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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6 07:14:31

바페팀비 고미스

바페팀비 고미스의 역임 직책
{{{#!folding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주장
스티브 만단다
(2010~2016)
바페팀비 고미스
(2016~2017)
디미트리 파예트
(2017~2019)
}}} ||
바페팀비 고미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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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파일: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로고.svg
베스트팀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파일:쉬페르리그 로고.svg
}}} ||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파일:Bafetimbi Gomis Lyon.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fff> 이름 바페팀비 고미스
Bafétimbi Gomis
본명 바페팀비 프레디우스 고미스
Bafétimbi Fredius Gomis
출생 1985년 8월 6일 ([age(1985-08-06)]세)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라센쉬르메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
[[세네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 체중 77kg
직업 축구선수 (중앙 공격수 / 은퇴)
주발 오른발 (양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fff> 유스 AS 생테티엔 (2001~2004)
선수 AS 생테티엔 (2004~2009)
트루아 AC (2005 / 임대)
올랭피크 리옹 (2009~2014)
스완지 시티 AFC (2014~201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16~2017 / 임대)
갈라타사라이 SK (2017~2018)
알 힐랄 SFC (2018~2022)
갈라타사라이 SK (2022~2023)
가와사키 프론탈레 (2023~2024)
국가대표 12경기 3골 (프랑스 / 2008~2013)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fff> 등번호 <colbgcolor=#fff,#191919><colcolor=#000000>AS 생테티엔 - 33번, 18번
트루아 AC - 15번
올랭피크 리옹 - 18번, 9번
스완지 시티 AFC - 18번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18번
갈라타사라이 SK - 18번
알 힐랄 SFC - 18번
가와사키 프론탈레 - 18번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9번, 18번
가족 사촌형제 낭팔리스 멘디, 알렉상드르 멘디
}}}}}}}}}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수상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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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2.1. AS 생테티엔

AS 생테티엔 유스팀에서 시작, 2004년 A팀에 콜업되었으며, 첫시즌인 04-05 시즌에 13경기 2골을 기록한 뒤 트루아 AC로 6개월 단기임대로 이적했다. 이적 후 13경기 6골의 좋은 활약을 보인 뒤 생테티엔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05-06시즌엔 24경기 2골로 부진하며 기대 이하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06-07 시즌 30경기 10골로 페이스를 끌어 올리더니, 07-08 시즌 34경기 16골로 맹활약, 생테티엔의 에이스로 활약해 팀의 UEFA컵 진출에 공헌했다. 이때부터 EPL이나 세리에 A의 빅클럽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관심 속에 08-09시즌에 돌입했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리그 17경기 5골에 그치는 모습을 보였으나, UEFA컵에서 4경기 3골이라는 활약으로 폼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2.2. 올랭피크 리옹

이후 2009년 7월, 1300만 유로에 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했다. 리옹은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며 대체자가 필요했고, 고미스 역시 빅클럽으로의 이적에 관심이 있던 상황이라 이적이 무난히 성사되었다. 하지만 AS 생테티엔올랭피크 리옹은 프랑스 남동부 롱-알프스 데르비(일명 르 데르비)로 통칭되는 라이벌관계라 생테티엔 팬들의 반응은 그닥 좋지 못했던 듯.[1]

하지만 09-10 시즌에는 리그와 챔스를 통틀어 17경기 4골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시즌에 이어서 출전 경기수 자체가 적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하지만 10-11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16강에서 득점하는 등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주며 챔스 7경기 2골, 리그 35경기 10골로 어느 정도 살아났다.

이어진 11-12 시즌, 고미스는 다시 폼을 되찾으며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 리옹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는 등 빅매치에 강한 모습을 꽤 많이 보여줬다. 최종 성적은 챔스 6경기 5골[2], 리그 36경기 14골로 총 42경기 19골을 기록했다. 팀은 리그 4위로 유로파 리그까지 밀려났지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12-13 시즌에서도 이런 활약은 계속되면서 유로파리그 6경기 2골, 리그 36경기 16골, 총합 42경기 18골로 지난 시즌보다 리그 기록은 더 좋아졌으며 팀 역시 성적이 크게 상승, 시즌 중반까지 PSG와 1위 경쟁을 했다. 하지만 최종 순위는 3위.

