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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06-11 19:40:56

마이클 잭슨/작사/작곡/프로듀싱/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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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와 비디오 같은 비주얼적인 측면 때문에 종종 잭슨은 보컬리스트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엄청난 능력을 간과당한다.
ㅡ조셉 보겔 음악평론가/ 저서 'Man In The Music'
마이클은 자서전 문워커에서 사람들이 나를 댄스 가수로만 알고 나의 작곡 능력을 몰라본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사람들이 "이 곡 누가 만들었어?"라고 물을 때마다 슬프다고, 편견과 달리 마이클은 자신의 빌보드 1위 13곡 중 8곡은 단독, 1곡은 공동으로 작곡했고 2002년에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어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대표적인 단독 작사/작곡 곡으로는 Billie Jean, Beat It, Smooth Criminal, Heal The World 등이 있고 공동 작사/작곡으로는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한 We Are The World, 폴 매카트니와 함께한 Say Say Say 등이 있다. 현재 미국저작권협회 BMI에 등록돼 있는 잭슨의 단독/공동 작곡 곡들은 총 200곡이 넘는다.

마이클이 작곡을 하는 방식은 떠오른 선율들을 비트박스로 표현하여 테이프로 녹음한 뒤 이를 다른 뮤지션을 시켜 악보로 옮겨 적게 했다고 한다. 사실상 작곡과 동시에 편곡도 어느정도 체계가 잡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입으로 음음거리면서 베이스 라인을 녹음하고, 그 위에 비트를 빌드업시키고 멜로디를 얹는 방식으로 데모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디가 없던 시절 입으로 프로그래밍을 한셈. 이런 방식은 대중음악 업계에서도 매우 독특하다고 소문이 나있는데 보통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악기를 이용하며 작곡을 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작곡을 공부했다며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로 차이코프스키를 언급했고 그의 호두까기 인형 앨범에서 큰 영감을 받았는 데 대부분의 팝 앨범들이 몇몇 곡만 좋지, 나머지는 Side-B면에 넣는 형편없는 곡들로 채워 넣었다며 자신은 호두까기 앨범 처럼 모든 곡들이 히트할 가치가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 한다며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최초의 곡은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였다고 말했다.

마이클은 기타 연습을 위해 만든 손가락 연습곡을 바탕으로도 새로운 곡을 만들어 냈고, 최고의 작곡 훈련을 받은 뮤지션들도 마이클을 보고 종종 놀랐다고 한다. 드림윅스 레코드사의 존 맥클레인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작곡가 중 한명으로 마이클을 뽑았다. Invincible 앨범 작업을 함께한 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도 마이클은 음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2015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100인에 마이클이 조지 해리슨, 엘튼 존, 빌리 조엘, 마빈 게이, 데이빗 보위, 커트 코베인 등을 제치고 34위에 선정됐으나 리스트를 보면 실제 전문 작곡가들은 소외됐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들이 주로 구성되어 있어 인지도가 고려된 것으로 보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일 명단은 아닌 것 같다.
마이클 잭슨은 대단한 멜로디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제가 백만년이 지나도 절대 생각할 수 없을 것들을 떠올릴 수 있죠.
ㅡ그룹 토토의 맴버이자 작곡가 스티브 포카로/ 1987년 피플 매거진 인터뷰
마이클 잭슨은 정확한 음악적 직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의 머릿속에는 곡이 앞으로 어떤 레코딩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다 담겨 있었죠.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작업 방식인데, 보통의 경우에 사람들은 기타리스트를 고용하면 "여기 코드가 있습니다. 이렇게 소리가 나면 좋겠어요." 이런 식으로 요청을 하죠. 그러면 기타리스트가 나중에 사운드를 구상해서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아니에요. 마이클은 모든 리듬과 음, 코드를 전부 입으로 표현해요. 근데 그게 너무 기가 막혀요. 어떤 사운드가 나와야 하는지 아주 정확히 표현하죠.
