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웰린 칠슨 Llewellyn Chilson | |
본명 | 리웰린 모리스 칠슨 Llewellyn Morris Chilson |
출생 | 1920년 4월 1일 |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 |
사망 | 1981년 10월 2일 (향년 61세) |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상사 |
복무 기간 | 1942~1946 1947~1964 |
학력 | 사우스 고등학교중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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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1차대전 참전용사이자 버스기사로 일하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애크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어머니가 집앞에서 교통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세부터 트럭기사일을 시작했으며 1942년 미국이 2차대전에 개입하자 육군에 입대했다.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112보병연대에 배치되었으나 제45보병사단 179보병연대 대전차중대에 배치되었다.1943년 알제리 오랑에 상륙했고 얼마 안 가 시칠리아 전역에 참가했다. 공을 세워 전투보병휘장, 동성훈장을 수여받았고 안치오 상륙작전당시 유산탄에 부상입어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아프릴라 인근에서 도합 40명의 포로를 잡으며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용기병 작전당시에도 25명을 생포했으며 두번째 동성,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바스린인근에서 소대장 윌리엄 M. 오웬스[1]와 함께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 부사관으로 진급했다. 독일 본토에서 200명이 넘는 독일군을 생포하며 수훈십자장, 훈공장을 수여받았으며 뉘른베르크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르다가 부상입으며 두번째 수훈십자장,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이후 영국의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1946년 전역했으나 1년만에 복귀했고 주방위군을 훈련시키는 교관으로 일하다가 1964년 퇴역했다. 퇴역후 워싱턴주 타코마에 거주하며 택시기사로 일하다가 1981년 플로리다주 탬파로 여행하던 중 사망했다.
[1] 명예 훈장 수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