13-14 시즌에도 폼은 죽지 않았다. 팀이 챔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유로파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고미스는 유로파 리그에서 8경기 3골, 리그 33경기 14골로 총 41경기 17골을 기록했다. 문제는 팀 성적은 전 시즌보다 더 안 좋아져서 시즌 중반엔 7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막판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최종 순위 5위로 마무리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2013-14시즌을 끝으로 리옹과 재계약하지 않고 팀을 떠났다.

2.3. 스완지 시티 AFC

2014년 6월 27일, 스완지 시티 AFC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4년.

2.3.1. 2014-15 시즌

프랑스에서 맹활약한 선수가 EPL 중위권 팀인 스완지로 온 것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도 리그 앙에서 보여준 모습이 있으니 기대감도 있었다. 8월 26일에는 리그컵 2라운드 로더럼 유나이티드 FC전에서 선발 출전해 선제 결승골을 넣어 잉글랜드 무대 데뷔골을 신고, 팀의 1:0 승리에 기여하며 기대치를 더욱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이후 경기력은 그말싫 수준. 시즌 초반에는 경쟁자인 윌프리드 보니와 선발 출전 기회를 나눠 잡았지만, 보니가 커리어 하이 페이스의 득점력을 선보이고 팀도 함께 승승장구하자 고미스는 아예 주전 경쟁을 하지도 못하고 벤치로 밀려버렸다. 결국 교체 멤버로 경기에 중도 투입되거나 컵대회에서 출전 기회를 잡는 정도였는데, 결국 이로 인해 경기 감각이 죽고 적응도 잘 하지 못했는지 폼까지 떨어지면서 경기력은 좋지 않았으며 특히 골 결정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잉글랜드로 간 후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부진. 하필이면 같은 팀에 기성용이 있는지라 한국 해축 팬들 사이에서 고미스의 이미지가 그냥 덩어리로 전락했다.

리그 11라운드 아스날 FC전에서 교체 출전해 제페르손 몬테로의 크로스를 헤더 골로 연결하며 9경기 만에 리그 첫 골을 신고했다. 이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스완지가 2:1로 이긴 것은 덤.

그러나 이어진 12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FC전에서는 후반에 교체 출전했으나 윌프리드 보니의 킬패스를 받아서 따낸 완벽한 1대1 기회에서 유효 슛조차 때리지 못하는 허접한 개발슛(...)을 시전하면서 팀의 1:2 패배에 한 몫 하고 말았다. 보니가 좋은 연계력에 더해 전반전에 선제골까지 넣은 지라 더욱 비교된 것은 덤.

이후 계속해서 무득점 행진을 기록하다가 1월 3일 FA컵 3라운드 트란메어 로버스 FC전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2달 만에 골 맛을 봤다.

이후 윌프리드 보니가 1월 14일에 맨체스터 시티 FC로 떠나며 드디어 주전자리를 꿰찼지만, 경기력은 여전히 별로라서 온갖 욕을 들어 먹었다. 보니의 이적에 고미스의 부진, 기성용의 아시안컵 차출[3] 탓에 이 시기 스완지는 급격한 득점력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리그 26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73분에 뜻밖의 역전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의 주역이 됐다. 사실 고미스가 잘 한 건 아니고 존조 셸비의 중거리 슛이 고미스의 머리에 맞고 굴절되면서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의 역방향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셸비의 골로 기록됐다가 나중에 고미스의 골로 정정됐다. 아무튼 리그 2호 골.

이후로도 여전히 썩 좋지 않은 경기력을 이어가는 듯하더니, 30라운드 아스톤 빌라 FC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제페르손 몬테로의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면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심지어 다음 라운드 헐 시티 AFC와의 경기에선 멀티 골을 기록했는데, 특히 첫 번째 골은 상대 수비로 공이 애매한 위치에 뜨자 그대로 환상적인 바이시클킥 발리슛으로 득점했고, 두 번째 골은 역습상황에서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못넣던 1대1 상황에서 깔끔한 칩샷으로 득점한지라 더욱더 의미있었다.[4]

그런데 32라운드 에버튼 FC전에서 17분 만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실려나가며 올라오던 페이스가 끊겨버렸다. 결국 3경기 결장 크리.

그러나 부상은 별 일 아니라는 듯 36라운드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후반에 기성용 대신 교체 출전해 복귀전을 치렀고, 86분에 결승골을 작렬하면서 스완지의 아스날 상대 2연승을 이끌었다. 이어진 37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FC전에서도 팀은 후반 막판에 연달아 실점하며 2:4로 졌으나 64분에 동점골을 넣는 등, 조금씩 리옹 시절 경기력이 살아나는 모습이다.

