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업 계획은 취소 또는 무산되었습니다.
본 문서에서 다루는 사업 계획은 본래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유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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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초중반 서울시와 LG그룹 산하의 LG돔이 계획했던 다목적 돔 경기장. 대한민국 스포츠계에 처음으로 제시된 돔 경기장이었으나, 경제적인 원인으로 인해 건설이 무산되었다.2. 기획
1992년 10월, 서울시는 '정도(定都) 6백년 사업'의 하나로 서울의 5대 전략지역의 개발구상을 발표하면서 뚝섬지구를 레저, 문화, 스포츠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기본계획 아래 1994년 12월 뚝섬의 돔구장 건설구상을 발표했다.[1] 당시 서울시는 뚝섬 돔구장은 시민체육시설로 구상하고 있었다.1995년 3월28일 조선일보에 실린 서울시 5大 전략지역중 뚝섬지역의 조감도[2] |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이뤄낸 LG 트윈스의 모기업 LG그룹은 그해 12월 그룹 회장실 직속으로 D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돔구장 추진팀을 구성하고 1995년에 본격적으로 돔구장 건설을 추진한다.
1995년 3월 LG스포츠가 뚝섬에 야구, 축구, 농구 등이 가능한 다목적 돔구장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LG, 돔구장 건립 추진-뚝섬 경마장에 완공후 서울시 기부 - 중앙일보
3. 뚝섬돔과 월드컵
초기 구상 당시 경기장 조감도[3] [4] |
▲2002년 월드컵 경기장 활용
▲야구 전용구장 확보
▲서울의 상징적 구조물 건설
▲서울시민의 건전한 문화공간 제공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
뚝섬 돔 구장을 2002 월드컵 경기장으로 활용할 것임을 밝힌 첫 사례[6]이자, 주 용도는 야구 전용구장으로 사용 할 것임을 밝힌것이다. #
서울시는 2002 월드컵 경기장으로 잠실의 올림픽 주 경기장을 추진했었지, 뚝섬의 돔구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
당시 서울시는 LG의 건립 의향서에 LG의 건의내용은 충분히 검토할 예정이고, 사업 시행방법 및 사업자 선정은 장래 별도에 통보하겠다고 회신한다.[7] 서울시도 뚝섬에 돔 경기장을 짓겠다는 발표는 했지만 언제 시행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던 것이었다. 당시 권오호 서울시 내무국장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뚝섬에 돔구장을 계획한 것은 틀림이 없으나 다만 그 시기를 그냥 가만히 두었으면 2005년에 할지 도시 계획으로 하는 것이니까 3000년에 가서 사업을 시행할지 그 시기는 모르는 것이었으나 월드컵 개최로 인해 시기가 결정되었다 밝혔고 2002 월드컵과는 전혀 무관한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8]
1995년 5월26일에 있었던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위원회의 제26차 집행위원회 회의자료[9] |
이렇게 서울시는 뚝섬 돔 경기장 개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으나 LG측은 1995년 5월 월드컵 유치위에 서울 성수동 구 경마장터에 자체 축구전용구장을 추진중에 있으니 월드컵 후보경기장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1995년 5월26일(금요일) 당시 유치위 집행위원회 회의에 당시 LG의 요청내용이 보고되었다.
1995년 5월 29일(월요일) "LG가 서울시와 협의중인 축구전용구장 건설계획을 서울시가 동의하면 유치신청서에 후보경기장으로 추가 결정하겠다"는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공문[10]이 서울시에게 내려오고 서울시는 사실상 LG의 제안을 수용한다. #
월드컵 유치위원회는 1995년 9월 FIFA에 서울의 잠실을 월드컵 주 경기장으로 하는 2002 월드컵 유치신청서를 제출하였고 # 서울시는 1995년 10월 26일 뚝섬 일대 개발계획을 다시 발표하면서 2002 월드컵에 대비한 돔구장이 들어선다고 밝혀 이 시기부터 서울시는 서울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추진한다. #
유치신청서에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메인으로 하고 뚝섬 돔을 비롯한 동대문운동장은 보조 연습경기장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11] 올라가게 되었으며 #1, #2 서울시도 유치신청서에 잠실이 서울의 월드컵 주경기장으로 올라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 #
당시 월드컵 유치위의 요청에 대해 지금도 일부 야구팬들은 당시 FIFA 회장이였던 주앙 아벨란제를 앞세운 일본 축구계의 파상적인 유치활동으로 인해 월드컵 개최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크게 불리한 시기였고, 이 때문에 뚝섬 돔구장을 월드컵 유치에 이용했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유치신청서에 뚝섬돔은 보조 연습경기장으로 기재되었을뿐 1995년 11월 FIFA 조사단 방문시 서울의 경기장으로 실사를 간곳은 잠실이었다. #그리고 주 경기장도 아닌 연습경기장에 불과했던 뚝섬 돔구장이 불리해보이는 정세를 뒤집을만한 획기적인 카드도 아니었기에 그러한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다목적 돔 구장이 월드컵 유치에 유리한 카드였다면 일본측도 후술할 나고야 돔을 배제시키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유치활동 당시 일본보다 유치활동이 3년이나 뒤쳐져 있어서 불리하다는 평은 있었으나 1995년 5월 당시만 해도 한국이 유치활동에서 일본을 대등하게 따라잡았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고, # 일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던 FIFA 집행부는 당시 한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자 2002 월드컵 개최지를 일정보다 앞서 결정하자는 조기결정론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유치단은 이러한 FIFA 시도에 강력히 반발하였고 결국 개최지 선정은 원래 일정대로 하게됐다. 당시 한국은 월드컵 본선을 4회 진출한 아시아 최다 본선 진출국이었던 반면 일본은 한번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을 홍보할 정도였다.[12] 당시 월드컵 유치의 성공요인은 1990년대 중반 당시에는 분명 일본보다 앞서던 축구실력과 월드컵 본선진출 경험, FIFA의 부당함에 맞선 유치위 활동이 큰 역할을 했지만 당시 유치신청서에 연습,보조경기장으로 올라간 뚝섬돔이 월드컵 유치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4. 부지매각
서울시는 그 후 공청회를 거쳐 1995년 10월 다목적 돔구장 건설을 내용으로 한 뚝섬 개발 기본 계획을 확정했고 이듬해인 1996년 7월 돔구장 건설사업자 선정계획을 수립했다. 서울시는 3만 3천여 평의 뚝섬 부지를 민간에 입찰을 붙여 매각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당초 기부채납에서 입장이 바뀐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해당 부지를 녹지에서 체육시설로 용도변경을 했다. 1996년 12월 한 차례의 유찰을 거친 뒤, 동년 3월 말에 이루어진 2차 입찰에서 LG는 995억 300만 원을 제출하면서, 850억 원을 써낸 대림산업을 제치고 뚝섬 경기장 부지를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1996년 12월19일 서울시는 "월드컵 축구대회 준결승 이상의 경기를 개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65,000석 이상의 다목적 개폐식 돔(DOME)구장"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인다.1996년 12월 19일 경향신문에 실린 광고[13] |
이후 돔 팀도 세계 곳곳에 위치한 돔 팀을 방문해 돔구장 운영과 마케팅 기법을 배워 적자를 최소화할 수익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LG건설 등의 토목 관련 계열사에서도 직원을 돔 팀에 파견하고 1997년 9월 착공을 목표로 독립법인 'LG돔'이 세워졌다.
