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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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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학교 역사컨텐츠학과 교수
류한수
파일:류한수.jpg
<colbgcolor=#0A1942><colcolor=#fff> 출생 1966년 ([age(1966-01-01)]세)
소속 상명대학교
분야 Modern History of Russia(러시아 혁명, 소련군)
학력 • 학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세부전공 : 러시아사), 198902
• 석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세부전공 : 러시아 현대사), 199108
• 박사: 에식스 대학교 역사학과
(세부전공 : Modern History of Russia), 200502
약력 연구이사, 한국러시아사학회, (2018.12~2021.01)
소장, 상명대학교 동북아역사문화연구소, (2016.03~2020.02)
관장, 상명대학교 박물관, (2016.02~2018.02)
편집위원, 한국러시아문학회, (2013.12~2015.12)
연구이사, 한국슬라브학회, (2010.01~2012.01)
연구이사, 역사학회, (2009.01~2011.01)
편집위원,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 (2008.07~2020.07)
교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2007.03~ )
1. 개요2. 논란
2.1. 역사 왜곡
2.1.1. 핀란드 나토 가입에 대한 발언2.1.2. 6.25 미국과 소련2.1.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1.3.1. 벌거벗은 세계사
2.1.3.1.1. 쿠치마 정권 문제를 친서방 vs 친러 갈등으로 강의한 왜곡2.1.3.1.2. 유셴코 vs 야누코비치를 친서방 vs 친러로 강의한 왜곡2.1.3.1.3. 경제적 이유로 인한 친러 야누코비치의 EU 서명 보류에 친서방 국민들에 의해 유로마이단의 과격시위가 발생했다는 왜곡
2.2. 가독성으로 악명 높은 번역

[clearfix]

1. 개요

러시아 혁명, 소련군 전공의 역사학자. 러시아 관련 국내 전문가 중 하나며 기존 방송 출연 경력이 많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종 방송에 초청되고 있다.

2. 논란

러시아 관련 전공자라는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러시아의 편을 드는 주장이나 발언을 많이 해서 논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국제적인 평화 위협 세력으로 지탄을 받는 상황에서, 이 점은 더욱 큰 물의를 빚는 상황이다.

2.1. 역사 왜곡

2.1.1. 핀란드 나토 가입에 대한 발언

최근의 상황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수십년 동안 성공적인 모델로 작용해 온 러시아와 척을 지지않고 서방에게 너무 밀접하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는 완전히 바꿔서 말씀드린 대로 러시아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고 적대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나토에 가입한다거나 하는 그 반향 선회를 과연 할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욱하는 기분에서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 시간이 가고 여론이 좀 차분해지면은 다시 한번 핀란드 국민들과 정부가 러시아를 비판하고 비난은 할 수 있되 그렇다고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러시아가 제일 싫어할 만한 자세. 즉 나토에 가입하는 것. 그런 결정은 하기 쉽지 않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18~19분 #
핀란드가 침략의 위협 때문에 가입하려는 걸 '욱하는' 마음으로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인 외교라고 비하했다.[1]

2.1.2. 6.25 미국과 소련

류한수 교수님께서 8월 27일에 대화이벤트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을 보내주셨습니다. 답변을 보내주신 류한수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냉전 시대에 소련이 보는 미군과 나토군은 전쟁광이었습니다. 냉전 시기에 자본주의 진영이 스스로를 자유 진영이라고 일컬었다면, 공산주의 진영은 스스로를 평화 진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자기네가 평화 진영이라면 반대편은 전쟁 진영이었겠지요. 실제로 소련이 외국에 직접 개입해서 전쟁을 한 경우는 아프간 전쟁 밖에 없고요, 미국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그레나다... 최소한 다섯 손가락이 모자르고 열 손가락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전쟁광이었지요. 모든 갈등을 전쟁으로 풀려는 미국의 심성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입니다. 반면에,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전쟁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절대로 전쟁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요. 딱 한 번 오판해서 아프가니스탄에 무력 개입했다가, 체제가 거덜났고요... 웃픈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6.25 전쟁 당시 소련의 개입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스탈린의 최종적인 전쟁 승인[2], 소련의 군사고문단이 6.25 남침 공격의 작전계획을 수립했던 것, 대대적인 군사적 지원, 소련 공군의 비공식적 참전 등 직접 교전 세력이 아니었을 뿐 전쟁을 피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는 충분히 있음에도 소련을 단순히 평화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적어도 6.25 전쟁에 있어서는 정통성이 분명한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해 참전한 것에 가까움에도 이것까지 침략 전쟁처럼 끼워넣었다.