최종전인 38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FC전은 득점 없이 침묵하며 리그 31경기 7골, 리그컵 3경기 1골, FA컵 2경기 2골 2도움 등 총 36경기 10골 2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전반기에 그렇게나 부진했으나 리그 마지막 10경기 중 7경기만 뛰고도 5골을 넣을 정도로 리옹 시절 폼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2014-15 시즌: 36경기 10골 2도움
<rowcolor=#0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1 18 13 7 0
캐피탈 원 컵 3 3 0 1 0
FA컵 2 2 0 2 2
합계 36 23 13 10 2

2.3.2. 2015-16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안드레 아이유에데르가 영입되면서 다시금 주전 경쟁에 나서게 됐다. 다만 시즌이 개막하자 아이유는 네이선 다이어가 있던 측면에서 주로 나서고 있고, 에데르는 아직 적응이 필요해서 고미스가 먼저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꿰차게 됐다.

리그 1라운드 첼시 FC전에서 55분에 페널티 킥으로 동점골을 넣으며 2:2 무승부에 힘을 보탰고, 이어진 2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서도 9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다.

3라운드 선덜랜드 AFC전에서도 전반 추가시간에 득점포를 가동하더니, 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전에서는 66분에 승부를 뒤집는 역전골을 작렬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스완지 시티 구단 역사상 최초로 개막 후 4경기 연속골을 기록했으며, 지난 시즌까지 합치면 최근 10경기에서 9골을 넣는 엄청난 득점 페이스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게 전 시즌 초반의 부진은 완전히 떨쳐내는 듯했지만...

맨유전 이후 지난 시즌 초중반까지의 모습으로 회귀하면서 3개월 넘게 득점 없이 침묵했다. 분명 몸싸움은 엄청나고 라인 브레이킹 능력도 나쁘진 않은데 1대1 찬스에서 골키퍼 정면으로 슛을 날리거나 아예 유효슛도 날리지 못할 정도로 결정력이 최악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혼자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오픈 찬스를 허무하게 놓치니 복장이 뒤집어질 노릇. 드리블이나 연계도 좋지 않고, 라인 브레이킹도 나쁘지만 않다 뿐이지 오프사이드 트랩에 경기당 2~3번은 낚일 정도로 좋은 편도 아니다. 사실상 몸싸움 원툴.[5]

문제는 경쟁자인 에데르의 폼도 답이 없어서 스완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고미스를 쓰거나 아예 안드레 아이유를 최전방으로 올려야만 하는 상황. 자연스레 팀 성적도 쭉쭉 떨어졌고 12월 9일에는 게리 몽크 감독도 경질당했다. 와중에 팀 성적이 나빠지자 고미스가 존조 셸비와 함께 팀을 나가고 싶어 한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그런데 몽크가 경질되고 3일 뒤 열린 리그 1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FC전에서 후반 정규시간 종료 직전에 1대1 찬스를 잡은 뒤 모처럼 자신 있는 맞뒈슛을 선보이며 약 100일 만에 득점포를 가동했다. 팀이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동점골이라 더욱 값졌지만, 단 3분 후 경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켈레치 이헤나초에게 역전골을 얻어맞으며[6] 결국은 졌다.

맨시티전 이후로도 FA컵에서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득점한 것을 제외하면 다시 부진을 거듭하면서 결국 프란체스코 귀돌린 신임 감독은 고미스를 벤치로 보냈고,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서 알베르토 팔로스키가 영입되면서 완전히 자리를 잃었다. 영입, 고미스는 벤치 멤버로 전락했다.

이후 한동안 또 침묵하다 37라운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전에서 교체 투입돼 후반 막판에 득점을 신고했다. 리그 기준으로는 5개월 만의 득점.

결국 리그 33경기 6골로 지난 시즌보다도 적은 득점으로 마무리했다. 개막 후 4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한 기간을 빼면 29경기 2골이니 답이 없다. 여기에 에데르알베르토 팔로스키도 삽질을 하긴 했으나 스완지는 귀돌린 체제에서 반등하면서 중위권까지 올라 잔류에 성공했다.

2015-16 시즌: 35경기 7골
<rowcolor=#0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18 15 6 0
캐피탈 원 컵 1 0 1 0 0
FA컵 1 1 0 1 0
합계 35 19 16 7 0

2.3.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임대)

2016-17시즌을 앞두고 진행 중인 스완지의 미국 프리시즌 투어에도 참가하지 않으면서 팀을 떠나는 것이 유력해보였는데, 결국 7월 29일자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의 임대가 발표되며 2년 만에 리그 앙으로 돌아가게 됐다.

