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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1:37:27

디디에 드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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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록바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보나방튀르 칼루
(2002~2006)
디디에 드록바
(2006~2014)
야야 투레
(2014~2016)
}}} ||
디디에 드록바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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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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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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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프리미어 리그 도움왕(2000년대)|
2005-06 PL 도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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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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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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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디디에 드록바
}}} ||
디디에 드록바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2003
데이비드 베컴
(3750만 €)
2004
디디에 드록바
(3850만 €)
2005
마이클 에시앙
(3800만 €)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aa33, #ffaa3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aa33> 파일: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디디에 조코라 123회 2000.4.23 2014.6.19
2 콜로 투레 120회 2000.7.2 2015.2.8
3 막스 그라델 110회 2011.6.5 2024.3.23
4 디디에 드록바 105회 2002.9.8 2014.6.24
5 야야 투레 101회 2004.4.28 2015.3.29
6 시아카 티에네 100회 2000.4.9 2015.6.14
}}}}}}}}}}}}}}} ||

파일:EPL_명예의전당.pn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a08d6f> 순서 연도 이름 포지션 구단 비고
<colbgcolor=#fff,#191919> 1 <colbgcolor=#fff,#191919> 2021 <colbgcolor=#fff,#191919> 앨런 시어러
(Alan Shearer)
<colbgcolor=#fff,#191919> 공격수 <colbgcolor=#fff,#191919> 블랙번 로버스
뉴캐슬 유나이티드
<colbgcolor=#fff,#191919> PL 통산 최다 득점(260골)
2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공격수 아스날 PL 역대 최다 득점왕(4회)
3 에릭 칸토나
(Eric Cantona)
공격수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 로이 킨
(Roy Keane)
미드필더 노팅엄 포레스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미드필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첼시
맨체스터 시티
PL 미드필더 통산 최다 득점(177골)
6 데니스 베르캄프
(Dennis Bergkamp)
공격수 아스날
7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미드필더 리버풀 PL 역대 최다 PFA 올해의 팀 선정(8회)
8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 2022 웨인 루니
(Wayne Rooney)
공격수 에버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 파트리크 비에라
(Patrick Vieira)
미드필더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11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공격수 맨체스터 시티 PL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183골), PL 통산 최다 해트트릭(12회), PL 이달의 선수 역대 최다 수상(7회)
12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공격수 첼시
13 뱅상 콩파니
(Vincent Kompany)
수비수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 최초 헌액
14 페테르 슈마이켈
(Peter Schmeichel)
골키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
맨체스터 시티
골키퍼 최초 헌액
15 폴 스콜스
(Paul Scholes)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 이안 라이트
(Ian Wright)
공격수 아스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7 2023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최초 헌액
18 아르센 벵거
(Arsene Wenger)
감독 아스날
19 리오 퍼디난드
(Rio Ferdinand)
수비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 페트르 체흐
(Petr Čech)
골키퍼 첼시
아스날
PL 통산 최다 클린시트(202경기)
21 토니 아담스
(Tony Adams)
수비수 아스날
22 2024 애슐리 콜
(Ashley Cole)
수비수 아스날
첼시
}}}}}}}}}}}}}}} ||

}}} ||
첼시 FC 앰버서더
Chelsea Football Club Ambassador
파일:Drogba_Chelsea_Ambassador.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본명 디디에 이브 드로그바 테빌리[1]
Didier Yves Drogba Tébily
출생 1978년 3월 11일 ([age(1978-03-11)]세)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국적
[[코트디부아르|]][[틀:국기|]][[틀:국기|]]
|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89cm / 체중 80kg / B형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주발 오른발
소속 선수 SC 아베빌 (1989~1991 / 유스)
반 OC (1991~1993 / 유스)
르발루아 SC (1993~1997 / 유스)
르망 UC 72 (1997~1998 / 유스)
르망 UC 72 (1998~2002)
EA 갱강 (2002~200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3~2004)
첼시 FC (2004~2012)
상하이 선화 (2012~2013)
갈라타사라이 SK (2013~2014)
첼시 FC (2014~2015)
몬트리올 임팩트 (2015~2016)
피닉스 라이징 FC (2017~2018)
스태프 첼시 FC (2019~ / 앰버서더)
국가대표 105경기 65골[2] (코트디부아르 / 2002~2014)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통산 득점 365골
자녀 이삭 드록바
종교 가톨릭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출전 기록
6. 드록바에 대한 헌사7. 여담8. 국내 해외축구팬덤에 끼친 영향
8.1. 드록8.2. 드록國8.3. 드록敎8.4. 그 외 유명 떡밥과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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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lue, till I die.
코트디부아르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첼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클럽 역사상 첫 UCL 우승과 PL 4회 우승을 이끌었고, PL 득점왕 2회를 차지했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디디에 드록바/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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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2005년 10월, 코트디부아르는 2006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난적 카메룬을 도하의 기적처럼 가까스로 제치고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9차전 안방에서 카메룬한테 2:3으로 깨지는 바람에 자력진출은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는데 코트디부아르에는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은 카메룬이 홈이고 카메룬의 상대는 이미 탈락이 확정된 이집트라 아무래도 카메룬이 올라가지 않겠냐고 점쳐졌다.

