정치인 시절에 아나운서 사건을 비롯한 갖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대형사고를 종종 치다보니, 부인이 남편 직장의 같이 일하는 변호사에게 "이혼 서류를 보내 달라"해서 프린트해서 식탁에 올려놓고 협박을 한다고 한다. 유자식 상팔자 10회에서 본인이 인증했다. 그리고 아나운서 사건 때문에 둘째 아들이 "세상 살기 힘들다"고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 tvN 드라마 잉여공주에 게스트로 나왔고 대사도 있는데 발연기다.
- 대학생들과 강용석은 대학토론배틀 시즌3에서 맞붙은 적이 있다. 물론 결과는 대학생들의 일방적인 패배가 대부분. 대학생들은 자신과는 경험치가 차원이 다른 강용석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강용석과 토론을 시작했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사실 문제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대학생들은 상당히 훌륭한 토론을 이끌기도 했기 때문에 강용석이 일어나서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여러분들은 검사가 아니예요. 저는 피의자가 아니구요. 지금 토론을 하시는 거잖아요. 자꾸 사실관계를 물으시는 것은 토론이 아니죠. 여러분들은 토론을 하는 것이지 취조를 하는 게 아니예요.
- SNL 코리아에도 호스트로 출연. 물론 너 고소 사건으로 디스당하는 내용이 많았다. 디스를 집중적으로 당하는 중에 떨떠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등장하는 이지예는 이지애 전 아나운서의 패러디. 이지애 전 아나운서는 2014년 9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용석 변호사와 화해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
- tvN의 신규방송 수요미식회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방송 시간이 강용석이 출연중인 TV조선의 강적들과 겹쳐서 겹치기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하고 제작발표회 전에 수요미식회 작가들과 함께 예상 답변까지 준비했으나, 제작발표회에 온 기자들은 강용석의 겹치기 출연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후 수요미식회가 2015년 4월 29일자로 9시 40분으로 이동되었으나 이번에는 본인이 MC로 하는 유자식 상팔자랑 겹치게 되어 결국 유자식 상팔자를 하차하게 되었다.
- JTBC의 속사정쌀롱에 출연했을 때 그 프로그램에서 장동민에게 누들누드의 변강쇠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 JTBC 썰전에서 성매매특별법 위헌논란을 두고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해서 죄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성매매특별법은 부당하고 매춘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
- 가로세로연구소의 김세의와 함께 n번방 방지법에 대해 사생활과 통신,비밀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법중에는 포르노물 제작,유통금지에 대한 근거가 되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 7(음란물 유포죄) 또한 포함되어 있다. #
- 완전 무명이나 다름없던 2005년 10월 14일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맥아더 장군 동상의 철거를 주장한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와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강정구를 디스하는 패널로 등장해서 그의 아들들의 KATUSA 복무이력과 미국 로펌에서 근무하는 사실 등을 들춰내 생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주기에 이른다. 이에 빡친 강정구의 아내가 토론 도중에 KBS에 전화를 걸어 강용석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나 매몰차게 거절해버린 무례함이 그의 이미지 추락 이후 새롭게 조명되기도 하였다. #
- 2015년 9월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7번 출구 인근에 너 고소 짤을[34] 활용한 광고를 내었다. 그러나 서울지방변호사회[35]가 변호사의 품위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문제 제기하여 광고부적격 판정을 받고 철거되었다.
- 20대 총선 과정에서 지역구를 옮겨서 용산구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를 노리고 선거운동을 시작했으나, 결국 2016년 2월 새누리당이 복당을 불허하면서 20대 총선에서의 정치적 재기 시도는 실패했고, 방송 재개도 하염없어졌다. 자신의 새누리당 복당에 대한 인터넷 기사에 악플 단 사람들을 고소해서 경찰 조사를 받게 하였다(용산은 기존 국회의원인 진영 전 의원이 4선에 성공).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며 쓴 혈서를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했다고 주장했다가[36] 민족문제연구소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재판의 쟁점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혈서를 조작했다는 강 씨 등의 주장이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했는가?' 였는데,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하였다.
- 강적들 출연 시 "달 착륙은 거짓이라고 믿는다"고 하였다.
