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7:41:35

퓰리처상

<colbgcolor=#663334><colcolor=#cd9f51> 퓰리처상
The Pulitzer Prize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n_pulitzer.jpg
설립 1917년
국가
[[미국|]][[틀:국기|]][[틀:국기|]]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부문
2.1. 언론2.2. 예술
2.2.1. 특별감사상
3. 유명 수상자
3.1. 한인 수상자
4. 유명 수상작(사진)
4.1. 유명 후보작(사진)
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퓰리처상[1]미국의 신문 저널리즘,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준다. 퓰리처상은 뉴욕 시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가 관리한다. 본래 언론을 위한 상이지만 예술상 역할도 겸한다. 베트남 전쟁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쓰이는 소녀의 절규도 퓰리처 수상작이다.

헝가리계 미국인인 조지프 퓰리처가 남긴 유언에 따라 50만 달러의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 언론에 14개 부문, 예술(문학, 음악)에 7개 부문에 걸쳐 상이 수여되고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언론인에게는 가장 큰 영광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상을 제정한 퓰리처는 역설적이게도 저널리즘의 적인 황색언론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2] 황색언론 경쟁에서 퓰리처의 뉴욕 월드사가 패배하고, 퓰리처 본인도 실명하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나서 깨달음을 얻어 후배들 중 참 언론인을 위해 제정한 상이 퓰리처상이다.

언론계에서 노벨상과 같은 위치로 통하기는 하지만,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은 아니다. 언론부문은 미국 언론과 미국 언론계에 종사하는 언론인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며[3], 예술 부문은 미국인, 미국과 관련된 것만 대상이다.

다만, 2014년 공공보도 부문 수상자로 영국가디언지가 프리즘 폭로 사건을 보도한 업적으로 워싱턴 포스트와 함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가디언 지의 뉴욕 지사를 통해 이루어진 보도라고 하여 수상대상에 오를 수 있었다. 매년 4월 수상자를 발표하여 뉴욕컬럼비아 대학교에서 5월에 시상식을 한다. 1917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미국에서 워낙 권위가 드높다 보니 연예계 4대 상인 EGOT[4]과 합쳐서 PEGOT이라고도 부르며, 이 다섯 개를 모두 받은 사람을 PEGOT이나 PEGOT winner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한국기자상이 존재하긴 하...는데, 당연히 퓰리처상의 위상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국제적 위상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기자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퓰리처상에 비빌 대상이 아니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비문학 수상작의 경우 전기, 역사, 논픽션을 뭉뚱그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사진이 많은 공감을 얻을 만한 사진이거나 특정 사건에 대해서 묘하게 잘 설명하는 경우, 이 상의 이름을 빌려 X리쳐상이라 빗대 부르기도 한다.

2. 부문

2.1. 언론

2.2. 예술

2.2.1. 특별감사상

파일:PulitzerPrizes.png
퓰리처상 특별감사상 수상자(예술 부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44년 1974년 1976년 1982년 1985년
쉴리 프뤼돔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스콧 조플린 밀턴 배빗 윌리엄 슈먼
1998년 1999년 2006년 2007년
조지 거슈윈 듀크 엘링턴 델로니어스 몽크 레이 브래드버리 존 콜트레인
2008년 2010년 2019년
밥 딜런 행크 윌리엄스 아레사 프랭클린 }}}}}}}}}

3. 유명 수상자

3.1. 한인 수상자

현재까지 한인 재외동포 및 한국 국적의 퓰리처상 수상자는 3명이며, 총 4회 수상하였다.

4. 유명 수상작(사진)

파일:아버지의 깃발.jpg
이오지마의 성조기(Raising the Flag on Iwo Jima), 1945년 AP통신 기자 조 로젠탈 촬영
이오지마 전투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같은해인 1945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아버지의 깃발로도 유명하나, 이는 동명의 소설 및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 것이고 원제는 저것이다.
파일:attachment/k28_12040357.jpg
무너진 다리를 건너 탈출하는 피난민들(Flight of refugees across wrecked bridge), 1950년 AP통신 기자 맥스 데스퍼 촬영
6.25 전쟁 하면 떠오르는 사진으로 195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여담으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이 유명하여 해당 사진을 한강대교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대동강철교다.
파일:attachment/uploadfile/Tokyostabbing.jpg
도쿄 찌르기 사건(Tokyo Stabbing), 1960년 마이니치 신문 기자 나가오 야스시 촬영
해당 사건을 촬영한 사진으로 196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guyen.jpg
사이공식 처형(Saigon Execution), 1968년 AP통신 기자 에디 애덤스 촬영
1968년, 베트남 전쟁 구정 공세 당시 촬영된 사진으로 1969년 수상작.
파일:attachment/Phan_Thi_Kim_Phuc_(1972).jpg
소녀의 절규(The Terror of War), 1972년 AP통신 기자 닉 웃 촬영[6]
파일:attachment/인종차별/Pulitzer.jpg
국기의 불명예(The Soiling of Old Glory), 1976년 스탠리 포먼 촬영
인종차별을 나타내는 사진으로 1977년 수상작이다.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181065599.jpg
수단의 굶주린 소녀(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1993년 케빈 카터 촬영
아프리카 식량난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진으로 1994년 수상작이다. 언론인의 보도 윤리에 대한 논란도 거셌던 사진으로, 케빈 카터 문서 참고.
파일:external/por-img.cimcontent.net/cc22fd579835b3fc29af7cacb205fff7.jpg
대담한 광대(A bold buffoon), 1996년 AP통신 알렉산드르 제밀리아니첸코 촬영
1996년 러시아 대선의 유세 도중 술에 취한 보리스 옐친이 춤을 추는 모습으로 1997년 수상작이다.

4.1. 유명 후보작(사진)

파일:attachment/cheonanmun_tank.jpg
탱크맨(Tank Man), 1989년 AP통신 기자 제프 와이드너 촬영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1990년 결승 진출작이다.

5. 관련 문서


[1] Pulitzer의 영어 발음 /ˈpʊlɪtsər/ 는 '풀리처'에 가깝다. 헝가리어 원래 발음도 '풀리체르'라서 '퓰'로 발음할 까닭이 없다. 한국에서 '풀'이 '퓰'이라고 바뀐 이유는 철자만 보고 발음을 잘못 알아서 생긴 듯.[2]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이라는 단어조차 이 인간(그리고 퓰리처에게 개싸움을 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때문에 탄생했다.[3] 다만 외국인은 미국 언론사에서 일하면 수상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외국 언론사의 미국 지사 등 미국 현지법인도 수상대상이다.[4] 에미상(E), 그래미 어워드(G), 오스카상(O), 토니상(T).[5] 1988년 당시 공산국가로 한국인이 입국하기 어려웠던 중국과 북한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후에도 별도로 영어식 이름을 쓰지 않고 'Hyungwon Kang'을 그대로 사용했다.[6] 소이탄에 의해서 옷에 불이 붙어 옷을 벗은 상황이다. 사진 속 소녀 판티낌푹은 다행히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