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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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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파일:성모마리아.jpg
파리의 성모[1]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기원전 18년경(?)
헤로데 왕국 나자렛
(現 이스라엘 북부 관구 나자렛)
사망[2] 30년 또는 33년경(?) (향년 48/51세)[3]
로마 제국 유다이아 속주 예루살렘[4](?)
(現 팔레스타인 쿠드스 현 예루살렘)
배우자 나자렛의 요셉[5]
자녀 예수[6]
종교 그리스도교[7]
축일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안식 축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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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CCCC,#212121>한국어성모(聖母)[9]
천주의 성모[10]
하늘의 모후
동정녀[11]
영어Mary
Virgin Mary
Mother of God
Theotokos
Queen of Heaven
Mother Mary
Mary Mother of God
Mary Mother of Jesus
Our Lady
Blessed Virgin Mary
라틴어Mater Dei
Regína Cǽli
Sancta Maria
Beata Maria Virgo
그리스어Θεοτόκος (/θe.oˈto.kos/)
Παναγία (Panagiá, /panaˈʝia/)[12]
Δέσποινα (déspoina, /ˈðɛ.spi.na/)[13]
Παρθένος Μαρία (Parthenos Maria)[14]
히브리어מרים, אם ישו (미르얌 임 예슈)
아람어ܩܕܝܫܬܐ ܡܪܝܡ (Qaddishtā Maryam)
러시아어Дева Мария
Богородица
프랑스어Ste.Marie
Notre Dame
이탈리아어Madonna("My Lady")
아랍어 (Maryam al-ʿadhrāʾ)
مريم بنت عمران (Maryam bint ʿImran)
튀르키예어Bakire Meryem
Meryem Ana
일본어聖母(せいぼ)マリア
生神女マリヤ[15]
중국어玛利亚(Mălìyà)
}}}}}}}}}||
1. 개요2. 상세3. 성모 공경
3.1. 가톨릭의 입장
3.1.1. 성모몽소승천성모무염시태에 대해3.1.2. 성모 공경에 대한 왜곡과 오해
3.1.2.1. '공경'과 '흠숭'
3.2. 초대교회3.3. 5세기3.4. 중세 시대3.5. 19세기3.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3.7. 한국 가톨릭 교회와 성모 마리아
4. 정교회의 성모 교리
4.1. 정교회-가톨릭 성모 교리 비교
5. 평생 동정
5.1.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의 입장5.2. 개신교 입장5.3. 이슬람 입장
6. 개신교의 관점7. 이슬람의 관점8. 유대교의 관점9.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의 관점
9.1.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9.2. 프랑스 동브 그룹
10. 성모 마리아의 축일11. 마리아론12. 기타13. 대중 문화에서의 성모 마리아
13.1. 종교 영화에서의 성모 마리아13.2. 기타 창작물에서의 마리아
14. 관련 어록1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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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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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합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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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는 기독교이슬람교에서 성령에 의해 동정녀의 몸으로 임신[16]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스도교 종파 중 가톨릭,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 성인 중의 으뜸으로 공경[17]하며 개신교에서도 이들 종파만큼은 아니지만 성모공경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파도 있다. 관련된 신학으로는 마리아론이 있다.

2. 상세

보라, 이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권능 떨치는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도다. 그분의 이름 거룩하여라.
루가 복음 1,48-49 (200주년신약성서)

외경[18][19]성전에 따르면 아버지는 요아킴, 어머니는 안나이며 둘 다 성인(聖人)이다.

가톨릭에서는 '여인들 중 가장 복되신 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크게 공경한다. 이는 하느님께만 드리는 숭배인 흠숭지례보다는 아래지만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지례보다는 위인 상경지례를 드리는 것이다. 정교회[20] 역시 성모 마리아를 크게 공경하며, 이는 성인을 공경하는 전통이 있는 종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성공회 역시 가톨릭과 정교회 만큼은 아니나 성모 마리아 신심 전통이 존재한다. 주로 고교회파 및 앵글로가톨릭 성향과 상당수 광교회 성향 신자들에게서 두드러지며, 신심의 정도로 보면 가톨릭 및 정교회 신자들 못지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개신교적 신앙을 강조하는 '저교회파' 성향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 공경의 전통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존재하며, 다수의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 내지 상당수 자유주의 개신교 신자들의 입장과 가깝다.
그외 개신교에서는 신학 및 교단 전통, 지역적 맥락에 따라 마리아의 대접에 차이가 있는데, 전반적으로는[21]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보다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적다. 특히 영미권 청교도 및 개혁교회와 그에 영향을 받은 개신교파들, 그리고 상당수 비 에큐메니칼적인 오순절 교단에서 마리아 공경 및 신심 전통은 강하게 터부시되며, 심한 경우 이단시되기까지 한다. 하나님의 어머니 칭호를 교리적으론 거부하지 않으나 그 칭호가 역사적 주교제 내지 고교회 성향의 루터교단들을 제외하고는 전례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으며, 경우에 따라 용법에 있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가령 영미권 청교도 및 개혁교회에 신학적 뿌리를 두고 있는 개신교단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 칭호의 사용이 터부시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감리회도 그 초창기에는 선구자이자 성공회 사제였던 존 웨슬리 신부가 이 칭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물론 여타 개신교단과 마찬가지로 현대 감리회에서 자주 강조되는 사안은 아니나, 교리적으로 부정되는 사안도 아니다. 한편 '하늘의 모후'Regína Cǽli 칭호는 일부 루터교를 제외하고는 개신교 전반에서는 전례적으로나 개인 신심 차원에서나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어머니 칭호보다도 더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성모 신심을 존중하여 성모송(Ave Maria)을 받아들인 루터교단에서도 성공회와는 달리 전구를 청하는 마지막 구절[22]은 보통 뺀다.[23] 또한 각 개신교 교단의 신학전통에 따라, 다양한 인식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 이전에)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의 '신심' 정도까지는 아니나 그래도 루터교, 일부 감리교, 유럽대륙의 일부 개혁교회, 상당수 에큐메니컬 개신교 및 일부 자유주의 개신교에서 마리아에 대한 시각이 비교적 유화적이다.

야고보 복음서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자신의 탓이라 여긴 요아킴은 기도를 위해 은둔했고, 안나는 남편의 은둔과 자식이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 하느님에게 "만일 아이를 낳게 해준다면 당신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부부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안나가 놀라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부부는 나자렛 성벽에서 기쁨의 재회를 맛보고, 그 뒤 태어난 딸이 성모 마리아라고 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안나의 기도대로 3살 때 예루살렘의 성전에 맡겨진다. 성모 마리아가 안나와 요아킴이 성벽 아래에서 만났던 그 때 잉태되었다는 이론은 아래에 언급될 '무염시태'와 연관된다.

성모 마리아의 처녀 잉태는 그리스어로 파르테노게네시스[24]로, 아래의 구약 성경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윗 왕실은 들어라.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도 성가시게 하려는가?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3-14, 공동번역성서)
이 구절의 '처녀'를 단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은 위의 처녀가 히브리어로 Almah(עלמה)라는 단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처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Betulah(בתולה)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성서비평학자들은 이 구절은 이사야가 당시 앗시리아아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아하스 왕에게 두 강대국 중 누구도 의지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징조로 아들 히스기야가 태어날 것이라고 질책하는 내용으로 본다. 여기에 대한 일반적인 반론은 젊은 여성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전혀 특별하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므로 주님이 보여주는 징조로 볼 수 없다는 견해이다.[25]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새로 펴낸 성경에서는 히브리어의 뜻을 살려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사야 7,13-1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논란이 되는 이사야서와는 달리 마태오 복음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어로 Παρθενο(Virgin, 동정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사야서에서 '젊은 여자'라는 뜻으로 저 단어를 썼다 한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동정녀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마태오 복음서를 비롯한 복음서들은 처음부터 그리스어권에서 그리스어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며, 그래서 구약 인용도 그리스어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어권 유대인들[26]에게 널리 쓰이던 구약 성경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제작된 70인역인데, 이 책에서 이사야서의 이 구절을 Παρθενο(동정녀)로 번역한 것이 그대로 복음서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이미 유대교 공동체 안에서 이 구절을 처녀 출생의 신적인 기원을 가진 메시아 도래의 예언으로 이해하는 전통이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 국가들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아랍계 여성의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이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구약에 나오는 '미리암'의 변형으로, 친족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짓는 유대 지방의 풍습에 따라 유대인 문화권에서도 많이 사용되며, 복음서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이 3명 등장한다. 영어권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인 Mary(메리) 역시 여기서 나온 이름이다.

반대로 예수는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성자의 이름으로 여겨지며 서유럽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인명(人名)으로 사용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스페인어권과 중동 그리스도교 문화권 등에서는 여전히 Jesús(헤수스)라는 이름이 흔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축구선수 헤수스 나바스가 있다.

학계에서 유명한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닌 인물은 예수를 만나 회개한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가 기적을 일으켜 부활한 라자로의 누이이자 예수의 수난 전 그의 발에 나르드 향유를 바르는 막달리아 마리아가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유일한 여제자였단 설도 있으나, 이는 소위 위경에 적힌 것으로 일반적으로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시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이 쓰였던 점을 감안하면 성모 마리아나 다른 마리아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에게만 드리는 최고의 공경인 흠숭지례의 대상인 성부, 성자, 성령를 제외하면, 성인 중에서 가장 우선 가는 이로서 신자들이 지향해야 할 가장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자리매김한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남편인 나자렛의 성 요셉과 함께 대한민국수호성인, 정확히 말하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호칭[27]으로서의 수호성인이다. 여러가지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호칭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며, 한국 가톨릭의 중심지인 명동성당의 주보성인이기도 하다. 광복절성모 승천 대축일[28]이 겹치는 점 역시 한국 가톨릭계에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 성공회의 중심지인 서울대성당에서 성 니콜라와 함께 공동 주보성인이기도 하다.

3. 성모 공경

3.1. 가톨릭의 입장

마리아론문서 참조.

3.1.1. 성모몽소승천성모무염시태에 대해

파일:성모_마리아의_대관식_벨라스케스_프라도미술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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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교부신학자가 엄격한 성경 해석을 근거로 조사하고, 교회에 의해 진리로 선포된 교리이다.

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록 공식적인 의견 표명은 아니었지만, 요한 복음 14장 3절을 성모승천에 대한 교의적 근거로 인용하였다. 성모승천 교의 역사의 끝자락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사도헌장《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거룩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모든 입증과 확신은 거룩한 전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성모승천은 교회의 초창기부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믿어져 오던 전승이었다.

여기서 전승(傳承)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하는데, 전승이란 "넓은 의미에서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 교회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모든 것, 곧 성전(聖傳)과 성경(聖經) 모두"를 말한다.

교회의 초창기부터 수많은 교부와 신학자의 치열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확립되고, 교회에 의해 권위를 지닌 진리와 가르침으로 선포됐으며, 또한 구세사(救世史)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관계, 교회 안에서의 성모 마리아의 지위에 대한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성모 마리아 이전에 최소한 2명 이상의 사람이 이미 승천, 즉 육신과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 올림을 받은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례를 봤을 때, 성모 마리아 역시 그러한 들어올림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그렇게 큰 무리라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가톨릭 교회는 다음의 구절을 보고 이미 성모승천이 예정된 일이었다고 보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에게 죄가 없다면, 죽음이 그녀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며 지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여 낳았으며, 그를 양육하였으며, 십자가 밑에서 그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며 곁을 지켜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기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각별히 여겨 에녹과 엘리야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어머니의 육신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렸을 것이다.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의 발판 앞에 엎드리세.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시편 132,7-8)

성모 마리아는 새로운 언약궤이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처로 이끌었듯이, 그리스도 역시 하늘로 승천하여 자신의 거처로 백성들을 이끈다.

요한묵시록 12장을 보면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12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여자와 용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는데, 한 여자가 해를 둘러 걸치고, 달을 그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서 나타났습니다. 머리 일곱 개와 뿔 열 개가 달린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머리에는 왕관을 일곱 개 쓰고 있었습니다.
그 용은 그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서,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막 해산하려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삼켜 버리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느님께로, 곧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고,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거기에는 천이백육십 일 동안 사람들이 그 여자를 먹여 살리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곳이 있었습니다. (묵시 12,1-6)

요한묵시록 12장에서 여인[30]이 낳은 사내아이는 하느님에게로, 그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다고 나온다. 여기서 들어 올려져 하느님에게로 갔다는 뜻은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31]
사내아이가 하늘로 올라가자 은 그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쫓아갔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 그 뱀을 피하여 그곳에서 일 년과 이 년과 반 년 동안 보살핌을 받았다. (묵시 12,13-14)
여기서 ‘큰 독수리의 두 날개’라는 말을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저으며 새끼들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들어 올려 깃털 위에 얹어 나르듯…. (신명 32,11)
위의 말씀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독수리는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두 날개는 하느님의 두 천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고 자기 처소로 날아가 뱀을 피하여 피신했다는 구절은 곧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에 의해서 하늘나라에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 제기하는 "성모몽소승천 교리는 1950년에 새로 생긴 것이다"라는 비판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가톨릭과 밀접한 성미술(聖美術)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성모승천을 주제로 그려진 성화는 비오 12세교황무류성의 이름으로 믿을 교리로 선포한 20세기를 훌쩍 넘은 14세기에도 등장하고(심지어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이다.)[32], 이탈리아에 정말 널리고 널린 성모승천이라는 의미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Santa Maria Assunta)라는 이름을 지닌 성당은 르네상스 이전 시대부터 버젓이 지어지고 있었다. 개신교 측 입장 문단에서 성모승천이 가톨릭 내부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렀다는 언급이 있었으나, 성모승천은 고대에도 확인되는 교회 전승이다. 근대에 교의 확정 과정에서 가톨릭 신학계 내부에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논쟁은 전승의 유무나 성모승천 명제의 가톨릭적 참거짓 유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타 교단과의 대화 과정에서 반발을 부를 것이라는 사목적 배려의 문제였다.[33]

당장 몽소승천 교의가 교황무류성을 통해 확정(1950년)되기 이전의 교리서에서도 몽소승천은 교리로서 가르쳐지고 있다.
[문] 어떤 사람의 몸이 죽음에서 일으켜지고 천상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습니까?[34]

[답] 원죄 없는 혼과 결합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몸은 몽소승천의 특권으로 천상으로 드높여지고 받아들여졌습니다.[35]
『볼티모어 교리문답』Baltimore Cathechism 1941년판 178항
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예수가 묵시록에 나오는 이 사내아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은 다름 아닌 동정 마리아를 뜻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수세기에 걸쳐 발생한 성모 발현, 즉 가르멜 산의 성모, 과달루페의 성모, 뤼뒤박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 등을 살펴보면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태양 내지는 발밑에 달을 두고 있다는 점, 머리에 12개의 별로 된 관을 썼다는 점 등 묵시록에서 언급된 여인의 모습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교부들은 창세기를 검토하면서 성모승천을 확신하였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동정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인류 구원 사업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들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공동 운명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창세 3,15)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사탄과 마리아 사이에, 타락한 천사들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적개심이 형성되리라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되었다.

성모승천 교의를 입증하는 모든 논리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는, 인류에게 죄를 가져다 주었던 첫 인간인 아담하와와 달리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주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에 이어, 그의 구원 사업에 최초로 동참하게 된 두 번째 하와로서 마리아가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8세기의 교부 성 제르마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정 마리아가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잉태된 순간 받게 되는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세 요소가 태중에서부터 이미 완전무결해져야만 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에 의해 제2의 하와로서, 즉 티 없이 깨끗한 상태로 창조되어야만 했다. 그녀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육신은 원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만 했다.

아담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의 뜻에 불복종했을 때, 하느님에게서 받은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영혼과 정신 그리고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의 세례를 통해서만 새로운 마음과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구원의 희망을 꿈꿀 수 있다. 누구나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없다. (요한 3,5)

그런데 성경이나 교회의 전승 그 어디에서도 마리아가 여느 인간처럼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마리아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이미 새로운 몸과 마음을 지님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녀는 원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원죄에 전혀 물듦 없이 잉태되도록 하느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36]

마리아가 육신과 정신,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 온전히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지지하는 성경상의 증거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하와가 죄를 범한 후 그녀에게 한 말에서 엿볼 수 있다. 하느님은 하와에게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창세 3,16)
라고 예고하였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원죄를 물려받지 않고 흠 없는 상태에서 예수를 낳을 때는 원죄의 산물로 나타나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성경에도 고통 없이 아이를 출산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산고가 오기 전에 사내아이를 출산한다. 누가 이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 한 나라가 단 한 번 만에 태어날 수 있느냐? 한 민족이 단 한 번 만에 태어날 수 있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이 오자마자 자식들을 낳는다. (이사 66,7-8)

앞서 언급된 내용들은 구체적으론 예형론(豫形論, Typologia)에 기반한다. (1코린 10,6.11; 히브 10,1; 1베드 3,21.)
우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마리아를 평범한 여인으로 보는 데 반해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대 교회에는 하와와 마리아의 유사점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와가 인류의 타락에 고유한 역할을 했듯이 마리아도 인류의 구원에 고유한 역할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에 속아서 불순종과 죽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동정 마리아는 믿음과 기쁨을 가져왔다.
유스티누스,「유다인 트리폰과의 대화」 100 [2세기]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렸다. 동정녀 하와가 불신으로 단단히 묶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는 믿음으로 풀어주셨다.
이레네우스,「이단 반박」 3.22.4 [2세기]

여인들이여, 정결하신 마리아를 찬미하라. 그들의 어머니, 하와를 향한 비난이 컸던 만큼이나, 오, 그들의 자매, 마리아에게 드린 공경은 더욱 컸도다.
시리아인 에프렘,「성탄 찬미가」 15.23 [4세기]

동정녀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다. 그러므로 동정녀를 통해서 생명이 찾아와야 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예비신자 교리교육」 12.15 [4세기]

여종이 우리를 낙원에서 쫓겨나게 했으니, 여종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찾도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시편 주해」 45.4 [4세기]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통해서 생명이 왔습니다.
히에로니무스,「서간집」 22.21 [4-5세기]

사람을 속이기 위해 여인을 통해서 독약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은총 속에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여인으로부터 구원이 쏟아졌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설교집」 51.3 [4-5세기]

이처럼 고대 교부들의 진술은 놀랍게도 일치합니다. 위에 언급된 문헌들은 특정 장소나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아프리카, 소아시아, 유럽에서 살던 교부들이 그리스어, 라틴어, 시리아어로 쓴 작품입니다.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이며 교부 전문가인 존 헨리 뉴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초기부터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그녀가 바로 두 번째 하와라는 것이다.”

마리아가 두 번째 하와라는 것을 이해하면 마리아도 하와처럼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교리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마리아가 실제로 새 하와라면, 마리아는 하와보다 더 위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깐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형론의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예형’은 신약에서 성취되는 인물보다 위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담은 예수님의 예형이지만, 아담의 타락에서 보다시피 아담이 예수님보다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다윗 임금도 참된 이스라엘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예형이지만, 밧 세바와 간음한 다윗 임금이 그리스도보다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와가 마리아의 예형이라면 하와는 마리아보다 위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창세기에서 하와가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시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은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창세 1,27-31) 그러므로 두 번째 하와인 마리아 역시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것이 이해됩니다. 하와―마리아 예형론에 따르면 마리아는 어떤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죄를 지었다면 첫 번째 하와가 두 번째 하와보다 위대한 것이 됩니다.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이 죄 없이 태어나시고 죄 없이 사셨다면, 두 번째 하와인 마리아도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고대 교부 시리아의 에프렘과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봅시다.

오직 예수님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께서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우십니다.
오 주님, 당신께는 어떠한 흠결도 없고
당신의 어머니께는 어떠한 오점도 없나이다.
에프렘, 「니시비스 시가」 27.8 [4세기]

죄라는 주제를 다룰 때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예외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넘치는 은총이 마리아에게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주님의 공로로, 의심의 여지 없이 죄 없으신 분[주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셨다.
아우구스티누스, 「본성과 은총」 42 [4-5세기]
에프렘과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이 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서(시편 51,5; 로마 3,23; 5,12-17)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오직 마리아만이 예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리아가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죄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리아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순수한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어떻게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히브 4,15) 그런데 마리아도 죄가 없으셨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마리아가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말이 마리아가 뭔가 온전히 인간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닌가요? 이 주장은 타락 이전 아담과 하와가 ‘온전히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미주 1]

이 점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과 마리아를 구약성경의 눈으로 보려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죄의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시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아담과 하와를 죄가 없이 태어나도록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 신약성경

1. 아담: 죄 없이 창조됨 ― 1. 예수님: 죄 없이 잉태되심

2. 하와: 죄 없이 창조됨 ― 2. 마리아: 죄 없이 잉태되심
아담이 죄 없이 창조되었고 하와 역시 죄 없이 창조되었다면, 예수님과 마리아 두 분 다 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예수님이 새 아담이며 마리아가 새 하와라면, 두 분 다 죄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죄가 없다고 말한다 해서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미주 2]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 언급하듯이, 예수님과 마리아를 새 아담과 새 하와로 여기는 것은 마리아가 죄 없이 잉태되셨고 죄 없이 사셨다는 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됩니다. 창세 3,15의 ‘원복음(Protoevangelium)'을 다루면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 대목[창세 3,15]을 “새로운 아담”의 예고라고 본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아담의 불순종을 넘치게 보상한다. 한편 많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은 이 ‘원복음’에서 예고된 ‘여인’을 “새로운 하와”인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로 생각한다. 마리아는 최초로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죄에 대한 승리의 은혜를 입은 분이다. 그분은 원죄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지상 생애 동안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어떤 죄도 범하지 않으셨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11항
원죄로부터 보호되었다는 가르침, 곧 ‘원죄 없이 잉태되심’이란 의미는 흔히 오해되듯 마리아의 부모님이 죄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개신교 학자가 주장하듯이 ‘아들에게 죄스러운 본성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죄를 씻은 것’도 [미주 3] 아닙니다.

(...)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신 승리에서 흘러나온 ‘특별한 은총’으로 마리아는 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리아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관한 교의를 믿을 교리로 반포했습니다. 교황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따라,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마리아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히는 모든 죄에서 보호되었기 때문에 “나의 구원자 하느님”(루카 1,47)이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이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예입니다. 마리아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가져온 것을 되돌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이 되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줍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죄 없이 사셨다는 것과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할 때에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바로 이것이 신약성경에서 하늘에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히브 12,23)이 있다고 표현한 까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까닭은 하느님께 우리를 의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의 능력으로 실제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습니다.’(로마 5,19 참조) 새 하와인 마리아는 죄 없이 창조되어, 새 창조의 의로운 삶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이 새로운 창조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묵시록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미주 1] : Mary Cunningham, Gateway of Life, 182-184 참조. Cunningham은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는 마리아를 다른 인류와 분리하며, 필멸의 존재와는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갖게 만들고, 마리아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죄 없이 창조되었지만, 그들은 온전히 인간적이었고 온전히 자유로웠다. 비슷한 방식으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그녀의 자유나 온전한 인성을 박탈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교리서」 374-379항 참조. McKnight, The Real Mary, 121과 비교. McKnight는 가톨릭 교의에 대해 옳게 논평하고 있다. “마리아의 죄 없음은 그녀가 신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공식적인 가르침에서 마리아의 죄 없음은 하느님 은총의 산물일 뿐이다.”

[미주 2] : 이 점에 관련하여 John Henry Newman의 말을 참조하라. “만일 하와가 창조된 순간부터 초자연적 내적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면, 마리아도 잉태된 순간부터 이런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추론에 어떻게 반론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이 원죄 없이 잉태되심 교의의 단순하고 문자적인 의미다. 원죄 없이 잉태되심 교의의 본질이 더도 덜도 말고 바로 여기에 있다. … 이 교의는 교부들의 가르침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곧 마리아가 두 번째 하와라는 사실이다.” Boyce, Mary, 225에서 재인용. 원문의 출처 Reverend Pusey에게 보낸 편지는, John Henry Newman, Certain Difficulties Felt by Anglicans in Catholic Teaching (2 vols,; London: 1908, 1910), 2:44-50 참조.

[미주 3] : McKnight, The Real Mary, 130-131. McKnight는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는 마리아가 어떻게 자신의 죄스러운 본성을 예수님께 물려주지 않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다. McKnight는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같은 가르침을 인용한 것은 아닌데, 사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교리는 없다.
-브랜드 피트리, 《마리아의 신비를 풀다》, 바오로딸

위에서 언급한 논리들로 볼 때 마리아의 육신은 여느 인간처럼 땅속에 묻혀 의미없이 소멸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거나 죽은 상태에서 부활하여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는 신학적 논리로 도출된다. 이 2가지 논리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교회는 유보적인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하와이자 세상의 어머니로서 티 없이 깨끗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육신과 정신, 영혼은 때가 되자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져 영광스러운 빛의 존재로 변화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보통 인간은 지금의 육신은 결국 소멸하며, 소멸하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갖기 위해서는 최후의 심판 날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창세기, 이사야서, 요한묵시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이들 성경 구절을 전부 종합해 보면 동정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내용이라 본다.

3.1.2. 성모 공경에 대한 왜곡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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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마리아께서는 성부의 뜻과 성자의 구속 사업과 성령의 모든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신다. 이로써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37]가 되시고, “교회의 전형”(typos)[38]이 되신다.
-교리서 967항
우리는 앞에서 교회와 그 기원, 사명,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마리아께 눈을 돌려, 그분 안에서 교회의 신비와 “신앙의 나그넷길”을 걷는 교회를 관상하고, 이 나그넷길이 끝난 다음 본향에 들어선 교회의 모습을 묵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끝맺음이 될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마리아께서는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 지극히 거룩하신 불가분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39] 안에서 교회를 기다리고 있으며, 교회는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이며 자신의 어머니로 공경한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신다.[40]
-교리서 972항

성당에 설치된 성모상이나 성인에 대한 전구 교리를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41]를 믿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 개신교의 프로파간다도 한몫하는데, 때로는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성모 마리아를 끼워넣는다", "비성경적이다"는 주장을 한다. 영국과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선교할 때 천주교가 마리아 믿는다고 한 소리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여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신교의 영향력이 워낙에 강하다보니 비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세상을 떠난 영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교리가 있다. 예수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 변모할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말한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루가 9,28-32)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환영을 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어떤 신학자도 모세와 엘리야를 죽은 자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은 불종을 통해 죄로 물들어 죽게 됐고, 예수를 믿고 따르면 그 죄에서 자유로워지며 죄의 결과물인 죽음으로부터 역시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기도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위배된다.