ㅡ프로듀서 빌 보트렐/ 2004년 SoundOnSound 매거진 인터뷰
엔지니어들과 프로듀서들은 마이클이 곡을 스튜디오에 가지고 오면 함께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들조차도 마이클의 천재성에 놀라곤 했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롭 호프만은 그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어느날 아침 마이클이 밤새도록 작곡한 곡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는 기타리스트를 불렀고, 마이클은 각 코드의 모든 음을 그에게 노래로 들려주었습니다. "여기가 첫번째 코드고 첫번째 음입니다. 두번째 음, 세번째 음.. 또 여기는 두번째 코드의 첫번째 음, 두번째 음, 세번째 음..." 그리고 우리는 마이클이 음향조정실의 SM57 마이크를 가지고 가장 감동적이고 깊이 있는 보컬을 들려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이클은 우리에게 곡의 전체 현악 배치와 모든 파트를 노래해 들려주곤 했습니다. 한번은 마이클이 작업실에서 현악기 파트를 노래하는 것을 본 스티브 포카로가 저에게 직접 그것에 대해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여덟 마디를 반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마이클의 머릿속에는 곡의 하모니를 포함한 모든 구성 요소가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곡의 전체 구성을 미니 카세트에 녹음해 두곤 했습니다.'
NME/ 2014년 4월 'The Incredible Way Michael Jackson Wrote Music'
악보와 악기에 의지하지 않는, 다소 변칙적이지만 직관적인 마이클 잭슨의 작곡 스타일은 특히 9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정규 음악 교육 대신에 뒤늦게 작곡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기초적인 화성 진행을 통해 이론적으로 구현되는 멜로디 구성에는 능숙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천부적인 멜로디 메이커 중 한명이었다. 엘튼 존이나 폴 매카트니와 같은 초강력 멜로디 머쉰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대신 창의적인 전천후 멜로디 메이커였고, 뛰어난 연주자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러 악기에 동시에 능해 머릿속으로 구상한 소리들을 구현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다만 화성이나 코드진행의 정격성보다는 입으로 불러진 자유로운 멜로디 구성에 훨씬 능했는데, 이것은 다분히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폴 매카트니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여기에 리듬과 편곡이라는 요소를 더욱 적극 활용함으로써 "작곡->편곡->프로듀싱"이라는 관습적인 녹음 방식을 사실상 해체시켰다. 그와 작업한 프로듀서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 잭슨은 때때로 머릿속에서 편곡이 완성된 곡을 입으로 직접 불러내어 스튜디오에서 즉흥적으로 녹음으로 적용시켜 내기도 했으며, 특히 댄스 곡들의 경우 특별히 정해진 악곡 구성이나 화성의 진행이 없이 리듬과 즉흥적인 멜로디의 연결만으로 훌륭한 곡을 완성시키곤 했다.
ㅡ김영대 음악평론가/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프로듀서로서도 재능을 보였는데 잭슨스 시절부터 형제들과 함께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성인 이후 첫 솔로작인 1979년 Off The Wall 앨범부터는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잭슨은 1982년 Thriller 앨범까지는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Billie Jean, Beat It 등 본인이 작곡한 곡들에 한해, 1987년 Bad 앨범은 작곡 여부와 상관없이 전곡을 퀸시와 함께 공동으로 프로듀싱했다. Bad 앨범을 마지막으로 퀸시와의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잭슨은 그 뒤 1991년 Dangerous 앨범에 빌 보트렐과 뉴 잭 스윙의 창시자인 테디 라일리, 1995년 HIStory 앨범에는 테리 루이스와 지미 잼, 데이비드 포스터 그리고 2001년 Invincible 앨범에서는 로드니 저킨스, 베이비 페이스와 같은 프로듀서들을 기용하여 함께 앨범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앨범의 모든 곡들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트랙을 프로듀싱하면서 앨범의 전체적인 제작을 총괄하며 최종 OK 사인을 내린 것은 잭슨이었고 일정 트랙에서만 저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앨범 크레딧을 보면 이전 Bad 앨범까지는 퀸시가 이름을 올렸던 메인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항목에 Dangerous 앨범부터는 잭슨의 이름만 단독으로 올라가 있다.