그리고, 운명의 마지막 10차전에서 코트디부아르는 수단 원정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는데도 카메룬이 이집트를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 코트디부아르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암울했는데 카메룬 대 이집트 경기에서 후반 34분 모하메드 샤키가 동점골을 넣으며 코트디부아르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44분 하이삼 탐발에게 만회골을 내주었으나 더 이상의 추가실점 없이 3:1 승리로 경기를 끝냈고 카메룬 대 이집트의 경기는 1:1로 종료되기 직전 카메룬이 페널티킥을 얻으며 본선 진출의 주인공이 순식간에 코트디부아르에서 카메룬으로 바뀔 위기가 닥쳤다. 이걸 넣으면 카메룬이 본선 나가고 못 넣으면 코트디부아르가 본선에 나가는 상황. 그리고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키커로 나선 피에르 워메가 실축[3]하면서 바로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코트디부아르 선수들과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할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둘로 쪼개져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때 코트디부아르 방송에서 대표팀 인터뷰를 하던 도중 디디에 드록바가 내전을 그만두자고 연설을 하면서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 인터뷰 영상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를 용서하고 무기를 내려놓읍시다."[4]

이후 내전의 주체였던 두 집단 간에는 화해의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2007년 3월 양 집단이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평화 조약에 서명하면서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은 종식하였다. 물론 드록바 혼자만의 힘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국제적 관심을 유도하고 전쟁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봐줄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5]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3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결승골이 될 수 있는 페널티 킥을 실축해버리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2006년 대회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실축하고 패배했었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406151332773748_539d2271c3790_99_20140615133706.jpg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국가대표의 마침표를 찍다

2014 브라질 월드컵 C조 일본전에서는 한 선수의 존재감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보여 줬다.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전반전에 혼다 케이스케한테 선제골을 내주면서 1-0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는데 후반 17분, 드록바가 교체로 들어오자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드록바가 들어온 뒤 코트디부아르는 경기력이 갑작스럽게 좋아졌으며 일본은 코트디부아르에 같은 패턴으로 2번이나 골을 내어주고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트디부아르는 이후 같은 조의 콜롬비아, 그리스에 연이어 패하면서 또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드록바도 이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웨인 루니호나우두처럼 미드필드까지 내려와서 치고 올라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최전방에서 대기하다가 공이 오면 강력한 피지컬[6]로 상대 수비를 초토화시키는 스타일이다.[7][8] 강인한 피지컬에 빠른 주력, 흑인 특유의 유연성도 갖추고 있는데다 제공권도 최상급이며 프리킥도 잘 찬다. 게다가 축구지능도 좋아서 연계와 패싱 능력 또한 수준급이다.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쫄깃하다. 그리고 테크닉적인 부분도 훌륭했다.[9] 트레이드 마크인 퍼스트 터치로 방향 바꾸고 밀고나가기[10], 다리를 뒤로 쭉 뻗어서 뒷발로 공 잡아내기 등의 플레이를 보면 매우 간결하고 우아하다. 또한 당시 주력이 특출나게 빠른건 아니었지만 공을 툭 치고 발을 성큼성큼 뻗으면 수비수가 따라붙기 쉽지 않았다.
사기적인 슈팅력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불가능해보이는 골도 성공시킨다. 발목 힘이 워낙 세서 슛의 강도도 상당하고 자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강력한 슛팅이 나온다. 덕분에 원거리, 골문앞 혼전, 런닝 슛팅, 터닝 슛팅 등등 상황 가리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골을 때려넣을 수 있는 최고의 슈팅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원래부터 골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드록바의 잠재력이 완전히 터지기 전에는 '뽀록바'라는 멸칭이 있었을 정도로 오히려 득점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드록바의 실력이 발전되고 자신감을 찾으면서 골 결정력까지 뛰어난 육각형 스트라이커로 변모하게 되었다.[11] 또한 헤더 역시 탑급이었는데 대표팀 동료였던 야야 투레는 헤더가 발로 때린 슈팅처럼 날아가더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헤더가 꽂힌다. 덕분에 수비가 빡빡해지는 중요한 경기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었는데, 드록바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득점인 11-12 챔스 결승 동점골도 경기 막판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득점한 것이었다.

프리킥에도 일가견이 있다. 무회전 프리킥을 찰때 호날두는 인스텝으로 공을 임팩트 있게 때리는것에 비해 드록바는 발 안쪽으로 공을 밀어서 찬다.[12] 탑스핀을 걸어서 뚝 떨어지는 공의 궤적이 매우 날카롭다. 기본적으로 킥 자체가 우수하기 때문에 코너킥이나 박스에 크로스를 올려주는 프리킥도 종종 차고는 했다.