사도신경"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라는 구절은, 지상과 천국, 연옥을 모든 성도의 기도가 통한다는 의미다. 고백 기도에서도 성인의 통공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라는 말 속에서 기도는 지상과 천국, 연옥을 초월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실 수 있으신 분은 중 가장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 바로 예수를 낳은, 성부의 딸,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배필이신 성모 마리아이기 때문에 최고위 성인으로서 공경하는 것이다.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기적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보듯, 예수님은 어머니의 부탁이라면 틀림없이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며, 하느님을 경배하는 지상, 천국과 연옥의 성도 중 가장 선두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가 바로 성모 마리아이다.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였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요한 2,1-11)

그러나 영미권 반가톨릭적 단체와 한국의 개신교계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대신 경배받는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맹렬히 비방하고 있다.

개신교는 성당 입구나 마당에 성모상이 서 있는 것 역시 '마리아교'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공격을 하는데, 본래 성당 마당에는 그 성당이 세워진 곳이 순교자의 무덤이면 그 순교성인의 상을, 혹은 그 성당의 수호자의 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성당이 그 성당의 수호자 대신 한국 천주교의 수호자인 성모 마리아상을 스스로 택할 뿐이다. 천주교의 교리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존경받는 자이고, 예수삼위일체론 교리에 따라서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가르치기에, 공경과 숭배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천사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중략)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루가 복음 1장 28절과 41-42절 (공동번역성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모송, Ave Maria

성모송에는 마지막의 저희를 위해 빌어달라는 부분이 있는데.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전구(轉求)를 구하는 것으로 [42]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비는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 기도를 전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서방 교회의 기도문 중 하나인 성인 호칭 기도를 들어봐도, 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 야훼)에게는 '자비를 베푸소서'(miserere nobis)라고 하지만, 성모 마리아 이하 성인들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o nobis)라고 한다. 기도문에 따라선 '저희를 보호해주소서' 같은 형태로 기도할 때도 있으나, 성모에게 허락된 영광은 하느님에게서 유래한 것이기에, 언어적으로 명시하지 않을 뿐 근본적으로는 전구 기도이다.

또한 성모 공경은 성인 공경의 연장선이면서도, 교회론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교리서에서 썻듯이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전형(typos)이며, 실제로 요한묵시록에서도 '교회'를 '메시아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요한묵시록 12장 1-2.5절[43]

그렇기에 가톨릭 신자가 성모 마리아에게 사용하는 호칭들 다수는, 이를테면 동정녀, 그리스도의 어머니, 하늘의 모후 등등은 에클레시아(교회)에게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비유컨대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프로필 사진'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성모 공경은 그리스도 흠숭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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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앙리 드 뤼박 추기경의 저작에서 발췌한 교회 찬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 무릎 위에 앉아서 제가 모든 것을 재웠고 날마다 계속 모든 것을 깨우치는 이 위대한 어머니는 복되시나이다! 바로 그분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분의 복음을 우리 손에 쥐어 주시며 우리가 이를 해석하게 도와주십니다. ...... 거룩하신 어머니, 유일하신 어머니, 흠 없으신 어머니! 오 위대하신 어머니! 거룩한 교회, 참 하와, 산 이들의 유일한 참 어머니시여!"[44]
여기서 "거룩하신 어머니, 유일하신 어머니, 흠 없으신 어머니, 위대하신 어머니, 거룩한 교회, 참 하와, 산 이들의 유일한 참 어머니"는 바로 가톨릭 교회를 말하는데, 거의 누구나 교회 수식어와 성모 수식어가 호환됨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전형(typos)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라고 하더라도, "교회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다른 의미의 '믿음'이며, 결코 교회를 신으로 흠숭하는 것이 아님은 명명백백하다. 그렇기에 그 교회의 전형(typos)인 성모 마리아는 아무리 수식어가 붙더라도 '교회라는 면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신이 아닌데, '교회의 전형'이 신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이는 교회 신비의 "역설적" 특성 때문에 가치가 있다. 교회는 거룩하게 하는 어머니면서도 거룩해진 백성, 소집하는 주체이면서도 소집된 이들(congregans et congregata), 생명을 낳는 주체이면서도 "위에서부터 새로 난" 이들의 친교(communio), 하느님 용서를 베푸는 주체이면서도 언제나 정화되는(semper purificanda) 죄인들의 공동체, 전 인류의 종말론적 목적이면서도 언제나 힘겨운 여정 중에 있는 "작은 양떼"인 것이다. 하느님의 이 거룩한 교회는 바로 그 구조적이고 축소할 수 없는 이중적인 측면들에 따라 실제로 마리아 안에서 교회에 "맞갖은" 인격적 모습을 발견한다. 마리아께서는 "동정 성모님, 당신 아드님의 따님이시여, 어느 피조물보다도 더 겸허하고 높으신 분이시여!"[45]라 불리는 분이시다.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마르코 스프리치(번역: 박성희)

이러한 교회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성모의 중보를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다. 분명히 말하자면, 가톨릭적 관점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보자'이다. 그러나 '이차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중보자이며, 성모의 중보는 바로 이 이차적 의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중보자이시니 성모 중보 개념은 우상 숭배'라는 논리는, 중보 개념을 일의적으로 오독한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니, 사도신경에서 교회를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개신교는 우상숭배 종교란 말인가?
교회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느님이시요 동시에 참으로 사람이심을 선언하고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고백하면서도 구원 역사 안에서 사람들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당신 교회를 맡을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당신 몸의 지체들을 당신의 구원 사업, 즉 중재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즉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 또 그들의 후계자로 교회를 책임 맡은 사람들 역시 이차적인 의미에서 중재자인 셈입니다.

교회 역시도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성사, 다시 말해 중재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사도 신경 안에서 “성인들의 통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인들이란 교회가 시성식을 치르고 성인으로 선포한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함께하는 의인들을 모두 지칭합니다. 이 가르침은 하느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하느님이시고 그 능력을 발휘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죽은 이들 역시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의인의 기도가 더욱 힘이 있다는 것을 아브라함의 중재 역할(창세 12,2-3; 18,16-33)이나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성모 마리아의 중재 기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제8장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였고, 정결을 보존하였으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그분을 철저히 따랐던 분임을 강조하면서 어머니로서의 중재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번 기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간청으로 이루어진 것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끝맺는 성모송의 기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경향잡지, 1993년 1월호, 조규만 바실리오 신부

이런 연유로 가톨릭 신자들 앞에서 마리아 숭배라 주장했다가는 기나긴 일장연설이 시작될 수 있다. 저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음을 의미하며, 신자들은 그것을 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하지 말자.

한국의 개신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상은 매우 낮거나 없다시피한 경우가 많은 데다[46][47], '그게 숭배지 어째서 공경이냐'고 따지는 '들을 귀조차 없는' 극우 개신교 신자도 몇몇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약하자면, 성인 중의 한 명으로, 특히 교회의 전형(typos)으로서 공경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지 성모 마리아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성인과 신학자도 이를 혼동하지 않았다. 즉, 개신교가 등장하기 전에는 성모 공경을 숭배라고 주장하는 자가 1500년 동안 없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이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여기기에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가톨릭에서 기도란 성인에게 바칠 수도 있고, 성인과 함께 하느님께 바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성인 자체가 어떤 신성한 초월적 권능을 지녔다고도 믿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가톨릭 신자가 기도할 때 적지 않은 경우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라는 구절이 들어가는데, 이것이 가톨릭의 기도에서 성인의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3.1.2.1. '공경'과 '흠숭'
마리아를 공경하고 전구를 청하던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처럼 '흠숭'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렀던 이들은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우상숭배라고 거부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예는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입니다. 이단을 논박한 방대한 저작의 마지막에 마리아를 신성시하며 숭배하는 집단을 단죄합니다.

콜리리디안이라고 불렸던 분파는 마리아에게 성찬례 때 봉헌하는 제병을 바쳤습니다. 에피파니우스 교부의 말입니다.

"아라비아에 어떤 트라키아 여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이름으로 빵을 굽고는 한데 모여 금지된 행위를 시도하며 거룩한 동정녀의 이름을 모독하고 다른 여성 참여자들과 마리아의 이름으로 희생 제물을 바친다고 한다.

이는 완전히 불경스럽고 불법적이며 성령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불결한 영의 교리이다.(…) 마리아는 공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흠숭을 받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마리아를 흠숭해서는 안된다.

하느님께 바치듯이 사람에게 성찬례를 바치라는 계명은 없다. 하물며 천사들도 받지 못한 영예를 한 여인에게 드릴 수 있겠는가.(…) 저들은 예레미야에 의해서 침묵하게 되어야 하며 세상을 위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늘 여왕을 섬긴다"(예레 44,18)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마리아는 공경을 받아야 하며 주님은 흠숭을 받으셔야 한다."
-에피파니우스, 「약상자」 78.23,4; 79.7,5; 8,3; 9,4[4세기]

에피파니우스는 콜리리디안들이 '마리아를 흠숭하는(프로스키네오προσκυνέω)' 것을 이단이며 우상숭배라고 단죄합니다. 에피파니우스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 예레미야 예언서에서 '하늘 여왕'에 대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예전에 제 아내가 다니던 침례교회 목사님이 저를 공격하기 위해 인용했던 바로 그 구절입니다.

동시에 에피파니우스는 마리아를 '공경해야(티메τίμή)'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공경'과 '흠숭'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맥락을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희생 제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고대 유다교나 그리스도교에서, 사실 다른 대부분 고대 종교에서 그렇듯이, 흠승의 본질은 희생 제사였습니다. 물론 무릎을 꿇어 공경을 표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찬미드리는 것 역시 흠숭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공경하고 간청을 드리고 찬가를 불러드리는 것은 여느 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인들이나 영웅들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하지만 오직 하느님께만 유보된 것이 있다면 희생제사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피파니우스에게 있어서 콜리리디안들은 성찬례의 희생 제물인 제병(콜리라κολλύρα)을 마리아에게 바치는 우상숭배를 저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이 결코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마리아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마리아에게 성찬례를 봉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과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과의 결정적 차이점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을 받으신다. 사실 오랜 옛적부터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으시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 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공경은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그대로 온전히 독특한 것이지만, 강생하신 말씀과 똑같이 성부와 성령께 보여드리는 흠숭의 공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또한 그 흠숭을 최대한 도와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971항

제 의견으로는 개신교인들이 간혹 가톨릭 신자들의 마리아 공경을 우상숭배라고 여기는 것은, 존경을 표하거나 때로는 찬가를 부르며 사람을 공경하는 것과 희생 제물을 바치며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신교 전통에서 예배(worship)란 기도와 찬송가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개신교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직무사제직도 없고 희생 제사의 봉헌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에게 예배/흠숭(worship)이란 무엇보다도 성찬례의 희생 제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오직 하느님께만 바쳐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과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를 모후이신 분, 곧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했지만, 결코 마리아를 하느님처럼 흠숭했던 것은 아닙니다.
-브랜드 피트리, 《마리아의 신비를 풀다》, 바오로딸

3.2. 초대교회

성모 공경은 암시적으로는 신약 성경의 본문에서, 조금 더 명시적으로는 2세기 외경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성경 본문의 경우 유년기 사화(마태오 복음서, 루카 복음서)와 요한계 문헌에서 마리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루카 복음서의 유년기 사화의 경우 당사자 예수를 논외로 한다면 마리아가 주인공격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모 영보에서 가브리엘이 한 kecharitōmenē[48]라는 독특한 인삿말(루카 1,28)도 성모 공경의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인삿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루카가 여기서 마리아가 받은 어떤 특별한 은총을 가리키고자 하며, '은총이 가득한 이'이라는 번역이 가능한 건 분명하다. 가령 Raymond Brown은 앵커바이블 주석에서 이 문제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여, '은총이 가득한 이'(full of grace)이라는 번역이 원문에 비해 '너무 강하다'(too strong)고 지적하지만, 은총이 가득하다는 해석을 복음사가는 분명히(certainly)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를 잉태함으로써 마리아가 '특별한 지위'(special state)를 얻었다고 루카가 여겼음을 지적한다.[49]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번역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50] 어떤식으로든 성모영보의 이 장면에선 마리아가 받은 특별한 지위를 가브리엘이 선포하고 있다고 보면 무난하겠다.

요한계 문헌에서도 마리아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가령 요한 묵시록에서 '여인'은 '메시아의 어머니'이며, 대탕녀 바빌론에 대응하는 인물로 각별히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묵시록의 이 여인은 '메시아의 백성', 곧 '교회'를 의미하지 '마리아'가 아니다"라는 반론이 있으나, 이는 허수아비 치기의 오류이다. 이 여인이 '메시아의 백성'(교회)을 의미한다는 건 당연 가톨릭도 인정하며, 다만 '메시아의 백성'(교회)과 '메시아의 어머니'가 상호배제하는 의미가 아니라고 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개신교 주석에서도 두 의미가 상호 중첩되어 있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51] 즉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이 부분에서 '메시아의 어머니'가 '메시아의 백성'을 표상한다는 건 당연 인정한다. 그리고 성경은 어떤 구체적 인물이 더 거대한 개념을 표상한다고 해서 그 인물의 구체성과 의미를 희석하지 않는다.[52] 그렇기에, 개신교 성서학자 Ben Witherington 3세는 다음과 같이 옳게 말하였다:
[요한묵시록 12장의 여인]은 문자 그대로 사내아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동시에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여성상이라고 보아야 한다.[53]
Ben Witherington III, What Have Done with Jesus? Beyond Strange Theories and Bad History - Why We Can Trust the Bible (San Francisco: HapperOne, 2006), 130

2세기에 유행했던 외경[54]인 <야고보 복음서>에는 성모 마리아의 출생, 성장, 수태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리옹의 주교였던 성 이레네우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하와(이브)의 안티테제로서 성모 마리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와의 불순종을 동정녀의 순종(Fiat voluntas tua)으로 말소하고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 동정녀는 여성의 대변자가 된다. 당연히 외경은 정경이 아니고 정경과는 구별되어야 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교리적 유효성 논쟁과는 별개로, 2세기 당시에 성모 공경을 하는 신자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성모공경 논쟁은 아니지만, 5세기 초의 한 신학 논쟁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인 안티오키아 학파의 거두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로스 사이에 벌어진 논쟁으로, 그리스도론 논쟁의 귀결로서의 마리아 칭호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논쟁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에 대한 의견 차이에 관한 것이다. 성모 공경에 대해서는 두 신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었으나, 그녀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논의 대상이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취임했고 훗날 이단으로 판명된 네스토리우스는 테오토코스(하느님을 낳은 자 =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마리아의 칭호를 거부했다. 이는 그리스도론 맥락에서의 거부였는데[55], 네스토리우스는 테오토코스라는 칭호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지나치게 무시해버린다고 여긴 것이다. 즉 네스토리우스에게는 테오토코스라는 칭호가 아폴로나리우스주의[56] 이단을 함의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여 치릴로(키릴루스)가 이끌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신적 로고스 = 육화된 그리스도 =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는 그리스도 =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논증하여[57] 에페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를 반박하고 교회 정통으로 공인 받았다. 결국 네스토리우스는 공의회에서 교회의 뜻을 거부하고 단죄되었다.

애초에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용어는 이미 3세기 오리게네스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디오니시오스출처의 문헌, 그리고 시리아 지역의 전례문[출처]에서 등장했고, 가톨릭동방정교회, 오리엔트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는 성모찬가 중 하나인 'Sub tuum praecidium'(Ὑπὸ τὴν σὴν εὐσπλαγχνίαν)의 원문의 창작 시기 역시 루마니아계 영국인 파피루스학자 에드가 로벨의 연구에 따르면 3세기 중반이다. 다른 의견인 로버츠의 의견을 보아도 4세기 초반이다.

이를 보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비단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성모공경 행위가 초대교회 시절부터 존재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도교 공인이 콘스탄티누스 시대 4세기 초중반이었고, 그리스도교 국교화는 그보다 후인 테오도시우스 1세 치세였으니, 강제화 후 이교 신앙이 유입되어 이미 존재했던 성모공경 문화가 이후에 상당수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성모공경 행위의 근본마저 이교 풍습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3.3. 5세기

431년에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이 신학적 정당성을 얻고 공식 교리로 채택되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은 자', 그리스어로는 테오토코스(Θεοτόκος/Theotokos[59])임을 선언했다. 패배한 네스토리우스는 면직되고 파문된 후 페르시아로 망명하였다. 그 후 성모공경은 거침없이 확산되어,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에 이르고, 후대에 이르면 교회에서 그리스도 다음가는 위치를 차지한다.[60]

3.4. 중세 시대

중세를 지나면서, 특히 유럽흑사병이 돌았을 때 이를 주의 징벌로 해석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면서, 대중신심에서 마리아 공경이 매우 강해졌다. 이 시기 신자들이 받아들인 마리아의 이미지는 '하느님의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곧, 대중신심은 그리스도를 엄격한 심판자로, 마리아를 자비로운 어머니로 이해하였고, '그리스도론적 의의(테오토코스)를 통한 교과서적인 성모신심'보다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남성적이고 심판자적인 이미지를 대체하는 여성적이고 자애로운 대안'처럼 여기는 폐해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엄밀하게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은 '아버지'라고 표현이 될 뿐 성별이 없으며, 구약에서 하느님은 모성적인 이미지로도 표현된다.(예: 이사 49,15) 또한 그리스도교적 심판은, 법적인 의미의 심판이라기보다는, 자애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된 복합적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명제들은 교과서적 신학을 곱씹어봐야 이해되는 것이고, 심판자적 요소가 없고 오직 자애의 요소만 있는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대중들이 끌린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전근대의 엄격하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상에 대한 내면적 공포 역시도 한몫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대중신심은 교과서적인 신학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대 알베르토는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보다 최고의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을 받을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많은 작가들이 잊고 있었던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항상 주지시켰다. 그는 물론 마리아의 중개성을 인정하지만, 그 중개는 항상 간접적인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어머니의 영예는 왕의 영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질을 지니시는 것이므로 마리아는 신적 영예를 요구하지 못한다. 그분의 아드님은 그의 신성을 그 어머니로부터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모신심이 매우 인기있는 신심인 건 틀림 없는 사실이며, 교도권과 신학자들이 대중신심의 표현 하나하나를 교과서처럼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도 못할 짓이므로, 큰 탈선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대체로 그냥 넘어갔다.[61]

마르틴 루터의 언급에서도 중세 대중신심에서 성모 마리아가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1532년 3월 25일의 기록에서 루터는 성모 공경이 폐지된 후에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가 더 많아지지 않았음을 개탄했다.
한때 우리는 마리아에게 그렇게 많은 찬송과 묵주기도를 바쳤는데, 지금 그리스도께 대한 기도는 일년 내내 한 번도 안 바칠 정도로 대단히 소홀히 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구세주께 대한 이런 무관심을 벌하실 것이다. 한때 어머니를 그렇게 높이 받들었다가 지금은 그 아드님을 완전히 잊어버리다니, 부끄럽지 아니한가?
-마르틴 루터 전집[62] 36,152[63]

3.5. 19세기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하느님의 사적 계시를 전해주었다는 보고가 잇달아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마리아 신심을 더욱 확장시켰다. 지금까지 성모 발현에 대한 수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교회 교도권이 그 진실성을 인정한 성모 발현은 다음의 10번이다. 멕시코과달루페(1531년),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1830년), 프랑스의 라 살레트(1846년), 프랑스의 루르드(1858년), 프랑스의 퐁멩(1871년), 아일랜드의 녹(1879년), 포르투갈파티마(1917년), 벨기에의 보랭(1932년), 벨기에의 바뇌(1933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1945년).

이 외에 미국의 베이사이드나 우리나라 나주의 성모 발현, 스페인의 가라반달은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나주 성모동산은 관할 교구인 광주대교구의 당시 교구장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가 "나주 성모동산이 더 이상 가톨릭교회와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교령을 2008년 1월 반포함으로써 부인되었다.

한편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은 아직 조사 중에 있어서 최종 결정이 유보된 상태다.

3.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하여 과장된 대중신심에 대한 중용을 찾고, 성모 마리아는 '교회와 신자들의 모범인 성모'라는 이미지로 제자리를 찾고 그에 맞는 자리를 잡는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 문헌 교의헌장 부분의 제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부분에 잘 나와 있다. 분명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는 구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성모로서 그 어떤 성인보다 공경하는 것[64]뿐이지 절대로 숭배가 아니라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이다. 엘리사벳이 말했듯, 최고로 복되신 여인이며, 역사에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능력있는 여인들이 많을지 몰라도, 성모 마리아만큼 복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가톨릭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 중에는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모토로 한 레지오 마리애가 있다. 여기서 쓰는 성모상은 뱀을 발로 밟고 있는 뤼뒤박의 무염시태 성모상이다.

튀르키예에페스(Efes) 근처에 위치한 뷜뷜 산(Bülbül dağı)에는 성모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는 집의 유적이 있다. 한 수녀가 환시를 통해 성모의 집을 찾았는데, 우연히 닿은 그곳이 환시에서 본 집과 주변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성지로 공인된 곳이다. 무슬림튀르키예인들은 이 집을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가는데, 종이에 소원을 적은 다음 성모의 집 주변의 나무에 매달아놓는다. 또한 성모의 집 근처에 있는 우물의 물은 영험한 치유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도 많이들 떠나는 성지순례 여행패키지에도 파트모스 섬과 함께 반드시 들어가는 곳.

3.7. 한국 가톨릭 교회와 성모 마리아

한국 가톨릭은 교회 형성 시기부터 성모공경을 통한 마리아 신심 운동을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신자들은 「천주실의」,「성경직해광익」,「주교요지」 등 서학서를 통해 마리아에 대한 이해를 키웠고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신심을 함양했다. 박해시대 관헌에 체포된 신자들은 모진 고문에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신앙을 증거했고, 순교 직전까지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

한국 가톨릭의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더욱 확산됐다.[65] 조선대목구는 놀랍게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탄생했다. 유럽에서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이 성당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대목구 설정을 반포한 것이다.

조선 땅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던 성모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주교로서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신자들의 성모신심을 칭송해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허락했다.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는 1846년 11월 2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원죄없으신 성모성심회'를 설립, 신자들의 성모신심 운동을 체계화ㆍ조직화했다. 한국 가톨릭 마리아 신심 단체의 효시인 성모성심회 회원들은 매주 정기 모임에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많이 바쳤다.

제6대 조선교구장 펠릭스 클레르 리델 주교는 1877년 재입국한 후, 중국예수회 선교사 이탁이 저술한 「성모성월」을 한글 번역본으로 간행해 유포함으로써 성모공경을 더욱 신장시켰다. 한글 번역본 「성모성월」의 내용은 서문에서 성모성월에 대한 해설과 1822년 비오 7세 교황이 공포한 ‘성모성월 및 성모 공경에 관한 대사문’이 수록되어 있고, 본문에는 5월의 ‘성모성월’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총 32일 분량의 묵상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각 날은 그날의 주제에 대한 설명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기도에 이어 덕행 실천, 기도 지향, 성인 행적의 예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성모성월을 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성모 마리아님을 예로써 공경하는 달을 정한 첫 번째 이유는 성모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평생토록 주시는 온갖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이다.……성모성월을 정한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주의 성총이며, 이는 잠시라도 멀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여 선종하는 것은 모두 천주 성총의 도우심 때문이니,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또 성모님의 인자하심에 의뢰하지 않고 이 성총을 얻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대 어찌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께 기도하는 데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 번째 이유는 성모 성월이 성모님을 특별히 열애하고 공경하는 거룩한 때와 가르침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한국 가톨릭은 1898년 명동성당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했다. 한민족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8월 15일 광복절은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는데, 이 때문에 민족의 해방을 성모 마리아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신자들 사이에 성모신심은 더 확산됐는데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파티마의 성모 신심이 급속도로 퍼졌다. 1950년 전후로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성모 사도직(푸른군대), 성모 기사회 등 성모신심 운동 및 사도직 활동이 도입됐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 되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개최하고 다시 한 번 한국 가톨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아울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 명동성당에서 한반도와 한국 가톨릭교회를 마리아에게 봉헌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또 대구대교구 성모당,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 등 성모 순례지를 지정, 신자들의 건전한 성모신심을 함양시키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이처럼 성모 마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4. 정교회의 성모 교리

정교회 역시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며"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천상의 모후로서 찬미를 받는다. 성모몽소승천 역시도 전체 정교회의 구속력 있는 명제로 선포되지 않았을 뿐 교회전승으로 인정된다.(그리고 정교회에서 교회전승의 입증책임은 반박측이 가져야 한다.)[66]

그러나 서방교회의 무염시태는 부정한다. 애당초 정교회에 통일된 원죄론이 없으므로[67] '원죄 없는 잉태'라는 말을 할 건덕지가 옅다.
성모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존재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성모 마리아 역시 모든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요아킴과 안나 사이에서 탄생하셨으며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운명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오로지 그리스도 한 분만이 구세주로 불릴 수 있으며 성모 마리아는 모든 인류의 이름으로 구세주를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어머니이다.[68]
정교회의 성모 교리 역시 가톨릭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무염시태에 대한 가르침이 다르다. 우선 정교회에서는 "처음에는 성모 마리아도 다른 인간들처럼 조상에게 물려받은 죄가 있었지만,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모희보(聖母喜報, Ευαγγελισμός της Θεοτόκου)[69]'를 받은 시점에서 성령에 의해 사해졌다"는 '무염태'를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정교회에서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은 성모 마리아가 태중에 있었을 때부터 원죄가 없다면, 원죄에서 해방됨으로 인류와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 세르게이 불가코프(Серге́й Никола́евич Булга́ков)는 교황이 마리아의 순결의 원천을 '기적'으로 취급함으로써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완덕과 신심과 경건의 여지를 없애 버렸다고 말하면서 '원죄 없는 잉태'라는 서방 교리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한다. 즉 무염시태를 부인하는 이유는, 정교가 마리아를 가톨릭보다 덜 중시해서가 아니라, 무염시태 개념이 마리아의 인간적 공로를 감소시킨다고 생각해서이다.

