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American Expeditionary Force, 미국 원정군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주 전장인 프랑스에 파견된 미국 육군의 전투 단위였다.2.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와중 독일의 테러와 무제한 잠수함 작전, 그리고 치머만 전보로 인해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미국 원정군이 결성되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판초 비야 토벌을 지휘한 프레드릭 펀스턴 소장을 사령관으로 고려했지만, 펀스턴 소장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1917년 5월 존 조지프 퍼싱 소장을 미국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퍼싱 소장은 10월 부로 대장으로 진급하게 된다.6월까지 프랑스에 도착한 미군은 14,000명에 불과했고, 곧 미군은 보급 상의 한계에 부딪쳤다. 이에 프랑스에 도착한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보르도, 라 팔리스, 생나자르, 브레스트 등의 항구에서 82개의 새로운 선박 정박장, 1,600km에 육박하는 추가 표준 게이지 트랙, 160,000km 이상의 전화 및 전신선을 건설했다.
처음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제1보병사단은 10월부터 전선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다음 해인 1918년 4월 제1군단이 공식적으로 창설되었고, 이후 미군은 전장 및 참호전 적응과 영국군 지원을 위해 영국군 휘하에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프랑스에 도착한 미군은 자국제 장비와 지원받은 프랑스와 영국제 장비들로 무장했고, 현지에서 무기에 대한 적응 훈련을 받았다.
1918년 봄 동안 미군 4개 사단[1]이 전투 태세를 갖추었고, 이 부대들은 영국군과 프랑스군 휘하에 배치되었다. 이후 6월까지 미군은 하루 10,000명 단위로 프랑스에 도착했고, 현지에서 최소 6주 가량의 훈련을 받았다.
미국 원정군 예하의 육군과 해병대[2] 병력들은 제2차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벨로 우드 전투에도 투입되는 등 영국군과 프랑스 군 휘하에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9월 미국 원정군은 생미엘에서 첫 단독 공세를 개시했다. 이후 미국 원정군 예하의 미군과 프랑스군 1,200,000명은 뫼즈-아르곤 공세에서 격렬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압도적인 전투 능력을 보이며 독일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1918년 11월 11일 종전 이후에도 제3군이 편성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던 미국 원정군은 차례대로 소집에서 해제되었고, 최종적으로 1920년 8월 31일에 해산식을 거쳐 해산되었다.
3. 편제
- 제1군 / First Army
- 제3군단 / III Corps
- 제90보병사단 / 90th Infantry Division
- 제5보병사단 / 25th Infantry Division
- 제32보병사단 / 32nd Infantry Division
- 제5군단 / V Corps
- 프랑스 제2식민지군단 / French II Colonial Corps
- 프랑스 제15식민지사단 / French 15th Colonial Division
- 제79보병사단 / 79th Infantry Division
- 제26보병사단 / 26th Infantry Division
- 프랑스 제10식민지사단 / French 10th Colonial Division
- 제81보병사단 / 81st Infantry Division
- 제1보병사단 / 1st Infantry Division
- 제6보병사단 / 6th Infantry Division
- 제29보병사단 / 29th Infantry Division
- 제80보병사단 / 80th Infantry Division
- 제3보병사단 / 3rd Infantry Division
- 제2군 / Second Army
- 제4군단 / IV Corps
- 제28보병사단 / 28th Infantry Division
- 제7보병사단 / 7th Infantry Division
- 제6군단 / VI Corps
- 제92보병사단 / 92nd Infantry Division
- 프랑스 제17군단 / French XVII Corps
- 제33보병사단 / 33rd Infantry Division
- 제88보병사단 / 88th Infantry Di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