- 수임한 사건을 방치하고 의뢰인에 성공 보수를 요구하다 패소하였다.#
- 3명의 아들 중 성인인 첫째와 둘째는 연세대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첫째 원준이는 경희대학교를 다니다가 반수를 해서 입학했고, 둘째 인준이는 고교 졸업후 바로 입학했다고 한다. 장남 강원준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9학번, 차남 강인준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18학번이다.
- 차남인 강인준이 군 생활중에 레바논에 파병을 갔다고 한다. 그러다 2020년 9월 10일 보이스피싱 업자가 강인준을 사칭해서 강용석의 부인이자 강인준의 엄마한테 문자로 구글 기프트 카드가 필요하다면서 120만원 어치를 피싱해갔다고 한다. 그나마 강용석의 부인이 보이스피싱 업자와 대화 도중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서 레바논에 있는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자 보이스피싱 업자가 강인준이 레바논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피싱하다 당황해서 빤스런 쳤다고 한다. 2021년 8월 31일 가세연 인싸뉴스에서 드라마 D.P.를 시청한 소감을 전하면서, 차남은 레바논에서 돌아왔고, 장남도 군복무 중이라고 밝혔다.
-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수차례 출석요구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자[37]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해 2020년 12월과 2021년 9월에 경찰에 체포된 전력이 있다. 그러면서 경기도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김동연의 기소유예 전력을 붙들고 늘어졌다.
- 2021년 9월 1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현재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에서 김용호에 이어 하차한 상태이다. 가세연은 김세의, 강용석, 김용호 3총사의 힘으로 사실상 이끌어 왔던 상황이라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2021년 9월 27일 미국현지에서 가세연 인싸뉴스를 방송하며 가세연 하차논란을 종식시킨 상태이다.
- 강용석의 공부법이 화제였다.
시험공부 시 샤프펜슬 1개, 빨간펜, 파란펜, 즐긋는 자를 준비하고 수업시간에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과 책 전체 내용중 1/3만 한가지 색으로 밑줄을 긋고 그 1/3중에 다시 추려낸 1/3만 다른 한가지 색으로 밑줄을 긋고 집중적으로 암기한다. 밑줄 치지 않은 부분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렇게 분량을 줄이면 100-200페이지를 10분만에 1회독이 가능하다.
객관식 시험은 100% 문제집으로 준비하며, 남들이 다 보는 기본 문제집 1권 + 그것보다 어려운 문제집 1권 이렇게 2권을 구매한다. 구매 후 기본 문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4회 풀기, 어려운 문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2회를 푼다. 기본 문제집을 새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며 답은 공책에 쓴다. 문제집에 문제풀이 등 필기내용이 있으면 다시 풀 때 답이나 힌트가 적혀있어 다시 공부할 수 없다.
채점은 반드시 본인이 한다. 채점할 때 학습 기억이 좋게 된다.
한 번 맞은 문제는 다시 공부할 필요 없이 틀린 문제만 다시 푼다. 한 번 맞은 문제는 대부분 다시 맞고 한 번 틀린 문제는 높은 확률로 또 틀리기 때문이다. 틀린 문제만 반복해서 풀기 때문에 문제집을 짧은 시간 내에 풀 수 있다.
주관식 문제는 기본서로 공부하고, 객관식은 오로지 문제집으로만 공부한다. 문제풀이와 이론 암기를 동시에 할 수 있다. 사법시험은 2차 주관식을 대비해야 하기때문에 처음부터 기본서를 보지만 1차 객관식용 문제집은 따로 본다.
- 그는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6시간을 넘지 않고.. 보통 4시간에서 5시간.. 공부 제대로 안된 날은 1-2시간 정도.."의 '수다도 떨지 않는' 공부를 했다고 했다. "하루에 열시간 공부했네.. 열네시간 공부했네.. 어쩌구 하는 사람은 믿지 않게 됐습니다.."라며 인간은 이런 공부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한국의 문화적 통념에 반대되는 주장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념과 반대되기는 하지만 최근 서서히 허준이 같은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이룬 수학자도 하루 4시간 연구했다고 하여 과학적으로 지지되는 주장이다. # 단지 체면 문화 등으로 공부 시간을 길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공부 능률을 올리기 위해 오히려 공부 시간을 컴팩트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런 주장은 컨디션이 좋을 때 4~6시간 정도의 집중적 공부가 적절하다고 한다.
