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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머스 크로스 전투 영어: Battle of Mortimer’s Cross | ||
| ||
시기 | ||
1461년 2월 2일 | ||
장소 | ||
잉글랜드 왕국 헤리퍼드셔 캥스랜드 | ||
원인 | ||
런던으로 진군하려는 마치 백작 에드워드와 이를 저지하려는 랭커스터군의 대결. | ||
교전 세력 | ||
요크 가문 | 랭커스터 가문 | |
지휘관 | ||
병력 | ||
5,000명 | 6,000명 | |
피해 | ||
미상 | 2,000명 | |
결과 | ||
요크군의 승리 | ||
영향 | ||
마치 백작 에드워드의 런던 진군과 에드워드 4세 등극. |
1. 개요
장미 전쟁 시기인 1461년 2월 3일, 요크파의 지도자 마치 백작 에드워드가 런던으로 진군하던 중 이를 저지하려는 랭커스터군을 격파한 전투.2. 배경
1460년 12월 30일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아버지인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와 동생인 리치먼드 백작 에드먼드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마치 백작 에드워드는 일단 러들로로 이동한 뒤 런던으로 진군하기 위해 병력을 끌어모았다. 랭커스터파은 그런 그마저 제압해 내전을 끝내기 위해 사방에서 움직였다. 펨브로크 백작 제스퍼 튜더가 웨스트 웨일스에서 아버지 오웬 튜더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동진했고, 윌트셔 백작 제임스 버틀러가 브르타뉴와 아일랜드에서 차출한 용병대를 이끌고 밀포드 헤이븐의 웨일스 항구에서 진군했다.마치 백작은 적군이 두 갈래로 러들로에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러들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8마일 떨어진 러그 강에 있는 모티머스 크로스에서 적을 요격하기 위해 5,000명을 이끌고 진군했다. 이곳은 러들로에서 오는 도로가 강을 건너는 지점이었다. 그러던 1461년 2월 2일, 요크군 장병들은 하늘에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 떠오른 걸 보고 경악했다. 이는 극심한 추위와 대기 광학 현상으로 발생한 것이었지만, 장병들은 불길한 조짐이라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자 마치 백작은 장병들에게 삼위일체가 실현된 것이며, 랭커스터 가문에 대한 승리를 예고하는 징조라고 선언했고, 장병들은 이에 고무되어 전투 의지를 굳건히 했다. 이후 랭커스터군이 현장에 도착하면서 전투가 임박했다.
3. 경과
마치 백작은 요크군을 동서 도로 남쪽, 러그 강과 강과 평행하게 이어지는 강둑 사이의 1/4마일 폭의 평야에 집결했다. 요크군 궁수들은 주요 방어선 앞쪽의 숲이 우거진 언덕에 주둔했고, 랭커스터군 좌익을 매복 공격할 준비에 착수했다. 또한 궁수들 너머의 버저드 계곡에 기병대가 숨어 있었다. 이윽고 현장에 도착한 랭커스터군은 전투 대형을 편성했다. 윌트셔 백작 버틀러가 좌익을, 펨브로크 백작 제스퍼 튜더가 중앙 부대를 이끌었고, 오웬 튜더가 우익 부대를 이끌었다. 이윽고 랭커스터군은 정오가 되었을 때 공세를 개시했다. 윌트셔 백작 제임스 버틀러가 좌익 부대를 이끌고 공세를 개시해, 마치 백작의 우익 부대가 물러나도록 강요했고, 오웬 튜더가 우익 부대를 이끌고 좌익 부대를 몰아붙이려 했다.이때, 숲이 우거진 언덕에 숨어있던 요크 궁수들이 일제히 나타나 적 좌익 부대를 향해 화살을 쐈다. 랭커스터군 좌익군은 갑작스러운 화살비를 측면에서 얻어맞고 화들짝 놀라 아군 중앙부대 쪽으로 물러났고, 이 때문에 랭커스터군이 혼란에 빠졌다. 적이 혼란에 빠지는 걸 목격한 마치 백작은 전군에 돌격 명령을 내렸고, 버저드 계곡에 숨어있던 기병대도 출격해서 랭커스터군의 좌측 후방을 요격했다. 랭커스터군은 러그 강둑으로 밀려났고, 그곳에서 요크군의 돌격에 의해 궤멸했다. 랭커스터 장병 중 다수는 다리나 여울이 없는 지점에서 러그 강을 건너 탈출하려 했지만, 무거운 갑옷 때문에 익사했다. 랭커스터군 상당수는 반 마일 떨어진 베틀 에이커로 후퇴했다가 추격대에게 다시 한 번 격파되어 웨스트 웨일스로 도주했다. 이리하여 전투는 요크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