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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7FC3,#00001b><colcolor=#fff> {{{+1 칼 에드워드 세이건}}} {{{#white Carl Edward Sagan}}} | |
출생 | 1934년 11월 9일 |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 |
사망 | 1996년 12월 20일 (향년 62세) |
워싱턴주 시애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천문학자 |
서명 | |
학력 | 시카고 대학교 (인문학 / B.A.)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 / B.Sc.)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 / M.Sc.) 시카고 대학교 (천문학 · 천체물리학 / Ph.D.) |
지도 교수 | 제러드 카이퍼 |
경력 |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유전학 조교수 코넬 대학교 행성 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던컨 천문학 및 우주과학 석좌 교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특별 초빙 연구원 행성협회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미국 항공우주국 자문위원 |
수상 | 클룸프케-로버츠 상 NASA 공로훈장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 외르스테드 메달 과학 대중화의 공로로 수여된 칼 세이건 상 NAS 공공복지상 |
배우자 | 린 마걸리스 (1957년 ~ 1965년, 이혼) 린다 잘츠만 (1968년 ~ 1981년, 이혼) 앤 드리앤 (1981년 결혼) |
자녀 | 5명 |
종교 | 무종교 (불가지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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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천문학자, 과학저술가.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으로, 20세기 후반 대중 사회에서 천문학 붐을 일으킨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1] 평생 과학 서적만 30권 이상 저술했으며, 그중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편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명성과 달리 《에덴의 용》 같은 저서에서는 인류학이나 생물학을 다루기도 했다.
2. 생애
1934년 11월 9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유대인이었다.4살때 부모님이 데려간 뉴욕 엑스포의 '미래의 미국' 코너에 깊은 인상을 받고 과학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13살에 교내에서 과학동아리를 만들어 화학에 대한 설명을 하여 학생들을 이해시킬 정도로 똑똑하고 설명을 잘 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16세에 대학을 입학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조기 입학에 대한 규정이나 법률이 미비한 상태였고 조기 대입이 가능한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보낸다. 어린시절에는 우주보단 생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석학사 시절에는 자유전공,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졸업논문도 생명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15세에 대학에 입학한 또 다른 천재 과학자 린 마굴리스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프레드 휘플박사의 눈에 띄어 하버드에 교수로 가게 되었으나 이름이 알려지고 방송활동 등으로 바깥활동이 잦아진 칼 세이건을 못마땅하게 여긴 건지 종신교수 채용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코넬 대학교에서 바로 칼 세이건을 스카웃하여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코넬 대학교 천문학 및 우주과학과의 데이비드 덩컨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NASA에서 마리너, 파이오니어,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선 등등 온갖 우주 탐사선 계획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2번째 3번째 부인을 만나게 되고 3번째 부인과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책이 코스모스 이다. 세이건의 업적은 과학에 대한 연구 그 자체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면모가 강하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연구 업적이 부족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우주생물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지목되는 사람이 칼 세이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불멸의 업적을 인류사에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업적들만 봐도 학자로서 그의 실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2년간 투병해온 골수이형성 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 (myelodysplasia))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1996년 12월 20일에 별세했다. 이후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착륙 지점은 고인을 기려 '칼 세이건 기념 기지'로 명명되었다. 그의 유해의 일부는 달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코넬 대학교가 위치한 뉴욕 이타카(Ithaca)에 묻혀있다.
3. 업적
미국에서 천문학자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으로, 우연히 코스모스가 방영하던 1980년 당시, 다른 드라마 작가들이 죄다 파업을 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볼 만한 시리즈가 되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저서로는 《창백한 푸른 점》, 《코스모스》 죽기 직전에 출판한 《에필로그》 등이 유명하다.[2] 세이건은 천문뿐 아니라 진화, 비과학 등에 대한 책도 많이 썼다. 인간의 뇌를 다룬 《에덴의 용》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 특히 그는 미신, 유사과학, 비과학적인 요소를 경계하는 회의론자로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등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내 차고 안의 용 항목으로.
