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8:59:34

못난이인형

파일:P20170605_232200000.jpg
1974년 킹완구에서 제작해 미국으로 수출된 제품.(가장 대중적인 제품이다)
1. 소개2. 상세3. 카피품4. 오리지널과 최신품의 구별법5. 생산업체6. 제작방법7. 그 외8. 관련 문서

1. 소개

1970~1980년대를 살았던 세대라면 한번쯤은 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인형. 현재까지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자주 쓰여 유명하다. 1970년대 당시 최소 40만세트 이상 팔렸다.

못난이삼형제 인형과 그 외 훌라 인형 등을 통틀어 못난이 인형이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보통 못난이 삼형제를 말한다.

2. 상세

1968년 일본의 완구 제조업체 이와이(いわい,岩井)사는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개발, 도쿄 본사공장에서 제작하다가 1969년 경 한국에 공장을 세운 뒤 하청을 주었고 1970년부터 한국에서 못난이 인형을 본격적으로 생산,수출하기 시작한다.
당시 업계 관행 상 수출품 제작 중 생긴 불량품이거나 과생산된 물량을 국내 시장에 풀곤 했는데, 이때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9년에 이미 일본제를 카피한 제품이 백화점에서 팔렸는데, 이 제품이 일본 하청제품보다 먼저 국내에서 제작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파일:P20210803_165209578_07A2648C-D846-44AD-9CF4-96F17A9CC2B4.jpg
1969년 신세계백화점 카탈로그 중 완구코너의 모습. 가운데 못난이인형이 보인다.
1972년, 킹완구공업은 수출 전문 업체였지만 수출주문이 들어오지 않자[1]자본을 합작한 일본 완구업계 관계자들이 가져온 샘플제품을 카피해 내수용으로 판매했는데, 그 중 못난이삼형제 인형이 있었다. 이때 생산된 킹완구제 인형은 대형 완구도매상이나 지방 백화점에서 판매되며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1972년부터는 미국 Imperial 사에서 대만과 홍콩,한국에서 만든 못난이인형이 미국 내에서 반응이 괜찮자 1974년부터는 한국 킹완구공업과 정식계약을 하여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했고 1978년까지 많은 물량을 수출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내수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많은 가정에 이미 못난이인형이 자리잡은데다 불경기에 오일쇼크가 겹쳤기 때문. 결국 80년대 중반 생산이 중지되었다. 90년대 초반 쯤 한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한 뒤 잠깐 만든 적이 있지만 판매된 일부 지역의 반짝 인기로 그쳤다.

1995년, 베이비킹(킹 완구)에 찾아와 못난이인형을 1970년대 배경의 전시회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3000세트를 복각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때 한정생산한 것을 계기로 2000년대부터 디자인을 다양화한 못난이인형들이 재생산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 후 덕인기업과 몇몇 중국 업체가 만들기는 했으나 이후 대부분의 못난이인형은 베이비킹에서 제작하고 있다.

1970년대 일본 Iwai사도 엄청난 양을 제작했고 대만,홍콩에서도 많이 만들었지만 일본 Iwai사는 신제품 개발과 출시를 위해, 대만, 홍콩의 공장들은 수출 주문이 끊기자 제작이 중단되었다.

꽤나 오랫동안 만들어지고 많은 제조사가 만든 만큼 여러 종류가 있는데, 크기로는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것부터 저금통으로 쓸 만큼 큰 것까지 만들었다.

이 인형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큰 히트를 친 이유는 못난이 인형이 당시 한국 완구시장에 거의 처음으로 등장한 PVC완구였다는 점과,[2] 특이한 표정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했다는 점 때문에 대중들의 눈길을 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광고에 단골 모델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작은사이즈 한 세트에 90원에서 250원 정도의 싼 가격[3] 때문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소문을 들은 학생이나 신혼부부가 부담없이 살 수 있었던 점도 있다.

한편 원 제작국이자 단기간에 많은 양을 제작한 일본에서는 수많은 장식용 인형과 전통인형에 밀려 한국만큼의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다른 장식용 인형들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높고 많이 팔린 편이지만, 레트로 완구 매니아가 아니면 한 때 이런 인형이 큰 인기를 누렸다는 정도만 기억한다.

위에서 서술했듯 일본, 한국뿐만이 아닌 홍콩, 대만, 유고슬라비아(추정)에서도 만들었다. 홍콩,대만의 경우 미국, 유럽의 노벨티 수입회사나 완구업체인 Impreial사 가 하청을 줘서 만든 것이고 유고슬라비아로 추정되는 구 공산권 국가에서 만든 것은 유럽 수출품을 가져와 베껴 만든 모양.[4]

3. 카피품

킹완구나 다이아몬드완구 제품도 일본 제품을 복제한 것이기에 카피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문단의 카피품은 소규모 영세업체에서 만든 것 위주로 서술하였다.