공격수인데도 불구하고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 압박에도 잘 가담하며 공을 뺏기면 열심히 쫓아가서 다시 뺏어오는 근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괴물같은 피지컬에 타고난 운동신경까지 결합되어 힘과 순발력 모두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 전문적인 수비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수비 능력의 원천일 것이다. 중앙, 측면 어디에 배치해놓아도 그 위치와 상황에 맞게 수비를 해내며 세트피스 수비에 가담할 경우 거의 실점하지 않는다. 수비능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감독들이 특정 경기에 한해서 그를 수비수로 출전시키려한 경우도 있으며[13] 아예 14-15 시즌에는 팀이 이기고있는 상황에서 수비강화를 위해 교체투입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갖고있는 호감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즐기는 다수의 스트라이커들이 그렇듯) 피치 위에서는 치터적인 면모가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다이빙과 파울 유도에 굉장히 능한 선수이고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신경을 긁는 플레이도 잘한다. 또, 은근히 다혈질이다. 한 번 흥분하면 못말리는 스타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비디치의 뺨을 때리고 퇴장당한 일과 히딩크 감독 시절 심판의 엄청난 오심 퍼레이드로 화가나자 카메라에 대고 "It's a fxxking disgrace" 라고 말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레드 카드도 은근히 많이 받았다.

프랭크 램파드와의 시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일단 램파드가 굉장히 창의적이고 다양한 패스, 특히 상대 라인을 깨부수는 독창적인 스루패스를 구사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드록바에게 볼을 쉽게 연결해줄 수 있었다. 그가 공격 지역에 나가있는 드록바에게 어떻게든 볼을 연결해 준다면, 드록바가 특유의 피지컬을 통해 수비 여럿을 달고 뛰었다. 그 경우 수비에는 드록바가 달고 뛴 수비수들만큼의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첼시의 경우 이 빈 공간을 잘 활용했는데, 미드필더들의 활동량이 워낙 많았고 들의 움직임이 좋았으므로 드록바는 때에 따라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어떻게 쓸 지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램파드, 에시엔 같은 미드필더들에게 패스해서 슛 찬스를 노리고, 때로는 윙포워드들에게 공을 내 주어서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드록바가 알아서 다 한다. 램파드가 첼시에서 중앙 미드필더 보직으로 뛰며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록들을 쌓은 데에는 드록바의 역할이 컸다.[14] 실제로 리그 두 자릿수 도움을 3번이나 기록하고 도움왕까지 달성하기도 했다.

또한 중요한 경기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는 선수이다.[15]

드록바는 12번의 결승전에 출전해서 8번의 경기에서 9골을 기록했고, 8번의 경기를 승리하였다.[16][17] 비단 결승전 뿐만 아니라 토너먼트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기적과도 같은 11-12 나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2차전에서 포문을 여는 첫 골을 기록하였고, 홈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에서도 단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며 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0-1로 밀리는 상황에서 88분에 동점골을 넣었고, 승부차기에서도 마지막 키커로 나서 성공시키면서 첼시에 그토록 바라던 빅 이어를 선물한다. 이러한 임팩트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클러치 플레이어이자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로 인식되고 있다. 부진하던 시즌조차 큰 경기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결정적인 득점을 기록하며 날뛰었다.

단점이라면 전성기 시절에도 있었던 시즌별 기복. 리그에서 20골 넘게 넣다가도 한 자릿 수 골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시즌마다 득점력의 기복이 심했다.[18] 훗날 드록바는 최전성기던 09/10 시즌 이후의 부진에 대해 해명했는데, 당시 최악의 컨디션에 처해있었다고 밝혔다. 드록바는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컨디션이 좋지 못했는데, 이를 첼시 보드진이 드록바가 엄살 피운다고 받아들여 억지로 훈련과 경기에 참여했다고 한다.[19] 또한 볼 키핑이나 볼 컨트롤이 당대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것도 사실이다.[20]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8-99 르망 UC72 디비지옹 2 2 0 0 0 0 0 - -
1999-00 르망 UC72 디비지옹 2 30 7 0 0 2 0 - -
2000-01 르망 UC72 디비지옹 2 11 0 3 1 0 0 - -
2001-02 르망 UC72 디비지옹 2 21 5 1 1 2 1 - -
2001-02 EA 갱강 디비지옹 1 11 3 0 0 0 0 - -
2002-03 EA 갱강 리그 1[23] 34 17 3 4 2 0 - -
2003-04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리그 1 35 19 2 1 2 1 16 11
2004-05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26 10 2 0 4 1 9 5
2005-06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29 12 3 1 1 0 7 1
2006-07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36 20 6 3 5 4 12 6
2007-08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19 8 1 0 1 1 11 6
2008-09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24 5 6 3 2 1 10 5
2009-10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32 29 4 3 2 2 5 3
2010-11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36 11 2 0 0 0 7 2
2011-12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24 5 2 2 5 1 8 6
2012 상하이 선화 중국 슈퍼리그 11 8 0 0 - - 0 0
2012-13 갈라타사라이 SK 쉬페르리그 13 5 0 0 - - 4 1
2013-14 갈라타사라이 SK 쉬페르리그 24 10 3 1 - - 8 2
2014-15 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28 4 2 0 5 1 5 2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캐나다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15 몬트리올 임팩트 메이저 리그 사커 11 11 0 0 3 1 0 0
2016 몬트리올 임팩트 메이저 리그 사커 12 8 2 1 0 0 0 0