5. 용도 논란
1997년 5월 6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2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에 월드컵 개최도시를 1998년 2월 2일까지 선정하여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14] 이에따라 월드컵조직위원회는 당시 16개 후보도시에 개최도시 선정을 위한 현황자료를 요구하였고, 5월 27일에 LG가 작성한 자료를 토대로 서울시가 관련자료를 제출하였는데, 뚝섬돔의 자료는 5만석의 밀폐식 돔으로 표기되어 제출된다. 월드컵 개막전과 준결승을 하려면 6만석 이상이 되어야하고, 개폐식이 아닌 밀폐식 돔은 천연잔디가 자라는건 불가능하기에 뚝섬 돔은 월드컵 경기장으로 부적절했다. 그리고 당시 이 자료에는 프로야구의 정규 및 포스트시즌 경기와 기획경기, 시범 경기 등을 개최한다고 적혀있어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인들의 반감을 산다. 관련기사당시 1996년 12월 서울시의 사업자 선정 입찰공고 내용은 "월드컵 축구대회 준결승 이상의 경기를 개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65,000석 이상의 다목적 개폐식 돔(DOME)구장"라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폐식 돔과 5만여석으로 표기가 된것이다.
2007년 스포츠2.0 기사에서는 당시 이 공고에서 6만5천석 다목적 개폐식 돔이라고 명시돼 있지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축구경기장으로 쓰라는 문구는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으나 그러한 문구가 들어있지 않다고 해서 6만5천석 이상의 개폐식 돔이라는 조건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것은 당연히 아니며 이는 LG의 계약위반에 해당된다.
스포츠2.0 기사에 따르면 LG그룹이 계획 중인 뚝섬 돔구장이 당초 계약(6만 5천 석)과는 달리 FIFA(국제축구연맹) 규격 미달인 5만 석 이하로 축소 설계돼 월드컵 개막식을 그곳에서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 당시 뚝섬 돔구장 터를 항의방문했던 전 축구협회 인사는 "축구계도 LG그룹에서 6만 5천 석으로 설계를 변경할 수 있고[15] 돔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16]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그렇게 떼를 써서라도 정부와 서울시에서 축구전용구장을 지어주기를 바랐다. 거기다 야구에 대한 축구인들의 누적된 소외감과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17]
그러나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일본의 경우 1994년 나고야시가 월드컵 후보도시로써 당시 공사중이던 나고야 돔을 제시했으나 일본 축구협회로부터 야구장에서 개최하는 것은 월드컵이후의 축구진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승인을 내주지 않았었다. 관련기사 뚝섬돔구장을 바라보는 대한축구협회와 조직위를 비롯한 한국 축구계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는 않았다.
LG측이 축구계와 조직위의 의견을 반영해 밀폐식 돔을 개폐식으로 변경하고 관중석도 5만에서 6만5천석으로 늘린다 했는데도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당시 월드컵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계는 월드컵을 일회성으로 치르고 이후에 야구장으로 사용되는 돔 경기장을 원했던게 아니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이후 한국축구 인프라와 축구진흥에 도움이 되는 축구전용구장을 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LG측은 밀폐식 돔에서 축구가 가능하다는 해명(?)과 설계를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당시 LG측에서 뚝섬 돔을 야구와는 무관한 축구전용구장으로 짓겠다고 했으면 2002 월드컵 개막식과 준결승전은 뚝섬에서 열렸을것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LG트윈스의 야구장을 지으려는 목적으로 뚝섬 돔 사업을 시작한 LG였기에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계와 충돌이 불가피했다.
