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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21:31:50

이철희(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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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05c><colcolor=#fff> 문재인 정부 제5대 정무수석비서관
이철희
李哲熙 | Lee Chul-hee
파일:이철희 수석.jpg
출생 1964년 12월 23일 ([age(1964-12-23)]세)[1]
경상북도 영일군
(現 경상북도 포항시)
본관 경주 이씨
재임기간 문재인 정부 제5대 정무수석비서관
2021년 4월 16일 ~ 2022년 5월 9일
링크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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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05c><colcolor=#fff> 가족 부모님[2]
3남 2녀 중 막내[3]
아내, 슬하 2남
학력 금정초등학교 (졸업)
동래중학교 (졸업)
동인고등학교 (졸업 / 7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 석사[4])
한신대학교 대학원 (정책학[5] / 박사[6])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7]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약력 김한길 국회의원 보좌관
대통령비서실 정책2행정관 (국민의 정부)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8번 /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권한대행[8]
민주연구원 부원장
지식디자인연구소 소장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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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시사평론가 시절2.3. 썰전 출연2.4. 더불어민주당 입당2.5. 국회의원 활동2.6. 방송계 복귀2.7. 청와대 비서관 활동2.8. 20대 대선 이후
3. 논란
3.1. '무적논리'
4. 여담5. 선거 이력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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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 출신 정치인으로 제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문재인 정부에서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한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고, 중앙 정계의 언저리를 있으면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과도 두루 인연을 쌓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라는 작은 정치 컨설턴트 사무소의 소장으로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나 역시 그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높여준 건 JTBC 썰전이다. 이 시기 보수 진영의 패널을 맡았던 강용석과 더불어 진보 진영의 패널로서 썰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한창 썰전의 패널로 잘 나가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손을 잡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8번에 공천받았고 당선되어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김종인 비대위 시절에는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 생애

2.1. 학창 시절

1964년 12월 23일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남북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9]

2.2. 시사평론가 시절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실제로 번듯한 정치 연구소 소장이라기보다는 전화 받고 사무실 지키는 직원 하나 둔 개인 사무실에 간판 하나 달아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썰전에 출연하기 시작한 후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연구소에 부소장도 생겼다.[10]

그리고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정국 당시, 한겨레 TV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해 김어준과 날선 토론을 벌여 김어준의 눈에 띄게 되었고[11], 그 후 고정 패널로 안착하여 대선이 끝나고 프로그램이 없어질 때까지 출연하게 된다.

진보 성향의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이 운영하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진행했다. 그리고 종편인 채널A의 '아침 신문쇼 돌직구'에도 고정 출연 했었다. 2013년 10월부터 평일 오후 6시 16분부터[12] 오후 8시까지 TBS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4년 2월 "뭐라도 합시다"와 "누가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윤여준, 이상돈 공저)라는 서적도 냈다. 2015년에는 "이철희의 정치썰전: 보수와 진보를 향한 촌철살인 돌직구"와 "7인의 충고 : 이철희가 따져 본 진보 집권 전략"을 출간. 이 가운데 7인의 충고는 Daum미디어오늘에서 기획하여 이철희가 '논과 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것들을 모아 낸 것인데, 정작 미디어오늘에서는 중간에 수록을 하다 말았고, 인터뷰 전문은 책이나 여기에서 볼 수 있다.

SBS에서 2015년 7월 26일 방송된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편의 한 부분에서 토론 및 토의의 사회자로 출연하였다.

2.3. 썰전 출연

파일:이철희썰전.jpg
썰전 출연 당시
썰전의 고정 출연한 이후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썰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 하다. 썰전 덕분에 팬클럽(!)도 생겼다고 한다. 김구라강용석, 이준석과 '하드코어 뉴스깨기'를 맡았다. 보수 성향의 강용석, 이준석에 맞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대변한다. 사회비판적, 이상지향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 이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강용석과 꽤 심각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강용석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다만 이걸 칭찬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철희가 처음 썰전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파트너가 강용석이라고 하자 '그럼 나는 이거 안 하겠다' 라고 했었다는 걸로 봐서는, 강용석을 아주 그냥 말도 못 섞을 사람으로 본 것. 그나마 그 정도는 아니라는 뜻에 가깝다.