리그 3라운드 FC 로리앙에서 마르세유 데뷔골을 기록했다. 리그 5라운드 올랭피크 리옹전부터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리그 앙이 22라운드까지 리그가 진행된 가운데 현재 고미스는 리그에서만 13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2시즌 간 프리미어리그에서 기록한 득점 수와 같은 수치이다. 득점 순위에서도 에딘손 카바니알렉상드르 라카제트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등 마르세유 공격의 핵으로 거듭났으며 지난 시즌까지 마르세유 최전방을 책임졌던 미키 바추아이의 공백을 훌륭히 메꾸는 중.

최종 기록은 리그 31경기 20골 3도움, 쿠프 드 라 리그쿠프 드 프랑스 합산 3경기 1골 1도움 등 총합 34경기 21골 4도움으로 스완지에서의 부진을 털어내고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리그 앙에서 20골을 기록한 것은 덤.

2016-17 시즌: 34경기 21골 4도움
<rowcolor=#0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리그 1 31 30 1 20 3
쿠프 드 라 리그 2 2 0 1 1
쿠프 드 프랑스 1 1 0 0 0
합계 34 33 1 21 4

2.4. 갈라타사라이 SK 1기

2017년 6월 28일, 터키 쉬페르리그갈라타사라이 SK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이적료는 약 250만 파운드. 프랑스 무대에서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줬음에도 터키행을 택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터키에 친구들이 많아서라고.

스완지에서야 망했지 리그 앙에서 탑급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만큼 더 수준이 낮은 터키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리라 기대를 모았는데, 기대를 더 뛰어 넘어 터키 리그를 씹어먹는 맹활약을 펼쳤다. 리그 33경기 29골 5도움으로 득점왕에 올랐고, 컵대회 등을 합산한 기록은 40경기 32골 6도움으로 고미스 본인의 한 시즌 최다 골 신기록이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쉬페르 리그 올 해의 선수로도 선정됐으며, 팀도 21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파일:Bafetimbi Gomis Galatasaray.webp

이러한 퍼포먼스로 갈라타사라이 팬들 사이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특히 고미스 특유의 야수같은 골 셀러브레이션이 갈라타사라이의 심볼인 사자를 연상케 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아예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까지 새로 붙었을 정도.

2.5. 알 힐랄 SFC

터키에서의 짧고 굵은 활약을 마치고 2018년 8월 23일에 알 힐랄 SFC로 이적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무대에 발을 들였다. 나이도 슬슬 있고 하니 진짜 돈 벌러 간 것으로 보인다.

직전 시즌에 터키를 정복한 기량은 어디 안 가서 첫 2시즌 동안 리그 59경기 48골 11도움이라는 괴력을 발휘했다. 특히 2019년에 열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14경기 11골이라는 미친 득점력으로 팀의 우승을 견인하고 대회 MVP까지 수상했다. 유럽 국적 선수의 AFC 챔피언스 리그 MVP 선정은 역대 최초다.

2020-21시즌에는 리그 24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이어진 2021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조별리그 6경기 3골에 이어 16강 에스테그랄 테헤란 FC전 득점, 8강 페르세폴리스전 멀티골 등으로 팀을 견인했다.

준결승 알 나스르 FC전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으나 그래도 도움 하나를 적립했고, 팀도 뱅상 아부바카르가 후반 막판 완벽한 기회를 놓친 덕을 보며 결승에 올랐다. 한 달 뒤인 11월 23일 열린 결승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던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후반전 무사 마레가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한 뒤 후반 막판 야세르 알샤흐라니와 교체되었고, 팀은 그대로 2:0으로 이기며 다시 한 번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2021-22시즌 리그에서는 전반기 17골 9도움을 기록하고 있었고, 2022년 1월 25일에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며 팀을 나왔다.[7] 알 힐랄에서만 통산 146경기 105골 18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6. 갈라타사라이 SK 2기

2022년 2월 2일, 친정팀 갈라타사라이 SK와 계약을 맺고 터키 무대로 복귀했다. 계약 기간은 1년 반.

합류 당시 갈라타사라이는 전반기 내내 삽질을 거듭하며 파티흐 테림 감독이 경질됐고, 새로 합류한 도메네크 토렌트 감독도 부임 직후 3연패 수렁에 빠지며 15위까지 굴러떨어지는 등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요 원인에 빈공에 시달리던 공격진이 있던 터라[8] 고미스를 영입해 보강을 꾀한 것.

