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권성주(축구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권성주 權聖主 | Kwon Seong-ju | |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979년 6월 24일 ([age(1979-06-24)]세) |
부산직할시 남구(現 부산광역시 수영구) | |
거주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 |
가족 | 부친 권철현, 형 2명 |
학력 | 부산 광남초등학교 (졸업) 부산 대천중학교 (졸업) 부산중앙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행정학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석사[2]) 도쿄대학 대학원 (국제정치학 / 박사[3])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제7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 |
신체 | 183cm |
소속 정당 | |
현직 |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주)게이트웨이 투 코리아 대표이사 |
약력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강사 리브컨설팅 수석컨설턴트 바른미래당 수영구 지역위원장[4] 바른미래당 대변인 바른미래당 혁신위원 유승민 희망22 대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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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정당인. 당적은 국민의힘으로, 권철현(전 부산 사상구 3선 국회의원, 전 주일대사)의 3남이다. 친유로 분류된다.2. 생애
1979년 6월 24일 부산시 남구(現 부산광역시 수영구)에서 아버지 권철현의 3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산 광남초등학교, 대천중학교, 부산중앙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행정학과 복수전공)를 졸업하고 2008년 8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2008년부터 2009년까지 금호산업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강사, 동서문제연구소, 그리고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 이후 일본계 기업경영 컨설팅회사인 리브컨설팅에서 수석(치프)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
3. 정치 활동
바른정당 창당 때부터 함께 해왔으며, 2017년 3월 바른정당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유승민 후보의 부산지역 선거 유세단장 등 부산 지역의 대선캠프 중책을 맡아 활동해왔다.
그 이후에도 유승민 후보의 단일화 설, 자유한국당 복당사태 등에서도 상당히 강경한 자강파에 편에 섰다. 2차탈당사태 당시 정치는 쪽팔리면 끝이다. 그런데 나는 쪽팔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후 '쪽팔리면 끝이다' 는 그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 바른정당 대변인으로 임명되었고, 2018년 2월 14일 김철근 전 국민의당 대변인과 함께 바른미래당의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대변인 논평을 깔끔하고 유머러스하게 내는걸로 알려져 있다. 이전 바른정당 대변인(현 바른미래당 공동수석대변인)이었던 유의동 의원은 문학적으로 논평을 했고, 권성주 대변인은 풍자로 정곡을 찌르는 스타일이라는 평.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 창당 후 가끔 신용현 의원의 논평이 논란에 휩싸일 때 당 지지자들이나 당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유의동과 권성주만 대변인으로 남겨라"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더듬어민주당 짤방. 바른미래당에서 직접 만든 짤방이다.[5] |
예를들어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성추행 사태에 휩쓸린것도 모자라 입을 닫고있다며 더듬어 민주당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홍문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바른미래당은 대구시장에 후보를 내지 말라'고 하자 홍문표로 3행시를 지었는데 홍준표대표는 문재인대통령 표창감이다 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터지자 2018년 3월 6일 여전히 더듬어민주당이라며 확인사살했다. 이 '더듬어민주당' 드립은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더듬어만진당' '더불어만진당' 등 각종 각종 바리에이션(...)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민병두 의원이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에 연루되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당내 성교육부터 진행하라고 비판하였다.
2018년 1월부터 바른정당 팟캐스트 <바담바담>의 진행을 맡았는데, 2월 13일 바른미래당이 창당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6]
2018년 5월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특별시장 후보 캠프의 대변인을 추가로 맡게 되었다.
당시 안철수 캠프 측에서 삼고초려하였고 당내 융합이 필요했던 시점에 '유승민 대표가 보내서 왔다' 며 당 통합을 위해 대변인직을 맡았다.