뿐만 아니라 냉전 시절 소련이 타국을 무력 침범한 것이 아프간 전쟁 뿐이라는 것도 명백한 거짓이다. 소련은 이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침공했던 바가 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에 별다른 저항을 못했던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무자헤딘 등이 수년 동안 소련을 상대로 항전하여 결국 패퇴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른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1.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 - 독일의 침공에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을 비판했지만 바로 3일 후 방송에선 러시아의 침공에는 러시아 공포심을 풀어주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하면 안 된다는 유럽의 친러 정치인들도 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 # - 벌거벗은 세계사에선 곤가제 기자 참수 사건과 쿠치마 녹취 테이프 사건, 유셴코 독극물 사건, 부정투표 사건, 오렌지 혁명, 우크라이나 최악의 부정부패 문제, 정치적 탄압을 모두 친서방vs친러시아로 왜곡했으며 심지어 친러적 협상을 한 경쟁자를 불법으로 탄압해서 서방과 러시아에게 ‘차별적 사법 정의(selective justice)’와 ‘정치적 탄압(political persecution)’이라고 비난받아 논란이 된 갈등까지 친서방vs친러시아로 왜곡해서 유로마이단 배경을 왜곡했다. 유로마이단은 당시부터 "They have been fueled by what activists say is widespread government corruption, abuse of power, and the violation of human rights."를 표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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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수 교수의 왜곡은 벌거벗은 세계사/문제점 및 비판 문서에 전공자 논문을 근거로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설민석을 능가하는 역대 방송 최악의 왜곡방송이 되었다.
2.1.3.1. 벌거벗은 세계사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은 동남부지역을 기반으로 당선된 친러시아 성향의 대통령이었거든요. 쿠치마 대통령의 재선이 성공한 이후에 2000년에 들어서는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강한 러시아를 건설하겠다는 푸틴의 목표에 우크라이나의 쿠치마 대통령도 러시아에 손을 잡으면서 두 사람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어나갑니다. 푸틴의 집권이 시작되면서 마침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친서방 세력과 친러시아 세력이 맞부딪히면서 끊임없는 갈등의 장이 시작됐어요.

그 가운데 대통령 선거출마를 위한 두 명의 대통령 선거 후보가 등장을 하는데 바로 친서방 성향의 후보 유셴코와 친러시아 성향의 후보 야누코비치였습니다. 결국 친서방 세력인 유셴코가 당선이 됐죠.

친서방 세력이었던 유셴코는 당선 이후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그 다음에 유럽연합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우크라이나의 정치가 급격하게 친서방 경향으로 기우니깐 대대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어요. 바로 가스관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러시아는 지난날 소련에 속했던 나라에 한해서는 상대적으로 싼 값에 가스를 공급하면서 안정적인 가스관 사용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성향으로 기울어지니깐 러시아가 가스공급을 중단해버린거예요. 결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서 가스공급이 다시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렇게해서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러시아였습니다. 물론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러시아의 경제압박에 우크라이나의 경제가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다음 대선에 승자는 친러시아 세력인 야누코비치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면 친서방 세력은 많이 약해졌나요?)
약해질 거라 생각은 했는데 친서방 세력이 결정적으로 어떤 사건을 맞이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류로 떠오르게 됩니다. 2013년에 EU 가입을 연기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거예요. 야누코비치가 밝힌 이유로는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EU에게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받는 조건으로 강력한 구조조정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경제대책에 제동을 거는 대신에 러시아에서는 150억달러를 조건없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통 크게 하죠. 우크라이나의 이익에 따라서 야누코비치는 EU 가입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연합 가입을 기대했던 이 우크라이나의 국민들과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친서방 성향의 국민들이 이 일로 대규모 시위를 하게 된 거예요. 이게 바로 '유로마이단'이라는 사건이죠.