FIFA는 한국의 월드컵 경기장 현황과 계획을 파악하기 위해 실사단을 파견하게 되고,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과 뚝섬돔은 FIFA의 규정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18]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FIFA의 요구조건으로 보수를 하면 1,000억 가까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고, 그외의 보수까지 합하면 신축비용을 능가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관련기사 결국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1997년 6월에 서울 방이동에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거부한다. 서울시와 조직위가 월드컵 주경기장을 어디로 할지 의견차를 보이자, 월드컵 개막전이 수도권의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리기 희망했던 정부는 잠실과 뚝섬돔이 경제성도 떨어지고 FIFA 규정에도 맞지않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개최도시에서 서울을 제외를 검토하고 수도권 개최후보도시인 인천시와 수원시에 접촉한다. 관련기사
정부에서도 축구전용구장에서 2002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걸 원했기에 인천시는 삼산택지지구에 있는 삼산종합운동장 예정부지에 축구전용구장을 신축하거나,[19]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인천문학경기장의 설계를 변경하여 아예 축구전용구장으로 건설하는 방안을 문체부에 내놓았으며 문체부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월드컵 개막식과 3/4위전을 치를 6만석 이상의 축구전용구장으로 건설할 경우 추가비용을 검토, 제출할것을 경기도와 수원시에 요구한다. 1997년 8월 13일 조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대선출마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 재정으로는 월드컵 전용구장을 건설할 예산이 없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뚝섬 돔구장이나 잠실주경기장을 개보수해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발언은 축구 전용구장 건립의 포기를 뜻하는지라,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대한축구협회는 이 발언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뚝섬 돔 경기장은 당초 축구전용구장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서울시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야구장 위주의 다목적 구장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의혹을 제기하였고, "운동장 시설부지이지만 주변 땅값의 3분의 1 수준인 995억원이라는 낮은 가격에 매각했고, 1,700억원의 비용을 들여 돔구장 진입로까지 서울시가 건설하기로 한 것은, 국가사업인 월드컵 축구전용구장이라는 공공성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실제로 조순 서울시장은 1997년 8월11일 "월드컵 축구장을 한다고 해서 뚝섬 부지를 싸게 팔았다"며 땅값이 싼 이유가 월드컵 축구 때문임을 인정했다. 관련기사
당초 이 뚝섬 부지는 구평회 월드컵유치위원장의 주선아래 축구전용구장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매각한 것으로 조직위와 대한축구협회는 생각해 왔었으나 관련기사[20] 서울시가 “95년 5월 월드컵 유치위와의 협의에서 뚝섬 돔구장은 축구 전용구장이 아닌 다목적 구장으로 건설키로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대목에서 당시 유치위원장 구평회씨가 LG그룹의 고문이었고 서울시가 LG의 프로야구 돔구장 설립계획을 받아들여 축구전용구장에서 다목적구장으로가 바뀐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관련기사
그리고 당시 서울시의 한 실무담당자가 사업신청 과정에서 관중석 규모가 줄어드는 등 당초 입찰내용과 어긋나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당시 월드컵유치위의 협조공문 때문에 떠밀리다시피 결재해줬다고 밝혔는데, 이 협조공문도 유치위에서 정식 논의과정 없이 보내진것으로 밝혀졌다. 관련기사 뚝섬경기장 관중석 축소 논란 이후에 LG측은 6만5천석으로 짓겠다 발표한 반면, 서울시는 개막전은 잠실에서 하고 조별예선 경기는 뚝섬에서 치르겠다는 구상을 발표하는데, 잠실 보수에 1천억원 정도가 들고 뚝섬 경기장의 경우 서울시가 1천7백억원 되는 돈을 들여 진입로를 건설해주기로 했던점을 생각하면 조직위를 비롯한 축구계에서는 2천억원의 신축비용이 예상되는 축구전용구장이 재원문제로 인하여 불가하다 밝힌 서울시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축구계의 반발이 거세고 정부와 월드컵 조직위의 서울시 개최도시 제외의 움직임까지 나오자, 관련기사 다급해진 서울시는 소규모 축구전용구장을 짓는선에서 축구계를 설득하려 했으나 당연히 이에 응할리가 없고, 목동에 4만석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을 지을테니 경기는 목동에서 하고 개막식 행사는 뚝섬이나 잠실에서 따로 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관련기사 1997년 8월 22일 서울시는 뚝섬이나 잠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 6만5천석 이상의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 발표한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조직위에 뚝섬 돔을 월드컵경기장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했고 새로짓게 될 서울의 축구전용구장 신축비용의 재정분담을 어느정도 하냐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1997년 8월 29일 서울시가 뚝섬 돔구장의 사용여부를 묻는 공문을 조직위에 발송했고, 9월 1일 조직위가 뚝섬에 월드컵 경기를 열지 않을시 위약금과 손해배상을 서울시가 LG에 하고 월드컵 입장수익을 차압하는 등 조직위측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 밝힌다. 관련기사 그러나 이런 서울시의 강경대응은 많은 비난을 불러왔으며 관련기사 결국 서울시는 구상권 청구 보도는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고, 뚝섬돔이 밀폐식과 5만석 관중석 축소로 바뀐경위는 미확정된 기본 설계안을 서울시가 그대로 조직위측에 넘겨주어 일어난 의사전달 과정의 착오라고 해명한다. 관련기사[21]
당시 서울시는 유치위원회가 보조경기장으로 유치신청서에 기입하겠다고 해서 부지를 매각한건데, 월드컵 본선경기장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이로인한 손해배상을 조직위에 청구하고 월드컵 본선 입장수입의 차압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서울시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게된다. 유치신청 당시에 연습을 위한 보조경기장으로 기입한것이고 뚝섬에서 왜 본선경기를 열지않냐는 서울시의 항의는 일리가 없었다.
뚝섬돔구장 논란으로 서울의 월드컵 경기장이 결론을 내지못하며 아까운 시간만 보내게 되자, 당연히 공동개최국 일본의 준비상황과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고,[22] 1997년 여름에 일본의 요코하마 국제 경기장 등이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이러한 소식들이 보도되며 여론은 LG 프로야구장과 월드컵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을 안가질래야 안가질 수 없었다. #
LG측은 야구장에서 월드컵을 할 수는 없다는 월드컵 조직위와 축구계의 반발을 우려해서인지 "뚝섬 경기장을 FIFA 규정에 맞게 건설하고, 월드컵 후에는 투자비 회수를 위해 축구, 야구를 겸하는 다목적으로 활용하게 설계했다"고 밝힌다.[23][24] #
9월 4일 조직위는 "뚝섬 돔구장의 보조경기장 또는 대체경기장 사용 여부는 본경기장이 선정 된 후에 논의 되는 것이 순서"라는 답을 보내와 뚝섬 돔구장이 연습, 보조경기장의 성격이었음을 분명하게 한다. #
6. 특혜 논란
여러 논란이 들끓자 1997년 8월 28일 서울시의회는 뚝섬지구 돔구장 부지매각 의혹에 따른 행정사무조사를 벌인다.1997년 12월 서울시 의회는 서울시가 싼 가격에 뚝섬부지를 매각한것은 LG에 대한 특혜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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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뚝섬개발기본 계획에 돔구장이 언급되었고(95.3) LG그룹이 이에 대해 민자유치 방식의 돔구장 건립 제안서를(95.4) 제출함. 이후 LG그룹의 인사가 월드컵유치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수차례 걸친 공문과 서울시 방문을 통해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할 돔구장을 건립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고 월드컵유치신청서에 기재됨.
▲뚝섬지구 매각과정에서 1996년 3월 고위정책회의에서 다수의 부정적 견해로 결론이 나지 못하고 다음 회의때 이를 논하기로 했으나 정책회의 없이 부지매각이 결정되었다.
▲서을특별시정책회의 규칙에 의하면 심의결정을 전원합의를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 표결하는 경우에는 출석구성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했지만 후속 정책회의 없이 부지매각이 결정된건 불법이다.
