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티네스 𐤌𐤕𐤍 Muttines | |
<colbgcolor=#eee8aa><colcolor=#000> 출생 | 미상 |
미상 | |
사망 | 미상 |
미상 | |
국적 | 카르타고→로마 공화국 |
가족 | 미상 |
지위 | 카르타고 장군→로마 보조군 지휘관 |
참전 전쟁 | 제2차 포에니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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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카르트 하다쉬트(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의 부관으로, 탁월한 지휘력을 갖춰 시칠리아 전선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누미디아 혈통이라는 점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자 로마에 귀순했다.2. 생애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히파크라 출신으로, 누미디아 혈통의 페니키아인이라고 한다. 그는 한니발 바르카의 부하로서 이탈리아 원정에 함께 하여 전쟁술을 익혔으며,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기원전 212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로마와 동맹을 끊고 카르타고와 연합한 시라쿠사를 공략하자, 카르타고는 아그리젠툼에 한노를 새 사령관으로 파견해 에피키데스와 연합하게 했다. 이때 한니발 역시 그에게 누미디아 기병대 일부를 맡겨 시칠리아로 파견했다.그는 시칠리아에 도착한 뒤 그곳을 철저히 조사하여 동맹 도시를 찾고, 같은 편인 자들을 도와주고 로마의 편에 선 마을들을 철저히 약탈했다. 그 결과 많은 시칠리아 도시들은 카르타고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였으며, 카르타고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를 새로운 희망으로 여겼다. 이 소식을 접한 마르켈루스는 군대를 이끌고 히메라 강에서 적과 조우했다. 그는 적에게서 약 4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뒤,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무티네스는 로마군에게 시간을 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즉시 기병대를 이끌고 쳐들어가 적의 전초 기지를 공격하여 혼란을 일으켰다.
다음날 양군이 정면 대결을 벌였을 때, 그는 강을 곧바로 건넌 후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해 로마군을 크게 이기고 요새 안으로 몰아넣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마르켈루스는 자신이 한니발을 놀라에서 겨룰 때마다 퇴각시킨 데다, 시라쿠사 함락이라는 최고의 군사적 성취를 이룩하였는데, 패잔병과 신병들로 구성된 오합지졸에게 당했다면서 펄펄 뛰었다고 한다. 이후 양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누미디아 기병 300명이 진영에서 이탈하여 헤라클레아 미노아로 달아났다. 그는 이들을 잡으러 가면서, 한노와 에피키데스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로마군과 교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두 장군, 특히 한노는 "누미디아 혼혈인 주제에 감히 순수 페니키아인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며 무시하고, 마르켈루스와 재차 전투를 벌였다가 완패했다. 이날 수천 명에 달하는 카르타고군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8마리의 코끼리가 포획되었다. 이리하여 시칠리아 동부 일대는 로마에게 완전히 굴복하였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카르타고에게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마르켈루스는 더 이상 공세를 벌이지 않고 로마로 귀환하였고, 카르타고는 8,000명의 보병과 3,000명의 누미디아 기병으로 구성된 증원군을 시칠리아에 파견했다.
무티네스는 경기병대를 이끌고 농장을 파괴하고 농작물을 불태우는 등 로마에 귀순한 마을들을 연이어 습격했다. 이에 로마는 기원전 210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를 시칠리아 방면으로 파견하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로마군과 대치하게 된 카르타고군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노가 무티네스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는 걸 시기하다가 마침내 그를 해임하고 누미디아 기병대의 지휘권을 자신의 아들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무티네스는 이에 분노하여 라이비누스와 협상을 시작했다. 로마군이 아그리젠툼 외곽에 이르자, 그의 부하들은 관문 중 하나를 열어줬고, 로마군은 즉시 도시로 들어가 적군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한노와 에피키데스는 가까스로 도주했고, 그는 로마군에 귀순했다. 이후 로마 시민권을 받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무티네스'로 개명하였고, 로마 보조군의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