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로베르 데포세 (Robert Défossé) |
생년월일 | 1909년 6월 19일 |
사망년월일 | 1973년 8월 30일 |
국적 | 프랑스 |
출신지 | 칼롱리쿠르아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80cm |
등번호 | -[1] |
소속팀 | 올랭피크 릴루아 (1932-1938) 레드 스타 파리 (1938-1939) |
국가대표 | 9경기 (1933-1936) |
1. 생애[2]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데포세는 어렸을 때 권투에 정진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데포세는 13살 무렵 축구 선수가 되었고 ES 불리레미네(ES Bully-les-Mines)에서 축구를 배웠다. 처음에는 레프트 윙 하프,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레프트 풀백 등 여러 포지션을 전전했고 우연한 기회에 팀메이트들과 농구를 하다 데포세의 반사신경이 좋은 것을 알게 되어 골키퍼로 전향했다.1932년 시즌부터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되었고 데포세는 올랭피크 릴루아[3]의 선수가 되었다.
올랭피크 릴루아는 처음 출범한 디비지옹 1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데포세는 줄리앙 다뤼가 팀에 오기 전까지 6시즌 동안 릴루아의 골문을 지켰다. 데포세는 1938년, 디비지옹 2의 레드 스타 파리로 이적했고 레드 스타 파리의 디비지옹 2 우승을 이끌며 디비지옹 1무대로 팀을 옮겼다. 데포세는 이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선택했다.
1.1.2. 국가대표
1933년 2월, 데포세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처음 국가대표팀의 골문을 지켰다. 하지만 프랑스는 로제 리오[4]의 부상이란 악재를 겪으며 오스트리아에 0대4로 패했다. 비록 4골을 먹혔지만 데포세의 기량은 합격점이었다.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데포세의 역할은 주장 알렉스 테포의 뒤를 이은 세컨드 골키퍼.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게 역전패하며 1라운드 탈락의 성적표를 들고 귀국해야 했다.
데포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1936년 12월, 유고슬라비아와의 시합이었고 프랑스는 유고슬라비아에 1대0으로 승리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어렸을 때 권투를 한 경험으로 데포시는 근육질의 체형을 갖고 있었고 투지와 반사신경이 좋은 골키퍼로 활약했다.3. 수상
3.1. 클럽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올랭피크 릴루아는 1944년에 SC 피브스와 합병하여 현재의 릴 OSC가 된다.[4] 로제 리오 역시 이 시합이 국가대표팀 데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