세이건의 저서 중 유일한 소설인 《콘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간혹 칼 세이건이 SF 소설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옛날에는 나무위키의 SF 문서에도 3대 그랜드마스터로서 로버트 하인라인 대신 잘못 들어가 있었을 정도. 세이건 본인은 《콘택트》의 영화화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안타깝게도 촬영 기간 중에 사망하였다. 영화는 이듬해인 1997년 개봉하여 흥행에도 성공.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 탐사에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생물학적, 사회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하였다. 그의 발의로 보이저 탐사선에는 인류 문명의 수백 가지 언어로 기록된 인사말과 지구의 위치, 인간의 모습 등이 녹음된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 프로그램을 주도하기도 했다. 소설 콘택트도 SETI 프로그램에서 스토리가 출발한다.
다만, 외계 생명체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인류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칼 세이건은 고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는 인류에게 호의적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자의 대표격[3]이었는데 이는 실제로 인류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지적[4]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외계문명은커녕 지구 밖 생명의 징후를 발견하지도 못한 주제에 너무 호들갑을 떤다며 그런 걸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반론이 쏟아져 묻혀버렸다. 21세기에 발사되는 우주 탐사선은 여전히 생명 탐색 장비를 탑재하고 지구 밖 생명을 찾아 나서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구에 핵겨울이 발생하여 지구상의 생명체가 핵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결국 절멸하고 말 것임을 경고하며 핵무기 감축 운동에도 이바지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선구안을 가진 학자이기도 했다. 1985년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 칼 세이건은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주장했다. [5]
칼 세이건은 대중화뿐 아니라 주류 학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학자다. 대표적인 업적이 행성과학과 우주생물학의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한 것과[6], 이를 바탕으로 NASA의 화성 탐사 계획인 바이킹 계획의 총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그가 주도한 바이킹 계획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성의 실태의 상당 부분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그가 학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며 학자들 중에서도 주류 중 주류였다. 괜히 미국 천문학계의 아이콘이 아닌 것이다.
4. 사생활
리처드 도킨스과 마찬가지로 미남이고 여자 여럿 울렸는데, 결혼을 세 번 했다.첫 번째 아내는 생물학자 린 마걸리스로[7], 아들 도리언과 제러미를 낳고 이혼했다. 린 마걸리스 역시 세이건 못지않은 본좌급 학자로서, 미토콘드리아의 내공생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진화생물학을 논하는 데에는 빼놓을 수 없는 학자.[8] 아들 도리언 세이건도 생물학자라 그와 함께 쓴 저서들도 있고, 국내에도 몇 권이 번역되어 있다.[9]
두 번째 아내는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지구의 위치와 인간의 모습을 그린 린다 잘츠만으로, 중년이 되고 이런저런 과정[10]을 겪으면서 이혼. 잘츠만과의 사이에 아들 닉 세이건을 두고 있다. 닉 세이건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골든 레코드에 들어간 영어 인사말을 녹음하기도 했다.
세 번째 결혼 상대가 많이 알려져 있는 앤 드루이언 여사.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 제작에 관한 책임자로서 일을 하던 가운데 그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과정은 약간 불륜논란이 있다.[11] 여튼 그녀는 세이건이 가장 사랑한 사람으로, 《코스모스》는 드루이언 여사에게 헌정되었다. 드루이언은 세이건의 배우자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동지이기도 해서, 세이건과 함께 반전 운동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5. 종교관
칼 세이건의 어머니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불가지론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유대교 교육을 받았고 보수적인 토라 회당에도 다녔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교 교육을 지루해했으며 모든 신앙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신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신이 우주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면 과학적으로 증거를 대고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으니, 나는 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는 신을 믿을 수 없다'였다. 즉, 세이건은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다.[12]우주의 기원에 대한 세이건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다.
