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마틴 치버스 Martin Chivers | |
본명 | 마틴 하코트 치버스 Martin Harcourt Chivers | |
출생 | 1945년 4월 27일 ([age(1945-04-27)]세) | |
영국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 ||
국적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5cm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 CPC 스포츠 (1961~1962) |
프로 | 사우스햄튼 FC (1962~1968) 토트넘 홋스퍼 FC (1968~1976) 세르베트 FC (1976~1978) 노리치 시티 FC (1978~1979)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1979~1980) 도체스터 타운 FC (1980) → 프랭크스턴 파인스 FC (1980 / 임대) SK 바르드 헤우게순 (1981~1982) 바닛 FC (1982~1983) | |
국가대표 | 24경기 13골 (잉글랜드 / 1971~1973)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2. 클럽 경력
2.1. 사우스햄튼 FC
CPC 스포츠를 거쳐 사우스햄튼 FC에 입단해 1962년 9월, 프로 축구선수로 계약하여 1962년 9월 8일, 17세의 나이로 찰턴 애슬레틱 FC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1963년 4월 6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1-4로 패했다.
1963-64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사우스햄튼이 2부 리그에서 실망스러운 5위를 기록했음에도 21골을 기록하며 테리 페인과 함께 클럽의 공동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다음 시즌에도 그는 사우스햄튼이 2부 리그 4위로 올라감에 따라 39경기에 출전해 17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사실상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65-66 시즌에 그는 클럽이 마침내 2부 리그 준우승을 거두면서 풋볼 리그 디비전 1로 승격했을때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39경기에서 30골을 기록했다.
1부 리그에서 그는 두 시즌 동안 각각 14골과 13골을 기록했다.사우스햄튼 소속으로 190경기에 출전해 총 106골을 기록했다.
2.2. 토트넘 홋스퍼 FC
그의 활약은 많은 클럽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1968년 1월에 £125k의 이적료[1]로 빌 니콜슨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하게 된다.이적하고 난 이후 셰필드 웬즈데이 FC전에서 토트넘 소속으로 데뷔골을 기록하게 된다.
토트넘 이적 후 초반에는 부동의 공격진 듀오였던 지미 그리브스와 앨런 길진의 존재로 인해 존재감이 가려졌었지만, 그리브스가 웨스트햄으로 이적하고 난 이후부터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골잡이가 되었다.
1970-71 시즌은 치버스의 황금기의 시작이었다. 총 58경기에 출전해 34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아스톤 빌라 FC와의 리그컵 결승전 두 골을 포함하여 토트넘이 시즌을 3위로 마친 퍼스트 디비전에서는 21골을 넣었다.
1971-72 시즌은 64경기에서 44득점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리그컵에서는 7골을 넣으면서 토트넘을 준결승까지 이끌었지만, 결국 첼시 FC에게 패배했다.
이후 UEFA컵에서는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ÍF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9-0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11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면서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를 꺾고 우승을 달성했다. 리그에서는 39경기에 출전해 25골을 기록하였다.
1972-73 시즌에도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61경기에 출전해 33득점을 기록했다. 이 시즌에서 다시 한번 토트넘의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고, UEFA컵 준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리버풀 FC에게 패배했다.
1974-75 시즌에는 개막전을 포함해 6골을 기록하면서 토트넘을 UEFA컵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결국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게 패배했다.
리그에서는 부상으로 28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득점도 10골로 이전 시즌에 비해 저조하였다.
1975-76 시즌은 치버스의 토트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었으며, £80k의 이적료로 스위스 구단 세르베트 FC에 합류하기 전까지 모든 대회에서 37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했다.
8년동안 토트넘에서 뛰면서 367경기에서 총 174골을 기록했으며, 2013년 11월 7일 저메인 데포에게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39년 동안 유럽 대회에서 토트넘 최다 득점자로 남아 있었다.
이후 2007년, 토트넘 홋스퍼 구단 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3. 토트넘 이후 커리어
1976년 7월, 31세의 나이에 스위스의 세르베트 FC로 이적한 후 노리치 시티 FC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를 거치면서 영국으로 돌아와 프로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여러 아마추어 구단에서 논프로 선수로 생활하기도 했다.3. 국가대표 경력
1971년 2월 3일, 몰타전에서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4월 21일, 그리스를 상대로 데뷔골을 넣었으며, 팀도 3-0으로 승리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24경기에 출장해 13골을 기록했다.
4. 플레이 스타일
185cm의 건장한 체격과 타고난 힘, 빠른 스피드, 큰 동작 및 화려한 슈팅 테크닉으로 항간의 'Big Chiv'로 불렸지만, 움직임이 게으르다는 단점이 존재했다.5. 기록
5.1. 대회 기록
- 토트넘 홋스퍼 FC (1968~1976)
- 세르베트 FC (1976~1978)
- 스위스컵: 1977-78
- 스위스 리그컵: 1976-77
- 코파 델레 알피: 1975-76
5.2. 개인 수상
- 로스만스 골든 부츠 상: 1971, 1972
- 스위스 리그 베스트 외국인 선수상: 1977-78
6. 자서전
- Big Chiv: My Goals in Life - 2009년
7. 여담
[1]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비싼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