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2:52:15

과달루페의 성모

파일:external/www.ontheroadin.com/Our%20Lady%20of%20Guadalupe%20Image.jpg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 봉안된 틸마
라틴어 : Nostra domina Guadalupensis
스페인어 : Nuestra Señora de Guadalupe / Virgen de Guadalupe
영어 : Our Lady of Guadalupe / Virgin of Guadalupe
프랑스어 : Notre-Dame de Guadalupe / Vierge de Guadalupe
이탈리아어 : Nostra Signora di Guadalupe
나와틀어 : Tonantzin Guadalupe
1. 개요2.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3. 발현 이후
3.1. 성모 성지
3.1.1. 가는 방법
3.2. 틸마에 그려진 성화3.3. 생명수호 운동의 상징3.4. 멕시코의 상징3.5. 역대 교황의 언급

[clearfix]

1. 개요

1531년 멕시코멕시코시티 북부 테페약 (Tepeyac) 산[1]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사건. 과달루페 성모 발현이라고도 부른다. 1999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자, 라틴 아메리카의 여제, 복중 태아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포르투갈파티마의 성모, 프랑스루르드의 성모와 함께 3대 성모 성지로 유명하다.

2.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

파일:external/3.bp.blogspot.com/Jes%C3%BAs+Helguera+San+Juan+Diego+%C3%B3leo+sobre+lienzo.jpg
후안 디에고 앞에 발현한 성모
교회 측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1531년 12월 9일 이른 아침, 아즈텍 농부인 성 후안 디에고 콰우틀라토아친(San Juan Diego - Cuauhtlatoatzin)이 미사에 참례하려고 테페약 언덕 꼭대기를 넘고 있을 때, 신비롭고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 푸른 망토를 입은 성모 마리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는 그에게 나우아틀어로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이다. 나는 그들의 비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과 연민, 구원 그리고 보호를 증거로 제시하는 표시로 내가 발현한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라고 있다. 그러니 너는 멕시코 주교관에 가서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는 것이 내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자신이 발현한 장소에 성당을 세워 자신을 공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를 보고 놀란 콰우틀라토아친은 그대로 주교관으로 달려가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보고했지만, 스페인 카스티야 출신의 후안 데 수마라가 주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테페약 언덕은 과거 아즈텍인의 신이었던 토난친 여신의 성소였기 때문이다. 수마라가 주교는 콰우틀라토아친에게
"성모님이 나타났다는 기적의 증거를 가져오라"
고 요구했다. 콰우틀라토아친이 주교를 만나고 나서 테페약 언덕을 지났을 때, 그는 다시 성모 마리아와 마주쳤다.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주교님이 저의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라고 하소연했는데, 그러자 성모 마리아는 언덕 위에 장미꽃이 피어 있으니, 꺾어다가 주교에게 보여 주라고 했다.

문제는 테페약 언덕 꼭대기가 이 필 수 없는 험한 바위 언덕이었던 데다가, 당시 계절도 겨울이었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말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콰우틀라토아친은 그곳에서 (그 지역 자생종이 아닌 수마라가 주교의 고향인) 카스티야산 장미들이 만발한 것을 목격했고, 꽃들을 채집하여 자신의 망토로 쌌다. 그러고는 서둘러 내려와 성모 마리아에게 다시 갔다. 성모 마리아는 그가 가지고 온 장미들을 보고 손수 그의 망토에 가지런히 다시 놓아주었다. 뒤이어 그녀는 콰우틀라토아친에게 말했다.
후안, 이 여러 가지 장미송이들이 네가 주교에게 가져가야 할 표적이다. 너는 주교에게 이것들을 가져가서 내 소망을 깨닫도록 하고, 내가 요청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내 이름을 들어 말하도록 하여라. 너는 나의 심부름꾼으로서 신념을 지니고 행동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는 너의 망토에 싸인 꽃송이들을 주교의 앞에 나아갈 때까지 풀어 보이지 않을 것을 엄격하게 명령한다. 그것들을 조심해서 가져가도록 하여라. 네가 그에게 모든 사실을 설명할 때, 내가 너를 산 위로 보냈으며 거기에서 이 꽃들을 발견했다고 전하여라. 그렇게 한다면 너는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요구한 성당이 세워지는 날까지 너는 그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주교는 콰우틀라토아친이 가져온 장미꽃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그런데 장미꽃들이 마루 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 후안 디에고의 망토에도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를 본 주교는 그 경이로움에 놀라 그 즉시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 새겨진 망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믿지 않고 무시한 죄를 지은 자신에 대해 용서의 기도를 바쳤고, 요청대로 성당도 세워졌다. 이 성당은 과거 아즈텍인이 제례를 행하던 피라미드 바로 위에 세워졌다.