그러다 이른바 '송파' 공천 논란으로 유승민 계 안철수 계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자 중앙당 대변인직에 집중하겠다며 안철수 후보 캠프 대변인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다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나서 '강력한 야당, 선명한 야당'이 되어야 한다며 대변인직을 사임했다.[7]
특히 북한산 석탄 유입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 하였고, 이후 7일 연속 논평을 내며 야당에서 유일하게 홀로 이슈를 주도해 나갔음에도 당 지도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은 여기까지' 라는 사퇴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8]
대변인으로서 논평이나 발언 문제에 책임지는 형태가 아닌, 스스로의 뜻으로 대변인직을 내려 놓은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대변인 사퇴 후에는 대학 강의와 기업경영 컨설팅 업을 겸하면서 지역구인 부산 수영구에서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그의 '바른도시 포럼'을 통한 봉사활동과 지역에 알려지지 않은 영세 상인을 위한 '우리동네 미안한 맛집' 등의 SNS 활동도 펼치고 있다.[9]
2019년 6월 28일 바른미래당 주대환 혁신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링크
이후 혁신위 안건에 손학규 대표에 대한 퇴진 여론조사가 안건으로 올라오자, 손학규계인 주대환 위원장이 갑자기 사퇴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권성주 위원은 바른미래당 혁신위 정상화 활동을 위해서 단식투쟁을 했다. 이후 손학규 대표의 측근으로부터 모욕과 공격을 받으며 단식투쟁을 이어가다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권성주 부산시 수영로지역위원장 페북글 퍼옴)
손학규 님을 고소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취하하려 합니다.
당대표께서 당규를 지켜달라 외쳤던 지난 11일 간의 단식.
그 4일 째 되던 날, 손학규 님의 정무특보와 특별위원장 등이 저의 면전에 심한 욕설을 뱉고 모욕하였습니다. 그 영상은 한 매체의 것만 130만 조회를 넘을 만큼 손학규 님의 측근과 지지단체 대표들에 의해 조롱당하는 모습은 수많은 국민에게 전파되었고, 그 이튿날엔 당대표 비서실을 통해 들어온 또 다른 측근이 제 뒤에 저를 ‘개’로 묘사하는 현수막을 붙이고 비하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고소하라 하였습니다.
전국 곳곳의 많은 분들이 국회로 올라와 그들을 혼내주겠다 분노하였습니다.
괜찮다 했습니다.
우리가 상대할 사람들이 아니니 참아 달라 했습니다.
대신, 측근들과 비서진들에 의한 심한 모욕 및 조롱에 대해서 손학규 님께서 정식으로 사과해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사과는 없었습니다.
11일 째 되던 날, 당규에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혁신안 상정을 회피하고 최고위 회의장을 빠져나가려는 손학규 님을 막아섰습니다. 전 날부터 호흡이 불편할 만큼 어지러웠던 상태에서 당규를 지켜달라, 당대표가 당규를 지키지 않으면 당은 존속될 수 없다 수없이 외쳤습니다. 10분 가량 대치 끝에 결국 손학규 님과 장진영 비서실장은 다른 출구로 나갈 것을 권하는 당직자의 제안을 거부하고 저를 밀쳐 공간을 만들며 퇴장했고 그 과정에서 저는 쓰러졌습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서 온 몸에 경련이 일었고, 마치 수십마리 지렁이 때가 뒷목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느낌에, ‘이거 정말 잘못되는 것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그 후로 발생한 이명과 두통은 결국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12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고 아직까지 간헐 적 이명 현상으로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워낙 전국적으로 전파된 사건이었기에 또다시 사람들은 손학규 님을 고소하라 했습니다. 화가 나서 못 참겠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고소 대신 재차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제 정신과 진단 사실을 알리면 협박처럼 들릴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정치의 영역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누차 정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사과는 없었고 대꾸할 가치 없다는 말만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혁신위 이기인 대변인을 고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진영 실장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피해자 코스프레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실제 고소장을 제출하였다는 내용이 언론에 뿌려졌습니다.
자기 주장에 의해 만들어진 혁신위원회, 자신이 추천해 임명한 위원장이 무책임하게 줄행랑 친 혁신위원회를, 목숨 걸고, 사비 들여가며 고군분투해 지키고 있던 혁신위원을 그 비서실장이 고소하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했기에 장진영 실장이 이기인 대변인을 고소한 이틀 후 8월 7일, 손학규 님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제출하였습니다.
