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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21:03:25

민영(1587)

민영
閔栐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587년
사망 1637년 (향년 54세)
경기도 광주부 쌍령(現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정보(正甫)
시호 충장(忠莊)
본관 여흥 민씨
부모 부친 - 민여경(閔汝慶)
모친 - 전의 이씨(全義 李氏)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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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신.

2. 생애

1587년 태어났으며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을 지냈고, 비변사의 낭청을 지냈다고 한다. 1624년 2월에 비변사 낭청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고, 같은 해 3월에는 지방직으로 나갔다. 1629년 이산부사에 제수되었다. 비변사에 있으면서 빠르게 승진한 케이스다.

1631년 9월 4일 의주부윤에 임명되었으나, 청렴하고 근신하다는 명망에 반해 무예는 뛰어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제지를 받았다. 인조는 도체찰사 김류에게 물었고, 김류가 사헌부의 제제에 동의함으로써 의주부윤에 임명되지 못했다. 대신 1633년 6월 혜산진의 첨절제사로 임명되었고, 이후에는 정평부사를 지냈다. 1635년 10월 절충장군으로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고, 12월에 부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12월 병자호란으로 청군이 빠른 속도로 도성으로 진군하자 인조 등 조정 대신은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하면서 전국의 근왕군을 소집하였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관찰사 및 병마절도사들은 휘하의 군관들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향하여 청군의 포위망을 풀고자 하였다.

먼저 충청감사 정세규의 군사가 험천, 충청병사 이의배의 충청도 근왕군이 죽산에 각각 도착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권정길이 거느린 강원도 근왕군의 선발대가 검단산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각기 청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모두 각개격파 당했다.

이 무렵 경상좌병사 허완, 경상우병사 민영이 이끄는 경상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으로부터 30리가량 떨어진 광주부 쌍령에 도착하였다. 일시적으로 물러났다가 돌아와 죽산에 주둔하고 있던 충청병사 이의배도 군대를 거느리고 경상도 근왕군에 합류했다.

1637년 1월 3일 청군이 쌍령을 공격하였다. 격전 끝에 경상도 근왕군은 대패하였는데, 허완과 민영, 이의배, 최진립, 선세강등 주요 지휘관이 모두 전사하였다. 패전의 경위에 대해서 다양한 설이 있지만 당시에도 구체적인 패전의 경위는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청군 역시 최고 지휘관 실투가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고 관련자를 문책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투 후 김자점에 의해 패전 및 전사 사실이 인조에게 보고되었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30년 영조가 민영의 자손들을 기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충장의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