사실 썰전을 하면서도 그 이외의 언론 인터뷰,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성향이 달라, 오히려 방송을 할 때의 상호 대화패턴의 호흡은 맞지만, 일상생활의 호흡은 맞지 않는다.", "방송을 1년 넘게 같이 했으면 친해질 만도 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와 나는 그렇지 않고, 사적인 만남과 친분을 가지는 사이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 거리감이 꽤 있다.", "살아온 길,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었다.

한편으로는 썰전에서 강용석이 이철희의 예상보다 토론주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온 티가 날 때 긍정적 평가를 했던 적이 많아서(강용석의 설명을 듣고 "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아왔어?"라고 하는 식) 사적으로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거나 하는 의미라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고, 방송인으로서의 성의있는 태도에 대해서만 인정하는 걸로 해석하는 게 유력하다.

토론으로 겨루어보고 싶은 상대로는 이혜훈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언급한 바 있다.

같은 대학 출신이고 또 동향인 전직 대통령 그분을 시간될 때마다 언급하며 깐다.

E.E. 샤트슈나이더라는 학자를 좋아해서 그의 책과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13]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14] 또한 학부 시절 최장집 교수에게 배운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 교수 역시 저서에서나 강연에서 대의제 민주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

전반적으로 온건 합리적인 리버럴 스탠스를 가진 것과는 달리 사관엔 이덕일류 노론사관을 맹신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저서 <뭐라도 합시다>와 썰전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노론으로, 이는 친일 단정 군사 독재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12월 24일 새정치민주연합이 이 소장을 내년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할 총선기획단장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다른 기사에선 성사 직전까지 왔다고 한다.#

2016년 1월 7일 방송분(148회)으로 썰전에서 하차하였다. 해당 회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에 대해 노코멘트를 하였다. 고별방송날 썰전에서 약 3년간의 활약을 감사하는 의미로, 이철희의 외모를 본딴 캐리커쳐 느낌의 특별 모형이 붙어 있는 형태의 큰 감사패를 특별제작하여 고별식 선물로 주었다. 이철희도 대중인지도가 무명에 가까웠던 자신을 유명 스타 평론가[15]로 만들어준 썰전에 감사인사를 하며 떠났었다.

2018년 8월 13일, 노회찬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공석이 된 진보 패널로 2년반만에 복귀했다. #

2019년 2월 24일 방송분(302회)에서 여가부 방송 지침 논란 부분에서 진선미 여가부 장관이 과도하게 뭇매를 맞고 있다면서 옹호하였다. 그 이유로 내세우는게 바로 세계경제포럼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들고 나오면서 이걸 줄이려고 뭐든 하는것인데 언론이 과도하게 비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 성 격차 보고서가 여성부, 여성단체들이 내세우는 자료 중에 가장 대표적인 왜곡 통계라는 것이다.방송비판기사 대부분의 국민이 여가부가 아이돌 외모까지 규제하는것에 비판하고 하는 있는 마당에 이러한 왜곡된 자료를 가지고 하는 이철희의 주장은 그저 진영논리로 정부를 방어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 밖에 볼 수 없다. 다만 이런식의 무리한 정부옹호는 현직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상 불가피했을 수 있다. 함께 썰전에 출연했던 박형준 교수는 박종진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토론 상대로서 이철희에 대해 아무래도 여당 국회의원인지라 발언이 그리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이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박형준 교수의 진심인지, 아니면 이철희 의원에 대해 에둘러하는 비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례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많은 시청자가 지켜보는 썰전에서 정부에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에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2.4.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철희 소장은 2016년 1월 20일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16]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더불어민주당 입당 당시 비노계의 수장으로 불리던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이나 같은 친노 인사인데도 18대 대선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잔뜩 날을 세웠던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의 인물을 밀어준 발언들 때문에 처음 입당 당시에도 '비노'가 아니냐는 시선 속에서 입당을 했다.