▲최초 정책회의 당시에는 도시계획국은 뚝섬부지를 평당 500만원으로 평가하였으나, 동일부서가 시장 결재시에는 평당 300만원으로 평가하였고 감정평가 법인의 재평가에 다하여 재무국은 재평가 의뢰를 하지 않았다.
▲1995년 12월 뚝섬개발기본계획에 따르면 돔구장 부지가 당시에는 경마장부지 남쪽에 위치하고 동쪽은 상업용지로 개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1996년 7월에 별다른 이유없이 경마장 부지 동측, 도로변에 남북으로 위치하는 것으로 조정된다. 이로 인하여 돔구장의 근접성이 좋아지지만 부지 서측의 용도가 제한되며 경마장 부지에 대해 아무런 계획없는 유보지로 두게되어 뚝섬 기본계획에 따른 용역비 5,830만원의 세금을 낭비한 결과를 초래함.
▲돔구장 부지만 자연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됨, 서울시는 건물의 규모와 용도를 고려해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뚝섬과 비슷한 규모로 볼 수 있는 잠실운동장은 자연녹지지역이고 목동운동장은 일반주거지역에 속하고 뚝섬의 경우 부지면적이 33,000평에 달해 일반주거지역의 건폐율, 용적율이 적용되어도 건물규모가 문제가 없음이 밝혀짐.
실제 건폐율 60%를 적용하면 25,000평의 부지만 있어도 돔구장이 들어설 수 있지만 서울시는 33.000평을 매각한다.
▲서울시는 특정민간건물을 위해 도시계획 용도지역을 변경해준 사례가 전혀없었으나 뚝섬 돔 구장을 통해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줌.
▲순수체육시설로 운영되는 장충체육간 부지의 당시 공시지가는 102만원/㎡이고 동대문 운동장은 315만원/㎡인 반면 당시 뚝섬은 90만원/㎡에 매각을 한다.
▲매매계약서상에 월드컵 축구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고 계약조건에 문제가 있다. 뚝섬 돔과 관련한 공문과 회의에서는 월드컵 준비라는 언급이 빠진적이 없다. 그러나 계약서에는 월드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월드컵때가지 준공하지 못하고 월드컵을 치르지 못하면 어떻게 한다는 조항이 전혀 없다.
▲토지매각대금을 1년간 4회 납부하는것을 LG의 의견을 모두 수용해 5년간 5회 납부로 변경함.
▲결과적으로 월드컵을 빙자하여 재벌그룹에 싼 값에 시유지를 파는 특혜를 주게 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당시 서울시 의회의 뚝섬지구 돔구장 부지매각 의혹에 따른 행정사무조사 결과보고
서울시의회에서는 LG그룹이 서울시를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일부 시의원은 당시 LG전자 상무로 재직하던 조순 시장의 장남 때문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의혹이 불거지자 조 시장의 장남인 조기송[25] 상무는 LG그룹과 아버지 조순 시장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이후 거의 그룹에서 활동하지 않고 수년간 칩거생활을 했다고 스포츠2.0에서는 기사를 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기송씨는 이후 LG전자 부사장에까지 올랐고 LG-필립스의 공동대표까지 맡게되고 이후에는 LG를 떠나 강원랜드의 대표로 재직했다.
10월 10일에는 상암지구로 서울의 월드컵 주 경기장 신축이 결정되면서 월드컵 용도로 부지가 매각된 뚝섬 돔구장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서울시는 당초 계약대로 6만5천여석의 개폐식으로 지으면 문제가 없으며 보조경기장으로 사용하면 되기에 월드컵 개막식, 준결승 개최와는 무관하게 뚝섬 돔 구장의 건설을 계속 진행할것이라 밝혔다. 관련기사 당시 언론들도 뚝섬돔구장이 당초 목적대로 월드컵 보조구장으로 활용될것으로 보았다.관련기사[26]
이러한 뚝섬 돔구장의 의혹에 대해 당시 LG그룹 전략사업개발단의 소속이자 뚝섬돔구장 추진 팀 돔팀의 일원이었던 김영수씨는 "대지 매입가가 특혜라면 특혜였을 것이다. 평당 290만 원이었으면 많이 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땅이 상업용지였나? 체육시설 용도로만 쓸 수 있는 땅은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대지 매입가를 특혜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월드컵경기장을 핑계로 엄청난 부동산 투자 이익을 취한다는 것도 말이 되느냐. 그럼 LG그룹이 그 비싼 경기장을 월드컵이 끝나면 헐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영수씨의 주장은 같은 체육시설인 장충체육관과 동대문운동장의 시세보다도 싸게 토지를 취득했고, 준주거지역으로 5만6천여평의 상업시설들이 예정되어 있음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7. 무산
사업 백지화 직전 뚝섬 돔구장 공사 부지 |
여러 논란을 뒤로 하고 LG는 LG돔(주)을 법인화 시킨뒤 1997년 11월 26일 서울시의 승인으로 본격적인 돔구장 착공에 들어갔다. '용도논란'뚝섬 돔구장 착공 - 경향신문 그러나 정부는 5일전인 11월 21일에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으로 요청했음을 밝혔고, 12월 3일에 정부와 IMF가 구제금융 협상안에 사인함에 따라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외환 위기가 시작되었다. 6~7%였던 금리가 45%까지 치솟았고, 6~7천억원이 들어가는 돔 구장 사업이 LG그룹 전체에 유동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 LG는 12월에 사업을 포기한다.
이후 서울시가 LG측을 설득했으나 LG는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27]
정부는 IMF의 요구대로 재벌에 대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LG도 구조조정안을 마련하여 1998년 1월 19일 발표한다.