6. 드록바에 대한 헌사

드록바는 첼시 역사상 최고의 영입이자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선수이다. 내가 감독 생활을 하면서 함께한 선수들 중 단연 최고는 드록바다.
드록바는 첼시의 왕이다.
주제 무리뉴
밀란에서 함께한 필리포 인자기는 영리한 선수였고, 안드리 셰브첸코 역시 훌륭한 선수였다. 하지만 공중 볼에 약했다. 에르난 크레스포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역시 지도했지만 드록바가 단연 최고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사무엘 에투,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드록바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하지만 드록바와 이 선수들을 맞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만으로 평가한다면 토레스가 드록바를 앞선다. 솔직히 드록바보다 기술이 뛰어난 선수는 많다. 하지만 드록바와 같은 리더십을 가진 선수는 흔치 않다.
카를로 안첼로티
디디에 드록바는 수 년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다.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어떤 순간에도 골을 터뜨릴 수 있는 선수다.
유프 하인케스
지난 시즌 첼시와의 경기에서 고전한 것을 볼 때, 드록바의 이적은 우리에게 큰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첼시와의 맞대결이 한결 수월해지리라고 생각한다.
알렉스 퍼거슨
호날두와 드록바를 놓친 것을 여전히 후회한다. 드록바를 정말 지도해 보고 싶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가 프랑스 르망에서 뛰었던 때부터 지켜봤기 때문이다. 당시 드록바는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두 번째 이유는 드록바가 큰 경기에서 우리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를 잡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아르센 벵거
드록바는 놀라운 선수다. 그는 마치 짐승 같았다.
내 동료들 중 최고의 공격수는 디디에 드록바였다. 드록바는 우월한 신체 조건과 본능적인 감각으로 동료들이 활약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냈다.
프랭크 램파드
나도 드록바와 함께 뛸 수 있으면 기쁠 것이다. 드록바는 첼시가 나를 영입하려 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와 함께 경기장에 뛸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그는 매우 특별하며 그처럼 플레이하는 선수는 세상에 또 없다.
사무엘 에투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큰 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행운으로 최고의 팀과 선수들을 만났다. 여기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드록바, 호날두 그리고 항상 함께 훈련하는 메시가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한다.
제라르 피케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공격수로 드록바를 꼽으며) 토레스는 언제나 득점 찬스를 만들 능력이 있다. 하지만 드록바는 90분 내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는 수비수들의 머릿속에서 노는 아주 영리한 선수였다. 드록바는 경기 내내 부딪혀 오는 선수였다.
네마냐 비디치
첼시는 평범한 팀이지만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디디에 드록바를 가지고 있어 특별한 팀이 되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드록바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다. 우리 같은 젊은 선수들이 배울 점이 많다. 그의 활약은 존경스럽다.
에덴 아자르
나는 드록바가 프리미어 리그에서만 최고 공격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드록바는 빠르고 힘이 넘친다. 적어도 두 명의 수비수가 그를 막아야 한다. 토레스도 잘하지만 세계 최고는 드록바라고 생각한다.
케리 딕슨
드록바는 그냥 바위다. 서로 몸이 부딪히면 떨어져 나갈 정도의 힘을 가졌다.
박지성
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이고 그처럼 되고 싶다. 항상 많은 골을 기록하는 드록바는 최고 수준의 선수이다. 언젠가 함께 뛸 수 있으면 좋겠다.
헐크
저는 어릴 적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였고,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드록바였습니다. 지금도 좋아하며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리스 제임스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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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니티 페어 잡지의 표지모델로 선정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한 컷.[24]

조디 드록바, 프레디 드록바라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다. 조디는 무명 축구선수이고 프레디는 디종의 유스 선수로 있었으나 27살인 현재까지 별다른 선수로 크지 못했다.

첼시의 런던 지역 라이벌아스날 FC 킬러로도 유명했으며, 그가 출전한 對 아스날 전에서의 첼시의 전적은 10승 1무라는 엽기적인 승률을 기록했었다. 드록바 개인 기록은 13경기 13골 2도움. 그야말로 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 감독의 성향상, 피지컬 좋은 선수보다 패싱 능력이 좋고 공격가담이 좋은 수비수를 선호하는데, 드록바는 타고난 피지컬로 아스날 수비진을 초토화 시켜버리는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스카이 스포츠의 첼시 대 아스날전 예고 영상에서 드록바가 주인공으로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말라리아로 피지컬이 떨어진 이후로는 오히려 아스날의 센터백들과의 피지컬 싸움에서 우위를 전혀 점하지 못하고 밀리는 모습만을 보여줬다. 그 뒤로는 아스날 상대로 2연패를 기록했다.

아스날 뿐만 아니라 리버풀과 맨유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특히 제이미 캐러거 같은 경우 아스날과는 상반되는 피지컬 적인 능력과 태클에 몰빵한 정통파 센터백 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 캐러거를 피지컬로 간단히 털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맨유를 상대로도 2000년대 중반 통곡의 벽이라 할 수 있었던 맨유의 전성기를 이끈[25] 리오 퍼디난드-네마냐 비디치라는 센터백 라인을 상대로도 호적세였다. 2000년대 중후반 부터 2010년대 극초반까지 건재했던 퍼디-비다 라인 앞에서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 유럽권에서도 거의 모든 선수들이 고전하는 편이었는데[26] 드록바는 상당히 준수한 플레이를 했다.

