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를리엔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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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19대 |
유벤투스 FC 역대 주장 | ||||
루이스 몬티 (1935~1938) | → | 마리오 바를리엔 (1938~1942) | → | 피에트로 라바 (1942~1949) |
마리오 바를리엔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이탈리아의 前 축구감독 | ||
이름 | 마리오 바를리엔 Mario Varglien | |
출생 | 1905년 12월 2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피우메[1] | |
사망 | 1978년 8월 11일 (향년 72세) 이탈리아 피렌체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6cm | 체중 77kg | |
직업 | 축구선수(하프백 / 은퇴) 축구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올림피아 피우메 (1920~1926) 피우마니아[2] (1926~1927) 아우로라 프로 파트리아 1919 (1927~1928) 유벤투스 FC (1928~1942) SSD 산레메세 칼초 (1942~1943) US 트리에스티나 칼초 (1943~1944) |
감독 | SSD 산레메세 칼초 (1942~1943 / 선수 겸 감독) 칼초 파도바 (1946) US 트리에스티나 칼초 (1946~1947) 코모 1907 (1948~1951) 아우로라 프로 파트리아 1919 (1951~1952) AS 로마 (1953~1954) | |
국가대표 | 1경기 (이탈리아 /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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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52년부터 1953년까지 AS 로마 감독을 맡았다.2. 특징
- 마리오 바를리엔에게도 유벤투스에서 같이 오래 뛴 동생 조반니가 있었다. 그래서 마리오는 통상 바를리엔 Ⅰ, 조반니는 바를리엔 Ⅱ로 불렸다.
3. 생애[3]
3.1. 클럽
바를리엔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운동에서 재능을 보였다. 아티스틱 스위밍, 클래식 댄스, 단거리 달리기, 세단뛰기까지 영역이 미쳤지만 결국 축구를 택했고, 그의 고향인 피우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올림피아 피우메에서 6시즌을 보내면서 팀이 합병되는 등 여러 부침이 있었고 그 무렵의 바를리엔은 하프백과 인사이드 포워드를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었다. 1927-28 시즌에는 프로 파르티아에서, 1928년에는 유벤투스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바를리엔은 14년간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면서 세리에 A 5연패와 2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의 영예를 안았고, 비안코네리 유니폼과 함께 353게임을 뛰었다.[4] 그리고 1938-39 시즌부터는 루이스 몬티의 뒤를 이어받아 4시즌 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42년에는 유벤투스 생활을 정리하고 산레메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1년간 뛰기도 하였고, 1944년에 트리에스티나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3.2. 국가대표팀
1934년 월드컵 당시 비토리오 포초의 부름을 받은 22명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우승의 영광을 맛보기는 했지만 5경기의 스타팅 라인업에서 바를리엔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고, 1935년 2월 17일에 프랑스를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 A매치를 뛰었다. 이탈리아는 2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3.3. 감독
트리에스티나, 코모, 프로 파트리아, AS 로마 등에서 감독 생활을 하였다. 코모에서 세리에 B 우승 경력이 있다.4.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강하고 빠른 스피드를 갖춘 하프백이었다고 전해진다.5. 수상
5.1. 대회 기록
- 유벤투스 FC (1928~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