이후 '후안 디에고'로 개명한 콰우틀라토아친은, 테페약 언덕에 세워진 작은 성당을 지키면서 자신이 겪은 기적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람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원주민들이 개종했는데, 사실 다신교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던 원주민들은 하느님[2]도 우이칠로포치틀리, 토난친, 케찰코아틀 같은 아스텍의 전통적인 신과 동급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때문에 전통 신에게 지내는 제사 의식 등이 여전히 아스텍인의 종교관에 남아 있었으며,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예수상이 그토록 피칠갑(?)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멕시코인 개종자는 약 900만 명이었는데, 성모 발현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당시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은 건 사실로 보인다. 교황청에서 인정한 첫 번째 성모 발현과달루페의 성모에 대해 역대 교황들은 성모신심을 바치며 공경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90년 5월 6일2002년 7월 31일 과달루페의 성모 성지를 방문해 시복식시성식을 집전하면서 후안 디에고를 복자품과 성인품에 올렸다. 시복식 영상, 시성식 영상

과달루페 라는 지명은 나후아틀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은 스페인의 한 지명이며 원래는 늑대의 계곡 이라는 뜻의 아랍어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성모발현으로 유명한 본 문서의 과달루페가 훨씬 더 알려져 있다.

3. 발현 이후

3.1. 성모 성지

발현 이후 성모 마리아가 후안 디에고에게 부탁한 것처럼 테페약 언덕에 성당이 세워졌고, 망토는 그 성당에 모셔졌다. 이후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과달루페 성모 성지는 연간 천만명이 순례하는 성지가 되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9년, 1990년, 1999년, 2002년까지 무려 4번이나 이 곳을 순례하였으며, 2002년 7월 31일에는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을 방문해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의 목격자인 후안 디에고를 시성하여 성인품에 올렸다.

다만 처음부터 순순히 기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발현 장소가 본래 아즈텍의 여신 토난친의 신전이 있던 곳인지라 성모가 아닌 악마의 위장일 수 있다는 논쟁이 일어났다. 결국 오랜 논쟁 끝에 18세기에 공식적으로 조사와 승인이 이루어졌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asilica-PlazaMariana.jpg
왼쪽부터 새로운 대성당, 옛 대성당, 카푸친 수녀회 건물
과달루페의 성모 성지에는 1695년에 지어지기 시작해 1709년에 완성된 옛 대성당과 1974년 착공해 1976년 10월 12일 축성 된 새로운 대성당이 나란히 있다.

참고로 해당 지역의 치안은 별로 좋지 않다. 관광객에 대한 치안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 소매치기 정도만 조심하면 되나, 주변 지역에 거주하기에는 별로 좋지 않다. 밤만 되면 이 지역의 치안이 불안해지기 때문인데다 마르틴 카레라, 에카테펙 등 치안이 개판인 곳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당에서 약간 떨어진 린다비스타 지역이 그나마 안전한 축에 속한다. 반대로 말하면 대성당을 둘러보고 나면 이 지역 내 어디론가 샐 생각 하지말고 목적지에 따라 멕시코시티 도시철도 6호선 또는 메트로부스 6호선이나 7호선 타고 재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야한다.

원래부터 호수였던 멕시코시티에 세워진 성당이다 보니 지반침하가 일어나서 거의 매년 공사중이다. 특히 舊 대성당은 지반침하가 명확하게 진행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 1970년대에 新 대성당이 지어진것도 지반침하 문제 대책의 일환이었다.

3.1.1. 가는 방법

3.2. 틸마에 그려진 성화

파일:external/3.bp.blogspot.com/eyes1.jpg
눈동자를 확대한 부분
후안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 대해 여러 차례 조사가 있었다. 18세기 조사에서는 직물에 그런 상을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1979년에도 NASA 컨설턴트이자 곤충학자인 필립 캘러한이 적외선 사진을 촬영하였는데 밑그림이 그려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3] 다만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후광[4] 추가(addition)된 것으로 보이고, 천사는 추가(addition)되거나 리터치(re-touch)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5] 그러나 오히려 원래의 그림이 덧그려진 부분보다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 화학성분을 분석한 결과 안료는 동식물이나 광물에서 추출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틸마 자체에 다른 보존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6]. 또, 디지털 처리를 위해 고화질 스캔하고 노이즈를 제거하였는데, 눈동자에 사람 그림자가 비쳐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수는 최소 13명이며 후안 디에고가 주교 앞에서 틸마를 펼치는 장면처럼 보인다고 한다.

