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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0:08:38

레이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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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레이궈민.jpg 파일:레이궈민 공판.jpg
이름 레이궈민(雷国民)
출생 1971년 11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사망 2001년 12월 28일 중화인민공화국
1. 개요2. 상세3. 범죄 내역4. 판결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연쇄살인 및 연쇄강도, 연쇄강간범.

2. 상세

안후이성 퉁청시 출신이며,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총 광동성, 운남성, 복건성, 강서성, 길림성, 안후이성, 장쑤성 등지에서 폭력, 협박 등의 방법으로 15건의 강도질을 벌였다. 2001년에 장쑤성 옌청시 인민검찰원은 레이궈민을 강도살인, 강간살인, 미성년자 강간등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그 동안 강도 행위로 입수한 재산을 몰수했다. 2001년 12월 28일에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3. 범죄 내역

광저우시 산위앤리에 도축업으로 큰 돈을 번 장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레이궈민은 1992년 8월 1일 새벽 1시경에 장핑과 일꾼들이 잠들었을 시간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장핑의 동생인 장요린의 목을 과도로 2번 찔러서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던 10위안 정도를 챙겼다. 그리고 장핑 소유의 금고로 가서 금고를 열려고 하던 찰나에 주변에서 소리가 들려 바로 도망쳤다. 레이궈민의 첫 살인이자 강도행각인데 1명을 죽이고 10여 위안 정도를 챙겼을 뿐이였다. 여기서 레이궈민은 사람을 죽였지만 돈을 얼마 못 얻어서 1명을 죽이나 여러 명을 죽이나 똑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1993년 11월 8일, 레이궈민은 저우관전이라는 사람의 집 대문 앞에서 범죄행각을 벌일 준비를 했는데 집의 여주인인 저우관전이 집문을 나서 빨래를 보러 갈 때 뒤에서 큰 칼[1]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큰 부상을 입은 저우관전은 비명을 질렀고, 집 안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 레이궈민은 도주한다.

1993년 말에는 장윈밍이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장윈밍은 레이궈민보다 1살 많고 범죄도 더욱 일찍 시작했으며 레이궈민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은 사람이였다. 마침 장원밍은 총기밀매책과 친분이 있었으며, 무기 거래 혐의로 강제노동형을 선고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레이궈민은 장원밍의 인맥을 이용해 권총 두 정과 실탄 10발 정도를 구매한다.

1994년에 그 둘은 다음 강도행각을 벌일 대상을 찾고 계획을 짜기 위해 범행에 사용할 오토바이를 훔칠 생각을 한다. 장윈밍은 쿤밍시의 어느 공사장에서, 레이궈민은 그 공사장 근처의 술집에서 범죄대상을 찾았다. 그 때 레이궈민은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끌고 술집 쪽으로 오는걸 보았는데 그 오토바이가 자신들이 원하던 모델인줄 알고 주인을 총으로 쏴 죽이고 지갑에서 20위안을 훔친 뒤, 장윈밍과 합류해서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다. 하지만 그 오토바이는 자신들이 원하던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시동도 꺼지자 그냥 버렸다.

레이궈민과 장윈밍은 1994년 4월에만 두 번의 범죄를 일으킨다. 4월 3일 저녁 8시 쯤, 레이궈민은 혼다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던 황씨가 공터에서 내리자 그를 총으로 쏴 죽인 뒤 20위안을 훔쳤고, 장윈밍은 그 오토바이를 몰고 다음 목표 범행장소 근처에 오토바이를 숨겨 놓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지나가던 행인 위앤진줘와 펑줘줸을 강도질 하려 하는데 둘이 저항하자 레이궈민은 먼저 위앤진줘를 쏴 죽이고 이후 펑줘줸도 죽여버린 뒤 그들에게서 돈을 훔쳐 달아났다. 그리고 얼마 안가 레이궈민은 장윈밍에게 이제 각자 살 길을 살아가자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장윈밍은 레이궈민과의 관계를 끊고 권총 두 정을 모두 챙긴 채 그를 떠났다.[2]

