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간척(干拓 / Reclamation)은 수면에 둑을 쌓아 물 유입을 막고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거나 메워서 뭍 즉, 땅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보통 바다를 메우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호수를 메우는 것도 포함한다. 방조제를 쌓고 그 안쪽을 땅이 아닌 담수호로 만드는 경우도 있기에, 땅을 메워 올리는 과정인 매립은 엄밀히 말하면 간척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국내의 경우 비교적 수심이 얕은 서해에 간척개발을 했다.2. 방법
간척지를 만들기에 유리한 곳은 1) 넓은 갯벌이 이루어져 있으며 2)해안선의 굴곡이 많고 앞쪽에 사주나 섬이 많은 곳이다. 필요에 따라 간사이 국제공항처럼 생 바다를 간척할 수도 있으나, 수심이 깊을수록 공사 비용이 증가하고 부등침하 같은 문제가 생긴다. 현대적인 항만시설은 대부분 소규모로라도 간척 및 매립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옛날에는 농지를 얻기 위해 간척을 했으나 현대에는 공업단지·주택·공항 등을 위해서도 간척을 한다.간척지에 방조제 등[1] 제방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고, 담수호를 만들고 물을 빼면서 토지를 만들어 나간다. 배수 시설을 통해 드러난 저지대를 염류 농도를 낮추고 침수 피해 방지 등을 위해 매립과 복토를 통해 터돋움을 한다. 한국의 경우 주변 산을 토취장으로 만들어 거기서 나온 흙들을 매립토로 활용하기도 한다. 환경파괴를 미뤄 놓고 보면 산지를 깎아 평지로 활용할 수 있어 얻을 수 있는 부지가 늘어난다. 경우에 따라 항로나 항만을 준설한 준설토를 이용하여 간척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국토 전체가 저지대로 매립토가 부족하다보니 배수 시설을 갖추어 해수면 이하의 간척지로 활용한다. 그래서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배수시설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바다의 간척지는 토양에 소금기를 포함하고 있어 농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씻어내야 한다. 간척지는 저지대이기 때문에 소금기가 비를 통해 자연적으로 씻겨 내려가기 위해서는 수십 년 이상 걸린다. 배수시설을 통해 물빠짐을 좋게 만들고 육지의 흙을 복토, 매립해서 농경지로 사용가능한 시기를 앞당긴다.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 '간척촌'이 나타나게 된다. 간척촌은 농업, 염전, 양식, 양어장 등의 사업을 하게 되는데, 전형적인 형태는 간척지를 농경지로 활용하는 농촌이다. 간척촌은 대개 계획적으로 조성되는지라 가옥의 배열이 규칙적이고 바둑판 모양이다.
3. 문제점
간척은 사용할 수 있는 영토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대가로 삶의 터전인 갯벌이 파괴되며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 과거 갯벌은 쓸모없는 땅이나 유휴지로 생각했으나, 여러 생물들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고, 특이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특이한 생물들, 여러 희귀 철새들에게도 꼭 필요한 공간이다. 또한 자정능력바다의 콩팥 역할을 하는 것이 밝혀져서 새만금을 다시 갯벌로 되돌리자는 운동도 있다.간척으로 만드는 땅은 용도가 극히 제한된다. 기본적으로 뻘밭이었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대부분 농경지로만 쓸 수 있다. 기반공사를 최대한 하면 큰 건물도 어떻게든 가능은 하지만, 이러면 보통 토지보다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한 예로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과거 삼성자동차였을 당시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바다를 매립해서 부지를 조성했는데, 이를 위해서 기반 공사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것이 삼성자동차의 자금 흐름을 경색시켰고, 결국 르노 그룹에 매각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농경지의 중요성이 감소한 현대에는 간척 후 농업 소득보다 갯벌에서의 지역 어민 소득이 더 높다는 지적도 있다. 예시로 새만금 간척사업 비용은 1998년 당시 2조 500억원 규모로 추산했지만, 이미 이 때부터 농경지 개발로는 투자이익을 환수하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산업단지 개발로 선회해야 했다.