(빅뱅이론이 맞다면) 그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주에 아무런 물질도 없었다가 갑자가 생겨났다면, 어떻게 그랬을까? 이에 대해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인 대답은 신 혹은 신들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면, 다음 질문을 물어야만 한다. '그럼 그 (우주를 창조한) 신은 어디서 왔는가?' 만약 이것이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 그냥 우주의 기원이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혹은 신이 항상 존재해왔다고 한다면, 간단하게 그냥 우주가 항상 존재해왔다고 결론 짓는게 낫지 않겠는가? 창조할 필요없이 그냥 여기 항상 있었다고 말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한때 이 질문들은 오직 종교와 신화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 우주론은 우리가 이 태고의 수수께끼들과 마주하게 해준다.
- <코스모스> Ep. 10 (1990년도판)
- <코스모스> Ep. 10 (1990년도판)
오늘날 떠도는 루머 중에는 세이건이 종교에 귀의했다거나 혹은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13] 위에서도 말했지만 세이건은 어디까지나 불가지론자였고 스스로도 그리 여겼다. 그는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고 철학적, 문화적인 관점에서 존중해주었으며, 자신의 저서에서도 종교적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물론 종교의 핵심 교리와 중심적인 믿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불신하긴 했다.
길게 늘어진 수염을 가지고 천상에 앉아서 모든 참새들의 추락을 세고 있는 커다란 백인의 모습을 한 신[14]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신이라는 게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의미한다면, 확실히 신은 존재한다. 물론 이런 신이 심정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게 기도한다는게 말이 되겠는가?
- "Scientists & Their Gods" in U.S. 뉴스 & 월드 리포트 Vol. 111(1991)
- "Scientists & Their Gods" in U.S. 뉴스 & 월드 리포트 Vol. 111(1991)
결론을 내리자면 그는 기본적으로 회의주의자였고 기성종교에 대해서는 분명한 불신자[15]였지만, 그렇다고 종교에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즉, 확신에 찬 무신론자도 아니었으며 모든 가능성에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불가지론자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세이건은 암에 걸린 이후 가족들이 신을 믿으라고 하자 거부했으며 임종이 다가왔을 때조차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기사
칼 세이건이 직접 집필한 소설 콘택트를 보면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는 발언이 어떤 의미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콘택트는 우주를 창조한 신이 실존하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중의 창조주는 원주율 값 안에 자신이 창조한 우주에서 탄생할 지적 생명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와 같은 메시지를 숨겨놓았다. 인간이 원주율을 소수점 아래 1020 자리 넘게 계산하자 0과 1로만 이루어진 부분이 나타났고, 이를 화면에 배열하자 0으로 된 배경에 1로 된 작은 원이 나타났다. 원주율과 같은 수학상수는 우주를 창조할 때부터 정해두지 않는 이상 아무리 발달한 외계 문명이라도 조작할 수 없는 것이므로, 원주율 속에 숨겨진 메시지는 지성을 가진 신적 존재가 우주를 계획적으로 창조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정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현재는 무신론자도 유신론자도 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6. 주요 저서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 앤 드루이언 공저. 내 차고 안의 용이라는 개념이 유명하다.
- 에덴의 용 (The Dragons of Eden)[16]
- 에필로그 (Billions & Billions)[17]: 유작.
-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앤 드루이언 공저
- 콘택트 (Contact): 세이건의 유일한 소설. 영화로도 나왔다.
- 코스모스 (Cosmos)
- 혜성 (Comet)
-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서술한 책.
- 칼 세이건의 말(Conversations with Carl Sagan): 세이건 생전의 주요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
- 창백한 푸른 점 (The Pale Blue Dot): 탐사선 보이저에 대한 이야기.
- 지구의 속삭임 (Murmurs of Earth): 보이저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 앤 드루이언 등 공저.
- 코스믹 커넥션 - 우주에서 본 우리(The Cosmic Connection: An Extraterrestrial Perspective )
- 브로카의 뇌(Broca's Brain): 창조설 까는 책. 이 책의 7장에서는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열람전에]라는 유사과학자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7. 기타
- 세이건은 생전 마리화나에 옹호적이었고, 실제로 마리화나를 한 뒤 'Marijuana Reconsidered'라는 책에 익명으로 에세이도 게재한 바 있다.[19] 그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앤 드리앤 여사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 단체인 NORML(전미 마리화나 법 개정 협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칼 세이건 평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 중에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박람회에 갔다가 공짜 영화를 보여주길래 들어가봤더니 지적설계 홍보 영화였다 카더라.