# 9:50-13:37
# 19:42-23:30
벌거벗은 세계사 44회
무장 시위대가 키이우하고 그 의회를 점거하면서 야누코비치 퇴진을 외쳤죠. 결국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 14:28-14:40
# 24:22-23:34
벌거벗은 세계사 44회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 중 최악의 역사왜곡을 보여준 편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갈등을 일방적으로 친서방, 친유럽연합 vs 친러로 왜곡하는 강의로 구성되었다.
2.1.3.1.1. 쿠치마 정권 문제를 친서방 vs 친러 갈등으로 강의한 왜곡
쿠치마가 논란이 된 이유는 곤가제 기자를 목을 잘라 죽인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었으나 이걸 친서방vs친러로 왜곡한다.
2006년 가을 집권 세력의 비리를 파헤치던 곤가제 기자가 실종된 후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사건으로, 후에 쿠치마 대통령 비서실장 멜니첸코가 유출한 녹음테이프에는 쿠치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곤가제를 처리할 것을 지시하는 음성이 나와 서방에서 큰 파장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쿠치마는 미국의 지지를 잃고 급격히 러시아로 기울었다.
허승철. (2021). 러시아의 근외정책과 정치 지도자 선택 :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비교 연구.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72, 331
쿠치마가 논란이 된 이유는 곤가제 기자를 목을 잘라 죽인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었으나 이걸 친서방vs친러로 왜곡한다.