1995년 3월 23일 오후 4시경에 레이궈민은 중난시에서 류붜슈라는 집주인을 죽이고 10만 위안을 챙겼다. 그 일이 있고 3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렇게 훔친 돈을 다 써버리는데 돈이 떨어진 그는 1995년 여름, 새벽 2시경에 주하이시 소재의 공베이 기차역에서 천이통이라는 점주가 운영하는 매점을 강도질하려 하지만 그에게 발각 되어 달아났다. 하지만 1년 뒤에 다시 그곳을 찾아가 2명의 당직 아르바이트생을 죽이고 43만 위안과 10만 홍콩 달러를 훔쳐서 달아났다. 43만 위안과 10만 달러라는 큰 돈을 얻었지만 레이궈민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은행의 금고를 털 계획을 하기 위해 2년간 사전답사를 했다.

1997년 9월 22일 밤중에 레이궈민은 장서성 남창시에 있는 한 은행에 들어가 당직실에 있는 제복을 훔쳐 입고 2층에 올라갔지만 야간당직의 인원이 아주 많은 것을 보고 겁이 나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1년 뒤인 1998년 7월 31일 새벽 1시경에 지린성 퉁화시의 한 은행에 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15만 위안을 훔쳐왔다. 레이궈민은 두 번의 은행을 터는 경험에서 도주 시 자신이 달리는 속도가 느린 것에 불만을 갖고 봉고차를 구하려 했다. 2000년 8월 5일 저녁 9시경 레이궈민은 봉고차를 구매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후이성 쑤저우시에 있는 은행을 찾아가 날이 어두워지기 까지 기다린 다음에 밤이 되자 플라이어로 주임실의 창문을 뚫고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은행에 있던 야간당직인 쉐위전, 쉬위펀이 소리를 듣고 접근해 오자 레이궈민은 그 둘을 죽이고 금고를 1차로 털어서 4만 위안, 2차로 18.8만 위안을 훔쳤다. 반년 후에 레이궈민은 3만 위안으로 그토록 원하던 봉고차를 구매했다.

2001년 2월, 장시성 루이창시에서 은행을 털 계획을 하는데 이미 그런 행위에 익숙한 레이궈민은 범행을 저지를 은행의 금고 열쇠를 해당 은행 경비원인 저우셩중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월 21일 오후 4시경에 레이궈민은 저우셩중의 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저우셩중이 그의 모친, 딸과 함께 집에 들어갈 때 그들을 습격해서 막내 딸만을 남긴 채 모두 살해한다. 또한 그는 겁에 질린 저우셩중의 딸을 보고 흥분하여 그녀를 강간했다.

그 후에 다시 범행목표의 은행으로 가려 하지만 저우셩중의 집에서 떠나려 할 때 저우셩중의 동생을 마주쳐서 은행을 터는 계획을 포기한다. 하지만 2달 후에 장쑤성 옌청시에서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2001년 4월 15일 레이궈민은 옌청시의 한 은행을 털게 되는데 직원 3명을 죽이고 금고를 열어서 260만 위안의 현금을 챙겼다. 즉시 옌청시의 모든 경찰들이 현장에 투입 되었고 국도를 봉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레이궈민을 체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끈질긴 추격 끝에 2001년 6월 15일 레이궈민은 선전시의 기차역에서 공안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8월 22일, 난징에서 옌칭으로 호송되고 8월 24일에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자 레이궈민은 이를 인정하며 형사들을 동반해 그가 벌인 모든 범행을 밝혀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레이궈민은 불공평과 사회제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스스로를 변호하지만 워낙 그의 범죄가 흉악한터라 소용이 없었다.

4. 판결

2001년 11월 9월에 레이궈민은 미성년자 강간, 그 동안의 강도살인행각 등으로 사형을 면치못하게 되고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그가 그동안 강도행각으로 벌어온 돈들은 압수했다. 2001년 12월 28일 레이궈민은 총살형에 처해진다.
[1] 당시 대도를 구해 무장하고 있었다.[2] 이후 장윈밍은 1994년 말에 충칭시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또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다 체포되는데 마약소지, 강도등의 범죄로 1995년에 사형을 선고 받고 이후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