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의 역사는 1933년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진출하면서 시작된다. 1934년 5월 대구대목구 내 전남 감목대리구(감목대리: 임 맥폴린 신부)를 설정하였고, 1937년 4월 대구대목구로부터 광주지목구를 설정함으로써, 별도의 교구가 설정되었다. 초대 지목구장은 임 맥폴린 신부였고, 교구청은 전라남도목포시산정동 97번지[3]에 위치했었다.[4]
그러나 일제에 대해 부정적이던 임 맥폴린 신부는 결국 1941년 감옥에 투옥되고, 1942년 교구장 사임 후 주재용 몬시뇰이 교구장 서리로 임명된다. 그 후 일제의 압력에 의해 1943년 2월 일본인 와끼다 아사고로 몬시뇰이 2대 교구장에 취임했고, 그에 따라 목포의 교구청도 광주시 북동 33번지 현 북동성당으로 이전되었다. 1945년 5월 강원도 사목도 펼치던 골롬반회 성직자 11명이 강원도 홍천군에 연금되었고, 3개월 후 목포본당 보좌 길 헨리꼬 신부가 홍천에서 이질로 선종했다.
1945년8월 15일 해방이 이루어지자 와끼다 교구장은 사임했고[5], 9월 16일 임 맥폴린 몬시뇰이 다시 교구장에 취임했으며, 교구청도 원래 위치이던 목포시 산정동 97번지로 재이전했다. 1949년 11월 브레난 안 몬시뇰 제4대 교구장에 취임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1950년 7월 현 하롤드 신부가 교구장 서리에 취임하였다.[6]
전쟁 후 1954년 10월 3일 교구장 서리이던 현 하롤드 신부가 5대 교구장에 취임했으며, 1956년 2월 교구청을 광주시 북동 33 (현 북동 성당)으로 임시 이전했다. 1956년 7월 교구청을 광주시 소태동으로 이전했고, 1957년 1월21일 광주교구는 대목구로 승격(대목구장: 현 하롤드 신부)했고, 그해 5월11일 현 하롤드 신부는 주교로 서품되었다.
1962년 3월 정식교계체계가 설정됨에 따라 광주대목구에서 광주대교구로 승격되었고, 동시에 현 하롤드 주교는 대주교로 승임했다. 이와 동시에 대신학교로 대건신학교(現 광주가톨릭대학교)가 설립되었다. 1971년 6월 28일 광주대교구에서 제주지목구가 설정되었고, 같은 해 9월 8일 한공렬 베드로 대주교가 착좌함으로써 방인교구장 시대를 열었다. 전임 현 하롤드 대주교는 새로 설정된 초대 제주교구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1973년 3월 한공렬 대주교가 명동성모병원에서 선종함으로써, 장옥석 루치오 신부가 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었다가, 그 해 10월 수원교구장이던 윤공희 빅토리노 주교가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광주대교구장에 임명됨으로써 7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1976년 1월 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에 가톨릭센터를 설립했고, 5월에 가톨릭센터 6층으로 교구청을 이전했다.[7]
1977년 3월 21일 제주교구가 정식교구로 설정됨으로써 광주대교구 관할구역이 설정되었다. 2000년 11월 30일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가 은퇴하고 부교구장이던 최창무 안드레아 주교가 대주교로 승임하여 제8대 교구장으로, 2010년 4월 30일 부교구장이던 김희중 히지노 주교가 대주교로 승임하여 9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목포 성 골롬반 병원 (1955~2002) 가톨릭 목포성지에 위치했었던 종합병원으로, 전쟁 직후부터 21세기 초입까지 목포시립병원(현. 목포시의료원)과 함께 목포, 신안, 무안, 해남, 완도, 진도, 영암, 함평 등의 의료를 책임졌다. 현재 20대~50대 등 수많은 목포시민들의 출생지 역할을 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료로 진료하는 병원이었으나, 2002년에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임직원의 파업으로 인하여, 최창무 대주교는 폐업을 선언하고 2002년 9월 17일 자로 문을 닫았다. 그 이후로 2020년 현재까지도 목포시 원도심에는 제대로된 종합병원 하나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원도심의 기반 시설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폐업 당시 기사에서 폐업 원인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순천 성가롤로병원 - 1969년 독일의 가롤로 보르메오 수녀회가 순천시에 설립한 후 1974년 까리따스 수녀회에서 운영권을 인수한 후 전남 동부 7개 시군(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고흥군, 구례군, 곡성군, 보성군) 을 통틀어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지역내 의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순천에서 광양 가는 순광로고개 위에 있다.
천주의 성 요한 병원 - 1960년 아일랜드의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가 광주광역시에 설립한 병원으로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내과 3개 진료과가 있으며, 특히 정신건강의학과와 피부과가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다. 내과는 말기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북구 임동성당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1] 이때 전북지역도 전주지목구로 같이 분리되었다.[2] 현직 교구장 대주교 1명 은퇴 대주교 3명[3] 목포신안지구 산정동성당과 가톨릭목포성지 인근. 과거에는 산정동성당이 주교좌성당이었다.[4]전라남도에 진출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그곳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사목을 펼쳤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가난하고 고통받던 이들을 치료하던 성 골롬반 병원(목포가톨릭병원)이 그곳에 존재했었고, 現 목포가톨릭대의 전신이던 성 골롬반 간호학교도 거기서 설립되었다. 전남과 광주의 가톨릭교회가 태동한 지점이기에 광주대교구는 그 터에 성 미카엘 대성당을 지으려고 계획중이나 오랜시간 지연되었다가 2020년 10월 완공되어, 2021년 5월에 준대성전으로 선포되었다.[5] 그후 요코하마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6] 브레난 안 교구장은 산정동 주임 고 토마스 신부와 보좌 오 요한 신부와 함께 피랍 후 1950년 9월 24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7] 금남로 3가 3-5번지에 위치했던 광주가톨릭센터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관으로 재단장되었다.[8] 등록문화재 제681호, 광주가톨릭대학교 옛터[9] McPolin, Owen, 성 골룸반 외방전교회 소속, 아일랜드 출신. 생몰은 1889-1963[10] 脇田淺五郞, 일본인 사제. 생몰은 1881 ~ 1965[11] 본명은 패트릭 토마스 브레넌(Patrick Thomas Brennan)이다. 콜룸반외방선교회의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이며 생몰은 1901-1950[12] 본명은 해롤드 윌리엄 헨리(Harold William Henr)이다.콜룸반외방선교회의 미네소타 주 노스필드 출신이며 제주도에서 행정 업무를 보다가 병으로 사망했다. 생몰은 1909 ~ 1976[13] 성소국 국장 겸직[14] 전남대학교 전담[15] 주임서리[건립중][과] 과달루페외방선교회 소속[18] 신부가 상주하고 있는 성당[19] 5.18 사적지로 알려졌으며 지정번호는 25호이다.[20] 산정동성당 주임신부가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및 목포성지도 같이 겸임한다.[21]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가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수도사제였다.[22] 목포마리아회중학교도 있었으나 1977년 2월 28일부로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