이게 야누코비치를 대선후보로 내세우는 데까지 영향을 주었다.
2004년 2선 제한에 걸린 쿠치마는 3선 개헌과 내각제로의 개헌 등 집권 연장을 꿈꿨으나 5% 정도에 머물던 지지율로 인해 집권 연장을 포기하고, 대신 후계자 물색에 나섰다. 이때 후계자 물망에 오른 친러-중도 정치인은 세르히 티힙코(Serhii Tihipko)와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ich)였다. 티힙코가 중도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면, 야누코비치는 친러 성향이 강한 동부 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친러 정치인이었다, 국립은행장과 경제장관을 지낸 경제 전문가인 세르히 티힙코는 야당 대표주자인 빅토르 유셴코와 비슷한 경력을 소유하고 대중적 인기도 높은 경쟁력 있는 후보였다. 그러나 집권 2기 동안 동부 지역 올리가르히에 의존하며 국정을 이끌어 온 쿠치마는 결국 동부 지역 클랜(clan)이 지지하는 후보인 야누코비치 도네츠크 주지사를 후계자로 정하고, 2002년 11월 그를 총리로 임명했다. 동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중적 지지가 별로 없고, 중앙 무대 정치 경험도 없는 야누코비치를 후계자로 정한 것은 쿠치마 후계 구도의 패착으로, 결과적으로 2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친서방 노선을 내세우는 소위 “오렌지 혁명 세력”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허승철 2021, 331-332
D’Anieri는 “야누코비치가 쿠치마와 지역당의 횃불을 들도록 결정한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야누코비치는 범죄 전과가 있었고 카리스마도 없었으며, 돈바스 지역 외에서는 인기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결선 투표가 부정선거였다는 것이 드러난 후 실시된 재선거에서 그는 44퍼센트를 득표했다. 이것은 좀 더 경쟁력이 있는 제도권 후보(establishment candidate)가 나섰다면 충분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지적
허승철 2021, 332
2.1.3.1.2. 유셴코 vs 야누코비치를 친서방 vs 친러로 강의한 왜곡
이 부분은 곤가제 살인사건을 강의내용에서 제외한 것만큼이나 심각하다. 이 때 유셴코 독극물 사건과 부정투표 사건이 벌어져서 유명한 '오렌지 혁명'이 발생한다.
대통령 선거를 반년도 채 남기지 않은 2004년 여름 야누코비치의 지지율은 15-20퍼센트에 머문 반면, 유셴코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쿠치마 진영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교체하는 것을 고려하는 대신에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였다. 9월 5일 정보부장 일행과 저녁식사를 한 유셴코 후보는 독극물에 중독되는 사건이 일어났으나 목숨을 구했다.
허승철 2021, 332
야누코비치 지지율이 낮아서 유셴코 독극물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걸 빼버렸다. 그리고 독극물 암살 시도 및 부정선거로 오렌지 혁명이 발생한다.
선거와 집계 조작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 투표자들은 투표가 끝난 저녁 8시부터 시내 중심부로 모여 부정 선거 항의 집회를 시작하여 소위 “오렌지 혁명”이 촉발되었다. 이후 부정 선거 항의 시위 인파가 급격히 늘어나 최대 50만 명까지 마이단 광장과 흐레샤치크 거리를 메웠다. 후에 밝혀진 바로는 중앙선관위 건물 옆에 있는 조랴나라는 극장에 선거조작팀이 본부를 차리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거결과 집계를 컴퓨터로 조작해서 약 280만 표를 야누코비치에게 몰아주어 선거 결과를 뒤집었다.
허승철 2021 332
독극물 사건, 부정선거, 오렌지혁명 전부 중요한 사건인데 강의내용에서 전부 제외하고 친서방 vs 친러 구도에 입각하여 강의를 진행했다. 차라리 내부에서 보혁갈등과 우크라이나 정부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를 집어줬어야 했다.
2.1.3.1.3. 경제적 이유로 인한 친러 야누코비치의 EU 서명 보류에 친서방 국민들에 의해 유로마이단의 과격시위가 발생했다는 왜곡
야누코비치가 어떤 정치인인지 알면 나올 수 없는 왜곡. 위의 오렌지 혁명 이후 쿠치마와 야누코비치 진영이 졸속으로 통과시킨 게 대통령 권한 축소와 내각제 도입이다.
쿠치마 정권과 야누코비치 진영에서는 재선거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내각제 성격이 크게 가미된 졸속 헌법개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두 가지 결정은 이후 유센코 정권의 국정 수행을 방해하고, 우크라이나의 정치발전을 막는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헌법개정안은 졸속이라 문제가 있었는데 개정 당사자인 야누코비치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개정안의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대통령 권한으로 폐지한다. 아래 설명 참고)
유셴코는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쿠치마와 야누코비치를 '용서'해버리는 실책을 범한다.
2005년 초 대통령직에 오른 유셴코는 친서방 외교정책과 개혁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자신의 암살 시도와 부정 선거를 주도한 정치인들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실책을 범했고,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했어야 함에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은 채 국정을 이끌고 나가 야누코비치에게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말았다.
허승철 2021 333
그리고 친서방진영은 분열해서 표와 지역구가 분열된다. 그래서 야누코비치가 내각제 성격이 강화된 체제에서 사회당, 공산당과 연정수립 성공해서 총리로 취임하고 내각을 장악한다.
2006년 3월 23일 실시된 총선에서 야누코비치의 지역당은 전체 450석 중 186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고, 티모셴코가 이끄는 정당이 2위, 유셴코의 집권당은 3위에 머물면서 정치 위기가 심화되었다. 소위 오렌지 혁명 세력 간의 내분으로 사회당이 이탈하면서 야누코비치는 지역당, 사회당, 공산당의 연정 수립을 성공시켜 총리로 취임하고 내각을 장악하게 되었다. 1년 전 대선에서 맞붙은 두 후보가 각각 대통령과 총리를 맡는 2중 권력(dual power)이 형성되어 국정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허승철 2021 333
이 때 티모셴코는 내각을 장악한 친러 성향의 총리인 야누코비치와 협력한다.
대선에서 유센코와 손을 잡았던 티모셴코는 차기 친서방 진영 대통령 후보를 노리고, 유센코의 정책을 견제하고 야누코비치와 협력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허승철 2021 333
나중에 야누코비치가 이걸로 심각한 통수를 친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선 야누코비치가 대선 2차 투표에서 당선됐으나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획득한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 결선 투표 득표율
크라프축 61.6%
쿠치마 52.2%
쿠치마 56.3%
유센코 52.0%
야누코비치 48.9%

허승철. (2014).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정권 붕괴의 국내 정치ㆍ경제 요인 분석.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46, 160
포로셴코는 1차에서 54%라는 역대급 득표율 얻어서 2차 결선제 투표 없이 즉시 당선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26/2014052602609.html