합류 후 2번째 경기였던 26라운드 괴즈테페전에서 후반 막판 PK로만 2골을 넣고 팀의 3:2 대역전승에 힘을 보탰다. 이후로도 맹활약하며 14경기 9골로 시즌을 마무리. 팀도 11위까지 순위를 끌어 올리며 큰 어려움 없이 잔류에 성공했다.

2022-23시즌에는 시즌 초반 리그 6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는 등 팀을 먹여 살렸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조금씩 폼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시즌 중반에는 오칸 부루크 감독과의 불화설이 나오기도. 그래도 잘 수습하며 시즌 중반까지는 나름 건재한 모습을 과시했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마우로 이카르디에게 자리를 내주고 거의 내내 벤치를 지켰다. 결국 1월 13일 하타이스포르전 득점이 시즌 마지막 득점이 됐다. 기록은 28경기 10골 3도움.

시즌을 마치고 계약만료로 팀을 떠났다. 루머에 따르면 페르세폴리스 FC트락토르 SC 중 한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2.7. 가와사키 프론탈레

2023년 8월 8일, J1리그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일본 무대 합류 후 아직 적응이 덜 됐는지 리그에서는 8경기 3도움에 그쳤고,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다. 가시와 레이솔과의 천황배 결승에서는 승부차기에서 고미스 답지 않게 PK를 실축하기까지 했으나 팀은 정성룡의 맹활약 덕에 우승을 차지했다.
파일:1000000988.jpg

2024시즌에는 초반부터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하며 전력에서 배제됐다. 복귀 후 조금씩 출전 시간을 날려가다가 13라운드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와의 경기에서 일본 무대 첫 골+해트트릭을 작렬했지만, 이후 4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침묵하며 다시금 전력 외 판정을 받았다.

2024년 9월 24일, 계약 만료로 팀을 나왔다.

2.8. 은퇴

2024년 11월 11일,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07-08 시즌의 맹활약으로 UEFA 유로 2008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하지만 이후엔 국가대표팀과는 영 인연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메이저급 대회 엔트리엔 전혀 들지 못했다.[9]

국대 기록은 12경기 3골.

4. 플레이 스타일


두각을 드러내던 리그 앙 시절에는 6각형 유형의 만능 공격수였다. 득점을 하기 위한 공간 침투와 민첩한 움직임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미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아프리카 혈통다운 운동능력을 바탕에 두는 짐승 같은 볼 경합 능력. 지상부터 공중볼 경합에서까지 볼을 잘 따내는데, 이를 바탕으로 세트피스에서의 헤더부터 최전방에서 버텨주는 포스트플레이에도 능했다.

거기에 오른발이 주발이지만 왼발도 상당히 잘 쓰는 양발잡이 공격수로, 골 결정력이 특출난 선수는 아니지만, 뛰어난 슈팅 파워와 스킬이 평균 이상이었기에 박스 안팎에서 위협적인 슈팅을 시도했다. 다양한 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장점들이 전부 통하면서 리그 앙의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으로 통했다.[10]

그러나 스완지 이적 이후에는 골 결정력이 평균 이하를 넘어 심해까지 떨어져 버렸고, 경기 감각 문제인지 연계는 전혀 안되고, 여전히 압도적인 몸싸움은 보여주나, 공격 침투 상황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에 번번이 걸린다. 그렇다고 침투를 잘 해들어가면 득점을 해내지 못한다. 대부분의 팬들은 PL의 타이트한 축구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마르세유 임대를 통해 리그 32경기 20골을 폭발시키며 부활의 날갯짓을 펼쳤다. 그리고 갈라타사라이에 이적 한 뒤 33경기 29골로 득점왕, 리그 우승으로 시즌 마감하는 등 PL에서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1] 나이가 나이인지라 침투는 줄었지만 가히 터키 리그 최고의 파워 슈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슛이 일품이다.