곧장 언론과 피고소인 측에 알리고 장진영 실장의 고소를 취하하라 하려도 했지만 질 낮은 겁박처럼 보일까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내 ‘정치적’ 문제로 법정에 서는 것은 어떠한 사유에서도 지양되어야 하기에 공개하지 않고 홀로 삭히며 장진영 실장이 고소를 취하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제 몸은 또 망가졌습니다.
쓰러져 병원에 이송 되고 일주일가량 지났을 때부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안과에서 받은 진단은 ‘외상에 의한 우안(우측 눈) 백내장’ 이었습니다.
제가 최근 한 쪽 눈을 깜빡 거리는 이유입니다. 두 눈을 뜨면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이 흐릿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목전에 두는 연말에나 수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진단..
안과를 나와 한창을 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내가 저들과 싸우려고 정치하는가’...
저의 백내장 진단 사실 또한 처음 공개합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들의 사과를 받고 싶었고, 그들의 정치적 양심과 인간적 도리를 믿고 이기인 고소를 취하해줄 것을 기다리고 싶었기에 고소인 조사 출석도 보류 요청하며 기다렸습니다.
‘가능한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싶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그런데 결국 이기인 대변인에게 피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오더군요.
장진영 실장에게 문자로 물었습니다.
‘이 와중에 당내정치문제로 우리끼리 법정까지 서야하겠느냐. 취하할 생각 없느냐’고 말입니다.
돌아온 답은.
‘내지를 때 시원하게 내질렀으니 책임도 쿨하게 져라’
이 문자를 본 순간 저는 포기하였습니다.
이들을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이 남아있는 정치인으로 보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당의 인적 자산들을 지키고 선당후사 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보고 싶었던 마지막 바람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서 손학규 님을 고소하였었고 보류해왔던 사실을 알렸습니다. ‘더 이상 정치의 영역에서 대화가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법정에서 뵙자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순간까지도 적반하장의 억지와 겁박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할 뿐입니다.
이제 저의 손학규 님 고소는 취하하고자 합니다.
이기인 대변인의 고소를 취하하길 바랐던 고소였으나 이제 그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롱당하고 상처입고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당내 정치문제를 제 스스로 법정으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은 혁신위원 모두 피고소인 이기인과 함께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정치의 영역에서 대화가 불가능하고 그럴 가치도 없는 이들은 법정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원동지 여러분들과 지지자 분들께서 그토록 바래왔던 ‘진짜 바른미래당’ 대신,
가짜들에 의한 미래 없는 당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음에 죄송하단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손학규 님을 고소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취하하려 합니다.
당대표께서 당규를 지켜달라 외쳤던 지난 11일 간의 단식.
그 4일 째 되던 날, 손학규 님의 정무특보와 특별위원장 등이 저의 면전에 심한 욕설을 뱉고 모욕하였습니다. 그 영상은 한 매체의 것만 130만 조회를 넘을 만큼 손학규 님의 측근과 지지단체 대표들에 의해 조롱당하는 모습은 수많은 국민에게 전파되었고, 그 이튿날엔 당대표 비서실을 통해 들어온 또 다른 측근이 제 뒤에 저를 ‘개’로 묘사하는 현수막을 붙이고 비하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고소하라 하였습니다.
전국 곳곳의 많은 분들이 국회로 올라와 그들을 혼내주겠다 분노하였습니다.
괜찮다 했습니다.
우리가 상대할 사람들이 아니니 참아 달라 했습니다.
대신, 측근들과 비서진들에 의한 심한 모욕 및 조롱에 대해서 손학규 님께서 정식으로 사과해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사과는 없었습니다.