환경 파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조수 흐름의 방해다. 현재도 목포나 군산과 같이 간척으로 이루어진 도시들은 잦은 홍수피해에 시달리고 있는데, 조류가 흘러나가야 할 길목을 간척으로 틀어막고 있으니 물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슷하게 한강변을 매립한 잠실도 21세기 들어 배수펌프장을 확충하기 전에는 잦은 물난리에 시달려 여의도 개발시에는 샛강 매립을 포기해버렸다. 새만금 신항만은 조수흐름을 고려해 인공섬 형태로 건설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넓은 면적을 방조제로 막아버렸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안그래도 세계적으로 조수간만차가 크기로 유명한 황해에서 이러한 점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간척지 특성상 지진에도 취약하며[2] 지진 후에도 액상화 현상 등 지반 불안정이 이어진다.
갯벌의 환경이 파괴되면 갯벌의 오염물질 정화능력을 상실하고 탄소 흡수까지 고려하면 숲보다도 환경적 가치가 10배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거기에 환경 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및 경제적 피해도 일어나게 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최근에는 간척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갯벌 복원이나 역간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4. 간척과 영토 및 영해와 EEZ
간척은 곧 실제로 발을 디디고 생활할 수 있는 땅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과도 직결된다. 영토의 확장은 곧 영해의 확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간척은 대부분 서해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서해안은 해안선 특성상 직선기선을 기준으로 영해를 책정하며, 그래서 간척으로는 영해 내측의 바다("내수"라고 한다.)가 감소하게 된다. 이때 영해는 직선기선의 바깥만을 의미하므로 영토면적도, 영해면적도 변하지 않는다. 내수가 육지로 변화할 뿐이다. 호수 등의 면적도 영토로 계산하는 것과 같다.하지만 외해에 접한 영해기점을 간척하는 경우는 영해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정확히는 간조노출지(썰물 시에만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지역)는 영해 기점이 되지 못하나 '간조노출지가 육지나 섬으로부터 영해의 폭을 넘지 않는 거리에 있을 때' 간척 등으로 해수면보다 높은 영구적인 시설을 세우면 새로운 영해기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정부도 2014년 간조노출지를 정확하게 재측정 및 영구시설물을 건축하여 영해를 확장하였다.
간척을 한다고 무조건 영해 기점이나 EEZ 기점을 인정해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영해나 EEZ 또는 점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분쟁지역을 간척하여 인공섬을 만드는 사례들이 있다. 오키노토리시마 암초는 암초로 EEZ를 주장할 수 없으나 콘크리트 타설 및 간척을 하며 EEZ 기점으로 주장한다. 남중국해/영토 분쟁의 경우도 점유 및 EEZ 주장을 위하여 중국 등의 각국이 점유 중인 섬을 간척하여 인공섬들을 만들었으나 모두 섬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암초는 영해만 가지며 영해의 폭을 넘어선 간조노출지는 그냥 바다로 취급된다.
5. 역간척
간척의 반대로, 기존의 육지를 갯벌과 같은 해안 습지로 되돌리거나 원래 육지였던 지역을 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위의 비판에서 나오는 것처럼 환경 파괴와 경제성의 변화로 인해 오히려 갯벌의 가치가 더 커져서 이를 위해 갯벌로 복원하는 것. 충청남도에선 금강 하구 지역의 역간척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순천만 지역의 간척지를 역간척하여 습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충청남도에서는 3개 간척지를 오는 2023년까지 역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모두 갯벌로 회귀하는 계획을 현재까지 추진 중이나, 순천만의 계획은 좌초되어 무산되었다.6. 세계의 간척
6.1. 대한민국
네덜란드와 함께 세계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간척사업 국가이다. 고려시대부터 간척사업 역사가 800년이 넘는다.[3] 잘 알려졌다시피 새만금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더 긴, 세계 최대의 방조제이다. 붉은 부분이 구 간척지, 파란 줄무늬가 당시 공사 중이던 간척지. 노란부분은 그 유명한 새만금. 단, 붉은 부분은 자연적인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곳도 포함한다. 네덜란드 만큼은 아니지만, 간척지 면적이 1,550km²로 꽤 넓은 편에 속하며, 어지간한 광역시 하나의 면적보다 넓다.
