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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21:57:52

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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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4년 6월 14일
충청남도 서천군
사망 1942년 7월 1일
충청남도 서천군
본관 고령 박씨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3.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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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에서 동지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2. 생애

박재엽은 1894년 6월 14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박재엽은 1919년 4월 29일 송기면이 주도한 만세운동에 김인두, 양재흥, 고시상 등과 함께 2천여명의 군중을 지휘하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송기면과 유성렬 등 6명이 경찰출장소로 강제 연행됐다.

이에 그는 김인두, 양재흥, 고시상 등과 함께 시위군중을 이끌고 경찰출장소로 가서 연행자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창문 유리와 기물 등을 파괴하여 연행 당한 사람들을 구출하는 게 성공했다. 그리고 출장소 안에 있는 일본 경찰들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한테 붙잡혔다. 박재엽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충청남도 서천에서 감옥 후유증으로 인해 광복 3년 전에 사망했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박재엽의 공훈을 기리며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