국내의 경우 출시 초기부터 인기가 높았던 탓에 완구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카피품이 등장했다. 카피품 제작은 사업적으로 위험이 적어 몇 년 사이에 카피품 업체만 10곳이 넘게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편 한일 자본 합작을 한 킹완구와 일본에 납품한 경험이 있는 다이아몬드완구는 일본 완구업계와 자주 접촉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완구업계에서 해외저작권은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일본 완구제조사들은 이걸 알면서도 해결할 방도가 딱히 없어 별 말 없이 넘어갔다.
심지어 잠깐뿐이지만 일본 내에서도 비슷한 디자인의 인형들이 만들어졌다.

몇몇 업체는 그대로 베껴만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원형을 조금씩 변형하기도 했으며 다른 인형의 머리를 끼워넣어 팔기도 했다.

대·중·소 사이즈별로 모두 카피품이 있으며 같은 카피품이어도 제작사에 따라 품질이 다르다. 어떤 제작사는 킹완구, 다이아몬드완구 제품처럼 잘 만들었지만 머리심는 기술이 없어 아예 가발을 만들어 붙인 곳도 여럿 있었다. 아주 조잡한 제품들은 1970년대 후반 석유파동 이후 제작을 멈추었고 좀 그럴싸해 보이는 제품은 1980년대 중반까지 제작되었다.

카피품은 독자적인 국산 완구개발에 악영향을 주었고, 영세한 카피품 제조사가 싸구려 원료를 사용해 품질저하[5] 및 유해성 논란이 생겼다. 70년대 초반에 이미 대규모 제조사에서 독자적인 국산완구 개발을 시도했으나 들인 노력과 돈에 비해 반응이 시원찮아 이러한 시도는 흐지부지되었고, 정부에서는 유해완구를 단속하기 시작했지만 단속 후 회수조치 말고는 별 대책이 없어 효과가 없었다.

카피업체는 원래 영세한 PVC완구 제조사였다가 못난이 인형이 히트를 치니 제작한 곳과 처음부터 못난이 인형을 만들려고 세운 곳이 있다. 보통 킹완구나 다이아몬드 완구와 같은 큰 회사의 직원이 기술을 배우고 난 뒤 독립하여 운영했으며, 땅값이 쌌던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 판자집과 지하실,시골 밭 구석의 천막에서 운영했고,직원이라 해도 10명 내외의 가족 구성원이나 동네주민끼리 하였다. 일부 업체는 제대로 된 시설과 영업허가를 갖춘 상태였지만, 대부분은 공장주소도 엉터리로 기재해 찾아갔더니 야산 한복판이나 전혀 상관없는 장소가 나오는 무허가업체였다.

카피품 중 좀 괜찮은 제품들은 전국의 문방구나 선물가게에서 팔렸고, 질이 많이 떨어지는 제품은 노점상에서 팔거나 선물가게에서 유리상자에 넣어 팔기도 했다. 카피품이 해외에서 종종 발견이 되는데, 외국인이 관광지에서 사가거나 이런저런 완구를 수출할 때 샘플로 낑겨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덕인기업에서도 90년대 후반 쯤 부터 못난이인형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초반에는 여러 디자인과 크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사이즈의 제품은 베이비킹 복각품을 복제해서 만들어 크기는 조금 작아졌으며, B.K(베이비킹) 각인을 지우고 DUCK IN 각인을 새긴 흔적이 있다. 물론 기본사이즈 제품 중 원형을 수정하여 제작한 제품도 있지만 그렇게 많이 팔리진 못했다.

덕인기업은 2011년 이후 못난이삼형제인형의 디자인 권리 및 상표권을 한 수집가에게 넘기며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 재고품을 판매했다. 그러나 2014년 경 베이비킹(B.K) 각인이 있고 피부색이 연주황색인 제품을 판매하다 몇년 전부터는
원형을 수정한 제품을 다시 만들고 있다.

2013년부터는 단발머리를 한 소형 못난이인형이 종종 유통되고 있는데, 중국에서 만들어 소량 수입되어 온 것.
전체적으로 깔끔하긴 한데 오히려 너무 공산품 느낌이 나 조잡해 보인다. 목에 스프링이 있어 버블헤드로 나온 것과 다이소 등지에서 파는 것도 있는데 역시 중국에서 만든 수입품.