-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강의에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고시원에서 사법시험 공부에만 전념해 3학년에 사시 1차, 4학년에 2차에 합격했다. 최근 5년간 문제를 제외한 서브노트만 봤다고 한다. 그것도 남이 작성한 노트다. 강용석보다 오래 공부하고 수많은 교재를 보던 선배들은 그렇게 공부해서 합격하겠냐고 했지만 본인만 합격했다고 한다. 고시 당일에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분량을 최대한 줄인 서브노트와 도시락만 들고 고시장으로 갔고 다른 응시자들이 놀랐으나 합격했다.
- 2012년 슈퍼스타K 시즌 4 서울 3차 예선에 웬일인지 재미삼아 출연하여 본방송에 등장하기도 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
- 김부선의 변호사로 있던 시절 구속 수감되었는데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의뢰인이 구속되고 변호사가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일은 많지만 이 경우는 의뢰인이 되려 멀쩡히 바깥을 나돌아다니고 변호사가 구속된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래갖고 변호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호사 직역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전문직종으로 유죄판결이 아닌 공소제기만 있어도 징계될 수 있다.
- 교도소에 처음에 가면 적응하라고 독방을 주는데, 강용석은 직접 독방에 어느정도 있다가 혼거방을 달라 했다고 한다. 그 시절 수감되었던 인원이 인터넷에 강용석의 수감생활을 썼는데, 교도소 첫날때부터 수감자와 교도관들과 친해지고 시종일관 재밌게 웃으면서 지냈다고 한다. 강용석 같은 유명인사는 조용히 지내기 마련인데 교도관들은 그에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수감자들하고 대화하고, 교도관들과 농담한다고 한다.
8.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4 - 2010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0 - 현재 | 제명[38] |
9.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rowbgcolor=#808080><tablebgcolor=#fff,#1c1d1f><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마포 을 | | 39,598 (39.04%) | 낙선 (2위)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36,447 (45.94%) | 당선 (1위) | 초선 [39]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583 (4.29%) | 낙선 (3위) | ||
2022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경기도지사 | 54,758 (0.95%)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17대 총선 (서울 마포구 을) | 18대 총선 (서울 마포구 을) | |
19대 총선 (서울 마포구 을) | 8회 지선 (경기도지사) | }}}}}}}}} |
역대 후보 이력 | |||||||||||||||||||||||||||||||||||||||
|
10.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현재 주요 구성원 | 김세의 |
과거 주요 구성원 | 강용석 · 김용호 · 목격자K | |
논란 및 사건 사고 | 2018~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
김건모 성폭행 및 폭행 누명 사건 · 강용석 대통령 명예훼손 체포 사건 · 김병욱 국회의원 성폭행 누명 사건 · 이준석 성접대 허위 의혹 제기 사건 · 뻑가와의 언쟁 · 복당 회유 뒷거래 공작 논란 · 가세연 여배우 피습 사건 2차 가해 논란 | ||
방송 목록 | 라이브쇼 · 리한과 수다를(리수다) · | |
컨텐츠 | 뮤지컬 박정희 | |
관련 커뮤니티 | 가로세로연구소 마이너 갤러리 | |
관련 인물 | 도람뿌 | |
취소선: 탈퇴한 구성원 혹은 폐지된 프로그램 |
서울특별시 제18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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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 공석 | 진영 | 진수희 | 김동성 | |
광진 갑 | 광진 을 | 중랑 갑 | |||
권택기 | 추미애 | 공석 | 홍준표 | 유정현 | |