런던에서 서형욱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자신을 섬기는 추종자들이 있다는 것을 듣고 무척 흡족해 하셨다. 링크

위닝일레븐에서 자신의 능력치가 안 좋게 나오자, 코나미에 전화해 항의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유니폼 레플리카 판매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 자비로 40벌 정도를 몰래 구매했다가 들킨 적도 있다고 한다. 카드를 쓰는 바람에 구매내역이 모두 고스란히 나왔다. 일본 대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를 중계하던 안정환이 이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내에서는 투레 형제(콜로, 야야)를 중심으로 한 파벌과 드록바의 파벌이 첨예한 다툼을 벌였다. 파벌에 속하지 않은 선수는 에부에 정도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각각 수비와 미드필드의 핵심인 뚜레 형제와 공격의 핵심인 드록바는 심각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2010년 코트디부아르의 실망스러운 월드컵 성적에는 불운한 조 편성도 있지만 뚜레 형제와 드록바의 감정싸움도 한 몫했다는 평가를 들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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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온 2010년 6월 4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15분경 타나카 마르쿠스 툴리오의 점핑 니킥에 맞고 척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3일만에 부러진 뼈가 다시 붙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면서 팀에 합류했다. #. 하지만 월드컵 경기에서 드록신의 부상 당했던 팔부분이 빵빵해진 상태로 부상을 안고 뛰었다.

네이버에 드록신을 치면 드록바의 인물정보가 나온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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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근처에는 드록바라는 바(Bar)가 있다. 후에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나면서 바 이름도 드록Bar에서 드록Ba로 변경했다. 경희대학교 근처에도 동명의 바가 있다.

정대세는 월드컵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드록바와 만난 사진을 올렸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 은퇴를 결심하였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나서서 면담을 하였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2011년 다시 터진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뒷수습을 위한 국가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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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드록바

한국의 한 게임에서 최강캐 중 한명으로 쓰였다. 피지컬에 후한 판정이 들어가는 게임 시스템에서 높은 프리킥능력으로 인한 킥력, 나쁘지 않은 속도, 건장한 체격 3박자로 너도나도 드록신을 영접하여 종교의 부흥에 힘썼으나 2015년 11월 30일 게임엔진의 교체로 인한 별명은 고록바가 됐다.

선수들 사이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유명하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스 결승 승부차기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성호를 긋는 세레모니를 했었고 경기에 나설때마다 그라운드를 한 번 짚고 성호를 긋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인터뷰에서도 종종 조국과 하느님을 언급한 적이 있다.

최근 자서전을 냈다. 드록바의 '헌신' 이 자서전은 6개국어로 출시되었는데 한국어도 포함된다.

전 부인과는 오랜기간 잡음없이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리고 드록바 부부는 위에서 언급된대로 각종 의료 사업 지원, 에이즈 퇴치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선행을 행해왔다. 드록바는 이로 인하여 출신지인 코트디부아르 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인기가 드높았다고 한다. 코트디부아르에 입국할 때 사람들이 왕관과 망토, 홀을 선사하며 환대해 주는 사진이 찍힌 것과 만약 드록바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가능성이 있겠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될텐데)돈아깝게 투표는 뭣하러 합니까?라고 대답하는 코트디부아르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2021년 1월경, 해킹을 통한 그의 불륜 사진이 퍼지는 소동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2020년에 아내 디아키테 랄라와 조용히 이혼했음이 밝혀졌다. 다만 함께한 세월이 20년인지라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경우처럼 헤어진 뒤에도 자선사업 관련으로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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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만나는 연인이 있다는 것은 2022년 발롱도르 시상식을 통해 알려졌는데, 모델 겸 사업가로 활동중인 코트디부아르-벨기에 이중국적의 가브리엘 르메르이다. 특이하게 그녀 역시도 이혼경력이 있는데, 전 남편이 콩고 민주공화국 대통령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디디에 드록바의 어머니인 클로틸트 드록바는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적도기니·가봉 때 원정 응원을 온 코트디부아르 서포터들을 위해 현지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였다고 한다. 서포터들이 자국 대표팀 최고 선수의 어머니라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본인의 타고난 인품이 훌륭하여 사람들이 무척 존경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였다.