삼국시대 서기 300년경 전북 지역 해안선[4]과 2015년의 해안선. 자연적인 퇴적 작용과 간척사업을 통해 호남평야가 만들어 졌다.
간척에 따른 강화도 해안선의 변화
한국 서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갯벌이 넓게 발달하고 수심이 얕아 간척에 좋은 입지를 가졌다. 소규모 간척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행했는지 불분명하나 고려 시대부터 간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235년 강화 영안제 축조를 시작으로 1246년 고려 서북면 병마절도사 김방경이 평안북도 정주군(현 정주시) 위도(葦島)에서 바닷가에 둑을 쌓고 개간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56년 몽골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제방을 쌓아 둔전을 만든 고려사 권79의 기록이 보인다. 1356년 전라도 임피 연해지역에 제방을 쌓고 개간한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서 1414년에는 경기도의 통진(通津)과 고양포(高陽浦)[5]에 방조제를 축조하였고, 세종 때에도 해안에 둑을 쌓아 농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16~17세기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인구압과 수리시설 및 축조 기술의 발달로 민간에 의한 간척 사업이 활발했고 치부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해남, 진도 굴포, 노화도, 고금도 등을 간척해서 치부한 해남 윤씨 가문이 그 예이다. 이러한 간척지는 언답(堰畓), 언전(堰田)이란 명사로 언급되며 기록에서도 ~포(浦)로 불리던 곳이 ~평(坪)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산미증식계획 등을 목적으로 한 서남해안의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현대의 토목 기술을 사용한 대규모 간척 사업은 광복 이후 이루어졌으며, 농지 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가 이후 산업단지나 항만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도 간척사업이 시행되었다. 2008년 기준 간척지 총 면적이 1,100㎢ 정도로 달하며 새만금과 인천경제자유구역 등 공사 중인 면적도 440㎢에 달한다. 2018년 기준으로는 3,449㎢[6]가 해방 이후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긴 국토이다.[7] 2000년대 들어 환경파괴와 경제성 문제로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며 최대 간척 사업인 새만금 간척 사업이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90년대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수립 당시에는 서해안과 남해안 바다를 매립하는 계획이 있었다. 새만금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로 서해안 지방의 섬을 대부분 육지로 만들어버리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계획[8]이므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2015년경에는 경기만 일대를 매립해서 3,300 ~ 5,000여㎢의 새 땅을 확보하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물론 이 역시 생태계 파괴 문제나 경제성 측면에서 고려했을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6.1.1. 중부권
- 경기도
- 화성호: 화성시의 제부도와 안산시의 대부도를 연결해서 제부도와 옹진군의 영흥도를 오가는 '화옹호'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우정읍에서 서신면 궁평리까지만 간척하기로 변경되면서 이름이 '화성호'로 변경되었다. 면적은 1,720ha.
- 화옹간척지 - 위에 화성호와 같이 방조제가 연결되면서 만들어졌다. 면적은 4,482ha
- 화옹지구
-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 현대자동차그룹이 화성시 남양읍 장덕리의 공유수면을 사서 바다를 매립하고 주행시험장을 건설하였다.
- 시화호[9]: 이후 담수호를 포기하고 해수 순환을 하는 조력발전소가 위치한다. 면적은 아래에 시화호 수면, 송산그린시티, 시화멀티테크노밸리 토지까지 합쳐 약 17,400ha
- 배곧신도시: 1990년대 한화에서 폭약 시험장으로 매립한 땅을 시에서 매입해 개발한 것이다. 면적은 490ha
- 인천광역시
- 강화도: 이 곳은 고려시대부터 군량미를 얻기 위하여 강화도 주변에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간척 사업 결과 강화도의 면적은 몇 배로 불어났고 인근의 다른 섬들과 통합되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강화도 내부의 산은 예전부터 있었던 곳이며 평지는 간척한 곳이라 봐도 무방하다.
- 인천 도심 상당수: 본래 19세기 말엽, 일부는 20세기 중엽까지 바다와 갯벌인 곳이 많았다. 대표적인 지역이 과거 염전이 많았던 주안역 인근 지역.
- 인천경제자유구역
- 송도국제도시: 1990년대 최기선 前 인천시장이 송도 해상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매립 시작.