한계사업들을 정리와 함께 계열사수를 정리한다는 방안으로 당시 혼란을 이유로 LG측에서는 정리되는 계열사까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바로 여기에 LG돔이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 1월에 서울에 축구전용경기장 건설을 위한 재정분담까지 확정이 됐으나 1998년 2월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월드컵 경기장 신축에 대해 반대를 분명히 했고, 이후 새 정부에서 월드컵 주경기장을 어디로 할지 재논의하게 되는데, 서울시의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개&보수방안과 인천문학경기장 방안, 상암동주경기장 신축방안 3가지를 놓고 격돌하게 되지만 뚝섬 돔 구장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는 1998년 5월26일 뚝섬 돔구장의 백지화를 발표한다.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신축안이 결정되고 20여일 뒤였다. 서울시는 서울 축구전용구장 신축안이 확정되었으므로 월드컵을 전제로 했던 뚝섬 돔구장 계약이 무효가 됐기 때문이라 밝혔지만, 이미 월드컵 조직위가 뚝섬돔구장은 월드컵과 무관하다고 밝힌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하다가 외환위기 이후에 중지했기 때문에 당시 서울시의 보도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결국 돈 문제로 보는 시선이 우세했다. 뚝섬 돔구장 건설계획-왜 취소됐을까 - 연합뉴스 축구계와 서울시의회의 압력에 결국 서울시와 LG가 굴복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LG돔 관계자였던 민윤기 씨는 돔구장 건설 무산 이유를 "LG그룹과 서울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밝혀 IMF 외환위기가 직접적인 위기임을 밝혔다.
8. 이후 반응
야구계에서는 첫 돔구장이 무산되었다는 것에 굉장한 아쉬움을 표했고, 이후 모 前 야구 해설위원이자 現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돔드립을 연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일본 삿포로돔의 사례를 언급하며 일부 야구팬들은 축구계를 비난하지만 삿포로돔은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다.
삿포로돔은 기후문제가 있으며 [28] 결과적으로 축구계와 야구계가 합의를 해서 만들어낸 구장이다. 하지만 LG는 서울시하고만 합의하였고 정작 월드컵 개최도시를 결정 권한이 있는 월드컵조직위원회와 축구계와는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했다. 실제로 삿포로돔은 야구/축구 겸용구장이었지만 당시 LG는 뚝섬에서 2002 월드컵을 치르고 야구장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관련기사
당시 서울시에는 이미 목동,동대문,잠실에 야구전용구장이 존재했다. 몰론 이들 경기장 옆에 종합운동장이 존재해 당시 축구계도 활용은 하고 있었지만 축구전용구장은 아니었고 이는 축구흥행에 큰 걸림돌로 지적되어 왔었다. 1970년대부터 대한축구협회는 서울시에 축구전용구장 신축을 추진했지만 번번히 무산됐었다. 2002 월드컵 유치로 이러한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야구장으로 쓰이게 될 뚝섬 돔구장의 월드컵 유치는 반대하는게 당연한 일이며 이를 축구계의 이기주의로 보는건 맞지 않다.
이후 20년간 돔구장 계획만 나오다가 실행되지 못하며 돔구장 자체는 팬들 입장에서 상상 속의 존재 취급을 받았었다. 고척 스카이돔이 2015년 하반기에 완공이 됨으로써 국내에서도 돔구장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막상 고척돔은 본디 아마추어 야구장으로 추진되었던 사업이[29] 약 2008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연이은 맹활약으로 인해 야구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어른들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계획이 수정되다보니 갈수록 사업추진 비용이 늘어났고, 규모도 일반 돔구장에 비해 협소한지라 프로야구를 치를 수 있는 진정한 돔구장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한편 고척 스카이돔과는 별도로, 민자유치를 골자로 하는 잠실 돔 야구장 사업의 추진이 2013년 말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또한 여러가지로 문제점이 많이 있어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에는 꽤나 진척된 상황이다. LG 역시 못내 아쉬웠던지 잠실 돔 야구장 사업에 적극적인 투자 의향을 밝히고 있다.
야구팬과 야구계 일부에서는 축구때문에 돔구장 건립이 무산되었다며 축구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축구계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처음부터 월드컵 축구라는 이벤트와 연관짓지 말고, LG그룹 독자적으로 야구 전용 돔구장이란 컨셉으로 건설 관련 비용이 아무리 비싸게 나가더라도 밀어붙였으면 건설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야구장은 IMF 사태 때문에 LG그룹 스스로 건설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훗날 브라질처럼 '나라 살림에 맞지 않는 무리한 국제대회를 유치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논리가 성립하면 축구계를 비판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당연히 아니고.
한편로는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조순이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서울 월드컵 경기장 신축에 여론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신축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월드컵 주경기장의 신축은 1997년 9월 청와대 보고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지시한 것.[30] 당시 관련보도
하지만 여전히 무산이유를 축구계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뚝섬 돔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선정이 되었다면, LG가 발을빼도 서울시가 책임지고 뚝섬 돔구장을 지었을것이고 결국 무산의 책임은 축구계에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물론이고, 정부도 이 뚝섬 돔에 대해 부정적이었다.[31] 뚝섬돔은 공사비가 무려 6천억원에 달하는 사업으로,(최대 8천억원) 2002 월드컵 경기장으로 지정이 된다면 관련법령에 따라 건설비의 30%가 정부지원이 가능했다. 뚝섬 돔의 공사비 30%는 1천8백억원으로 당시 서울의 축구전용경기장 신축에 2천억원이 들것으로 예상됐는데 무려 축구전용구장 신축비용의 80%에 달하는 금액으로 경제성이 매우 떨어졌다. 뚝섬 돔 하나 지을 돈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 3개를 지을 수 있는것이다.1998년 4월 새 정부가 재정부담을 이유로 서울월드컵경기장 신축을 백지화했었지만 LG돔은 결국 LG와의 관계 등 여러가지를 고려할때 후보군에서 빠진다 밝힌다. 서울시의 경우 축구전용구장 신축은 미온적이었고 뚝섬 돔 구장 신축은 호의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월드컵경기장으로 뚝섬돔구장을 추진한것도 있지만 축구전용구장이 건설된다면 그 비용을 서울시가 모두 떠맡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실에 있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매년 적자를 보고 있어, 또 다른 경기장을 짓는것이 부담이었다. 그러나 LG는 뚝섬 돔 경기장을 전액 부담한다 밝혔기에 서울시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것이다.