그렇게 첫인상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 인재 영입 당시 대부분의 인물들이 '당이 원하면 어디든 가겠다' 라고 하며 개인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던 반면, 이철희 전 소장의 경우에는 '지역구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13분 25초부터)라고 발언하며 낙선의 위험을 안아야 하는 지역구보다 상대적으로 당선이 수월한 비례대표를 노리고 있던 것 때문에 이미 정치 세계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고, 또 썰전 등을 통해 충분한 인지도와 지지를 확보한 사람이니 지역구 선거로 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본인의 가장 큰 목표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지역구 사안도 챙겨야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보다는 전략 수립에 몰두할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실 다선을 노리려면 처음부터 지역구에 나가는 것이 수월할 만큼, 다선보다는 정권 교체를 1차적인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무를 맡게 된 이후의 공천 잡음과 관련되어 있지 않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입당 직후 문재인 의원의 부산 공천을 주장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고[17], 2월 초에는 '막말, 운동권 공천 배제'를 주장하였는데 정청래 의원의 공천 배제의 가장 큰 근거가 된 게 '막말'이었으며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대거 공천 배제당하다보니 이철희 전 소장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비례대표 논란이 있는데, '더벤저스'라고 불리며 당내 활동에 적극적이던 영입 인사인 김빈 디자이너가 예심에서 5분 면접 후에 탈락당한 반면, 더민주 당직자가 첨삭지도를 해 준 것과거 국민의당 발기인이었던 상황임에도 청년비례대표 결선대상자로 지정되어서 논란이 된 최유진 예비후보가 이철희 전 소장의 대학원 시절 제자라고 밝혀지면서 '자기 사람 끼워넣기'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18]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박영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영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19]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영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3월 15일, 이러한 루머들에 대해 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신은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박영선 문서에 적혀 있기도 한 녹취록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며 그 당시 이야기한 내용은 외부 상황의 심각함과 기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후에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8번 후보로 나서서 당선되었다. 국방위원회 간사와 정치발전특별위원회를 거쳐 2017 대선 민주당 전략기획부본부장으로도 활동했으며, 20대 국회 국방위원회의 전반기 여당 간사로 일했다.

2.5. 국회의원 활동

비례 대표 당선 이후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정권교체와 더불어 세대교체, 정치교체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안 지사뿐"이라며 "안희정은 품이 넓고 싸가지 있는 진보"라고 말했다. 진영을 넘어선 협치와 대연정을 강조하는 안 지사의 원칙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안희정 캠프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청산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크게 경시한 것이기에 이후 자신이 지지하던 안희정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물론 이철희 본인이 이기는 곳에 가는 것에 연연했다기 보다 본인에게 맞는 쪽으로 간 것이기에 이철희 본인도 이후 경선결과에 토를 달지 않고 승복, 이후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적 표현에서 대통령다운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국민의당의 김경진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 대표 사례.

이후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MB 정부 시절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문건을 결제한 사실을 공개하는 등 여당의 공격수로 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해 치며 정력적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KEPD 350 도입이나 중고 치누크 도입 논란을 지적했는데 잘못 짚으면서 이미지를 좀 까먹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같은 당 출신인 김광진 전 의원이 반박하기도 했다.

2017년 경실련 선정 국정감사 우수 의원에 선정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래구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20] 다만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며 지역위원장에 공모하지는 않았다.[21] #

2019년 8월에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특혜 의혹에 관하여 김종민 의원이 “누구나 노력하고 시도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 라고 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열려있는 기회라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그 기회를 부당하게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2019년 10월 15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우리 정치는 공동체 해악, 창피하다" 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가 해답(solution)을 주기는커녕 문제(problem)가 돼버렸"으며, ”정치인이 되레 정치를 죽이고, 정치 이슈를 사법으로 끌고 가 그 무능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다. 이제는 검찰이 정치적 이슈의 심판까지 자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블로그에 쓴 내용은 수 년전부터 정치학계에서 회자된 "정치의 사법화"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정치적 갈등이 정치 영역에서가 아닌 사법부에서 해결되는 현상을 개탄하며 불출마 한다는 요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철희 의원의 이력상[22]이제와서 뒤늦은 반성문을 쓰는 진의가 무엇이냐며 비판하고있다.[23]

이틀 뒤인 10월 17일 법제사법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총장에게 이철희 의원은 “검사 오래 하셨는데 검찰에 대한 중립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 중 어느 정부가 그나마 중립적인가. 그나마 중립을 보장하고 있나. (답이) 어렵냐”고 물었지만, 윤 총장은 이에 대해 "제 경험으로만 하면 이명박 정부 때 중수부 과장으로 특수부장으로 3년간 특별수사를 했는데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 없이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박근혜 정부 때는 뭐 다 아시는거고...”#라며 답변하려하자 이 답변을 듣고 황급히 해당 질의를 끊었으나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는 다 아시는 거고”라고 덧붙였다.