- 영종국제도시: 1990년대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갯벌을 매립했다.
- 청라국제도시: 1980년대 동아건설이 산업단지와 농지를 만들기 위해 청라도 일대를 매립하였다가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매각하여 개발함.
- 인천국제공항: 영종동+운서동+용유동 공항 지부는 현제 간척으로 조성된 곳이다. 섬과 섬사이를 연결하면서 신불도와 삼목도는 육지화 되었다. 면적은 5,300ha.
- 서구 경서동: 율도, 이도, 묘도를 간척하여 육지로 만들었다.
- 충청남도
- 서산 간척지[10] 간척지 면적은 10,132ha 담수호 5,300ha. 서산A/B지구방조제도 참조.
- 태안군 이원간척지 - 면적 1,352ha
-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와 장고향리에 방조제를 설치 석문호 874ha 농경지 1580ha 산업용지 800ha로 구성
- 삽교천 간척지, 송산지구 간척지 - 1329ha. 삽교천방조제도 참조.
- 서천 부사지구 간척지 1190ha
- 보령 남포지구 간척지 1910ha
6.1.2. 남부권
- 전라북도
- 김제시 광활면 간척지: 김제시 광활면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일본 자본에 의해 동진강 하류 진봉면 지역의 개펄을 매립하여 만들어진 간척지다. 광활간척지는 10년간의 제염 과정을 거쳐 벼농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후 김제평야의 일부로서 일제의 식량 수탈지가 되어 생산된 미곡들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 김제시 화포 진붕 대창 서포 간척지 1920년대 광할면 간척지와 같이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현재 김제시 광할면 진봉면 만경읍 죽산면 부량면에 위치해 있으며 광활간척지 포함해서 4,287ha 에 농경지가 만들어졌다.
- 군산 회현 간척지 1930년대 군산 회현면+옥구읍 지역에 만들어진 농경지로 3,200ha에 농경지가 만들어졌다.
- 군산 미면 간척지 - 현재 군산시 미성동(米星洞)으로 이름에 米가 있듯이 1960년대 정부에 간척지 확장사업과 식량증산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농경지이다. 면적은 2,339ha
- 군산 옥구 간척지 - 현재 군산시 옥서면 지역으로 1970년대 만들어졌다. 면적은 2,470ha 이다.
- 군산 임해 공단 1980년대 조성된 공단이다. 면적은 2,848ha 이다.
- 계화 간척지: 부안군에 위치. 면적 3896ha
- 새만금 간척사업: 전라북도 군산시, 부안군 일대의 서해안을 간척하는 사업이다.
- 전라남도
- 포스코 광양제철소
- 광양항
- 여수국가산업단지
- 율촌 1,2 일반산업단지
- 보성군 득량만 간척지: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방조제가 완공되었다.
- 고흥군 간척지: 21세기 들어와 농업 용지 쓰임새로는 가장 넓다.
- 구일간척지 (무안군 운남면): 무안군 운남면 동암리 1323.1322.1321.1324, 연리 1531,1532, 성내리 1421.1422번지 일대에 위치한 간척지이며, 과거 원양계열회사인 구일산업에서 양돈장을 하였던 땅이며,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기획부동산에서 이 토지를 싸게 사들여 외지인에게 팔아서 99%가 다 외지인의 땅이다. 현재는 농지로 쓰고 있으며 지목은 목장용지와 잡종지이다. 실제로 위 구일간척지 주소를 검색한 후 지적 편집도를 보면 어마무시하게 쪼개져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땅을 볼 수 있다.
- 목포신항
-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대불부두[참조1]
- 해남군: 대한조선, 신이면, 황산면 일대[참조1]
- 영암군•무안군: 영산강하굿둑을 설치해 간척. 각 군 지리 문단 참조.
- 경상북도
- 포항 : 형산강의 삼각주에 상도, 하도, 분도, 죽도, 해도라는 5개의 섬이 있었지만, 자연퇴적과 간척으로 붙게 되었다. 그리고 포스코 포항제철소, 영일만항 일대도 간척으로 개발한 곳이다.