11일 째 되던 날, 당규에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혁신안 상정을 회피하고 최고위 회의장을 빠져나가려는 손학규 님을 막아섰습니다. 전 날부터 호흡이 불편할 만큼 어지러웠던 상태에서 당규를 지켜달라, 당대표가 당규를 지키지 않으면 당은 존속될 수 없다 수없이 외쳤습니다. 10분 가량 대치 끝에 결국 손학규 님과 장진영 비서실장은 다른 출구로 나갈 것을 권하는 당직자의 제안을 거부하고 저를 밀쳐 공간을 만들며 퇴장했고 그 과정에서 저는 쓰러졌습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서 온 몸에 경련이 일었고, 마치 수십마리 지렁이 때가 뒷목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느낌에, ‘이거 정말 잘못되는 것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그 후로 발생한 이명과 두통은 결국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12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고 아직까지 간헐 적 이명 현상으로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워낙 전국적으로 전파된 사건이었기에 또다시 사람들은 손학규 님을 고소하라 했습니다. 화가 나서 못 참겠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고소 대신 재차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제 정신과 진단 사실을 알리면 협박처럼 들릴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정치의 영역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누차 정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사과는 없었고 대꾸할 가치 없다는 말만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혁신위 이기인 대변인을 고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진영 실장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피해자 코스프레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실제 고소장을 제출하였다는 내용이 언론에 뿌려졌습니다.
자기 주장에 의해 만들어진 혁신위원회, 자신이 추천해 임명한 위원장이 무책임하게 줄행랑 친 혁신위원회를, 목숨 걸고, 사비 들여가며 고군분투해 지키고 있던 혁신위원을 그 비서실장이 고소하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했기에 장진영 실장이 이기인 대변인을 고소한 이틀 후 8월 7일, 손학규 님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제출하였습니다.
곧장 언론과 피고소인 측에 알리고 장진영 실장의 고소를 취하하라 하려도 했지만 질 낮은 겁박처럼 보일까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내 ‘정치적’ 문제로 법정에 서는 것은 어떠한 사유에서도 지양되어야 하기에 공개하지 않고 홀로 삭히며 장진영 실장이 고소를 취하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제 몸은 또 망가졌습니다.
쓰러져 병원에 이송 되고 일주일가량 지났을 때부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안과에서 받은 진단은 ‘외상에 의한 우안(우측 눈) 백내장’ 이었습니다.
제가 최근 한 쪽 눈을 깜빡 거리는 이유입니다. 두 눈을 뜨면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이 흐릿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목전에 두는 연말에나 수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진단..
안과를 나와 한창을 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내가 저들과 싸우려고 정치하는가’...
저의 백내장 진단 사실 또한 처음 공개합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들의 사과를 받고 싶었고, 그들의 정치적 양심과 인간적 도리를 믿고 이기인 고소를 취하해줄 것을 기다리고 싶었기에 고소인 조사 출석도 보류 요청하며 기다렸습니다.
‘가능한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싶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고.
그런데 결국 이기인 대변인에게 피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오더군요.
장진영 실장에게 문자로 물었습니다.
‘이 와중에 당내정치문제로 우리끼리 법정까지 서야하겠느냐. 취하할 생각 없느냐’고 말입니다.
돌아온 답은.
‘내지를 때 시원하게 내질렀으니 책임도 쿨하게 져라’
이 문자를 본 순간 저는 포기하였습니다.
이들을 일말의 양심과 책임감이 남아있는 정치인으로 보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당의 인적 자산들을 지키고 선당후사 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보고 싶었던 마지막 바람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서 손학규 님을 고소하였었고 보류해왔던 사실을 알렸습니다. ‘더 이상 정치의 영역에서 대화가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법정에서 뵙자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순간까지도 적반하장의 억지와 겁박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할 뿐입니다.
이제 저의 손학규 님 고소는 취하하고자 합니다.
이기인 대변인의 고소를 취하하길 바랐던 고소였으나 이제 그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롱당하고 상처입고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당내 정치문제를 제 스스로 법정으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은 혁신위원 모두 피고소인 이기인과 함께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정치의 영역에서 대화가 불가능하고 그럴 가치도 없는 이들은 법정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원동지 여러분들과 지지자 분들께서 그토록 바래왔던 ‘진짜 바른미래당’ 대신,
가짜들에 의한 미래 없는 당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음에 죄송하단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듯 손학규 대표와 대립을 거듭하다가 2019년 12월 4일, 결국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변혁이 주도하는 신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바른미래당 탈당 이후 새로운보수당에 참여하였다.
