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63><colcolor=#fff> 대한민국의 교수 박근원 朴根遠 | |
출생 | 1934년 |
전라북도 고창군 | |
사망 | 2023년 10월 26일 (향년 89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한신대학교 (신학 / 학사) 한신대학교 (신학 / 석사) 듀부크 대학교 (신학 / 박사) |
경력 |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대한기독교서회 이사 한국목회학박사원 위원장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 객원교수 한신대학교 학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KAATS) 회장 한국 실천신학회 회장 한국 기독교학회 회장 대한기독교교육협의회(KCCE) 회장 한국목회상담협회 회장 아시아 목회상담협회 회장 |
가족 | 배우자, 슬하 박상호, 박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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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2. 생애
그는 1934년 전북 고창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철저한 유교집안이었고, 할아버지는 한학자였다. 할아버지의 유교적 완고함으로 큰 형과 두 누나는 신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 역시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는데 그러던 중 할아버지의 신문명에 개방되지 않은 문화적 체제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고 느낀 아버지로 인해 늦게나마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사귄 친구 따라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그는 한신대를 졸업한 뒤 한신대 교수와 학장을 지내면서 1970년대 졸업가운을 한국화 시켰다. 한복디자이너들과 많은 대화와 고증 끝에 기본틀은 두루마기이지만 학자풍의 도포스타일을 살려서 사모관대를 만들어 입혔던 것이다. 남자들은 사모 옆에 뿔이 있고, 여자들은 뿔이 없는 것으로 하고, 가운에 학교흉배도 넣었다. 칼빈에 의해 검은색 학위가운이 되어 버린 것을 두루마기로 한 것을 신학과가 계속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1980·90년대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표로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에 참여하고 한국 신학자 대표로 세계교회협의회(WCC) 활동을 하면서 전 세계를 돌았다. 그때 그는 스위스 종교개혁의 본산지 교회들을 탐방하기도 하고,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의 교회를 찾아가 보면서 개혁교회의 교역에 대해 알아보는 신학 여행을 다녔다. 그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실천신학자인 루돌프 보렌 교수와의 교류로 실천신학의 학문적 유산을 전수 받기도 하고, 투르나이젠이나 폰 알멘 등의 학자들을 통해서도 교역이 성직자에게만 위임된 것이 아님을 공감하며 학문을 정진했다. 이후 그는 1999년 정년퇴임하였고 2000년대부터는 실천신학, 특히 설교학 분야의 권위자로 활동했다.3. 사망
2023년 10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4. 저서
-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
- 예배찬송
- 오늘의 예배론
- 오늘의 교역론
- 교회력과 목회기획
- 온땅의 새바람으로
- 주님의 교회 일구기 가꾸기
- 예배자료 21
- 현대신학실천론
- 목회와 교회예식
- 희망예식서(새로운예배자료 4)
- 교회예배서(새로운예배자료 1)
- 믿음예식서(새로운예배자료 2)
- 사랑예식서(새로운예배자료 3)
- 새로운 예배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