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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0 19:36:56

레본 테르페트로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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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아르메니아 공화국 대통령
레본 하코비 테르페트로샨
Լևոն Հակոբի Տեր-Պետրոսյան
파일:레본 테르페트로샨.png
출생 1945년 1월 9일 ([age(1945-01-09)]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Syria_French_mandate.svg.png 프랑스령 시리아-레바논 위임통치령 알레포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알레포
국적
[[아르메니아|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예레반 주립대학교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가족 아내:류드밀라 테르페트로샨
슬하:다비트 테르페트로샨
정당 [[아르메니아 전 국민 운동|
아르메니아 전 국민 운동
]](1989년 - 2008년)
[[아르메니아 전 국민 운동|
아르메니아 전 국민 운동
]](2008년 - 2013년)
[[아르메니아 국민 회의|
아르메니아 국민 회의
]](2008년 - 현재)
현직
서명 파일:레본 테르페트로샨 서명.svg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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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아르메니아 최고의회 의장(1990년 8월 4일 - 1991년 11월 11일)
초대 아르메니아 대통령(1991년 11월 11일 - 1998년 2월 3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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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본 테르페트로샨은 아르메니아의 초대 대통령이다.

2. 생애

1945년 시리아알레포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그의 가족이 당시 소련을 구성하던 소비에트 아르메니아로 이주했다.[1] 그는 예레반 대학을 졸업한 후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어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연구자로 활동하였다. 테르페트로샨은 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민족주의 바람이 거세질 때 나고르노카라바흐 귀속 운동을 주도했고, 민족주의 성향의 범아르메니아 국민운동 소속으로 89년 아르메니아 소비에트의 의원이 되었으며 1990년에는 소비에트 아르메니아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1991년 아르메니아의 독립과 함께 치러진 대선에서 테르페트로샨은 83%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아르메니아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그의 임기 동안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르메니아는 승전을 거두었다. 한편 테르페트로샨은 대통령을 지내면서 야당이었던 아르메니아 혁명연맹과 갈등을 빚었고, 1994년 결국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을 불법화하였다. 96년 대선에서 테르페트로샨은 5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야당인 국민민주연합의 바즈겐 마누캰은 선거가 부정선거임을 주장했고, 예레반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재선 이후 테르페트로샨은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해결을 위해 아제르바이잔과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야권은 그의 온건책에 반대했고, 결국 반대에 못 이겨 1998년 테르페트로샨은 사임하고 로베르트 코차랸이 새로운 아르메니아의 대통령이 되었다. 2008년 코차랸의 후계자격이었던 세르지 사르키샨이 출마하자 그는 다시 사르키샨에 맞서 대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이후 반정부 시위를 이끌다 시위는 해산되고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연금에서 풀려난 이후 야당 아르메니아 국민회의를 이끌어 2012년 총선에서 7석의 의석을 획득했으나, 2017년 선거에서 그의 정당은 의석을 얻는 데 다시 실패했다.


[1] 당시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는 친소 성향이 강했다. 반독립적이나마 아르메니아인의 공화국인 소비에트 아르메니아가 세워지기도 했고, 소련이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 상대로 프로파간다를 세게 때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