젤렌스키는 2차에서 73%라는 역대급 득표율을 얻었다.
https://www.yna.co.kr/view/MYH20190501003800038

현재까지 2차까지 갔는데 야누코비치처럼 득표율이 적은 대통령은 없다. 당선 후 지지율이 취약했던 야누코비치는 본인들이 쿠치마 말기에 개정했던 개정안을 본인들이 무력화시킨다.
야누코비치는 먼저 헌법재판소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재판관들로 채우고 2004년의 헌법개정안을 무력화시켰다. 2010년 9월 헌법재판소는 오렌지 혁명의 결과 채택된 2004년의 헌법개정안을 무효로 선언하고, 1996년의 헌법을 복원시켰다.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를 절충한 2004년의 헌법개정안에서는 총리는 의회의 다수당이나 연정세력이 선출하고, 외무장관과 국방장관, 국가안보회의장을 제외한 각료도 총리의 제청에 의해 의회에서 인준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 없이 내각을 해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2004년의 헌법개정조항을 무효화함에 따라 대통령은 총리 후보를 직접 지명하여 의회 인준 없이 임명하고, 모든 각료에 대한 임명권도 행사하며, 의회 동의 없이 내각을 해산할 수 있고, 내각의 의결사항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허승철 2014 163

그리고 정적에 대한 정치적 탄압까지 하는데 친러 성향으로 당선됐으면서 경쟁자인 티모셴코가 (친러 총리였던 본인에게 협력하던 시절에) 친러행적 한 것 때문에 탄압한다. 이것때문에 서방과 러시아(푸틴)가 야누코비치의 정치적 탄압을 규탄한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정치적 보복이라는 비판이 국내외 에서 거세게 일었다. 2009년 대선 주자였던 티모셴코가 러시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러시아가 제시한 조건을 크게 거부하지 않고 가스가격 협상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사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일었다. 7년형의 실형을 선고하고, 피선거권을 7년 박탈한 것은 티모셴코가 2015년 대선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이 판결 결과에 대해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의 국가와 유럽 연합, 나토 등의 국제기구, 국제투명성 위원회, 국제사면기구, 프리덤하우스, 국제인권 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 등이 ‘차별적 사법 정의(selective justice)’와 ‘정치적 탄압(political persecution)’이라고 비난했다.
허승철 2014 162
친러 대통령이 정적을 (본인의 총리권력이 강했을 때) 친러라면서 탄압한 사건이라 러시아(푸틴)가 서방과 같이 '정치적 탄압'이라고 규탄했는데, 이걸 친서방 vs 친러라 요약한 것이다. 친러 야누코비치는 티모셴코를 친러적 행보로 탄압했으나 오히려 본인은 서방 상대로 연속으로 약속을 어겨서 서방 지원이 끊킨다. 그래서 오히려 본인이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다가 러시아에 대한 연체금 페널티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
2010년 8월 우크라이나는 IMF와 151억불의 구제 금융을 제공받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IMF가 제시한 이행 조건을 매번 어기면서 두 번에 걸쳐 20억불을 지급 받은 후, 2011년 초부터는 더 이상 재정 지원을 받지 못 했다. 러시아와는 2010년 4월의 ‘하르키프 협정’을 통해 흑해함대 기지 사용 권한을 2042년까지 25년 연장해 주는 조건으로 가스수입가를 30% 삭감 받기로 하였으나, 가스수입가가 국제 유가에 연동하여 결정되게 합의를 하였기 때문에, 2011년부터는 천입방미터 당 가스수입가가 410불을 넘어섰다. IMF의 재정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매달 7-8억불에 달하는 가스수입대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연체금에 대한 페날티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유권자들은 러시아로부터의 경제적 혜택을 기대하며 친러정권을 출발시켰지만, 우크라이나 통과 가스관의 지배 지분 확보를 노리고 있었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경제를 회생시키기보다는 가스 대금 누적을 유도하여 가스관 확보를 노리는 정책을 썼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부터 큰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티모셴코 투옥 등의 강압 정책으로 서방으로부터 의 재정 지원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허승철 2014 165-166
티모셴코를 '친러'라면서 정치적 탄압하다가 러시아에게도 비난받고, 본인은 서구와 약속을 어겨서 러시아에만 의존하다 연체금이 페널티가 늘어난다.