과거 국산 카피품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많은 제조사가 있었고 같은 제조사라도 퀄리티가 일정하지 않아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4. 오리지널과 최신품의 구별법

한국산 오리지널은 KOREA, MADE IN KOREA, IWAI INDUSTRIAL Co.Ltd 197x korea 등이 스티커나 각인으로 표기되어 있다.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스티거가 떨어지거나 바이어의 요구로 하지 않기도 했고, 내수용 카피품은 원산지 표기를 할 필요가 없어 표기하지 않은 것도 많다.
한국산 최신품은 B.K, Baby King, Duck In으로 표기되어 있다. 소형(기본형 제품) 최신품은 오리지널 제품을 복제해서 만든 것이라 모양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중 대형 최신품은 원형 자체를 새로 만든 것이므로 오리지널과 확실히 모양이 다르다.

아주 가끔 생김새는 덕인기업 제품이지만 아무 표기가 없고 붓으로 색칠한 제품도 있는데, 덕인기업 초창기 제품이다. 반면 베이비킹에서 초창기에 복각한 제품은 현재 나오는 것보다 약간 사이즈가 작고 도색이 선명하며 머리카락이 적게 심어져 있다.

일본제의 경우, 최신품이 없어 오리지널일 가능성이 높으며, 대부분 JAPAN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대만·홍콩에서 만든 제품의 경우 대체로 오리지널이나 일부는 최근에 복각해서 만든 것이다. 2010년경 부터 중국에서 목에 스프링이 있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못난이인형이기는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는 아니다.

비슷한 인형인 하와이 인형까지 포함시키면 오리지널과 최신품을 구별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물론 페인팅, 상태, 헤어스타일 등으로도 알 수 있으나 직접 보지 않으면 역시 구별하기 힘들다. 근현대사 물건을 파는 골동품상이나, 수집가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그나마 정확하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복각품을 오리지널로 속여 비싸게 파는 경우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오리지널과 재현품의 구별 방법이 나왔는데, 오류가 있다. 오리지널은 고무가 삭아 말랑하다고 했으나 이는 제작시 가소제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6] 또한 위에서 서술하듯 오리지널 중 KOREA 표기가 없는 것도 상당수다. 방송에 나온 4개의 인형은 은찬사 제품으로 보인다.

5. 생산업체



대부분의 카피품 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 중국의 영향으로 완구산업이 무너지며 망하거나 그 이전에 석유파동이나 하청을 주던 큰 회사가 망하며 같이 망했다.

6. 제작방법

소프비 완구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는데, 대부분의 PVC 완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1. 왁스로 원형을 만든다.
  2. 원형 표면을 동으로 두껍게 도금한 뒤 왁스를 녹여 없애고, 니켈 등으로 내부를 얇게 도금하여 금형을 만드는데, 금형은 스러쉬금형과 로테이션 금형으로 나뉜다.
    스러쉬 금형은 주로 저가의 작은 크기, 로테이션 금형은 크기가 큰 제품을 만들 때 쓴다.[10]
  3. 원형을 통해 마스터금형을 만든 뒤 시사출품을 뽑아내고, 다시 시사출품을 도금하여 양산용 금형을 제작한다.
  4. 못난이인형은 보통 스러쉬 금형을 쓰는데, 금형에 프라스티졸을 넣고 기포제거 후 온도 2~300도 정도의 열매체['토렉']에 가열하면 표면이 굳는데, 굳지 않은 안쪽을 통에 따라내면 금형 표면에만 플라스틱이 얇게 남게 된다. 이것을 재가열해 완전히 굳힌다.
  5. 금형에서 내용물을 분리하여 식힌다.(관련 동영상)
  6. 내용물이 식으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얼굴, 몸통에 페인트로 색을 칠한다.
  7. 전용 미싱으로 머리카락을 심어준 뒤[12]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조립한 뒤 포장하면 완성.

7. 그 외

어쩌다 못난이인형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다른 인형들에 비해 그닥 예쁜 건 아니어서일 것이다.

일본 Iwai사에서 출시했을 때 상품명은 Juvenile Doll이었다.

사실 자세히 보면 리본이 달린 원피스 혹은 망토를 입고 있는데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는 알기 어렵다. 못난이삼형제라는 말은 모델로 나온 초콜렛 광고에 '초코렛 삼형제'라는 문구의 영향과 짦은 헤어스타일에 때문인 것 같다.

당시 킹완구공업 공장에서는 못난이삼형제 인형을 비롯한 PVC완구의 주문이 폭주하자 1970년대 초반 기준 생산직 직원들은 월 9000원의 봉급을 받으며 미친듯이 제품을 생산하고, 몇 명 안되는 관리직 직원들은 각종 사무, 해외 바이어나 거래처 상대, 품질관리와 직원복지 및 관리로 인해 생산직 직원이나 관리직 직원 모두 야근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킹완구공업에서는 컨테이너 수준의 수출물량을 부산항에서 배편으로 보냈는데, 외국으로 나가는 배가 많지 않았었기 때문에 배를 놓치면 한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배를 놓쳐 배송이 늦어지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 대부분의 내수는 일찍이 다이아몬드완구공업에 맡겨 넘쳐나는 수요를 소화했다.