- 부산광역시
- 마린시티
- 용호만매립지
- 남천 삼익비치
- 백운포
- 동삼혁신지구
- 명지오션시티
- 신호주거단지
- 명지녹산국가산업단지
- 부산신항
- 부산항 북항 및 원도심(자갈치시장, 남포동, 중앙동, 초량동, 남항동 등): 19세기 말엽에서 일제강점기에 간척. 이 때문에 1호선 남포역 공사 당시 바닷물이 들어오는 등 난공사를 펼쳤다. 북항재개발 사업으로 간척지가 또 늘어나고 있다.
- 신평동~장림동강변
가덕도신공항: 가덕도 주변을 매립, 2030년 이전 개항 목표- 울산광역시
- 전하동: HD현대중공업 본사 및 본공장
- 방어동: 현대미포조선 부지, HD현대중공업 해양2공장, KCC 울산공장, 방어진항 일대
- 강동동: 정자항, 당사항 일대
- 염포동, 양정동, 효문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부지
- 울산항, 장생포항, 울산신항, 온산항
- 야음장생포동: 태화강, 울산만 주변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일대
- 선암동: 석유화학단지 일대, 울산신항역
- 온산읍: 온산국가산업단지 (처용리~우봉리 해안가 일대)
- 경상북도
울릉공항: 사동항 근처를 매랍, 2028년 개항 목표
6.2. 북한
북한 역시 해안선이 복잡하고 수심이 얕은 황해를 중심으로 간척사업이 활발하다. 북한에서는 간석지라 하며, 대표적인 사례로 1백 리 제방을 둘러 만든 신도군이 있으며, 염주 다사도-철산 사이 대계도간척지에는 새만금방조제의 절반이 넘는 약 18km의 제방이 건설되어 있다. 평북 대계도간척지와 황남 룡매도간척지는 최근 김정은 정권에서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규모 간척사업이다.북한은 1980년대부터 경제 침체와 식량수급의 불안정이 심화되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에 매진했다. 1980년 북한이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4대 자연개조사업의 하나로 계획한 방조제의 길이는 1,072km, 간척지 면적은 30만 정보에 달한다고 한다.관련글 2010년대 동안 개간한 면적이 약 200㎢에 이른다고 한다.# 2019년에는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약 5000정보(약 50㎢)의 땅을 새로 얻었다고 한다.# 문제는 북한의 경제가 파탄난 상황인데, 이렇게 공사 장비, 공사 자재, 휘발유, 식량, 인건비 등이 필요하기에 엄청난 돈을 퍼붓고 환경 보존 추세에도 역행해가며 간척지를 건설하느니 그 돈으로 비료를 사오고 그놈의 주체농법도 치우고 협동농장을 개혁하는 쪽이 몇배는 낫다는 것이다.
6.3. 네덜란드
색깔을 띄는 곳은 간척지.
1300년대와 비교지도
국토가 좁은데다[13] 농지가 부족하다 보니 대대로 간척사업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왔다. 전체 국토에서 간척지의 비율이 무려 25%에 달하는데 그것도 해수면보다 낮은 점이 특징이다. 국명인 '네덜란드'의 뜻이 '낮은 땅'이다. 오죽하면 "세계는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수도인 암스테르담만 해도 많은 부분이 간척지이다. 한국이나 홍콩처럼 한꺼번에 하나의 영토로 만든 게 아니라 섬을 여러 개 띄워 놓았는데 그 사이로 운하들이 있다. 소위 '폴더'라고 하여 바다 위에 만든 땅들이 한둘이 아니다. 플레볼란트는 세계 최대의 인공섬[14]으로 원래는 그 어떠한 육지도 없었던 곳이며 간척 전에는 자위더르 해(Zuiderzee)라는 내해였다. 원래 1918년 코르넬리스 렐리라는 사람이 처음 구상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1957년에야 간척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플레볼란트에는 구상자의 이름을 딴 렐리스타트란 도시가 있고, 플레볼란트 주의 주도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갯벌의 가치가 떠오르고 잦은 간척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문제가 되면서 일부 간척지를 습지화하고 있다. 플레볼란트에서 서북쪽에 떨어진 마르케르 호수도 처음에는 간척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환경문제 및 비용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2003년 사실상 계획을 폐기했다. 대신에 제방 인근에 섬 몇 개를 띄운다는 계획이 있으나 아직까지의 전진은 없다. 최근에는 간척사업이 예전처럼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이쪽은 바다를 제방이나 벽으로 막고 물을 퍼내는데 이 역할을 풍차가 해냈다고. 지금은 풍차가 아니고 전기의 힘으로 해나가는 중이다.