온 축구계에 그 명성이 파다한 멘탈왕들 1, 2, 3, 4, 5에게 가려서 그닥 잘 거론되지는 않지만 드록바도 멘탈 문제로 뭇 사람들의 꽤나 많은 까임을 받았다. 앞서 나왔던 위험지역에서 상대 선수와의 신체적 접촉 시 서슴없이 보여주던 다이빙과 아카데미급 연기력, 허구한 날 벌어지는 상대 선수나 심판과의 바짝 날이 선 신경전은 물론이고 프리킥을 서로 차겠다고 팀 동료인 미하엘 발락과 싸운 적도 있고 07/08 맨유와의 챔스 결승전에서 경기 내내 부딪히던 비디치의 뺨을 때리고 퇴장당하여 팀의 첫 빅이어를 허공으로 날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사건은 그 백미이며 08/09 시즌 챔스 4강 2차전 후 카메라에 대고 했던 F-word 섞인 욕설로 화룡점정을 찍었다.[28] 히딩크가 임시감독으로 부임할 때 축구잡지 베스트일레븐에서 과연 히딩크의 마법봉이 성난 드록바를 순한 양으로 조련해 낼 수 있을까를 집중해서 조명한 적이 있다. 다행히 09/10시즌부터는 마음을 고쳐먹고 갱생에 성공하여 전성기를 맞고 11/12시즌 팀에 빅이어를 선사하고 14/15시즌 첼시로 되돌아와 또 한번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대성한 선수로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게 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인 러시아 대 사우디아라비아 전을 루이스 피구, 호베르투 카를루스, 카푸, 사무엘 에투, 사비 에르난데스와 함께 관전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런데 폭탄머리나 레게머리 등의 헤어스타일을 하곤 하던 예전과 다르게 민머리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불꽃XX짤방으로 유명한 세레모니가 있다. 레일 세레모니와 팔을 양옆으로 뻗었다 당기는 세레모니 2개가 유명하다. 전자는 현재 첼시에서 뛰고 있는 빅터모제스가 덤블링과 함께 밀고 있으며, 두번째 세레모니는 위의 핫스퍼전 원더골에서 보이는 세레모니이며, 첼시 후배 에덴 아자르가 배워서 잘 써먹고 있다. 최근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 득점 이후 선보였다. 그 밖에도 첼시 초기에 보여주던 기관총 세레모니, 무릎으로 미끄러진 뒤 칼같은 각도로 경례를 척 붙이는 세레모니도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으며 갈라타사라이 시절 미끄러지는 세레모니를 하려다 실수러 넘어졌는데 마치 계획된 것마냥 다시 일어섰다가 똑같이 바닥에 여러 번 뛰어드는 세레모니를 보여준 적도 있다.

카잔의 기적 이후 게리 리네커가 진행하는 BBC 방송 '매치 오브 더 데이'에 저메인 제나스, 앨런 시어러와 함께 출연, 이날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이며 조 꼴찌로 탈락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 "독일은 16강 진출할 자격이 없었다"라며 크게 비판했다. 특히 메수트 외질일카이 귄도안이 대회 직전 일으킨 논란을 직접 언급하며 독일은 단합된 팀이 아니었고, 그걸 보고 결과를 보니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고 본다며 "물론 독일은 강팀이고, 경기 중에 '오 독일이 놓쳤네? 괜찮아. 또 기회를 얻겠지'라고 말했지만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고, 그게 오늘 일어났다"라는 독일 입장에서 뼈아픈 분석을 남겼다.

2018년 9월, 첼시의 앰버서더로 클럽에 복귀하였다.

FIFA 20에 신규 아이콘으로 추가되었다.

E1 series 라는 전기 레이싱 보트 리그의 한 팀의 수장이다. 이 리그는 특이하게 팀들이 유명인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팀들인데, 드록바 외에 테니스 GOAT인 라파엘 나달, 미식축구 GOAT인 톰 브래디, 크리켓 GOAT인 비라트 콜리등이 있다.

8. 국내 해외축구팬덤에 끼친 영향

언급한대로 흑인 특유의 탄력과 유럽축구 스타일에 완벽 적응하여 이 두가지를 접목시킨, 그야말로 스트라이커로서는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그 전까지는 '흑인은 피지컬 위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플레이를 추구하고 우악스러운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한다'라는 국내의 아프리칸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쉈다. 그가 신급 플레이어로 추앙받는 가장 본연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때문에 경기 외적으로 국내 해축팬덤 문화에 끼친 영향도 상당하다.

8.1. 드록

드록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다면 'OOO가 대단하긴 하지만 신이라는 칭호를 받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이 나왔겠지만, '드록신'이라는 칭호는 국내 팬덤에서 그저 '드록바+신'의 합성어가 아닌 그냥 그 자체로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어온 단어였고,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유난히 더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도 자동적으로 '신'이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현재는 한 번쯤 붙여주는 흔한 별명이 되었을 정도가 됐다. 게다가 다른 스포츠 팬덤에도 이에 영향을 받아서 신은 물론이고 '갓' 등의 바리에이션도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단 뒤늦게 해외축구를 보는 팬들은 잘 모르는 사실인데 원래 드록신은 까는 별명이었다. 드록바가 갓 첼시에 입단했을때는 'EPL보다 한수 아래인 프랑스 리그의 마르세유에서 공 좀 찬 선수' 정도 밖에 안됐기 때문에, 저런 검증도 되지 않는 선수가 최대한 빨리 유럽 정상을 노려야 하는 첼시에 어울리는 선수인가 의문을 품은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흑인선수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탑급의 공격수였던 에르난 크레스포가 드록바의 경쟁상대였다. 그런데 무리뉴 감독이 드록바를 중히 기용해서[29] 크레스포가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당시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곧 해외축구 갤러리에서는 '드록바에게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 '드록바의 그곳이 쫄깃해서 무리뉴가 기용하는 것이다' 등의 농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쫄깃한 드록바'라는 유행어가 퍼지기 시작했고 이 컨셉이 더 발전한 것이 'ㅇㅇㅇ랑 그거하기 vs 쫄깃한 드록바랑 그거하기'를 거쳐 드록신이란 호칭이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드록바는 무리뉴가 자신을 기용한 이유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까기 위한 별명이었던 드록신은 찬사로 바뀌어갔다. 이와 더불어 위의 국가대표 항목에서 언급했다시피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종식시켰고 조국을 위해서 자선활동을 하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드록신은 드록바 자체의 아이덴티티가 되었고 '검은 예수'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팬들 사이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드록바가 검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하얀 드록바다'라고 말하는 건 덤이다. 하지만 드록바가 부진하는 날에는 그냥 인간이라고 하면서 드록인(人)으로 격하된다. "'드록신'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미 '드록'은 신을 의미하는 단어이거든요."라는 드립도 있다.