- 이 세이건의 제자이며 후계자가 바로 과학자이면서 방송인을 겸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다. 세이건의 뒤를 이어 코스모스 리메이크판의 해설을 맡기도 했다.
- 의외로 유인 우주탐사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특히 우주왕복선 개발 초기 단계에서 많이 반대했다고 한다.[20] 우주에 인간을 한 번 보낼 돈이면 로봇 탐사기를 열 개 내보낼 수 있으며, 우주에서 인간은 할 수 있는데 로봇은 못 하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세이건은 탁월한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NASA의 간부로서 우주 개발 예산이 모두 납세자들이 낸 소중한 세금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례로 보이저 우주선에는 원래 카메라를 달 계획이 없었는데, 칼 세이건이 “세금으로 만든 우주선인데, 납세자한테 사진 한 장 안 보여 줄 셈인가?”라며 강력히 주장해 결국 카메라가 장착되었고 보이저가 보내온 사진들은 그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 고교 시절에 "미분과 적분은 교사들이 쓸 데도 없는 걸 괜히 학생들 괴롭히려고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런 수포자스런 생각을 고치게 된 계기가 아서 C. 클라크의 책을 읽었을 때였다고 한다. 책에서 행성의 공전 궤도를 계산하는데에 미적분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보고, 수학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고.
- 칼 세이건은 정치적 발언은 잘 하지 않았지만, 베트남 전쟁 참전 반대 운동 및 반핵 운동에 앞장서는 등, 명백히 평화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낸 바 있다.
- 1980년대 초에 다큐멘터리 코스모스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코스모스 책이 급히 번역되어 나왔는데, 저자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번역하는 바람에 칼 세이건이 아니라 ‘카알 사강‘이라고 표기된 버전이 있다(일월서각판, 일명 조학래판).
- 핀란드의 메탈밴드인 나이트위시가 이사람을 위한 Sagan이라는 제목의 헌정곡을 불렀다.
- 한국에서는 유시민 작가, 이명현 천문학자, 궤도 등이 《코스모스》를 강력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시민 작가 曰 "딱 한 권의 책만 들고 가서 무인도에서 내가 죽는 날까지 살아야 한다면 이 책(코스모스)을 가져가고 싶다."
- 스타 트렉: 피카드에서 칼 세이건의 이름을 딴 세이건급 함선이 등장한다.
- 2022년 나사에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찍은 첫 사진들의 공개 예고편에 칼 세이건의 목소리를 AI로 구현에 사용했다.
-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후속 망원경으로 추진중인 거대 우주망원경 계획 "LUVOIR"(가칭)의 이름으로 "칼 세이건 천문대"로 제안되었다. 칼 세이건 탄생 100주년인 2034년 발사를 목표로 준비중이라 한다.
- 2023년, 칼 세이건이 직접 낭독한 『창백한 푸른 점』 녹음이 미국 의회도서관으로부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다.
- 세바스찬 렐리오의 영화 '보이저'에서 앤드류 가필드가 맡는다.#
8. 어록
진정한 애국자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 칼 세이건
- 칼 세이건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 the vastness is bearable only through love.) [21]
- 칼 세이건이 집필한 SF 소설 <Contact>, Simon and Schuster, 1985, Chapter 24 : p.430 중
- 칼 세이건이 집필한 SF 소설 <Contact>, Simon and Schuster, 1985, Chapter 24 : p.430 중
아버지는 매우 부드럽게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오직 진실만이 비판을 견딜 수 있다고요. “자신에게, 그리고 권위 있는 다른 이들의 생각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게 될 거야.”