6.4. 일본
한국과 비슷한 해안의 특징상 간척지들이 많은데, 여기는 아예 바다 위에 띄운 인공섬들이 한둘이 아니다. 해안가의 주요 도시들을 보면 네모나게 생긴 인공섬들이 많다.기록상으로는 1284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산지 비율이 높은 특성상 주로 농토 확보를 위한 간척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항만시설, 산업용지, 주거 용지등의 목적으로도 시행되었으며, 도쿄만 매립이나 오다이바, 간사이 국제공항 등이 있다. 간척지가 상대적으로 넓지 않아 대규모 간척지는 드문 편이나 35㎢ 규모의 이사하야 만 간척 사업(諫早湾干拓事業)으로 논란이 있었다.
1978년 나리타 투쟁이 빚어진 후 일본의 신공항들은 가능한 한 인공섬에 건설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하네다 국제공항 확장을 시작으로 간사이 국제공항, 고베 공항, 주부 국제공항, 기타큐슈 공항 등 여러 해상 신공항들이 건립됐다.예전부터 후쿠오카도 인공섬 형태의 신공항을 건설을 검토했지만 기존 공항 활용으로 방향을 틀었다.
츠키지(築地)는 이러한 매립 간척지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실제 일본 해안 간척지 중에는 주소도 '츠키지'를 쓰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츠키지시장 역시 그러한 예이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도쿄로의 인구집중으로 인해 새로운 땅을 만들어야 했고 이에 도쿄만에 인공섬이나 간척하는 계획을 짜며 추진하기도 했지만 많은 반대로 무산되었다.
6.5. 중화권
6.5.1. 홍콩
회색이 간척지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간척을 했나를 보여주는 지도
영토의 70% 이상이 산지라 여러모로 불편하기 그지없는 홍콩은 간척을 통해 평지를 확보해 왔다. 위 지도를 잘 살펴보면 구룡반도나 센트럴 등 홍콩 역사/관광/경제의 중심지는 싸그리 전부 간척지 위에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천루들도 대개 간척지에 지어졌다. 구룡반도의 국제상업센터와 샤틴의 주거지역 역시 그러하며 이 과정에서 인공 강도 만들어졌다.
악명 높았던 카이탁 국제공항도 바다를 메꿔 활주로를 확보했고 1974년 매립을 통해 활주로를 연장했으며 1982년 공항을 또 확장했다. 1998년에 개항한 홍콩 국제공항도 그 작은 첵랍콕 섬을 기존의 몇 배 넓이로 간척했으며 앞으로도 간척으로 공항을 확장할 예정이다.
한때 정부에서 내세웠던 차기 간척 계획. 그러나 공사비용 등의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지도에 보면 카이탁 공항이 위치했던 까우룽 만 전체를 확 메꿔버리는 것을 계획했는데 지금은 기존의 활주로 자리에 크루즈 터미널이 등장했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꼴. 일각에서는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 사이의 해협까지도 확 메꿔버린다는 떡밥이 나돌고 있으나 이러면 빅토리아항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15]
6.5.2. 마카오
원래 10㎢의 작은 섬들을 간척하여 30㎢까지 늘린 상태다. 카지노가 밀집해 있는 코타이는 콜로안 섬과 타이파 섬 사이를 간척해 만들어진 지역이다
6.6. 싱가포르
연한 분홍색이 2013년까지 간척한 지역, 붉은 색은 간척 예정인 지역이다. 135㎢를 간척했고 추후 100㎢ 정도 더 간척하여 1960년대 582㎢ 면적을 800㎢로 확장할 계획이다. 국토가 좁아 간척을 위한 모래를 주변 국가에서 대량으로 수입했는데 이로 인한 분쟁이 있다. 이미 경제성이 있는 수심 10m 이내 권역은 죄다 매립이 되었고 이제는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수심 15m 이내 권역까지 간척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의 관문인 싱가포르 창이 공항 부지도 100% 간척지이다. 이 부분은 인천국제공항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6.7.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가 과거 두바이유를 통해 벌어놓은 오일머니를 이용하여 금융 및 관광 중심지로 발전을 위한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였다. 관광 및 휴양지로서 개발한 곳이라 모양이 매우 독특한 것이 특징.