'몽소승천(Assumptio)'을 정교회는 '성모안식(Dormitio)'이라고 즐겨 표현하며, 교회전승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8월 15일이 가톨릭에서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지만 정교회에서는 성모안식축일이다. 그러나 몽소승천이라는 표현도 안쓰는 건 아니며, 가령 정교회 성직자들이 운영하는 에서도 몽소승천(Assumption)이라고 대놓고 간판에 달고 있다.

정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임종 때 열한 제자들이 자리를 지켰는데, 3일 후 늦게 도착한 사도 토마스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를 목격하고 그녀의 허리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전승에 따르면 사도 토마스는 다른 11명의 사도를 불러 이들이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고 하는데, 복음서에서 예수 부활을 기록한 내용과 강한 유사성이 나타난다.[70]

한편 교의적인 선언은 정교가 가톨릭보다 소극적이지만, 전례상으로는 정교가 가톨릭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동방 예법이 서방 예법보다) 더 적극적으로 성모 신심을 표현한다. 그래서 로마 미사에서는 마리아 언급이 매우 간략하게 나타나는 반면, 요한 금구 성찬예배에서는 전례 중 성모송까지 외우며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가령 로마 미사에서 마리아에게 직접 전구기도를 하는 유일한 경우는 시작 예식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뿐이며, 나머지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혹은 사도신경)의 언급처럼 매우 간략하다. 성모송조차 미사 통상문에 없다. 반면 요한 금구 성찬예배에서는
지극히 거룩하고, 정결하고,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평생 동정녀 성모 마리아를 위하여 온당하고 피흘림이 없는 이 예배를 주께 드리나이다.
라고 적극적으로 성모신심을 표현하고 바로 이어서 성모송을 외운다. 그와 동시에 사제는 다음과 같은 장문의 기도를 바친다.
항상 복되시고 지극히 순결하신 우리 하느님의 어머니 하느님을 낳으신 당신을 찬양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당연하나이다. 헤루빔보다 고귀하시고 세라핌보다 더 영화로우신 성모님이여 동정으로 하느님이신 말씀을 참으로 낳으신 이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또한 제1안티폰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티호스 1)
내 영혼아, 주를 찬미하여라, 속으로 부터 그 거룩한 이름을 찬미하여라.(시편 103:1)

(성가)
구세주여, 성모님의 중보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스티호스 2)
내 영혼아, 주를 찬미하여라. 베푸신 모든 은덕 잊지 말아라.(시편 103:2)

구세주여, 성모님의 중보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스티호스 3)
주께서는 하늘에 옥좌를 차리시고 온 누리를 다스리신다.(시편 103:19)

구세주여, 성모님의 중보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요컨데, 정교의 성모신심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정교회는 몽소승천 교의를 고수하며, 나아가 가톨릭교회보다 더 강조한다. 반면에 무염시태 교의는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오히려 개신교와 정 반대이다: 이 교의는 원죄를 지나치게 중요시하며 마리아가 자유의지로 극복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마리아의 공로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 정교회와 더불어 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하느님의 인간화를 지극히 엄숙하고도 완전히 현실론적인 의미에서 강조하는 한편, 동방교회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인간화를 이미 속량사업의 전부라고 보는 (그래서 마리아 공경례를 가톨릭교회에서보다 상당히 더 크게 교회생활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견지에 대해서는 동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톨릭 마리아론은 죄가 계속되는 세상과 십자가와 신앙을 강조하는 개신교의 <바울로적> 견지와 더 가깝다.
Johannes Feiner - Lukas Vischer 등 공저, 《새로운 공동신앙 고백서 - 하나인 믿음》Neues Glaubensbuch -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 이경우·정한교 번역, 분도출판사 1979, pp.592-594

정교회에서 마리아는 처음으로 신화(theosis)된 인간으로서 비중이 있다. 또한, 성모는 모든 은총의 중개자라는 점을 가톨릭과 거의 동일한 견해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약간 거칠게 비유하자면, 성모인간의 사이 정도에 위치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또한,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도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구원을 구하는 기도를 바치거나, 성모의 승천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가톨릭을 제외한 여타 전통 종파에서도 성모에 대한 공경의 정도는 가톨릭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4.1. 정교회-가톨릭 성모 교리 비교

가톨릭 성모 4대 교리에 대해서 정교회의 입장은 이렇게 정리된다.
<rowcolor=#000> 성모 교리 가톨릭 정교회
테오토코스
(하느님의 어머니)
Θεοτόκος (Theotokos), Deipara 인정 인정
성모 평생동정 Αέιπαρθενος (Aiparthenos) 인정 인정
성모 무염시태
(원죄 없이 잉태되심)
Immaculata Conceptio, Παναγία (Panayia), Άχραντος (Ahrandos) 인정[71] 무염수태만 인정
성모몽소승천[72]
(주님의 영광으로 받아들여지심)
Assumptio (Κοίμησις Θεοτόκου) 인정[73] 전승으로 인정
가톨릭에선 신자로서 반드시 믿어야만 하는 교리이다. 특히 무염시태 교리와 몽소승천 교리는 교회와 교황의 무류성을 통하여 선포된 교리이기도 하다.

정교회에선 테오토코스와 평생동정은 교회 분열 이전 교리라서 공유하나 무염시태는 가톨릭에서 19세기에 독자적으로 선포한 교리이기에 다른 입장이다. 성모승천에 대해서는 전승 내용은 가톨릭과 비슷하나 몽소승천(Assumption)보단 성모안식(Dormition)이라고 즐겨 표현한다. 모든 인간처럼 죽음을 피해 갈 수 없고[74] 육신의 죽음을 겪고나서 육체가 승천한다는 것이다.[75] <성모 마리아의 안식 Dormition of the Virgin (정교회 이콘)>

물론 몽소승천이라는 표현도 안쓰는 건 아니다. 몽소승천 희랍 정교 성당Assumption Greek Orthodox Church,테오토코스 몽소승천 주교좌 성당Assumption of the Theotokos Cathedral이라는 성당 이름이 멀쩡히 잘만 쓰이는 게 정교회이다.[76]

5. 평생 동정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4대 믿을 교리
{{{#!wiki style="color:#B2A45F;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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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BBFDE>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colcolor=#000000> 라틴어: Mater Dei, Dei Genetrix, Deipara
그리스어: Θεοτόκος(Theotokos)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라틴어: Perpetua virginitas Mariae
그리스어: Αειπάρθενο(Aeiparthenos)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라틴어: Immaculata Conceptio
한자어: 무염시태(無染始胎)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라틴어: 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한자어: 몽소승천(蒙召昇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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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수태고지_레오나르도_다빈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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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교리로 선포하고 가르친다. 1세기 마리아가 출산을 했음에도 완전히 동정이라는 ‘virginitas in partu’ 개념이 등장했고, 2세기 외경 야고보 복음서에 이르러 처음으로 성모 평생 동정설이 나타났다. 교리가 정립된 4세기 말까지는 교회에서 여러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에비온파는 평생 동정을 부정했다. 테르툴리아누스 등 평생 동정을 부정한 정통 교회 교부도 있었다. 서방교회는 평생 동정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동방교회보다 다소 소극적이었다.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반대한 헬비디우스에 맞서 평생 동정을 옹호하여 후대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는 평생 동정 반대파 요비니아누스를 이단으로 단죄했다. 이러한 진통을 거쳐 평생 동정이 정통 교리로 자리잡았고, 개신교가 등장한 1517년 이전까지는 주류 그리스도교에서 거의 이의가 제기되지 않아 왔다.

곧 마리아가 출산 전에 동정이었으며, 출산 후에도 평생 동정이었으며, 당연히 출산으로 동정을 상실한 것도 아니라는 교리이다.[77]

여기서 정경 복음서 본문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은,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했다는 명제 뿐이며, 나머지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해석이 갈린다. 곧 성경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ἀδελφός, adelphos) 야고보, 유다 등이 동복형제인지, 이복형제인지, 혹은 같은 가문의 친척인지의 여부이다. 가톨릭정교회에서는 희랍어 adelphos의 다의성 및 다른 성경 구절들에서 도출되는 정황들을 근거로 친척 혹은 이복형제로 본다.
먼저 야고보가 예수의 형제라는 표현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야고보가 반드시 예수의 친형제였다는 뜻이 아니다. 신약성경에는 야고보 말고도 다른 형제들도 주님의 '형제'ἀδελφός로 소개된 경우가 있다(마태 13,55-56; 요한 7,5; 1코린 9,5). 이를 두고 많은 학자들은 셈어 영향으로 설명한다. 아람어를 쓰던 예수님의 첫 추종자들이 야고보나 다른 친척 형제들을 두루두루 '형제'라고 부르던 습관이 신약성경에 반영되었으리라는 것이다.[78] 사실 성서 히브리어와 아람어에는 '사촌 형제'나 조카를 뜻하는 단어가 따로 없었다. 사촌은 아저씨(삼촌)의 아들, 조카는 형제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대체로 '형제'로 옮기는 히브리어/아람어 אָח'아흐'는 친형제뿐 아니라 친척, 동족, 동포, 형제처럼 가까운 사람 등을 아우르는 표현이었다(레위 10,4; 1사무 14,3). 일례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조카인(12,5) 룻을 조카라고도 하고 형제라고도(창세 13,8; 14,14; 14,16) 한다(BDB). 『성경』[79]에는 해당 구절의 아흐가 '혈육' 또는 '조카'로 옮겨져 있다. 칠십인역은 ἀδελφός를 썼다. 그리스어에는 사촌과 조카에 해당하는 단어 ἀδελφός(칠십인역 민수 36,11; 토빗 7,2)와 ἐξάδελφος가(칠십인역 토빗 1,22) 따로 있었으며 ἀδελφός는 대개 친동기를 가리켰다. 그러나 그리스어 ἀδελφός도 아흐처럼 가까운 친척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Lidell-Scott). 그러므로 굳이 셈어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주님의 형제'가 반드시 주님의 친형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야고보 사도가 예수님의 가까운 친척이거나 친동기간처럼 가까운 사이, 혹은 초대 공동체에서 예수님께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인물이었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읽으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송혜경,[80] 《예수님, 성경 바깥의 기억》, 한님성서연구소 2021, pp.61-62
반면 개신교에서는 (adelphos의 다의성을 인정하면서도)[81] 이 단어에서 독자가 떠올릴 1차적인 의미가 동복형제라는 것을 근거로 통상 동복형제로 간주한다.

일단 현재 교단을 불문하고 성서주석학이 무난하게 동의할 수 있는 건, 자료들이 매우 단편적이라서 텍스트들 그 자체로는 어떤 해석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82]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텍스트 그 자체로 봤을때 애매하다는 것이고, 이러한 애매한 텍스트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어디까지 계시에 근거한 해석을 할 수 있는지'는 가톨릭-정교의 견해와 개신교의 견해가 다르다.[83]

가톨릭의 교과서적 입장에 해당하는 '예수의 형제들이 사촌에 해당한다'는 관점은 명시적으론 4세기에 히에로니무스의 저서 '헬비디우스에 반대하여'(Against Helvidius)[84]에서 적극적으로 옹호되었으며,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85] 최초의 언급자를 2세기의 헤게시푸스로 잡는 것도 가능하다. 서방 교회에서는 메인라인(mainline) 개신교 교파에서 '예수의 형제와 자매'가 실제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라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이전에는 루터나 칼빈 등도 평생 동정을 받아들였다.[86]

5.1.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의 입장

교의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개신교가 등장하기 전 1500년 동안 교회, 즉 전체 그리스도교는 전승의 권위를 인정해 왔으며, 가톨릭정교회는 지금까지도 당연히 인정한다.

여기서 전승이란, "넓은 의미에서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 교회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모든 것, 곧 성전(聖傳)과 성경(聖經) 모두"를 말한다.

이는 성경의 텍스트 만을 인정하는 개신교의 '오직 성경으로'와는 명백히 구별된다[87] 따라서 초대 보편교회에서 발생하고 지속되어 온, 교부들에게 인정받은 평생동정을 따른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했다. 4세기 초엽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Petrus von Alexandreia, †311)는 마리아에게 이 칭호를 부여하였다. 서방교회의 암브로시오(Ambrosius,†397)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 동방교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시리아의 에프렘(Ephram,†373)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관철시킨 대표적인 교부들이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노,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의 교부들에게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이 삼중형식으로 고백되고 있다. 이후 교부들의 이론들은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었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통해 확증되었다. 라테란 공의회(649)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교회헌장 52항, 57항).

또한 최신의 연구에선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이 성경과 당시의 시대상이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동정성에 대해서 담대하게 주장했을 뿐 아니라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200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뿐만 아니라 평생 동정으로 머물렀다고 주장했습니다.

... 마리아가 결혼 생활 동안 평생토록 동정으로 머물려고 했다는 의도가 암시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루카복음의 잉태 예고 장면으로, 마리아가 가브리엘에게 했던 곤혹스러운 대답에 담겨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도 여러 번 봤지만 이번에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읽어봅시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루카 1,26-34)

이 구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 둘째,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가 이미 아기를 잉태하고 있다거나 즉시 잉태하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미래의 한 시점에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루카 1,31) 마리아가 합법적으로 혼인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마리아의 질문은 아주 의아하게 들립니다.

... 마리아의 입장이 되어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겁니다. 결혼을 앞두고 약혼을 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할까요? 아니지요. 혼인이 완결된 후에 언젠가는 아기를 갖게 될 거니까 천사의 말을 당연한 듯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질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가브리엘에게 했던 질문의 앞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 구약성경에서 '알다'라는 말은 부부 관계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창세기에서도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창세 4,1 직역)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말은 "남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는데"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런 표현에는 우리말에서 "저는 담배 안 피웁니다"라고 말할 때와 비슷한 문법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누군가가 "저는 담배 안 피웁니다" 하면 [지금 현재 비흡연자의 상태로] 담배를 피우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미래에도 담배 피울 의도가 없다는 뉘앙스를 지닙니다. 마리아의 말에도 [동정녀의 상태로] 현재 '성관계를 갖고 있지 않고' 미래에도 '성관계를 가질 의도가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겁니다.

당시 관습에 따라 마리아가 이미 합법적으로 혼인한 것이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 말을 들으면 약혼한 여인이 하기에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에게 한 응답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맥락상 마리아는 동정서원을 한 상태였고 평생 동정으로 머물고자 했다는 것이 가장 합당한 설명입니다. 개신교 신학자로서 그리스어 전문가인 그레샴 메이첸의 말입니다.

[동정서원은] 이 구절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 언어학적인 관점에서는 반대될 것이 없다. "나는 안다"가 현재 직설법(present indicative) 시제로 쓰였는데 이는 마리아의 인생에서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적용되는 고정된 원칙을 가리키는 말로 봐야 한다.

마리아가 평생 동정으로 머물겠다고 한 동정서원을 명확히 알고 나면 가브리엘 천사에게 했던 말이 더 이상 '어이가 없는'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정확히 맞는 말이 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엘리사벳에게 기적적인 잉태를 약속했을 때 의심을 품었던 즈카르야와 대조적으로 마리아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있는 그대로 자신은 동정녀이며 앞으로도 동정으로 머물 생각인데 어떻게 아기를 갖겠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라고 말한 후에야 비로소 가브리엘은 동정 잉태로서 아이를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잉태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루카 1,35)

자, 이렇게 설명하면 루카복음에서 마리아가 가브리엘에게 했던 질문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평생 동정으로 살고자 하는 젊은 여인이 애당초 결혼을 왜 했을까요? 결혼한 여성, 곧 혼인의 유대로 묶인 유다교 여인이 성적 금욕을 지킨 증거를 댈 수 있나요?

... 놀랍게도 금욕서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해 문헌이나 유다교 외경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모세오경에 속한 민수기에 등장합니다.

... 구약성경에서 한 장 전체가 고대 이스라엘 여성의 금욕서원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민수 30장) 불행히도 이 대목은 마리아가 성적 금욕서원을 했을 가능성 자체를 묵살해 버리는 학자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은 혼인하지 않은 여인, 결혼한 여인, 남편을 여의었거나 이혼한 여인의 금욕서원에 관한 성경적 증거를 제공합니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서 혼인한 여인이 한 서원 대목에만 집중해 봅시다.

"서원에 매여있거나, 또는 생각 없이 입을 놀려 스스로 서약한 채 시집을 갈 경우, 남편이 그것을 듣고 들은 그날로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의 서원은 그대로 성립되고, 그가 스스로 한 서약도 그대로 성립된다. 그러나 남편이 그것을 들은 그날로 반대하면, 아내가 매여있는 서원과 아내가 생각 없이 입을 놀려 스스로 서약한 바를 남편이 취소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그 여자를 용서해 주신다. ... 아내가 한 모든 서원과 고행하기로 서약한 모든 맹세는, 남편이 성립시킬 수도 있고 취소시킬 수도 있다. 만일 남편이 그날부터 다음 날까지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는 아내의 모든 서원과 모든 서약을 성립시키는 것이 된다. 그가 그것을 들은 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곧 그것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서 얼마 뒤에야 취소시키면, 그는 아내의 죄를 짊어지게 된다.' 이는 남편과 아내 사이, 아버지와 아직 아버지 집에 사는 어린 딸 사이에 관하여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규정이다."(민수 30,7-9.14-17)

성경의 이 대목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 점을 짚어봅시다.

첫째, 이 율법은 스스로 "고행"(30,14)하기로 한 여성, 직역하면 "자기부정/금욕(아노트 나페쉬עַנֹּ֣ת נָ֑פֶשׁ)하기로 한 여성의 서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단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성관계를 절제하는 것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예컨대 같은 표현이 레위기에서 속죄일에 단식하고 성관계를 삼가야 한다고 표현할 때 쓰입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그날은 '고행'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레위 16,29) 현대 유다교 라삐인 제이콥 밀그롬은 '고행' 또는 '자기부정'이라고 옮기는 이 구절의 가장 오래된 유다교 해석에서는 '부부간 성관계를 삼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미쉬나, 요마 8,1)

... 넷째, 후기 유다교 외경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성적 금욕서원을 한 실제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1세기 유다교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에세네파에 속하던 결혼한 남성과 여성이 자진해서 삼 년까지 절제를 했다고 전합니다.(「유다 전쟁사」 2,160-161) 1세기 유다교 저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독신 남성들과 나이 든 독신 여성들(파르테노이παρθένοι)로 구성된, 테라퓨타이라는 또 다른 유다교 분파를 언급합니다. "그들은 그리스 여제관들처럼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정결을 지켰다."(필론,「관상생활」 68) 고대 유다교 전통의 모음집인 미쉬나(대략 200년경)는 결혼한 유다인 남성과 여성이 통상적 부부 관계를 절제하겠다고 서원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서원이 너무 극단적이라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미쉬나, 케투봇 7,3-7; 네다림 11,1-12)

고대 유다교의 근거가 제시하는 결론이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만일 젊은 유다교 여성이 '고행'서원을 한다면(민수 30,13), 그리고 법적 남편이 그 서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한 서약은 성립되며 율법에 의해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마리아가 이 서원을 했고 법적 남편인 요셉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서원을 지켜야 했던 겁니다.

... 고대 유다교에서 결혼식의 절정은 '신방'에서 혼인을 완결하는 것이었습니다.(마태 9,15; 25,1-13) 그러나 마태오복음에서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고 명확히 언급하지만, 그들은 혼인을 완결하지 않았습니다.(1,24-25) 왜 요셉과 마리아는 첫날밤 혹은 임신기간에 혼인을 완결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을 동정으로 잉태한 것이 통상적 부부 관계를 못 하게 막지는 않을 테니까요.

요셉과 마리아가 첫날밤 절제한 이유에 대해 가장 타당한 설명은 마리아가 민수기 30장에 따라 고행서원을 했고 요셉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브랜드 피트리, 《마리아의 신비를 풀다》, 바오로딸

개신교 성서학자 리처드 보캄(Richard Bauckham)은 마이어(Meier)의 주장에 대하여, 오히려 '성모 평생동정 교리를 전제하지 않더라도'[88] 성경 본문의 언어는 예수의 형제들이 이복형제임을 가리킨다고 반박했다.

우선 보캄은 신약 본문의 희랍어 adelphos가 이부·이복형제나 친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마이어의 주장이 엄밀하지가 못하다고 반박했다. 마이어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마르코 6장 17절[89]에서 adelphos는 이복형제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정작 예수의 adelphos가 이복형제를 의미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마이어가 스리슬쩍 엄밀하지 못하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루가 2장 48절에선 예수가 요셉을 "양부"가 아닌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만약 루가가 요셉을 혈연 암시 없이 예수의 부모나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예수의 형제자매에 대한 언급이 혈연을 암시한다는 건 독단이다."[90]

또한 보캄은 마태오가 마르코 복음서를 편집한 것[91]을 근거로 마태오는 '친형제'를 생각했다고 말하는 마이어의 관점에 대하여, 이는 "편집비평을 과민하고 지나치게 사용한" 것이라 반박했다.
마태오 1장 25절[92]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 출생 후 ㅡ 아이들을 가졌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ㅡ 잠자리를 가졌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선 마이어가 옳게 인정했다. 반면에 마이어는 '마태오 12장 46절(마르코 3장 31절)과 마태오 13장 55절(마르코 6장 3절)의 수정'이 '예수의 현제자매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이들이라고 마태오가 생각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편집비평을 과민하고 지나치게 사용한 것이다.[93]
-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
마이어의 관점에 따르면 마르코 3장 31절의 "그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94]을 마태오 12장 46절이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95]이라고 수정한 것은 예수, 마리아, 형제가 같은 가족이라고 마태오가 생각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태오와 마르코의 차이를 과잉해석한 것이다."[96] "그러한 변화가 의도적일 수는 없으며, 설령 의도적이라 하더라도 문체를 의미할 뿐이다.""[97] 오히려 "복음서의 전승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전혀 혈연으로 묶지 않으며, 다만 한 가족 단위로 묶을 뿐이다."[98]
또한 마이어는 마태오 13장 55절[99]이 마르코 6장 3절[100]을 편집한 것이 법적 가족(요셉)과 생물학적 가족(마리아, 형제)의 구분이라 봤으나, 보캄은 이것 역시도 과잉해석이라며 반박했다. 마태오가 나타낸 것은 나자렛 사람들의 발언이며(마태오는 나자렛 사람들이 동정녀잉태를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나자렛 사람들이 그 중요성 때문에 부계를 언급한 것으로 마태오가 구성했다고 보는 것이 문화적 맥락에서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보캄은 2세기 중반의 3개의 시리아어 책들(야고보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토마스 유년기 복음서)을 단서로 사용했는데, 이 책들은 서로 무관계한 별개의 책들이지만 예수의 형제자매들이 요셉 전처의 자녀들이라는 전승이 공통으로 들어있다. 그리고 이 전승은, "성서 바깥의 정보로서는 유일하게 이 책들에 공통된 것이다."[101] 따라서 보캄은 이 책들이 그 자체의 역사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내포하고 있는 공통 전승의 역사적 가치 때문에 근거로 쓰일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보캄은,마르코 6장 3절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를 부계 우선 관습에 따라 "요셉의 아들"이라 부르지 않고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에피파니우스적 관점((이복형제)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보캄에 따르면, 예수가 나자렛 '마리아의 아들'이라 불린 것은 요셉 전처의 자녀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용법은 구약과 라삐 텍스트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용법이다.
마르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나자렛 방문 장면에서 나자렛 사람들이 그를 "요셉의 아들"(참고: 마태오 13장 55절; 루가 4장 22절; 요한 6장 42절)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마르코 6장 3절)이라 부른다는 사실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a) 과부의 아들 혹은 (b) 사생아를 언급할 때 모계를 따라 부른다는 추정은 병행하는 유다 문헌에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다. (c) 최근 논문에서 Tal Ilan은 요세푸스와 라삐 전통상 다음의 증거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더 우월한 혈통을 가질 경우 한 남자가 모계에 따라 불릴 수도 있다"고. 그녀가 주장하기를 마르코는 마태오나 루카와 달리 요셉의 다윗 혈통을 몰랐으며 따라서 마리아를 더 중요한 부모로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을 보건대, 마르코는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믿었을 것이고(10장 47절; 11장 10절), 이것은 초기 교회의 광범위한 믿음이었다.(사도 2장 30절; 13장 23절; 15장 16절; 로마 1장 3절; 2티모 2장 8절; 히브 7장 14절; 묵시 5장 5절; 22장 16절; 디다케 10장 6절) 요셉을 통한 다윗 자손이 아니라고 추정할 그럴듯한 이유가 마르코에겐 없었다. 설령 마르코가 예수를 다윗 자손이 아니라 생각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왜 마르코가 마리아를 족보상 더 중시했는지를 알지 못한다.[102] 또 다른 가능성으로 (d) 마르코가 동정녀잉태를 언급한 것이라는 건 그럴듯하지 않다. 그 어떤 복음서도 동정녀잉태를 공개적으로 알려졌다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설령 마르코가 동정녀잉태 전승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자렛 사람들의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을 통해서 마르코가 동정녀잉태를 언급하려고 했을 것 같지는 않다.[103]

마지막으로, 맥아더(Harvey K. McArthur)와 마이어는 ㅡ 그들이 몰랐던 (c)는 제외하고 ㅡ 다른 제안된 해결책들을 거부하면서 제안하기를, (e) 이 구절은 공식적인 지칭이 아니라 문맥상의 "비공식적 서술"이라 하였다. 예수가 그들 공동체의 단지 평범한 구성원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나자렛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예수를, 짐작건대 그들이 말하는 동안에도 회당에 있는 여전히 살아있는 부모의 아들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건 지금까지 제안된 것들 중 가장 나은 설명이지만 그다지 설득력 있지는 않다. 만약 예수가 보통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다면, 유다 관습이 요구하는 대로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를 처음에 요셉의 아들이라 부르고 그 다음에 어머니, 형제, 자매를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강조점을 만드는 게 그럴듯하다.[104]