- 딸 사샤 세이건(Sasha Sagan)[23]
- 딸 사샤 세이건(Sasha Saga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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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코 카루소, 오페라 <팔리아치> 중 "Vesti la giubba" (1907)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 "Tiger Rag" (1918) 베시 스미스, "Down Hearted Blues" (1923)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1924) 케이트 스미스, "God Bless America" (1938년 11월 11일) 빌리 홀리데이, "Strange Fruit" (1939) 빙 크로스비, "White Christmas" (1942) 우디 거스리, "This Land is Your Land" (1944)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등, "Ko Ko" (1945) 레스 폴, 메리 포드, "How High the Moon" (1951) 레이 찰스, "What'd I Say" (1959) 아레사 프랭클린, "Respect" (1967)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 "The Message" (19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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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벨리, "Goodnight, Irene" (1933) 척 베리, "Roll Over Beethoven" (1956) 오티스 레딩, "I've Been Loving You Too Long (To Stop Now)" (1965) | |
2004년 등재 | |
마 레이니, "See See Rider Blues" (1924) 프레드 아스테어, 아델 아스테어, 조지 거슈윈, "Fasinating Rhythm" (1926) 지미 로저스, "Blue Yodel No.1 (T for Texas)" (1927)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 "In the Mood" (1939) 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 차노 포소, "Manteca" (1947) 행크 윌리엄스, "Lovesick Blues" (1949) 머디 워터스, "I'm Your Hoochie Coochie Man" (19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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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베이스, "Over There" (1917) 카운트 베이시, "One O'Clock Jump" (1937) 냇 킹 콜, "Straighten Up and Fly Right" (1943) 패츠 도미노, "Blueberry Hill" (1956) 버디 홀리 & 크리켓츠, "That'll Be the Day" (1957) 제리 리 루이스, "Whole Lotta Shakin' Goin' On" (1957) 마사 앤 더 반델라스, "Dancing in the Street" (1964) 에드윈 호킨스 싱어즈, "Oh Happy Day" (1967) 질스콧 헤론,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1970) | |
2006년 등재 | |
칼 퍼킨스, "Blue Suede Shoes" (1955) 로네츠, "Be My Baby” (1963) 샘 쿡, "A Change Is Gonna Come” (1964) 롤링 스톤즈, "(I Can't Get No) Satisfaction” (1965) | |
2007년 등재 | |
로사 폰셀, 오페라 <노르마>(빈첸조 벨리니) 중 "Casta Diva" (1928년 12월 31일, 1929년 1월 30일) 아트 테이텀, "Sweet Lorraine" (1940) 로이 오비슨, "Oh, Pretty Woman" (1964)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스, "The Tracks of My Tears" (1965) | |
2008년 등재 | |
앤드루스 시스터즈, "Bei Mir Bist Du Schoen" (1938) 존 리 후커, "Boogie Chillen'" (1948) 에타 제임스, "At Last" (1961) 조지 존스, "He Stopped Loving Her Today" (1980) | |
2009년 등재 | |
클리프 에드워즈, "When You Wish Upon a Star" (1940) 리틀 리처드, "Tutti Frutti" (1955) 하울링 울프, "Smokestack Lightning" (1956) 맥스 매튜스 등, "Daisy Bell (Bicycle Built for Two)” (1961) 로레타 린, "Coal Miner's Daughter" (1970) R.E.M., "Radio Free Europe" (1981) 투팍 샤커, "Dear Mama"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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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미커,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1908) Sons of the Pioneers, "Tumbling Tumbleweeds" (1934) 태미 와이넷, "Stand By Your Man" (1968) 알 그린, "Let's Stay Together" (197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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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디들리, "Bo Diddley" (1955) 부커 티 앤 더 엠지스, "Green Onions" (1962) 돌리 파튼, "Coat of Many Colors" (1971) 도나 서머, "I Feel Love" (1977) 슈거힐 갱, "Rapper's Delight" (1979) | |
2012년 등재 | |
지미 데이비스, "You Are My Sunshine" (1940) 밴 클라이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1958년 4월 11일) 처비 체커, "The Twist" (1960) | |
2013년 등재 | |
조지 W. 존슨, "The Laughing Song" (1896년경) 빙 크로스비/루디 밸리, "Brother, Can You Spare a Dime?" (1932) 엘모어 제임스, "Dust My Broom" (1951) 에벌리 브라더스, "Cathy's Clown" (1960)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Fortunate Son" (1969) 제프 버클리, "Hallelujah" (1994) | |
2014년 등재 | |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That Black Snake Moan"/"Matchbox Blues" (1928) 제리 멀리건 콰르텟, 쳇 베이커, "My Funny Valentine" (1954) 벤 E. 킹, "Stand by Me" (1961) 라이처스 브라더스, "You've Lost That Lovin' Feelin'" (1964) | |
