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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04

리처드 트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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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Harrison Truly (1937년 11월 12일,[age(1937-11-12)]세~)는 미국 NASA 우주 비행사이자 미합중국 해군의 제독, 관료이다.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나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트룰리는 미 해군 항공대 조종사가 되어 F-8 크루세이더를 조종하며 수백차례의 항모 이착함을 기록하는등 베테랑 전투조종사로 활동했다. 그 후 1963년 미 공군테스트 파일럿 스쿨에서 교육을 받은 뒤 교관이 되어 활동하기도 했고, 1965년 미합중국 공군소련살류트 프로그램에 대항하기 위해 추진한 우주 정거장 계획인 USAF Manned Orbiting Laboratory[1]에서 우주 비행사로 선발되었으나 예산 문제로 이 프로그램이 취소되었고 1969년 NASA 우주인단으로 편입된다.

처음엔 추가적인 교육을 받으며 아폴로 계획 우주 비행사들의 지원팀에서 활동하였다. Skylab 미션과 아폴로-소유즈 도킹 미션에서 캡콤[2]으로 근무했다. 이후 우주왕복선의 활강 시험기인 엔터프라이즈의 조종을 하기도 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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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 : 조 엥글 右 : 트룰리

그리고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두번째 미션인 STS-2에서 조 엥글과 함께 우주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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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은 미션 스페셜리스트 데일 가드너, 윌리엄 손튼, 앞줄은 파일럿 대니얼 브랜든스타인, 사령관 트룰리, 미션 스페셜리스트 가이언 블루퍼드.

이후 STS-8(챌린저호) 미션 사령관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미션은 NASA 역사상 최초로 흑인 우주비행사가 참여하는 미션이었다. 또한 챌린저의 최초의 야간 발사/야간 착륙 미션이었으며, 인도 통신위성/기상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미션이었다.

이후 NASA에서 나와 해군에서 막 설립한 해군우주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4]

그러다 1986년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가 터지자 NASA로 복귀하여 NASA가 앞으로 우주왕복선 계획을 이어가야 하는지(즉 다른 우주왕복선을 새로 찍어내야 하는지), 다시금 1회용 모듈을 쓸 것인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두고 2년여간의 연구와 분석을 진행, 31개월만에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재개되는데 크게 기여했다.[5]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1989년 NASA 국장에 임명되어 1992년까지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는 또다른 사소하면서도 의미있는 결정으로 이름을 남겼다. 보이저 1호가 명왕성 부근을 항해할 무렵에 맞춰 지구를 향하여 사진을 찍어 전송했는데, 이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으로 길이 남았다. 칼 세이건이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을 때 보이저 관계자들은 영상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트룰리가 국장으로서 직접 이 지시를 내려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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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again at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ideologies, and economic doctrines, every hunter and forager, every hero and coward, every creator and destroyer of civilization, every king and peasant, every young couple in love, every mother and father, hopeful child, inventor and explorer, every teacher of morals, every corrupt politician, every "superstar," every "supreme leader," every saint and sinner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lived there - on a mote of dust suspended in a sunbeam.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의 역사 속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 칼 세이건 -

NASA 국장직에서 퇴임한 뒤에는 재생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하며 에너지부에서 근무했고, 2005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기후변화가 미국의 안보에 끼칠 영향에 대한 연구로 상원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는 해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하였다. 대개의 군 출신 NASA 우주 비행사들이 대령에서 예편하고 별을 달아도 1,2성에서 군생활이 마무리된 것과 달리 그는 해군우주사령부에서 활동하며 중장까지 진급할 수 있었는데, 이는 공군 출신의 아폴로 계획 시절 우주 비행사 토머스 스태퍼드가 중장를 단 것에 이어 두번째 기록이다. 이 시기 통합군 우주사령부와 NORAD가 공군 위주로 굴러갔지만 NASA에서 여러가지로 크게 공헌한 바가 있기에 그는 4성제독으로의 진급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행정부에서 NASA 국장에 내정되며 군복을 벗었다. 우주 비행사 출신 4성장군의 기록은 이후 케빈 패트릭 칠튼이 세우게 된다.[6]
[1] 살류트 1호의 발사는 1971년이었지만, 아폴로 계획 시작 전후부터 이에 대한 첩보가 미국의 귀에 들어갔다. 이게 왜 NASA와 별개로 운영되었냐면, 살류트 우주 정거장 계획이 군사적 이용을 염두에 뒀다(알마즈)는 첩보가 나왔기 때문이다.[2] Capsule Communicator. 지상 관제센터에서 우주 비행사들과 교신을 하는 보직인데, 우주에서의 상황은 동료 우주 비행사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지원팀 혹은 백업 팀의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 올라가 있는 동료들과 직접 교신했다.[3] 이 테스트에서 활약한 우주 비행사는 트룰리까지 총 네명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아폴로 13호에서 달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그리고 19호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던 프레드 헤이즈와 아폴로 17호에서 달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조 엥글이 있다. 아폴로 13호야 원체 유명하지만, 조 엥글의 경우는 17호에서 과학자 출신 우주비행사 해리슨 슈미트(원래 18호에서 달에 갈 예정이었지만 18호가 캔슬되어 새될 뻔했다)가 대신 달 착륙선 조종사로 탑승하며 새된 케이스라서 X-15 시절의 경력을 제외하면 엄청 유명하지는 않다. 지못미. 나머지 한명은 트룰리와 함께 공군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다가 NASA로 편입한 C. 고든 풀러튼.[4] 당시 에피소드가 좀 있는데, 켄 매팅리가 NASA를 나오면 해당 자리에 앉기로 되어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매팅리가 맡기로 했던 마지막 미션인 STS-51-C가 이래저래 자꾸 연기되다보니 NASA에 생각보다 오래 잔류하게 되었는데 해군에서는 애가 탔는지 매팅리를 못 기다리고 트룰리를 데려다가 앉혀놨다고(...)[5] 이 STS-26 미션은 19년만에 처음으로 모든 승무원이 우주 경력자로 채워진 미션이기도 했다. 이전에 모든 승무원이 경력자였던 미션은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바로 달에 처음 착륙했던 아폴로 11호.[6] 사실 MOL 시절 선발된 인물 중 로버트 헤레스가 우주사령관(그것도 트룰리의 상관이었다!)을 역임하고 합참차장까지 지내긴 하지만, 실제 우주에 나가질 못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