가능성 있는 다른 설명이 제안되지 않았던 것이 놀랍다: 그것은 나자렛에서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 지칭이 그를 요셉의 전처의 자녀들과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 용법은 구약과 잘 부합한다. 여성은 오직 가끔씩만 성경의 족보에 나타나는데, 주로 족보상 그들의 역할이 '한 남자가 한 아내로부터 얻은 아들을 다른 아내로부터 얻은 아들과 구별할 때'이다.(참고: 창세 4장 19-22절; 22장 20-24절; 36장 10-14절; 46장 10절; 출애 6장 15절; 1역대 2장 2-4절, 18-19절, 21절, 24절, 25-26절, 46절, 48-49절, 3장 1-9절). 다른 모친들의 아들을 구별하는 이러한 관심사는 1명을 넘는 아내로부터 자녀를 얻은 남자의 아들들을 부계 대신 모계로 지칭함으로써 구별하게 해준다. 따라서 갈렙이 아내들 중 하나로부터 얻은 아들인 후르는 (1역대 2장 18-19절) "에브라다의 맏아들"(1역대 2장 50절; 4장 4절)로 알려졌다. 유사하게,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의 다른 아내들의 아들들과 구분하여 (2사무 3장 2-5절; 1역대 3장 1-9절) "하낏의 아들 아도니야"(1열왕 1장 5절, 11절; 2장 13절; 참고: 2사무 3장 4절; 1역대 3장 2절)로 알려졌다. 라삐 문학에서, 아도니야뿐만이 아니라 다윗의 다른 아들들도 모계에 따라 불린다. (b. B. Bat. 109b; b. Ketub. 62b). 유사하게, 야곱이 두 아내와 두 첩으로부터 얻은 아들들은 때때로 그들의 모계에 따라 불린다.(필로 De Mutatione Nominum, 73; 요셉과 아세낫 22장 11절; 26장 6절; 27장 6-7절; 28장 1절,9절) 이것이 또한 구약에서 모계로 지칭한 가장 유명한 용법에 대한 해석이라는 게 그럴듯하다: 요압, 아사헬, 아비새 형제는 항상 그들의 어머니인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불린다.(1사무 26장 6절 및 23번의 구약 사례; 요세푸스 Ant. 7.1.3,6 §§11,45; 7.3.2 §65; 7.9.1 §265; b. Qidd. 49b; b. Sanh. 95a; 오직 Ant. 7.1.3 § 11만이 1역대 4장 14절을 따라 그들의 아버지 이름을 댄다.) 이 용법은 스루야와 이복 남매인 다윗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스루야의 자매 아비가일의 아들인 아마사가 부계에 따라 불리기 때문이다.{{{-2 (2사무 17장 25절; 1열왕 2장 4절, 32절; 참고: 1역대 2장 16-17절) 그러나 스루야의 남편이 다른 아내로부터 아들을 얻었으며 그녀의 아들들이 어머니를 통해 구분되었다는 것은 그럴듯하다.(스루야의 아들들이 같은 어머니와 다른 아버지를 가졌으며 서로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모계를 사용했으리라는 것은 덜 그럴듯하다)[105]

나자렛 바깥에서 예수는 "요셉의 아들"로 인식된 반면 가족이 알려진 나자렛에선 요셉의 두 아내의 아이들이 모계로 구별되었다고 추정하는 게 매끄럽다.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이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었기에, 예수는 정확하게 "마리아의 아들"로 불렸을 것이다. 물론 마르코 6장 3절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나자렛 사람들의 발언을 마르코가 정확한 역사적 기록으로 보존했다'는 그럴듯하지 않은 추정에 의존하는 건 아니다. 단지 나자렛 사람들이 뭐라 말했을지의 그럴듯한 그림을 마르코가 그리려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를 "목수"라 불렀다고 마르코가 나타냈듯이. 다른 곳에서는 아니더라도,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을 법 하니까.[106]

결론적으로 말해서, 마이어가 "자료가 부족하고 애매하다"는 이유로 예수와 형제자매의 관계에 대한 어떤 결론이라도 "매우 제한적이고 잠정적"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한 것은 옳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자료 대부분이 마이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애매하고, 동시에 그가 놓친 몇몇 시사적인 증거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에피파니우스적 관점과 헬비디우스적 관점 사이의 이슈가 마이어의 결론보다 더 열려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107]
-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
또한 친형제설을 지지하는 문단에서는 2세기의 헤게시푸스가 야고보를 '친형제'로 보았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원문 번역 문제이다. 오히려 번역에 따라선, 헤게시푸스가 야고보를 '사촌'으로 봤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The same writer[108] also describes the beginning of the heresies of his time as follows: “After James the Just had suffered martyrdom for the same reason as the Lord, Symeon, his cousin, the son of Clopas, was appointed bishop, whom they all proposed because he was another(δευτερον)[109] cousin(ανεψιον)[110] of the Lord."[111] (4.22)
[같은 저자(헤게시푸스)는 또한 당대의 이단들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의인 야고보가 주님처럼 같은 이유로 순교하자, 그분의 사촌 '클로파스의 아들 시메온'이 주교로 임명되었다. 시메온이 주님의 또다른 사촌이기에 제안된 것이다."]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2 vols.; 번역. Kirsopp Lake; Loeb Classical Library 153, 265;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6, 1932), 1:375.
원문에선 시메온이 'deuteron(둘째 or 다른)이라고 하는데, 이를 '(야고보에 이은) 둘째(다른) 사촌'으로도, '(야고보에 이은) 둘째(다른) 주교'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만약 전자라면 헤게시푸스는 야고보와 시메온을 둘 다 예수의 사촌이라 명시한 것일 테고, 후자라면 '사촌'이란 명시는 시메온에게만 적용될 것이다.

여기에 대해, "헤게시푸스는 adelphos를 친형제로, anepsion을 사촌으로 명확히 구분했다"는 반론도 가능하겠으나, 이는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4.22가 시메온을 '둘째 사촌'으로 안봤다는 것을 전제하는 순환논법일 뿐이다.[112] 애당초 '둘째 사촌'으로 번역한 Kirsopp Lake는 가톨릭 학자가 아니라 성공회 학자이며, 개신교 학자인 James D. G. Dunn도 저서 《Neither Jew nor Greek》에서 교회사 4.22를 인용할 때 Kirsopp Lake의 이 번역을 문자 그대로 발췌했다.[113] 즉 '둘째 사촌'이라는 번역은 딱히 가톨릭 편향적인 번역은 아니다.

성경 해석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가톨릭에선, 아델포스와 아델페가 일반적으로 친형제와 친누이를 가리키는 건 맞으나 반드시 친혈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면, 마태오 복음 5장 22~24절에서 말하는 형제가 친형제만을 의미한다고 보면, 문맥상 이상하다. 앞뒤 구절에서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보편적인 교리를 말하는 예수가, '친형제' 에게만 화내지 말고, 욕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웃에게도 화내지 말고 욕하지 말라는 의도로 말했고, 따라서 이 구절의 아델포스는 이웃을 친형제처럼 여기라는 뜻에서 썼다고 본다.

또한 마르코 복음 3장 34~35절에선 예수를 중심으로 맺어진 영적 가족 관계 안에서의 형제 자매를 표현하기 위해 아델포스를 사용했고, 마르코 복음 6장 3절에서는 가까운 혈족을 뜻한다. 그리고 창세기 29장 12절에서는 '형제'나 '친척'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히'를 '아델포스'로 번역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라는 구절이 나온다. 따라서 예수의 형제들이라는 사람들이 한때는 몰라도 끝까지 예수를 배척했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요한이 대타로 마리아를 보살폈다는 개신교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물론 신약은 그리스어로 씌어졌다. 그런데 구약은 히브리어아람어로 쓰여졌고,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아람 문자가 아닌 히브리어 문자로 써서 문법과 발음 면에서 정통 아람어와 차이가 있는, 일종의 히브리화 된 아람어를 사용했다. 즉, 유대인의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고, 예수가 그리스어가 아닌 아람어로 말한 걸 볼 때, 아람어로 형제나 친척을 뜻하는 말이 그리스어 '아델포스'로 쓰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이미 신약성경 내부의 용례에서 아델포스가 친형제를 넘어선 용례로 명백한 구절들이 있기에, 이 단어를 셈족의 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즉, 개신교의 비판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왜 확정된 교의로 가르치는가?"의 차원이라면 결국 '교회의 권위'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 해석의 차이가 되겠으나, 마리아의 평생 동정이 성경의 본문과 충돌하지는 않는다.

동정 성모에 대한 이야기에서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은 요셉이다. 마리아의 남편인 나자렛의 요셉도 평생 동정을 지켰다는 전승이 가톨릭 전승이 있으나, 이것은 도그마가 아니다. 즉 믿든 말든 상관없다는 것. 정교회에서는 복음서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들은 요셉의 전처가 낳은 자식이고, 즉 마리아는 요셉의 후처라는 것을 믿는다. 정교회 전승대로라면 마리아와 요셉의 나이 차이는 상당했을 것이다. 요셉의 나이는 알수 없는데, 다만 여자와 달리 당시 유대인 남성은 가난하거나 토라를 배우는 학습시기이면, 조혼이 아닌 20세 무렵에도 결혼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문화원 20세 무렵에 결혼해서 15년 후 사망이라 해도, 당시 의료 수준과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공생활 전에 사망했다 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내용은 신약 외경 <야고보 복음서>에도 기록된 내용인데, 여기에 따르면 요셉은 마리아와 재혼할 당시 이미 나이가 80이었고, 이미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야고보, 유다, 시몬, 미리암 등의 자식이 있었으며, 그 중 야고보가 이 야고보 복음서를 저술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문헌은 현재 어느 그리스도교 종파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경이기에, 정교회가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전승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과는 별개지만, 정경 여부와는 별개로 2세기 중반 저술되었기에 참고 자료로는 가능하다.

2번째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은 신약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19)라고 언급되는 야고보이다. 이 야고보는 서방 교회 전례에서는 알패오의 아들 사도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 되어 있지만, 가톨릭 교의상으로는 동일 인물 유무가 확정된게 아니다. 아래에서는 알패오의 아들과의 '동일인물설'과 '별개인물설'을 각각 검토할 것이다.

우선 동일인물설이다.

다음은 마태오 복음서마르코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형제를 언급하는 장면이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마태 13, 55)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3)
다음은 12사도의 명단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태 10,1-4)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르 3,16-19)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루카 6,14-16)
다음은 십자가 곁의 여인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 56)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또한 유다 서간에는 다음 구절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이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 주시는 이들에게 인사합니다.(유다 1,1)
여기서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 요한 복음서, 유다 서간만 조합하여도,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 가능하다.
1. 야고보와 유다와 요셉(=요세)은 예수의 형제로 불린다.(마르 6,3)
2. 야고보와 요셉(=요세)은 어머니가 같으며, 그녀는 성모 마리아의 동명이인 마리아이다.(마르 15,40)[114]
3. 요셉(=요세)의 형제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 불린다.(마르 15,40)
4. 야고보와 유다 서간의 저자(로 내세워지는) 유다는 아버지가 같다.(유다 1,1)
5. 야고보의 아버지는 알패오이다(마태 10,3)[115]
따라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태 10,3) = 성모 마리아의 동명이인 마리아의 아들인 작은 야고보(마르 15,40) = 주님의 동생 야고보(갈라 1,19) = 유다 서간의 저자(라고 내세워지는) 유다의 형제 야고보(유다 1,1)가 되는 것이다. 추가로,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살로메를 제베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로 본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마르 15,40) =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요한 19,25)로[116]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래 개신교 입장의 서술에선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갈라 2,9)
를 근거로 야고보가 예수의 친형제가 틀림없다고 하는데, 야고보가 케파보다 앞에 있는 것은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유다파의 신자가 가장 신뢰하고 있던 사람이여서라고 볼 수도 있으며(2,12),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친척이라서 그렇다고 봐도 된다. 즉 갈라티아서를 인용하더라도 그것이 친형제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이제 2번째로 살펴볼 것은, 알패오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구분하는 별개인물설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이런 주장은 최근 들어 반론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하나로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1장에서는 열두 사도와 예수님의 형제들을 완전히 구분합니다(1,12-14). 바오로 사도도 야고보와 열두 사도를 구분합니다(1코린 15,5-7). 또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고는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섰다고 하는데 이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뽑으신 후였습니다(3장). 나아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하는 말을 들으며 배척을 받으셨을 때에는 이미 사도로 뽑으신 제자들과 함께 계셨을 때였습니다(마르 6장).

이런 반론을 따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로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야고보와 동일인이 아니라고 본다면, 우리는 사실상 야고보 사도에 대해서는 그가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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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of the epistle identifies himself as "James" (1:1). Because several persons in the NT bear this name, it is necessary to settle on his identity by a process of elimination. Two men of this name were among the apostles of Jesus: James the son of Zebedee (Mk 1:19; 3:17) and James the son of Alphaeus (Lk 6:15; Acts 1:13).

No doubt these figures possessed the requisite authority to instruct the Church in writing, but most scholars think it improbable that either one wrote the Letter of James—the former was martyred in A.D. 44, probably too early to have been the author (Acts 12:2), and very little is known about the latter beyond the fact of his enrollment among the Twelve. Instead, scholars through the centuries have given preference to a third figure of the apostolic age: James of Jerusalem, also known as "the Lord's brother" (Gal 1:19). This James was a kinsman of Jesus (Mk 6:3). He was also a witness to the Resurrection (1 Cor 15:7) and later became one of the "pillars" (Gal 2:9) of the earliest Christian community in Jerusalem (Acts 12:17; 15:13-21; 21:17-18).
『The Ignatius Catholic Study Bible』, INTRODUCTION TO THE LETTER OF SAINT JAMES
The writer of the letter calls himself "Jude" (in Greek, Ioudas) and was known to his readers as the "brother of James" (Jude 1). Several persons mentioned in the NT share this popular Jewish name, including the early Christian prophet "Judas called Barsabbas" (Acts 15:22) and the two apostles "Judas the son of James" (Lk 6:16), also called "Thaddaeus" (Mk 3:18), and "Judas Iscariot" (Mt 10:4; Lk 6:16).

Though some have attributed the letter to the first or second of these figures, and others have declared him to be otherwise unknown, the majority of scholars identify the author with still another "Judas", who is listed in the Gospels as one of the four kinsmen of Jesus (Mt 13:55; Mk 6:3). This is the only Judas in the NT who is known to have had a brother named James. This also explains how readers could be expected to identify the author simply by the mention of his brother's name. James, after all, was a prominent figure in apostolic times as the leader of the Jerusalem Church following the departure of Peter from the city (Acts 12:17; 15:13; 21:18). He was popularly known as "the Lord's brother" (Gal 1:19).
『The Ignatius Catholic Study Bible』, INTRODUCTION TO THE LETTER OF SAINT JUDE
야고보 서간은 당시의 서한체 관례에 따라 첫머리에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힌다.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1,1). 여기서 야고보는 누구를 말하는가? 예수님의 제자인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인 야고보(이른바 장 야고보: 마르 1,19)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다른 제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차야고보: 마르 3,18)인가? 그도 아니면 나중에 교회 전승에서 밝힌(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II.23.4) 주님의 형제로서 예루살렘 원로단의 대표가 된 야고보(사도 12,17; 15,13; 1코린 15,7; 갈라 1,19; 2,9.12)인가? 야고보서가 저자로 내세운 이 인물은 십중팔구 마지막 야고보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요한의 형 야고보는 40년대 초에 순교하였고(사도 12,1-2),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한님성서연구소, 『성서 입문 : 하권』, 정태현, 2018년 6쇄, 교회인가 2008, 663-664쪽[117]
Beside the figure of James the Greater, son of Zebedee, of whom we spoke last Wednesday, another James appears in the Gospels, known as "the Lesser". He is also included in the list of the Twelve Apostles personally chosen by Jesus and is always specified as "the son of Alphaeus" (Mt 10:3; Mk 3:18; Lk 5; Acts 1:13). He has often been identified with another James, called "the Younger" (cf. Mk 15:40), the son of a Mary (cf. ibid.), possibly "Mary the wife of Clopas", who stood, according to the Fourth Gospel, at the foot of the Cross with the Mother of Jesus (cf. Jn 19:25).

He also came from Nazareth and was probably related to Jesus (cf. Mt 13:55; Mk 6:3); according to Semitic custom he is called "brother" (Mk 6:3; Gal 1:19).

The book of the Acts of the Apostles emphasizes the prominent role that this latter James played in the Church of Jerusalem. At the Apostolic Council celebrated there after the death of James the Greater he declared, together with the others, that pagans could be received into the Church without first submitting to circumcision (cf. Acts 15:13). St. Paul, who attributes a specific appearance of the Risen One to James (cf. 1 Cor 17:7), even named James before Cephas-Peter on the occasion of his visit to Jerusalem, describing him as a "pillar" of that Church on a par with Peter (cf. Gal 2:9).

Subsequently, Judeo-Christians considered him their main reference point. The Letter that bears the name of James is also attributed to him and is included in the New Testament canon. In it, he is not presented as a "brother of the Lord" but as a "servant of God and of the Lord Jesus Christ (Jas 1:1).

Among experts, the question of the identity of these two figures with the same name, James son of Alphaeus and James "the brother of the Lord", is disputed. With reference to the period of Jesus' earthly life, the Gospel traditions have not kept for us any account of either one of them.
베네딕토 16세 #
즉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태 10,3) ≠ 성모 마리아의 동명이인 마리아의 아들인 작은 야고보(마르 15,40)[118] = 주님의 동생 야고보(갈라 1,19) = 유다 서간의 저자(라고 내세워지는) 유다의 형제 야고보(유다 1,1)로 보는 것도 가톨릭에서 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위 발췌문 중 사도 명단을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님의 동생 야고보=작은 야고보'에 대한 구절이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보더라도 위의 논리 전개에서
1. 야고보와 유다와 요셉(=요세)은 예수의 형제로 불린다.(마르 6,3)
2. 야고보와 요셉(=요세)은 어머니가 같으며, 그녀는 성모의 동명이인 마리아이다.(마르 15,40)
3. 요셉(=요세)의 형제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 불린다.(마르 15,40)
4. 야고보와 유다 서간의 저자(로 내세워지는) 유다는 아버지가 같다.(유다 1,1)
5. 야고보의 아버지는 알패오이다(마태 10,3)
이렇게만 달라질 뿐, 근본적인 의문인 '형제라는게 친형제를 뜻하는가?'에는 여전히 '그렇다'는 단정이 불가능하며, 특히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요한 19,25)와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마르 15,40)를 동일 인물로 본다면, 주님의 동생 야고보의 어머니는 성모의 동명이인 마리아이며 아버지는 클로파스라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또한 클로파스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마르코 15장 40절의 '마리아', 곧 요세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는 성모가 아니다. 그녀를 성모라고 가정한다면 복음사가가 "그분의 어머니"라 하지 않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한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

5.2. 개신교 입장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마리아론 같은 교리가 없다. 더군다나 요셉이 재혼이라는 성경구절도 없고, 마리아의 후반생도 성경에서 아예 언급이 없고,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등 신약 어느 곳에서도 성모공경, 마리아론이 없으므로 "오직 성경"을 모토로 삼는 개신교에선 아예 관심의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일부 고교회파 성공회 종파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 종파에서는 예수의 형제들은 당연히 예수를 낳은 후 요셉과 마리아가 동침해서 낳은 자식으로 보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12세에 성년의식을 치르고 역시 10대에 조혼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도 마리아와 재혼한 것이 아니라 초혼으로 보고 있고, 그래서 개신교 입장에서 따라 만든 영화 등 창작물에서는 요셉도 20대의 팔팔한 청년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경에서 요셉의 나이는 알 수 없는데, 정교회의 전승대로라면 이미 장성한 자식이 있는 장년 또는 노년의 재혼 남성이어야 한다. 혹은 전혀 근거는 없고, 전술된 기사에선 30대로 추정된 근거가 요셉의 사망시점을 당시 평균수명인 45세로 가정하여 역산하여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고, 다만 여자와 달리 당시 유대인 남성은 가난하거나 토라를 배우는 학습시기이면, 조혼이 아닌 20세 무렵에도 결혼 하는게 가능했기 때문에 # 이스라엘 문화원 20세 무렵에 결혼해서 15년 후 사망이라해도 당시 의료 수준과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역시 초혼이 가능한 나이대이다. 즉 정교회 주장대로 요셉이 최소 30대 이상 재혼이라 볼 근거가 없다. 더군다나 이 설명대로라면 귀족이나 부자도 아닌 목수 직업의 요셉이 다 늙어 죽을 나이에 10대 소녀를 매매혼으로 데려왔다는 것인데 전혀 설득력이 없다.

평생동정에 대하여 논하면, 우선, 당시 유대 사회에 대한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의도를 가지면서 결혼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해 가톨릭 학자들이 에세네 파 등의 종파를 예로 들고 있으나 이들의 금욕 생활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며, 주류에서 물러난 소규모 공동체의 금욕주의는 결혼 관계에 들어간 10대 여성이 처녀성을 지키기로 결단했을 것이라는 점은 전혀 조명해주지 않는다.[119]

한편 그리스어 성경[120]에 친형제를 의미하는 단어 아델포스(αδελφός)로 쓰인 단어를 사촌 혹은 의붓형제로 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텍스트 그대로 친형제라고 본다. 비록 히브리어 및 아람어에서 형제를 의미하는 단어(אח, ˒āḥ)와 사촌을 의미하는 단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마태오의 복음 및 마르코의 복음의 맥락을 볼때 이 단어는 혈연이 이어진 형제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마르코의 복음 6장 3절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이요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제인 그 목수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Is this not the woodworker, the son of Mary and brother of James and Joses and Jude and Simon? And are not his sisters here with us)"고 묻는다. 마르코의 질문의 구조에 주목하라: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예수에 적용되는) 목수, 어머니의 이름, 네 형제의 이름이 모두 한 질문에 놓여 있으며, (이름 없는) 자매는 별도의 질문에 언급되어 있다.

마태오의 복음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정리된다. 첫째로, 아마도 예수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해, 마태오는 단지 목수일 뿐이라는 비방을 예수의 아버지에게로 옮긴다. 그러나 마태오가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화려한 내러티브에서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이름 없는)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별도의 질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13:55) 마태오는 분리되어 있는 질문에서 추정상의 아버지를 어머니, 예수님의 형제에게서 떨어뜨려 놓는다 "그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그리고 형제는 요셉, 시몬과 유다라고 불리지 않느냐?" 한 어머니와 네 형제는 예수의 그저 법적인 아버지와는 별개로 취급되며 "이라 불리다"는 한 동사의 주어이다. 그리고 나서, 마르코처럼, 이름 없는 자매들은 나중에 남성중심적인 군중들에 의해 언급된다: "그리고 그의 자매들은 모두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가?"

따라서 단순히 마태오의 편집의 차원에서만 보면, 마태오가 예수님의 생물학적으로가 아닌 법적인 아버지와 실제 생물학적인 어머니와 분리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예수의 형제들을 법적인 아버지가 아닌 생물학적 어머니와 함께 두기로 선택하면서,형제들을 예수의 의붓형제나 사촌으로만 간주했다고 고집하는 것은 어렵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또한 마태오가 마르코를 몇몇 부분을 수정하여 인용하는 구절에서 언급된다. (마 12:46–50=마가복음 3:31–35). '어머니와 형제'가 하나의 단위으로 소개되고 이야기 전반에 걸쳐 하나의 단위로 취급되는 방식은 예수님과 청중들을 상대로 어머니와 형제가 자연스럽게 혈연관계로 함께해야 한다는 인상을 강화한다.

심지어 마태오의 사소한 편집상 특징들도 이러한 인상을 뒷받침한다. 마르코가 3장 31절에서 "그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을 언급하는 동안, 마태오는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12:46, hē mētēr kai hoi adelphoi autou, 전체 구절 끝에서 두 명사를 동등하게 수식하는 소유대명사)을 써서 두 명사를 더욱 가깝게 끌어당긴다.

더욱이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모두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펀치 라인”은 어머니, 형제, 자매 모두가 예수님과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에만 완전한 비중을 차지한다.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하늘에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 12:50). 만일 우리가 자연적인 비교점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내 남자 사촌, 내 여자 사촌, 내 어머니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면 은유의 전체적인 추진력은 약해진다. 언급된 자연적 관계가 적어도 복음서 편집자의 눈에는 모두 동등하게 가깝고 혈연 관계인 경우에만 은유의 완전한 힘이 유지된다.
John P. Meier, 322p-323p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친형제와 구별되는 친척을 가리키는 단어로 싱게논(συγγενὸν)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는 실제 친형제와 친족을 구분했다고 보고있다. 아울러 바울의 골로사이 인에게 보내는 편지[121]와 1세기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요세푸스 역시 친형제와 친족을 구분하고 있었다.
사실, “사촌”에 대한 아델포스의 사용과 관련하여 헬라어 구약과 신약 문서 사이의 전적인 유추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이 두 기록물의 기원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헬라어 구약의 경우 우리는 “번역 헬라어”를 다루고 있는데, 이 헬라어는 때때로 전통적인 신성한 히브리어 본문을 단어 하나하나 경직되게 또는 기계적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히브리어 단어가 "형제"가 아니라 어떤 다른 유형의 친척을 의미할 때 때때로 아델포스가 'āḥ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약 필자들의 경우, 아람어로 쓰여진 자료들이 - 설령 그들 바로 앞에 놓여있더라도, 저자들은 확실히 그들이 획일적으로 단어 대 단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고정된 신성한 텍스트를 다루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마태오와 루카 모두 마르코의 서툰 그리스어를 개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두드러진 사례는 바오로가 갈라디아인에게 보낸 편지의 충돌(서기 54년경)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사목적 '질문과 답변' 부분을 쓰면서 자신의 인격과 스타일, 그리고 자신의 권위에 대해 매우 많이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갈 1장 19절에는 "주의 형제 야고보"를 언급하고, 고린토1 9장 5절에는 "주의 형제들"을 말한다. 이는 그가 이전에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인 몇몇 문서를 경직되게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존경받는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재구성하는 복음사가들과 달리 갈 1장 19절과 고 9장 5절에서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그가 글을 쓸 때까지 교회에서 살아가며 활동 중인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정해진 전통이나 공식의 압박 없이 스스로 글을 쓰면서 바울은 이 사람들을 사촌이 아닌 형제라고 언급한다. 여기, 신약 그리스어에는 사촌을 위한 완벽한 좋은 단어가 있었다. 아넵시오스(anepsios), 이것은 골 4:10에 나오므로 바울 교회에 알려졌을 것이다. 바울이 "형제"가 아니라 "사촌"을 의미했다면 아마도 그는 아델포스가 아니라 갈라디아인에게 보낸 편지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아넵시오스를 썼을 것이다.

