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마셜의 수상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97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 ||||
톰 시버 (뉴욕 메츠) | → | 마이크 마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 톰 시버 (뉴욕 메츠) |
마이크 그랜트 마셜 Mike Grant Marshall | |
출생 | 1943년 1월 15일 |
미시간 주 애드리언시 | |
사망 | 2021년 6월 1일 (향년 78세) |
플로리다 주 제피어힐스 | |
국적 | 미국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6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PHI) |
소속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67) 시애틀 파일러츠 (1969) 휴스턴 애스트로스 (1970) 몬트리올 엑스포스 (1970~197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4~197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76~1977) 텍사스 레인저스 (1977) 미네소타 트윈스 (1978~1980) 뉴욕 메츠 (1981) |
[clearfix]
1. 개요
메이저리그의 투수. 상대적으로 인지도는 떨어지나 역대 최고의 스크류볼러이자 고무팔로서 중무리 투수 속성으로 유명했다.대표적인 예로 1974년 사이영 상 수상 시즌에 선발출장 한번 없는 106경기 208.1이닝이라는 엽기적인 스탯을 찍었다.
부상 보증수표라고 알려진 스크류볼을 밥먹듯이 던진 선수지만 부상으로 쉰 적은 거의 없으며,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노년까지 공을 던졌다.
2. 커리어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받지 못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아마추어 FA로 입단했다. 7년만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37경기 59이닝 평균자책 1.98로 괜찮은 데뷔시즌 기록을 남기지만 그 뒤 시애틀 파일러츠,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전전하며 메이저리그에 자리잡지 못했다. 당시는 선발투수에게 게임을 길게 맡기던 시절이라서 불펜투수의 가치가 지금처럼 높지 못했던 시절이라 그랬던 듯.시애틀 시절에는 선발로 활동했지만 87.2이닝 10패 ERA 5.13으로 매우 부진했었다. 그러다가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 된 다음 시즌인 1971년, 66경기 111.1이닝 평균자책 4.28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 후..
1972년에 라지에타가 터져버렸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다섯시즌 동안 선발로 한 경기도 나오지 않고 374경기에 출전, 302경기를 마무리하고 71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2.73을 기록한다. 평균 투구이닝은 142이닝, 평균 출장경기는 75경기. 다시 말하지만 이 선수는 불펜투수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5시즌 연속 100이닝 이상을 투구했으며, 1976년엔 99.1이닝으로 아쉽게 100이닝 돌파에 실패.
특히나 1974년에는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까지 수상했다. 당시 기록은 평균자책 2.42 208.1이닝 15승 12패 21세이브 143탈삼진. 평균자책 순위는 4위. 해당 시즌에는 20승 투수가 두 명 있었고 그 중 한 명인 필 니크로는 39번 등판해 18번 완투 7완봉이라는 괴력투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때문에 훌륭한 성적이지만 사이 영 상을 받을 성적이냐고 물으면 물음표가 달리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그가 사이영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구원투수로만 나와서 저런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974년 당시 그는 106번 등판해 83번 경기를 마무리했으며, 선발로 등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해는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 던지기도 했다. NLCS에서 2게임 3이닝 무실점, 월드시리즈에서 1패를 기록하긴 했으나 5게임 9이닝 1실점 기록.
1977년에 35.2이닝 투구에 그치면서 선수생활에 위기가 닥치기도 했으나 1978년 부활했다. 김형준 기자는 한 포스팅에서 마이크 마셜이 5년간 던지고 결국 고장났다고 했는데, 고장이 났지만 한 시즌만에 복귀했다. 1978년 54경기 99.0이닝 10승 12패 21세이브 평균자책 2.45, 1979년 90경기 142.2이닝 10승 15패 32세이브.
요즘 불펜투수들은 꿈도 못 꿀 정도의 출장경기수와 투구이닝이다. 요즘 야구에선 불펜투수가 80이닝만 넘겨도 혹사, 혹은 고무팔이라고 불리는 세상. 게다가 스팟 스타터도 아닌 전업불펜투수가 간간히 2이닝 이상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평균 2이닝 이상을 매시즌 소화해준다는 건 요즘 야구팬들은 상상도 못할 모습일 듯.
1980년~1981년에 각각 30이닝 가량을 투구한 뒤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총 14시즌동안 기록은 출장경기 723경기, 투구이닝 1386.2이닝, 경기 마무리 549경기, 97승 112패 188세이브 평균자책 3.14.
3. 은퇴 이후
메이저리그를 떠난 뒤에는 학계와 야구계를 병행하며 활동했다. 1960년부터 1965년까지 미시건 주립대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1966년~1967년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1970년~1978년 동안 야구와 학업을 병행하며 운동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1] 은퇴 뒤에는 피칭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며, Western Texas A&M University에서 Associate Professor로도 활동했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을 최초로 창시한 사람도 이 양반. 다만 설명이 너무 현학적이라 아직까지는 실용성을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위에 링크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글러브 랜딩 각도가 어쩌니 하는 장황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비교적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스크류볼을 던지는 장수한 고무팔 불펜투수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 같은 유니크한 투수.
마셜 이후 스크류볼러의 계보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에 의해 이어지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부상 위험으로 거의 계보가 끊어지기 직전에 몰렸다. 마이너 리그에서 스크류볼을 구사하던 선수들도 빅 리그 콜업 이후에는 스크류볼 구사를 자제하는 추세.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아예 구사자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몰렸다가, 마셜이 직접 스크류볼을 전수한 친척이 2021년 메이저 데뷔에 성공하며 어찌어찌 완전 멸종은 하지 않고 계승되는 중이다.
이후에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2021년 6월 1일에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망 직전 그는 자택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가족들은 사인을 밝히길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4.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박사학위 취득 논문 주제가 "투수는 매일 공을 던질 수 있다."였다.~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 한계를 돌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