결과적으로 LG가 외환위기로 뚝섬 돔 신축을 사실상 포기했을때 LG로부터 건립을 종용했지, 서울시의 재원을 투입하여 이어서 건설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에 뚝섬 돔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선정된 상태에서 LG가 발을 빼서 서울시가 떠맡게 된다면 서울시는 홀로 5천억원을 부담해야 했다. 서울시는 정부 보조금 30%(1천8백억원)를 지원받더라도 3천2백억여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차라리 상암동 축구전용구장 신축비용의 30%(6백억원)를 부담하기로 했으니 서울시도 이 경우 상암 축구전용구장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거나 상암 축구전용구장이 무산되더라도 차라리 경제성이 떨어지는 잠실의 올림픽주경기장을 사용했으면 했지 더 경제성이 떨어지는 뚝섬 돔구장의 건설을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2]
또 다른예로 삼성이 짓기로 했으나 외환위기로 포기하고 수원시와 경기도가 이어 건설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사례를 들어 뚝섬돔도 월드컵 경기장으로 지정됐다면 건설이 가능했을거라는 주장인데, 수원월드컵경기장의 건설비는 무려 3,107억원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보다 1천억원이 더 들었지만 이 역시 뚝섬돔에 절반에 그치는 액수이다. 2002 월드컵 10개 경기장을 짓는데 들어간 돈은 총 1조8100여원으로 뚝섬 돔 건설비 6천억원은 이들 10개 경기장 총 건축비에 33%에 달한다.
뚝섬말고 대안이 없던것도 아니고 LG가 사업비를 전액부담하지 않는 이상 애초부터 실현되기가 어려운 사업[33]이었던것이다. 참고로 월드컵경기장들도 건설중이나 직전에 외환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건설하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울산의 경우 원래는 종합경기장으로 건설하려 했으나 경제불황으로 인하여 건축비가 종합보다는 싼 축구전용구장으로 전환해버렸고, 부산아시아드의 경우 원래 개폐식 돔으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당초 255억이 들것으로 예상된 지붕공사비가 외환위기 이후에 환율폭등과 원자재값 인상으로 622억까지 상승하면서 결과적으로 개폐식 지붕 방식은 폐기하게 된다. 그리고 수원의 경우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원래 삼성의 재원으로만 지으려던 경기장이었으나 삼성이 외환위기를 이유로 발을 빼면서 경기장 건설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성금으로 좌석비용을 마련하고 북쪽과 남쪽에 지으려던 지붕은 계획을 바꿔 삭제 할 수 밖에 없었다. 월드컵 경기장들도 당시 국가 경제상황으로 건설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월드컵 경기장보다 무려 3배(최대 4배)의 건축비가 들어가는 돔 경기장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지정되었으면 LG가 건설을 포기 했더라도 뒤이어 서울시가 책임지고 나서서 온전하게 건설했을거라는 주장은 얼마나 터무니가 없는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무산의 이유를 축구계로 돌리는것은 당연히 말이 안되는 것이다.
뚝섬 돔 취소가 10년이 다되어가던 2007년 12월에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은 2008년 새해 소감을 밝히면서 뚝섬 구장에 관한 사건의 내막을 공개한다.
경기장을 지을 것이냐 말것이냐와는 별도로, 특정기업에게 돔구장을 짓도록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유치위의 책임자가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특정기업에 뚝섬의 서울시 부지를 팔고, 그 회사는 그 부지에 돔구장을 지은 후 월드컵 이후에는 야구장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었는데, 서울시는 이런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은 파기되기는 했지만, 조순 서울 시장은 대학시절의 은사이신데 결과적으로 그분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미안한 마음이었다. 관련기사[34]
결과적으로는 LG는 싸게 야구장을 지을 욕심으로 월드컵을 이용하려했고 이로인해 서울시와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행정력을 낭비하며 2002 월드컵 준비에 차질을 빚은 셈으로 오히려 야구계가 축구계로부터 비판받지나 않으면 다행인 사건이다.
현재 뚝섬 돔 경기장 건립이 예정되어 있었던 부지에는 도심 속 녹지 공원을 주제로 한 서울숲이 들어서 있다.
9. 뚝섬 돔 구장,서울 월드컵 주 경기장 선정 일지
▽1992년 10월 =서울시,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 확정-뚝섬 지구를 포함한 왕십리 부도심권 개발정비 구상
▽1994년 9월 8일 = 서울시, 문체부에 2002 월드컵 후보도시 경기장 신청
-잠실주경기장(개막, 4강전, 결승전), 동대문운동장(연습경기장)
▽1994년 12월 = 뚝섬지구 개발기본계획 수립(용역착수)
-경희대,(주)선진엔지니어링 공동연구
▽1994년 12월 = LG그룹 D프로젝트 돔구장 추진팀 구성
▽1995년 2월 16일 = 문화체육부, 서울(잠실)이 월드컵 후보도시로 선정됐음을 서울시에 통보
▽1995년 3월 11일 = LG 스포츠, 뚝섬에 돔구장 추진 언론발표
▽1995년 4월 17일 = LG스포츠, 서울시에 서울돔 21 개발 계획서 정식제출.2002 월드컵 경기장 활용과 야구전용구장으로 활용할것임을 밝힘
-서울시는 LG에 건의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사업 시행방법 사업자 선정은 별도 통보하겠다고 회신
▽1995년 5월 29일 = 2002 월드컵 유치위원회 구평회 위원장 명의로 뚝섬지구 돔구장을 월드컵 후보경기장으로 추가동의요청 공문을 서울시에 발송
▽1995년 6월 13일 = 서울시, 뚝섬지구내 돔구장 건설을 구상중이며 전문가 자문과 시민공청회를 거쳐서 확정할 예정임을 LG측에 회신
▽1995년 9월 29일 = 2002 월드컵 유치위원회, FIFA에 2002 월드컵 유치신청서 제출
-잠실주경기장(주경기장), 동대문운동장, 뚝섬돔구장(보조, 연습경기장)
▽1995년 10월 3일 = 캐나다 RNA 인터내셔널사, 주한캐나다 대사관을 통해 LG측이 설계특허를 침해하였다며 이의를 제기.
