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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7-26 10:51:29

8.12 성명


1. 개요2. 배경
2.1. 혁명공약 6조2.2. 미국의 불만
3. 내용4. 실상

1. 개요

1961년 8월 12일, 박정희가 발표한 담화로, 민간으로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8.12 성명은 외형상으로는 민정 이양을 선언한 문서였지만, 그 내면에는 정권 유지와 기존 정치 세력 배제를 위한 전략적 계산이 깊이 깔려 있었다.

2. 배경

2.1. 혁명공약 6조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발표한 ‘혁명공약’ 제6조를 통해, 일정한 과업이 완수되면 정권을 민간에게 이양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러한 입장에 의거해 8.12 성명을 발표한다.

2.2. 미국의 불만

박정희가 8.12 성명을 발표한 이유는 단순히 국내 여론을 고려한 조치만이 아니라,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통성과 안정성을 의심하던 미국국제사회를 의식한 대응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남로당에 가담한 이력이 있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을 전복했다고 인식했었던 만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1]

3. 내용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이 성명을 발표하면서, 1963년 초 정당 활동을 허용하고 3월 이전에 새로운 헌법을 제정 및 공포하며, 같은 해 여름에는 정권을 민간으로 이양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중심제의 정부 형태, 단원제 국회(100~120명 규모), 철저한 공영제에 기반한 선거 방식 등 정치 제도의 방향성도 언급하였다.

4. 실상

그러나 8.12 성명의 핵심에는 “최소한의 기초 작업을 완수한 후” 민정 이양을 하겠다는 단서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박정희가 정권을 쉽게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기초 작업’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해석에 따라 정권 이양을 얼마든지 연기하거나 조건부로 전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었다.

실제로 박정희와 그의 핵심 측근인 김종필은 기존의 ‘구정치인’들에게 정권을 넘길 생각이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이들 정치 세력을 과거 정치 부패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배제하고자 하였다.

박정희는 이러한 입장을 토대로, 8.12 성명 발표 전후에 김종필에게 민정 이양과 관련한 대안 마련을 지시하였다. 김종필은 이에 따라 8.15 계획서를 작성한다.
[1] 실제로 박정희는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하여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케네디는 8.12 성명을 재확인하고 그 내용에 만족을 표함으로써, 사실상 군사정부를 조건부로 승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