킹완구와 다이아몬드완구는 이처럼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기묘한 사이였으며, 서로 주문을 메워주느라 그런지 품질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13]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수출과 내수를 병행했다.(킹완구는 내수 10%, 수출90%정도. 다이아몬드완구는 그 반대) 한창 바쁠 때는 머리카락 심는 미싱이 20~30대 가까이 돌아가며 하루에 인형 머리를 10000개씩 심었고 컨베이어 벨트를 하루종일 가동했다고 한다.[14]

한편 대만·홍콩에서는 못난이계열 인형의 인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현지에 재고가 남아돌기 시작했는데, 국내 수입업자들이 재고를 수입해 와 부산 일대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킹 완구·다이아몬드완구 두 업체 모두 정부로부터 수출지원을 받았었는데, 1979년에 다이아몬드 완구는 수출금융지원 수혜를 받았지만 수출의무를 이행치 않아 6개월간 수출지원이 중지된 적도 있었다.

머리카락 심는 작업은 과거 왕십리나 영등포·부평 등지에서 형제나 가족끼리 미싱 몇 대 정도 가져다놓고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장처럼 미싱을 열몇대씩 놓고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도 있었다. 1990년대 국내 완구제조업의 몰락과 금융위기때 대부분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PVC완구 공장도 인천 부평동 일대에만 여러 곳이 있었다. 대부분 다이아몬드완구나 대협 같은 큰 업체가 망하고 직원들끼리 작은 공장을 세워 운영했는데, 1990년대 후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4개 정도의 업체가 남아있다.
한동안 PVC인형의 제작이 없다가 2010년대 들어 여러 육일돌 작가가 활동하자 생산량이 많아졌는데, 최근 육일돌의 인기가 떨어지며 다시 생산량이 감소중이다.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못난이인형이 자주 나왔는데, 이 때문인지 못난이인형 주문량이 증가했었다.

현재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나온 한국산 못난이인형은 다른 고전완구와 마찬가지로 꽤나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데, 당시 인기에 비해 남아있는 수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이 꽤 부풀려진 편이다. 해외에서, 특히 미국·일본에서는 배송비 빼면 비교적 싼 가격에 나온다. 물론 수출된 제품이라 흔한 편이며 국내 내수용으로 나온 제품은 잔존량도 적고 가격도 더 비싸다.

만약 옛날 제품을 소장하고 있다면 잘 관리하자. 빛 근처에 두면 색이 빨리 바래버리며, 애초에 내구성이 약한 제품은 금이 가 깨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빛이 들지 않는 장식장이나 박스 안에 넣어 놓는 것이 좋다.

8. 관련 문서


[1] 당시 신생기업이라 해외 바이어가 주문을 잘 주지 않았다고 한다.[2] 1960년대 중반부터 이미 PVC완구는 판매되었지만 국산 제품은 질이 많이 떨어지고 수입품은 비싸 수요가 많지 않았다.[3] 작은사이즈 기준 1974년에 한 세트를 250원, 1979년 기준 600원에 판매.[4] 공산권 국가에서는 중형 크기의 웃는 인형만 만들었다.[5] 이런 영세업체는 원료를 직접 혼합해 썼는데, 혼합비율도 잘 지키지 않는데다 싸구려 원료를 쓰니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리 없다. 반면 다이아몬드완구나 킹완구 같은 큰 업체는 전문 PVC 제조업체에서 혼합한 원료를 드럼통에 담은 것을 공급받거나 고급 원료를 대량구매해 사용하였다.[6] 오히려 가소제가 날라가면서 딱딱해지는 경우도 많다.[7] 하청을 줘서 제작하고 있다.[8] 1977년 당시 광주공장의 경우 종업원이 120명이었다.[9] 애초에 제대로 지어지지 못한 건물이라 누수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10] 로테이션성형은 스러쉬성형에 비해 자동화되어있어 대량생산의 경우 단가가 싸다.대신 금형 제작비가 많이 든다.['토렉'] 이라는 상표명의 질산칼륨과 아질산나트륨이 주원료인 열매체를 쓴다.[12] 현재 국내에는 기술자가 그리 많지 않으며 일반 미싱과는 달리 미싱 바늘이 아래에서 위로 나오기 때문에 위험하다. 또한 땀 간격을 감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13] 다이아몬드 제품이 도색이 번지거나 좀 더 알록달록한 정도.[14] 다이아몬드완구는 야간작업까지 하며 거의 24시간 공장을 돌렸다고 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