이후 다음 날 윤석열 총장이 현 정부, 일체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 설명하려고 했다라고 이를 해명하긴 했으나# 저 말에 대해 당시 PD수첩 사건 당시 관계자 등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 사정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거나 그걸 지켜봤던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2.6. 방송계 복귀

2.7. 청와대 비서관 활동

2021년 4월 16일,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며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임명 직후 여러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이철희의 정무수석 임명에 대하여 국회의원 시절 여당 원내지도부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전임 정무수석들(전병헌, 강기정, 최재성 등)에 비해 정파색이 옅은 인물이기 때문에 여당의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민심을 수렴하기 위해 임명한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이 수석은 임명 당일, 인사발표 브리핑장에서 "재보궐선거의 민심을 잘 헤아려 할 말은 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4월 21일,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오찬 자리에 정무수석 자격으로 동석하였다.# 같은날, 자신이 예전에 속해있었던 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지난주 새롭게 선출된 윤호중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해 축하난을 전달했다.##

다음날에는 정의당 당사를 예방해 여영국 대표와 면담을 가졌다.#

2021년 6월, 1996년생의 박성민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을 둘러싼 특혜발탁 논란에 대해 22일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해명했다. 표창원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박성민을 지역구 대학생 위원장에 발탁한 인물로, 박성민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이에 관해 개인적 의견을 표출하거나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이철희는 "박 비서관도 당에서 활동했고, 사회적 활동하면서 평가받고 검증받은 사람이라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박성민을 변호했다. 또 박 비서관 임명에 대한 2030 남성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처음에는 남녀 공동 비서관제를 하려고 했다”, “20·30대 남녀 공동으로 해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해보려고 했는데 (적합한) 남성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일 (박성민 비서관이) 실망시켜드리면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

그럼에도 논란이 커지자 24일 재차 방송 인터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의견을 들어보니 아주 (일을) 잘하고 진솔하게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더라. (당에서) 장담한다고 해서 발탁했다"고 설명하는 한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사석에서 자신에게 '여권 청년 여성 인사들 중에는 박 비서관이 괜찮고 훌륭하다고 본다'고 했다고 임명의 근거를 밝혔다.# 이어 이튿날인 25일 또다시 라디오에 출연해 박성민이 그간 "방송활동을 통해서라든지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하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내부 쓴소리를 하며 사회적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아무리 되돌아봐도 납득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4.7 재보궐선거 패배 후 청와대에서 이철희 정무수석을 팀장으로 하는 청년TF를 출범시켰다는 점, 기존에 시민사회수석실 산하에 있던 청년비서관을 이번 인사와 더불어 정무수석 산하로 직제 개편했다는 점, 그리고 인사에 대해 논란이 일자 직접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박성민을 공개적으로 적극 옹호하고 보증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이번 박성민 청년비서관 인사는 이철희 정무수석의 작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8. 20대 대선 이후