물론 두바이뿐 아니라 아부다비에도 있는데 저렇게까지는 아니다. 간척과 환경문제 간의 관계를 인식한 아부다비는 간척지에 맹그로브를 심는 등 숲/습지로서 재활용하고 있어서 일석이조이다.
6.8. 미국
현재의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는 많은 부분이 간척으로 새로 생긴 땅이다. 보스톤 중심지는 원래 Shawmut 반도라고 불렸는데 반도 남쪽에 있는 지협으로 본토와 연결되어있었다. 이 근처를 죄다 매립해서 현재와 같은 땅 모양이 된것. 대표적으로 현재는 주택가와 상점들이 즐비한 Back Bay는 말그대로 만(bay)이었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이 있는 Fenway 역시 fen 이라는 단어에서 나타나듯이 저지대 늪지였다. 로건 공항도 간척지 위에 지어졌다. MIT 역시 강변을 매립하고 생긴 땅 위에 지어졌다.6.9. 모나코
나라 자체가 워낙 작다보니 지속적인 간척이 이루졌고 지금도 계속 확장하고 있다.[1] 영산강하굿둑 등 예외가 있다.[2] 대표적인 사례로 고베 대지진.[3] 단, 고려시대의 간척은 기술적인 한계로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큰 규모로 시행하지 못했다.[4]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의 전주 코앞까지 바다가 있었다.[5] 현 김포시 통진읍과 월곶면 일대. 참고로 고양포는 원머루마루라는 이명이 있으며, 강화도로 가는 선박의 나루터였다고 한다.[6] 다만 강원도의 800km² 토지와 국내 미등록 토지까지 포함한 면적이다 실질적으로 늘어난 영토는 2,400km² 정도이다.[7]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한국 국토 면적은 93,634㎢라는 통계가 나왔고 (남한 기준) 1950년 ~ 1953년 한국 전쟁 당시 영토가 일부 증가했다. 이로서 1954년 국토 면적은 96,929㎢로 집계됐고, 그후 꾸준한 간척으로 1980년에 98,011㎢, 1992년에 99,010㎢, 2010년에 100,032㎢, 2018년에 100,378㎢이다.[8] 서식환경 및 생태 파괴같은 환경적 가치뿐만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경제성 분석에서도 손익비가 낮아서 문제가 되었다.[9] 시화방조제 건설로 안산시내에 있던 사리포구가 사라졌다. 기사 깨알 조이도 과거 사리포구 자리는 현재 안산호수공원이 되었다.[10]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유조선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며, 이곳에 명실상부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큰 공군 비행단인 20비가 세워졌다.[참조1] 방조제 참조.[참조1] [13] 정복으로 넓히면 되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는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데다가 육군력이 상대적으로 약했고, 주변을 프랑스, 독일 등 강대국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유럽에선 영토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고, 영토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었던 7년 전쟁이나 제1차 세계대전 등의 세계대전급 전쟁에선 항상 중립을 선언했다. 한때 빈 회의의 결과로 벨기에 지역을 얻어서 영토가 늘어나긴 했지만 이것도 미흡한 통치로 인해 벨기에 혁명이 터지면서 다시 떨어져나갔다. 게다가 유럽에서 대대적인 정복을 시도한 국가들이 대체로 끝이 비참했기 때문에 결코 좋은 선택지도 아니었다. 물론 네덜란드도 인도네시아와 수리남이라는 네덜란드보다 영토가 한참 넓은 나라를 식민통치한 시절도 있었지만,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었고 기후도 많이 무더웠기 때문에 네덜란드인의 다수가 이들 식민지로 이주하지는 않았다.[14] 정확히는 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섬과 육지 땅을 합친 주이다.[15] 실제로 홍콩에서는 빅토리아항의 환경 보호를 위해 항구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