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청주교구는 제천시·단양군을 제외한 충청북도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지역을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이다. 교구 현황은 위 표와 같으며, 2017년 한국천주교회 통계 기준으로 신자 수는 168,535명(교구 내 인구대비 11.8%)이다.
교구 현황에서 보듯, 충청북도 일부 지역은 청주교구 관할이 아니며, 반대로 세종특별자치시의 일부가 청주교구 관할이다. 제천·단양은 1969년 천주교 원주교구가 설정될 때 이관되어 나갔다. 부강면은 원래 청원군 소속이라 청주교구가 관할했다. 그래서 부강면이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된 후로도 대전교구 관할인 세종특별자치시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청주교구 관할 구역으로 남아있다.
서울대목구 관할 지역이던 충청북도 지역은 전쟁의 혼란통을 딛고 1953년 9월 초부터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전교 사업을 전격적으로 위촉함과 동시에 서울대목구 소속 감목대리구로 설정되었다.
그 후 1958년 6월 23일에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는 서울대목구로부터 자치 독립하여 청주대목구(지금의 교구)로 독립하였고, 메리놀회 소속이던 파지 야고보 신부는 7월 4일 교황청으로부터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그 해 9월 16일 미국에서 주교품을 받았으며, 11월 26일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1958년 청주교구의 교세는 본당 15개, 신자 18,600명, 주교 1명과 메리놀회 신부 29명(한국인 사제는 없었음)이 소속된 상태였다. 1962년 한국 천주교에 교계 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청주대목구는 정식 교구인 청주교구로 승격되었다.
파지 야고보 주교는 "Salus animarum Lex Supremum"(영혼들의 구원이 최상의 법)을 모토로 재직 11년 동안 미국 메리놀회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전교 사업과 방인(현지인) 사제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1969년 6월 28일 72세의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직을 사임했다. 그때의 교세는 본당 22개, 신자 48,073, 신부 27명(한국인 8명, 메리놀 회원19명)으로 성장되어 있었다.
이후 1년간 주교 자리는 공석이였다. 1970년 6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정진석 니콜라오 신부를 제2대 교구장 주교에 임명했고, 같은 해 10월 3일 내덕동 주교좌 본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착좌식이 거행됐다.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가 봉직한 27년 넘는 기간 동안 청주교구는 본당 53개, 신자 108,763명, 소속 신부 100명으로 성장했다.
1998년 5월 30일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전보되고, 1998년 6월 29일 교구 참사회에서 교구장 직무 대행으로 김원택 프란치스코 신부를 선출하였다. 1999년 6월 3일 장봉훈 가브리엘 신부가 제3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같은 해 8월 24일 내덕동 주교좌성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착좌식이 거행됐다.
2022년 3월 19일 토요일 오후 8시(로마 시각 낮 12시) 김종강 시몬 신부가 천주교 청주교구 제4대 교구장 주교에 임명됨을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발표했다.
2022년 5월 2일 월요일 오후 2시, 천주교 청주교구 주교좌성당인 내덕동 성당에서,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의 주례로 김종강 시몬 신부가 주교로 성성되고 청주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청주교구 소속 박○○ 신부가 일반인 주민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 술자리를 같이 하던 중 시비가 붙은 것이 발단이 된 사건으로 가해자 신부가 가한 폭행으로 인하여 피해자는 코뼈와 안와 골절, 안면 함몰 등의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 신부는 "먼저 폭행한 것이 아니고, 술자리에서 폭언하는 B씨를 피해 나왔는데 정씨가 뒤따라와 폭행하는 바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 이라고 주장했고 피해자 정씨는 "술자리에서는 심한 다툼이 없었고, 신부 측이 계산하려는 것을 막고 제가 계산하겠다고 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언쟁만 했다."고 주장하는 등 진술이 엇갈렸다.
그러나 해당 사건 현장의 CCTV가 공개되며 가해자 신부의 주요한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CCTV 녹화장면에는 일행이 함께 걷던 중 신부가 갑자기 뒤를 돌아 B씨의 안면을 발로 가격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B씨의 안면을 발로 짓밟고 몸에 올라타 주먹으로 구타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또한 주변의 만류로 폭행을 멈춘 뒤 몇 분 후 다시 나타나 피해자의 얼굴을 축구공 차듯이 발로 차는 등 쌍방폭행이 아닌 일방폭행의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rowcolor=#FFFFFF> ▲ 당시 폭행사건 현장의 CCTV 장면 중 일부
이 사건은 청주교구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일부 사제들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지역신문에 사과문을 내야한다고 교구청에 제청하였으나 청주교구는 해당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없이 넘겨버려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평신도로부터도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청주교구는 가해자 신부[9]에 대해 정직 처분을 내림으로 내사 종결하였는데# 이러한 제 식구 감싸기식 처벌과 감추기식 조치에 대해 비판하며, 단순 기간 동안의 정직(停職)이 아니라 면직(免職) 처분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성공회 신부로부터 제기되기도 하였다.# 청주교구는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 대해 "면직은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지만 정직은 가둬두는 것" 이라며 해당 사건과 교구 측의 처분에 대해 이같이 해명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B씨는 가해자 신부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히며 형사합의금 전액을 지역 사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함으로써 사건 당사자 간의 갈등은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