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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12:45:36

마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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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공화국 타밀나두주의 도시
마두라이
TA : மதுரை
HI : मदुरई
EN : Madurai
국가
[[인도|]][[틀:국기|]][[틀:국기|]]
상위 행정구역 마두라이 지구
면적 147.97km²
인구 1,017,865 명[2011]
광역권 인구 1,465,625 명[2011]
공용어 타밀어, 영어
종교 힌두교 85.8%
이슬람교 8.5%
기독교 5.5%
시간대 UTC +5:30 (IST)
지역번호 0452
우편번호 625000 ~ 625999
차량번호 TN-58,59,64
웹사이트 마두라이 지구정부 홈페이지

파일:India_-_Madurai_temple_-_0781.jpg

1. 개요2. 역사3. 관광

[clearfix]

1. 개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접한 카르나타카주 주도 벵갈루루에서 남쪽으로 250km 떨어져 있는데, 양 도시를 잇는 도로는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아 주로 철도 교통이 선호된다. 인구는 약 150만 명인데, 인도에서 25번째로 큰 도시이자 첸나이, 코임바토르 다음가는, 타밀나두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마두라이는 바이가이강을 끼고 있는데, 강 남쪽에 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비자야나가르 제국 시절에 지어진 거대한 미나크시 사원이 랜드마크인데, 높이가 무려 50미터로 전근대에 지어진 사원 중에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또한, 타밀 달력으로 10번째 달의 보름에 열리는 마두라이 테포트사밤은 시바 신의 화신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행사인데, 인도 전역의 수많은 힌두교 축제 중에 상당히 유명한 편이다. 남인도 힌두교 중심 도시답게 거주민의 86%가 힌두교 신자이나, 그외에 9%의 이슬람과 5%의 기독교 신자도 있다.

2. 역사

남인도(타밀)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3]

마두라이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고대 판디아 왕국의 수도로 번영하였고, 상감 시대 판디아의 지원으로 상감 문학이 저술되고 공유되었던 대표적 중심지였다. 타밀 전통에 따르면 전설적인 제3차 상감은 마두라이에서 열렸다고 한다. 판디아는 헬레니즘 국가 및 로마와 교역하였고 따라서 마두라이는 역사가 스트라보의 기록에도 나온다. 4세기 들어 칼라브라 왕조에 의해 점령되었지만 590년에 중기 판디아 왕국으로 회복되었으며, 그 수도가 되었다. 마두라이는 9세기에 촐라 왕조에 점령되었고 13세기에 재차 판디아 왕국의 수도로 부활하였지만 1323년에 이슬람 국가인 델리 술탄국 (투글루크 왕조)에게 점령되었다. 이때 도시의 많은 힌두교 사원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팽창으로 인해 델리술탄국은 분열되었고 남인도에는 마두라이를 수도로 한 마두라이 술탄국이 성립되었다.

마두라이 술탄국은 북쪽의 호이살라 왕조는 격파하였으나 서쪽의 비자야나가르 왕조에게는 시달리다가 결국 1378년에 멸망하였다. 비자야나가르는 도시를 접수하자 마자 파괴된 힌두교 사원들을 복구하였고, 17세기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15세기 내내 번영하던 비자야나가르는 16세기 중반에 흔들렸고, 1559년에 마두라이 나야크가 성립되며 마두라이는 재차 독립하였다. 나야크는 17세기 말엽, 무굴 제국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 1736년부터는 카르나티크(카르나타카의 이슬람식 명칭)의 나와브들에게 돌아가며 점령되는 혼란을 겪었다. 그 중에서 최종 승자는 마이소르 왕국이었는데, 그마저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1801년에 마두라이는 영국 동인도 회사령이 되었다. 20세기 전반에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하며 여기서 머물기도 하였다.

3. 관광

파일:An_aerial_view_of_Madurai_city_from_atop_of_Meenakshi_Amman_temple.jpg


[2011] [2011] [3] 타밀 지역의 다른 역사 도시로는 탄자우르, 칸치푸람, 쿰바코남 등이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대도시로 번영하는 곳은 마두라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