바울을 제외하고도, 기독교 전개의 2단계에서 그리스어로 ho adelphos tou kyriou("주님의 형제")로 경직되게 번역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독교 아람어(예: 'aḥā dî mārējā)의 오래되고 신성한 전통에 호소할 수 있는지 여부는 매우 의심스럽다. 우리가 알다시피 초기 아람어를 사용하는 기독교가 나중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기독교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초기 기독교 발전의 전체 이론은 교회 초기부터 예루살렘에 존재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유대인을 무시한다(사도행전 6장의 헬라파). 아마도 야고보와 다른 “주의 형제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 예루살렘의 기독교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그들을 hoi anepsioi tou kyriou(“주의 사촌”)가 아니라 hoi adelphoi tou kyriou(“주의 형제들”)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들의 용법은 몇몇 존경받는 아람어 화법이 고정된 전통이 된 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1세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예수를 지칭하는 "주님의 형제들"이 그렇게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표현이 되어 예수의 친척들에 대해 말하는 다른 어떤 방법이 배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20.9.1 200)에서 예루살렘의 야고보를 언급할 때 '주의 형제'가 아니라 '예수의 형제'를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 구절은 특정 주석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주의 형제들"이 "예수의 사촌들"처럼 정확한 명칭을 배제하는 변경할 수 없는 호칭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주장을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세푸스의 이 구절은 여전히 더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3장에서 보았듯이, 요세푸스는 예수와 야고보에 대한 그의 주장을 위해 어떤 신약의 기록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요세푸스는 독립적으로 말하면서 그리스어로 "형제"와 "사촌"의 구별을 잘 알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해 그리스어의 정확성에 찬성하여 성경에서 히브리어 용법마저도 바로잡고 있는 자로서, 야고보를 예수의 사촌이 아닌 형제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신약 용법의 적용은 언제 어떻게 "형제"를 피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논의 중인 정확한 관계일 때 "사촌"을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에게서 독립적으로 확인된다.
심지어 신약 안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주의 형제'라는 사례를 제외한다면, 그리스어 아델포스(형제)가 정확히 '사촌'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다. 신약에서 아델포스의 다양한 의미는 문자 그대로와 은유적으로 두 가지 기본적인 의미로 요약될 수 있다.

(1) 무엇보다도, 아델포스는 문자 그대로 피가 이어진 형제, 즉 친형제 또는 이복형제(즉, 공통된 한명의 생물학적 부모가 있는)를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

(a) "완전한 형제"의 명백한 사례들은 너무 명백해서 요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마르코가 1:29-30에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제베데오를 소개했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실제로는 그들의 사촌이고 제베데오는 그들의 의붓아버지 또는 삼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주석자나 신학자도 상상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와 요세, 유다와 시몬의 형제(아델포)라는 말을 듣는 마가복음 6장 3절에서 순전히 문헌학적, 역사적 근거로 작업하는 주석자가 왜 다르게 판단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b) 흥미롭게도, 6장 17절에서 필립이 헤롯 안티파스의 형제라고 불리는 것에서 보듯이 마르코 또한 "이복 형제"를 의미하는 아델포스의 용법을 알고 있다. 사실, "필립"이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와 헤로데 대왕의 아들 필립을 가리킨 것인지, 아니면 마리암메 2세와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필립"을 가리킨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논쟁은 우리의 요점에 차이가 없다: 이 글에서 "형제"는 이복형제를 의미해야 한다: 헤롯 안티파스는 헤롯 대왕과 그의 다른 아내인 사마리아인 말타케 사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혈연관계는 공통의 친아버지를 통해서만 성립되었고, 그래서 필리포스는 이복형제라는 의미에서 안티파스의 아델포스였다.

(c) '형제'에 대한 '문자적'인 의미가 고대 세계의 확대 가족에서 상당히 넓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신약에서 볼 수 있는 아델포스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모두 '친형제'와 '이복형제'로 나타나는 것은 더욱 놀랍다. 예를 들어, 신약 외부의 코이네 그리스어는 혈통과 법의 다양한 관계를 의미하기 위해 아델포스를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때때로 근친상간 관계에서 남편에게 적용되는 "형제"의 양식화된 표현이거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에서의 "형제"의 표현이다. 또한 코이네 그리스인은 우리가 아래에서 살펴볼 다양한 은유적 용도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묻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 문제에서 신약이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분명하다. 신약에서 아델포스가 단순히 비유적으로나 은유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물리적 또는 법적 관계를 지정하는 데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단지 완전한 형제나 이복 형제를 의미할 뿐 다른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례 외에는, 그것은 결코 이복형제(에피파니오의 해결), 사촌(제롬의 해결) 또는 조카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델포스가 신약에서 총 343번 사용되는 것을 고려할 때, 이 "문자적" 용법의 일관성은 놀랍다.
우리가 이미 확인한 복음서 구절의 자연스러운 편집상 의미뿐만 아니라 이에 관한 놀랍도록 지속적인 신약의 용범을 무시하고 대신 다양한 유대교 및 이교 본문에서 코이네 그리스어 사용에 호소하는 것은 '특별 변론'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다.

(2) 신약에서 아델포스의 다른 모든 사용은 비유적 또는 은유적 의미의 일반적인 관습에 속한다. 이것은 "형제"가 직접적인 혈연 관계나 결혼으로 맺어진 유대와 동일시될 수 없는 어떤 광범위한 관계를 나타내는 모든 경우를 포함한다. 이 은유적 의미 아래 예수의 추종자들(예: 막 3:35), 초대 교회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예: 고린토 1 1:1; 5:11), 동료 유대인(행 2:29 [종교적 의미에서 더 많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9:3 [민족적 또는 국가적 의미에서 더 많이]), 모든 이웃(공통의 종교적 또는 인종적 유대에 대한 특별한 강조 없음, 예: 마 7:3-5), 그리고 잠재적으로 모든 인간(히 2:11 ,17)이 언급되며 복음서가 예수님의 형제들을 언급하는 것은 명백히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John P. Meier, 325p-328p
요한복음 19장 26-27절을 보면 예수는 죽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였으나, 이는 예수의 형제들이 그 당시엔 예수를 배척했고[122] 오직 요한만이 예수의 임종을 지키고, 그를 매우 따랐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이 부분의 묘사가 마리아가 예수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공관복음서의 묘사와 모순되는 점을 들어 역사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표하기도 한다.
형제가 예수를 배척했기 때문에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했다는 주장은 성서에 성모 마리아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자식들에 대해서 분명치 않기 때문에 해석상 다른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당시 여러 형제가 있는 중에 첫째 아들이 죽으면, 그 어머니는 당연히 둘째 아들이 모셔야 했으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성경에는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평생동정 및 요셉의 전처 자식들에 대한 설명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역시 문헌상 불분명한 부분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추가로 예수 옆에 서있던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비교해보면
마태복음 27장 56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가복음 15장 40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요한복음 19장 25절: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이모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저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비교해보면 사촌 육촌 혹은 그냥 가까운 사이를 뜻하는 형제설이라는 주장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일단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친동생 야고보가 사실은 글로바(알패오)의 아들과 동일인물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십자가 옆에 정확히 몇 명이나 서 있었는지 정확히 언급이 없다. 때문에 누가 누군지 정확히 짐작하기 힘들다. 4명만 있었다고 가정하고 저 구절에 나오는 인물을 일일이 대응해보면, 이모, 살로메,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란 구절로 인해,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였고,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이종사촌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마가가 그 전에, 특히 사도들을 불러모으는 장면에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라고 불렀던 인물을 갑자기 작은 야고보라고 부를 이유가 없고, 바울역시 작은 야고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난 장면을 제외하면 작은 야고보라는 표현은 전혀 쓰이지 않는 것을 볼 때 두 인물은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123]

또한 바울서신의 야고보에 대한 서술도 위의 결론을 강화한다고 보고 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판 (갈라디아서 2장 9절)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가톨릭 성경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9절)
게바 혹은 케바는 사도 베드로의 유대인식 이름(아람어)이고 오히려 베드로가 헬라어식 이름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원어민(?)은 당연히 게바라고 불렀을 것이다.[124]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 순서를 말할때 야고보 베드로 순으로 말했다는건 야고보가 사도 베드로보다 서열이 앞섰다는걸 의미한다.[125] 당시 3대 제자 대(大) 야고보, 즉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주후 44년경에 헤롯에게 살해 당해서 교회에 없던 것이 확실하고, 대 야고보의 사망 시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따라서 개신교측에서는 그 인물은 소(小)야고보 혹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아닌 예수의 형제 야고보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소 야고보는 성경에서 12사도의 행적과 베드로의 위치를 볼 때 베드로 앞에 설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순서 상으로 베드로보다도 앞서 나오는 인물 야고보는 예수의 육신의 친형제 야고보일수밖에 없다. '즉, 예수의 형제라는 지위 말고는 12 사도 중 으뜸이라는 사도 베드로 보다 앞서 불릴 만한 인물이 없다고 본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인용된 2세기 경의 교회사가 헤게시푸스 역시 다음과 같이 αδελφός와 ἀνεψιὸς를 구별하면서 야고보를 '주님의 αδελφός'로 지칭한다.[126]
Διαδεχεται την εκκλησιαν μετα την των αποστολων ο αδελφος του κυριου Ιακωβος, ο ονομασθεις υπο παντων δικαιος απο των του Χριστου χρονων μεχρι και ημων. επει πολλοι Ιακωβοι εκαλουντο, ουτος δε εκ κοιλιας μητρος αυτου αγιος ην.(2.23)

James, the brother of the Lord, succeeded to the government of the church in conjunction with the apostles. He has been called the just by all from the times of Christ to the present day, for there were many that bore the name of James. He was holy from the womb of his mother.
Και μετα το μαρτυρησαι Ιακωβον τον δικαιον ως και ο κυριος επι τω αυτω λογω, παλιν ο εκ θειου αυτου Συμεων ο του Κλωπα καθισταται επισκοπος, ον προεθεντο παντες οντα ανεψιον του κυριου δευτερον. δια τουτο εκαλουν την εκκλησιαν παρθενον ουπω γαρ εφθαρτο ακοαις ματαιαις.(4.22)

The same author also describes the beginnings of the heresies which arose in his time in the following words: And after James the just had suffered martyrdom, as the Lord had also on the same account, Symeon, the son of the uncle of the Lord, Clopas, was appointed the next bishop. All proposed him as second bishop because he was a cousin of the Lord. Therefore they called the church a virgin, for it was not yet corrupted by vain discourses.
아울러 2세기의 다른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 역시 신약성경의 기록만을 가지고 예수님의 형제들을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127]
사촌 접근법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늦은 니케아 이후의 해결책이라는 추가적인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반면 에피파니오의 해법과 '예수의 형제'가 진짜 형제라는 견해는 2세기와 3세기에 지지자들을 찾을 수 있다.

예수의 형제들이 진짜 형제였다는 의견의 고대성과 광범위함은 사촌 접근법의 지지자들에 의해 종종 간과된다.

예를 들어, "진짜 형제" 접근법에 대한 최초의 증인 중 한 명은 헤게시푸스(Hegesippus)로, 로마 제국의 대도시에 있는 주교들의 가르침에 대한 그의 증언은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론의 옹호자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헤게시푸스의 예수의 형제들에 대한 증언에 관해서는 그러한 옹호자들은 대개 침묵한다.

물론, 이 증언은 대부분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단편적으로만 보존되어 있으며 문제나 자기모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헤게시푸스가 예수의 친척들에 대한 엄밀한 의미를 가진 다양한 용어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이것이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이다; 헤게시푸스의 말을 모두 역사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내 관심은 오히려 2세기 교부가 예수의 친족에 대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용어를 사용했는지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2.23 4)에서 헤게시푸스는 이 '의인 야고보'의 순교를 말하면서 '모든 사람에서 의인이라고 불린 주의 형제(ho adelphos tou kyriou) 야고보'라고 언급한다. Hegesippus는 또한 예수의 “삼촌”과 “사촌”(anepsion)을 언급한다(4.22 4). 따라서 헤게시푸스는 예수의 형제, 삼촌, 사촌 사이의 완전히 사려깊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야고보를 예수의 형제라고 부를 때, 그의 말을 믿지 않을 타당한 이유가 없다.

헤게시푸스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애쓰는 듯 다른 구절(3.19, 3.20 1)에서도 구세주(또는 주님)의 형제 유다를 “육체를 따라서는”이라 말한다. 헤게시푸스는 “사촌”과 “삼촌”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의 특정한 친족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육체로는 주의 형제”와 같은 정확한 구절이 실제로 “사촌”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육체적 형제가 아닌 영적 형제 관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헤게시푸스는 "실제 형제" 접근 방식으로 기운 유일한 니케아 이전 교부가 아니다. 니케아 이전 라틴계 교회의 유일한 교부로서 이 문제를 다룬 테르툴리아노(ca. A.D. 160-220)은 예수의 형제들을 실제 형제로 여겼다. 흥미롭게도 그는 특히 마르코의 복음 3:31-35(루가의 복음 8:19-21과 병행)의 구절에서 어머니와 형제가 보잘 것 없는 빛 속에서 함께 엮여 있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예수의 형제들을 친형제로 본 이러한 해석은 테르툴리아노가 엄격하고 금욕적인 견해를 지향하고 동정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마르키온과 마르키온 파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가현설에 대한 그의 맹렬한 반대는 테르툴리아노로 하여금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진정한(vere) 그의 어머니와 형제라고 단언하게 만들었다. 테르툴리아노에게 이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을 증명하는 반박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실제 형제" 접근 경향을 드러낼 수 있는 니케아 이전 교부의 마지막 텍스트는 이레네오의 '이단 반박'(ca. A.D. 130-200)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텍스트의 의미는 헤게시푸스와 테르툴리아노의 것보다 덜 명확하다. '이단 반박' 제3권에서 이레네오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마리아에 의한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탄생을 복잡한 유추를 구성하고 있다. 이 유추에서 그는 마리아가 예수의 탄생 후에 다른 아이들을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진술을 두 번 했다.(3.21.10; 3.22.4).

3.21.10에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처음 태어난 아담은 경작되지 않은 당시까지(adhuc) 처녀인 땅(하나님은 아직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사람은 아직 땅을 일구지 않았다.)에서 그의 기질을 받아 하나님의 손,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형성되었다. ... 그래서 그분 스스로 아담을 재현하시고 그때까지(adhuc) 동정녀였던 마리아로부터 나타나신 말씀께서도 또한 되풀이된 아담의 세대를 올바로 받으셨다."

마찬가지로 3.22장 4절에서 이레네오는 하와와 마리아를 대조한다. 하와는 처녀였을 동안(adhuc) 이미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였다. 마리아는 이미 정해져 있는 남편을 두고도 순종하였다. 마리아는 이미 정해져 있는 남편이 있을때처녀였을 동안에도(adhuc) 순종했다.

모든 비유가 약하기 때문에 이레네오의 비유를 어디까지 몰고가야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레네오가 마리아가 예수의 탄생 이후 처녀로 남아있지 않다고 가정했을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블린즐러(Blinzler)는 이 옵션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4세기 헬비디오(Helvidius)가 예수의 형제들을 실제 형제로 해석하는 것을 지지했을 때, 그가 허공에서 무언가를 발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세푸스의 독립적인 증언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헤게시푸스와 테르툴리아노에 의해 증언된, 그리고 아마도 이레네오에 의해서도 그러한 해석의 전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John P. Meier, 329p-331p
따라서 개신교에선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는 성경에 근거도 없고 당시 풍속과도 거리가 멀며, 되려 이교적 요소와 짬뽕된 결과라 보기 때문에 부정한다. 성상에 관대하다 알려진 성공회와 루터교회[128]조차 평생 동정에 대한 견해는 다른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부정하는 입장이다.

5.3. 이슬람 입장

이슬람에서 마리아, 즉 이므란의 딸 마르얌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을 만한 여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슬람에 '마리아론' 같은 것은 없지만, 이슬람은 기독교 종파들과 마리아가 예수(이사)를 처녀인 채로 잉태했다는 교리를 공유한다.

쿠란에는 야고보 같은 예수의 형제의 존재 또는 부재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 그나마 약간 논쟁거리가 되는 구절이 3:36인데, 이것만으로 예수의 형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주장한다면 억지 확대해석에 불과하다. 하디스 일부는 명확하게 예수는 형제가 없었다고 언급하며, 권위 있는 중세 하디스학자 중 일부도 이를 받아들이기는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슬람에서는 예수의 형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으며, 이어지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편이다. 일부 중세 이슬람 신학자가 66:12를 근거로 가톨릭처럼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과도한 확대해석에 가깝다. 예수를 낳은 후 마리아의 생애는 이슬람에서 그다지 열띤 관심 대상이 아니고(따라서 몽소승천도 이슬람에서는 대체로 기껏해야 잘 모르겠다, 최악의 경우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취급한다), 오늘날 무슬림에게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느냐는 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슬람에서 마리아는 평범한 인간이고, 이슬람은 결혼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 성관계를 어떤 의미로든 죄악시하는 종교가 아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거나 동정을 유지하는 것에 일부 수피 종단을 제외하면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는다(높은 수준으로 주흐드를 실천하는 극소수 독신 종단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도 종단의 지도자들만 독신인 경우가 많다. 평생 독신인 수피는 매우 예외적이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입장을 정리하면, '예수를 낳은 후 마리아가 당연히 결혼 관계에서 성관계를 했을 수 있지만, 명확한 쿠란의 근거는 없으므로 굳이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라고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어라. 그런데 그게 이슬람이나 마리아의 인격에 관해 중요한 건 아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6. 개신교의 관점

(마가복음 3장)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초기 종교 개혁가들은 성모신심의 일부(평생동정설 등)는 받아들였지만, 당시 중세 교회에 만연했던 방식의 성모 공경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129][130]

마르틴 루터도 저작을 기존 가톨릭 마리아 찬양가와 기도문을 인용하였고 평생 동정설을 믿었다. 그러나 같은 시대 루터의 동료나 후대 학자들은 그것을 그의 시대적 한계로 여긴다. 'semper reformanda' 원칙에 의거하여 루터나 칼뱅이라 해도[131] 틀린 것은 틀리다고 지적할 수 있고 이런 논의는 전혀 금기시 되지 않으며 다른 주제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132] 마르틴 루터는 한때 집안 가업인 광산업의 수호성인인 안나(마리아의 모친)을 극진히 공경했고, 법대생에서 수도자가 된 계기인 벼락을 맞을 때 "성 안나여! 성모 마리아여! 나를 구해주십시오! 라고 외쳤지만 훗날 자신의 저작에서 그때 당시 자신이 마리아나 안나가 아닌 그리스도를 외쳐야 했다고 후회했다. 또한 가톨릭의 성인 공경과 성유물, 성상 등의 개혁 운동에서 이러한 전통을 없애버릴 것을 찬성했다. 다만 안드레아스 칼슈타트나 츠빙글리, 재세례파 등 자신보다 더 과격하게 개혁하려는 사람들과 의견이 충돌하는 과정도 있었고, 믿음이 약한 형제들과 기존 관습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유용하니[133] 도끼나 망치로 부숴버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 것일 뿐이다.[134]

그러므로 루터는 말 그대로의 기존 가톨릭 관습에 대해선 숭배라며 못마땅하게 보았다. 루터는 '몽소승천도 성경에 근거가 없다 하여 부정했다.' 이는 장 칼뱅의 개혁주의에도 이어졌다.

루터 95개조 반박문을 들어 종교개혁 시기 초기에는 개신교에서도 가톨릭 성인 공경과 같은 전통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95개조 반박문은 루터의 신학 핵심인 이신칭의를 강조하려고 보속과 사면이라는 기존 가톨릭 교리와 면벌부 효력, 교황의 대사 권한에 대한 토론이지 성모 공경은 매우 부차적인 문제이기에 당연히 다루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신학 이론상 토론 제의지 가톨릭 교회의 모든 문제점을 95개조로 들어서 비판한게 아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면죄부와 연관돼서 성유물 공경[135]를 비판하며 성인에 대한 교리까지 역시 나아가 비판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이 잘 못 알고 있는 내용.[136] 루터의 저작중에 평생 동정설을 인정하고, 기존의 성모찬가를 그대로 인용한 기도문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시대적 한계이지 그리고 교황청의 공식 입장과 전통이 변치 않는 가톨릭 교회와 달리 개신교에선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견해도 역사성을 인정하여 참고 대상일 뿐이지 교리도 아니고 개신교회의 창시자란 용어 자체도 쓰지 않는다.[137]

성모공경을 부정하는 이유는 기존 교회, 즉 교황으로 대표되는 가톨릭에 대해 반발하면서 오직 성경으로만[138] 근거로 하여 기존 관습 및 교리에서 성경에서 명확히 도출되는 것 외의 명제를 믿을 교리라고 선포하는 것을 부정한다.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처럼 돋보이는 성모신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한 의인으로 대한다. 다만 요셉과 세례자 요한과 같은 의인으로 볼 뿐이지 다른 인물보다 더 높이 공경해야 할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개신교에서는 공경할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없다.

현재 개신교 중에서 루터교회성공회는 공식적으로 성모공경을 받아들이고 있다. 성공회에는 성모신심 단체도 존재한다.참고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장 14절)
위의 성모관련 교리 4가지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모친'만 인정하고 그 이외는 인정하지 않거나 '그거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데?' 혹은 '그게 왜 필요한데?'라는 태도를 지닌 것에 가깝다. 천주모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방법"으로서의 의미이지 그 개인이 가지는 특별한 위치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조건인 무죄성은 이사야 선지지의 예언인 동정녀 탄생 자체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원죄가 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개신교는 마리아가 죄가 있더라도 동정녀 탄생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 원죄가 유전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무염시태/무염수태뿐 아니라 평생동정이나 몽소승천 같은 교리도 구원에 필요 없고 계시될 필요도 없는 것이 된다.

기본적으로 모든 개신교 교파에서는 가톨릭 전통의 성인공경을 '성인 숭배'로 보아서 금지하고 비판해 왔고 현재도 비판하고 있다.이는 가톨릭 교회에서 그나마 교회전통이 남았다고 인정하는 성공회[139]와 루터교도 포함이다.[140] 이들 두 교파는 자신들이 진정한 '공경'을 하고 있고 가톨릭 전통은 숭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물론 개신교는 개교회 특성이 강하여 성공회나 루터교회의 지역적 성향에 따라 여타 다른 개신교 개혁교단만큼 강하게 비판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서 (겉보기에) 가장 큰 차이점으로 여겨지는 마리아 문제는 종교개혁 당시와는 논쟁의 맥락에 차이가 있다. 근대 초 개신교측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의 성인제도, 성유물, 죽은 자를 위한 미사와 통공 등, 가톨릭 교회의 성인 공경과 성상문제등 여러점을 비판했지만 가장 큰 비판은 가톨릭 은총론[141], 성사론, 교회론이었고, 가톨릭의 마리아론은 '가톨릭의 오류 중 하나'로서만 다뤄졌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가톨릭에선 교황 무류성을 통해서 성모무염시태성모몽소승천을 교의적으로 확정하였다. 물론 그 전에도 가톨릭에서 긍정되던 명제가 결국은 교황들의 유보적 태도로도 부정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는 것[142]이 더 정확한 역사적 맥락이지만, 아무튼 교의로 선포될 때 교황 무류성을 통해 선포된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즉 근대 초의 마리아론 논쟁이 단지 마리아론 논쟁일 뿐이라면, 후기 근대와 현대의 마리아론 논쟁은 교황 무류성 논쟁과 결합된 새로운 맥락을 가진 것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승을 근거로 성모신심을 긍정하는 것에 대해 현재 개신교 교회 사가들은 그런 입장을 부정한다. 애초에 유대인의 풍습에서는 성유물이나 성상, 성인 공경 자체가 없었다.[143] 이후 선교 과정에서 현지인들이 유입되고 기독교의 국교화 이후로 자발적, 또는 강제적인 개종이 이뤄지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다신교 사원들은 대거 기독교 교회로 전환되거나 파괴되었다. 특히 그리스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섬기던 아르테미스(아데미) 등 지모신 숭배[144] 풍습이 교회 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145]

사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도 현재의 가톨릭의 교리가 논쟁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결코 아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예수께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하여 마리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으며, 오리게네스는 마리아의 신앙심이 일시적으로나마 흔들린 적이 있다고 신도와 주교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지안의 그레고리우스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강생 순간에 '깨끗하게 정화되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마리아가 가브리엘의 말을 즉시 믿지 못하고 감히 질문을 했으며, 가나에서 괜히 나서다가 면박을 당했으며, 예수의 형제들처럼 그 분을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다고 마리아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는 성행위를 통해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원죄를 면할 수 있었으나 마리아는 성행위를 통해 태어났으며, 따라서 원죄 없이 잉태된 것은 아니었으나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보았다. [146]

이후 중세기에도 일부 소수파가 아닌 가톨릭에서도 널리 존경받는 성 베르나르도 및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만일 원죄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성모 마리아도 원죄에 물들었다고 보았으나[147] 그의 다른 저작보다 인기가 적었고, 훗날 둔스 스코투스의 마리아론이 승리를 거둬 교의화된 것이다.[148]

한국에서는 현재 교회 일치 운동 참여와 상관없이 거의 개신교 모든 교파에서 가톨릭의 성모 교리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파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시기 가톨릭 전승도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의 대표적인 것이 마리아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황 무류설로 선포된 교리이기 때문이다. 교회 일치에 긍정적인 교단도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부정적이기 때문.

개신교의 입장에서 가톨릭 교회 마리아론 대략적 비판 내용은 다음과, 이곳과, 이곳 등으로 모두 장로교 출신의 신학자들, 즉 보수적 개신교의 개혁주의적 관점의 글이다. 구태여 위키상 참/거짓 논쟁을 하기보단 그들의 저작이나 문헌을 확인하여 참조하기 바란다.