2015년 등재 | |
블라인드 윌리 맥텔, "Statesboro Blues" (1928) 줄리 런던, "Cry Me A River" (1955) 루이 암스트롱/바비 다린, "Mack The Knife" (1956/1959) 슈프림즈, "Where Did Our Love Go" (1964) 임프레션스, "People Get Ready" (1965) 빌리 조엘, "Piano Man" (1973) 글로리아 게이너, "I Will Survive" (1978) | |
2016년 등재 | |
주디 갈란드, "Over the Rainbow" (1939) 빅 마마 손튼, "Hound Dog" (1952) 윌슨 피켓, "In the Midnight Hour" (1965) 멀 해거드, "Mama Tried" (1968) 주디 콜린스, "Amazing Grace" (1970) 돈 맥클린, "American Pie" (1971) 시스터 슬레지, "We Are Family" (1979) | |
2017년 등재 | |
잉크 스파츠, "If I Didn't Care" (1939) 빌 헤일리 앤 더 코메츠, "(We're Gonna) Rock Around The Clock" (1954) 토니 베넷,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1962) 템테이션스, "My Girl" (1964) 케니 로저스, "The Gambler" (1978) Chic, "Le Freak" (1978) 케니 로긴스, "Footloose" (1984) 글로리아 에스테판 앤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Rhythm Is Gonna Get You" (1987) | |
2018년 등재 | |
캡 캘러웨이, "Minnie the Moocher" (1931) 리치 발렌스, "La Bamba" (1958) 니나 시몬, "Mississippi Goddam" (1964) 닐 다이아몬드, "Sweet Caroline" (1969) | |
2019년 등재 | |
글렌 캠벨, "Wichita Lineman" (1968) 빌리지 피플, "YMCA" (1978) 휘트니 휴스턴, "I Will Always Love You" (1992) |
"Look again at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ideologies, and economic doctrines, every hunter and forager, every hero and coward, every creator and destroyer of civilization, every king and peasant, every young couple in love, every mother and father, hopeful child, inventor and explorer, every teacher of morals, every corrupt politician, every "superstar," every "supreme leader," every saint and sinner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lived there-on a mote of dust suspended in a sunbeam.
The Earth is a very small stage in a vast cosmic arena. Think of the endless cruelties visited by the inhabitants of one corner of this pixel on the scarcely distinguishable inhabitants of some other corner, how frequent their misunderstandings, how eager they are to kill one another, how fervent their hatreds. Think of the rivers of blood spilled by all those generals and emperors so that, in glory and triumph, they could become the momentary masters of a fraction of a dot.
Our posturings, our imagined self-importance, the delusion that we have some privileged position in the Universe, are challenged by this point of pale light. Our planet is a lonely speck in the great enveloping cosmic dark. In our obscurity, in all this vastness, there is no hint that help will come from elsewhere to save us from ourselves.
The Earth is the only world known so far to harbor life. There is nowhere else, at least in the near future, to which our species could migrate. Visit, yes. Settle, not yet. Like it or not, for the moment the Earth is where we make our stand.
It has been said that astronomy is a humbling and character-building experience. There is perhaps no better demonstration of the folly of human conceits than this distant image of our tiny world. To me, it underscores our responsibility to deal more kindly with one another, and to preserve and cherish the pale blue dot, the only home we've ever known."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모든 도덕 선생님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일부분을 지배하려 한 탓에 흘렀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의 한 영역의 주민들이 거의 분간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지를, 그들이 얼마나 자주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나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며, 얼마나 열렬히 서로를 증오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희미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 거대함 속에 묻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 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 지구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종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다른 세계를 방문할 순 있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좋든 싫든, 현재로선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서 찍힌 이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 주는 건 없을 겁니다. 저 사진은 우리가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창백한 푸른 점』 에서
우리 지구는 비교적 천국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의 문은 가까이 있으며 구분하기 힙듭니다.