중랑 을 | 성북 갑 | 성북 을 | 강북 갑 | 강북 을 | |
진성호 | 정태근 | 공석 | 정양석 | 최규식 | |
도봉 갑 | 도봉 을 | 노원 갑 | 노원 을 | 노원 병 | |
신지호 | 김선동 | 공석 | 권영진 | 홍정욱 | |
은평 갑 | 은평 을 | 마포 갑 | |||
이미경 | 이재오 | 이성헌 | 정두언 | 강승규 | |
마포 을 | 양천 갑 | 양천 을 | 강서 갑 | 강서 을 | |
강용석 | 원희룡 | 김용태 | 구상찬 | 김성태 | |
구로 갑 | |||||
전여옥 | 권영세 | 이범래 | 박영선 | 안형환 | |
동작 갑 | 동작 을 | 관악 갑 | 관악 을 | 서초 갑 | |
전병헌 | 정몽준 | 김성식 | 김희철 | 이혜훈 | |
서초 을 | 강남 갑 | 강남 을 | 송파 갑 | 송파 을 | |
고승덕 | 이종구 | 공석 | 박영아 | 유일호 | |
송파 병 | 강동 갑 | 강동 을 | |||
김성순 | 김충환 | 윤석용 | |||
* 중 나경원 사퇴 (2011.9.28.) * 동대문 갑 장광근 의원직 상실 (2012.3.15) * 성북 을 김효재 사퇴 (2011.8.24.) * 노원 갑 현경병 의원직 상실 (2011.6.10.) * 은평 을 문국현 의원직 상실 (2009.10.22.) * 강남 을 공성진 의원직 상실 (2011.6.9.) | |||||
◀ 제17대 제19대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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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유정현 | 진성호 | 정태근 | 강용석 | 전여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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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0월 24일.[2]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조부 강복용(康福龍) 대까지는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의 곡산 강씨 집성촌에 살았다고 하며 # 부모님은 둘 다 호남 출신이라고 한다. #[3] 제주파(곡산계) 39세. 나이에 비하면 항렬이 높은편이다.[4] 2024년 12월 6일, 집행유예 확정으로 4년동안 변호사 활동이 금지된다.[5] 강용석 공약위키[6] 2022년 8월 9일기준 구독자 23.3만명[7] 법무법인 넥스트로 티스토리[8] 한자: 尹瑗卿. 함안 윤씨(咸安 尹氏) 윤재기(尹在基)의 딸이다.[9] 지적재산권법 전공[10] 석사 학위 논문: 디지털화와 저작권법 : WIPO조약을 중심으로(지도교수 정상조, 1998)[11] 법학 학사 학위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1년제 단기 석사 과정으로 주로 외국 법조인들을 위한 과정이다. 지원한 다른 로스쿨은 다 떨어지고 하버드 로스쿨만 붙었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 변호사 시험은 떨어졌다고.[12] 2023년 3월 30일 KNL 방송중 밝힘[13] 제8전투비행단 및 합동참모본부에서 복무했다.[14] 본인이 정동교회에 출석 중이라고 2019년 10월 22일 가로세로연구소 오전 방송에서 밝혔다.[15] 그런데 블로그에선 리처드 도킨스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성인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읽고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막내 세준이에게 직접 천국과 지옥은 산타클로스 같은 거라며 없다고 가르쳐 주기도. 단, 기독교 특정 교파에 대한 소속이 그 교파의 신학, 심지어는 유신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16] 양두옥(梁斗玉)의 딸이다.[17] 이러한 활동을 반영해서, 첫 선거인 17대 총선 선거 포스터에서 '인권 변호사'를 강조하였고, 후보 이력에도 소액주주운동 사실을 적어놓았다.[18] 그래도 나름 책도 내고 자신의 특기인 매스컴 활용도 하며 당대표에게 섹드립도 하며 바쁘게 여기저기 눈도장을 찍었다. 어쨌던 당시도 드문 30대 연령의 국회의원이었다.[19] 당시 가까운 지인들의 말을 들으면, 고학력에 국회의원이라는 신분과 달리 소탈하고 유쾌해서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솔하고 수위 높은 발언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해서 상당히 당혹스러웠다고도 하며, 문제의 '아나운서라면 다 줘야 된다' 발언이 중앙일보 기자의 제보와 기사화로 터지자 '결국 올 게 왔을 뿐이다'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평했다. 