짧게 설명하자면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처녀의 상태로 자식을 낳고, 예수를 낳은 이후에도 평생을 남편과 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고, 개신교에서는 예수만이 특별하게 성육신을 위해 마리아가 처녀인 상태에서 태어난 것이고, 그외의 예수의 형제들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어지신 어머니, 든든한 힘이신 동정녀,
하늘의 모후요 죄인의 피신처이신 성모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저희를 봉헌하나이다.
저희 자신과 가진 것을 모두 바치며
온전한 사랑으로
저희 가정과 조국을 성심께 봉헌하나이다.
저희 몸과 마음을 바치오니
저희 안에 있는 것, 저희 주위에 있는 것
모두 성모님의 것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는 오로지
성모님 사랑의 한몫을 나누어 주소서.
성모 성심께 바치는 봉헌 기도 中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는 비록 성모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성모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며
모든 천사와 더불어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는 저희를
자애로이 지켜 주소서.
저희는 성모님의 아들 예수님을
더욱 충실히 섬기며
어머니 슬하에 살기로 약속하나이다.
(중략)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
십자가 밑에서 맺어진 모자의 인연으로
저희를 품에 안아 주시고
온갖 위험과 고통 중에 돌보아 주시며
죽을 때에 저희를 저버리지 마소서.
아멘.
성모님께 자기를 바치는 기도

가톨릭 교리상으로는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며 전구 기도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같이 하느님께 기도를 하길 청하는 것이지만, 성모무염시태를 인정하지도 않고 아무리 신앙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기껏해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던 믿음의 사람' 정도로 표현하는 개신교의 입장에서, 가톨릭의 전구 기도문에 나오는 표현들과 성모 마리아를 향해 하느님의 어머니, 하늘의 모후 등의 표현을 쓰는 것 등을 봤을 때, 성모 마리아 공경이 우상숭배나 다름없어 보인다고 종종 말한다. 전구 기도가 이론상으로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성모 마리아 등에게 단순히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해도, 저런 기도문들을 계속 읇조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한테로 가므로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지하게 만드는 죄[149]를 짓는다는 개신교 측의 비판이 있다.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니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마태복음 23장(개역개정)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데, 그 당시 상황에 있던 유대인들한테 그 상황이 사람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상황이냐고 물어봤을 때 극구 부인하는 말을 들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을 볼 때, 개신교 측에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흠숭지례고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그보다는 낮은 단계의 상경지례라는 식으로 교리적 합리화를 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무의미하고, 가톨릭에서 하는 식으로 성모를 공경하면 결국 마음의 중심으로는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데에 이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다만 개신교 내부에서 가톨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지나치게 성모 마리아에 대해 침묵하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은 개신교 내부에 존재한다. 독일 루터교 교단에서 발간한 교리문답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개신교 신자들이 지나치게 성모 마리아에 대해 소극적임을 지적한다:
Maria ist nicht nur Katholisch; sie ist auch evangelisch. Protestanten vergessen das leicht.
[마리아는 가톨릭적Katholische이기만 한 건 아니다. 마리아는 또한 복음주의적evangelische[150]이기도 하다. 개신교 신자들은 쉽게 이를 망각한다.]
-독일 복음주의루터교회 연합Vereinigte Evangelisch-Lutherische Kirche Deutschlands[151], 《복음주의 성인 교리문답》Evangelischer Erwachsenenkatechismus, 1986년판, 416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정반대의 극단에서, 우상숭배처럼 보인다며 마리아에게 그 어떤 존경도 돌리지 않음으로써,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워버린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 동기는 성경, 교파, 교부 및 교모라기보다는 독선에 있다. 이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 사이에서 불행하고 문제 있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마리아와 성인(聖人)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적인 실천에서도. 만약 개인 신심이나 집단 예배에서 "너무 가톨릭스럽게" 보이거나 들린다면,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에 주신 동일한 선물들을 우리가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 마냥 버려버린다.[152]
Betsy Karkan, 〈Luther’s Love for St. Mary, Queen of Heaven〉[153]

또한 하나님의 어머니카를 바르트도 잘만 사용한 표현이며,[154] 마르틴 루터 역시도 마니피캇(루가 1,46-55) 해설서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르며 아예 전구기도까지 하였다.
하나님의 자애로운 어머니께서 몸소 저에게 지혜의 영을 주셔서 당신의 찬가를 유익하고도 철저하게 해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르틴 루터, 〈마니피캇〉 서문, 1521년 3월 10일[155]

흔한 통념과 달리,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엔 개신교에서도 교의적 반대가 없다. 단지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들이 있을 뿐이며, 이마저도 서구 개신교의 다수론이 아니다. 유럽의 가톨릭-개신교 신학자 36명[156]이 공저한 서적인 《Neues Glaubensbuch -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의 어머니 칭호는 예수의 '역사적 동정녀 탄생'처럼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 수용된 견해이다. 오히려 개신교 주석학에서 "반드시 역사적 보도라고만 봐야 할 건 아니다"라는 이의가 제기되는 "역사적 동정녀 탄생"과 비교하면, 하나님의 어머니 칭호는 단지 칭호 자체의 권위 이견일 뿐이다. 요컨대 하나님의 어머니 칭호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걸 넘어, 이를 개신교에서 거부하고 있는 우상숭배 칭호로 여기는 건, 개신교 신학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개신교 신학을 오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비가톨릭 , 특히 개신교측에서는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리에 대하여 더욱 특수한 반론들이 제기된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에 대해서는 별로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고백문이 고수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의가 제기되는 경우에는 이 칭호가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문 (사도신경 · 니케아신경 · 콘스탄티노폴리스신경)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이유가 되고 있다.

〈처녀〉라는 칭호 역시 일반적으로 인정되기는 하나, 주석학상으로 발견된 지식에 비추어 이에 대한 특정한 견지를 고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터교의 중도적이고 대표적인 견지에 의하면, 예수의 처녀 탄생이 사실이냐 표현수단에 불과하냐에 대해서는 성서에 명확한 증거가 없다. 사실이 라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 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사실로 믿어야 할 양심상의 구속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표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믿을 의무가 있다.
Johannes Feiner - Lukas Vischer 등 공저, 《새로운 공동신앙 고백서 - 하나인 믿음》Neues Glaubensbuch -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 이경우·정한교 번역, 분도출판사 1979, p.592
그리고 개신교에 속하는 성공회에서는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이 '가톨릭 교회의 논쟁적인 사안을 교황이 억지로 강요했다'는 왜곡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반박하고 있다:
1854년과 1950년에 선포한 것은[157] 어떤 논쟁에 대한 대응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모든 신자의 신앙에 대한 일치된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158]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 2005[159], 제62항
'하늘의 모후'(Regína Cǽli)라는 칭호 역시, 루터교에서는 잘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성모무염시태와 성모몽소승천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두 교의가 가톨릭 교회에서 확정된 주요 동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목적이었다는 데 루터교는 동의한다.
종교개혁 신학에서 문제시되는 성모무염시태와 성모몽소승천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마리아 교의와 달리, 믿음을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찬양하려는 게 주요한 의도였다.[160]
Bilaterale Artbeitsgruppe der Deutschen Bischofskonferenz und der Kirchenleitung der Vereinigten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Deutschlands, 〈Communio Sanctorum: Die Kirche als Gemeinschaft der Heiligen〉, Padervorn, 2000, 제265항

그리고 마르 3,21의 사람들에 마리아를 포함하든 말든, 그것은 마리아 개인의 인품에 대한 대한 복음사가의 단죄가 아니다.
19.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뒤에 세 공관 복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참가족은 누구인지를 언급하믄, 어떤 면에서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마르 3,31) 밖에 서서 예수님을 뵙기를 청하였다고 말합니다.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가족과 거리를 두시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종말론적 의미에서 당신의 가족'이라는, 곧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마르 3,35) 나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도 포함하여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은 예수님 사명의 참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은 주님의 제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예: 마르 8.33-35; 9,30-33; 10,35-40).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이해하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십자가와 빈 무덤을 보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에 이를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161]

20. 루카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육신 가족과 종말론적인 가족을 대립적으로 비교하지는 않지만(루카 8,19-21 참조), 그 이후의 장면에서 (루카 11,27-28 참조) 군중 속의 한 여인이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받으신 축복에 대하여 소리쳐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고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시작 때부터 루카 복음사가도 파악한 대로 이러한 형식의 축복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서 무슨 일이든지 받아들이실 준비가 되어 계신 마리아께서도 포함되신 것입니다(루카 1,38 참조).[162]

[주석]
3) 여기서 사용된 형제라는 말(그리스어 adelphos)은 히브리어 'ah'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피를 나눈 형제를 가리키며, 더 넓은 의미에서는 혈족이나 친척(예: 창세 29,12), 또는 이복형제를 의미할 수도 있다(마르 6,17 이하 참조). 마르코 복음 3장 31절에서는 친형제가 아닌 친척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마리아께는 포괄적 의미의 가족들이 있었다. 요한 복음 19장 25절에서는 마리아의 자매가 언급되고, 루카 복음 1장 36절에서는 친척 엘리사벳이 언급되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형제들'을 배다른 형제 또는 사촌으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163]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 2005[164], 제19-20항
마르코의 이해에 의하면, 파스카 이전엔 예수 주변의 그 어떤 인간도 메시아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선 마리아도 베드로(마르 8,31-33)도 예외가 아니며, 베드로는 아예 사탄(마르 8,33)이라는 극언을 듣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은 그 인물들을 나쁘게 말하기 위해 복음사가가 넣은 게 아니라, (예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예수를 이해하지 못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베드로도, 예루살렘의 야고보도, 마리아도, 초대 교회에서 존경 받는 유명인사였고, 이러한 유명인사들이 인류의 무지를 대변하는 건 매우 효과적인 이야기 장치였다. 마르코가 특히 이런 관점을 강조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는 성경 전체가 공유하는 관점이다. 가령 루가 복음서는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루가 2,48)고 무지하게 예수를 질책하는 마리아를 소개하고,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라는 예수의 질책을 소개한다. 그러나 루가 복음서 저자가 마리아에 대해 매우 긍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건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다.(루가 1,26-56; 사도 1,14) 곧, 성경에서 초대 교회의 존경 받는 유명인사가 예수에게 질책을 받는 장면은, '해당 구절에서 인류의 무지를 대변하는 인물이 질책을 받는 것'이지 '교회의 입장에서 그 인물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앵커바이블 주석에선, 베드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The interest in Peter's failures and vacillation does not detract from this pre-eminence; rather, it emphasizes it. Had peter been a lesser figure his behavior would been of less consequence cf. Gal ii 11 ff.).
[베드로의 실패와 흔들림에 대한 관심은 이 탁월함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강조한다. 베드로가 덜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그의 행위는 훨씬 덜 중요했을 것이다 (cf. 갈라 2,11 ff.).]
William Foxwell Albright & Christopher Stephen Mann, 《The Anchor Bible Matthew: Introduction, Translation, And Notes》, Doubleday & Company, Inc., 1971, p.195
성경은 마리아를 비록 완벽초인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성숙해지는 신앙인을 묘사하고 있다.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 요셉의 편을 든 마리아께서는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에 대하여 핀잔을 들으시지만, 점진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가시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165]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 2005[166], 제14항
따라서 성경은 독자들에게 마리아가 복되다고 부르라고 말한다.(μακαριοῦσίν, 루가 1,48)
성경의 증언은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가 마리아를 '복되신 분'으로 일컫도록 권유합니다. 비천한 신분의 이 유다 여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소망한 이스라엘의 딸이며,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으로 감싸시어 성자의 동정 어머니가 되게 하신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고자 조건 없이 순종하신 '주님의 종'으로, 또한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신 성자의 어머니로, 낯선 나라에서 피난처를 찾아 난민 생활을 하신 분으로, 당신 아드님의 무죄한 고통으로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던 어머니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 벗들을 맡기신 여인으로 찬양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가족인 갓 태어난 교회에 성령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한 마리아와 사도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악과 죽음의 권세를 겪으신 아드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하느님 백성의 궁극적 운명을 마리아 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167]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 2005[168], 제30항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며, 그분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보다도 그분께 더 가깝다. 신약성경은 예수로부터 마리아의 거리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이 친밀함을 인간적으로 묘사한다. 이 거리감의 예는 마리아에 대해 매우 자주 말하는 루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군중 속의 한 여인이 예수께 말한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Selig ist der Leib, der dich getragen hat, und die Brüste, die du gesogen hast 예수께서 답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다"Ja, selig sind, die das Wort Gottes hören und bewahren(루가 11,27f).[169] 그런데 이게 정확히 마리아에겐 해당되진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하나님 말씀의 모범적인 청자로, 하나님의 의지에 그렇습니다Ja라고 말하는 여종으로, 그녀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좋으심을 통해서는 모든 것인 은총받은자로 묘사된다. 하나님께 열려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 믿는 자들의 공동체, 곧 교회의 전형이 마리아다.[170]
-독일 복음주의루터교회 연합Vereinigte Evangelisch-Lutherische Kirche Deutschlands, 《복음주의 성인 교리문답》Evangelischer Erwachsenenkatechismus, Gütersloher Verlagshaus Mohn, 1975년판, pp.392-393

7. 이슬람의 관점

이슬람에서도 마리아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나온다. 사실 쿠란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여성이며 가장 뛰어난 여성이라고 할 정도. 쿠란에서 유일하게 본명으로 등장하는 여성이다. 예수(이사)도 '이븐 마르얌(마리아의 아들)'로 16번이나 부른다. 또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마리아/메리가 그렇듯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마리암은 매우 자주 쓰이는 여성 이름이다.

여기서도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일화가 있다. 홀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예전에 했던 처벌대로 던지는 돌에 맞는 벌을 당할 뻔했지만, 포대기에 싸인 어린 예수가 입을 열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예언자를 낳은 어머니로서 대우하는데, 꾸란제 19번째 장(=수라)은 마리아의 장이며, 여기서는 복음서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성모의 수태와 성장, 예수의 어린 시절 같은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대체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승과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마리아의 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위대한 예언자인 예수와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겸손함과 신에 대한 복종, 그리고 기적들을 찬양할 뿐 예수의 신성화나 성모 신심에 대해서는 분명한 메시지로 경계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마리아에 대한 칭송에 예수의 신성성 부정도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다.[171]

쿠란에 의하면 마리아는 이므란의 딸[172]로 되어있는데, 이 이므란은 아론과 모세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 대하여는 아론의 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73]

그러나 이슬람의 이런 마리아 전승은 그리스도교의 마리아 전승과 명백하게 모순되는 지점이 있는데, 아론과 모세의 활동시기는 기원전 1400년 즈음이고, 마리아의 활동시기는 기원전 5~4년 정도다. 천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것. 게다가 아버지 이름까지 모세, 아론의 아버지와 같은 데다가(성경에서 모세와 아론, 미리암의 아버지는 아므람인데, 아랍어로 아므람은 이므란으로 표기한다.) 확인 사살로 아랍어로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원어를 따지자면 '미리암'으로 표기가 같다. 사실 마리아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인 여성 이름 미리암의 그리스어 표기이다.

그리고 하나 더 결정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데, 구약에서 모세와 아론은 전부 12지파 중 레위 지파에 속해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이들의 누이 미리암 역시 레위 지파에 속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들인 예수는 엄연히 다윗의 자손, 즉 유다 지파에 속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약간 더 후대의 인물인 바울로 역시 예수의 지파가 유다 지파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 바, 당대 사람들에게 예수는 명백히 유다 지파로 받아들여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일 인물이라면 예수의 이러한 출신 성분이 설명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측 학자들 사이에서는 무함마드가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성모 마리아를 혼동해서 이 같이 쿠란을 저작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무슬림들의 반론은 셈계 어휘에서 ‘계승자 내지 후손’을 ‘형제’로 부르는 관습이 있다고 하여 ‘아론의 누이’라는 표현은 아론의 후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가 살았던 시대뿐만 아니라 쿠란이 쓰여질 때 당시에도 여성의 인권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여자 한 명 한 명까지 누구의 후손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힘들 것이고, 또한 성경이나 쿠란에도 여성을 누군가의 후손, 후계자라는 의미로 '누이'라고 서술한 전례 역시 없다.

8. 유대교의 관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의 호의적인 평가에 비해 매우 좋지않다. 대부분의 평가는 악의적이라고 할 정도이다. 일단 마리아 자체가 역사시대의 유대인이고 정작 그 민족의 서술이므로 무시하긴 힘들어 종교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를 살펴보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읽어보고 내상을 입을 정도의 서술이 매우 많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마리아는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이었고 성전에서 베를 짜는 일을 하다 마침 지나가던 '판테라'라는 로마군 백인대장을 유혹해 가지게 된 것이 예수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유대인들의 마리아에 대한 서술이 당대의 신흥 유대교 종파그리스도교에 반발해 연대적으로 뒤늦게 쓰여졌기 때문. 상식적으로,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 깡촌 시골마을의 일개 일자무식 목수 아내에 대해 그렇게 구체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마리아에 대한 기록의 속보성으론 분명히 복음서가 가장 앞선다고 학계에선 대체로 동의한다.

9.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의 관점

9.1.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가 제1차 대화(1970~1981)를 마치면서 발표한 〈윈저 성명〉(Windsor Statement)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하느님와 인간의 중개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라는 데에 동의한다.[174] 그리고 이러한 단언을 모호하게 만드는,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거부한다. 우리는 마리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교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에 동의한다. 우리는 강생하신 천주의 모친(Theotokos) 마리아의 은총과 유일한 소명을 인정하고, 마리아의 축일을 지키는 것과 성인의 통공에서 마리아께 존경을 드리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도록 준비되셨으며, 구세주를 통해서 구원되시어 영광을 받으셨다는 데에 동의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마리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덕과 순명과 신앙의 모범이시라는 인식에 동의한다. 우리는 마리아께서 주님 강생 이전이나 이후에도 하느님의 교회의 예언적 표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Windsor Statement〉 30항[175]
다만 몽소승천과 무염시태에 관해서는 같은 항에서 "성공회 신자들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와 성모 승천 교의에 대한 자세한 정의들이 성경에 충분한 근거를 두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두 교의에 대한 차이는 제2차 대화(1983~2001) 후 2005년에 발표된 합의문인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에서 매우 좁아졌다.
62. ... 1854년과 1950년에 선포한 것은[176] 어떤 논쟁에 대한 대응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모든 신자의 신앙에 대한 일치된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교리들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성공회에서는 성경에 의거한 가르침에 공의회가 동의한 것은 어떤 가르침이 믿을 교리(de fide)가 되는 데 필수적 필요조건이 충족되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 모두, 천주의 모친에 대한 교의는 모든 신자가 확고하고 지속적으로 믿어야 할 것으로 교회가 증언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1요한 1,1-3 참조).[177]

...78. 우리의 연구결과로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는 아래의 합의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 합의문이 마리아에 관한 우리의 합의를 크게 앞당겼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178]

-거룩하신 분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소명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구속 활동은 마리아를 통하여 마리아의 존재의 심연과 맨 처음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79]

-성모 승천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에 나타난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은 성경에 나타난 은총과 희망적 경륜의 유형 안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공통된 전통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180]

-이 합의문이 우리 두 공동체의 승인을 받게 되면 1854년과 1950년에 반포된 두 교의에서 발단된 권위에 관한 문제들이 새로운 교회 일치의 차원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181]

-마리아의 지속적인 역할은 우리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직무에 봉사하는 것이며, 마리아와 성인들은 온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는 관행은 공동체 분열의 요인이 되지 않는다.[182]||
79. 우리는 성경에 위배되는 교리나 신심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교회의 가르침도 될 수 없다는 데에 합의합니다. 우리는 '사적 계시'를 포함하여 마리아께 초점을 맞춘 교리와 신심 행위가, 교회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이고 유일한 위치를 보장하는 신중하게 표한된 규범으로 통제되어야 하며, 교회에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오직 그리스도께만 예배드려야 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183]

... 80. ... 우리는 이 합의문이 그 자체로서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 교리를 재수용한 산물임을 믿으며, 두 교회가 화해를 이루는 데에 마리아에 관한 교리나 신심에 관한 문제들이 더 이상 공동체 분열의 요인이 되거나 가시적 친교(Koinonia)로 나아가는 새로운 단계에 장해물이 되지 않음을 믿습니다.[184]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185], 2005

9.2. 프랑스 동브 그룹

1937년부터 시작된 가톨릭-개신교 신학자들의 일치 모임인 동브 그룹Groupe des Dombes[186]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의 연구와 논의의 결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의 마리아》Marie dans le dessein de Dieu et la communion des saints[187]를 발표했는데,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을 위한 부정적 의미의 타협주의가 아니라, 개신교 신앙 그 자체를 위해서라도, 개신교 신앙이 마리아에 대한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서술했다. 이 문서에서는 개신교 신앙이 마리아에 대해서 과도하게 언급을 회피하고 있으며, 마리아의 교의적이고 전례적인 위치가 현재보다 개신교에서 더 격상되어야 함을 요청하였다:
[제315항] 개신교의 태도변화 과정은 두 가지 레벨에서 취해져야 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마리아 신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이 믿음의 친교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개신교 신자들은 인정하여야만 한다. 둘째, 이 질문은 한쪽이 더 경건한지 한쪽이 불충분한지가 아니다. (이것은 균형있는 게 아니다) 이 질문은 양쪽에 있는 무언가가 신앙인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를 막아서고 있는건 아닌지에 관한 것이다. 개신교 신자들은 그들 자신들의 마리아에 관한 잦은 침묵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자문(自問)할 필요가 있다.[188]

...[제319항] 하느님의 계획에서 마리아와 그녀의 유일한 위치에 관한 재평가 및 복원은 매우 다른 관점들을 뭉틍그리는 "에큐메니컬 타협"이 아니다. 복음의 마리아에게로의 귀환이고 성경에 대한 더 큰 충실함의 표시이다. 심지어 마리아 신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카를 바르트조차도 명백하게 마리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다윗보다, 세례자 요한보다, 바울로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유사한 것이 없는 유일한 사건이다."[189][190]

...[제329항] 개신교의 침묵, 신학적 논쟁, 여전히 존재하는 극단적 성모신심에 대한 개신교의 주의깊음을 넘어서서, 개신교는 구원의 신비와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의 교의적이고 전례적인 진정한 위치를 마리아에게 다시 돌려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신교는 우리의 교회들 사이에서 일치에 유용한 기여를 할 것이며, 전체 교회의 위대한 전통 안에서 더 잘 자리잡을 것이다.[191]
-Groupe des Dombes,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의 마리아》Marie dans le dessein de Dieu et la communion des saints[192]

10. 성모 마리아의 축일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 일부 루터회 등 그리스도교 전반에서 가장 공경받는 성인인 만큼 축일도 호칭에 따라 여러 날이 있다.[193]
날짜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성모 수태고지 축일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성모 방문 축일
7월 16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참고)
8월 5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안식 축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성모 탄생 축일 성모 탄신 축일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0월 1일 성모 보호 축일
10월 7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성모 입당 축일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성모 시태 축일

11. 마리아론

항목참조.

12. 기타

그리스도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것만 알고 마리아를 야훼의 아내, 천국의 왕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최소한 성모신심을 가진 교파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맞고 또다른 면에서는 틀렸다. 이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가톨릭의 설명에 따르면, 마리아는 성부의 딸이자, 성자의 어머니이자, 성령의 정배이다.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은 마리아가 진정한 성자 예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194] 성부와 성령의 어머니라는 의미는 아니고, 다만 성자 예수도 참으로 한분이신 하느님이기 때문에 천주의 성모라 칭하는 것이다. 성부에게는 하와와 정 반대로 순명하였기에 성부의 딸이 되고, 성령으로 인하여 성자를 잉태하였기에 성령에게는 정배(배우자)가 된다.

또한 마리아를 하늘의 모후(여왕)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라틴어: Regina Caeli, 영어: Queen of Heaven), 앞의 사례와 그 원리는 같다. 모후는 왕의 어머니인 태후, 대비와 같은 말로, 성경에서는 2열왕 2,13-19; 예레 13,18; 29,2 등에 나타나는 지위이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야훼로서 하늘의 임금이라면, 마리아는 그 임금의 어머니로서 하늘의 모후가 된다. 하늘의 여왕이란 표현 자체는 고대 근동의 여신인 아세라의 칭호가 겹치기에 영어권 개신교 및 여기서 영향 받은 한국 개신교에서는 루터교 등 일부가 사용하는 외에는 통상 터부시되지만, 이런 사례 자체는 성경에도 많다. 가령 '구름을 타고 오는 분'(신명 33,26; 다니 7,13; 마태 24,30; 묵시 1,7)이란 표현은 바로 그 바알에게 쓰인 칭호이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도미티아누스 시절의 황제 수식어인 dominus et deus(주님이요 하느님)에 상응한다. 비록 이교에서 쓰는 말이라도, 그리스도교 신앙 표현에 적절하게 쓸 수 있다면, 구약 시기의 이스라엘에서부터 이어진 고대 교회에선 무리 없이 사용했다.

결국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서기 451년 칼케돈 공의회의 선언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마리아를 단 한 번도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성모'라고 불리지만 정작 예수는 자기를 낳은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는 아이러니. 다만 십자가상에서 죽기 직전 유언으로 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기라고 부탁하였다[195]. 가톨릭과 정교회는 고대 교부들의 해석을 따라 이것이 신학적으로는 어머니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이해하지만, 그러나 교파를 막론하고 이 대목을 아들이 죽고 떠나는 가슴아픈 상황을 겪어야 할 어머니를 안타깝게 여긴 예수의 인간적 마음에서도 나온 말씀이라고도 받아들인다.#

13. 대중 문화에서의 성모 마리아

13.1. 종교 영화에서의 성모 마리아

성경, 특히 예수의 일대기를 주제로 제작된 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주로 예수의 잉태와 탄생, 유년시절, 그리고 십자가 수난 시기에 모성애와 신심(信心) 어린 성모 마리아의 열연(?)을 볼 수 있다.
천주교 계열 예술에서는 동정녀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가 장성한 뒤에도 젊은 처녀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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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자렛 예수>에서.
배우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전기 영화에도 출연한 올리비아 허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서. 배우는 마야 모르겐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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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네티비티 스토리>(2006)에서. 배우는 케이샤 캐슬-휴스.[196]
개신교의 입장을 따라 요셉도 청년으로 초혼인 것으로 묘사된다.
미국 애니메이션 <더 크리스마스>(2017)에서. 성우는 지나 로드리게즈/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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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TV영화 <나자렛의 마리아>(2012)에서. 배우는 알리사 융.
왼쪽은 예수를 잉태해 출산한 젊은 모습, 오른쪽은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의 중년 모습.