▽1995년 10월 13일 = 구평회 월드컵유치위원회 위원장, 조순시장 방문 면담
-뚝섬지구 개발계획에 DOME 경기장 조기확정 요망
▽1996년 05월 31일 = 2002년 월드컵 한국.일본 공동유치 확정
▽1996년 12월 19일 = 서울시, 돔구장 건설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안서 모집공고(경향신문, 내외경제신문)
-65,000석이상의 개폐식 돔구장
▽1996년 03월 19일 = 서울시, 뚝섬돔구장 부지매각 유찰(입찰예정가9백95억3백만원)
-LG상사 8백20억원, 대림상사 7백10억원
▽1996년 03월 28일 = LG상사, 뚝섬돔구장 부지 낙찰로 사업자선정(입찰가 9백95억3백만원)
▽1997년 05월 27일 = 서울시, 조직위에 월드컵 개최도시 선정을 위한 현황자료 제출
▽1997년 07월 01일 = 인천광역시, 문체부에 삼산지구 축구전용구장 건설건의
▽1997년 07월 22일 = 정부, 수원월드컵경기장 주 경기장 검토
▽1997년 08월 13일 = 조순, 서울시장 축구전용구장 신축 불가입장
▽1997년 08월 14일 = 월드컵 조직위, 서울시에 경기장 시설에 관한 입장표명 요구
▽1997년 08월 19일 = 서울시 축구전용구장 신축 불가입장 재확인
▽1997년 08월 20일 = 정부, 서울시가 주 경기장 신축안하면 후보도시에서 제외할것임을 밝힘
▽1997년 08월 22일 = 서울시, 조직위와 잠실과 뚝섬이 아닌 제3의 장소에 축구전용구장 건설 합의
▽1997년 08월 28일 = 조직위, 뚝섬돔구장 월드컵 개막전, 준결승 개최 불가 통보
▽1997년 10월 10일 = 주 경기장 신축부지로 마포구 상암지구 확정
▽1997년 08월 28일 = 뚝섬 돔구장 설계 최종확정
-미국 NBBJ사의 설계안
▽1997년 09월 02일 = 서울시, 뚝섬 돔구장을 월드컵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조직위원회에 구상권 청구 방침
▽1997년 11월 26일 = LG, 뚝섬 돔구장 공사 착공
▽1997년 12월 02일 = 대한민국 IMF 관리체계 돌입
▽1997년 12월 27일 = 월드컵 조직위, 월드컵 10개 개최도시 선정. 서울 조건부 포함
-서울은 1월 20일까지 주경기장 건설계획을 마무리 짓는 조건부로 선정
▽1998년 01월 14일 = 인천광역시, 월드컵 주경기장 유치 요청
▽1998년 01월 19일 = LG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1998년 01월 22일 = 상암지구 주 경기장 재정분담 확정. 서울 개최지 최종확정
-정부:600억(30%)/서울시:600억(30%)/체육진흥기금:300억(15%)/대한축구협회:250억(12.5%)/월드컵조직위원회:200억(10%)/분양금:50억(2.5%)
▽1998년 01월 30일 = 조직위, FIFA에 10개 개최도시 통보.
▽1998년 02월 03일 =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월드컵 주 경기장 신축 부정적 견해 피력(인수위보고)
▽1998년 02월 25일 = 국민의 정부 출범
▽1998년 03월 12일 = 조직위, 뚝섬돔구장 월드컵 개최 최종불가 통보.
▽1998년 04월 02일 = 정부, 상암전용구장 백지화, 뚝섬 LG돔구장 활용방침
▽1998년 04월 04일 = LG, 뚝섬 대지매입금 251억원 연체
▽1998년 04월 08일 = 총리 주재 관계기관회의서 주경기장 재론키로 결정. 상암경기장 신축 백지화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LG돔은 제외하며 서울 잠실이나 인천 문학경기장 사용
▽1998년 05월 06일 =정부, 월드컵 주 경기장 상암지구 신축 확정
▽1998년 05월 29일 = 서울시 뚝섬돔구장 건설 취소 발표
[1] 그러나 LG가 추진했던 뚝섬 돔 경기장이 온전히 서울시 5대 전략지역 개발구상으로 인한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관선시장 체제에서는 이 사업들이 계속 추진되어 왔지만 지방자치제의 부활 이후에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조순 서울시장은 이 5대 전략지역 개발구상을 백지화시킨다. 당시 뚝섬은 구체적으로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공식적으로 백지화까지는 가신지 않았는데,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바로 이 뚝섬 돔 경기장이다. 돔 경기장의 용도도 달랐으며 부지도 LG측이 추진한 돔 경기장이 훨씬 더 컸다.[2] 당시 뚝섬 돔구장을 2002월드컵 경기장과는 무관한 시민체육시설로 구상했음을 알 수 있다.[3] 모티브가 된 구장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사용하고 있는 개폐식 돔 구장인 로저스 센터였다.[4] LG는 스카이 돔(지금의 로저스 센터)을 지었던 캐나다 건축설계회사인 RAN인터내셔널사로 부터 설계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의 제기를 받게 된다. 결국 1997년부터는 이 조감도를 사용하지 않았고 이후 별도로 현상설계경기에 들어가게 된다. "LG추진 뚝섬돔 설계특허 침해"..캐나다 건축설계회사 주장 [5] 돔구장 2천6백억원, 부대시설 1천2백억원[6] 뚝섬 돔 경기장이 1995년 5월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요청으로 인하여 2002 월드컵 유치신청서에 기입되며 야구전용구장에서 축구, 야구 겸용구장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잘못됐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뚝섬 돔을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하자고 먼저 말을 꺼낸곳은 분명히 LG였다. [7] 제97회 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재무경제위원회 회의록 1호(1997년 9월1일)[8] 제97회 서울특별시의회(임시회)재무경제위원회 회의록 1호(1997년 9월1일) 72-73페이지[9] 당시 자료를 보면 LG 스포츠가 자체 축구전용구장을 월드컵 유치위에 월드컵 후보경기장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10] 후술하겠지만 이 공문은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치위원장이 마음대로 보낸 공문이었다.[11] 1995년 당시에 뚝섬 돔을 서울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용한다는 방안은 유치위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기 때문에 결국 보조, 연습경기장으로 격이 낮아진채로 유치신청서에 올라간 것이다.[12] 월드컵 개최국이 조기탈락한다면 대회 흥행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개최국의 축구실력도 중요하다.[13] 당시 광고를 보면 65,000석 이상의 관중석과 개폐식 돔이라는 문구가 분명히 있음을 알 수 있다.[14] 유치경쟁 당시 대한민국은 16개의 후보도시를, 일본은 15개의 후보도시를 제출한 바 있다. 이 모든 경기장에서 경기하는것은 불가능하므로 국제축구연맹이 한.일 양국에 재량권을 부여한 것이다. 일본은 96년말에 개최도시 10개를 선정했다.[15] 서울시가 입찰공고 내용으로 6만5천여석을 내건것은 FIFA 규정에 따라 개막전과 준결승전을 하기위해서 이 정도의 규모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뚝섬돔이 순수하게 월드컵 경기장으로 추진했다면 이 부분이 변경된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일이었다. 