3.3. 생명수호 운동의 상징

과달루페에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오늘날 천주교가 전개하는 낙태 반대를 비롯한 친생명 운동을 대표하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과달루페의 성모가 '복중태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경기도 화성의 남양성모성지에 낙태아의 묘를 세운 장소에 과달루페 성모를 조각한 성상, 그리고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부조가 함께 세워져 있다.

3.4. 멕시코의 상징

1810년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미겔 이달고 신부가 멕시코 독립 전쟁을 시작하면서 독립군들이 과달루페의 성모가 그려진 깃발 아래 싸웠다. 이에 따라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인을 상징하게 되었으며, 멕시코의 가정마다 과달루페의 성모상을 모시지 않는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과달루페 성모 축일(매년 12월 12일)에는 멕시코에 있는 대다수 회사가 오전 근무만 하고 조기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사정에 따라 대략 오후 2시 ~ 3시 즈음에 퇴근한다.

각종 대형사고가 났을 때 추모 현장에 과달루페의 성모 그림이 내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2021년 멕시코시티 도시철도 12호선 붕괴사고 때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제단에 과달루페의 성모 그림이 내걸린 적이 있었다.

3.5. 역대 교황의 언급

교황 연대 내용
베네딕토 14세 1754년 5월 25일 과달루페의 성모를 누에바에스파냐수호성인으로 선포하는 교서 <Non est equidem> 발표.
레오 13세 1891년 과달루페의 성모에게 바치는 새로운 성무일도 승인.
1895년 10월 12일 과달루페의 성모가 그려진 성화에 대관식 거행.
비오 10세 1910년 과달루페의 성모를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
비오 11세 1935년 과달루페의 성모를 필리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
비오 12세 1945년 과달루페의 성모를 '멕시코여왕이자 아메리카 대륙의 여제'로 선포.
1946년 과달루페의 성모의 명칭을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성인'으로 제정.
요한 23세 1961년 과달루페의 성모를 '모든 아메리카 주민들의 어머니이자 믿음의 교사'라고 언급하며 전구를 청함.
바오로 6세 1966년 3월 25일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 황금 장미장 수여.
요한 바오로 2세 1979년 1월 31일 이탈리아 바깥의 첫 번째 사목 방문지로 과달루페를 방문.
1990년 5월 6일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서 후안 디에고의 시복식 거행.
1992년 5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마련해 축성.
1999년 1월 22일 과달루페의 성모 축일(12월 12일)을 아메리카 대륙 교회 전체의 전례 축일로 지정.
1999년 1월 23일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 방문.
2002년 7월 31일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서 후안 디에고의 시성식 거행.
2003년 성 후안 디에고의 축일(12월 9일)과 과달루페의 성모 축일(12월 12일)을 전례력에 삽입.
프란치스코 2013년 11월 18일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 2번째 황금 장미장 수여.
2016년 2월 13일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 방문.


[1] 해당 지역은 테페약 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바실리카 대성당이 이곳 근처에 있다. 테페약 산은 인디오스 베르데스 역 근처에 있다. 과달루페 대성당은 산 후아니코 가스 폭발 참사 때의 사고현장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데, 테페약 산이 방패 역할을 해주어서 성당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2] 토착화되어 나우아틀어로 테오틀(Teōtl, '신')이라고 불렸다. 스페인어하느님은 "El Dios"라 했는데, 거기에서 나우아틀화가 된 것이다.[3] 필립 캘러한은 붓질(brush work)이 있었다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2002년의 다른 발표에서는 눈 등 일부 영역에 붓질이 적용되었다고 제안[4] 이는 요한묵시록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요한묵시록 12장 1절)"[5] 17세기에 과달루페의 성모를 묘사한 다른 기록과 그림을 보면 왕관도 쓰고 있었으나 나중에 지워졌다.[6] 틸마를 만드는 아야테는 20년이면 손상되는 옷감인데, 400년이 넘도록 옷감과 색이 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