잭슨이 단독으로 프로듀싱한 곡들로는 They Don't Care About Us, Stranger In Moscow, D.S, Money, Little Susie, Morphine, Superfly Sister, Speechless, The Lost Children 등이 있는데 특히 롤링 스톤스믹 재거와 함께 불러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State Of Shock은 잭슨이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혼자 다 한 곡으로 직접 들어보면 잭슨만의 사운드를 느껴볼 수 있다.
마이클과 함께 빌리진을 믹싱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이클을 정말 좋아해요. 너무나도 재능이 많고 또한 굉장히 공손합니다. 같이 일하기에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죠. 마이클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브루스, 사운드가 완벽해요. 하지만 한 번만 더 해볼 수 있을까요?" 저는 흔쾌히 다시 믹싱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91번이나 믹싱을 반복했습니다.
ㅡ사운드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 2012년 세일 대학교 강연
마이클은 자신이 원하는 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마이클은 아주 실천적이어서 믹싱을 할 때에도 항상 함께하고, 세밀한 레벨조정 등의 작업에도 함께합니다. 항상 스튜디오에 있습니다. 보컬 녹음에도 완벽주의여서 트랙의 사운드 퀄리티에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은 음이 되느냐 하는 방법론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서, 예를 들면 펀치가 부족한 음이 있는 경우에 어떤 이펙트 처리가 필요한지를 금방 압니다. EQ의 주파수 포인트까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우리들에게 맡겨 버리고, 한번 노래를 부르고 나면 다시는 스튜디오에 오질 않습니다. 믹싱은 소리만 좋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지만 마이클은 몇 시에라도 매일 반드시 스튜디오에 와 있었습니다. 한번은 마이클의 곡의 믹싱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밤 10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되서, 마이클은 "믹스를 들을 수 있는 있는 건 몇 시쯤이 될까?"라고 물어보길래, 난 "아마 새벽 3시 정도일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이클은 놀랍게도 새벽 3시 정각에 스튜디오에 나타나 "자, 들어봅시다"라고 하더군요. 그는 음악에 대해서는 진지합니다. 그래서 그의 앨범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고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보다도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일 겁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내고 싶은 새로운 사운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우리들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진지하게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가 원하는 음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어중간한 자세로는 어림도 없죠. 마이클이 원하는 바로 그 음이 아니면 OK되질 않습니다. 그게 그의 방식입니다. 믹스에 관해서도 항상 완벽함이 요구됐습니다. 상당히 큰 공부가 되었죠.