민주당이 패배하여 정치활동이 불투명해졌다. 이미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었기에 정치에 복귀를 하려면 지역구 국회의원, 자치단체장정도는 당선되어야 정치적으로 재기가 가능한데 과거와 달리 민주당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쉽지는 않다. 게다가 7대 지방선거와 21대 총선때 본인이 원하면 충분히 기회가 있었음에도[24] 그 기회를 걷어찬 것을 봤을 적에 선출직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정치 활동이 아닌 평론가로서 다시 활동한다면 어느정도 입지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 JTBC썰전의 1차 전성기를 이끌었을 정도로 방송에 능숙하고 국회의원청와대 근무경험까지 생기면서 과거보다 이야기거리가 더 많아진 것도 큰 자산이다. 실제 국회의원 임기종료 후 거의 바로 라디오 진행 등의 방송활동을 했던 것을 보면 정치활동보다는 방송활동 등에 좀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5월 17일에는 제주도를 방문해 제주시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응원했다.#. 이때문에 일각에서 이 전 수석이 정치 행보를 계속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지만, 선거 후보를 지지하는 응원이나 연설은 연예인들도 개인적인 친분만 있다면[25] 할 정도로 흔한 것이기에 이를 정치 복귀 신호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실제 이 이후로는 별다른 정치적 행보는 없다. 거기에 당초 예상되었던 방송활동도 없이 비교적 장기휴식에 들어갔다. 비록 구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언변과 높은 인지도, 그리고 합리적 성향의 이미지가 강점인만큼, 22대 총선에서도 재기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2023년 8월 15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혀 사실상 총선 불출마선언을 했다.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직격 인터뷰 다만 정치은퇴는 아니며, 정치적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반통령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정치참여에 대한 질문에 '압수수색' 당하지 않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겠다는 답을 내놨다.

2024년 2월 1일 YTN에 출현해 선거를 앞두고 여당 국민의힘에서 '운동권 청산'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이철희 전 의원은 운동권 청산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고 많은 국민들 중에 거기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문제는 지금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왜 쌓이느냐. 운동권 특권정치가 청산 안 돼서 그런 거 아니잖아요. 국정실패가 운동권 특권정치 때문에 생긴 건 아니잖아요. 이 얘기는 할 수 있으나 본인이 해야 될 주과제부터 하고 이 얘기를 해야 된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들어보면 민주당에 대한 불만, 또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호감, 이런 것도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면 민주당으로서는 선거에 이기는 길은 간단합니다. 이런 비호감이나 불만들을 해소해 버리면 되거든요."라고 지적하면서 "서로 숙제는 안 하면서 상대방이 잘못됐기 때문에 못났기 때문에 저를 찍어주세요 하는 거잖아요."라며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

3. 논란

이철희는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 지명 후 한 달간 보도된 양이 네이버 조사로 118만건”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색 건수를 들쭉날쭉 내놓는 네이버 뉴스 시스템의 허점을 감안하지 않은 주장으로 드러났다. 실제 한 달간 보도량은 2만3000여건(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 기준)이었다.#

2018년 국회운영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조국에게 3가지 죄가 있다고 말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 청산 등 구체제를 혁파하는 데 앞장선 죄, 둘째, 과거처럼 서슬퍼런 사정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지 않은 죄, 셋째, 그 숱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죄” #1 #2

파일:이철희.jpg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 열려 있는 기회라는 건 맞다" 라고 발언하였다.#

21년 6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인 문준용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 기술 융합지원 사업에서 6,9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것이 논란이 되자 "문준용 세계적 인정받는 아티스트… 지원금 문제 삼으면 인권침해"라고 말하며 예술계를 변호했다.#1 #2

21년 7월 13일, 조국을 두둔하며 "조국에 가해진 사회적 지탄 과해…정치적 광기"라는 발언을 했다 #

3.1. '무적논리'

저도 OOO이(가) 문제가 없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러~나~
이걸 OOO 개인의 문제로만 봐야 하느냐?
전 꼭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애초에 이 OOO를 만든 장본인이 누굽니까?
지금 집권여당전신들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현 정부와 여당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이렇게 봐요.

이철희가 흔히 쓰는, 쟁점을 비틀어서 남 탓으로 돌리는 화법. 국면전환용 수사이다. 썰전 등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불리한 사실이 있으면 항상 썼다. #

논지의 핵심을 슬쩍 틀어버리는 게 포인트. 위 예시로 보면, 개인의 문제를 사회 문제나 국가 문제로 바꿔서 빠져나간다. 화두 자체가 폭넓은 경우이거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할 때만 주로 사용한다. 물론 방점이 '사실 인정'에 찍힌 게 아니라 '역공'에 찍힌 거라서 의도가 순수하다고는 볼 수는 없으나,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면서 논박을 펼친다는 토론의 기초에 걸릴게 없기 때문에 상대방도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진다.

