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东三省兵工厂만주 펑톈에 있었던 봉천군벌의 조병창. 흔히 '봉천 조병창(Mukden Arsenal)'이라고 하며, 타이위안 병공창, 한양 병공창을 비롯한 당대 중국 조병창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공장이였다.
2. 역사
1921년 봉천군벌의 수장 장쭤린이 조폐국의 기계를 이용해 소규모 군수공장을 설립한다. 이후 독일과 덴마크, 일본 등지에서 기계를 수입하여 규모를 늘렸고, 1928년 공장 확장 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명실상부 중국 최대의 병공창으로 거듭나게 된다.투자금은 3억 위안에 육박했고 면적 60만평, 기계 8,000여대, 기술자 1,200명과 노동자 3만명에 연간 생산량은 1929년 당시 100mm 이상 대구경 야포 150문과 75mm 이하 소구경 야포 1천문, 포탄 20만 발, 소총 6만 정, 탄약 1억 8,000만 발, 기관총 1,000여정에 달했다. 또한 일본제 240mm 중포를 시험 생산할 정도의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1]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이 설립되면서 관동군에게 접수되었으며, 일본군 소속의 남만육군조병창으로 개칭된다. 이후 총기와 화포류 뿐만이 아니라 군용차와 전차, 조준경 또한 생산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병기의 40%를 생산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2] 일본의 전쟁수행에 큰 기여를 했으나 1944년 미군의 폭격을 맞아 생산량이 다소 감소했다. 일본의 패망하고 국공내전 당시 홍군이 만주를 점령하면서 중공 소속 조병창이 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군수공업부 산하로 편입되었다.
중국 공산당이 접수한 이후에도 미군의 M20 바주카를 역설계하는 등 각종 무기들을 생산했다.
3. 기타
이곳에서 생산된 마우저 13식 소총과 MP18 기관단총이 유명하다.장쭤린 문서에 나오는 이곳의 설립 비화가 참으로 골때리는데, 베르사유 조약으로 판로가 막힌 독일의 크루프 사가 많은 잉여장비를 해외에 수출하게 되자 이를 본 장쭤린이 부하에게 이 설비를 구입해오라고 거금을 줘여줬다. 문제는 이 부하가 받은 돈을 그대로 도박에 탕진해버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쭤린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 부하에게 다시 돈을 보내주면서 반은 무기 구매에, 반은 도박에 사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부하는 다시 도박장에 가서 본전의 4배를 딴 뒤 손을 털고 딴 돈 전부를 기계 구입에 사용했다. 자세한 내용은 장쭤린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