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The King Of Pop)[1]
문화계의 인종 장벽을 무너뜨리고 대중음악에 큰 혁명을 일으킨 영원한 슈퍼스타이자 위대한 신화를 쓴 전설
마이클 잭슨은 1963년 5세부터 아버지의 고된 교육을 견뎌내며 가수 생활을 시작해 1970년대 잭슨 파이브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이 밴드의 메인 보컬에서 팝의 황제(King of Pop)로 등극했다. 1991년 발매한 'Dangerous' 앨범의 성공과 슈퍼볼에서 새로운 퍼포먼스 개념을 정립하며 1980년대 못지 않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팝의 황제로서 명성을 더 높였지만 '커리어' 항목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여러 풍파를 거치며 건강 상태가 악화됐고 2009년 마이클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의 무분별한 프로포폴 사용으로 5월달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 과실치사로 사망했다. 머레이는 체포됐고 2급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갔다.
마이클 잭슨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언론에게 완전히 먹잇감이 돼 버렸고 실제로 그를 미친 사람(Wacko Jacko)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퀸시 존스는 2001년 자신의 자서전에서 비평가들이 마이클을 음악사에서 지우려는 것 같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이 잊혀지지 않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음악과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는 일개 1980~90년대의 오락거리가 아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대에게 전승되는 문화의 정수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상상력은 백반증에 의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