우리는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여 온실효과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금성과 같은 지옥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 『코스모스 - 천국과 지옥』 에서
우리는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하여 온실효과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금성과 같은 지옥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 『코스모스 - 천국과 지옥』 에서
인간이 아닌 지적존재를 만난다면 얼마나 놀랍고 기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우리와 다르고, 두려움을 주는 동물을 괴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누가 더 괴물일까요? 홀로 떨어져 낭랑하고 애조띤 노래를 하는 고래와 그들을 사냥하고 파괴하여 멸종으로 몰아가는 인간 중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외계지적생명체의 통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지적생명체와 대화하는 것. 즉, 다른 문화 언어권에 속한 인간이나 유인원, 돌고래, 고래와의 대화가 우선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대뇌피질은 물질이 의식으로 전환되는 곳입니다. 전두엽은 사건을 예상하거나 미래를 파악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뉴런은 1천억개가 있고, 뉴런결합은 1백조개나 됩니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조차 두뇌는 일상의 복잡한 문제를 꿈꾸고, 기억하고, 추리하는 등 자극받고 율동치고 반짝거립니다. 즉, 생각이나 상상, 환상 같은 것도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은 전기·화학적 신호가 수백 개 결합된 것입니다.
감정이나 관습적인 행동 유형은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것도 인간 본성의 일부분입니다만 인간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동물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고능력으로 구분됩니다. 대뇌피질은 이를테면 인간의 해방입니다. 우리는 세력권, 공격성, 서열성 등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행동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뇌속에 넣은 것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숙한 인격체로서 무엇을 아끼고 알아야 할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시뇌[24]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가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 『코스모스 - 미래로 띄운 편지』에서
우리와 다르고, 두려움을 주는 동물을 괴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누가 더 괴물일까요? 홀로 떨어져 낭랑하고 애조띤 노래를 하는 고래와 그들을 사냥하고 파괴하여 멸종으로 몰아가는 인간 중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외계지적생명체의 통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지적생명체와 대화하는 것. 즉, 다른 문화 언어권에 속한 인간이나 유인원, 돌고래, 고래와의 대화가 우선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대뇌피질은 물질이 의식으로 전환되는 곳입니다. 전두엽은 사건을 예상하거나 미래를 파악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뉴런은 1천억개가 있고, 뉴런결합은 1백조개나 됩니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조차 두뇌는 일상의 복잡한 문제를 꿈꾸고, 기억하고, 추리하는 등 자극받고 율동치고 반짝거립니다. 즉, 생각이나 상상, 환상 같은 것도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은 전기·화학적 신호가 수백 개 결합된 것입니다.