그리고 야누코비치 정부의 부패는 역대 최악이었다.
2012년 국제투명성위원회는 우크라이나의 투명성을 176개국 중 144위로 발표했다. 2007년 179개국 중 118위에 비해 투명성 순위가 크게 떨어진 것은 부패가 빠르게 확산된 것을 보여준다. 2012년 국제투자자문회사 어니스트 앤 영(Ernest & Young)은 우크라이나를 콜럼비아, 브라질과 함께 세계 3대 부패국으로 꼽기도 하였다.
허승철 2014 166

위에 인용된 건 국가청렴도이다.
2012년 야누코비치 정부 우크라이나는 점수 26점, 순위 144
2018년 포로셴코 정부 우크라이나는 점수 32점 순위 120
https://www.transparency.org/en/cpi/2018

포로셴코가 야누코비치 이후 역대급 부패했던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전쟁하는 와중에 그나마 회복시킨 것이다.
포로셴코는 저것조차 푸틴과 러시아의 침공도중, 그것도 전쟁수행의 일종으로 부패공작을 수행하는 와중에 방어한 것이다.
지난 5월, 미국 국무장관 블링켄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뿌리 깊게 구조화 되어 있는 부패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부패문제는 내부적으로 개혁과 부패청산에 반대하는 과두 정치세력과 이를 활용하여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식하는 도구로 삼는 러시아의 작전이 엉켜 있다고 분석했다. 2017년 국제투명성기구(TI)의 보고서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부패를 활용하고 무기화하는 방식을 설명한 바 있다. 젤렌스키 정부에서도 부패는 지속되고 있다는 다양한 보도와 보고서들이 제출되고 있다. 현재 젤렌스키의 개혁과 반부패 노력은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법제도적 성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준모. (2021). 코로나19 시대 글로벌 격변과 우크라이나의 반부패 노력 및 개혁과제. 동유럽발칸연구, 45(4), 104
다음은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국가청렴도(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이다.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유로마이단 발생 전)2012년
Score
26
Rank
144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2018
Score
32
Rank
120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2021
Score
32
Rank
122
러시아
푸틴
2012
2018
2021
Score
28
28
29
Rank
133
138
136
https://www.transparency.org/en/cpi/2018
포로셴코는 야누코비치에 의해 부패한 우크라이나의 국가청렴도를 어느정도 회복한데 비해 푸틴의 러시아는 오히려 청렴도가 우크라이나에게 역전됐다.
야누코비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4년 4월 30일 우크라이나 대검찰청이 밝힌 야누코비치의 국고 횡령액은 320억 달러에 이른다. 대검찰청은 야누코비치가 이 액수의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반출하여 동부 지역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 1년 예산이 310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금액을 야누코비치가 국고에서 빼돌렸는지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경제에 정통한 학자인 오슬룬트는 야누코비치가 국고에 직간 접으로 손을 대는 방법으로 매년 8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를 빼돌렸다고 추정했다.그에 의하면 세수에 직접 손을 대거나, 세무 당국에 들어온 뇌물을 상납 받는 방식과 부가가치세 환급액을 횡령하는 수법으로 매년 3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를 축적했고, 2010년 유로컵을 비롯한 각종 정부발주 공사를 수의계약하면서 특혜를 준 기업으로부터 수익금의 절반을 걷어들이는 수법으로 매년 최소한 20억불을 벌어들였다. 또한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180억 입방 미터의 천연가스를 천입방 미터 당 53달러의 싼 값에 구매하여 이를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가스 가격인 410 달러에 판매함으로써 매년 최소 30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허승철 2014 167-168
러시아와 전쟁하며 러시아에 의해 부패공작을 당한 2018년 포로셴코 정부와 2012년 야누코비치 정부 시기 를 비교해도 야누코비치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부패 문제를 생략한다.