그나마 토론 태도 등을 가지고 지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면 감정싸움 국면으로 가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는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26]. 토론에 능통한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판국이라 토론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 겪게되면 그야말로 벙찌게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그 주제는 더이상 논의가 어려워지면서 결국 주제를 바꾸거나 아예 토론이 종료되기도 한다. 당연히 상대방의 의견개진을 막는 효과가 있으니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토론을 전개하면 건전하고 건설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다시 안 볼 사이거나 무미건조한 사이일 때나 써먹을 수 있는 화법.

4. 여담

5.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6,069,744 (25.54%) 당선 (8번) 초선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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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민등록상 생일은 1966년 3월 29일이다. 왜 훗날까지 주민등록 정정을 안했는지 모르지만, 주민등록나이 때문인지 군대도 대학교 3학년이 되는 시점인 1986년에 갔다고 한다. 대학은 84학번이다.[2] 모친께서 한국나이 41세에 낳으셔서 40살 차이라고 밝혔다. 모친은 고등학생때, 부친은 대학생때 작고하셨다고 한다. 막내라서인지 모친께서 형들보다 더 귀여워 해서, 어릴때 항상 본인을 매일 끌어안고 길렀다고 한다.[3] 바로 위의 형인 2살 차이의 작은 형님을 어릴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평생 너무 좋아하다 못해, 아예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릴때는 싸우기도 했지만, 성인이 된 뒤 마음 속 우상으로 삼으며 인생의 여러 순간마다 그 형님이라면 어떨지 생각하고 본받으려고 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형님은 2010년대 초반, 50대 초반의 나이에 질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연히 당시에도 너무나 슬펐지만, 10년이 지난 뒤에도 힘들때마다 항상 그 형님이 제일 그립다고 한다.[4] 석사 학위 논문 :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1990).[5] 비교정치 전공[6] 박사 학위 논문 :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2020. 8).[7] 원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었지만 정계 은퇴 후 방송 진행자를 맡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진행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탈당했다.[8] 진선미 원내수석이 여성가족부장관으로 임명됨에 따라 사퇴하여 이철희 당시 기획부대표가 원내수석을 대행.[9]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10] 서양호 씨인데 2011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정당인 출신이다. 이철희가 정계에 입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장직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이후 서양호 소장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중구청장으로 당선.[11] 이 시기 이철희보다 먼저 출연하였고,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 바로 김용민의 소개로 출연하였던 고성국이다. 그리고 고성국이 친박 성향을 확연히 드러내면서 빠진 자리를 이철희가 메웠다.[12] 앞의 15분 동안은 6시 뉴스를 진행한다. 7시에도 뉴스가 진행되어 7시 6분에 시작한다.[13] 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보통 샤슈나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 발전은 다양한 정당들의 공정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당 정치에 깊이 관심 있는 사람치고 샤트슈나이더 영향 안 받은 사람은 드물다. 이철희는 샤트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참고로 샤트슈나이더는 대의제 민주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인데, 현 새정련 주류인 친노계가 직접, 참여적 민주정 강화를 지향하는 입장임을 보면 애초에 정당 운영 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 갖고 까는 건 아니지만[14] 한국에서 100%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가장 노골적으로 이슈화했던 사람은,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였다. 물론 정부의 압력에 당하여 실패했지만.[15] 실제로 썰전에 출연한지 수개월만에 길거리에서 초등학생들이 자신을 알아봐서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건 훗날의 썰전 멤버였던 전원책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썰전의 리즈시절은 1차 시기가 이철희-강용석의 2년, 2차 시기가 유시민-전원책의 1년이다. 이들이 빠지고 나서도 인기가 없지는 않았어도 폭발적이던 과거에 비해 많이 내려갔었다. 