감정이나 관습적인 행동 유형은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것도 인간 본성의 일부분입니다만 인간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동물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고능력으로 구분됩니다. 대뇌피질은 이를테면 인간의 해방입니다. 우리는 세력권, 공격성, 서열성 등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행동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뇌속에 넣은 것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숙한 인격체로서 무엇을 아끼고 알아야 할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시뇌[24]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가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 『코스모스 - 미래로 띄운 편지』에서
윤회는 비록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최소한 약간의 실험을 통해 지지되고 있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김영사, 2001, p.345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김영사, 2001, p.345
[1] 유명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중적인 과학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대부분 칼 세이건과 리처드 파인만에게서 비롯된다. 쥬라기 공원의 이안 말콤을 떠올리면 될듯.[2] 리처드 도킨스는 한국에서 장대익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책 중 하나로 《창백한 푸른 점》을 언급했다.[3] 이와는 정반대로 스티븐 호킹은 인류가 외계인을 찾아나서는 것은 자살행위이기 때문에 바로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관론자였다.[4] 외계인이 먼저 인류의 위치를 발견하고 찾아온다면 그 목적이 우호적인 교류보다는 탐색/점령/지배가 목적일 가능성이 더 높고 심지어는 호전적인 인류가 미래에 자신들의 적이 되기 전에 싹을 자르기 위해 닥치고 말살하기 위해 올 수도 있는데 지구의 좌표를 일부러 가르쳐주는 행위는 자살행위라는 지적 등등.[5] 당시 청문회와 연관이 깊었던 인물이 앨 고어인데, 다름이 아니라 그 이후 앨 고어는 그 유명한 불편한 진실을 펴내게 된다.[6] 오늘날에 과학자들이 외계 생명을 찾기 위해 세우는 기준을 처음 마련한 사람이 칼 세이건이다. 또한 목성의 내부에 금속 성질의 수소가 그득할 것이라는 예측도 그가 처음 내놓았다.[7] 결혼 전 이름은 린 알렉산더. 마걸리스는 세이건과 이혼 후 결정학자 토머스 마걸리스와 결혼해 얻은 성이며 이후 줄곧 이 이름으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칼 세이건은 이혼 후 공식석상에서 린 마걸리스를 린 마걸리스 세이건이라고 불렀고 린 마걸리스는 이에 대해 매우 불쾌해했다.[8] 사실 세포 공생설은 그녀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소련을 중심으로 연구되던 가설이었으며,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의 독자적 DNA마저도 이미 발견된 상태였다만, 당시 이 독자적 DNA들이 검출과정에서 핵의 DNA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으며, 린 마걸리스의 업적은 핵 DNA의 오염없이 이들의 독자적 DNA를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세포내공생설을 주류로 확립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비주류를 주류로 이끌어낸 대단한 업적'이라 표현하였다.[9] 단 말년의 마걸리스 박사는 음모론에 빠져서 9.11 테러 미국정부 배후설이나 HIV 바이러스 부정론 등을 주장하여 위대한 과학자가 유사과학에 빠져 흑화한 사례로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녀의 아들들도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음모론을 신봉하여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10] 일단 칼 세이건이 앤 드리앤이랑 바람났다는 게 컸다.[11] 앤 드리앤은 세이건 친구의 애인이었고, 드리앤은 세이건의 부인 린다 잘츠만과 원래 친구 사이였다. 즉 친구 애인-친구 남편과 바람난 관계인 것이다. <책 대 책 - 코스모스에서 뉴런 네트워크까지 13편의 사이언스 북 토크>에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는 유학 시절 칼 세이건과 앤 드리앤 여사를 만난 경험을 쓰면서 그들이 세이건과 잘츠만 사이에 낳은 아들 닉이 받을 충격은 걱정했지만 정작 자기들의 연인이나 배우자에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밝히기도 하였다.[12] 워싱턴 포스트지에 세이건 사후 10여년 뒤 실린 <Worlds Away>라는 제목의 칼럼이다.#[13] 무신론 관련 논증에서 세이건이 흔히 인용되다보니 이러한 인식이 생겼다.[14] 마태복음 10장 26절~33절까지. 참새처럼 작은 존재들도 살펴보고 있다는 비유다.[15] 링크 참조. 세이건은 불가지론자였지만, 불확실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미덕으로 여기고 주입하는 종교 측의 태도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입장이었다.[16]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17] 유독 한국에서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다.[열람전에] 링크 중에서 'velikovsky는 무엇이 정확합니까?' 등의 일부 문단은 틀린 내용이므로 열람 시 주의. 벨리코프스키에 대해 편향적으로 서술되어 있다.[19] 1960년대 거센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의 영향으로, 당시 젊은 시절을 보낸 지식인 중에는 LSD와 대마초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20] 우주 왕복선은 과학 탐사도 많이 수행했지만 개발의 주목적 중 하나는 비밀 군사 임무(첩보 인공위성의 배치와 수리, 회수 등)를 수행하는 것이었다.[21] 칼 세이건, <Contact>, Simon and Schuster, 1985, Chapter 24 : p.430[22] 코스모스 국내 초판에서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라고 번역했었다.[23] 사샤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칼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원문, 번역본.[24] 대뇌피질 외의 사고능력이 없는 원시적인 뇌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