이는 FIFA 규정 위반으로 관중석수가 5만여석으로 축소된다면 서울은 이 조건을 충족하는 대구에 개막전과 준결승전 개최권을 내줘야 한다. 당시 이 관중석 축소는 뚝섬 돔구장은 월드컵 경기장이 주목적이 아닌 야구장이 주목적으로써 추진된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었다. 또한 조별예선도 아니고 개막전과 준결승을 치르는 주 경기장을 짓겠다는 곳이 FIFA 규정조차 숙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월드컵 조직위와 대한축구협회는 LG측을 신뢰하기 어려웠다.[16] 밀폐식 돔 구장에서 축구는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1994 미국 월드컵 당시에 폰티악 실버돔으로 천연잔디를 임시로 그라운드에 입혀서 경기를 치렀다. 일부 야구팬들은 일본 나고야돔의 축구장 변환을 이유로 당시 축구계에서 밀폐식 돔에서 축구가 가능한데 억지를 부린다 주장하지만, 나고야 돔 역시 밀폐식 돔이라 천연잔디가 자라지 못하고 축구장으로 공식 경기를 열려면 폰티악 실버돔처럼 임시로 천연잔디를 입혀야 한다. 나고야 돔은 인조잔디이기에 일본축구협회에서 승인을 내주지 못해 축구 경기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17] 보통 축구 때문에 뚝섬 돔 구장이 무산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포츠 2.0 기사의 이 부분을 인용하여 축구계를 비난하지만 IMF 때문에 무산됐다는 같은 기사의 결론은 말하지 않고 있다.[18]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서울특별시 리포트 1509일의 대장정》 p.13[19] 이 부지는 지금의 삼산월드체육관 부지이다.[20] 유치위원회 시절에 공문에 축구전용구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서울시에 뚝섬 부지 매각을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21] 그러나 10년뒤인 2007년 7월16일 스포츠2.0 60호에 LG돔은 왜 사라졌나 기사에서는 당시 LG측이 NBBJ사의 현상설계를 채택하였고 원래부터 밀폐식 돔이었다 밝혔다. 당시 LG는 거짓말을 한것이다.[22] 1997년 8월 기준으로 한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구장은 부산, 인천, 대구 이렇게 3개 구장에 불과했다. 부산은 아시안게임 유치로 1995년부터 준비에 들어간 거였고, 인천도 체전용으로 1994년에 착공한 거였다. 그나마 월드컵 용도로 대구가 막 착공에 들어간 상태였다.(대구의 경우 유니버시아드 용도로 짓는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원래는 2002 월드컵을 위해 축구전용구장으로 계획된 경기장이었다.)[23] 실제로 이 발표 이전에 LG측은 이 뚝섬 돔구장을 월드컵 경기를 치른 뒤, 야구장으로 사용할 것을 밝혀왔었었다. 월드컵 개최도시 선정에 결정권이 있는 조직위와 축구계가 뚝섬돔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자 이런 해명을 내놓은것이다. 그러나 2007년 7월 16일 스포츠2.0 60호에 'LG돔은 왜 사라졌나' 기사에서 당시 LG 관계자가 월드컵 이후 야구장으로 쓰려는 목적은 수지타산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표였다고 밝히면서 1997년 당시 LG의 해명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당시 월드컵을 일회성으로 개최하고 장기적으로 축구인프라 구축에 도움이 안되는 야구장을 건설하려 한다는 축구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일이다.[24] 2010년대 들어 야구전용구장으로 기획되던 뚝섬 돔구장이 월드컵 유치위원회의 요청으로 축구, 야구 겸용 다목적 구장으로 바뀌었다는 왜곡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이시기에 LG는 뚝섬 돔은 다목적구장으로 축구, 야구 둘다 할 수 있다는 말 뿐만 아니라 축구계로 인하여 야구장에서 다목적구장으로 바꾼건데 이제 와서 무슨소리냐?라는 말이 같이 나와야 한다.[25] 스포츠 2.0 기사는 조기성으로 표기하였다. 단순 오타라 보기에는 두 차례나 조기성으로 적힌것으로 보아 박동희 기자가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걸로 보인다.[26] 이는 뚝섬 돔 경기장과 이후에 지어질 서울월드컵경기장과는 서로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뚝섬 돔 구장 대신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지어졌다는 주장은 틀린것이다.[27] 결국 서울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뚝섬구장에 월드컵 경기 배정을 요구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축구전용구장 신축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계속 뚝섬에 월드컵 경기 배정을 요구하자 서울시가 LG와 별도의 이면계약을 채결한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다. 관련기사[28] 삿포로에 위치한 마루야마 야구장이 조명탑이 없다. 예산문제가 아닌 야간에 너무 추워 경기를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29] 착각하기 쉬운데 고척 스카이돔은 동대문구장의 대체가 아니라 별도 사업이었다.[30] "결국 이 문제는 1997년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월드컵대책 보고회의에서 대통령이 축구전용구장을 서울시에 건립하되 총리가 그 방안을 강구하도록 한 연후에야 해결의 가닥을 잡기 시작하였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서울특별시 리포트 1509일의 대장정》 p.13[31] 뚝섬돔구장 설계경기가 한창이던 1997년 7월에 왜 문체부가 나서서 인천과 수원을 주경기장 후보로 고려했겠는가?[32] 서울시의회는 행정사무조사를 통해 당시 LG의 뚝섬부지 매입이 특혜라는 결론을 내리고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는 재정난을 이유로 상암동 축구전용구장 건설에는 30%(6백억원)를 부담하기로 이미 합의를 마친상태인데 서울시가 "월드컵 준비"라는 명분으로 5천억원을 추가로 들여 뚝섬돔구장을 짓는다는건 말이 안된다.[33] 1995년 10월13일에 구평회 월드컵 유치위원장이 서울시청을 방문해 뚝섬돔구장의 조속한 시행을 요구하였고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관련시설 추진을 위한 서울시 예산지원은 재정현평상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당시 이와 관련한 서울시의회자료.[34] 이 기사는 2007년 12월 당시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2008년 새해소감글을 스포탈코리아가 그대로 옮겨 기사화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