그리고 야누코비치가 유럽연합과의 서명 직전에 그만둔 게 친서방 국민 자극해서 유로마이단 발생했다는 부분 이게 정말 왜곡의 절정이다.
먼저 야누코비치가 EU 협력체제의 서명을 마지막 순간에 포기한 것은 나름대로 고심한 정책적 결정으로 보이지만,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이라면 2013년 말 야누코비치 정123권이 EU 협력체제에 서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여러 근거가 있었다. 물론 러시아가 가스공급가를 30% 할123인해 주고, 150억불의 신용 공여를 약속한 소위 ‘당근’ 정책으로 야누코비치 정123권의 EU 접근 정책을 U-turn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는 EU 협력협정 서명의 발목을 잡은 결정적 문제는 티모센코의 석방 또는 신병치료를 목적으로 한 독일 이송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EU 협력협정 서명의 전제조건으 로 티모센코 문제 해결을 야누코비치에게 여러 번 요구한 바 있다.
허승철 2014 172
EU 서명 조건인 티모셴코 석방을 생략한다. 야누코비치가 티모셴코를 '친러'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탄압했다가 서방과 러시아 양쪽에게 규탄받고 EU가 서명의 전제 조건을 내 건건데 강사가 본인 강의에 완전 상반되는 사실 숨기려고 제외시켰다. 방송의 왜곡이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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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가독성으로 악명 높은 번역

독자들에게 끔찍한 번역 실력으로 악명이 높은데 비슷한 경력의 김남섭 교수와의 평가가 너무 차이난다. 이 때문에 독자들에게 번역 실력이 좋지 않다고 평가를 받았다.

류한수가 번역한 2020년 출간의 이안 커쇼의 유럽 1914-1949 죽다 겨우 살아나다도 평가가 끔찍하다.
번역이 정말 안 좋습니다. 비문 투성이에 영어투 번역이라 잘 안 읽힙니다.....설마 대학원생 시켜서 한 건 아니겠죠?
2021/07/06 16:26
https://blog.aladin.co.kr/m/706843133/12750963
읽기가 힘들다. 아래는 한 가지 예시.
"그리고 그것은(인종적 민족주의) 뒤섞인 인종 공동체들이 여러 세기 동안 서로 나란히 살았지만 대체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생겨난 새로운 긴장과 갈등과 혐오가 이제 다툼의 대상이 된 접경지대와 분리된 영토를 둘러싼 격렬한 분쟁에서 표출되고 유독한 혐오가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즘의 승리라는 새 성분 때문에 엄청나게 증가한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바로 그 지역에서 가장 치명적일 터였다."(P.168~169)
그야말로 직독직해의 현현인가...
도처에 지뢰밭.
2021/05/09 12:51
2021-07-06 16:28
저도 읽다가 엄청 짜증나네요.....번역이 정말 안 좋습니다. 비문도 많고요
https://blog.aladin.co.kr/m/kofiche/12603481/comment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혁명의 시간 러시아 혁명 120일 결단의 순간들의 번역때문에 절망한 독자
번역 좀 다시 다듬어 주세요.제발!!!!!!!!!!!!!
2018/10/21 23:50
https://blog.aladin.co.kr/m/771764148/10415552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번역평
좋은 책인데 번역 때문에 가독성이 너무 떨어진다.
2020/03/28 16:49
https://blog.aladin.co.kr/m/789973127/11607913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
원 저자 스탈인지 번역이 후진지는 모르겠는데, 진짜 읽기 힘들다. 물론 내용은 무지하게 충실하지만
2013/07/25 15:37
https://blog.aladin.co.kr/m/perblu/6488151
내용의 방대함은 대단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나, 번역의 난해함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함정. 내용의 방대함 생각해서 별 2개 준다. 사실은 별 하나도 아까운 책...
2014/08/06 17:52
https://blog.aladin.co.kr/m/738319198/7098258

번역이 수정되지 않은 재출간판에 절말한 독자
번역이나 다시해서 내지...ㅜㅜ
2016/04/21 08:23
https://blog.aladin.co.kr/m/796282164/8443207

이안 커쇼 유럽사의 속편 번역을 김남섭 교수가 맡은 후 평
전작보다 좀 더 쉽게 읽혀지는 문장도 도움이 되었다
http://m.blog.yes24.com/nouveau8/post/15174993


[1] 물론 링크에서 보듯 핀란드화 정책이 어느 정도 근거도 있고 성과를 낸 정책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외의 방법을 아예 안 찾아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2] 물론 당시 스탈린은 48회에 걸쳐서 김일성의 침략 승인을 거절하긴 했으나, 이는 미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였지 스탈린이 전쟁이란 수단 자체를 반대해서 그런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