8.2. 드록國

그의 조국인 코트디부아르는 길고 어려운 발음때문에 실생활에서 대화나 키보드 타이핑에서 상당히 귀차니즘을 유발하기가 쉬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 때문에 해축빠들은 아주 간단하게 드록바와 '나라 국(國)'자의 합성어 드록국을 코트디부아르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유행하면서 여러 바리에이션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라탄국(스웨덴), 날두국(포르투갈) 등이 있다.

하지만 스웨덴이나 포르투갈이 생소한 나라도 아니고 나라명도 어렵지 않고 어감도 그닥이라 사실상 드록국 이외에는 잘 쓰이는 편은 아니다. 이에 비견될 정도로 쓰이는 예는 제코국(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대체로 나라 이름이 어렵고 길면서, 그 나라에서 넘사벽급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선수가 있는 경우에 사용한다.

8.3. 드록敎

드록신을 숭상하는 종교.더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8.4. 그 외 유명 떡밥과 짤방

드록바의 추종자들은 그를 찬양할때 하악이라는 신음소리를 낸다 카드라.

드록팍 도사

아이러브사커발 유행어로 '야 요즘 드록바 쩔지않냐?'가 있다. 유행이 된 이유는 소개팅 나갔을때 어떤 말을 해야란 질문에 회원들이 장난으로 꾸준히 저 멘트를 추천했기 때문. 실제로 '드록바 쩔지않냐'는 네이버 자동완성 검색어에도 있다.

주로 vs놀이로 꼽히는 상대로는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있다. 전성기 시절 둘다 화려한 테크니컬보다는 선천적인 압도적인 피지컬을 내세운 플레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30]

중국 모 식당 메뉴의 번역기 번역이 묘하게 맞아떨어진 짤방도 있다. 서부 아프리카 원주민의 쓰라린 추위 메뉴의 진짜 정체는 치커리 샐러드..

온라인 게임 던전 앤 파이터의 아이템 이름에도 쓰인 적이 있는데 '드록바'라는 이름이 붙은 팔찌이다. 하지만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렙제, 성능이다.

한 때 해축계 대명문 중 하나였던 '오늘은 드록바가 끌린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변신자동차 또봇에서 아이스크림으로 패러디되었다. #