그 후 불륜이나 고소 등으로 바닥을 찍으며 망가질 때도 주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대부분 선을 그었다. 당에서도 아끼는 신진 정치인이었다면 결코 강제출당시키지 않았을 것이다.[20] 절대로 42.9%의 오타가 아니다. 이 처참한 득표율로 강용석은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21] 복당 신청 당시 서울시당에서는 복당 승인되었으나 최고위 의결에서 거부되었다.[22] 경기고 시절에 교내 TV방송을 주로하는 영상방송반 활동을 하였고 서울대에서도 고시공부 이전 잠깐 교내 방송반에 몸 두면서 이미 매스컴의 위력과 그 활용법을 나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긍정적인 활용보다는 자기PR이나 나이에 맞지 않게 '일단 튀고보자'라는 경박한 의도로 인기몰이하자는 게 문제다. 황색언론의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병폐를 대담하게 적극 활용하는데 능숙하다.[23] 이 때의 모습은 이전 모습과는 완전 달리 순수하고 건전한 열정의 정치신인의 모습은 아예 없고, 떨어진 인기와 신뢰를 회복하려고 아귀처럼 안간힘을 쓰기만 했다. 아는 사람은 하나같이 이 때부터 강용석이 회복불능으로 망가졌다고 평하기도 한다. 실제 이 문서에 첨부된 선거포스터의(맨 밑에 '역대 선거 벽보' 펼쳐보기)사진들을 봐도 초선 때 모습에 비해 무소속 출마 사진은 인상이 많이 일그러져있고 보기 안스러울 정도로 탐욕이 넘친다. 인생이 바뀌면 인상부터 바뀐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24]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입당 신청자가 아닌 복당 신청자인 경우에만 최고위 심사를 거친다.[25] 그나마 당선된 민주통합당 정청래 후보가 단독 과반 득표로 당선되면서 팀킬의 책임은 면할 수 있었다.[26] 참고로 역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출마한 경우는 1회 지선 때의 임사빈 후보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다.[27]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TV토론은 지지율 평균 5%를 넘기지 못하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민생당 후보만 참여 가능하다.[28] 강연회는 간간이 진행했으나, 연구나 정책제안 기능은 거의 없었다.[29] 비슷한 동네에 살았던 연예인이 개그맨 이봉원과 박수홍이다. 둘 다 그 인근의 염리동-대흥동 일대에서 살았다고 하며 막상 강용석과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30] 그 때는 서울대학생이면 잘 살건 못 살건 '과외알바'를 했다. 80-90년대 주 2회 4시간 기준으로 보통 20만원. 참고로 당시 서울대 한 학기 등록금이 50만원 정도이고 학생식당 밥이 500원, 자취방 월세가 70,000원을 안 넘었다. 그러니 주 4시간 투자로 월 20만원은 엄청 큰 수입이었다. 과외 두세개씩 뛰는 학생은 재학 중 가족들 부양하고 졸업 후 취업하며 집도 장만하는 경우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전두환 시절 속칭 '몰래바이트'라 불리던 음성과외는 노태우 집권 이후 대대적으로 양성화 되면서 당시 서울대 과외선생은 없어서 못 구하던 초호화 수요 사태였다. 노태우가 88년에 취임했고 강용석이 88학번이니 자신은 과외를 법적으로 해선 안 될 시기에 고등학교까지 마쳤고 대학 가자마자 일류 과외선생이 되는 최고의 시대적 운빨을 누린 세대다.[31] 잘 안 알려진 사실로, 강용석 부모는 둘 다 전라도 출신이다.[32] 결국 강용석은 새누리당 복당에 실패했으며, 새누리당에서는 당시 용산의 현역 의원이던 진영이 컷오프되어 여군 출신 친박 황춘자가 공천되었다. 이후 진영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공천을 받게 되었고, 3%p 차로 의원직을 지키게 되었다.[33] 졸업도 안 했는데 마포구 의원 시절 신석초 동창회 총무를 역임했다.[34] 원래의 사진은 2011년 11월 8일 국회에서 조경태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 촬영된 것이다. 강용석 vs 조경태, "너 집에 가" 고성 설전 당시 상황 영상(2016년 1월 방송).[35] 강용석이 소속된 변호사회.[36]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도 같이 주장했다.[37] 다만 답변서를 보내는 형태로 대응을 했다고 한다.[38]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인한 제명.[39] 2010.7.20. 한나라당 제명 (아나운서 비하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