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의 축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마이클 에메날로 Michael Emenalo | |
출생 | 1965년 7월 14일 나이지리아 아비아 주 아바 | |
국적 | [[나이지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5cm | |
직업 | 축구선수 (레프트백 / 은퇴) 축구경영인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에누구 레인저스 (1985) 보스턴 대학교 (1985~1989) RWD 몰렌베이크 (1989~1993) SV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05 (1993~1994) 노츠 카운티 FC (1994~1995) 산호세 크래쉬 (1996~1997) UE 예이다 (1997~1998) 마카비 텔아비브 FC (1998~2000) |
코치 | 첼시 FC (2007~2008 / 코치 ) 첼시 FC (2010~2011 / 수석 코치 ) | |
스태프 | 투손 사커 아카데미 (2006~2007 / 선수 육성 이사 ) 첼시 FC (2008~2010 / 수석 스카우터 ) 첼시 FC (2011~2017 / 기술 이사 ) AS 모나코 FC (2017~2019 / 기술 이사 )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2023~ / 총괄 디렉터) | |
국가대표 | 14경기 (나이지리아 / 1985~1995) |
[clearfix]
1. 개요
나이지리아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경영인.첼시 FC와 AS 모나코에서 기술이사를 맡으며 선수 영입을 담당했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나이지리아의 프로 팀 에누구 레인저스에서 1985시즌 데뷔를 했으나 곧장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 보스턴 대학교에 입학해 1988년까지 학생 선수로써 리그를 소화했고, 1989년 그는 나이지리아가 아닌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 리그에서 본격적인 프로 커리어를 쌓았다.1989년 RWD 몰렌베이크에 입단해 벨기에 리그에 진출한 그는 4시즌 동안 로테이션급 수비수로 뛰면서 47경기에 나와 3골을 기록했다. 이후 1994년 1월 당시 독일 3부리그 팀이었던 아인트라흐트 트리어에서 반 시즌 동안 11경기, 1994년 7월 잉글랜드 당시 2부리그 팀이던 노츠 카운티 FC에서 1시즌 반을 뛰며 후보 선수의 위치에서 7경기를 소화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는 이후 친숙한 땅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1996년 출범한 MLS의 원년 선수가 되었다. 산호세 클래시 팀에 지정 선수로 영입된 그는 2시즌 동안 주전 수비수로 뛰며 56경기 1골을 기록하는 등 프로 선수로써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에서 폼을 끌어 올린 그는 다시 유럽 도전을 이어나갔고 스페인 2부리그 UE 예이다와 이스라엘 프리미어리그 팀 마카비 텔아비브 FC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2000년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유럽에서의 부침을 겪었지만 국가대표로써 나름 의미있는 경력을 쌓았다.1985년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될 만큼 유망주였으나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국가대표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벨기에에서 꽤나 활약한 뒤 나이지리아 대표팀에 다시 선발될 수 있었고, 나이지리아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인 1994 FIFA 월드컵 미국 대회 최종명단에 선발되어 월드컵에 출전했다. 에메날로는 조별리그 첫 경기를 제외하고 16강까지 3경기에 출전하며 제몫을 했다. 대회 이후 1995년 열린 1995 킹 파드컵 본선 무대까지 소화하며 그는 A매치 14경기에 출전했다.
3. 은퇴 이후 경력
3.1. 첼시 FC
사실 그를 유명하게 한건 선수 경력이 아닌 축구 행정가로의 경력일 것이다. 특히 첼시에서 꽤 오랜기간 선수 영입을 담당하면서 국내 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2006년 미국 투싼에서 유소년 아카데미를 하며 지도자로써 첫 발을 내딛은 에메날로는 이후 2007년 이스라엘에서 인연이 닿은 아브람 그랜트 감독의 부름을 받아 첼시 FC의 코칭스태프로 들어가게 된다. 2010년 레이 윌킨스가 구단을 떠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아 구단 수석 스카우터가 되었고, 2011년 7월에는 프랑크 아르네센의 후임으로 구단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승진하며 영입 전권은 물론 유소년, 위민스 팀, 임대선수 관리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러 성공적인 영입을 성사시키며 구단의 기대에 부응한다.[1]
2010년대 초반 구단의 에이스였던 후안 마타를 데려온 데 이어 티보 쿠르투아, 케빈 더브라위너, 모하메드 살라, 에당 아자르 등을 데려오는 역할을 피에트 데 비세르와 함께 수행했는데, 이 중 마타와 아자르는 구단의 핵심 선수가 되었으며 쿠르투아 또한 레알 마드리드 이적 과정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첼시에 있는 동안 리그 넘버원 키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첼시에서는 실패했던 더브라위너와 살라 또한 다른 구단으로 가서는 월드 클래스급 선수로 성장했을 정도.[2]
특히 현재 첼시 유망주 정책을 상징하는 입도 선매 후 무한 임대 정책을 정비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망주를 사들이는데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유망주 영입에 돈을 많이 써 정작 1군 선수들을 살 돈이 없다는 1군 감독들과의 의견 충돌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제 무리뉴와의 언쟁이며 안토니오 콘테 감독과도 이 부분에서 마찰을 겪은 바 있다.