종합하자면 피지컬 활용 능력, 득점력과 양발 슈팅력, 준수한 스피드와 침투, 연계 능력까지 갖춘 육각형 공격수지만, 피지컬을 제외하면 나머지 툴이 S급이라기엔 2%씩 모자란 살짝 작은 육각형 공격수였다. 그래서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활약은 저조했으나, 약간 아래 수준인 프랑스 리그 앙이나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에서는 특급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듣기에 아깝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5. 수상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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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같은 표정이 특징적인 선수이다. 여기에 저 독특한 특유의 흑표범 세레머니[12]까지 더해지면 정말 무섭게 느껴진다.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스완지 시절에도 한 소녀가 고미스의 세리머니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었고, 알 힐랄 시절에는 볼보이가 고미스의 세리머니에 놀라 도망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선수, 필드 밖에서는 천사로 통할만큼 착하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선행도 많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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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활짝 웃으면 윌프리드 보니 이상으로 이렇게 천진난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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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 EPL 1R 첼시 전에서 오프사이드에 걸린 후 웃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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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테티엔 시절부터 한 레게머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데뷔 초에는 위 사진처럼 머리를 묶지 않고 풀어헤친 상태로 경기를 뛰었다.

미주신경성 질환으로 인해 경기 중 실신을 한 적이 몇 차례 있다. 스완지 이적 후에도 한 번 실신한 적이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조상이 세네갈계라고 한다.

[1] 참고로 고미스는 생테티엔에서 리옹으로 이적한 역사상 6번째 선수가 되었다.[2] 그중 디나모 자그레브 원정에선 한경기 4득점하며 팀의 7-1 대승을 이끌었다. 또한 이 경기에서 7분만에 해트트릭을 넣으며 마이크 뉴웰이 가지고있던 챔스경기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다른말로 하면 그경기 빼고 5경기 1골 11년 뒤인 2022-23 시즌에 모하메드 살라레인저스 FC전에서 6분만에 해트트릭을 넣으며 다시 깨졌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 역시 리버풀이 똑같은 7:1로 이겼다.[3] 놀랍게도 보니가 떠난 직후 스완지 팀 내 득점 1위가 다름아닌 기성용이었다. 기성용은 이 시즌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리그에서 8골이나 넣으면서 가히 커리어 하이라고 해도 좋을 1년을 보냈으며, 스완지 팬 선정 올해의 선수상도 받았다. 참고로 기성용의 8골은 당시 기준 아시아 선수가 PL에서 기록한 가장 많은 한 시즌 득점이었으며, 이는 이후 손흥민에 의해 경신된다.[4] 고미스가 이 골 전까지 리그에서 넣은 골들은 모두 1대1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넣었다. 물론 1대1 기회는 무지하게 많았다. 단지 고미스가 죄다 날려먹었을 뿐이다(...).[5] 이 때문에 한국 팬들 중에서는 2012-13시즌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의 폭망에 일조한 지브릴 시세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시세도 리그 앙을 비롯한 타 리그에서는 훌륭한 활약을 남겼으나 QPR에서는 좋던 폼을 다 잃고 부진했던 점에서 고미스와 닮은 점이 있다.[6] 야야 투레의 왼발 슛이 이헤나초의 등에 맞고 굴절돼 들어갔다. 처음에는 투레의 골로 기록됐다가 나중에 이헤나초의 골로 정정.[7] 알 힐랄은 그 후 대체자로 오디온 이갈로를 영입하였다.[8] 23라운드 종료 기준 단 28득점으로 공동 13위에 그쳤다. 물론 실점 기준 뒤에서 7등이던 수비도 답이 없긴 했지만.[9] 사실 이는 EURO 2008 당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자원이 다소 애매했다. 티에리 앙리는 늙어 폼이 떨고, 카림 벤제마는 막 포텐이 터진 시기였으며, 시드니 고부도 영 아닌데다가 스트라이커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니콜라스 아넬카도 당시엔 폼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그리고 2010년 월드컵때는 고미스 본인의 폼이 국대에 선발되기엔 아쉬운 폼이었으며, UEFA 유로 2012에는 두말할 필요 없는 카림 벤제마가 있는데다 직전시즌 리그 앙 득점왕을 차지한 올리비에 지루가 등장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때도 부동의 주전인 카림 벤제마가 있는 데다 올리비에 지루, 로익 레미 등 경쟁자들에도 밀려나면서 결국 탈락했다.[10] 기록을 살펴보면 2006년부터 매 시즌 꾸준하게 13골 이상 넣었고 20골을 넘긴 시즌도 제법 있다.[11] 특히 윙어 개리 호드리게스와 연계가 잘 맞았다. 고미스가 득점한 9골의 어시스트가 호드리게스.[12] 생태티엔의 선배 선수 알렉스(Alex Dias)의 세레모니를 계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