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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5-27 07:52:24

라메

파일:라메 1.jpg

1. 개요2. 역사

1. 개요

히브리어: רָמָה
아랍어: الرامة
영어: Rameh

이스라엘 북부의 도시. 라마, 알-라마로도 표기된다. 아크레에서 동쪽으로 25km, 사페드에서 서쪽으로 12km, 나자렛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샤구르 (베이트 헤케렘) 협곡 분지의 언덕 위치한다. 인구는 약 9천명으로, 절대 다수가 이스라엘 아랍인 무슬림이다. 주민들은 기독교도 50%, 드루즈교도 31%, 무슬림 19%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갈릴리 지역의 주요 올리브 생산지 중 하나이다.

2. 역사

파일:라메 2.jpg
오스만 시기에 세워진 전통 건물
파일:나비 슈아입.jpg
드루즈 사원인 마캄 나비 슈아입

적어도 로마 제국 시기부터 도시가 있었고, 동쪽에 3세기 무렵의 목욕탕과 기름 방앗간 유구가 남아있다. 남쪽에서는 시나고그 (유대 회당) 유적도 발견되었다. 동북쪽에는 동로마 제국기 성당 유적이 발견되었다. 오스만 제국 시기 라메는 사페드 산작 산하 악카 (아크레) 나히야에 속했고, 96 가구의 무슬림 주민이 거주했다. 이들은 비단을 중심으로 한 농축산물로 매년 고정된 21,986 악체의 세금을 납부했다. 세수의 절반은 종교 재단인 와크프에 귀속되었다. 1837년 지진으로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고, 180여 주민이 사망했다. 이후 인근 기독교도와 드루즈인이 대거 유립되었다. 1887년 기준 라메에는 무슬림 575명, 드루즈인 425명, 그리스 정교도 125명이 거주했다.

영국령 팔레스타인 시기인 1922년 10월, 라메에는 시의회가 설립되었다. 1931년 기준 주민들은 기독교도 746명, 드루즈인 326명, 무슬림 70명이 거주했다. 기독교도는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회였고, 그리스 멜키트 가톨릭가톨릭 신자 순이었다. 1945년 기준 인구는 1690명이었고 기독교도 1160명, 드루즈인 440명, 무슬림 90명 순이었다. 1차 중동전쟁 당시 1948년 10월 말, 이스라엘 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1천여 주민들을 협박해 추방했다. 다만 드루즈 공동체는 잔존이 허가되었다. 다만 일주일 후 이스라엘 군이 떠나자 인근 계곡과 동굴에 숨어있던 주민들은 귀환했고, 이크리트 등지의 피난민들이 유입되었다. 20세기 후반 라메의 드루즈인 아부 라티프 가문이 범죄 조직으로 성장했다. 1989년에는 파티나 하나가 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이는 이스라엘 아랍인 중 3번째로 선출된 여성 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