단순히 유망주들을 수집한 것 뿐만 아니라 첼시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있는 동안 유소년 아카데미에도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유명하며 구단에서 거의 관리를 안하고 있던 여성팀인 첼시 FC 위민을 적극 관리해 잉글랜드와 유럽 여자 축구의 강자로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지소연을 영입해온 것은 남자 팀에 에당 아자르를 데려온 것과 비교될 만큼 상징적인 영입이 되었다.
2017년 AS 모나코의 제의를 받고 첼시 디렉터 직에서 전격 사임해 11년간의 동행을 마무리했다.[3]
3.2. AS 모나코
2017년 11월, 전격적으로 프랑스 리그 앙의 AS 모나코 테크니컬 디렉터 직을 맡았다. 당시 모나코는 전 시즌인 2016-17 시즌 킬리안 음바페, 베르나르두 실바, 뱅자맹 멘디, 토마 르마, 파비뉴 등 리그 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 멤버들이 모두 타 클럽으로 이적하면서 선수단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에메날로를 적임자로 데려온 것이다. 그는 2018-19 시즌부터 제대로 선수단 개편을 단행하게 된다.하지만 선수단 개편 후 팀 성적이 신통치 않다. 이 때문에 레오나르두 자르딤 감독이 물러났고, 구단 출신의 초보 감독 티에리 앙리가 신임 감독으로 들어오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그가 주도한 영입은 대체로 모두 실패로 끝났고 앙리 감독 또한 별다른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해 팀은 강등권까지 밀려났고, 에메날로 또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구단은 경질했던 레오나르두 자르딤을 다시 데려오고 에메날로를 문책성 경질시키며[4] 그의 모나코 커리어도 이렇게 끝났다. 그나마 그가 모나코로 데려온 알렉산드르 골로빈 정도만 지금까지 잘 활약하고 있다.
3.3.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그래도 그가 첼시에서 보여준 성과가 있어서 이후에도 여러 팀들이 디렉터로 영입하기 위해 협상를 했었다. AS 로마,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이 그와 접촉했으나 결정적으로 성사되지는 않았다.그러던 중 2023년 전 세계에서 축구 스타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에서 그를 리그 총괄 디렉터로 영입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주도 하에 사우디 리그는 국부펀드인 PIF의 자금으로 현재 자국의 축구 구단들에게도 대규모의 투자금을 지원해 전 유럽에서 선수 영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데, 그 과정의 일환으로 PACE (Player Aquisition Center of Excellence)[5]를 출범했고 이 PACE의 수장을 에메날로가 맡게 된 것이다.
그는 PACE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사우디 구단들에게 우수 선수 영입 및 관리를 지원하게 되고 선수 영입, 이적 작업에 대한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카림 벤제마, 은골로 캉테 등 전성기를 살짝 넘긴 30대 나이의 선수들 뿐만 아니라 후벵 네베스,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등 한창 유럽에서 각 팀의 핵심 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들까지 사우디 리그로 데려오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1] 다만 훗날에는 이렇게 디렉터 한 명에게 이렇게 전권을 몰아주고 구단을 운영하는 방식이 상당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여타 구단들의 경우 디렉터 한 명에게 이렇게 권력을 지나치게 몰아주지 않을 뿐더러 이적시장조차도 모든 이사회 인원과 감독까지 참여하고, 최종 결정 권한을 감독에게 주는 형식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일처리를 하기 때문. 이렇게 디렉터 한 명에게 권력이 몰리다 보니 이 당시의 첼시는 감독에게 힘이 실리지 못하는 문제가 일어났고, 지속적으로 이사회와 감독이 충돌을 빚게 된다. 실제로 로만 말엽의 첼시의 문제점으로 상당히 많이 지적된 부분이 바로 디렉터 한 명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몰려있었던 것이기도 했다.[2] 다만 이 선수들을 실질적으로 스카우팅하고 영입을 주도한 것은 피에트 데 비세르였다. 이 중 더브라위너의 경우 첼시를 그렇게 떠나게 된 것이 비세르가 첼시의 일선에서 물러나고 은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로 그 파급력이 상당했다.[3] 다만 실제 사임 이유는 안토니오 콘테와의 정치 싸움에서 밀려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당시의 이사회는 마리나와 에메날로, 콘테가 서로 수시로 의견이 충돌할 정도로 굉장히 위태위태했기 때문. 나중에 2023년에서야 에메날로는 첼시에 있던 어느 감독이 아카데미는 필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발언한 뒤에 우리 유스를 없애버리려고 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정황상 이는 안토니오 콘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4] 당시 자르딤은 재부임 조건으로 에메날로를 내보낼 것을 요청했으며, 에메날로도 이 당시에 구단 내에서 전권을 모두 다 받아서 독재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구단과 사이가 나빠진 상태였다고 한다.[5] 한국어로 의역하면 우수 선수영입 센터쯤 된다. 대놓고 축구 스타들의 영입을 관장하는 기관이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