[1] 프랑스어에서 g는 자음 앞에 올 경우 [ɡ\]로 발음되는데, 프랑스어 표기 규정에 따라 자음 앞에 오는 무성 파열음 [p, t, k\]는 받침으로 적고 유성 파열음 [b, d, ɡ\]에는 '으'를 붙여 적는다. '드록바'로 표기할 경우, 받침으로 쓴 'ㄱ'이 불파음 [k̚\]가 됨은 물론, '록' 뒤의 'ㅂ'도 경음(된소리)이 되어 실제 발음과 괴리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2]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워메는 이 실축이후 살해협박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당시 카메룬의 수비수였던 리고베르 송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4] 국내 웹에서는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드록바는 1주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위의 영상에서 드록바가 하는 말은 단순히 전쟁이 나쁘니까 무조건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용서하고 전쟁을 멈춰야 코트디부아르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이 문장은 기본적인 화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해석이다.[5] 이 사건은 2014년 현대자동차가 월드컵 시즌을 겨냥해 만든 광고인 "월드컵은 우리를 통하게 한다"라는 광고에서도 쓰였다. 물론 초상권 문제 때문에 드록바의 얼굴이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한편 2014년 6월 29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Surprise Secret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단 방송 내용에는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6] 거친 태클을 당해도 엄살 피우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그 때문인지 09-10 시즌 맨유와의 경기에서는 에반스에게 분명히 까였음에도 불구하고 옐로 카드를 받은 적도 있다.[7] 첼시에서 이러한 스타일은 팀의 전술과 관련된 문제다.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강력한 피지컬로 최전방의 공간을 책임지며 상대편 수비를 견제함과 동시에, 공 점유 및 공격수와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은 램파드에게 전유시켜서 활동량 + 패스 + 중거리슛 + 공간 쇄도의 장점을 살리려는 전술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 전술은 이미 무리뉴 때부터 내려온 전술이며, 드록바에게도 미드필드까지 내려와서 공 받는 것을 삼가라고 계속 상기시켰다고 한다. 사실 아프리카 3대 스트라이커라 불린 선수들(디디에 드록바, 사무엘 에투,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은 거의 모두 이렇게 최전방에서 휘젓고 다니다가 벼락같이 조져버리는 플레이에 능했다. 사실 이런 플레이를 잘했던 게 강력한 피지컬을 소유하면서 기본적인 테크닉도 우수한 아프리칸이라서 그런 별명으로 불렸는 지도 모른다.[8] 사실 종종 상의를 탈의할 때 유심히 봐보면 무슨 마이카 리차즈처럼 엄청난 근육덩어리인건 아니다. 하지만 원체 파워 자체가 강력하고 그 파워를 이용하는 플레이가 수준급이라 오히려 그런 우락부락한 선수들보다도 더 파워플레이에 능하다. 부상도 잘 안 당하고. 통뼈인가?[9] 사람들이 드록바의 플레이 스타일을 말할 때 많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첼시 입단 초창기 바르샤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테크닉만으로 푸욜을 비롯한 바르샤 센터백 두명을 동시에 벗겨내기도 했다. 사실 간과할 만한게 드록바는 메시, 네이마르처럼 화려한 드리블을 구사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약간만 속여서 공간을 조금만 만들어도 압도적인 피지컬로 밀고 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볼 키핑 자체는 당대 월드클래스 공격수들에 비해선 투박한 편에 속했다.[10] 풀백(Pull-back; 뒤로 당김) 드리블이라고도 한다.[11] 다만 득점력, 골 결정력까지 완벽했던 시즌은 06-07, 09-10 시즌 뿐이다.[12] 다비드 루이스가 드록바한테 직접 이 무회전 프리킥을 전수받아 그 또한 무회전 프리킥의 달인이 되었다.[13] 단 실제로 수비수 전환을 시도했는지 아니면 상대팀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연막작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린시절 수비수 출신이라 수비능력이 뛰어나며 무링요 감독이 그를 영입할 때 공격수로 대성하지 못하면 수비수로 전향시킬 생각이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14] 드록바와 램파드는 거의 10년간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면서 총 36골을 합작했는데, 이는 21-22 시즌 토트넘 핫스퍼손케 듀오37골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PL 역사상 가장 많은 합작골이었다.[15] 역대급 피지컬 보유자여서 피지컬만으로도 완벽히 봉쇄하기 힘든 상황인데, 원패턴으로 먹고 산 거도 아니고 다재다능하기까지한 관계로 약간만 전술적인 역할에 변화를 주어도 플레이 효율이 기대한 클래스만큼 나올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솔직히 상대팀 입장에서 드록바라는 변수를 전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이는 챔피언스리그 본선과 같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떨어져야 하는 결전에서 진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꾸준히 강한 면모를 보여서 현지 별명 중엔 Noblesse Killer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능력치는 화려하지만 큰 경기에서 버로우를 타는 스트라이커들이 적지 않단 것을 감안하면 시즌 내내 기복에 시달리다가도 큰 경기만 오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강점이다.[16] 04-05 리그컵 결승전 1골, 0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 0골, 06-07 리그컵 결승전 2골, 06-07 FA컵 결승전 1골, 07-08 리그컵 결승전 1골, 07-08 UCL 결승전 0골, 08-09 FA컵 결승전 1골, 09-10 FA컵 결승전 1골, 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0골, 11-12 FA컵 결승전 1골, 11-12 UCL 결승전 1골, 14-15 리그컵 결승전 0골.[17] 이중 패배한 경기는 07-08 UCL 결승전과 07-08 리그컵 결승전, 06 · 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이다.[18] 다만 리그에서 한 자릿 수 골을 기록했던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맹활약으로 아쉬움을 만회하기는 했다. 리그 득점이 적은 시즌에도 뛰어난 챔스 토너먼트와 웸블리 활약상으로 꾸역꾸역 발롱도르 10위 안에 진입하기도.[19] 물론 프로 선수에게 몸 관리는 당연한 것이나, 드록바의 경우 해당 년도 코트디부아르 방문이 이틀 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억울하다는 입장.[20] 감각적인 트래핑으로 경합하는 수비수들을 순간적으로 따돌리는 플레이는 드록바의 트레이드 마크이나 이는 타고난 피지컬과 센스가 뒷받침되는 것이지 축구를 늦게 시작한만큼 기본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21] 마테야 케즈만, 앨런 시어러, 소니 안데르송과 공동 수상.[22] 서브[23] 명칭 변경[24] 호날두가 2021년 발롱도르 시상식에 불참하자, 당시 사회를 봤던 드록바에 의해 화면에 이 사진이 크게 올라가며 청중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호날두의 팬티도르라고 놀리는 팬들은 덤[25] 2008년도의 반응을 떠올리자면 당시 키퍼는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중원은 아스날 FC, 그리고 공격은 리버풀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하였었다.[26] 예외적으로 발롱도르 위너 히카르두 카카리오넬 메시 정도 밖에 없다.[27] 이후 2011년경 콜로 투레의 약물 스캔들이 벌어졌을때 드록바가 그를 변호해주면서 감정이 풀렸다.[28] 다만 이때는 드록바뿐만 아니라 팀 전체도 마찬가지였다. 희대의 오심 판정들로 인해 성격이 강하지 않은 발락마저 심판을 잡아먹을듯이 쫓아갔다. 물론 첼시만 오심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드록바가 저렇게 화내는 게 이해가 된다는 게 주된 여론.[29] 이유는 무리뉴의 전술이 스트라이커를 플레이메이커처럼 사용하고 주 득점원을 램파드에게 맡기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20-21시즌의 케인-손흥민 조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30] 비에리쪽은 주로 압도적인 득점기록, 드록바쪽은 중요 경기에서의 활약상을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