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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4:11:38

메리 슬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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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Slessor
파일:Mary_Slessor.jpg
본명 메리 미첼 슬레서
Mary Mitchell Slessor
출생 1848년 12월 2일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
사망 1915년 1월 13일 (향년 66세)
영국령 나이지리아 칼라바르
(現 나이지리아 크로스리버 주 칼라바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아버지 로버트 슬레서
어머니 메리 슬레서
형제 일곱 형제 중 둘째
종교 개신교 (장로회)[1]
직업 선교사

1. 개요2.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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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태생 선교사.

본래는 평범한 노동자였으나,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의 발자취를 이어서 따르겠다는 결심을 해 지원해서 선교사가 되어 1876년 아프리카로 떠났다.

2. 업적

그녀의 대표적 업적으로는 나이지리아의 잘못된 토속 문화의 개혁이었다.

당시 나이지리아에서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악마의 저주로 생각했던 풍습이 있었으며, 어머니도 동네에서 내쫓겨야만 했다.

그녀는 이러한 잘못된 풍습 앞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는데, 그것은 그쪽의 쌍둥이를 자신의 양자로 데려다 키우는 것이었으며 쌍둥이의 어머니도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당시 그녀는 미혼이었음에도 일곱 명의 자녀들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약 100명 이상의 쌍둥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현재 나이지리아 칼라바에 그녀의 동상이 있으며 지금까지도 에피크족의 존경을 받고 있다.


[1]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로 지원해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어머니 또한 연합장로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Missionary Records>의 모든 호를 읽는 등 독실한 연합장로교회 교인이었다. 이후 연합장로교회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1843-1900)와 1900년에 합병되어 스코틀랜드 연합자유교회가 설립되어 연합자유교회 소속이 되었다. 현재 연합자유교회는 대다수가 1929년에 스코틀랜드 교회로 통합되었지만 일부는 여전히 독립적인 연합자유교회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