ㅡ프로듀서 로드니 저킨스/ 2002년 음향 잡지 Sound & Recording 인터뷰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단짝이면서 잭슨의 영원한 음악적 동지가 된 레코딩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의 손으로 마무리 된 MJ의 강렬한 레코딩 사운드는 그 모든 음악적 업적 중에서도 가장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다. 한때 잭슨의 'Dangerous'는 거의 모든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레퍼런스 소스로 쓰였으며 'Bad'의 경우에도 스피커나 플레이어의 개발시에 단골 레퍼런스 디스크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은 레코딩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잭슨의 음반을 믹싱, 마스터링 했던 전문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이 이후 수많은 팝 아티스트들의 집중적인 주문 공세에 시달렸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녹음실과 장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는 수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도 동시에 작업한다. 그런데 왜 유독 MJ의 음반은 자주 최고의 레코딩으로 거론되곤 하는가? 그의 음반에는 유독 다른 가수들이 쓰지 않는 새로운 테크닉과 장비들이 동원되기라도 하는걸까? 여기서 우리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좋은 '사운드'란 단지 마스터링 엔지니어들의 개인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디지털 소스나 프로그램 반주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최근의 음악들은 이미 음원의 선택과 조합 과정에서 그 음의 특색이 상당부분 정해지며 여기서 잘 조화된 음악들이 결국 믹싱이나 마스터링 공정을 통해서 완전히 가다듬어지게 되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가 "음질"이라고 생각하는 상당부분 역시 결국 "음원의 선택"이나 "균형감 있는 편곡"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으며 다시 말해 좋은 사운드를 가진 최종 결과물이란 좋은 소리를 구분해 조합하는 최전방 전선의 뮤지션과 프로듀서의 안목이 선행 되어 만들어지는 작업일 때만이 가능해 진다는 것. 음에 관한한 오디오 마니아 수준의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잭슨의 '좋은 귀'가 이런 소소한 설정을 가능케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한 악기, 한 효과음의 선택에도 직접 관여했고 특히 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퀸시 존스가 떠난 이후 만들어진 'Dangerous', 'HiStory', 'Invincible'에서 그의 역할과 영향력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음반의 메인 프로듀서 위치로까지 격상되었다. 물론 레코딩 마스터 스웨디언의 비중은 과소평가되어선 안된다. 그는 믹 구저스키, 알 슈미트, 제프 에머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대 다섯명 안에 꼽을 레코딩/믹싱의 장인이며 잭슨의 앨범으로만 세번의 그래미를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HiStory"와 "Invincible" 등 후기의 앨범들에서는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겸하기도 했다. Acusonic Recording Process 이라 불리는, 악기 하나 하나에까지 스테레오 사운드로 녹음해 최종 믹싱 과정에서 다양한 공간감과 효과를 이끌어 내는 특유의 녹음 및 믹싱방식은 악기 장르와 인종의 장벽을 넘나들기를 원했던 마이클 잭슨의 파워풀한 댄스 뮤직에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테크닉이었다. 필 콜린스, 핑크 플로이드, 토토, 피터 가브리엘, 마돈나, 스틸리 댄.. 팝 음악을 소리의 예술로 승화시키곤 했던 80년대의 거장들의 이름 몇몇을 더 기억해 낼 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유독 언제나 그 흐름과 경향을 리드하는 몇 안 되는 프론티어였다. 그는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되는 대중음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최상의 결과물로서 빛나게 할 수 있도록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등 일련의 후반 작업과 부가 작업에는 누구보다도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했다.
ㅡ김영대 음악평론가/ 음악취향Y, '마이클 잭슨' 특집
한편 마이클이 악기를 잘 다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이를 증명할 만한 확실한 자료가 없다. 단 한 번도 마이클이 공식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앨범 크레딧에 있는 곡 정보와 주변인들의 발언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먼저 'Earth Song'에서 기타, 퍼커션, 키보드, 신디사이저, 드럼 연주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고 'Morphine'에서는 드럼 단독, 기타는 슬래쉬와 공동, 퍼커션은 브라이언 로렌, 브래드 부서와 함께 연주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Unbreakable', 'You Rock My World', 'Threatened'에서는 로드니 저킨스와 함께 그리고 'Break Of Dawn'에선 로드니 저킨스, 닥터 프리즈, 테디 라일리와 함께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고 나와 있다. 또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브루스 스웨디언은 'Don't Be Messing Around'에서 마이클이 피아노 연주를 아주 잘 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스파이크 리 영화 감독도 배드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마이클이 실제로 피아노를 잘 쳤다고 밝혔다. 또 아일랜드의 음악 사업가 패디 던닝은 마이클이 2006년 아일랜드에서 본인의 집에 잠시 머물렀을 때 비틀즈의 곡들을 드럼, 피아노, 기타를 치며 들려줬는데 실력이 매우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물론 단순히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거나 주변인들의 목격담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앞서 말했듯이 마이클이 수준급의 연주자였는가를 증명할 확실한 자료가 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와는 별개로 일단 마이클이 여러 악기에 두루 능했다는 것만은 명확한 사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