13.2. 기타 창작물에서의 마리아

세인트 영멘에서는 동안미인으로 나온다. 키요시라는 아이돌이 손자 같아서 귀엽다며 좋아하고 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는 카트(!)를 옥좌라며 끌고 다니는 갭모에를 보여준다. 할머니카트는 키요시의 공연을 보러다니다가 공연 대기시간에 앉을 수도 있다는 주변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의 추천으로 마련하게 되었단다. 다만 동정녀였던 탓에 커플들의 염장질에 상당히 예민한 성격이고, 자기가 울음을 참으면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붓다의 어머니 마야부인과는 마야부인은 왕족이고 자신은 그렇지 않았던지라 워낙에 배경이 달라 2천년을 말도 못 붙이고 서먹서먹하게 지내 왔지만, 아들들의 주선으로 하계에서 한 번 만났을 때 처음엔 갭이 좀 있었으나 자식 둔 어머니들의 공통점인(...) 무심한 아들들을 흉보면서 완전히 의기투합, 절친이 돼서 둘이 스티커 사진 찍으러 다니고 아들 흉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사이가 됐다. 일명 세인트 마더스. 한번은 성화가 그려진 식당에 아들 일당과 같이 사이제리야에 갔다가 레드와인을 대접받았는데 "레드와인은 예수의 피 같다"고 해서 사도 요한화이트와인을 가져오게 했는데 이게 또 하필이면 '라크리마 크리스티(Lacryma Christi, 그리스도의 눈물)'이었다. 그러자 "아들의 눈물은 내가 다 마셔 버릴 테니 예수는 언제나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룩한 아가페를 하고선 병나발로 한 방에 원샷해 버렸는데[197], 자기 기분에 자기가 취해서 울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동안, 사이제리야 벽에 걸려있던 성모자화가 피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일어나 버렸다. 그 탓에 성모님의 적인 커플들은 대경실색하며 회개할 뻔했다... 참고로 그 뒤로도 세 병이나 더 마셨다고.

에빌리오스 시리즈메타 잘름호퍼가 성모 마리아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로 여겨진다. 정작 본인은 모티브에 걸맞지 않는 기구한 인생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나이트런프레이 마이어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생에 처음으로 신에게 친구를 가지고 싶다고 기도했고, 신이 그 기도에 화답하듯이 처녀의 몸으로 앤 마이어를 잉태하고 낳았다. 그것도 크리스마스날 베들레헴 말구유 세트장에서.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앤은 크리스마스에 인류 멸망 위기였던 기도전쟁을 일으킨 여왕괴수를 죽이고 인류를 구원한다.

싱압둘이 그린 종교사 만화 세계종교사: 예루살렘에서 암리차흐까지에서는 초상화가 남은 다른 인물들은 초상화 기반으로 그려졌는데 유독 마리아만 싱압둘식 그림체로 그려졌다. 후드를 뒤집어 쓴 5:5가르마를 가지고 있고 얼굴 뒤에는 광배가 그려진 모습이다.

본격 신성 모독 만화 배틀 포프에서는 쭉빵하신 누님으로 나온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어머니 슈미 스카이워커는 처녀의 몸으로 어느날 갑자기 아나킨을 잉태하고 낳았다는 점에서 성모 마리아를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이다. 메시아처럼 아나킨도 선택받은 자라는 칭호를 얻었으나, 아나킨은 슈미의 죽음을 시작으로 타락해버리고 만다.

뷰티풀 군바리 90화 표지에서는 육근옥이 성모 마리아 코스프레를 한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는 예수님 대신 가끔 나오신다. 육신이라고 할수있는 석고 조각상은 중세 시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성상임에도 너무도 조잡한데다 도색과 마감마저 끔찍한 수준이라고 묘사된다.

블리치의 최종보스인 유하바하의 모티브가 예수인데 그 어머니로 보이는 인물이 블리치 천년혈전 편 : 결별담 1화(14화)에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처녀임신으로 유하바하가 탄생한듯한 묘사가 있었기 때문에 해당 여성의 실루엣은 성모 마리아에서 모티브를 따온 걸로 추정된다.

14. 관련 어록

오, 마리아여! 예수님은 평범한 인간으로 당신 태중을 빌어 태어나셨습니다. 이 복된 왕, 지극히 풍요로우신 왕께서도 당신 앞에서만은 가난한 이 되셨고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분이 작은 이 되셨고 천사들보다 못한 신분이 되셨습니다. 마침내 참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이 인간으로 탄생하셨습니다.
성 베르나르도
이사야가 노래하셨다. “동정녀가 잉태하리라.” 그러나 이 일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일어날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마리아 안에 예언의 큰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놀라운 기적으로 충만한 마리아에게 이 예언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숨겨진 예언서의 비밀들이 알려졌다. 그녀에게서 정의의 태양이 움트고 떠오른 태양 앞에 온 땅이 빛을 내었다. 마리아 안에서 모든 상징과 표징이 이루어지고, 모든 예언이 완성되었다.
시리아의 에프렘
오 복되신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하느님께서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보여주셨는지요! 하느님께서 온갖 은총으로 당신의 비천함과 보잘것없음을 돌보셨나이다. 당신께 하신 대로 주님께서 이제와 항상, 가난한 저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로이 돌보실 것을 기억하게 하셨나이다.
마르틴 루터
거룩하고 인자하신 우리 성모 마리아! 온순하고 순결하신 구세주의 어머니. 사랑스런 성모시여 우리 위해 비소서.
리처드 럿트