2차 시기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혼돈과 대반전의 총선, 최순실게이트와 촛불혁명,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이어지는, 온 국민이 정치뉴스를 매일 볼만큼 21세기 정치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역동의 시기였기에 정치평론의 인기가 당연히 올라가는게 당연해보이는 감도 없지 않지만, 1차는 진짜 무명이던 이철희가 말을 잘하는 것과, 두 사람의 케미가 재미있어서 생긴게 크다. 1차 리즈 이후 강용석의 불륜 사건에 의한 하차로 썰전도 인기 하락세를 타고, 이철희 혼자 고정출연(상대 출연자들은 단순 게스트 형태로 매주 바뀜)을 할때도 최소한의 시청률을 만들어준건, 이철희의 뛰어난 언변과 토론주도 능력이었다.[16]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17] 대권주자 또는 당의 핵심인원으로 전국에서 선거지원 활동을 나서야 하는 인물들을 지역구 선거에 투입할 경우 지역구 선거유세에 발이 묶이기 때문에 전국지원유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 볼 수 있다.[18] 김빈 디자이너는 비례대표 심사 이전에 비례대표 예비후보로서 자신을 홍보하면서 자신의 본명인 '김현빈'이 아닌 예명 '김빈'이라는 이름을 쓴 적이 있다. 본명을 기재하지 않았다면 선거법 위반 사항이다. 이것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19] 물론 이때 유시민 작가가 제시한 것은 정황 증거일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하긴 했지만, 정작 유시민 작가는 민주당을 오래 전에 떠난 사람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즉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민주당을 오래 전에 떠났다곤 해도 친분이 있는 인사는 아직 있을 것이고,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다.[20] 동래구 지역위원장을 맡고있던 김우룡 지역위원장은 동래구청장에 당선되었다.[21] 사직동 소재 동인고등학교 출신으로 지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22] 정치외교학 전공자이며,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하기도 하였다.[23] 썰전 출연 당시에도 국회의원직을 제안받았지만 다 거절하였고, 앞으로도 정치 안 할 것이라고 발언 하였으나, 결국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24] 7회 지선에서는 부산 동래구청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며 21대 총선에서는 당에서 지역구 출마요구를 받고 있었다.[25] 김한규 전 비서관과는 함께 시사예능을 진행한 적도 있고, 그때 인연을 바탕으로 청와대 정무비서실로 발탁할만큼 친한 사이다.[26] 그리고 이렇게 감정싸움으로 가게되면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으로인해 한동안 토론회는 고사하고 평론프로그램도 거의 끊기게 된다. 평론가 입장에서는 본인의 밥줄이 날라가는 셈이다.[27] 평론가 시절 방송 토론에서 상대가 억지 논리로 나올 때도 이철희는 처음엔 참으면서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상대의 큰 허점이 표출될 때)에 빠르게 치고 나오며, 막판에 상대와 합리적 대화가 안 되어가는 시점에는 같이 깽판을 치더라도 상대 빈틈을 파고들 타이밍을 안 놓치고 맹공격하곤 했으며, 상대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받아치는 공격조차도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면서 해 왔다. 역으로 소위 막가는 언쟁을 끝낼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칼같이 끊어버리면서, 거기서 상대 혼자 더 떠들면 상대만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봐도 상대가 먼저 깽판을 쳤고, 이철희는 그에 잘 맞선 사람이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주었다. 여유롭게 대화하다가도 타이밍을 정확히 잡아내서 토론 분위기와 추세를 바꾸는 기술이 능란하다는게, 이철희의 언변이 가진 가장 절대적인 강점이다.[28] 특정 주제에서 의견 갈등이 커져 말다툼처럼 되면 상대에게 계속 강하게 말하다가도, 의견 차이가 적은 다음 주제로 넘어갈때는 짧은 시간에 금방 차분하게 바뀌어서 조근조근 말하며 언제 싸웠냐는듯 부드러운 분위기를 주도하여 만들기도 했다.[29] 말투가 어눌하거나 목소리 톤이 별로거나 하는 등 대화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조차도 상대의 뜻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내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비언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즉, 언어라는 요소만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에는 그 사람만의 포스카리스마도 포함된다. 한국 근대 민주화의 뿌리였던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 연예인들이 그 말투를 흉내내어 당대에 가장 유행한 개그 패러디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발음이나 말투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생 수많은 진보 인사들을 연설과 대화로 매료시켰던, 한국 정치사 최고의 웅변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대한민국사 최초의 필리버스터도 김대중이 했다.) 그와 대화했던 정치인들의 경험담들을 보면 짧은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우리 박동지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을 못해도 말을 잘한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물론 이런 건 김대중처럼 정치인생의 험난한 경험과 그런 고난들을 수없이 극복한 뒤에만 얻어지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많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초선의원 이철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30] 이준석이 꽤 오랜 기간 썰전의 패널로서 활약했는데 이때 인연으로 초빙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