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망갈 판데이 মঙ্গল পাণ্ডে | Mangal Pandey | |
출생 | 1827년 7월 19일 |
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 나그와 | |
사망 | 1857년 4월 8일 (향년 30세) |
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 바라크포레 | |
복무 | 동인도 회사 세포이 |
복무 기간 | 1849년 ~ 1857년 |
1. 개요
인도의 용병. 세포이 항쟁의 시발점이 된 인물이다.2. 생애
벵골인 브라만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열성 힌두교 신자였다. 1849년 세포이에 입대해 브라만 계급으로 구성된 제34벵골인연대소속으로 배치되었다. 하지만 1850년대 중반 신형 소총인 패턴 1853 엔필드 소총이 세포이에게 지급되었는데 문제는 카트리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윤활의 목적으로 소, 돼지기름이 들어갔다. 당시 장전법인 입으로 찢어서 탄을 장전하는 방법을 썼기에 소, 돼지에 대해 터부를 갖고 있던 세포이들이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1857년 3월 29일 연병장에서 탄약통을 수령하라는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부관이 판데이를 체포하려고 시도하자 판데이는 권총으로 부관의 말을 맞추었다. 연대장이였던 존 허세이는 사건 보고에서 판레이가 종교적 광란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기록하였다.
연대장은 인도사관 이슈와리 프라사드에게 판데이의 체포를 다시 지시하였으나 그 역시 명령을 거부하였고, 연이어 연병장의 모든 세포이들이 연대장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항명에 가담하지 않은 세포이는 영국인 부관의 휘하에 있던 사이크 팔투 뿐이었다.
이후 세포이들을 모아 봉기를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 머스켓을 자신의 뺨에 대고 쏘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고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체포되어 군사재판에서 사형은 선고받았고 4월 8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체포 명령을 거부한 이슈와리 프라사드 역시 체포되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며 4월 22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대는 해산되었으며 항명에 가담한 세포이들은 군복을 벗어야 했다. 결국 이 것이 폭발해 세포이 항쟁으로 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