15. 관련 문서



[1] 19세기 한반도에 처음 진출했던 파리 외방전교회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가장 잘 알려진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이다.[2] 그리스도교의 일부 종파에서는 '사망'이 아닌 '승천'으로, 육신과 영혼이 죽음을 초탈했다고 믿어진다. 성모몽소승천 참조.[3] 서기 41년(향년 59세) 설도 존재한다.[4] 혹은 에페소.[5] 예수의 친아버지가 아닌 양아버지[6] 일부 개신교에서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태어났다고 본다.[7] ‘최초의 그리스도인’으로 호칭된다.[8] 정교회, 성공회[9] 본래 성모(聖母)는 국모(國母)에게 쓰는 극존칭이다(예: 성종실록 9권, 성종 2년 1월 18일 신묘 3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인조실록 30권, 인조 12년 11월 5일 정사 1번째기사 1634년 명 숭정(崇禎) 7년). 즉 성모(聖母)는 모후(母后) 혹은 라틴어 Regina, 영어 Queen에 상응한다.[10] '천주의 성모'는 하느님의 어머니, 곧 테오토코스의 번역으로 사용한다. 가령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영어로 Solemnity of Mary, Mother of God이다.[11]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사도 신경 등에서 '동정(녀) 마리아'로 언급된다.[12] '지극히 거룩한(all-holy) 여성'이라는 뜻.[13] '여왕' 등의 뜻.[14] 동정녀 마리아라는 뜻.[15] 生神女(しょうしんじょ)는 정교회에서 쓰는 경칭이다. 특히 일본 정교회는 신을 낳은 여인(神を生みし女) 마리아를 단순히 '성모'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이며, '성모'라는 호칭 자체도 '성스러운 어머니'인 의미의 성인이 여러 명(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등) 존재하고, 타국 정교회와 호칭을 통일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직 이 경칭만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타 교파와 다르게 マリア(마리아)가 아닌 マリヤ(마리야)인 이유는 교회 슬라브어를 전사한 것이기 때문이다.[16] 이슬람교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약간 다르기는 하나 처녀 잉태 자체는 인정한다.[17] 가톨릭에서는 이를 상경지례(上敬之禮)라고 부른다.[18]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쓰여진 것들 중 신구약 성서에 포함되지 못한 책을 말한다.[19] 야고보 복음서, Protoevangelium of James[20] 성모몽소승천성모무염시태가 전체 정교회의 확정된 교리가 아니라고 해서 정교회의 성모신심이 가톨릭보다 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오해이다. 몽소승천은 정교회 시스템 특성상 전체 정교회의 교의 확정이 어려운 것일 뿐, 교회전승으로 인정된다. 그리고 교회전승에 들어있으면 입증책임은 정교회 관념상 반대측이 짊어져야한다. 그래서 당장 모스크바 한복판에 몽소승천 성당이라는 정교회 성당이 있는 것이다. 즉 몽소승천을 간판에 달 때 입증책임을 가지는 게 아니라, 간판에서 내리라고 말할 때 입증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통상 정교가 성모무염시태에 회의적인 이유는 성모신심이 옅어서가 아니라, 무염시태가 성모의 '공로'를 희석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례상으로는, 마리아를 매우 간략하게 언급하는 로마미사보다 성모송까지 넣은 요한 금구 성찬예배가 훨씬 적극적으로 성모신심을 표현한다.[21] 즉, 복음주의 및 개혁주의,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성향을 막론하고[22]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한국 천주교 번역)[23] 사실 마르틴 루터부터가 본래 성모 마리아 신심이 깊은 인물이었고, 그 영향이 그의 생애 평생에 걸쳐 남아있었다. 그의 종교개혁적 성향이 반영된 성모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를 논한 설교집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성인들에 대해 기도를 청하는 관습(전구)이 민중들의 신앙 생활에서 강조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점차 비판적이 되었으며, 이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24] παρθενογένεσις(처녀 + 생성). 현대 그리스어로는 파르세노예네시스.[25] 반대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처럼 늙은 여성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하였다면 충분히 징조가 되었을 것이다[26] 헬레니즘 시대에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했다.[27] Immaculata(임마쿨라타). 축일은 12월 8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불린다.[28] 성모승천일이라고도 하나, 이날은 성모 마리아가 실제로 승천된 날이 아닌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기에 성모 승천 대축일이 옳다. 성탄절이 예수의 탄생일이라기 보다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29] 사후에 그의 주검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으로 전한다.[30] 이 여인을 '교회'로 해석하는 관점에 대해선 '초대교회' 문단 참조.[31] 사도신경에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참고로 이 번역은 개신교의 번역이다.[32] 위키미디어 공용 참조.[33] 가령 '성모승천 교의 선포'를 반대했던 카를 라너(Karl Rahne) 신부는 성모승천이라는 명제를 반대한 게 아니라 '선포'를 반대한 것이다. 「라너가 보기에 성모승천은 교리로 선포되지 않고도 단순히 교회의 믿을 내용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었다. 이는 라너가 마리아론을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인간학적ㆍ종말론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라너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주목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십자가 위로 어둠이 덮치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증언하는데 이것은 바로 죄와 죽음의 옛 세상이 몰락했음을 뜻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그와 동시에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성경의 증언은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 세상의 종말이자, 인간 영육의 완성이 이뤄지는 세상의 새로운 창조다. 성모 마리아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모승천을 인간학적ㆍ그리스도론적ㆍ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인간들의 종말론적 구원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라너의 견해였다. 그는 성모승천에 관한 믿음을 교리로 선포할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라너는 이에 대해 393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논문 〈오늘날 마리아론의 문제들〉을 작성했다.」 #[34] Has the body of any human person ever been raised from the dead and taken into heaven?[35] By the special privilege of her Assumption, the body of the Blessed Virgin Mary, united to her immaculate soul, was glorified and taken into heaven.[36] 개신교는 세례가 중요하지만, 세례 안 받으면 구원 못받는다고 하면 그냥 너 이단 취급한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와 마리아 무염시태와 연관짓지 않는다.[37]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53항.[38]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63항.[39]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69항.[40] (교리서 내 주석) 교회 헌장, 68항.[41] 중화권인 홍콩, 마카오에서도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나 다른 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교"로 엄연히 분리한다. 홍콩 교회와 마카오 교회는 天主堂이라는 말이 개신교, 가톨릭을 아우르는 교회의 뜻으로 쓰인다. 홍콩의 종주국이었던 영국이 반가톨릭 정서가 있는 나라라 개신교와 가톨릭을 철저히 분리해 그렇지. 그 배경은 당연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성공회 참조.[42] 정교회의 성모송에는 없다. 개신교 신자들이 성모송을 접할 때 가장 난감해하는 부분.[43] 더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이 구절의 여인이 성모 마리아 그 자체를 뜻한다고는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회'를 '메시아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고는 무난하게 말할 수 있다. 곧, '여인'은 교회와 마리아를 동시에 뜻하는 것으로, 혹은 1차적으로는 교회를 2차적으로는 마리아를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44]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마르코 스프리치(번역: 박성희)[45] (책 속 주석)단테의 「신곡」(Commedia Divina) "천국편" 33곡(1-39절)에서 다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례 기념 참가에서.[46] 그럴만한게 성모공경을 인정하는 성공회루터교회가 한국에서는 소수 교파다. 루터교회가 오리지널 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홍콩싱가포르영국령이었던 관계로 루터회와 성공회가 사실 더 많다. 웨일스가 극성 루터회 지방이고 성공회는 잉글랜드의 국교이기 때문. 장로회도 예장통합처럼 스코틀랜드계의 융통성 있는 개신교라 복음주의지 근본주의는 아니다.[47] 다만 에큐메니컬 계열 교단에 속한 교회들은 예배 시간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설교를 종종 하고는 한다.[48] κεχαριτωμένη[49] certainly Luke would not be opposed to regarding the grace bestowed upon Mary as a fullness of God's favor. Some modern translations catch this by rendering kecharitōmenē as 'highly favored one.' But 'full of grace' is too strong. ... for Luke Mary's special state is to be constituted by the divine favor involved in the conception of Jesus.[분명히 루카는 마리아에게 부어진 은총을 하느님 은혜의 충만함으로 해석하는 걸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현대 해석자들은 '매우 은총을 받은 이'(highly favored one)로 해석함으로써 이러한 의미를 포착해낸다. 다만 '은총이 가득한 이'는 너무 강하다. ... 루카에게 있어서 마리아의 특별한 지위는 예수를 잉태함으로써 연루된 거룩한 은총한 은총으로 구성되어있다.] Raymond E. Brown, The Birth of the Messiah, Doubleday, 1993, p.326[50] 가톨릭 안에서도 '은총이 가득한'(새번역), '은총을 입은'(200주년 신약) 등 다양한 번역이 나오며, 개신교 안에서도 '은혜를 받은'(개역개정), '특별히 사랑받는'(새한글) 등으로 나뉜다. 공동번역으로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이다.[51] "앵커바이블 요한계시록 2", 크레이그 R. 쾨스터[52] 가령 창세기의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명명백백하게 이스라엘 백성과 12지파를 표상한다. 그러나 더 거대한 개념을 표상한다고 해서, 야곱과 아들들의 구체성과 의미를 창세기가 희석하는 건 아니다. 즉 요한묵시록에서 '메시아의 어머니'가 '메시아의 백성'을 표상한다는 게, '메시아의 어머니'의 구체성과 의미를 지워버리는 건 아니다.[53] I would suggest…that this figure [the “woman” of Revelation 12] is both the literal mother of the male child Jesus, and also the female image of the people of God.[54]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쓰여진 것들 중 신구약성서 경전에 포함되지 못한 작품을 말한다.[55] 즉 1000년도 더 후에 벌어진 가톨릭과 개신교의 마리아론 논쟁과는 맥락이 다른 것이다. 네스토리우스와 키릴루스의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원리로 하느님이자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려는 논쟁이었지, 성모공경 논쟁이 아니다. 키릴루스에게도 네스토리우스에게도 성모공경은 당연히 전제된 것이었으며, 다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의 논리적 귀결로 "성모 마리아는 어떤 예수님의 어머니인가"가 따라온 것이다.[56]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고대 이단[57] 오늘날과 키릴루스 시대는 신학 용어의 차이가 있어서 그 시대 그대로의 언어로 말하면 매우 길고 지루한 설명이 되기에, 후대의 신학 용어로 번역해서 말하자면, 키릴루스의 견해는 곧 ‘위격적 결합’이다. 단일한 신적 로고스라는 자주체(hypostasis희랍어), 즉 위격(persona라틴어) 안에서 신적 본성(physis희랍어)과 인간적 본성(physis희랍어)이 결합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것이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는 ‘신적 로고스’라는 자주체의 어머니이니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논리적 귀결이 나온다.[출처] Addai and Mari, Liturgy of. Cross, F. L., ed.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Book for people in English". Kaldu.org. Retrieved 2013-11-03.[59] 라틴어 번역어는 Mater Dei. 가톨릭 문서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다. 마찬가지로 정교회 기도문에서는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로 '테오토코스이시며…'라는 문구가 자주 들어간다.[60] 반대로 네스토리우스파는 마리아를 '그리스도를 낳은 자'라는 뜻을 지닌 크리스토토코스로 지칭했다. 몽골 제국 시기의 중앙아시아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사제들이 로마를 방문해 추기경들과 면담했을 때도 이들은 마리아를 크리스토토코스로 인식했다. 네스토리우스파 고유의 전례 형식(교리 자체는 1976년 딩카 4세 시기부터 타 교파와의 일치를 위해 조금 수정되었다.)이 많이 남은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이슬람권의 탄압과 압박으로 인해 성상과 성화를 사용하는 전통이 크게 약화되어서 이콘이 아닌 십자가에다 정교회 스타일로 입맞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61] 이건 현대의 성모신심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성모신심이 두드러지는 쪽은 교과서 신학이 아니라, 레지오 마리애, 푸른 군대 등 각종 신심 단체들과 일선 사목 현장의 본당 사제들이다. 이러한 대중신심 분야에서는 '공동 구속자' 같은 과장된 표현도 나오지만, 일선 현장의 표현 하나하나를 교과서 수준으로 정밀하게 다듬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자칫하면 평신도와 일선 사목자는 아무 것도 못하고 오직 고위성직자들과 대학신학자들만이 교회를 주도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단적인 오류를 범한 게 아니라면, 표현이 과장되는 것 정도는 대체로 그냥 넘어간다. 중세에나 현대에나 성모신심이 평신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가진 신심인 건 틀림 없는 사실이다.[62] Martin Luther,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Weimarer Ausgabe), Weibar, 1883~1982[63] 번역은 '손희송, 《주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 - 어제와 오늘의 성모 마리아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4, p.144'에서 발췌.[64] 상경지례. 성인 중에서 최고로 침.[65] 프랑스 가톨릭은 성모신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며, 성모무염시태, 성모몽소승천 교리 확립에 기여했다는 얘기도 있다.[66] 당장 가톨릭만 하더라도, 교황 무류성으로 1950년에 몽소승천을 선포하기 이전에, 이미 볼티모어 교리문답에서 성모몽소승천을 교리로서 가르치고 있었다.[67] '원죄'라는 용어부터 거부하는 사목자부터, 가톨릭과 유사하게 가르치는 경우까지 모두 공존한다.[68] Meyendorff. J <The Orthodox Church>[69] 가톨릭의 성모 영보(聖母領報, Annunciatio)에 해당한다.[70] 한편 가톨릭의 교리는 몽소승천이 마리아의 죽음을 전제하는지, 혹은 죽음 직전에 몽소승천이 일어난 것인지를 확정하지 않는다.[71] 복자 비오 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에서 공인.[72] 절대 '몸소승천'이 아니다! 몽소승천은 한자로 蒙召昇天라고 쓰는데, 이를 우리말로 풀면 '부르심을 받아 하늘에 올라갔다'는 뜻이 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몽소'승천'이나 성모'승천'은 좋은 번역이라 하긴 어려운데, 라틴어 Assumptio는 위, 아래, 하늘 따위의 온갖 공간적 관념을 배제하고 있다. Assumptio를 어원으로 하는 영어 Assumption 역시도 말 자체는 '인수', '떠맡음' 정도의 의미라서 '승천'이라는 한국어와 거리가 있다. 영광 속으로 '받아들여짐'Assumption이 본래의 뉘앙스이다.[73] 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에서 공인. 신자들도 간혹 순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 듯(…) 여기서의 승천은 에녹엘리야의 승천과 같은 경우이고, 예수의 승천은 스스로 올라갔다 하여 'Ascensio'라는 단어를 따로 쓴다.[74] <러시아 정교-역사 신학 예술> (석영중) p.225[75] 가톨릭 교리상으로도 성모가 죽고 부활하여 승천했는지 여부는 말하지 않는다.[76] 그 외에, 동방 정교회는 아니지만 오리엔트 정교회의 경우도 몽소승천Assumption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성모승천대축일The Feast of the Assumption of Saint Mary을 기념한다. 혹은 아예 승천Ascension 축일이라는 강한 워딩으로 말하기도 한다.(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77] 이 가르침은 2세기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서도 나온다. 물론 가톨릭-정교가 여기서 야고보 원복음서를 정경으로 보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경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야고보 원복음서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2세기에 이미 평생동정 전승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78] (책 속 주석)John Saward, Cradle of Redeeming Love: The Theology of the Christmas Mystery (San Francisco 2002), 18 참조.[79] 발췌자 주석: 2005년에 발행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을 말함.[80] 한국 가톨릭의 평신도 성서학자. 로마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와 고대 근동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시나이의 아나스타시우스의 작품 「시편 6편에 관한 강론」의 콥트어 필사본을 만들고 번역, 주석하여 고대 근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008년).[81] 「This he(발췌자 주석: 히에로니무스) based on the assertion that adelphos could be used in Greek to indicate a far wider relationship than that of blood kinship. This was certainly true.」[히에로니무스의 근거는 희랍어 adelphos가 혈통보다도 넓은 관계를 가리킨다는 것에 있다. 이건 확실하게 옳은 말이다.]
-Christopher Stephen Mann, 《Mark :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Doubleday, 1986, p.258
[82] 「Needless to say, all of these arguments, even when taken together, cannot produce absolute certitude in a matter for which there is so little evidence[두말할 필요 없이, 이 모든 파편적 기록들을 모아봐도 증거가 너무 적으니 절대적 확실성을 생성할 수 없다.](John P. Meier, 《A Marginal Jew》. volume 1, Doubleday, 1991)
「In conclusion, Meier is right that, since "the data are sparse and ambiguous," any conclusions about the relationship of Jesus to his brothers and sisters must be "quite limited and tentative."[결론적으로 말해서, 마이어가 "자료가 부족하고 애매하다"는 이유로 예수와 형제자매의 관계에 대한 어떤 결론이라도 "매우 제한적이고 잠정적"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한 것은 옳다.](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
[83] 곧 가톨릭-정교는 애매한 단편적인 텍스트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계시에 대해 정말로 합법적이고 정당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교회가 그 안에서 성령의 파견으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성사’이기 때문이다.”(가톨릭 교리서 1118항) 반면 개신교는 애매한 텍스트에 대해 교회의 판단을 거부하는 입장이다.[84] 영문 번역[85] 이는 원문상 헤게시푸스가 예루살렘의 주교 시메온을 '(야고보에 이은) 두 번째 주교'로 봤다고도, 혹은 '(야고보에 이은) 두 번째 사촌'으로 봤다고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86] John P. Meier 몬시뇰, 《A Marginal Jew》. volume 1, Doubleday, 1991, 318-319p 이하 John P. Meier로 표기함.[87] 천주교는 교회의 전승과 권위를 통한 성경형성을 말하지만, 개신교는 성경의 자증성을 말하기에 천주교식 해석과 성경 형성과정을 무시한다. 성경은 스스로 성경임을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마음껏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며, 교회와 성경의 선후관계 그리고 교회의 개념(유형적 또는 무형적)도 다르다. 그러니 애초에 교회론에 대한 이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88] 보캄은 에피파니우스적 관점(이복형제)의 옳음이 그 자체로 평생동정 교리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기자신은 평생동정 교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89] 「이 헤로데는 일찍이 사람을 시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그것은 헤로데가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였다고 해서」(공동번역)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로디아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의 아내였다.[90] "「If Luke can call Joseph Jesus’ parent or father without implying blood relationship, then it is arbitrary to insist that reference to Jesus’ brothers and sisters must imply blood relationship.」 (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91] 마르코 3장 31절 → 마태오 12장 46절; 마르코 6장 3절 → 마태오 13장 55절[92]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공동번역)[93] 「While Meier rightly recognizes that the language of Matt 1:25 cannot be pressed to imply that Joseph and Mary had sexual relations—let alone that they had children—after the birth of Jesus, he argues that Matthew's redac-tion of Mark in Matt 12:46 (11 Mark 3:31) and Matt 13:55 (11 Mark 6:3) shows that Matthew thought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were children of Joseph and Mary.1' However, these arguments are examples of oversubtle and overambitious use of redaction criticism.」[94] ἡ μήτηρ αὐτοῦ καὶ οἱ ἀδελφοὶ αὐτοῦ(hē mētēr autou kai hoi adelphoi autou)[95] ἡ μήτηρ καὶ οἱ ἀδελφοὶ αὐτοῦ(hē mētēr kai hoi adelphoi autou)[96] 「It is overinterpretation of the differences between Matthew and Mark」(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97] 「It is impossible to b e sure that such a change is deliberate at all, or that, if it is deliberate, it represents more than a stylistic preferece.」(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98] 「The regular association of Jesus's mother and brothers in the gospel traditions by nomeans require that they were blood relatives; it requires only that they constituted a family unit.」(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99]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공동번역)[100]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공동번역)[101] 「It is the only piece of nonbiblical information common to these works.」(Richard Bauckham, 〈The Brothers and Sisters of Jesus: An Epiphanian Response to John P. Meier〉)[102] 즉 Tal Ilan의 말대로라면 마르코는 마리아를 족보상 더 중시했어야 하는데, 마르코가 족보상 마리아를 중시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103] 「The fact that in Mark's account of Jesus' visit to Nazareth, the people of Nazareth call him "son of Mary" (Mark 6:3) rather than "son of Joseph" (cf.. Matt 13:55; Luke 4:22; John 6:42) has never been satisfactorily explained. Suppositions that it was Jewish custom to use a metronymic to refer either (a) to the son of a widow, or (b) to an illegitimate son have been shown to have no convincing support from Jewish parallels. In a recent article Ilan has shown that there is some evidence from Josephus and rabbinic tradition that (c) "a man would be called after his mother when she possessed superior lineage." She suggests that Mark, unlike Matthew and Luke, knew nothing of Joseph's Davidic lineage, and could, therefore, consider Mary the more important parent. In fact, it is probable that Mark believed in Jesus' Davidic descent (Mark 10:48; 11:10), which was the widespread belief of the early church (Acts 2:30; 13:23; 15:16; Rom 1:3; 2 Tim 2:8; Heb 7:14; Rev 5:5; 22:16; Did. 10:6), and he would have needed good reason not to assume that this descent was through Joseph. Even if Mark did not think Jesus was descended from David, we are still at a loss to know why he should have thought Mary the genealogically more distinguished parent. Another possibility, (d) that Mark refers to the virginal conception, is unlikely. None of the gospels represent the virginal conception as a matter of public knowledge, and so, even supposing Mark knew the tradition of the virginal conception, it is unlikely that he meant to refer to the virginal conception when he put the designation "son of Mary" on the lips of the people of Nazareth.」[104] 「Finally, McArthur and Meier, having rightly rejected other proposed solutions, except (c), which they did not know, propose (e) that the phrase is not a formal designation but an "informal description" occasioned by the context. Wishing to point out that Jesus was an ordinary member of their own community, the Nazarenes naturally think of him as the son of his still living parent, who is presumably there in the synagogue as they speak. This is the best explanation that has so far been offered, but it is not quite convincing. if Jesus were normally known as "the son of Joseph," as Jewish custom seems to require, one would expect the Nazarenes to make their point by first calling him this, and then going on to refer to those relatives who were there with them: his mother, brothers, and sisters.」[105] 「It is surprising that another possible explanation seems not to have been suggested: that in Nazareth Jesus would have been known as "the son of Mary" because this distinguished him from the children of Joseph by his first wife. This usage can easily be paralleled from the OT. Women only occasionally occur in biblical genealogies, but in a large majority of the cases where they do, their function in the genealogy is that of distinguishing a man's sons by one wife from his sons by another wife (e.g., Gen 4:19-22; 22:20-24; 36:10-14; 46:10; Exod 6:15; I Chr 2:2-4,18-19,21,24,25-26,46,48-49; 3:1-9). This concern to distinguish the sons of different mothers means that sons of men who had children by more than one wife can be designated by their metronymic, instead of the usual patronymic. Thus Hur, who was the son of Caleb by one of his wives (I Chr 2:18-19) is known as "Hur the firstborn of Ephrath" (I Chr 2:50; 4:4). Similarly, David's son Adonijah is known as "Adonijah the son of Haggith" (I Kgs 1:5,11; 2:13; cf. 2 Sam 3:4; 1 Chr 3:2), distinguished from sons of David by other wives (2 Sam 3:2-5; 1 Chr 3:1-9). In rabbinic literature, not only Adonijah but also other sons of David are referred to by their metronymics (b. B. Bat. 109b; b. Ketub. 62b). Similarly, the sons of Jacob by his two wives and two concubines are sometimes designated by their metronymics (Philo Fug. 73; Joseph and Aseneth 2 2: I I ; 26:6; 27:6-7; 28:1,9). It is possible that this is also the explanation of the most famous use of metronymics in the OT: the brothers Joab, Asahel, and Abishai are always called "the son(s) of Zeruiah," their mother (I Sam 26:6 and twenty-three times in the OT; also Josephus Ant. 7.1.3,6 §§11,45; 7.3.2 §65; 7.9.1 §265; b. Qidd. 49b; b. Sanh. 95a; only Josephus Ant. 7.1.3 § 11, perhaps following 1 Chr 4:14, names their father). This usage cannot be intended just to highlight their relationship to David, who was Zeruiah's half brother, since Amasa, son of Zeruiah's sister Abigail, is known by his patronymic (2 Sam 17:25; 1 Kgs 2:5,32; cf. I Chr 2:16-17). But it is possible that Zeruiah's husband had sons by another wife and that her sons are distinguished by reference to her. (A less likely possibility is that the sons of Zeruiah had the same mother but different fathers and that they used the metronymic to indicate their relationship to each other.)」[106] 「It is easy to suppose that, whereas outside Nazareth Jesus would have to be identified as "the son of Joseph," in Nazareth, where the family was known, the children of Joseph's two wives would be distinguished by their metronymics. Jesus would be called "the son of Mary" precisely because James, Joses, Judas, and Simon were not sons of Mary. This understanding of Mark 6:3 does not, of course, depend on the improbable assumption that Mark preserves an accurate historical report of what the people of Nazareth said. It simply assumes that Mark attempts to portray with verisimilitude what they would have said, just as he represents them as calling Jesus "the carpenter" because this is what people in his home village, though not elsewhere, would be likely to call him.」[107] 「In conclusion, Meier is right that, since "the data are sparse and ambiguous," any conclusions about the relationship of Jesus to his brothers and sisters must be "quite limited and tentative." I hope to have shown that much of the data is more ambiguous than he allows, while there is also some suggestive evidence which he neglects. I should be content to have demonstrated at least that the issue between the Epiphanian and Helvidian views must remain more open than Meier concluded it should.」[108] 헤게시푸스[109] deuteron[110] anepsion[111] Και μετα το μαρτυρησαι Ιακωβον τον δικαιον ως και ο κυριος επι τω αυτω λογω, παλιν ο εκ θειου αυτου Συμεων ο του Κλωπα καθισταται επισκοπος, ον προεθεντο παντες οντα ανεψιον του κυριου δευτερον.[112] 오히려 '둘째 주교'라는 번역에 따르면, 헤게시푸스는 adelphos(형제)를 anepsion(사촌)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113] James D. G. Dunn, 《Neither Jew nor Greek: A Contested Identity (Christianity in the Making, Volume 3)》, Eerdmans Publishing, 2015, 527쪽[114] 이 구절에는 성모 마리아와 동명이인이라는 명시는 없지만, 그녀를 성모 마리아라고 가정한다면 복음사가가 "그분의 어머니"라 하지 않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한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115] 루카 복음서에는 유다 타대오가 '야고보의 아들'로 되어있지만 그리스 말 본문은 '야고보의 유다'라는 뜻이기에 반드시 부자 관계로 확정할 것은 아니다.[116] 클로파스와 알패오의 관계에 대해서도 동일인물설과 별개인물설(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와 혼인한 별개의 두 인물로 보는 관점)이 있다.[117] 이하『성서 입문 : 하권』[118] 정태현 신부는 알패오의 아들을 次야고보로 말하고 베네딕토 16세는 the Lesser로 말하지만, 또한 베네딕토 16세는 the Lesser와 the Younger(마르 15,40)를 구분해서 말하므로 혼동에 주의[119] CLC, 레이몬드 E 브라운, 『메시아의 탄생』, 490~491 ; 이하 『메시아의 탄생』으로 표기, 참고로 저자는 가톨릭 성서학자로 성경의 해석 문제와는 별개로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을 믿는다고 밝혔다.[120]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에 번역본 외에 아람어가 원문인 성경은 없다.[121] 다만 이 단어가 등장하는 골로새서는 바울의 친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122] 요한복음 7장 5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123] 자크 뒤켄, 『마리아』, 빗살무늬, 2005, 118-119p 이하 '자크 뒤켄'으로 표기함[124] 다른 인물이라는 소수설이 있으나 거의 지지받지 못한다.[125] 개신교 성서학자들은 이 구절과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야고보의 발언을 근거로 당시 교회의 사실상의 수장이 베드로가 아닌 야고보였다고 본다.[126] 원문 및 번역은 이곳에서 발췌함.[127] 성서 입문 : 하권, 664p[128] 일부 극단적 고교회파 및 리버럴파 제외[129] 비단 마리아 뿐 아니라 사도나 순교자 자체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에도 역시 비판적이다.(참고 - "성모가 아니라 성경")[130] 2세기 들어 박해가 거세져서 순교자나 성모에 대한 공경이 본격화 됐다고 추정한다. 간단한 출처로 만화 초대교회사가 있다.[131] 칼뱅도 후대 학자들, 심지어 현대에는 같은 장로교 신학자들조차 그의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한다.[132] 반대로 칼빈 이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을 칼빈에 주장에 기초하여 비판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칼빈을 왜곡했다거나 칼빈의 몇몇 주장을 극단화시켰거나이다.(하이퍼 칼비니즘)[133] 반대로 츠빙글리칼뱅은 성경에 명시된 관습만 받아들이는 것이 옳으며 '연약한 형제'라는 개념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134] 실제로 교회당 안에 있는 성상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교회 밖 길거리 야외 십자고상(Wegkreuz)과 성상들은 죄다 뽑아버렸다. 지금도 가톨릭 지역과 루터교회 지역이 확 차이나는 부분.[135] 당시 교회에서 성유물 구매와 참배, 소지, 성지순례가 역시 면벌 효과가 있다고 교회에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루터가 있던 작센 지역만 하더라도 성안나의 엄지손가락 성모의 모유 몇방울, 예수 탄생 말구유의 나무 조각 이라며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흙이나 지푸라기 등을 성유물로 속여 순례객들에 장사질을 해먹었기 때문.[136] 1517년 당시 루터는 아직 가톨릭교회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고 면죄부 판매조차도 도미니코회와 마인츠 대주교만 주도하는 줄 알았다. 교황청도 처음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게 독일 내 아우구스티노회도미니코회가 잘 나가자 질투해서 비방하는줄 알았다.[137] 개신교에서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혁가들이 만든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지 개혁가 개개인을 성역으로 보는 게 아니다. 애초에 루터와 칼뱅 본인도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고 했지 새로운 교파를 만든다 말하지도 않았고, 루터교회란 명칭도 루터교회 문서에서 알 수 있듯 극초기에는 가톨릭 진영에서 그리스도가 아니라 루터를 믿는 이단이라 하여 썼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학적 진보 보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성경이 전통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며, 그 전까지 당연히 여겼던 교리들도 성경과 충돌한다고 증명되면 뒤늦게라도 주저없이 바꾸거나 폐지할 수 있다.[138] 종교개혁가들의 주요 사상중 하나인 Sola Scriptura[139] 성공회는 교단 차원에서는 테오토코스를 제외하고는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신자 개인(특히 일부 고교회파)의 신앙관으로서 가톨릭 수준의 성모신심을 특별히 문제시하지 않을 뿐이다. 성공회 신자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 성향에 가까운 저교회파(복음주의파)를 중심으로 여타 개신교 교단 수준으로 가톨릭의 마리아 교리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140] 그래서 이 두 교파도 성상 없는 예배당 인테리어가 가능하다. 실제로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확립되고 건축 양식이 현대 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19~20세기에 세워진 몇몇 루터교회들은 정말로 초기 루터의 유훈을 본받아(?) 단순한 십자가와 성경책, 촛불만 덜렁 놓아둔 경우도 많다.[141] 정작 이신칭의 논쟁은 오늘날 가톨릭-루터교 대화에선 (차이가 없는 건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상호간 몰이해와 섀도 복싱이 있었음이 널리 인정된다.[142] 무염시태는 교황이 밀어붙여서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교회의 소위 '하부구조'에서부터 동의를 넓혀오며 치고올라온 명제이다. 그리고 몽소승천은 아예 정교회와 함께 긍정하고 있었으며, 가톨릭 신학자인 카를 라너가 몽소승천 '선포'를 비판한 이유도 이미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몽소승천이 연역되는 데 왜 굳이 요란한 방식으로 선포하냐는 것이었다.[143] 구약 시기나 지금이나 유대 율법에서는 사체를 부정하게 본다.[144] 이는 비단 그리스 뿐 아니라 타 지역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발트해 연안 지역의 민족들은 마리아가 이름이나 성격에서 자신들이 원래 섬겼던 지모신 마라와 비슷하다고 여겼다.[145] 때문에 강경한 보수 및 근본주의 개신교도들은 가톨릭이 처음부터 그리스도교가 아닌, 이교 신앙과 습합된 신앙이라고 본다. 진정한 기독교의 계보는 간간이 재야 세력들로 이어졌고, 이것이 종교 개혁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 개신교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146] 자크 뒤켄, 『마리아』190-192p[147] 자크 뒤켄, 『마리아』, 193p[148] 이 때문에 'duns'란 이름은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속어로 통했고, 훗날 철자가 변해 dunce가 되었다. 서구권 초등학교에서 빵점맞은 학생을 벌 줄때 씌우는 고깔모자를 가리켜 'dunce cap'이라 하는 이유.[14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예레미야 17장 5절)[150] 발췌자 주석: 독일어 evangelische는 영어 evangelical과 달리 개신교를 의미한다. 반면 영어 evangelical은 개신교 내부의 특정한 신학적 지류를 의미한다.[151] 독일 내부의 루터교 연합 교단으로, 독일 복음주의교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에 속해있다. 약 800만 명의 교인이 있으며, 하위 교단으로 바이에른 복음주의루터교회Evangelisch-Lutherische Kirche in Bayern, 브라운슈바이크 복음주의루터영방교회Evangelisch-Lutherische Landeskirche in Braunschweig, 하노버 복음주의루터영방교회Evangelisch-Lutherische Landeskirche Hannovers, 중부독일 복음주의루터교회Evangelische Kirche in Mitteldeutschland, 북부독일 복음주의루터교회Evangelisch-Lutherische Kirche in Norddeutschland, 작센 복음주의루터영방교회Evangelisch-Lutherische Landeskirche Sachsens, 샤움부르크리페 복음주의루터영방교회Evangelisch-Lutherische Landeskirche Schaumburg-Lippe가 있다.[152] many Protestants go to the opposite extreme and throw the proverbial baby out with the bathwater, refusing to give any honor to Mary because it could be seen as idolatry. This is somewhat misguided and seems more often motivated by self-righteousness than a true conflict with Scripture, the Confessions, and even the Church Fathers and Mothers. It has led to an unfortunate and troubling practice among many Protestants and Lutherans, not only with regard to Mary and the saints, but also in other areas of Christian practice. If something merely looks or sounds “too Catholic” in personal piety or corporate worship, then it is discarded as if we do not both possess the same gifts that Christ has bestowed upon His Church.[153] 미국의 보수 루터교단인 The Lutheran Church—Missouri Synod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lutheranreformation.org에 기고된 글이다.[154] Karl Barth, "Quatre études bibliques," Foi et Vie, nos. 85-86 (1936) 487.[155] 이는 루터가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 당한 후의 저작이다.[156] 가톨릭 19명, 개신교 17명[157] 발췌자 주석: 1854년에 선포된 교의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1950년에 선포된 교의는 '성모 승천'이다.[158] The definitions of 1854 and 1950 were not made in response to controversy, but gave voice to the consensus of faith among believers in communion with the Bishop of Rome.[159]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p.298-300.[160] Was die Marienkunde angeht, so sollte bedacht werden, daß die für die reformatorische Theologie problematischen Glaubenssätze von der Unbefleckten Empfängnis und der Aufnahme Mariens in den Himmel anders als die altchristlichen Mariendogmen nicht in erster Linie der Verteidigung des Glaubens, sondern dem Lob Gottes dienen wollten.[161] After these birth stories, it comes as something of a surprise to read the episode, narrated in all three Synoptic Gospels, which addresses the question of Jesus’ true family. Mark tells us that Jesus’ “mother and his brothers” (Mark 3:31) come and stand outside, wanting to speak to him.3 Jesus in response distances himself from his natural family: he speaks instead of those gathered around him, his ‘eschatological family’, that is to say, “whoever does the will of God” (3:35). For Mark, Jesus’ natural family, including his own mother, seems at this stage to lack understanding of the true nature of his mission. But that will be the case also with his disciples (e.g. 8:33-35, 9:30-33, 10:35-40). Mark indicates that growth in understanding is inevitably slow and painful, and that genuine faith in Christ is not reached until the encounter with the cross and the empty tomb.[162] In Luke, the stark contrast between the attitude towards Jesus of his natural and eschatological family is avoided (Luke 8:19-21). In a later scene (11:27-28) the woman in the crowd who utters a blessing on his mother, “Blessed is the womb that bore you and the breasts that you sucked”, is corrected: “Blessed rather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keep it”. But that form of blessing, as Luke sees it, definitely includes Mary who, from the beginning of his account, was ready to let everything in her life happen according to God’s word (1:38).[163] Although the word ‘brother’ usually denotes a blood brother, the Greek adelphos, like the Hebrew ‘ah, can have a broader meaning of kinsman, or relative (e.g. Genesis 29:12 LXX) or step-brother (e.g. Mark 6:17f). Relatives who are not siblings could be included in this use of the term at Mark 3:31. Mary did have an extended family: her sister is referred to at John 19:25 and her kinswoman Elizabeth at Luke 1:36. In the early Church different explanations of the references to the ‘brothers’ of Jesus were given, whether as step-brothers or cousins.[164]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p.253-254.[165] She speaks on Joseph’s behalf in the scene at the Temple and, although chided for her initial incomprehension, continues to grow in understanding (2:48-51).[166]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250.[167] The scriptural witness summons all believers in every generation to call Mary ‘blessed’; this Jewish woman of humble status, this daughter of Israel living in hope of justice for the poor, whom God has graced and chosen to become the virgin mother of his Son through the overshadowing of the Holy Spirit. We are to bless her as the ‘handmaid of the Lord’ who gave her unqualified assent to the fulfilment of God’s saving plan, as the mother who pondered all things in her heart, as the refugee seeking asylum in a foreign land, as the mother pierced by the innocent suffering of her own child, and as the woman to whom Jesus entrusted his friends. We are at one with her and the apostles, as they pray for the outpouring of the Spirit upon the nascent Church, the eschatological family of Christ. And we may even glimpse in her the final destiny of God’s people to share in her son’s victory over the powers of evil and death.[168]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260.[169] (발췌자 주석) 사실 희랍어 원문에는 그렇다Ja가 없다. 그러나 위에서 발췌한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 제20항에서 말하듯이, 성서학에서는 해당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루가 11,28)에 문맥상 마리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루터성경을 비롯한 독어 성경들은 이 구절에 "그렇다"Ja를 넣어서 번역한다.[170] Aber Maria ist ja die Mutter Jesu, ihm näher als seine nächsten Jünger. Mit welcher Menschlichkeit zeichnet das Neue Testament diese Nähe, ohne Marias Abstand von Jesus zu verschweigen! Ein Beispiel für diesen Abstand steht ausgerechnet bei Lukas, der so viel von Maria erzählt: Da sagt eine Frau aus der Menge zu Jesus: »Selig ist der Leib, der dich getragen hat, und die Brüste, die du gesogen hast.« Jesus entgegnet: »Ja, selig sind, die das Wort Gottes hören und bewahren« (11,27f). Aber gilt nicht genau das für Maria! Sie wird als die beispielhafte Hörerin des Wortes Gottes gezeichnet, als die Magd des Herrn, die ja zu Gottes Willen sagt, als die Begnadete, die aus sich selber nichts, durch Gottes Güte aber alles ist. So ist Maria das Urbild der Menschen, die sich von Gott öffnen und beschenken lassen, der Gemeinschaft der Glaubenden, der Kirche.[171]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여성의 아들일 뿐이라는 것.[172] 3:35~36이므란의 여성이 말하길 주 여 저의 태내에 있는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나니 이를 받아 주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들으시며 알고 계시나이다 그녀가 분만을 하고서 말하길 주여 저는 여자 아이를 분만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그녀가 분만한 것을 잘 아시도다 남자가 여자와 같지 아니하니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라 하였나이다 그녀와 그녀 의 자손을 사탄으로부터 보호할 것을 명령하였노라[173] 19:27~28얼마 후 그녀가 아들을 안고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니 마리아여 너는 이상한 것을 가지고 왔구나 라고 조롱하더라 아론의 누이여 너의 아버지 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네 어머니도 부정한 여자가 아니었노라[174] 발췌자 주석: 많은 오해가 있는 부분이지만, 가톨릭 역시도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개자"(가톨릭 교리서 771항)로 본다.. 가톨릭 신학이 교회 혹은 성모 마리아를 '중개자'라 부를 때는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개자임을 전제한 상태에서, 다만 이차적인 의미로만 말하는 것이다. 참고: 경향잡지, 1993년 1월호, 조규만 바실리오(가톨릭 대학교수, 신부)[175] 번역은 '손희송, 《주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 - 어제와 오늘의 성모 마리아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4, p.206'에서 발췌.[176] 발췌자 주석: 1854년에 선포된 교의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1950년에 선포된 교의는 '성모 승천'이다.[177] The definitions of 1854 and 1950 were not made in response to controversy, but gave voice to the consensus of faith among believers in communion with the Bishop of Rome. They were re-affirmed by the Second Vatican Council. For Anglicans, it would be the consent of an ecumenical council which, teaching according to the Scriptures, most securely demonstrates that the necessary conditions for a teaching to be de fide had been met. Where this is the case, as with the definition of the Theotókos, both Roman Catholics and Anglicans would agree that the witness of the Church is firmly and constantly to be believed by all the faithful (cf. 1 John 1:1-3).[178] As a result of our study, the Commission offers the following agreements, which we believe significantly advance our consensus regarding Mary. We affirm together[179] that in view of her vocation to be the mother of the Holy One, Christ’s redeeming work reached ‘back’ in Mary to the depths of her being and to her earliest beginnings;[180] that the teaching about Mary in the two definitions of the Assumption and the Immaculate Conception, understood within the biblical pattern of the economy of hope and grace, can be said to be consonant with the teaching of the Scriptures and the ancient common traditions;[181] that this agreement, when accepted by our two Communions, would place the questions about authority which arise from the two definitions of 1854 and 1950 in a new ecumenical context;[182] that Mary has a continuing ministry which serves the ministry of Christ, our unique mediator, that Mary and the saints pray for the whole Church and that the practice of asking Mary and the saints to pray for us is not communion-dividing.[183] We agree that doctrines and devotions which are contrary to Scripture cannot be said to be revealed by God nor to be the teaching of the Church. We agree that doctrine and devotion which focuses on Mary, including claims to ‘private revelations’, must be moderated by carefully expressed norms which ensure the unique and central place of Jesus Christ in the life of the Church, and that Christ alone, together with the Father and the Holy Spirit, is to be worshipped in the Church[184] We believe that the agreement we have here outlined is itself the product of a re-reception by Anglicans and Roman Catholics of doctrine about Mary and that it points to the possibility of further reconciliation, in which issues concerning doctrine and devotion to Mary need no longer be seen as communion-dividing, or an obstacle in a new stage of our growth into visible koinonia. This agreed statement is now offered to our respective authorities.[185]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p.298-300.[186] 1937년 프랑스 리옹 근처의 작은 수도원에서 시작된 가톨릭 신학자들과 개신교 신학자들의 모임이다. 20명으로 출발하여 현재 40명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매년 정기적으로 모여서 토론·기도·연구를 한다.[187] 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 번역문을 주석으로 달았는데, 이는 '《Mary in the plan of God and in the communion of the saints》, Alain Blancy, Paulist Press, 2002'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하도 같다.[188] The process of conversion for Protestants should take two levels. First, they must acknowledge that a brother or sister in Jesus Christ can have devotion to Mary without thereby breaking the communion of faith. Second, the question is not whether the one party has too much devotion and the other not enough (which implies a false symmetry), but what it is on both sides that stands between the believer and Jesus Christ. Protestants need to ask themselves whether their too frequent silences about Mary are not prejudicial to their relationship with Jesus Christ.[189] (책 속 주석) K. Barth, "Quatre études bibliques," Foi et Vie, nos. 85-86 (1936) 487.[190] This revaluation or rehabilitation of Mary and the unique place she occupies in the Plan of God is not the fruit of an "ecumenical compromise" that would bring together quite different points of view, but a return to Mary of the Gospels and the mark of a greater fidelity to the scriptures. Even Karl Barth, who was so strict in his criticism of Marian devotion, said explicitly about Mary: "There is one here who is greater than Abraham, greater than Paul and greater than the entire Christian Church; we are dealing here with the history of the Mother of the Lord, the Mother of God himself. This is a unique and unparalleled event."[191] Moving beyond their silences, their theological controversies, and their watchfulness against the mariolatrous deviations that still exist, Protestants still need to restore to Mary a proper place, both doctrinal and liturgical, in the mystery of salvation and the communion of the saints. By so doing, they will make a useful contribution to the quest for communion among our churches and will better situate themselves within the great tradition of the entire church.[192] 참여자 목록: 사제 Jean-Noël Aletti, 목사 François Altermath, 사제 René Beaupère, 목사 André Benoit, 목사 Alain Blancy, 목사 Daniel Bourguet, 목사 Marc Chambron, 사제 Bruno Chenu, 사제 Henri Denis, 사제 Michel Fédou, 목사 Flemming Fleinert-Jensen, 목사 Michel Freychet, 목사 Daniel Fricker, 사제 Paul Gay, 사제 Claude Gerest, 사제 Étienne Goutagny, 사제 Pierre Gressot, 목사 Gottfried Hammann, 사제 Joseph Hoffmann, 사제 Maurice Jourjon, 목사 Guy Lasserre, 사제 Pierre Lathuilière, 사제 Marie Leblanc, 목사 Michel Leplay, 목사 Louis Lévrier, 사제 Robert Liotard, 사제 Guy Lourmande, 목사 Alain Martin, 목사 Alain Massini, 목사 Willy-René Nussbaum, 목사 Jacques-Noël Pérès, 사제 Pierre Remise, 목사 Antoine Reyrnond, 사제 Bernard Sesboüé, 사제 Damien Sicard, 목사 Jean Tartier, 목사 Denis Vatinel, 목사 Jean-Marc Viollet, 사제 Pierre Vuichard, 목사 Gaston Wetsphal[193] 개신교 중에서도 성모신심이 존재하는 성공회와 루터교회에만 성모축일이 존재하고,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나머지 개신교 교단에서는 성모축일이 없다.[194] 만일 마리아가 예수의 진정한 어머니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이는 고대부터 유서가 깊은 단성론 이단이 된다. 아담이라면 모를까(이도 상징적인 이야기지만) 인간이 어떻게 어머니 없이 태어나는가?[195] 요한 복음 19장 25~27절[196] 뉴질랜드 배우로 마오리족 혈통이다. 촬영 당시 만 16세. 영화 <웨일 라이더>로 2004년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최연소 후보로 오른 기록도 있고,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에서 나부의 새 여왕 역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197] 물론, 예수를 비롯한 제자들도 당황했다. 베드로 왈 '어? 아니, 성모님이... 병나발을 부시는 거야? 지금 종말이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