새로운보수당, 자유한국당이 미래통합당으로 합당하면서, 21대 총선 당시 권성주는 본인이 기반을 갈고 닦은 수영구에 출마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된 현역 유재중 의원이 지역 중견 건설사 회장의 아들인 전봉민 전 시의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넘기면서 권성주와 불공정 경선을 붙게 했고, 건설사 일가의 막대한 자금력과 유재중 의원 등의 조직력을 총동한 전봉민 전 시의원에게 경선에서 패배해 총선 출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당시 불공정 공천 과정은 이후 탐사보도 MBC 스트레이트에 상세하게 보도되었다.
4. 여담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잇따른 성추문에 대해 "더듬어 민주당"이라는 전설의 드립을 내면서 유명해졌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등 일부 친유 혹은 친안 커뮤니티에서는 더민주 쪽에서 성추문이 터지면 항상 등판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 재미있게도, 부친 권철현의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더민주 오거돈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서로 특별한 얘기가 없는 걸 봐서는 부자간의 다른 정치적 행보를 서로 존중하는 듯 하다. 비슷한 예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 브렉시트 강경파로 분류되는 반면 그의 동생인 조 존슨 전 의원은 질서있는 브렉시트를 지지했고, 이 때문에 조 존슨이 사무차관직을 사퇴했다. 반면 여동생인 레이첼 존슨은 보수당에서 탈당했고, 친EU 주의자이다.
- 당 내에서 지상욱 여의도연구소장과 이성권 전 의원과 같이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권은 와세다대학 국제관계학 석사를 취득했고, 고노 다로의 비서로 근무했다. 지상욱은 도쿄대학 건축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세 사람 모두 일본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게, 권성주와 지상욱은 연세대학교, 도쿄대학 출신이지만, 이성권은 부산대학교,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반대로 고향은 지상욱은 서울 출신이고, 권성주와 이성권은 부산 출신이다.
- 병역은 육군 병장 만기제대로, 자대배치를 7사단에 받았다. 원래 처음에는 논산훈련소로 입영하라는 영장을 받았으나 전방에서 군생활을 원했기 때문에 입영을 연기하였고 결국 강원도 화천군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등병 시절에는 아버지 권철현 전 의원이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는데, 저녁 점호시간 때 뉴스에 나오는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 자대배치를 받고 내려진 첫 보직은 인터넷 교육병이었다. 보직 배치 후 이튿날 일손 부족을 호소하던 작전과 선임병과 장교에게 간청하여 대대 작전병, 지휘통제병, 교육병, 정훈병을 동시에 맡게 되어 개고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 2019년 8월 24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인 조민 논문 논란 사태에 관해 올린 글이다. 도쿄대학 유학갈 때의 일인데, 도쿄대학에서는 대한민국 대학의 논문을 인정하지 않아서 석사학위가 무효 처리 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비정규 과정인 연구생으로 들어가서 석사급 논문을 하나 더 쓰고 나서야 입학을 할 수 있었다. #
[1] 복야공파-감정공세손(監正公) 유경(有慶)1계 38세 상(相), 근(根)자 항렬(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고조할아버지 이름이 34세 재(載)자 항렬을 써서 이름이 권재수(權載銖)며, 할아버지 이름이 36세 영(泳)자 항렬을 써서 권영두(權泳斗)다. 다음은 출처 사진들이다. [2] 석사 학위 논문 : 민족주의 강화 기제와 한국 언론 :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대한 국내 언론 프레이밍 중심으로(2008. 8).[3] 박사학위논문 : 戦後日本の歴史認識をめぐる政治過程と日韓関係への含意 (2015)[4] 2018. 2. 13 ~ 2018. 6. 14[5] 다만 정작 짤에 있는 추미애, 문재인은 해당 성비위에서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6] 고정 출연진은 김정수 전 청년대변인과 이준석 노원구 병 지역위원장 등이다.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에는 김수민, 김철근, 김혜빈, 장지훈 등 기존 국민의당 측 청년 당직자들도 출연하였다.[7] 참조.[8] 참조.[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